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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6 엔터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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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타운급 항공모함
파일:CV-5누끼.png 파일:CV-6누끼.png 파일:CV-8누끼.png
CV-5
요크타운
CV-6
엔터프라이즈
CV-8
호넷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SS_Enterprise_%28CV-6%29_in_Puget_Sound%2C_September_1945.jpg
USS CV-6 Enterprise

1. 개요2. 제원3. 연혁4. 평가
4.1. 참전기록 및 전공4.2. 엔터프라이즈가 가라앉지 않은 이유
5. 비교대상
5.1. 맞수들5.2. 나름대로 수훈함5.3. 빈수레5.4. 유럽전선의 군함
6. 기타
6.1. 배틀 360
7. 미디어8. 외부 링크

1. 개요

잿빛 유령(Gray Ghost)
미 해군 수병들이 엔터프라이즈를 부르던 애칭.

CV-6 엔터프라이즈는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으로, 미 해군에서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을 가진 7번째 함선이자 태평양 전쟁 당시 크게 활약한 미합중국 해군항공모함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전 기간, 전 참전국가를 통틀어 최고로 치는 수훈함[1]이자, 사실상 태평양 전쟁 한정으로 미 해군 그 자체였던 해전사 전무후무의 위업을 달성한 명 항공모함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미국 해군이 보유했던 정규 항공모함 8척[2]새러토가, 레인저와 함께 종전까지 살아남은 세 항공모함 중 하나로, 잿빛 유령(Grey Ghost)[3][4], 질주하는 유령(Galloping Ghost), 빅 E(Big E), 럭키 E(Lucky E)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미합중국 해군일본 제국 해군 모두 나름대로 수훈함이 많았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연이은 격전에 참가하면서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데 일조했으며, 결정적으로 끝내 살아남기까지 했다.

진취,[5]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일을 이룩함'이라는 뜻의 함명에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함생을 살았던 배이다.

2. 제원

파일:1920px-Yorktown-class_carrier_technical_drawing_1953.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Insignia_of_USS_Enterprise_%28CV-6%29_1938.png
함선로고

3. 연혁

파일:_mypi_gup_a_189_22_o_21221047240.gif
1938년도
파일:_mypi_gup_a_189_22_o_21221047241.gif
1942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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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도[11]

3.1. 건조

1934년 7월 16일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기공되고, 1936년 10월 3일 진수, 1938년 5월 12일에 취역했다. 요크타운과 함께 렉싱턴새러토가가 있는 태평양 함대에 배속되어 진주만을 모항으로 했으며, 항공기 수송과 훈련에 전념하게 된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요크타운은 대서양으로 이동하였고, 엔터프라이즈는 렉싱턴, 새러토가와 함께 태평양에 남아 있었다.

3.2. 진주만 공습

1941년 12월 2일, 웨이크섬에 와일드캣 12기를 배달하고 돌아오던 엔터프라이즈호는 원래대로라면 12월 6일에 입항했어야 하는데, 오다가 폭풍을 만나 입항 일정이 하루 늦어진다. 일본은 그 다음날인 12월 7일에 나구모 함대(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쇼카쿠, 즈이카쿠)를 동원해서 진주만 공습을 감행했고, 진주만은 불바다가 되었다. 일본군의 공습소식을 들은 엔터프라이즈는 서쪽에서 진주만으로 접근중이었고, 남쪽에서 일본 함대를 찾아 공격하는 임무를 받았지만 일본 함대는 북서쪽에 있었기에 허탕을 친다. 게다가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 중 일부는 명령에 따라 항모로 돌아오지 않고 진주만의 포드 섬 비행장으로 귀환했는데, 공습을 받아서 긴장한 아군 대공포 부대가 함재기가 일본군인줄 알고 오인사격을 해서 격추당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다만 나구모 함대의 항공모함이 6척임을 감안하면, 이때 엔터프라이즈가 나구모 함대를 발견하지 못한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수적 열세가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엔터프라이즈는 수색을 마치고 다음날인 12월 8일 진주만에 입항했고 급유작업을 마친 뒤[12] 다시 다음날인 12월 9일 재출격했다. 12월 10일 엔터프라이즈는 일본의 해대 6형 잠수함인 I-70을 침몰시켰고 이는 태평양 전쟁이 개전된 이후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처음 침몰시킨 적함이었다.

1941년 12월 8일, 웨이크섬은 일본군의 공습으로 와일드캣 8기를 잃는 등 큰 피해를 입는다. 일본군은 충분히 웨이크섬의 방어력을 약화시켰다고 판단하고 11일에 상륙함대를 보냈지만, 미 해병대는 와일드캣 4대와 군함에서 떼어온 해안포 6문으로 반격한 끝에, 2척의 구축함을 격침시키고 300명이 넘는 일본군을 사살했다. 특히 구축함 키사라기는 (엔터프라이즈가 가져다준) 와일드캣의 폭격으로 격침되었고 승조원 전원이 사망했다. 망신을 당한 일본군은 일본 해군의 명예를 걸고 웨이크섬을 점령하기로 하고,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2개의 항모전단(소류, 히류)과 제6전대 등의 정예부대를 동원해서 간신히 웨이크섬을 점령한다. 미군은 제 14기동부대를 웨이크섬 구원을 위해 파견했지만, 진주만 공습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미 함대를 사지로 보낼 수는 없었기에 함대를 회항시켰다. 프랭크 플레처 제독은 펄펄 뛰었지만 웨이크섬을 구원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웨이크섬 전투 참조.

1942년 2월 1일, 엔터프라이즈가 포함된 함대는 일본군이 점령한 길버트 제도를 기습하여 적함 3척을 침몰시킨다. 2월 24일에는 웨이크섬을 공격하고, 3월 4일 마커스 섬을 때린다. 이때 적의 공격으로 인한 지근탄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3.3. 둘리틀 특공대

1942년 4월 8일, 엔터프라이즈는 항모 호넷과 함께 비밀임무를 위해 출동한다. 그러나 4월 18일에 일본군이 그들을 발견했고, 여기서 엔터프라이즈의 전투기가 항공엄호를 담당하는 가운데 호넷이 배에 탑재한 B-25 미첼 폭격기 편대를 발진시킨다.[13] 이들이 바로 둘리틀 특공대였고, 일본은 대낮에 수도 도쿄를 폭격당하면서도 한 대의 폭격기도 못 잡는 치욕을 당했다. 일본군도 둘리틀 특공대가 출격했다는 정보 자체는 입수했지만, PBY 카탈리나 수상기가 아니며 미 해군은 카탈리나 이외의 쌍발기는 운용하지 않는다며 무시했다가 대낮에 대놓고 도쿄를 공습당하고 말았다.[14]

사실 공습 자체가 일본에 엄청나게 피해를 준 건 아니다. 하지만 백주대낮에 미군에게 수도인 도쿄가 빈집털이를 당했다는 것 자체가 진주만 공습으로 잔뜩 기고만장해하던 일본에게 한방 먹였다는 의미가 컸고, 루즈벨트는 "그날 히로히토가 공습을 모면한 건 우리가 봐줘서 그런 거다"라며 일본을 조롱했다. 이는 일종의 야사라는 말도 있으나, 일본 입장에서는 그런 건 관계가 없었다.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는 대본영의 자랑이 무색해진 데다, 일본군이 매우 중요시하는 체면이 짓밟혔기 때문이다.[15] 망신살이 뻗친 일본 해군은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할 방안을 찾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야마모토가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던 미드웨이 공격방안이 채택되었고, 일본은 연합함대를 출격시킨다. 핵심 전력은 당연히 나구모 제독의 항모전단(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였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이라는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미드웨이 공격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아래에 나오는 산호해 해전을 참조.

한편 둘리틀 특공대 작전을 수행할 당시 엔터프라이즈가 호넷과 직접 합류하기 직전인 1942년 4월 12일에는 소소한 사고가 발생했다. 한밤중에 갑자기 비상 사이렌이 울려퍼져 전 인원이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갔다. 비밀 임무를 앞두고 터진 일이라서 함내가 긴박하게 돌아갔는데, 사실은 당직근무를 서고 있던 인원이 졸다가 비상 사이렌 버튼을 잘못 누른 것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배틀 360'> 에 해당 증언이 있다.~저 찐빠낸 수병한테도 과연 아무 일도 없었을까~

3.4. 산호해 해전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도쿄를 공습하러 간 사이에 산호해 해전이 벌어진다. 미군은 요크타운과 렉싱턴을 투입해 일본군에 맞섰으며, 지휘관은 프랭크 플레처 제독.

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쇼카쿠즈이카쿠를 포함한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와 5개의 항모전단을 투입하였는데,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를 엄호하던 제6전대가 미 항모전단의 위치를 발견해서 5항전에 알려준다. 그러나 5항전은 쇼카쿠의 정찰기가 발견한 미군 항모전단을 공격하기 위해 이 정보를 무시했고, 플레처는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를 일본군 주력부대로 착각해서 총공격을 감행한다.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의 경항모 쇼호는 중과부적으로 침몰했고,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함재기들도 미군 항모전단을 격파했는데, 그 항모전단은 급유함 네오쇼(AO-23)와 그 호위인 심즈(DD-409)였다! 쇼카쿠 정찰기가 함종을 착각하는 바람에 승리의 기회가 날아간 것.

오후에 다시금 출격한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함재기들이었지만, 쇼카쿠 정찰기가 또 삽질을 하는 바람에 미 항모전단을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채 함재기들은 귀환하는데, 착함하려던 배는 미군 항모였고 일본기들은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이런 게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이랍니다 다음 날 벌어진 전투에서 쇼카쿠는 대파된다. 즈이카쿠는 한 방도 안 맞았지만, 전력을 크게 상실한 일본군은 포트 모르즈비 침공을 포기했다. 미군도 렉싱턴을 잃고 요크타운이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전략적 승리는 미군의 것이었다.

산호해 해전 이후, 미군은 모든 전력을 미드웨이에 긁어모은다. 미드웨이의 비행장은 온갖 종류의 비행기로 채워졌으며, 쓸 수 있는 배는 모조리 동원되었다. 도쿄에 다녀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숨을 돌리기도 전에 미드웨이로 갔고, 산호해 해전에서 중파당한 요크타운도 강제로 미드웨이로 보내졌다. 요크타운의 동력과 엘리베이터는 멀쩡하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항공모함을 단 한 척도 놀릴 여유가 없다며 수리중인 상태로 전선으로 보내라고 직접 명령하였기 때문이었다. 3개월은 걸릴 배를 3일 만에 고치라는 건 무리한 요구지만, 까라면 까는 거다. 항공모함은 일선에서 직접 포격을 주고 받는 배가 아니니, 동력과 엘리베이터만 멀쩡하면 출전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요크타운은 진주만에서 3일간 수리한 후 곧바로 출전했고, 미드웨이에 파견된 시점에서도 함선에 기술자들이 남아 수리를 진행했다. 그리고 홀시가 병원에 입원했으므로, 프랭크 플레처가 엔터프라이즈, 요크타운, 호넷을 지휘하는 함대 사령관이 된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이라는 쇼카쿠는 대파된 탓에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문제는 멀쩡한 즈이카쿠까지도 미드웨이 공격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대 일본군 해군 항공대의 파일럿 양성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한 척의 항공모함 항공대에 소속된 파일럿은 끝까지 그 배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그러나 이 고정관념으로 인해 일본의 항모전력은 그만큼 줄어들고 말았다. 이 고정관념은 무려 필리핀 해 해전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그렇다고 일본군 해군에서 이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나 하면 할 수 없다에 가깝다. 왜냐하면 일본군 해군이 운용한 항공모함들의 형상과도 관계가 깊은 문제이기 때문. 애초부터 동형함이던 소류와 히류, 쇼카쿠, 즈이카쿠, 후에 나올 운류급 항공모함 운류, 아마기, 카츠라기 자매를 제외하면, 일본군 해군의 항공모함들은 함체 형상이 같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 척의 항공모함 기동부대에 소속된 파일럿이면 다른 항공모함으로 옮겼을 경우, 그 항공모함이 원래 소속했던 항공모함과 동형함이나 비슷한 형상의 항공모함이 아니면 발착함 훈련을 다시 받아야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래도 일본군에는 작전 가능한 항공모함이 2척 더 있었다. 4항전 소속인 류조와 준요가 그들이었는데, 일본군은 이들을 알류산 열도로 보내버렸다. 육군에서 알류산 열도 점령을 위해서는 해군 항공모함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요구한 탓이었다. 덕분에 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 호넷이 상대할 항모는 4척(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으로 줄어들게 된다.

