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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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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발생일 2019년 5월 29일 오후 9시(현지시간 기준)
2019년 5월 30일 오전 4시(한국시간 기준)
발생 위치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인근
(북위 47°29′34″ 동경 19°02′51″)
파일:헝가리_유람선_사고.jpg
유형 침몰
원인 크루즈 선박과 충돌
인명피해 사망 한국인 25명, 헝가리인 2명(총 27명)
실종 한국인 1명
구조 한국인 7명

1. 개요2. 사고의 전개3. 사고 선박
3.1. 피해 선박3.2. 가해 선박
4. 진행 상황
4.1. 5월 30일4.2. 5월 31일4.3. 6월 1일4.4. 6월 3일4.5. 6월 4일4.6. 6월 5일4.7. 6월 6일4.8. 6월 7~8일4.9. 6월 11일4.10. 6월 12-13일4.11. 6월 14-15일4.12. 6월 23일4.13. 6월 28일4.14. 6월 29일4.15. 7월 5일4.16. 7월 6일4.17. 7월 29일4.18. 7월 30일4.19. 7월 31일4.20. 이후4.21. 재판
5. 대응
5.1. 대한민국 정부5.2. 참좋은여행5.3. 헝가리 정부와 국민5.4. 바이킹 라인 크루즈
6. 관련 기사
6.1. 한국 언론6.2. 외신
7. 논란8. 기타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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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어: 2019-es budapesti hajókatasztrófa
영어: Sinking of Hableány[1]

2019년 5월 29일 오후 9시(한국시간 30일 오전 4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승객 33명(패키지 여행객 30명, 사진기사 1명, 한국에서부터 동행한 가이드 1명, 현지 가이드 1명), 헝가리인 승무원 2명(선장, 기관장 각 1명) 등 총 35명이 탄 유람선 허블레아니 호가 크루즈 선박과 충돌 후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

2. 사고의 전개

허블레아니 호에 탑승한 한국인들은 여행사 참좋은여행이 기획한 동유럽+발칸반도 6개국 패키지 여행 상품의 일환으로 5월 25일 출국하여 6월 2일 귀국할 예정인 여행객들이었다. 기사 내용[2] 크로아티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를 방문할 예정이었고 헝가리는 마무리 일정이었다. 그리고 사고의 원인이 된 다뉴브강 유람선 야경 관람은 기본적으로 포함되었다.[3]

패키지 여행은 기본 일정에 현지에서 옵션을 추가하거나 일정 외 관광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는데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다뉴브 강의 유람선에서 관람하는 것은 부다페스트 관광에 있어 필수 요소였다. 사실 비용 문제보다도 이 때문에 가이드가 일정을 강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옵션 상품이었으면 기상 상태에 따라 그냥 포기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영상을 보면 악천후에도 수많은 유람선들이 도나우 강을 다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련 기사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파일:헝가리_유람선사고_운항도.jpg
사고 당시 운항도
시간은 명확하지 않지만 허블레아니 호는 29일 밤 8시 전후로 다뉴브 강 항해를 시작하여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 다다랐다. 이 부분에서 생존자 및 목격자들의 이야기가 엇갈렸다. 야경 관람을 위해 잠시 정선 중이었다거나 관람을 마치고 출발했던 부두로 돌아가던 중이었다는 증언이 있다. 그리고 머르기트 다리 바로 아래에서 뒤따르던 바이킹 리버 크루즈 소속 대형 크루즈 선 '바이킹 시긴' 호(Viking Sigyn)가 허블레아니 호의 후미를 들이받았다. 헝가리 경찰이 공개한 CCTV로 충돌시간이 당일 밤 9시 4분~6분 사이인 것이 확인되었다.

바이킹 리버 크루즈는 다뉴브 강, 라인 강 등 유럽의 국제하천들을 일주하는 국제 크루즈 선사로 다뉴브 강 노선에 투입되는 배들의 사이즈들은 어마무시하다. 바이킹 리버 크루즈의 다른 선박 135미터짜리 대형선이 27미터의 작은 배인 허블레아니 호와 충돌한 결과는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사고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허블레아니 호는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뒤집혔고 순식간에 침몰했다.

