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가 초기 임무를 계획하는 동안 첫 번째 궤도 비행에 앞서 시스템의 초기 테스트를 수행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를 위해 월터 F 부통령에게 궤도 비행이 아닌 RTLS[5]의 시험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발사 후 처음 몇 분 안에 중단 명령이 떨어지게 되고, SRB가[6]가 폐기된 후에 궤도선의 주 엔진의 동력만으로 진행 방향을 바꾸어 비상착륙을 하는 훈련이였지만 높은 위험성 때문에 기각되었다. 그리하여 STS-1의 궤도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STS-1은 우주왕복선의 첫 발사일 뿐만 아니라, NASA 유인 우주선 발사에 고체연료 로켓이 사용된 첫번째 임무였다. 미션 목표는 궤도로 안전하게 올라가 오비터와 승무원의 안전한 착륙을 위해 지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 임무에 탑재된 탑재물은 개발 비행 계기(DFI) 패키지로, 이 패키지는 궤도 비행의 성능과 발사, 발사각, 비행 궤도, 하강 및 착륙 중 발생한 선체에 가해지는 압박을 기록하는 측정장치를 포함하고 있었다. NASA에서 계획한 113개의 비행시험 목표가 모두 달성되었고, 궤도선의 안정성이 검증되었다.
비행중 대략 70여개의 이상 징후가 관찰되었다.발사 후 수직미익 주변에 타일이 16개 가량 떨어져 나갔다. 이 때 당시는 별 문제 없었으나, 이 사소한 문제가 어떤 참사를 낳게 될 지는 아무도 몰랐다.
1967년 첫 새턴 V 발사 때와 마찬가지로 NASA엔지니어들은 우주왕복선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진동의 양을 과소평가했다.예상치보다 훨씬 뛰어넘는 충격파가 궤도선 꼬리 부분까지 굴절돼 전방 반응 제어 시스템(RCS) 산화제 스트럿이 고장 나면서 궤도선의 열 차폐가 손상되었다.
대기권 재진입 시 압력 중심 위치를 잘못 표시하여 컴퓨터가 예상된 8, 9도보다 16도 정도 차체 플랩을 연장해야 했다.
승무원들이 SRB 분리까지 발사 1단계 내내 외부 탱크에서 "흰색 물체"가 떨어져 나와 유리창에서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아마 외부 탱크의 열성 거품을 덮은 흰색 페인트였을것으로 추정된다.
컬럼비아호 외부 탱크 도어에 위치한 스트라이크 플레이트가 재진입 중 과열된 열 노출로 인해 용해되고 왜곡되었다.
원래 컬럼비아는 1978년 발사 예정이였다. 하지만 셔틀을 전용 캐리어기로 운반하는 도중 100개가 넘는 단열 타일이 상공에서 벗겨져버린 것이다. 이때 유실된 부위를 보수하는 데만 3년을 소모하였고 그 사이 컬럼비아를 기다리던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은 결국 1979년 수명이 다해 대기권에 진입해 소멸했다.[7][8]
[1] 백업 조 엥글.[2] 백업 리처드 로런스[3] 원래 이틀전에 발사 예정이였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미뤄졌다.[4] 이 날은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이 우주비행을 한지 20년이 되는 날이였다. 미뤄진 발사 날짜가 우연히 겹친것이다.[5] 우주 왕복선의 중단 모드중 첫번째 모드로, Return To Launch Site(발사 장소로 귀환)의 약자이다.[6] 우주왕복선 양 옆에 붙어있는 고체 부스터[7] 당시 계속해서 고도가 떨어지던 스카이랩에 컬럼비아가 도킹하여 고도를 회복시키는 복안이 존재했다.[8] 그러나 무인 부스터를 도킹하는 등의 방법을 쓰면 컬럼비아가 고도 회복 임무를 맡을 필요가 없었던 만큼, 미국은 스카이랩을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 상관이 없는 존재로 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