3.5. 미드웨이 해전

1942년 5월 25일진주만에서 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미 해군의 주력으로서 나구모 제독의 항모전단(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과 격돌하였지만 크게 고전한다. 미군의 구식 뇌격기엉터리 어뢰, 훈련이 부족한 조종사들로는 숙련된 일본군의 제로센을 상대할 수 없었다. 미군 미드웨이 기지 소속 항공기와 항공모함 소속 뇌격기 조종사들은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결국 큰 피해를 보며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했고, 일본군은 환호를 올리며 미군을 공격하기 위해 공격대를 발진시킬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물론 미군이 함재기들만 내보낸 건 아니다. B-17의 공중폭격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하나도 먹히지 않았고, 나왈급 잠수함 노틸러스가 아카기와 카가 사이로 파고 들어서 공격하려고 했지만 일본군에게 들켰다. 일본군은 구축함 아라시에게 노틸러스를 격침시키라고 명령했으나 노틸러스는 다행히도 살아남았다. 아라시는 미군 잠수함을 놓친 데다가 본대에서 멀어졌음을 깨달았고, 복귀를 위해 속도를 올리면서 항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엔터프라이즈 소속 제 6 급강하 폭격 대대의 SBD 돈틀리스들이 이걸 보고 추격한 끝에 일본 함대를 찾아냈다![16] 미군은 곧바로 공격에 들어갔지만 일본 전투기들은 미군 뇌격기들을 때려잡기에 바빴기에 수면 가까이로 내려와있었으므로 이걸 막을 수 없었다. 카가의 견시가 황급히 "적기 직상! 급강하!"를 외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기에 카가는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폭격기들의 공습으로 작살이 났다. 즈이카쿠와 류조, 준요 같은 항모들을 최대한 많이 투입했더라면 미군 급강하폭격기들의 요격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일본군은 그러지 않았고 대가는 참혹했다.

나구모 기동부대의 기함인 아카기는 모든 미군기들이 카가로 몰려가는 바람에 살아남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리처드 딕 베스트 대위가 이끄는 폭격대가 들이닥쳤다. 일본군도 필사적으로 대공사격을 퍼부었으므로 1발은 빗나갔지만, 1발의 지근탄이 아카기의 키를 고장냈고, 베스트 대위의 베스트 샷이 아카기를 파괴했다. 미드웨이 해전 이전에 일본군이 모의전을 벌였을 때는 9발을 맞지만 우가키가 우겨서 3발의 폭탄이 아카기에 맞고 소파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베스트 대위는 딱 한 발로 그런 계산을 뒤엎은 것이다.[17][18] 소류도 같은 시각에 도착한 요크타운의 함재기들에게 박살나버렸고, 이것이 바로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운명의 5분이다.

겨우 살아남은 히류는 반격에 나서서 요크타운을 대파시켰지만 요크타운의 승조원들은 엄청난 피해 복구 능력으로 고작 1시간만에 겉으로 멀쩡해 보일 정도까지 배를 수리했고, 다시 공격해온 히류의 공격대는 그걸 보고 "저건 요크타운이 아니라 다른 항모다!"라고 착각해서 다시 공격을 퍼부었으며 요크타운 혼자서 일본군의 공격을 모두 흡수하는 결과를 낳았다. 요크타운의 함재기들은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으로 대피한 후 복수를 다짐했고,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함재기들을 발진시켜 최후의 전투에 나선다.

이들에게 발각된 히류는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했으나 폭탄 4발을 맞았다. 폭탄 4발이 함수 비행갑판에 몰려 명중한 덕에 피해 범위가 적었고, 항공유나 폭탄이 유폭되지도 않아서 가만히 서서 피해 복구에 전념했다면 살 수도 있었겠지만 급폭기 두 대가 상공에서 선회하며 기회를 노리는 통에 계속해서 고속으로 항진하며 회피기동을 펼칠 수밖에 없었고, 그러던 사이에 화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퍼졌다. 특히 아카기를 박살낸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폭격기 조종사 베스트 대위가 히류의 비행갑판 일장기 부분에 명중탄을 내면서, 일본군의 패배를 알리는 상징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안타깝게도 베스트 대위는 산소공급장치 고장으로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을 들이킨 데다 결핵에 걸린 바람에 이후 전선에서 물러나 치료에 전념하면서 지상근무를 전전하다 전역하고, 전후에는 맥도넬 더글러스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천수를 누렸다.[19]

이후 요크타운은 전투가 끝난 직후까진 대파된 상태로나마 간신히 살아있었지만 전투가 마무리된 후 진주만에서의 수리를 위해 예인하던 도중 근처를 배회하던 伊-168의 뇌격에 의해 예인중이던 구축함 해먼이 침몰당하고 요크타운도 어뢰에 명중당해 회복불가 상태가 되며 함생을 마쳤다.

이렇게 해서 미드웨이 해전은 미군의 대승리로 막을 내렸고, 일본군은 가장 강력한 항모 4척을 모조리 잃고 말았다.[20]

3.6. 과달카날 전역

3.6.1. 사보섬 해전

연합함대의 정규 항모 4척을 침몰시키는 대승리를 거둔 엔터프라이즈는 1942년 7월 15일에 진주만에서 출격, 새러토가와 와스프와 합류한 후 8월 7일에 시작된 미 해병대의 과달카날 점령을 지원한다. 이날 일본군의 제8함대가 다가오는 것을 미군이 발견했지만, 함종을 착각한 탓에 과달카날이 아닌 다른 곳으로 진군하는 함대라고 오판한다.

8월 8일, 기동부대 지휘관인 프랭크 플레처 제독은 기동부대의 피해를 우려하여 함대를 철수시켰다. 과달카날 상륙함대를 지휘하던 리치몬드 K. 터너 제독은 "주력함대가 비열한 핑계를 치면서 도망쳤다!"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한 항공모함들은 이미 떠난 후였다. 다만 플레처 제독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도 무리가 아닌 게, 미군의 입장에서 항공모함은 굉장히 중요한 병기였다. 전함이 진주만에서 괴멸되었기에 엔터프라이즈 같은 항모들이 주력함이 된 것인데, 이들마저 사라지면 미군은 연합함대에 맞설 수가 없었다. 플레처 제독으로서는 무슨 짓을 해서든 항공모함을 지켜야 했으므로 위험을 최대한 피하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상륙함대를 엄호하기 위해 다수의 순양함과 구축함들이 남아있었으므로, 상륙함대가 무방비인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일본군 제8함대의 구성을 보면 미군이 질 이유는 없었다. 기함인 중순양함 초카이만 그럭저럭 신형이고, 주축인 제6전대의 중순양함 4척은 미군 중순양함보다 성능이 뒤떨어졌던 것. 게다가 텐류, 유바리, 유나기는 기함과의 무선통신도 안 되는 고철덩어리였으니, 미 함대가 경계만 제대로 한다면 일본군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야간전으로 모든 것을 극복했다. 제8함대의 미카와 제독은 꾸준한 정찰로 정보를 모은 뒤 야습을 감행, 상륙함대를 엄호하던 미 함대를 개박살 내버렸다. 바로 앞에 있는 게 적 함선인지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승조원 컨디션이 개판인 상태에서 반으로 나뉘기까지 한 미 함대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다 합쳐 2시간 내에 당해버렸고, 홀로 대항한 중순양함 퀸시는 아오바에게 격침당했다. 이 해전이 바로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라는 사보섬 해전으로, 철수 명령을 내린 플레처 제독은 온갖 비난을 받았다. [21]

그러나 플레처 제독의 실수가 사보섬 해전의 패배를 불러온 건 아니다. 어차피 엔터프라이즈가 야간작전 능력을 획득하려면 1944년은 되어야 했으니[22], 현장에 있었다면 그냥 거대한 표적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전함 노스캐롤라이나가 있기는 하지만, 사보섬 해전에서 보여준 미 해군의 오판을 보면 엔터프라이즈와 다른 항공모함이 있었다고 승리가 아니라, 표적함 신세로 제8함대의 산소어뢰 공격을 받고 격침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 해전의 패배로 인해 미군은 일본군에게 과달카날의 초반 제해권과 제공권을 빼앗기고 미 해병대는 과달카날에 고립되어 일본군의 집중공격을 당하게 되었다. 첨언하자면 비행기가 전쟁에 도입된 이래, 미군이 제공권까지 빼앗긴 건 이 때가 유일하다. 당연히 미군은 이런 사태를 용납할 수 없었으므로, 어떻게든 제공•제해권을 되찾고 해병대를 구해내야 했다. 이렇게 해서 태평양 전쟁의 과달카날 전역이 시작된다.

3.6.2. 동부 솔로몬 해전

사보섬 해전의 패배로 고립 상태에 빠진 미 해병대는 헨더슨 비행장을 완성하고 공중과 해상에서 지원 병력과 물자를 보급받아 전력을 보강하여 이후 테나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일본군의 공격을 버티어냈고 8월 중순이 지나 일본군은 추가적인 병력과 함대를 파견하였고 이 움직임을 파악한 미군은 제61임무부대와 제17임무부대를 파견, 제61임무부대에 소속된 엔터프라이즈는 병력수송함대를 동반하고 남하하는 일본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새러토가와 함께 8월 24일 동부 솔로몬 해전(2차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다. 당시 항공모함이 소속된 임무부대는 새러토가, 엔터프라이즈, 와스프로 구성된 제61임무부대와 하와이를 지키고 있던 호넷 중심의 제17임무부대로 동부 솔로몬 해전 당시 와스프 중심의 제18임무부대가 해상급유를 받기 위해 전열에서 이탈하여 해전에 참가하지 않았고 호넷 중심의 제17임무부대는 솔로몬 제도로 이동했지만, 합류가 늦어 해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적 정찰기에 발견 되어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고 3발의 명중탄을 제대로 맞아 이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사망 74명, 부상 95명이란 함생 중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명중탄에 조타 기능 상실로 제자리에서 뱅뱅 돌고 있던 엔터프라이즈를 끝내기 위해 적의 추가 공습 시도가 이어져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중 두 번째로 저승길을 건널 뻔 했으나 스콜 덕분에 적이 엔터프라이즈를 찾지 못하는 행운이 있었고 조타가 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 끝끝내 다시 복구를 해냈지만 더 이상 싸우기 힘든 상황이라 후퇴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군은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전략적 승리를 거머쥐지 못했다. 엔터프라이즈를 쫓아낸 뒤, 쇼카쿠와 즈이카쿠로 편성된 일본의 주력 항모전단이 그냥 퇴각해버린 것. 문제는 과달카날로 가던 일본군 수송선단을 놔두고 후퇴했다는 거다. 원래 이 수송선단은 일본 항공모함 류조가 공중엄호를 제공할 계획이었는데, 일본 항모전단을 지휘하던 나구모 주이치가 엔터프라이즈를 잡는다며 류조를 미끼로 던져서 침몰시켰다. 항공모함이 모두 후퇴했으니 제공권은 자연스럽게 핸더슨 비행장을 소유한 미군에게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일본 수뇌부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을 명령했다. 수송함대를 호위하던 일본군 제8함대(초카이, 아오바, 키누가사, 후루타카)와 제2수뢰전대는 안간힘을 썼지만 제2수뢰전대 기함 진츠가 폭탄을 맞아 큰 피해를 입었고, 구축함 1척과 수송함 1척을 잃은 끝에 퇴각해야 했다. 일본군은 해전에서 이기고도 제해권 절반을 빼앗긴 것이다. 전술적으로는 일본군이 이겼고, 전략적으로는 엔터프라이즈가 이긴 셈이다.

자력으로 9월 10일 진주만에 귀환한 엔터프라이즈는 즉각 수리를 받고 10월 23일에 남태평양으로 돌아와 8월 31일 초계 중 적 잠수함 뇌격으로 동력 계통이 대파당한 새러토가와 9월 15일에 침몰한 와스프를 뒤로하고 혼자 남아 전선을 지키고 있었던 호넷과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새러토가에서 지휘하다가 적 잠수함 뇌격으로 부상한 플레처 제독을 대신해서, 윌리엄 홀시 제독이 함대를 지휘하게 된다.

1942년 10월 11일,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미 해군은 일본군 수송함대를 호위하던 제 6전대를 기습, 일본군 중순양함 2척을 격침시키며 일본군과의 야간전에서 최초로 승리했다. 그러나 실제로 제 6전대가 잃은 것은 중순양함 후루타카 한 척이었고, 아오바는 40발이 넘는 명중탄에 얻어맞았으니 침몰해야 하는데도 갑자기 명중탄 상당수가 불발탄이 되고, 미군이 4분동안 포격을 중지하고, 후루타카가 아오바 뒤에 있었기에 90발이 넘는 포탄을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방패가 된 데다가, 일본군답지 않게 대미지 컨트롤을 성공시켜 탄약고 유폭을 막아내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살아서 탈출했고, 수송함대 호위 임무도 성공시켰다. 아무튼 미군은 제 6전대가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하는 것도 막았고, 해전에서 이겼고, 과달카날의 미 해병대에게 가는 수송선단도 지켰기에 사기를 크게 올릴 수 있었다. 이제 엔터프라이즈가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처리하면 확실히 이길 상황이었지만, 일본군 역시 독기를 품고 항공모함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1942년 10월 14일, 일본군은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와 하루나를 동원해서 핸더슨 비행장을 14인치 포로 포격했다. 이건 원래 제 8함대의 중순양함들이 하던 업무였는데, 이제 전함까지도 동원된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서 10월 15일에 제 8함대(초카이, 키누가사)가 나타나서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했고, 핸더슨 비행장은 출격 가능한 비행기가 1대로 줄어들었다. 도와줘요 엔터프라이즈

3.6.3. 산타크루즈 해전

엔터프라이즈 함생 최대의 위기였던 시기로 1942년 10월 26일에 벌어진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군은 항공모함 4척(쇼카쿠, 즈이카쿠, 준요, 즈이호)를 끌고 왔고, 엔터프라이즈는 자매함 호넷과 함께 전투에 돌입한다.