사고가 일어난 지점은 다뉴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 하나인 머르기트 다리(Margit híd).[4] 구글 어스에서 재면 해당 지역의 강폭은 450m이고 교량에는 교각 3개가 있다. 사고 동영상이라고 알려진 동영상이 실제 동영상이 맞다면 사고를 일으킨 대형 유람선은 교량을 앞두고 방향을 급격히 우측으로 틀어 버리는 기이한 행동[5]을 한다. 다른 선박 몇 척도 역시 같은 식으로 우측으로 틀었으므로 그 지역이 원래 그렇게 다니는 곳일 수도 있고 이날 따라 뭔가 다른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비슷한 행동을 한 다른 선박들에 비해 용의 선박이 유달리 우측 급회전의 정도가 심했다는 것은 사실.

JTBC 뉴스룸 보도에서는 침몰 이후 또 다른 큰 배 한 척이 사고 현장 위를 그대로 지나갔다고 하면서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고 평했다. # 다른 배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생존자들이 일시적으로나마 수면 위로 다시 떠올라 부유물을 붙잡을 여지라도 있었을 테니 참 안타까운 부분.

5월 30일에 생존자들은 두 차례의 추돌 후에 순식간에 전복, 침몰했다고 밝혔다. #[6]

3. 사고 선박

부대시설을 갖추고 관광용 여객운항을 하던 선박이기 때문에 양측 모두 유람선(영어로는 '크루즈')으로 소형 유람선과 대형 유람선으로 구분하는 게 정확하나 언론에서는 편의상 피해 선박을 '유람선', 가해 선박을 '크루즈'라고 불렀다.[7]

3.1. 피해 선박

파일:Hableány.jpg 파일:허블레아니호.jpg
허블레아니의 침몰 전 모습 출처 제원

사고를 당한 선박인 허블레아니(Hableany)는 파노라마 데크(Panorama Deck) 유한회사에서 보유한 관광용 선박이며 이름은 헝가리어로 '인어'를 뜻한다. 선박 제원은 최대 승선 인원 60명, 길이 27.25m, 동력 150 마력이며 # 1949년에 소련 시절의 우크라이나에서 건조된 선박으로 선령이 무려 70년이다. # 2003년 헝가리에 매각되어 운항을 시작했고 중간에 엔진을 교체했으며 건조 당시와 달리 탑승 인원도 크게 줄인 상태로 배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처음 건조된 당시에는 150인승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사고 당시 탑승한 인원은 30~40명 수준으로 정원의 5분의 1에 불과해 과적으로 인한 침몰은 절대 아니다. 매년 정기 점검을 받았고 침몰 징후조차 없었다고 한다. 기사 내용 물론 업체 측 주장만 실린 기사임은 고려해야겠지만 사건 원인이 허블레아니 호의 노후화보다는 바이킹 라인 크루즈 소속 유람선에 의한 충돌임을 생각하면 배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8] 이 업체는 참좋은여행과 계약을 맺고 사실상 허블레아니 호를 참좋은여행 전용으로 운용 중이었다. 그래서 일반 탑승객들이 전부 다 한국인이었던 것.

안전불감증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사건 직후 나온 헝가리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의 증언 중에도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의했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허블레아니 호의 정보를 소개하는 사이트사진들을 보면 한국인이 아니라도 다들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는데 원래 구명조끼는 비상시에 긴급히 착용하는 물건이지 정상 운행 중에도 무조건 입고 다녀야 하는 필수품은 아니다. 더구나 이 사고에선 선장이 구명조끼 착용 지시를 내릴 틈도 없이 침몰[9]했다고 알려져서 더더욱 판단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건 동영상을 보면 피해 선박은 문제 없이 정상 항해 중이었는데 뒤에서 크루즈 선이 들이박은 사건이기에 충돌이 일어날 것을 알 방법도 없었고[10] 심지어 충돌이 일어나자마자 거의 바로 침몰해 버렸기 때문에 구명조끼를 입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빴다.

