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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7:58:26

엔터프라이즈 우주왕복선

<colbgcolor=#2a57a5> 세계 우주왕복선
미국 엔터프라이즈 컬럼비아 챌린저 디스커버리 아틀란티스 엔데버
소련 부란
Space Shuttle Enterprise
파일:Space_Shuttle_Enterprise_in_launch_configuration.jpg
발사 구성 시험을 위해 발사대에 올려진 엔터프라이즈
궤도선 제식번호 OV-101
사용국
[[미국|]][[틀:국기|]][[틀:국기|]]
계약일 1972년 7월 26일
이름을 따온 곳 USS 엔터프라이즈(NCC-1701)[1]
최초 비행 임무 ALT-12
최초비행일 1977년 8월 12일
최후 비행 임무 ALT-16
최후비행일 1977년 10월 26일
수행 임무 수 5회
우주 체류 일수 없음
상태 퇴역

1. 개요2. 상세3. 임무4. 승무원5. 퇴역 이후

[clearfix]

1. 개요

미국NASA 우주개발의 자존심 우주왕복선의 프로토타입이자 최초의 우주왕복선.[2] 엔진과 방열판 없이 제작되었고, 개조 비용을 비롯한 이런저런 어른의 사정으로 실제 우주 임무를 수행하지는 못했으나, 활공 시험(Approach and Landing Test, ALT)을 통해 다른 우주왕복선들 못지 않은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기체이다. 이 엔터프라이즈의 비행을 통해 우주개발의 새 시대가 열렸다.

2. 상세

원래 헌법이라는 뜻이자 미국의 최고령 현역 군함의 함명인 컨스티튜션으로 이름을 명명하려 했으나, 전미의 트레키들이 NASA와 백악관에 40만 장에 이르는 투서를 날려대서 이름을 바꿔버렸다.### 어쨌든 미국 SF의 자존심인 스타트렉의 우주선인 USS 엔터프라이즈(NCC-1701)의 함명이자 태평양 전쟁의 역사 그 자체인 이름을 최초의 우주왕복선에 붙여서 결과는 좋았다.
파일:The_Shuttle_Enterprise_-_GPN-2000-001363.jpg
스타트렉의 주연배우들과 진 로덴베리를 초청한 역사적인 취역식.

원래 엔터프라이즈는 후에 정식 우주왕복선으로 개조할 것을 염두에 두고, 궤도선 제식번호를 OV-101로 하였으나 후에 두번째 프로토타입인 OV-099 챌린저호를 개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되어 개조는 하지 않았고, 1986년 챌린저호가 폭발한 이후, 다시 이 우주선을 개조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또 다시 비용 문제로 다른 셔틀의 여분의 부품을 이용해 엔데버호를 제작하기로 결정이 난다.

사실 60년대 스타트렉 시리즈를 보면서 우주에 대한 꿈을 꾸며 나사로 온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나사 관계자들도 우주선 엔터프라이즈의 존재를 모를리가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스타트렉상에서 나오는 엔터프라이즈 함급의 초도함(프로토타입)이 NCC-1700 USS 컨스티튜션이었으니, 스타트렉과 똑같이 프로토타입이 될 우주왕복선에 컨스티튜션을 붙이고 우주에 내보내기로 계획된 다른 왕복선에다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으나, 일반인들이 그러한 사정을 잘 알 리가 없기에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것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 정말 프로토타입이 아니라 다른 우주왕복선에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계획했었다면 챌린저컬럼비아가 아니라 엔터프라이즈가 터지는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3. 임무

파일:Space_Shuttle_Approach_and_Landing_Test_(ALT)_Patch.svg 파일:OV-101_first_flight.jpg
엔터프라이즈 및 ALT 시험의 임무 패치 엔터프라이즈의 첫 자유 비행

ALT는 간단히 말해, 보잉 747등짝에 실려 이륙한 뒤 홀로 활공하여 지상 활주로에 착륙하는 실험이다.[3] 1977년 2월 15일부터 10월 26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이중 8월 12일에는 첫번째 자유비행을 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엔터프라이즈는 정식으로 우주 미션에 투입될 후보로 검토되었으나, 함께 테스트용으로 제작되었던 OV-099 챌린저의 개조 비용이 더 싸게 먹힌다는 것이 밝혀지며 프로토타입으로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실험용으로는 여전히 매우 좋고 부담도 적은 기체였기 때문에 STS-51-L 챌린저 폭발사고 전까지 기획되던 반덴버그 공군기지 셔틀 발사대 공사[4]라던지 컬럼비아의 비극적 사고 이후에는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테스트용으로도 사용되었고 디스커버리, 아틀란티스 등 후속 셔틀 개발을 위한 여러 실험과 이런저런 투어도 가지며 우주개발을 선도하는 천조국의 기상(...)을 널리 떨쳤다.