본격적인 전투가 일어나기 전 25일 아군 정찰비행정에서 보내온 정보를 바탕으로 적함대를 찾기 위해 돈틀리스 12대로 구성된 정찰대와 29대로 구성 된 공격대를 적함대가 목격된 지점에 보냈으나 이미 다른곳으로 이동한 상태라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귀환해야했고 이때 야간착함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엔터프라이즈는 1대가 비행갑판에 불시착, 6대가 부근 바다에 불시착하여 전투가 시작 되기도 전에 7대의 함재기를 손실하는 등 석연치 않은 징조들이 있었다.

그리고 26일 전투 당일, 엔터프라이즈는 다시 돈틀리스 16대로 구성 된 정찰대를 보내어 그 중 2대가 적함대를 찾아 내는 것에 성공하였고 곧장 즈이호에 급강하 폭격을 시도하여 비행갑판에 손상을 입혔다. 하지만 적 함재기는 이미 전기 출격하여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노리고 오는 중이었다. 다만 즈이카쿠의 함재기는 제때 발진하지 못했는데, 레이더가 없었던 데다가 쇼카쿠의 20km 뒤에 있었기에 그랬다고 한다. 혼자 딩가딩가 놀다니 팔자 좋구나 즈이카쿠

적함대를 발견한 미함대 측도 공격대를 보내기 시작하여 제1, 3차 공격대는 호넷 편대 제2차 공격대는 엔터프라이즈 편대로 구성 되어 있었다. 호넷의 편대와 함께 일본군 함대를 찾다가 일본의 공격대와 마주친다. 처음엔 서로 무시하고 지나가는 듯 했으나 히다카 모리야스 소좌가 이끄는 즈이호의 전투기대가 갑자기 반전해 엔터프라이즈의 공격대를 덮쳤다. 일본에서는 '즈이호 영전대 반전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엔터프라이즈의 공격대는 와일드캣 3대가 격추당하고 1대가 손상되었으며 뇌격기는 2대 격추, 1대 불시착, 1대 손상이라는 피해를 입었다. 숫자만 보면 큰 피해가 아닐지 몰라도, 그중 하필 지휘관기가 2대나 끼어있었다. 그러나 즈이호의 전투기들도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일본측 지휘관인 히다카는 제로센 2대를 잃은 데다 모함의 방향을 잃어 결국 자신을 포함해 세명만 쇼카쿠로 귀환하게 된다. 참조. 과연 이 결단이 올바른 것인지를 놓고 일본에서 논쟁이 벌어졌으나, 일본군은 히다카의 판단으로 쇼카쿠가 살아남았으므로 사령부의 의도를 이행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엔터프라이즈가 제대로 된 전투 전부터 함재기 손실을 입긴 했지만 쇼카쿠는 미군의 공격으로 대파되었다. 1942년 9월에 일본 항공모함 최초로 레이더를 달았기에, 미군의 내습을 미리 감지하고 연료를 옮기는 등 대비할 시간이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력화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즈이카쿠는 쇼카쿠로부터 20km나 뒤에 있었기에 멀쩡했다.

일본군의 첫 공격은 엔터프라이즈가 스콜에 가려져 있는 상황이었기에 호넷에 집중되었다. 호넷은 일본군에게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 15km 떨어진 엔터프라이즈에서도 "아 호넷이 위기구나..."라고 할 정도로 잘 보였으나, 그정도로 호넷에만 공격이 집중된 후에야 일본기 하나가 엔터프라이즈를 발견했고, 그 소식에 놀란 나구모는 바로 엔터프라이즈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당시 엔터프라이즈 주변을 맴돌며 CAP(Combat Air Patrol, 전투 공중초계) 중이던 전투기가 있었지만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요격하기에는 함대와 너무 가까워 적기를 놓치게 되었고 일본군 공격대는 함대 상공에 도달하여 공격을 개시했다. 엔터프라이즈는 폭탄 두 발을 얻어맞았지만, 살아남기 위한 격렬한 회피 운동을 하여 지근탄 두 발과 어뢰 아홉 발을 회피하고, 전함 사우스다코타를 비롯한 호위 함정의 지원과 모함을 지키기 위해 방공망 안으로 목숨을 걸고 들어온 함재기들과 스콜에 가려져 적의 공격이 분산된 덕분에 엔터프라이즈는 구사일생 할 수 있었다.

적의 공습을 버틴 엔터프라이즈는 일본군 공격대의 집중 공격을 받아 빈사 상태에 빠진 호넷과 자신의 함재기들을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적정 대수인 85대를 넘어가게 되어 함재기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착함유도장교는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착함을 유도했다. 승조원들은 전방 엘리베이터가 손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함재기 수용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사투를 벌였고 수용 결과 95대의 함재기를 채우게 된 엔터프라이즈는 적의 공격에 대단히 취약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현 상태로는 전투할 수 없다고 판단한 킨케이드 제독은 전선 이탈을 명하게 된다.

엔터프라이즈는 빈사 상태에 빠진 자매함 호넷을 전장에 남겨둔 채 이탈하였고, 호넷은 예인되어 전장에서 이탈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본군의 추가 공격에 버틸 수가 없었고 결국 홀시 제독은 호넷을 포기한다. 미군은 호넷을 처분하기 위해 포탄과 어뢰를 호넷에 잔뜩 쐈지만, 호넷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안 가라앉았고, 일본 해군 함대가 다가오자 결국 미군은 호넷을 버려두고 도망쳐야 했다. 일본군은 방치되어 있던 CV-8 USS 호넷함을 어떻게든 노획해보려고 했으나 손상이 너무 심해서 결국 뇌격으로 처분했다. 이때 일본 해군은 엔터프라이즈를 붙잡아서 침몰시키려고 했으나, 엔터프라이즈는 이미 탈출한 후였다. 일본 해군으로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군에게 전술적 패배를 당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 해전에서 사망 44명, 부상 75명의 사상자를 내고 전방 엘리베이터가 작동 불능에 명중, 지근탄에 선체가 손상된 엔터프라이즈는 어쩔 수 없이 수리를 위해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요크타운이 침몰당하고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호넷 역시 침몰당했으므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3척 중 마지막 생존함이 되었다. 이 해전 이후 미 해군의 상태는 진주만 공습 이후 가장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개전 직후 가지고 있던 정규 항공모함 7척 중 어뢰를 맞아 수리를 위해 전선에서 이탈한 새러토가와 대서양에서 활동 중인 레인저를 제외하면 미 해군에는 항공모함이 하나도 안 남았다. 농담이 아니고, 이제 과달카날을 지킬 수 있는 항공모함은 선체가 손상된 엔터프라이즈 하나밖에 안 남았다!

박살난 배 1척으로 일본 해군 전체에 맞서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한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은 비행갑판에 Enterprise VS Japan란 글을 게시해 놓아 당시의 심정을 표현했다. 이걸 가지고 '새러토가도 있는데 이 문장으로 물고 빠는 건 헛소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새러토가가 어뢰를 맞고 수리중이라 엔터프라이즈를 도와주러 올 수 없었음을 감안하면 말이 된다. 오히려 새러토가가 저 상황에 처했다면 배에 Sister Sara(새러토가의 애칭) VS Japan이라고 써놨어도 다들 납득했을 것이다. 또한 새러토가의 입장에서는 당시 새러토가 대신 엔터프라이즈가 저기 있는 게 다행이었다. 새러토가가 속해있는 렉싱턴급 항공모함은 순양전함을 개장한 항공모함에 폐쇄식 격납고였기 때문이다. 새러토가가 엔터프라이즈 대신 거기 있다가 잘못 걸렸으면 일본군의 산소어뢰를 맞아서 산호해 해전에서의 렉싱턴이나 필리핀 해 해전에서의 다이호 꼴이 날 수도 있었다는 뜻이며, 급강하폭격에 걸리면 미드웨이에서의 아카기 꼴이 날 수도 있었다. 어쨌든 엔터프라이즈는 이제 태평양을 지키는 마지막 항공모함으로서, 일본 해군을 막아내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쇼카쿠는 대파되었고 즈이호가 중파되었으며, 즈이카쿠와 준요는 무사했지만 다수의 비행대를 잃었다. 일본 항모전단의 항공세력이 사실상 와해된 것이다. 결국 일본군은 쇼카쿠와 즈이호, 즈이카쿠를 일본으로 돌려보냈고, 과달카날에 남은 것은 함재기도 모자란 준요 한 척 뿐이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가 한계치를 넘기면서까지 수용한 함재기들과 파일럿들은 대부분 살아서 돌아갔기에 베테랑 파일럿들의 대다수를 잃은 일본군과 달리 나중을 기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엔터프라이즈는 전술적으로는 패배했지만, 전략적으로는 승리한 것이다.

아무튼 일본군은 이제 미군 항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했기에 기세를 올렸고, 과달카날은 일본군에 함락될지도 모를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3.6.4. 과달카날 해전

"어떻게 되었을까요. 남은 건 엔터프라이즈 뿐이었죠."
"우린 최후의 항모니까 일본군의 좋은 목표물이었죠. 우리 말고 달리 누가 있었나요?"
ㅡ'배틀 360'에 나온 승조원들의 증언.
Enterprise vs Japan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은 비행갑판에 흰 페인트로 이 문구를 써 놓았다.
큰 피해를 보았지만, 진주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뉴칼레도니아 누메아에 도착한 엔터프라이즈는 10월 30일, 윌리엄 홀시 제독의 명에 엔터프라이즈 승조원과 공작함 베스탈을 비롯한 미 해군 시설대까지 달라붙어서 응급수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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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1월, 엔터프라이즈 뉴칼레도니아 누메아에서
"...And then there was one patched-up carrier."
"...그리고 응급수리된 항공모함 1척이 남아있었다."
ㅡ 해군소장 토마스 C. 킨케이드(Rear Admiral Thomas C. Kinkaid)
과달카날의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엔터프라이즈는 11월 11일에 수리작업 중인 베스탈 함의 승조원을 태운 채 가용 가능한 마지막 미 해군 태평양 함대 항모부대가 되어 버린 전함 워싱턴사우스다코타와 몇 척의 순양함, 구축함으로 구성된 제16임무부대(Task Force 16)에 복귀하여 출항 11월 13일, 과달카날 해전(3차 솔로몬 해전)에 참가한다. 이 TF16에는 항모 엔터프라이즈 말고도 전함 워싱턴과 사우스다코타가 있었는데, 이들 역시 과달카날에서 마지막 가용 전함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제13기동부대에 소속될 예정이었지만, 윌리엄 홀시 제독이 13은 재수가 없다며 능력은 좋지만, 성질이 좀 불 같은 부관을 사령부에 보내서 온갖 깽판을 친 끝에 16이라는 숫자를 받아냈다.[23]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현실에서 13 같은 불길한 숫자를 받는다면 가뜩이나 미신이 많은 해군에서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니 합당한 조치였다.
11월 13일 새벽에 1차 과달카날 해전이 벌어졌고, 아직 엔터프라이즈가 도착하지 못했기에 미 해군은 전함 히에이를 필두로 한 막강한 일본 함대에 맞서다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함대를 일단 저지하기는 했지만, 11월 14일 새벽에 일본군 제8함대가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핸더슨 비행장에 나타나서 야간포격을 가해왔다. 루즈벨트 대통령조차도 이 소식을 듣고 과달카날에서 철수하는 걸 검토하는 가운데,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제8함대 앞에 엔터프라이즈가 보낸 함재기들이 나타났다. 당연히 엔터프라이즈가 격침된 줄 알았던 일본군은 혼비백산. 제 8함대 기함 초카이와 키누가사는 엔터프라이즈 함재기들의 집중공격을 받았고, 키누가사는 얼마 못 가 침몰했다. 그 외에도 기함 초카이 중파, 마야 중파, 이스즈 대파 등의 큰 피해를 입은 제 8함대가 퇴각하면서 사보섬 해전의 굴욕을 대부분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24]

11월 14일 밤, 일본군은 다시금 핸더슨 비행장을 공격해왔지만, 엔터프라이즈를 호위하던 전함 사우스다코다와 워싱턴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행히도 사우스다코다가 전기계통의 고장을 일으키는 바람에 제대로 싸울 수 없어 위기에 몰렸지만, 일본군의 공격은 다행히 사우스다코다를 침몰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전함 워싱턴이 일본군 기함 기리시마를 7분만에 박살냈고, 일본 함대의 순양함과 구축함들은 전력을 다해 워싱턴을 공격했지만 워싱턴은 너무 강했고, 일본 함대는 워싱턴 한 척에게 밀려 도망쳤다. 엔터프라이즈의 호위를 맡은 전함의 힘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그리고 11월 15일 아침, 일본군은 수송선단을 과달카날에 상륙시켰지만, 엔터프라이즈의 비행대는 헨더슨 비행대와 연계작전으로 수송선들을 몽땅 박살을 내버렸다. 이 승리로 과달카날의 제해권과 제공권은 미군에게 돌아갔고, 일본군은 과달카날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엔터프라이즈는 일본과의 함대결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함대결전용 전함이라는 야마토급 전함나가토급 전함들은 함대결전이 벌어지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해상 호텔에 어울리는 처신이었다. 물론 나가토급은 25노트이고 야마토급은 27노트밖에 못 내는 데다 항속거리가 7200해리 정도여서 과달카날에 올 수 없었다는 핑계는 있었지만, 함대결전을 위해 만들어진 전함들이 함대결전에 참가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돈이 없다던가, 구식 전함과 발을 맞춰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전함의 속도를 느리게 한 대본영 탓이기는 하나, 그렇게 변명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중대했다. 과달카날을 미국이 차지한다는 것은 일본군의 상승세가 멈췄다는 것이며, 이제 곧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쏟아져나올 시간이었다. 엔터프라이즈 혼자서 일본 해군 전체를 상대해야 했던, 고난의 시기는 지나간 것이다.