구명조끼가 없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선주 측이 극력 부인했고 구명조끼를 비치하지 않으면 EU 표준규약에 의거해 운항 허가서를 받을 수조차 없다고 주장했다.[11] 여행사 측에서는 구명조끼를 착용했다가 하선을 준비하면서 다 벗은 게 아닐까 추정했는데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여행사의 주장은 본인들도 인정하듯 추정에 불과하다.[12] 비슷한 상품들을 이용한 여러 여행객들의 증언을 취합하면 그냥 상시적으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헝가리 경찰은 수습한 시신 중 구명조끼를 착용한 시신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허블레아니의 선주인 파노라마 데크의 스턴코 어틸리 회장은 인터뷰#에서 최대 탑승인원 80명에 맞추어 구명조끼 80개, 구명튜브 6개를 비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3.2. 가해 선박

사고를 낸 대형 유람선은 바이킹 리버 크루즈(Viking River Cruises) 소속의 내륙 수운 크루즈 선이다. 이 업체는 내륙 수운 크루즈를 주력으로 하고 회사 홈페이지#에서 확인되는 상품을 보면 도나우(다뉴브) 강 노선은 모두 부다페스트를 거치는 것으로 나온다. 사고를 낸 선박이 어떤 노선에 투입되는 어떤 선박인지는 아직 불명. 현지 시각 30일 아침 헝가리 현지 언론에서는 용의 선박으로 바이킹 시긴호(Viking Sigyn)을 지목하는 보도를 내놓았다. 위 내용을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 충돌 자국도 선명하기에 사실상 가해 선박으로 확정되었다. 크루즈 탑승객들의 증언에 의하면 강에 빠진 사람들이 도와 달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 사고 목격 후 곧바로 두 명을 구해냈는데 처음부터 몇 명은 숨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는 다른 관광선 선원의 새로운 증언도 나왔다. # 게다가 추돌 이후 후진해서 잠시 멈춰 섰다가 다시 전진한 정황이 발견되었다. 이는 바이킹 시긴호가 추돌 사고를 모르고 그대로 지나쳤을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 ## 게다가 두 달 전인 4월 1일에 네덜란드에서도 사고를 냈다고 검찰이 밝혔다. # 또 휴대폰 기록도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도 있었다. #

바이킹 리버 크루즈 사 홈페이지의 해당 선박 안내 이 선박은 부다페스트-부쿠레슈티(루마니아) 노선과 부다페스트-파사우(독일) 노선에 투입되는데 사고 당시 진행 방향으로 보아 파사우로 향하던 중으로 보인다.

바이킹 시긴호는 첫 항해가 2019년으로 취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최신예 선박이었다. 출처 독일 로스토크 소재 조선소인 Neptun Werft에서 자매선 5척과 함께 동시 건조되었으며 총톤수 5,000톤으로 내륙수운 크루즈로는 사실상 최대 규모다. 길이는 135m, 승무원 50명 및 승객 최대 190명이 승선할 수 있다. 함명인 바이킹 시긴에서 바이킹은 회사의 이름이고 시긴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자 로키의 아내인 시긴에서 따 온 것이다.

4. 진행 상황

4.1. 5월 30일

한국시각으로 2019년 5월 30일 오전 9시 기준 한국 여행객 30명 중 구조자 7명에 사망자 7명, 실종자는 19명이다. 그 외 헝가리인 승무원 1명이 사망했고 한국인 가이드 3명과 헝가리인 승무원 1명은 실종됐다. 헝가리 경찰청이 밝힌 희생자 발견 위치

3대·모녀·남매·자매·부부 등 피해자들 대부분이 가족여행을 온 가족 단위 관광객이었다.[13] 온 가족이 풍비박산나거나 가족을 잃고 혼자만 구조된 경우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헝가리 정부 및 부다페스트 시 당국은 사고 직후 다뉴브 강의 부다페스트 인근 수로에 구조 목적의 선박을 제외한 전면적인 항해금지명령을 내렸다. 잠수부들에 의해 침몰된 피해 선박의 선체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위가 높아지고 유속도 빨라서 실종자 수색에 애를 먹었다. 생존자 중 한 명은 사고 지점에서 하류로 3km 떨어진 곳에서 표류하다 발견될 정도였다.