4. 승무원

파일:Space_Shuttle_Approach_and_Landing_Tests_crews_-_cropped.jpg
테스트 파일럿 4인 : 좌측부터 C. 고든 풀러튼, 프레드 헤이즈, 조 엥글, 리처드 트룰리

공교롭게도 이 네 우주비행사들은 미국의 우주개발사에서 크고 작은 설움을 겪었던 이들이다. 풀러튼과 트룰리는 페이퍼 플랜으로 끝난 미합중국 공군MOL 프로그램에서 전속되었고, 조 엥글은 고정익기 X-15로 우주에 갔다온 경력도 있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였으나 해리슨 슈미트에게 아폴로 17호 달 착륙선 조종사 자리를 빼앗기며 달에 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잃은 지못미 그 자체이며, 프레드 헤이즈아폴로 13호의 그 인물이자 취소 크리를 맞은 아폴로 19호의 사령관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인물. 헤이즈-풀러튼, 엥글-트룰리 조로 나뉘어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이들 중 엥글과 트룰리 그룹은 STS-2의 승무원이 된다. 비록 제미니 계획의 전설적인 레전드인 존 영이 사령관으로 내정된 STS-1만큼은 아니지만 이들 역시 굉장한 임무를 수행했던 셈. 헤이즈의 팀은 당초 셔틀 프로그램이 일찍 시작되었다면 실행에 옮겨졌을 STS-2 스카이랩 미션[5]이었으나, 셔틀 개발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연되는 와중에 스카이랩이 결국 고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1979년 대기권에 재돌입하였고, 헤이즈는 이에 서운함을 표하며 NASA를 나와 그루먼으로 이직했다. 하지만 풀러튼은 이후 STS-3 파일럿, STS-51-F 사령관으로 활약했고, 엥글과 트룰리도 모두 STS-2와 향후의 미션에서 한 번씩 사령관을 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특히 트룰리는 NASA 국장까지 역임한다.

5. 퇴역 이후

파일:Space_shuttle_enterprise.jpg
파일:At_the_Intrepid_Museum_2023_054.jpg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모습 현재 인트레피드 박물관에 전시된 모습

엔터프라이즈 우주왕복선은 퇴역 이후 2003년까지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 우드바-하지 센터에 전시되었으나 2011년에 디스커버리가 퇴역하면서 그 자리를 내주고 엔터프라이즈는 2012년 4월 뉴욕에 있는 '인트레피드 시, 에어 & 스페이스 뮤지엄 (Intrepid Sea, Air & Space Museum)'으로 이동되어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에는 이 우주왕복선 뿐만 아니라 콩코드 여객기, 에식스급 항공모함 3번함 CV-11 인트레피드,[6] 초음속 정찰기 SR-71, 잠수함 그라울러 등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처음엔 엔터프라이즈 전시관만 유료로 입장 가능했지만, 2023년 10월 기준 항공모함을 포함해 박물관 전체가 유료화되었다. 엔터프라이즈호 관람은 추가 요금을 받지 않는다. 이때 보잉 747[7]에 실려 뉴욕을 날아다녔던 것이 마지막 비행 기록으로 남아있다.#
파일:n905na-nasa-boeing-747-123_PlanespottersNet_274442_32cd10a028_o.jpg
마지막 비행 당시 찍힌 사진

이후 우주개발에 끼친 영향과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3년에 미국 국립사적지로 등재되었다.(참조 번호 1300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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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타트렉 시리즈에 등장하는 함선으로, 우주왕복선 중 유일하게 가상의 함선에서 이름을 따 왔다.[2] 최초로 우주에 나간 우주왕복선은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이다.[3] 생각보다 중요한 실험이다. 우주왕복선은 대기권 진입 후, 자체 동력은 일체 없이 글라이더처럼 활공하는데, 이게 일반 항공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아무런 동력 없이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착륙에 실패해도 동력이 없어 고 어라운드를 할 수 없기에, 단 한번의 기회만이 주어진다.[4] 위의 사진에서 케이프 커내버럴과 다른 위화감이 느껴졌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저 사진이 반덴버그 공군기지의 셔틀 발사대 제작 중 찍힌 것이다. 하지만 챌린저 참사로 반덴버그 발사 우주왕복선 미션은 완전히 백지화되었고 셔틀 발사대로 계획 및 제작된 SLC-6은 현재 ULA가 매입해서 델타 4 헤비 로켓을 발사하는 데 쓰고 있다. ULA의 이동식 격납고 옆의 'USAF'라 적힌 건물이 그 증거다.[5] 스카이랩이 방치되는 동안 고도를 잃고 있음은 이전부터 NASA에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스카이랩을 좀 더 오래 써먹자는 엔지니어들의 주장으로 스카이랩에서 부스터를 쏴서 고고도로 복귀시킨다는 플랜. 하지만 셔틀의 개발이 지체되며 1979년에 스카이랩은 끝내 재돌입하고 말았다.[6] 사실 이 박물관 자체가 이 항공모함을 개조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7] 이 시험기를 운반했던 보잉 747 비행기는 세 개의 마운트로 시험기와 체결되는데, 이 마운트에 그 유명한 "ATTACH ORBITER HERE NOTE: BLACK SIDE DOWN"(왕복선을 여기 부착하시오. 주의: 검은색 면이 아래를 향하도록 부착할 것)이란 개그가 적혀 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