3.6.5. 과달카날 해전 이후

엔터프라이즈는 새러토가가 1942년 11월 말에 복귀할 때까지 태평양에서 실질적으로 활동 가능한 유일한 미 해군 정규항모로 전선에 남아 있었다. 1943년 1월, 새러토가와 함께 과달카날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엔터프라이즈는 일본군의 항공기 공격에 대파되어 인양 중인 중순양함 시카고를 지키기 위해 전투기를 파견하였고 렌넬 섬 해전이라 불리게 되는 다시 함선을 공격하기 위해 온 G4M '베티' 편대와의 전투가 일어났다. 이때 적의 폭격기를 격추하고 시카고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결국 시카고를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사보섬 해전에서 남부함대의 기함으로 참전했다가 경계와 전투에 실패한 데다 북부함대에 경보도 보내지 못하고 박살났던 불명예스러운 중순양함 시카고는 간신히 수리를 마치고 나왔건만, 명예를 회복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침몰한 것이다.

1943년 2월에 대혈투가 끝나 과달카날을 미군이 완전히 확보하고 엔터프라이즈는 에스피리투산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1943년 5월에 진주만으로 귀환하여 신규 비행대 훈련에 힘쓰던 중, 1943년 5월 27일에 미합중국 대통령이 니미츠 제독에게 감사장을 수여한다. 이것은 미군 항공모함 중에서는 사상 최초였다.The Presidential Unit Citation

1943년 3월 1일에서 3월 5일 사이에 일본군은 라에-살라모에 지역 방어를 위해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이 지휘하는 구축함 8척과 수송선 8척, 비행기 100여대를 동원해서 수송작전을 결행한다. 이것을 미 제5항공대(제 5공군)이 공격하면서 비스마르크해 해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일본군은 구축함 4척과 모든 수송선을 잃고 뉴기니로의 수송작전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은 중상을 입었으며 이 해전 이후 일본의 뉴기니 보급과 증원은 미군의 눈을 피해 잠수함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일본군은 패배에 대한 복수 겸 중요거점인 라바울을 지키기 위해 이호작전을 발령하고(4.7), 이를 위해 제 11항공함대를 동원한다. 문제는 즈이카쿠, 즈이호, 히요, 준요의 함재기까지 전부 뜯어와서 지상에서 발진하는 작전에 투입한 것이다. 오자와 지사부로는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야마모토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적이 함재기를 날려버렸으니 엔터프라이즈로서는 박수를 칠 일이었다. 결국 일본군은 항공기 42기를 잃고 이호작전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4월 18일 불리한 전세에 조급해진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부건빌 섬을 순시하기위해 떠났다가, 이 사실을 암호해독을 통해 알아낸 미군이 야마모토의 탑승기를 격추함으로써 야마모토 제독은 전사했다. 그리고 4월 3일에는 카비엥에서 수송함대를 호위하던 중순양함 아오바가 미 제5항공단의 공습을 당해 산소어뢰 2발이 유폭되면서 대파되었다. 당연히 침몰해야겠지만 아오바는 해안가로 돌격해서 좌초함으로서 침몰의 위기를 넘겼고, 풀을 덮어서 섬으로 위장하고 한 달 가까이 응급수리를 한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미 제5항공대는 자기들 세력권 안에 있는 아오바를 상대로 단 한 번도 공격하지 않고 놓치는 망신을 당했다.

1943년 7월에 엔터프라이즈는 본토로 귀환해 10월까지 대대적인 수리를 받았으며 그동안 전력화가 완료된 고속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새로운 중핵이 될 에식스급 항공모함과 함께 1943년 11월에 출격, 길버트 제도, 마셜 제도 탈환에 활약한 후1943년 12월 9일에 진주만으로 귀환한다. 일본군도 엔터프라이즈를 추적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1944년 1월에는 58기동부대 소속으로[25] 마셜 제도 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출격했고, 1944년 1월 27일 말로에라프 환초의 타로와 섬을 폭격하고, 이어 1월 30일, 콰잘린 환초를 폭격했다.

1944년 2월에는 트럭 섬을 공습하는 등 상륙작전 지원과 양동공격 임무를 맡았다.(헤일스톤 작전) 이후에도 비스마르크 제도, 케롤라인 제도, 팔라우 제도, 뉴기니아 섬 등 태평양 일대를 돌아다니며 상륙작전을 지원했다.

3.7. 필리핀 해 해전

1944년 6월 19일, 엔터프라이즈는 신형 에식스급 항공모함들과 함께 필리핀 해 해전에 참가했다. 일본군도 엔터프라이즈에 맞서 쇼카쿠, 준요, 즈이호를 포함한 정예 항모전단을 내보냈지만, 당연히 엔터프라이즈가 이겼다. 지속적으로 함재기 전력을 보충하고 파일럿 훈련에 힘을 쓴 미군과, 제대로 된 조종사를 육성하지도 못한 데다 그나마 육성된 조종사도 지상기지로 빼낸 일본군 중 누가 이길지는 명백했던 것이다. 워낙 공중전이 일방적이었기에 파일럿들이 "칠면조 사냥 같았다"고 인터뷰를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와 몇 번이나 싸웠던 쇼카쿠는 엔터프라이즈와 싸우기도 전에 미군 잠수함에게 걸려 침몰되었다.

그러나 필리핀 해 해전 종료 직후, 해전 때보다도 큰 위기가 닥쳐왔는데 돌아오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늦어 파일럿들이 밤바다를 비행해서 돌아와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파일럿들을 잃은 항모도 꽤 되었고 워낙 절망적인 상황이라 당시 파일럿이었던 한 참전용사는 그 일에 대해 인터뷰를 할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엔터프라이즈가 포함된 함대를 지휘하던 마크 미처 제독은 함대의 목숨을 걸고 전 함선에 불빛을 밝힐 것을 지시하는 도박을 감행한다. 야간에 함재기도 없는 항공모함, 즉 호위 없는 함대가 떡하니 불을 밝힌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가장 잘 알면서도 파일럿들을 위해 함대의 목숨을 걸고 야간등화를 켜라고 명한 것이었다. 이런 마크 미처 제독의 목숨을 건 도박은 멋지게 성공하여 대부분 무사히 귀환했으며, 엔터프라이즈에서 돌아오지 못한 파일럿은 제10 전투비행단 지휘관인 윌리엄 R. '킬러' 케인(William R. "Killer" Kane)[26] 중령 단 한 명 뿐이었고 그도 동월 22일에 아이스크림 25갤런(약 95리터)과 맞바꿔 구조된다. 아이스크림이 언급된 이유는 마크 미처 제독이 구조를 장려하기 위해 '파일럿을 구조해오는 배에는 아이스크림을 더 배급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해당 파일럿이 구조되었을 당시, 파일럿을 구조한 배글리급 구축함 패터슨(DD-392, USS Patterson)는 통신 과정에서 "킬러 케인의 몸값은 아이스크림 몇 갤런인가?[27]"라며 협상까지 시도했다. 물론 이는 자신들의 공적을 자랑하기 위한 농담이고, 항공모함으로서는 고위장교였던 케인 중령 몸값에 비해 요구사항이 매우 저렴하여 만족하였다. 항공모함의 입장에서 아이스크림은 소화재로 쓸 고체 이산화탄소 생성 과정에서 나오는 냉기를 이용해서 만들었으므로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축함 패터슨은 킬러 케인 중령의 몸값(?)으로 25갤런(약 95리터)의 아이스크림을 받았다고 한다.

7월에 휴식을 위해 진주만으로 돌아갔다.

8월 24일에 재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케롤라인 제도, 오가사와라 열도,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공격했다.

3.8. 레이테 만 해전

1944년 10월에는 레이테 만 해전에도 참가했다. 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레이테 섬으로 전함과 순양함들을 돌격시켜 미군 상륙부대를 파괴하려고 했지만, 세계 최대의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를 거느린 구리다 함대는 엔터프라이즈와 에식스급 항모들로 구성된 제3함대에게 얻어터진 끝에 무사시를 잃고 퇴각한다. 그러나 북쪽에 오자와 함대가 있음이 밝혀졌고, 여기에는 진주만 공습 이후 살생부 명단에 올라간 즈이카쿠를 포함해 4척의 항모와 2척의 항공전함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윌리엄 홀시는 매우 강력한 적 함대가 나타났다고 판단하고, 오자와 함대를 박살내기 위해 제3함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한다. 그래도 몽땅 다 데리고 가지는 않았고, 매케인의 38.1 임무전대를 남겨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군이 판 함정이었다. 미군은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몹시 죽이고 싶어했고, 마지막 생존함이 바로 즈이카쿠였다. 그래서 일본군은 오자와 함대를 미끼로 내걸었다. 여기에 낚인 홀시가 제3함대를 이끌고 쫓아오면, 그 틈에 다른 함대가 레이테섬으로 돌입한다는 계획이었다. 홀시가 미끼를 문 사이에 일본의 모든 함대가 레이테섬으로 돌격했지만, 매케인의 38.1 임무전대가 있으니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매케인이 꾸물거리는 바람에 제 위치에 도착하지 못했다! 레이테 만으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리자 제일 먼저 16전대가 레이테섬에 돌입했다. 16전대 기함 아오바는 미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레이테 섬 돌입 전에 대파되어 회항했지만 경순양함 키누와 구축함 우라나미, 수송함 5척은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끝내 레이테 섬 오르목 만에 도착해서 증원병력을 내려놓는 것에 성공한다.

그러나 레이테섬에 도착한 건 16전대뿐이었다. 니시무라 함대는 울덴도르프 제독의 함대에 걸려 괴멸되었고, 시마 함대는 진입을 포기하고 도주했으며, 일본군의 주력 함대이자 전함 4척을 보유한 구리다 함대는 미군의 2선급 함대인 태피 3과 충돌했다. 구리다 함대는 전함이 4척이나 있었고 태피 3은 전함은 고사하고 순양함조차 없었기에 일본군의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일본군의 막강한 전함이신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와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는 미군 구축함 히어만에게 쫓겨 도망가는 망신을 당하며 일본군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런 놈들이 일본 최강의 전함이랍니다 구리다 제독은 휘하 중순양함들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데다 미군이 뒤에서 나타났다는 무전을 듣고 구리다 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전 자체는 오보였지만, 야마토와 나가토의 형편없는 꼬라지를 보면 어차피 미군 상대로 이길 가망도 없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는 드디어 즈이카쿠와의 오랜 악연을 끝냈다. 함재기조차 없는 미끼에 불과했던 오자와 함대는 당연히 박살났고, 즈이카쿠를 비롯한 일본 항모 4척이 제3함대에 격침되었던 것이다. 태피 3의 장병들은 홀시가 자신을 버렸다며 분노했으나, 즈이카쿠를 격침시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홀시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진주만의 복수는 이뤄진 것이다. 일본군이 레이테섬 진입에 실패하고 도주했으므로 해전은 미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유일하게 레이테섬에 진입한 16전대는 탈출하다가 미군의 공격으로 진입 전에 후퇴한 아오바를 제외하고 괴멸되었다.

다만 이 해전 이후 윌리엄 홀시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일본군의 잔꾀에 속아넘어가서 레이테 섬의 미군 상륙부대와 태피 3을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과적으로 일본군이 태피 3에게 패배했기에 대참사는 피했지만, 이 문제로 홀시는 전후에도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때 매케인은 홀시의 결정이 옳지 않다며 비난한 데다, 홀시가 킨케이드의 구원요청 메시지를 받았는데도 못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증언함으로서 상관의 등 뒤에 칼을 꽂았다. [28]

12월 24일에는 야간 전투기 훈련도 시작했다.

3.9. 이오지마 그리고 오키나와

1월에 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Carrier Division Seven 소속이 되어 정규항모 새러토가, 경항모 인디펜던스와 더불어 야간 및 주간 작전에 종사하게 되었다.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잇는 교통로를 자르고, 이오지마 전투에 참여한 아군을 지원한다. 이 무렵 일본군의 공격으로 약간의 손상을 입었고, 아군의 오발로 피격을 당하는 등 손상을 입어 울리티로 가서 수리를 받았다.

4월 5일에 엔터프라이즈는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한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출격한다. 이 무렵 카미카제 공격 지근거리 2번에 손상을 입어 울리티로 가서 수리받고 다시 돌아와 작전을 수행하던 엔터프라이즈는 5월 14일에 26기의 일본 항공기의 내습을 받지만, 6기를 대공포화로 격추하고 19기는 상공초계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하지만 도미야스 슌스케(富安俊助) 중위의 1기가 대공포의 포화를 피해 구름 속에 몸을 감춘 후 시시각각으로 구름사이 얼굴을 비친 엔터프라이즈의 위치를 확인하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오전 6시 56분, 이 1대의 기체는 엔터프라이즈를 향해 단기로 자살돌격을 감행했다. 어지간하면 개죽음으로 끝날 돌격이었지만 이 사람은 집중포화를 받는 와중에 함 바로 위에서 180도 좌측으로 선회하여 배면비행의 상태로 급강하해 전방 함재기 엘리베이터 후방에 돌입했다. 덤으로 돌입순간에 폭탄을 기체와 분리해서 폭탄이 격납고에 직격하도록 하는 등 피해면적을 확산시키는 재주까지 부렸다.