사고 당일 날씨가 폭풍우가 치는 등 좋지 않아서 구조 작업에 난항을 겪었으며 유람선을 크루즈가 박은 CCTV 영상이 공개되었다. 사고 당일의 날씨 영상

사고 발생 시각이 현지 기준으로도 밤이었고 한국에 사고 소식이 본격적으로 전해진 30일 오전은 현지에선 이미 자정을 넘겨 추가적인 정보 전달이나 조사 진행이 어려웠으나 외신을 통해 단편적으로 전해진 생존자 및 목격자 증언이나 사고 영상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을 보면 허블레아니호를 뒤에서 바이킹 라인 크루즈의 대형 유람선이 그대로 짓뭉개는 식으로 들이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증언에 따라 허블레아니 호가 정선 중이었다, 관광을 마치고 부두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등으로 말이 바뀌는데 현지인 선장과 관광 가이드조차 실종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려워졌다.

임레 호르바트 헝가리 해운협회 사무총장은 헝가리 국영 방송 MT와의 인터뷰에서 75년 전 헝가리 벌러톤 호수에서 발생했던 선박 사고 이래로 이렇게 심각한 사고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그도 그럴 것이 헝가리는 영해가 없는 내륙국이기 때문에 헝가리 내의 선박은 전부 강이나 호수, 운하로만 다닐 것인데 이 사건처럼 배끼리 들이받는 경우가 아니면 파도치는 바다에 비하면 강이나 호수에서 이런 큰 인명피해가 나는 선박사고가 발생할 일은 흔치 않다.[14] 그리고 헝가리 경찰은 사고와 관련해 수사에 착수했고 침몰한 선박을 인양하는 데는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이뤄지던 가운데 계속되는 폭우로 강의 수위가 높아지고 유속도 빨라지면서 실종자 수색작업이 난항을 겪었다. # ##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 중 10명은 참좋은여행사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헝가리로 떠났다. # 10명에 이어 44명의 피해자 가족들도 현지로 떠났다. # 주말에 5명이 더 떠나 피해자 가족들 총 59명이 현지에 도착했다. #[15]

외교부 당국자는 5월 31일 사고로 사망한 한국인 7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또 헝가리 언론은 헝가리 경찰의 조사에서 대형 크루즈선 선장의 과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와 반대로 선장은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고 변호인을 통해 항변했다는 보도를 했다. # 헝가리 현지 언론들은 선장에 대해 징역 2년에서 최대 8년까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

4.2. 5월 31일

5월 31일에 한국과 헝가리는 공동으로 실종자들을 수색하려고 했지만 유속이 매우 심한 탓에 공동수색이 무산되었다. #

4.3. 6월 1일

6월 1일에 사고 지점 50km까지 수상 수색이 재개되었지만 물살이 거세서 수중수색이 난항을 겪었다. # 한국 수색대는 본격적으로 사고 지점에서 50km까지 수색에 나섰고# 서울시는 부다페스트에 현지대응반을 가동한다고 6월 1일에 밝혔다. # 강경화 장관은 유속이 매우 빨라서 유실방지망을 설치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서 구조물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다뉴브 강의 물살이 거세다 보니 잠수부 투입은 6월 3일에 협의를 거쳐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헝가리 물관리 당국은 다뉴브 강의 수위가 5.9m까지 달한 뒤에 다음주 중반에 약 4m로 떨어질 것이라고 AP통신이 보도했다. # 이후 잠수 접근이 불가하다는 결정이 나서 5일부터 인양 작업을 시작한다는 속보가 들어왔다.

한편 추돌 사고일으킨 바이킹 시긴호의 유리 차플린스키(Yuri Chaplinsky) 선장이 구속됐다. 헝가리 검찰은 선장을 과실에 의한 다수 살해 혐의로 기소했다.

4.4. 6월 3일

사고 현장에서 약 132km 떨어진 헝가리 남부 하르타 지역 다뉴브 강에서 60대 남성 시신 1구를 수습했다. # 또 유람선 침몰지점에서 잠수한 헝가리측 잠수사가 침몰 유람선의 선미 밖에서 발견한 시신을 한국측 잠수사가 수습했다. 수습된 시신은 50대 여성으로 확인되었다. #

4.5. 6월 4일

시신 3구가 잇달아 수습되었다. 우선 부다페스트에서 약 55km 떨어진 굴츠 지역에서 수색작업을 하던 헝가리 군용헬기가 시신 1구를 발견했는데 60대 한국인 남성으로 확인되었다. 이어 굴츠에서 좀더 북쪽인 에르치 지역에서 역시 헬기 수색을 하던 한국 수색대원이 시신을 발견했는데 20대 한국인 남성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사고 현장에서 선체 인양 전 수중수색을 하던 잠수사들이 선체 창문에 낀 시신을 발견해 수습했다. # 또 인양 준비 작업을 위해 수중에 들어간 헝가리 잠수사가 선미 유리창 쪽에서 한국인 남성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발견해 수습했다. #