이 때 엔터프라이즈의 방공화기는 40mm 보포스 54문에 20mm 오리콘 32문이었다. 게다가 당시 엔터프라이즈의 방공 능력은 이제 막 취역해서 경험이 부족한 새내기도 아니고, 위에 언급된 격전들을 통해 단련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승조원들이 담당하는 것이라 이들이 쏘는 대공포화는 가히 탄막 슈팅에 필적했을 것이다. 슌스케 중위는 이걸 뚫고 카미카제 공격을 성공시킨 것이다. 따라서 슌스케 중위 또한 엄청난 뉴타입 파일럿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러한 최정예 파일럿한테 카미카제 공격이나 시키는 일본의 말로는 불 보듯 뻔했다. 위에서 언급된 마크 미처 제독의 등화관제 사례를 보면 참 아이러니한 부분.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런 최정예 파일럿이 카미카제 공격을 해야 할 정도로 일본이 절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슌스케 중위에 뒤지지 않는 최정예 파일럿들이 전쟁 내내 치열하게 공격했어도 엔터프라이즈를 격침시킬 수 없었던 게 현실이다. 아무리 때려도 엔터프라이즈가 쓰러지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애초에 이 지경까지 왔으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항복하는게 더 나은 결정이었으므로 일본이 바보짓을 했음은 변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카미카제 문서의 전략적 의미 항목 참고.
파일:CV6_Hitted.jpg

이 공격으로 엔터프라이즈는 400피트(약 122m) 상공까지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큰 피해를 보았는데 폭발로 전방의 엘리베이터가 120m 상공까지 솟구쳤고[29][30], 비행갑판과 격납고 등 선체가 손상을 입고 화재 발생 및 파이프 손상 등으로 물이 흘러나와 침수가 일어났으며 사망 13명, 부상 68명의 사상자를 냈다. 피해의 심각성에 비하면 사상자가 적은 편이었지만 동부 솔로몬 해전의 사망 74명, 부상 95명, 산타크루즈 해전의 사망 44명, 부상 75명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였다. 엔터프라이즈 승조원들은 약 30분 만에 화재를 진압하고 침수된 구역에서 물을 빼는 등 추가 피해를 막으며 작전을 수행했다. 제58임무부대 사령관 마크 앤드류 미처 중장은 자신이 본 가장 훌륭한 데미지 컨트롤이었다고 엔터프라이즈의 승조원들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방의 엘리베이터 사용 불능 같은 선체 손상 등으로 인해 대대적으로 수리할 필요가 있어서 5월 14일에 전열을 이탈, 제대로 된 수리를 위해 본국으로 귀환하여 수리와 창정비에 들어간 와중에 종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엔터프라이즈가 물러난 후에도 일본군은 계속 얻어터졌다. 엔터프라이즈와 맞서 싸웠던 준요는 미군의 공격으로 대파된 후 은닉되어 수리를 하다가 종전을 맞았다. 일본 해군의 수치인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는 일본 해군의 체면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오키나와 특공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미군에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개죽음을 당했다. 그 외에 살아남아 본토에 남아있던 일본군 군함들은 대부분 구레 군항 공습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일본의 자랑이라던 나가토는 미군의 눈을 속이기 위해 배에 물을 채워서 침몰한 척 위장해서 전후생존함이 되었으나, 성조기를 휘날리는 USS 나가토가 된 후 핵실험으로 처분되었다.

3.10. 마지막 작전과 최후

종전 이후에는 각지의 미군을 귀환시키는 수송선으로도 활용되었다.[31] 일명 '매직 카페트 작전(Operation magic carpet)'. 당시 배에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태우기 위해 승조원의 숫자도 기존 2217명 정도로 운용되던걸 500명으로 줄이고 격납고 데크에 침대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하여 5000여명의 장병들을 승선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항공기 운용을 하지 않으니 일단 항공 관련 인원들이 전부 빠지고, 핵심적인 항해와 기관부 인원 및 그 잔류 인원에 적당한 지원 부서 인원만 남기고 전투 중 대공포 등에 배치되는 인원 등을 하함시키면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굴리고도 남긴 한다. 다만 5천여명에 해당하는 식료품 및 군수지원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그렇지..
파일:새러토가,엔터프라이즈,호넷, 샌 재신토.jpg
항공모함들과 같이 있는 엔터프라이즈[32]

이후 항모들이 점점 대형화되고 제트기로 바뀌기 시작한 함재기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엔터프라이즈는 거의 고철신세로 전락했다. 결국 스크랩처리가 결정된다.
파일:USS_Enterprise_(CVS-6)_awaiting_disposal_at_the_New_York_Naval_Shipyard_on_22_June_1958.jpg
1958년, 뉴욕 해군 공장을 찍은 사진[33]

엔터프라이즈 함에서 복무했던 해군 장병들은 '엔터프라이즈 협회'를 만들어서 엔터프라이즈를 기념함으로 만들려고 했고, 윌리엄 홀시 제독 역시 협회와 협력하여 모금 운동을 전개했지만 돈이 부족했다. 미국 의회는 돈이 없다며 엔터프라이즈를 박물관으로 만드는 계획을 거부했고, 해군 역시 돈이 없었기에 엔터프라이즈를 더 이상 보존할 수 없었다. 결국 협회는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을 새로운 항공모함에 계승시키고, 일부 유물을 보존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1958년 엔터프라이즈는 멋진 마지막 항해를 장식한 후 스크랩 처리된다. 스크랩을 담당한 노동자들 중에는 당시 엔터프라이즈 승조원 출신 참전 용사도 있었는데, 자신이 타던 또 하나의 고향 같던 배가 해체되어 사라지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엔터프라이즈가 해체된 지 몇 년이 흐른 다음에야 미국은 자신들이 겪은 가장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만든 주요 유적과 장비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런 이유에서 미드웨이급 항공모함 CV-41 USS 미드웨이, 아이오와급 전함[34]들, 에식스급 항공모함 CV-12 USS 호넷처럼 퇴역 이후에도 보존되는 함선들이 있었다.

참고로, 이런 상황은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수훈함인 HMS 워스파이트와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퓨리어스가 해체되었으며, 심지어 나폴레옹 전쟁트라팔가르 해전에 참전했던 테메레르급 전열함 HMS 임플라커블 함, 그리고 아편전쟁에 참전했고 난징 조약을 맺은 장소이기도 했던 뱅거급 전열함 HMS 콘월리스 함마저도 폭약 시험 대상으로 날아가버렸다. 또다른 역사적인 배들도 해체 수순을 밟을 뻔 했으나, 임플라커블이 침몰한 이후에야 정신을 차린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하고 보존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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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직전의 엔터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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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프라이즈의 마지막 사진(1960년 2월)

엔터프라이즈의 마지막, 나무갑판을 빼내어 태우고 작업을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선수가 해체되어가는 모습.
(엔터프라이즈의 다른 스크랩 사진은 여기서 볼 수 있다.링크)

배의 함명은 대체로 해당 함선이 침몰되거나 스크랩 처리되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 쓰는 게 관습이기 때문에, "USS Enterprise"라는 이름을 항공모함에게 계속 계승시키려면 이전 배들은 전부 폐기하는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 미 해군 내에서 퇴역 후 박물관으로 보존된 아이오와급 전함 3번함 미주리를 비롯해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아이오와, 매사추세츠버지니아급 잠수함의 함명으로 쓰이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작전 중인 군인이라면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을 듣고 현역함을 떠올릴까 퇴역함을 떠올릴까를 생각해보자. 다른 함으로 혼동할까봐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물론 컨스티튜션처럼 지속적으로 순환근무가 이루어지는 함선은 혼동유발을 이유로 함선명 계승이 안되긴 하지만 컨스티튜션은 여전히 현역이기 때문에 함명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다. 렉싱턴급 순양전함 중 한 척에 이 함의 이름을 물려주려고 했던 적이 있었긴 했지만 이 때는 컨스티튜션이 퇴역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함명을 이어 주게 되긴 했지만, 워낙 엄청난 업적을 쌓은 함선이다 보니, 후계함 선정이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 CVN-65가 이름을 이어 받았다. 후대 엔터프라이즈 항공모함도 일부에서는 박물관으로 개장하자고 했지만 개조 작업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다며 바로 스크랩 처리되었다. 다만, CVN-65의 경우는 최초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이라는 특성상 해체해야만 하는 당위성도 있긴 했다.[35] 그리고 그 이름은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의 3번함인 CVN-80이 다시 물려받았다. CVN-65의 선체를 녹여 후계인 CVN-80의 용골을 제작중이라는 점이 인상적인 부분. 이쯤되면 해체하는 게 전통이 될 지경이다[36] -엔터프라이즈의 위대함은 같은 이름을 용납 않는다!

4. 평가

엔터프라이즈는 전쟁 내내 일본 해군에 대항하여 싸웠고, 다른 자매, 동료 항공모함들이 침몰한 후에도 혼자서 꿋꿋하게 일본군에 맞섰다. 마지막에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 때는 이미 일본군의 패배가 확정된 후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위치에서 전쟁의 흐름을 바꿨다는 점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모든 군함 중 최고의 수훈함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물론 엔터프라이즈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군함도 많고, 엔터프라이즈보다 더 많은 적기를 격추한 항공모함도 있을 수 있지만, 미국이 가장 위급할 때 활약하여 전세를 뒤집은 배는 엔터프라이즈다. 그렇기에 현재까지도 엔터프라이즈가 최고의 군함으로 인정받는 것이며, 엔터프라이즈가 해체된 후에도 그 이름이 미군의 항공모함에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4.1. 참전기록 및 전공

사실상 '태평양 전쟁사 = 엔터프라이즈의 함생'이라 보면 된다. 태평양 전쟁에서 적어도 해전에 관해서는 둘리틀 특공대 호위 임무 때문에 불참한 산호해 해전 정도를 제외하고 엔터프라이즈가 참가하지 않은 전투 중 주요 해전은 사보섬 해전밖에 없다. 사보섬 해전의 경우 플레처 제독이 내린 철수명령으로 인해 욕을 먹었지만, 야간작전능력이 없었던 엔터프라이즈가 참전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하는 참전기록과 중순양함 이상의 주요 전과. 물론 이것 말고도 여러 경순양함, 구축함, 상륙함등의 승조원들을 수중고혼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지상지원이나 항공기지 공습등에서도 막대한 전과를 올렸다.

간략히 종합하자면 1941년 12월 7일부터 1945년 5월 14일까지 함 자체의 대공포와 항공기로 911대의 적기를 격추하고, 71척의 적함을 침몰시켰으며, 최소한 192척의 적함을 파괴하거나 피해를 줬다. 단, 저 전과 기록은 교차 검증이 되지 않은 엔터프라이즈 승조원들의 보고로 중복이나 오인이 있을 수 있어 실제 전과는 다를 가능성이 있다. 이걸 유의하고 정보를 받아들일 것. 그렇다고 해도 혼자서 저정도면 어디서 감히 따라올 수준이 아니다.
수상기록
Presidential Unit Citation 미합중국 대통령 부대 표창
Navy Unit Commendation 미 해군 해군성 훈장
American Defense Service Medal ("Fleet" clasp) 미군 국방 훈장
American Campaign Medal 미국 전역 훈장
Asiatic-Pacific Campaign Medal (20 Battle Stars) 태평양 전쟁(아시아-태평양 전역) 종군훈장 (20개)
World War II Victory Medal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훈장
Philippine Presidential Unit Citation 필리핀 공화국 대통령 부대 표창
Philippine Liberation Medal (1 Star) 필리핀 해방 훈장 (1개)
British Admiralty Pennant 영국 왕립 해군 해군성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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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기간에 여러 전역 및 작전에 참여하여 태평양 전쟁 종군훈장 20개를 받았다. 이 훈장은 미 해군이 격전에 참가한 함정에게 수여하는 훈장인데 제2차 세계 대전에 참가한 미 해군 군함 중에서 가장 많이 받았다. 다른 미 해군 항모보다는 평균적으로 7개가 더 많고 모든 해군 함정을 포함해도 2개가 더 많다.[43] 그 외에도 미합중국 대통령 부대 표창, 필리핀 공화국 대통령 부대 표창, 필리핀 해방 훈장, 영국 왕립 해군 해군성 깃발, 미 해군 해군성 훈장, 미군 국방 훈장, 미국 전역[44] 훈장,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훈장, 태평양 전쟁 훈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여 기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영국 왕립 해군 해군성 깃발 (British Admiralty Pennant)은 자국인 영국 해군도 수상하기 힘든 깃발이라 타국 해군에 수여된 사례가 엔터프라이즈 단 1척뿐이다. 사실 장기간 현역 활동한 함선의 경우 수많은 훈장을 받긴 하지만 한 전쟁에서 이정도로 받는 건 드물었다.[45]

다만 엔터프라이즈가 나름의 전과를 세우긴 했어도 그보다 상당한 전과가 확인되는 함선들도 존재한다.
아래는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쪽도 전과 보고에 오인, 중복이 있을 수 있어 실제 전과는 다를 가능성이 있음을 유의하자.

4.2. 엔터프라이즈가 가라앉지 않은 이유

당연한 소리지만 일본군은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엔터프라이즈를 침몰시키려 했다. 일단 엔터프라이즈가 침몰되면 한동안 태평양 전역에 미군 항공모함이 없을테니 그 동안 방어 병력을 증강시키거나 새로운 곳을 침공할 수 있게 되며, 엔터프라이즈의 경우에는 계속 두들겨맞으면서도 반격을 매섭게 하는 바람에 이미 전술적인 면을 넘어서 전략적인 견지에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군에게 지속적인 큰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일본군은 엔터프라이즈를 침몰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가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엔터프라이즈는 가라앉지 않았는데 가라앉지 않은 이유론 여러가지가 있다.

5. 비교대상

5.1. 맞수들

태평양 전쟁에 참가한 일본군 군함 중에서, 엔터프라이즈에게 한 방을 먹인 경력이 있고, 마지막까지 미군의 만만찮은 적이었던 일본군의 수훈함들을 여기에 소개한다. 조건이 두 개 달린 이유는 단순히 살아남았다거나 하는 이유만으로는 대상이 되는 배도 많아지고 비교하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51]

5.2. 나름대로 수훈함

일본군 기준으로는 상당한 수훈함이지만, 엔터프라이즈의 맞수라기에는 조금 부족한 배들을 여기에 소개한다.

5.3. 빈수레

엔터프라이즈의 적수로 가끔 거론되지만 실상은 전공도 없으면서 일본의 홍보 덕분에 이름만 유명한 배들.

5.4. 유럽전선의 군함

유럽 전선의 군함들은 엔터프라이즈처럼 전쟁의 흐름을 뒤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에 비해 지나치게 강했고, 독일 해군은 소련 해군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 전선은 해전보다는 지상전과 공중전 위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몇 척의 배가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전장도 아니었다. 독소전쟁은 독일과 소련의 육군이 주연이고, 영국과 독일도 많은 육상전을 벌였다. 태평양 전쟁에선 드문드문 떠 있는 섬과 광대한 바다가 무대였다면, 유럽 전선은 대서양 외에도 광대한 육지가 전장으로 있었기에 생긴 한계다.

물론 유럽 전선의 군함들 중에도 수훈함은 많다. 영국 전함 HMS 워스파이트노르웨이 전역에서 독일 해군 절반을 박살내버린 예가 있고,[64] 전함 비스마르크영국 주력함대에 맞서 홀로 싸운 예도 있으며, 침몰한 후에도 독일군에 맞서 싸운 소련군 전함 마라 같은 예도 있다.[65] 그러나 그들은 엔터프라이즈처럼 혼자서 전선 전체를 지탱하지 않았다. Enterprise VS Japan이 괜히 전설이 된 게 아니다. 그들이 수훈함임에도 불구하고, 엔터프라이즈와 맞먹는 수준에 올라갈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엔터프라이즈와 견줄 수 있는 배가 없는 건 아니다. 유럽전선에 참전한 군함 중에는 항공모함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배가 하나 있다.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퓨리어스가 바로 그 배다. 1917년부터 활동한 이 배는 세계 최초로 함재기를 이착함시켰으며, 세계 최초로 적 육상기지를 공습했고, 맨땅에 헤딩하면서 항공모함에 필요한 온갖 기술을 시험했다. 엔터프라이즈가 활약하기 위한 길을 모두 닦아놓은 군함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노구를 이끌고 부지런히 뛰면서 조국의 승리에 공헌했다. 전공 자체는 엔터프라이즈에 뒤질지 몰라도, 퓨리어스는 전함이 주도하던 해전의 흐름을 영원히 바꿨다. 엔터프라이즈가 항공모함의 족보에 황금글자로 업적을 새겼다면, 퓨리어스는 그 족보를 만들고 첫 머리에 이름을 올린 군함이다. 모든 항공모함의 출발점이 퓨리어스이기 때문에, 엔터프라이즈보다 낮은 위치를 차지할 수 없다.

6. 기타

워낙에 격전을 많이 겪었고 일본군의 혈압을 오르게 한 함선이라, 세계에서 가장 침몰 허위보고가 많이 올라온(9회) 함선이기도 하다. 심지어 최초의 침몰 오인보고는 진주만 공습 당시의 보고였다.[66]

그리고 이곳에 가면 엔터프라이즈의 일대기를 한글로 상세하게 볼 수 있다.

엔터프라이즈 데미지 리포트 USS ENTERPRISE CV6 War History 7 December 1941 to 15 August 1945
제16임무부대(Task Force 16) Task Force 16 Citation

전장에서 활약하다가 쓸쓸하게 퇴장해서 많은 밀리터리 동호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찾아보면 엔터프라이즈와 비슷한 처지의 배들은 많다. 당장 후계자인 CVN-65부터가 같은 처지고,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영국 해군에서 가장 활약한 전함인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워스파이트도 해체를 위해 이동하던 중 좌초해 그 자리에서 해체되었고, 과달카날에서 키리시마를 박살내 도쿄급행을 끝장낸 전함 워싱턴도 해체, 범선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트라팔가 해전에서 기함 빅토리를 구한 전열함 테메레르도 해체처분을 받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The_Fighting_Temeraire%2C_JMW_Turner%2C_National_Gallery.jpg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역작,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67]
이 때 테메레르가 해체를 위해 신세대를 상징하는 증기선에 인양되어 가는 장면은 유명한 그림이 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다.[68]

6.1. 배틀 360

히스토리 채널에서는 이 배의 전투 기록을 소재로 한 'Battle 360''이라는 10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었다.

1편. 출격! USS 엔터프라이즈
엔터프라이즈의 탄생부터 진주만 공습, 둘리틀 특공대까지 다룬다.
2편. 미드웨이의 반격
미드웨이 해전을 다루며, 미군 구축함 아라시가 주연급으로 출연한다.
3편. 지옥의 혈전
과달카날 전역의 시작이지만, 사보섬 해전에 대해서는 해전 이름조차 생략하고 간략하게 설명한다. 그 뒤는 동부 솔로몬 해전.
4편. 산타크루즈 대전
제목대로 산타크루즈 해전을 다루며, 마무리를 장식하는 말은 그 유명한 Enterprise VS Japan.
5편. 과달카날을 사수하라
전환점이라 평가되는 과달카날 해전을 다룬다.
6편. 회색유령의 질주
엔터프라이즈의 개장과 타라와 전투를 다룬다.
7편. 진로를 바꿔라
헤일스톤 작전을 다룬다.
8편. 태평양의 D.Day
위대한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을 다룬다. 당연히 칠면조 사냥(Turkey shot)도 언급.
9편. 도쿄를 향하여
레이테 만 해전을 다룬다. 핵심은 세계 최강의 전함 야마토가 미군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쫓겨서 도망간 사마르 해전.
10편. 제국의 최후
일본 제국의 멸망과 엔터프라이즈의 해체를 다룬다.

엔터프라이즈의 기록을 다룬 만큼 산호해 해전 이야기 등은 없지만 레이테 만 해전 등의 주요 해전들도 다루긴 다룬다. 또한 엔터프라이즈의 승조원들에 대한 인터뷰 역시 잔뜩 실려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직종의 해군 장병들이 참여했으며, 현직 군인 등도 제작에 참여했고 반백년전 에이스 파일럿까지도 등장한다. 엔터프라이즈 내 비행대나 케인 중령 구조에 대한 아이스크림 협박 사건등 여러 소소한 사건들도 들을 수 있다. 야간폭격을 고안한 파일럿이 정작 자긴 운동하다 다쳐서 참여하지 못했다거나, 다리에 파편이 박힌 조종사가 작전을 수행하고 싶어서 귀환때까지 이야길 안했다거나 등 여러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런 노력 덕분에 엔터프라이즈 승조원들에 대한 설명은 거의 완벽하다.

그러나 일본 해군 쪽에 대한 지식은 조금 부족하다. 나가토와 아카츠키가 둘다 순양함이라고 나온 그 그 예다. 실제론 나가토는 대형 전함이고 아카츠키는 구축함이다. 심지어 나가토가 중순이라는 오류는 한번도 아니고 두번 나온다. 엔터프라이즈에게 패배한 적들에 대해서는 그 강함을 과장하는 경향도 있는데, '지옥의 혈전'편에서의 사카이 사부로는 일본의 붉은 남작이라는 식으로 나오고 '태평양에서의 D day'편에서의 다이호는 흡사 최종병기스러운 설명과 함께 등장한 후 멋지게 박살난다.

다만 '지옥의 혈전'편에서 소개되는 사보섬 해전에 대해서는 미군의 질적 우위를 역설한 후 "적은 놀라운 전술로 그 모든 걸 극복했다"는 멘트와 함께 짤막하게 언급하는 정도이고, 뭐가 놀라운 전술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심지어 해전의 이름조차 생략했다가, 마지막에 지나가는 투로 언급한다. 너무 굴욕적인 패배라서 설명하기 힘들다는 건 인정하지만, 역사 다큐멘터리로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은 제 3화 지옥의 혈전 편 자체가 너무 부실하다. 사보섬 해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고,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가 어떻게 전략적 승리를 거두었는지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미끼에 불과한 류조를 격침시키고, 적기에 많은 피해를 주었으며,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물러났으니까 전략적으로 승리했다는 식의 설명은 곤란하다. 함재기의 피해가 많아서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물러났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는 것은 역사 왜곡이다.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연료 부족을 핑계로 물러났고, 류조의 침몰로 공중호위를 잃은 수송함대가 미군에게 저지당해 과달카날 진입에 실패했으며, 이로 인해 미군이 과달카날을 지키는 전략적 승리를 따냈다는 사실을 감춰버린 꼴이다. 이런 설명은 30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아쉬운 일이다. 사보섬 해전의 비참한 패배를 숨기고,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일본 항모전단이 저지른 삽질을 일부러 숨겨줌으로서 다큐멘터리의 완성도를 떨어뜨린 꼴이다.

이런 문제는 세계 최대의 해전인 레이테 만 해전에서도 나오는데,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설명이 부실한 경향이 있다. 나무위키의 레이테 만 해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해전은 여러 개의 해전을 하나로 묶은 것이라서 관련 내용이 엄청나게 길다. 1회에 채워넣기에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미군과 일본군에 대한 고증이 완벽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이래서다.

하지만 어쨌든 엔터프라이즈에 대한 고증은 나름대로 좋다보니 이 문서 내에도 해당 다큐를 참조한 부분이 많이 있다. 더빙으로 보러가기.

2010년 전후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상당히 자주 틀어줘서 한국에서 해전 관련 밀리터리 동호인들의 입문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7. 미디어

단 한 척으로 전쟁사를 쓴 말 그대로 전쟁드라마 같은 함생을 산 함선이니만큼 태평양 해전을 소재로 했거나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을 따온 함선이 등장하거나, 그리고 단 한 척의 함선이 고군분투 끝에 전황을 뒤집는 전개가 나온다면 십중팔구는 이 배가 기원이다.

미 유명 SF 스타트렉 시리즈의 우주선 엔터프라이즈는 이 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USS 엔터프라이즈의 관련 문서 참조.

우주왕복선 엔터프라이즈도 이 배의 이름을 붙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타트렉스타쉽 USS 엔터프라이즈(NCC-1701)에서 따 온것이지만, 그 USS 엔터프라이즈는 바로 이 문서의 주인공인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CV-6)에서 이름을 가져왔다고 스타 트렉 시리즈의 방송작가였던 Gene Roddenberry가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스타 트렉의 팬들이 백악관에 수십만통의 투서를 날려서 우주왕복선의 이름으로 바꾼 것.

프라모델의 경우 1/700의 워터라인 시리즈의 경우 타미야제 한 모델 외에는 발매되고 있지 않다. 이 제품은 1973년 금형임에도 단차도 우수하고 몰딩도 우수하다. 아마 판매량이 적다보니 금형이 아직 쌩쌩한 듯. 하지만 정작 이 킷의 가장 큰 문제는 함재기와 선체는 후기형이지만 함교는 막상 각이 진 전기형이라는 것이다. 둥근 후기형 함교를 하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 판 등을 이용해서 개조하는 수 밖에는 없다. 심지어 1/350으로는 일본 내 회사에서는 아예 발매되지도 않는다. 상대적으로 이펙트가 적은 CV-3 새러토가나 CV-8 호넷은 복수의 회사에서 발매되고 있는 걸 보면 엔터프라이즈가 일본에서 얼마나 인기가 없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다가 트럼페터에서 1/700 스케일로 출시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43년형이다. 이어서 트럼페터의 자회사인 메리트 인터내셔널에서 1/350 스케일의 엔터프라이즈[69]를 출시하였다.