4.6. 6월 5일

헝가리 정부는 잠수부의 위험성이 높아 선박 내부수색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내부 수색을 하려고 했던 한국도 이에 동의했다.[16] 또 이날 4구의 시신이 추가로 수습되었다. 5일 오전 9시 21분경에 침몰 유람선의 선미 네번째 유리창 부근에서 60대 한국인 남성 시신이 발견되었고 낮 12시 10분경에는 사고 현장에서 50km 떨어진 에르치 지역에서 30대 한국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오후 3시 40분경에는 사고 현장 인근에서 시신 한 구가 떠오른것을 발견했으며 밤 11시 29분경에는 사고 현장에서 약 4km 떨어진 서버드사그 다리에서 60대 한국인 남성의 시신이 수습되었다. 5일까지 총 9구의 시신이 수습되었으며 사망자는 16명으로 늘고 실종자는 10명으로 줄어들었다. #

4.7. 6월 6일

침몰 유람선을 인양하기 위해 동원되는 대형 크레인 "클라크 아담"이 당초 예상보다 다뉴브 강 수위가 낮아지지 않아서 이동에 애를 먹었다. 최소 4.2m 밑으로 떨어져야 크레인이 아르파드 다리와 머르기트 다리를 통과할 수 있는데 4.5m 정도였다. 한국측의 브리핑으로는 일요일인 9일 정도에나 크레인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된다고 밝혔다. # 한편 이날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시신 2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오전 9시 50분경에 사고 현장에서 5.8km 떨어진 라코치 지역에서 주민의 신고로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으며 오전 11시 26분경에는 사고 현장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사즈할럼버터 지역에서 역시 주민의 신고로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다. 두 시신의 신원이 밝혀진다면 사망자는 18명, 실종자는 8명이 된다. #

4.8. 6월 7~8일

추가로 시신 1구가 발견되었는데 헝가리인 실종자로 확인되어 사망자는 한국인 19명, 헝가리인 1명. 실종자는 한국인 7명, 헝가리인 1명으로 줄어들었다.

한편 다뉴브 강의 수위 문제 때문에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해야 했던 크레인의 이동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었다. 헝가리가 예인선을 이용해서 "클라크 아담"을 이동시키는 생각을 했고 대테러청 요원 3명이 어려운 이 임무를 성공시켰다고 한다. # 또 강의 상류에 있는 슬로바키아 정부는 헝가리 정부의 요청을 받고 다뉴브 강 수위를 통제해 "클라크 아담"의 통과를 돕기도 했다. 이는 4시간 동안 초당 1,000㎥의 유량을 통제해 수위를 조절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한-비셰그라드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이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 #

크레인이 사고 현장에 도착함에 따라 침몰 유람선을 와이어로 결속하고 선체 내부 유실방지작업을 진행했으며 9일 오전에 인양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6일 이후 추가 실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

4.9. 6월 11일

한국시간 오후 1시 47분부터 인양이 시작되었다. 객실 안에서 한국인 실종자로 추정되는 시신 3구가 발견되었고 조타실에서 선장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가 발견되었다. # 선장은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그곳에 남았다고 한다.[17]

이 중 한 명은 최연소 피해자인 6세 어린아이로 추정되는데 초기에는 어머니로 추정되는 시신 옆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졌으나 이후 김 양이 김 양의 할머니 품에 안겨 발견된 것으로 밝혀졌다. #1 #2

4.10. 6월 12-13일

한국시간으로 13일 새벽, 사고 현장에서 남쪽으로 110km 떨어진 헝가리 뵐츠케 지역에서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시신 한구가 발견되었다. 한국인으로 밝혀진다면 실종자는 3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
바이킹 시긴호의 유리 차플린스키 선장이 보증 석방되었다. 보석 조건은 보석금 1,500만 헝가리 포린트(약 6,100만 원)와 전자발찌 부착 및 부다페스트 거주 확인을 위해 매주 두 차례 경찰에 출석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