2017년 8월 아카데미과학에서 1942년형 엔터프라이즈가 출시되었다. 박스아트는 알파캣이 그렸다. 기존 아카데미 함선 키트에 비해 조립편의성이 많이 개선되었다. 2차대전 군함 프라모델 입문용으로 권장해볼만하다.[70]

SCP 재단 한국어판에선 SCP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중이라는 설정. 실제 역사에서의 스크랩 처리된 결말은 역정보로, 여기에서는 시대에 따라 최신예 스펙으로 자동 업그레이드된다는 변칙성이 발견되어 재단에서 현역으로 굴리고 있다고 한다.[71]

반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승리한 세계의 SCP재단에 상응하는 SKP 재단[72]에서는 SCP-217-KO의 해당 평행개체인 SKP-217-KO가 존재하는데, 독일군이 나포한뒤 일종의 세력과시용 용도(2차대전 이전 엔터프라이즈의 위상을 역이용한 저항세력 기죽이기 등)로 써먹거나 생성된 병기를 역공학 소스로 사용한다는 설정이다.[73] 기본적인 특성은 SCP-217-KO와 같지만, 잔존한 레지스탕스들의 상태에 따라 SKP-217-KO의 함재기 상태를 비롯한 세부상황이 좋아지거나 나빠진다는게 추가되었다. 가령 독일군이 레지스탕스를 분쇄할때면 SKP-217-KO가 안좋아지고, 레지스탕스가 세력을 키우면 반대로 좋아지는 식. 마지막으로 확인된 형태는 크릭스마리네의 최신예 항공모함("에리히 레더 급") 진수식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 함재기로 무인기 다량이 추가되고 자위용 함포, 각종 대함미사일이 적재되었으며, 해당함을 억류하던 해군기지의 독일군 함선들을 공격한뒤 북아메리카의 무인지대[74]로 도주하고 있으며, 독일군은 해당 함의 파괴를 명령했다는게 SKP-217-KO의 마지막 흔적. 잡혀도 스크랩 처리하긴 힘들 듯하다. GOC의 반면교사는 둘째 치더라도

파일:external/pbs.twimg.com/C__nlQqUMAIGSvw.jpg
월드 오브 워쉽에서 8티어 프리미엄 쉽으로 나온다.
성능은 정규 미항의 동앗줄인 철갑급폭 테스트베드라 보면 된다. 항공모함이 리워크 된 이후에도 철갑급폭을 쓰며, 현재 8티어 항공모함들 중 승률 1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성능도 특출나서 대함대공도 다재다능한 함선. 항공모함 리워크 후에도 철갑 폭탄과 12기에 달하는 로켓 공격기, 전투기, 전함이나 중순을 엿먹이기 좋은 철갑 급폭기를 운용하여 동티어 항공모함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실제 역사처럼 어떤 군함을 상대해도 능동적으로 잘 싸운다. 장갑이 얇긴 하지만, 그래서 자신에게 날아온 철급이나 철갑탄을 과관통으로 흘리기 쉽다.

파일:Naval Creed 갓터프라이즈.jpg
Naval Creed:Warships에서 4티어 MM8.1프리미엄 쉽으로 나온다
구매비용과 업그레이드 비용이 만만치는 않지만, 4티어 항모중에 최강급 성능과, 전용 수리반을 가지고 있다, 수리반 덕에 항모저격에 거의 면역인셈.

모바일 게임 벽람항로에서는 SSR급 항공모함으로 등장. 캐릭터 자체도 정상권을 다툴만큼 인기있고, 성능도 벽람항로 내의 항공모함 중에서도 최고급. 스킬 발동 시 자신이 받는 대미지를 무효화하는 동시에 대미지도 뻥튀기되는, 상당히 강력한 스킬로 등장해 일반 해역, 연습전을 가리지 않고 크게 활약하는 함선이다.

함대 컬렉션 미국 항모 요크타운급 캐릭터중 호넷이 말한 언급한 캐릭터로, 호넷(함대 컬렉션) 시보와 결혼 대사엔 엔터프라이즈 언급되어 언젠간 나올 가능성 생겼다.

미드웨이(2019년 영화)에서는 당연히 등장하며, 영화의 주인공은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폭격기 조종사였던 베스트 대위이다. 미드웨이 해전을 다루고 있는지라 당시 미군의 함상 대공포였던 1.1인치/75 구경장 대공포 “시카고 오르간” 을 대공포 운용반이 운용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소설 별이 펄럭일 때에서 미 해군 소속 정규 항공모함으로 등장. 상대가 일본 제국 해군에서 판타지의 제국 해군들으로 바뀌었을 뿐 바뀐 상대들과 싸우면서도 업적을 줄줄이 쌓아나가며, 스토리 중간에 대서양 전역이 주무대가 될 때는 파견근무까지 나가는 등 작가도 밀어주는 함선이다. 전쟁 후반기엔 몰락 작전의 중간 단계에서 함대 총기함을 맡아 시홀앙르 제국 수도 공습까지 펼친다.

폴란드의 레고 호환 밀리터리 전문 브랜드 코비 블럭에서 1/300 스케일의 블럭으로 구현한 엔터프라이즈를 출시했다.

워쉽배틀:2차세계대전에선 과거 보스전 최강자로 등극했었으나 파워 인플레와 비싼 무기값, 항공모함 특유의 낮은 기동성과 얇은 장갑, CIWS등 방어 무기가 없는 등 여러 문제가 겹쳐 완전히 고인이 되었다. 엔터프라이즈 감성 말고는 굴릴 가치가 없는 함선. 심지어 더 강한 항공모함들도 잔뜩 나왔으니 전혀 쓸모가 없다.

만화 지팡구에서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실제 역사대로 일본 연합함대를 대파시키고, 후반부 마리아나 해전에서 레이먼드 스프루언스가 지휘하는 미 제5함대의 항공모함들 중 하나로 등장하지만 일본 급강하폭격기의 급강하 폭격에 대파되어 하와이로 회항한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이 이끄는 미 해군 항공모함으로 등장. 역사가 바뀌어서 1942년 1월 25일, 진주만 공습이 일어나고 진주만을 공격하고 돌아가는 일본 제국 해군항공대 3차 공격대를 추격하여 큰 피해를 입힌다. 이후 태평양을 누비고 다니며 초카이와 히요를 비롯한 여러 척의 일본 제국 해군 함선들을 단신으로 격침시키고 일본 제국 해군에게 그레이 고스트라는 별명을 얻는다. 작품의 마지막 파트 부분을 장식하는 독일, 영국, 미국의 연합군 함대와 일본 제국 연합함대와의 결전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이 이끄는 기함으로 등장해 활약하고, 카미카제 공격에 대파되나 수리하고 소류를 역으로 격침시켜버리는 위엄을 보여준다.

대영제국 함장이 되었다에서도 미 해군 항공모함으로 등장. 역사가 뒤틀려 독일 제국 해군, 영국 해군과 함께 일본 제국에 맞서 싸우며 무려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Bf109가 착함하는 장면도 나온다. 엔터프라이즈는 엔터프라이즈라 이 역사에서도 단신으로 과달카날 전투의 일본 증원군을 타격하고 전쟁 후반기 일본 제국 연합함대와의 결전에도 참가해 대활약한다

8. 외부 링크



[1] 그 받기 힘들다는 영국 왕립해군 해군성 깃발까지 받았다. 수치상의 공적 자체는 하술하겠지만 더 큰 배들이 좀 있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처럼 결정적인 순간마다 수훈을 올린 군함은 없다.[2] 랭글리, 렉싱턴, 새러토가, 레인저, 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 와스프, 호넷.[3] 군함이 회색이라 붙은 별명이지만, 사실 태평양 전쟁 중 엔터프라이즈는 위장을 위해 회색보다는 짙은 푸른색으로 더 오랫동안 전투를 치렀다. 엔터프라이즈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도 "우리는 전쟁이 나자마자 갑판과 선체를 어둡게 칠했어요. 그래서 칠하지 않은 일본의 항공모함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라는 승조원의 증언도 있다. 시기별로 엔터프라이즈의 위장 색은 거의 다 푸른색이다. #[4] 다만 이 회색 유령이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본 파일럿들이 붙인 별명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엔터프라이즈는 항상 구름에 의해서 살아남았기 때문. 혹은 다른 군함들이 침몰하는 와중에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살아남았을 때 상태가 망신창이 상태를 가리켜 잿빛이라고도 표현될 수도 있다.[5] 중국에선 엔터프라이즈를 한자로 번안해서 적을 때 음차하지 않고 그냥 뜻을 있는 그대로 해석해서 기업(企業)이라고 번안하곤 한다.[6]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1942년 후기에서 1943년을 거치며 대공화력이 강화되는 걸 볼 수 있다. 이러한 대공무장 강화와, VT신관, 함대원형진 전술이 어우러져 미군 함대의 대공방어 능력은 획기적으로 강화되었고, 그 결과 산타크루즈 해전처럼 심지어 침몰수로는 일본 측이 앞선 외견상 일본측이 승리한 듯한 전투에서도, 미군보다도 도리어 일본 항모기동부대가 더 많은 항공기와 인원을 잃고 사실상 전력을 상실함으로서, 결국 작전에 실패하는 상황이 초래되기에 이른다.[7] 이 기관포의 별명은 마피아들이 즐겨쓰던 톰슨 기관단총에서 따와 '시카고 피아노'였다. 기관포 사수들이 붙여준 별명. 2차 세계 대전 초기까지 미 해군 군함에 많이 장비되었던 대공기관포. 하지만 태평양 전쟁 초기 실전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잦은 탄 걸림 현상을 비롯해 낮은 신뢰성으로 병사들에게 원성이 높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5인치 포와 12.7mm 기관총이나 20mm 기관포 사이의 갭을 제대로 커버하기엔 너무 작은 화기라서 사거리가 부족했고, 반대로 초근접한 적기를 상대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기에는 너무 묵직한 물건이었다. 여기다 포의 발사속도도 높지 않아 (분당 150발 × 4) 효과적이지 않은 매우 어정쩡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선함 대부분에서 빠르게 도태되었고, 유명한 보포스 40mm (56구경) 기관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8] 보포스 40mm (56구경) 기관포.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시켰다고도 이야기 된다. (오리콘 20mm 기관포가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했다는 주장도 있다.)[9] 카미카제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20mm 오리콘 기관포 일부를 철거하고, 40mm 기관포를 증설했다.[10] 격납고가 단층이라 모든 함재기가 수납될 수 없으므로 비행갑판에도 계류시켜 운용했다. USS Enterprise CV-6에선 최대 96기라 표기하고 있는데 Location of U.S. Naval Aircraft, World War II» 1944 » 7 Nov 1944에선 엔터프라이즈에 소속된 CVG-20의 함재기가 F6F 55기, SB2C 24기, TBM 19기로 총합계가 98기인데 이게 어떠한 상태로 있는지 따로 설명된 것은 없다.[11] 1943년도에 방뢰 벌지 추가 및 레이더 변경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대공무장 같은 대규모 오버홀이 있었다.[12] 나구모가 진주만의 연료탱크들을 파괴하지 못한 것이 이렇게 돌아오게 된 것이다. 만약 진주만 공습 당시 연료탱크들이 파괴당했다면 미드웨이 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13] 항공모함에서 발진하기 위해 폭격기 안에 있는 무장까지 들어내고 승무원들이 끼니도 거를 정도로 무게를 덜어낸 터라 진짜 목숨 걸고 하는 임무였다.[14] 바꿔 말하면 미군을 무시했다가 히로히토 일왕이 저승길을 갈 뻔했다는 뜻이다.[15] 다른 곳도 아닌 무려 현인신으로 떠받들어지는 국가원수가 계신 수도 도쿄 하늘에 미군이 제 집마냥 날아다니며 폭탄을 떨궈댔으니 치욕감은 두말할 것도 없었을 거다.[16] 거의 비슷한 시간에 요크타운의 제3급강하 폭격 대대는 별도의 경로로 소류를 찾아냈다.[17] 아카기의 약점인 방화 커튼이 있는 부분을 직격했기 때문이다. 그 주변에 격납고가 있는데, 이곳에서 무장 교환 중이던 함재기들도 그 폭압에 휘말려서 무장이던 어뢰 및 폭탄과 함께 유폭해버린 것.[18] 거기다 유폭의 이유가 참 황당한데, 이 일본의 기동함대가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다 미국 기동부대를 공격하면서 무장을 지상공격과 대함공격용 무장을 이리저리 정신없이 뒤바꾸던 상황이라 이 바뀐 무장들을 정리하지못해서 격납고에 함재기와 함께 어뢰와 폭탄이 정신없이 펼쳐진 상태에서 격납고에 폭탄이 떨어지자 이것들이 연달아 유폭하면서 함을 작살내버린것이다.[19] 이 부분에 관한 내용을 영화 미드웨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20] 실제로 일본군 해군이 미드웨이 해전 이후 몰리게 되는 원인이 제1항공전대제2항공전대가 사라진 탓이다. 이로부터 정확히 2년정도 뒤에 일본군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사실상 섬멸도 아니고 문자 그대로 소멸된다.[21] 터너 제독이 "주력함대의 탈출"이라며 분개한 내용의 출처는 #. 그 후에 터너 제독은 더 심한 말을 상관인 플레처 제독에게 대놓고 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 개새끼야, 그럼 넌 겁쟁이라고!!(You son of a bitch, if you do that you are yellow!!)"[22] 1942년부터 건조를 시작한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야간 작전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사보섬 해전 당시는 한창 건조 중이었다.[23] 엔터프라이즈가 소속된 16기동부대는 출격 일자도 하루 늦췄다. 13일 금요일에서 14일 토요일로[24] 전부가 아닌 이유는 미군이 아오바가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격침되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미군의 판단과는 달리 아오바는 40발에 가까운 명중탄을 맞으면서도 치명타를 피하는 행운과 데미지 컨트롤로 살아남았다. 완전히 해소하는 데 성공한 시점은 아오바가 완전히 격침된 구레 군항 공습 이후다.[25] 정규항공모함 6척, 호위항공모함 6척, 전함 8척, 중순양함 3척, 경순양함 3척, 구축함 35척으로, 4개 전단으로 구성되었다.[26] 당시 엔터프라이즈 항공모함 내 제10 전투비행단 단장이었으며 해군 에이스였다. 해군십자장 수훈, 전후 경항공모함 사이판에 함장을 역임[27] 원문은 "How much ice cream is Killer Kane worth?"으로 직역을 하면 "킬러 케인은 아이스크림 얼마 만큼인가?" 정도 되겠다.[28] 이게 문제가 되는데, 킨케이드와 홀시는 원래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그런데 저 사건 때문에 홀시가 그 원인이 킨케이드에게 있다는 식으로 폭로, 이에 킨케이드가 격노하면서 이 둘은 죽을 때까지 서로 말도 섞지 않는 관계가 되어버린다.[29] 사진속 불기둥끝에 보이는 회색물체가 전방 엘리베이터다.[30] 폭발로 날아간 엘리베리터는 물에 둥둥 떠다녔고, 물에 빠진 미군 2명이 그 위에서 구조될때까지 기다리는데 사용됐다.[31] 원래는 정식 수송선을 사용해야하는 일이지만, 당시 미군은 전후 본토로 귀환할 장병이 너무 많아서 (당시 미군 총병력 1200만명 중 국내 주둔군을 제외한 해외에 파병된 미군의 숫자가 800만명이 넘었다) 보유한 수송선만으로는 도저히 귀환 일정을 맞출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한도 끝도 없이 일정이 미뤄지는 꼴에 분노한 장병들이 시위까지 벌이자 항공모함까지 가져와서 장병을 실어나르게 된 것.[32] 위에서부터 샌 재신토, 호넷, 엔터프라이즈, 그리고 새러토가 순이다.[33] 위쪽의 마무리 공사를 받는 최신예 항공모함인 포레스탈급 항공모함 3번함인 인디펜던스 항공모함과 아랫쪽에 정박하여 해체를 기다리는 엔터프라이즈 항공모함이 보인다.[34] 아이오와급는 예비역 함선이기는 했다.[35] 앞으로 만들어질 거의 대부분의 항공모함들은 원자로 기반의 항공모함이 될 것이기 때문에 스크랩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료로도 써야 했기 때문.[36] 사실 이후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을 달 함선들도 큰 오차가 없다면 이러한 원자로 계열을 싣는 함선이 될테니(가령 핵융합이 상용화되면 핵융합 원자로가 된다던가...) 어찌보면 추후 함선들도 반쯤은 스크랩이 예약된 것이기도 하다.(...)[37] 히류는 엔터프라이즈로 대피한 요크타운 비행대와 같이 공격했고 모가미 및 미쿠마는 호넷 비행대와 함께 공격했다.[38] 이것은 '머렐 트와이벨'이라는 수병이 만든 물건으로 엔터프라이즈에서 사용되던 특제 물건이었다. 기존의 호흡보조기의 두배 성능을 낸 이 물건 덕에 엔터프라이즈는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었다.('battle 360' 중)[39] 히에이는 1942년 11월 13일 먼저 핸더슨 기지에서 공격해온 SBD 돈틀리스 편대와 에스피리투 산토 섬에서 날아온 B-17 폭격기의 공격을 받아 2번 주포와 4번 주포가 사용불능이 되었다. 이어서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TBF 어벤저 편대(제10뇌격대) 9기와 F4F 와일드캣 6대가 히에이를 발견하고 뇌격해 조타 불가능의 피해를 입고 퇴함명령이 내려진다. 마지막으로 좀전에 히에이를 공격한 엔터프라이즈 제10뇌격대(6기로 줄어들었지만)가 핸더슨 비행장에서 보급을 받은 뒤 해병대 소속 돈틀리스 8기와 함께 돌아와서 히에이를 재공격, 어뢰 2~4발(자료에 따라 다름)과 폭탄을 여러번 얻어맞은뒤 자침 처분되었다. 함선을 포기하게 한 것은 핸더슨 비행장에서 날아온 공격대지만 뇌격대 편대는 원래 엔터프라이즈 소속이었다.[40] 수리함 베스탈과 엔터프라이즈 승조원 그리고 미 해군 시설대대(Seabees)까지 동원하여 어떻게든 수리하고 출격했지만, 작전 지역 도달 전까지 계속 수리 작업을 진행했으며 전방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의문스러운 상황이었다.[41] 히요는 항공모함 렉싱턴에서 출격한 함재기의 뇌격으로 우현후부를 얻어 맞아 기관정지되었고 뒤이어 날아온 엔터프라이즈 항공대의 폭탄을 함교에 뒤집어 쓰는 치명타를 입는 바람에 중요 지휘관들이 몰살하고 이어서 호위항공모함인 벨로우드의 함재기 혹은 잠수함의 뇌격을 받고 계류되다가 침몰한다. 후에 해군 소장까지 승진한 엔터프라이즈의 함상폭격기(엔터프라이즈 답게 신형 함폭인 헬다이버가 아니라 구형인 돈틀리스) 편대장 James D. Ramage(당시 소령)의 수기에 의하면 류호를 공격한건 자신과 Van Eason중위가 이끌던 편대였고, 엔터프라이즈의 편대장 Louis L. Bangs 소령이 이끈 함폭 편대 6기가 히요를 공격했다고 한다. 참고로 래미지 소령과 뱅스 소령, 이슨 중위는 이 전과로 인해 세명 모두 해군 십자상(Navy Cross. 명예 훈장 다음으로 높은 훈장)을 수여 받는다.[42] 추가로 중순양함 토네는 엔터프라이즈가 소속된 38임무부대의 폭탄을 맞아 피해를 입은 것은 확실한데 정확히 어느 부대에 공격을 받았는지는 미확인[43] 1위 20개인 엔터프라이즈, 2위 18개인 경순양함 샌디에고, 3위 17개인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와 미니애폴리스, 구축함 오베넌, 4위는 16개인 포틀랜드, 엔터프라이즈의 첫 파트너인 노스캐롤라이나는 5위로 15개다.[44]전역이 아니라 'Campaign'이다.[45] 장기간 현역 활동한 CVN-65 엔터프라이즈가 받은 훈장은 CV-6 엔터프라이즈 보다 더 많았다. CVN-65 엔터프라이즈가 받은 훈장[46] 호넷의 전과표에 있는 항공모함은 즈이카쿠가 아니라 다른 항공모함이다.[47] 참고로 야마토는 오키나와 전투 때 호넷 등의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에게 공격당해 격침되었다. 전체 어뢰 10발, 폭탄 3발 중 호넷이 어뢰 4발, 폭탄 3발을 먹였는데, 야마토의 폭발 원인이 어뢰로 인한 침수로 배가 기울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폭탄으로 인한 화재 때문에 떨어진 탄약들에 불이 옮겨붙은 것이므로 거의 호넷이 가라앉힌 격이다.[48] 프로펠러로 굴리는 프롭기들이면 그나마 덜한데, 현대의 함재기들은 기본적으로 제트기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폐쇄식 격납고를 쓸 수 밖에 없는 것.[49] 미국은 넓은 국토 때문에 사람을 부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간단한 고장은 집안에서 고치는 가라지(차고) 문화라는 게 있다. 지금도 차고(가라지)에서 창업하는 스타트업이 많을 정도다. 입대할 시기의 미군 장병들은 대공황을 겪으면서 먹고 살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노동을 한 경험과 아버지에게 배운 간단한 기계공학적 능력으로 무장되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일본과 다르게 간단한 훈련만으로 숙련된 정비공을 확보하는 게 쉬웠다.[50] 1945년 5월에 있었던 손상으로 인해 전선에서 물러난 엔터프라이즈에 소속되어 있었던 VF(N)-90은 작전 중 사망 7명, 그 외 사망은 2명, VT(N)-90은 작전 중 사망 15명, 그 외 사망은 9명이었다.[51] 예를 들어 일본군의 구식 경순양함 텐류와 유바리는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라는 사보섬 해전에 참전했고, 과달카날 해전에서도 엔터프라이즈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엔터프라이즈의 맞수가 될 수 없다. 이 두 척의 배는 사보섬 해전 당시에도 일본군의 걸림돌이었고, 이후에도 별로 활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52] 일본 측에서는 아카기와 카가를 높이 평가하지만, 미국 측에서는 쇼카쿠급 자매를 더 높이 평가한다.[53] 터너 제독이 "주력함대의 탈출"이라고 발언한 일의 출처는 #. 욕을 먹은 건 철수 명령을 내린 지휘관인 프랭크 플레처 제독이지만, 엔터프라이즈도 주력함대의 일원이라 연대책임이나 내리갈굼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플레처 제독도 나름 억울한 것이, 8일 당일까지도 일본 공군기지로부터 공습을 당했고, 전력상으로는 비등했던 연합군 함선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단 2시간 만에 다 터져나갔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야간전에 매우 불리한 항공모함 위주 함대로 싸우는 걸 요청받은 것이다. 자칫 실수했다간 항모가 모조리 터져나가는 것을 역으로 당하게 될 판이니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54] 아오바가 없는 16전대는 어찌저찌 레이테에 돌입해 임무를 성공시키긴 했다. 그 대가로 분노한 홀시에게 전부 격침당해야 했지만.[55] 특히 카가는 중일전쟁부터 투입된 베테랑중의 베테랑이었다.[56] 아카기는 태생적으로 선체크기부터 쇼카쿠급보다 컸으며, 카가는 선체는 작지만 더 넓은 갑판 & 높은 선체로 인해 함재기를 더 많이 실을 수 있었다.[57] 다만 비용은 아카기와 카가가 개장을 여러차례 거듭했던 탓도 있다. 순양전함/전함→3단갑판→단일갑판으로 대규모 개장을 두 번이나 했으니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순양)전함에서 항모로 함종을 변경한 것까지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지만 갑판을 갈아치우는 뻘짓만 안 했어도 돈 좀 더 보태서 쇼카쿠급을 하나 더 뽑을 수 있었다.[58] 이후 요크타운은 구축함 해먼의 예인의 따라 철수하다가, 잠수함 I-168의 뇌격으로 해먼과 함께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다.[59] 정작 히류의 파일럿들은 두 번째 반격을 가할 때 첫 번째 반격에서 입은 타격으로부터 말끔히 수리된 요크타운을 보고 엔터프라이즈라고 착각하여 공격해 자기들이 엔터프라이즈 역시 대파시켰다고 생각했다.[60] 정확히는 그 일부인 사마르 해전[61] 진주만 공습 이후 경제성이 없는 캘리포니아와 웨스트버지니아를 굳이 건져내 살린 이유도 이것이다.[62] 더 웃기게도 사전에 이러한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미군의 함재기가 오자 주포 인원들이 멋대로 쏴버린 것.[63] 시나노는 첫 항해이자 마지막 항해에서도 공사중이었다. 마무리 공정 겸 함재기 인수하러 구레로 떠난 그 날에도 함내에서 아직도 반짝이는 용접 불꽃을 수놓아서 호위를 맡은 구축함의 승무원들은 경악시켰다. 이 때 시나노의 호위를 맡은 구축함들이 이소카제, 하마카제, 그리고 일본군 해군에서도 불침함 겸 사신으로 유명한 유키카제.(셋 다 카게로급 구축함들이다.)[64] 심지어 이는 독일 구축함의 대부분을 박살낸 것이라 이후 계속 독일 주력함들의 발목을 잡고, 바다사자 작전같은 건 꿈도 못 꾸게 만든다[65] 물론 마라는 착저한 거지만, 함체가 쪼개지다시피 한 거라서 침몰로 친다, 만약 착저하지 못 했다면 마라는 무너졌을 것이다.[66] 표적함이 된 전함 유타의 침몰을 엔터프라이즈로 오인보고 했다고 한다. 출처는 청아람미디어에서 번역한 '존 키건'의 '2차 세계 대전사' 384p.[67]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68] 007 스카이폴에서 본드가 바라보던 바로 그 그림이다.[69] 1942년형.[70] RG등급 건프라를 조립가능한 손재주면 충분히 완성가능하다. 물론 조립편의성이 개선되었으나 건프라와 비교할 수준은 못 되고, 함선 모형이 타 모형보다 어렵다는 것은 감안해야한다.[71] 사실상 엔터프라이즈를 SCP로 써먹고 싶었던 어느 밀리터리 동호인 SCP 재단 작가가 작성한 것에 불과하며, 서사 자체가 없다고 평가될 정도로 항목 자체도 질이 높지 않지만 기동항공대등의 설정에서 자주 등장해 한국어 재단 커뮤니티 내에서는 나름대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72] 정확히는 우리 세계의 SCP가 저쪽 세계에서는 미국의 패배와 동시에 SKP로 흡수되었다.[73] 그쪽 세계의 SKP 재단은 SCP재단보다 초상현상 활용에 더 적극적이다.[74]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형성된 '운터멘셴'(흑인, 동성애자, 기존 종교인, 슬라브인 등)들로 이루어진 게토라고 보면 된다. 유대인과 집시는 절멸되었는지 무인지대에서조차 보이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