한편 인양된 허블레아니 호를 정밀 수색한 헝가리 측은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국 측의 수색요청은 피해자 입장인 한국 정부 측이 수색하는 게 자칫 증거훼손 논란이 일어날까봐 헝가리 내부 법리를 검토한 끝에 13일 오후에 한국 측 수색요원이 선내에 진입해 정밀수색을 하는 걸 허락했다고 한다. #

뵐츠케에서 발견된 시신은 60대 한국인 남성으로 확인되었다. 실종자는 3명으로 줄어들었다. #

4.11. 6월 14-15일

남은 실종자 3명을 찾기 위해 허블레아니 호가 침몰했던 지점 인근을 소나로 수색했지만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헝가리 측은 향후 다뉴브 강의 수위가 내려가면 잠수부를 동원해 수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종자들이 다뉴브 강 하류로 떠내려갔을 가능성에도 대비해 한국 측과 헝가리 측이 수상수색을 강화하기로 했다. #

최규식 주 헝가리대사와 신속대응팀 법무담당관이 헝가리 경찰청장과 부다페스트 검찰청 검사장을 면담, 보석으로 풀려난 가해 크루즈 선장에 대해 철저한 신병 관리를 요청했으며 헝가리 측은 철저한 신병관리를 약속했다. #

4.12. 6월 23일

인양 이후 사고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식은 가운데 12일 이후 10여일 만에 시신 1구가 수습되었다. 사고 현장에서 30km 떨어진 체펠 섬에서 헝가리 어부가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해 신고했다고 한다. 한국인 희생자로 판명된다면 실종자는 2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

4.13. 6월 28일

사고가 일어난지 한 달 째가 되었다. 23일 체펠 섬에서 발견된 시신이 60대 한국인 여성 실종자로 신원이 확인되어 실종자는 2명으로 줄어들었다. # 지문 확인이 불가능해 DNA 감정을 거쳐야 했다.

4.14. 6월 29일

헝가리 대검찰청은 보도자료를 내고 바이킹 시긴호의 선장 유리 차플린스키의 보석 석방 결정은 위법하다며, 대법원에 비상항고했다고 밝혔다. 선장이 헝가리내에 주소가 없고 지리가 밝아 도주 우려가 있다고 항고했으나 법원이 검찰의 항고장에 제기한 내용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고 구속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며 비상항고의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선장의 실제 거주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보석 석방 결정이 이뤄졌고, 이에 문제 제기하는 항고를 기각한 것은 위법하다고 강조했다.

4.15. 7월 5일

사고 현장에서 66km 떨어진 머카드 지역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4.16. 7월 6일

머카드 지역에서 발견된 시신의 신원이 60대 한국인 여성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실종자는 단 한 명만이 남게 되었다. # 6월 28일 감식된 시신과 달리 DNA 감정이 아니라 치과 감정 및 유류품으로 확인한 결과다.

4.17. 7월 29일

헝가리 대법원은 법원이 유리 차플린스키 선장을 보석으로 석방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우크라이나인인 유리 차플린스키 선장이 부다페스트에 주소를 두고 있지 않아 보석금만으로는 신병을 확보했다 할 수 없고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없다는 점도 석방에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4.18. 7월 30일

62일간의 헌신적인 구조활동에도 끝내 1명의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수색이 종료되었다.

62일간 쉼없이 다뉴브강 뒤져…가장 힘들었던 수중수색"(종합)

4.19. 7월 31일

헝가리 법원은 유리 차플린스키 선장에 대해 과실치사 및 사고 후 미조치(뺑소니)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4.20. 이후

2021년 5월 31일 머르기트 다리 옆에 이 사고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이 마련돼 조형물과 비석이 세워졌다. 그 후 주헝가리 대한민국 대사관과 한인회는 매년 이곳에서 추모식을 열고 있다.

4.21. 재판

2019년 11월 28일 헝가리 검찰이 가해 선박 바이킹 시긴호의 유리 차플린스키(Yuri Chaplinsky) 선장을 기소하였다. #

2020년 1월 29일 가해 선박 바이킹 시긴호의 뒤를 따라가던 크루즈 '바이킹 이둔' 호 선장에 대해 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조건부 구속 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튿날 영장을 발부했다. #

헝가리 검찰은 유리 차플린스키 선장에게 징역 9년을 구형하였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재판이 지연되어 선장에 대한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가 2023년 9월 26일 1심에서 징역 5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

유리 차플린스키 선장은 최후진술에서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낳은 끔찍한 비극의 기억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이건 제가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희생자들에게 사과했다.

5. 대응

5.1. 대한민국 정부

5.2. 참좋은여행

구명조끼 안내없는 유람선 관광…여행사 몰랐나?
사고 파악이 되자마자 정부 및 여행객 가족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언론 브리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사고 당일에 전무가 직접 나서서 머리를 숙여 사죄했다. 참좋은여행사는 자사 임직원진을 1, 2차로 나눠 헝가리로 급파한다고 밝혔고 정부 및 여행객 가족들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가족들의 헝가리 항공료 및 현지 체류비를 모두 부담하겠다고 하였고 호주에 체류하던 CEO도 최대한 빨리 헝가리로 가는 항공편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전해졌다.

사건이 여행사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외부 요인 때문에 일어났으므로 초반의 허둥대는 대처만 비판받았을 뿐[21] 사고 원인에 여행사의 잘못이 전혀 없는 데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거의 관행에 가까웠던 사건 축소나 언론 보도를 자제하려는 행위를 하지 않아 큰 비난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5월 30일 KBS 뉴스에 나온 현지에 다녀온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안전수칙도 없었으며 지난 8년간 유람선 상품만 팔다 보니 유람선에 구명 조끼가 비치됐는지 안전수칙 안내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으므로 안전미숙에 대한 책임은 확실히 져야 할 것이다. 다만 이 구명 조끼 문제는 헝가리의 선박 관련 현행법 자체가 문제거나 헝가리인들의 안전불감증이 원인일 가능성고 있고 이 사건은 10초도 안 되어서 침몰해 구명조끼와 안전수칙이 무용지물이었던 사고라 마냥 여행사 책임으로만 보긴 힘들다.

가해 선박으로 지목된 바이킹 시긴호 선사 측에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 희생자와 구조자 가족들을 지원하는 비용과 회사 브랜드 가치 하락에 따른 손해 배상도 포함되었다. #

5.3. 헝가리 정부와 국민

사고 보고를 받은 헝가리 내무 장관이 현장에 직접 나갔다. # 헝가리 경찰은 기자회견에서 사고 발생 시각은 오후 9시 5분이며 허블레아니 호는 사고 후 불과 7초 만에 침몰했다고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구조대는 20분 후 현장에 도착했다. 이튿날 아침에는 헝가리 육군 소속 잠수사와 준설선이 투입되었다. 구조된 부상자들은 3개의 병원에 나누어 수용했으며 사고 선박에 탑승한 사람 중 가장 어린 사람은 6세 여아, 가장 나이든 사람은 70세 남성이라고 말했다. 항해 기록을 분석한 결과 바이킹 시긴호가 허블레아니 호와 부딪힌 것으로 추정하며 용의 선박 관련자를 조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

아데르 야노시 대통령과 오르반 빅토르 총리, 터를로시 이슈트반 부다페스트 시장 등 주요 인사들이 희생자에 대해 조의를 표했다. # ## 헝가리 정부 홈페이지에는 헝가리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철저한 조사를 약속하면서 애도와 위로를 전하는 메시지가 게시되었다. 그리고 세르비아 정부와 협력해 하류 쪽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에 나섰다. # 그리고 페테르 시야르토 외무장관은 배 인양에 힘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고 30km까지 수색 범위를 넓혔다. # 또한, 헝가리 내무장관은 실종자 수색과 사고원인 조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

헝가리 정부 입장에서 이 사고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었다. 단순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국에서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것을 넘어서서 다뉴브 강 수운의 핵심국가인 헝가리의 내륙수운 통제관리 능력에 대한 심각한 신뢰 저하, 그리고 헝가리 관광의 메인인 부다페스트 관광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문제였다. 때문에 헝가리 정부는 한국의 구조대 및 긴급대책반 파견 등에 매우 협조적으로 나섰으며 수사에 있어서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심지어 외국군 특수부대(대한민국 해군)가 외국영토에서 직접 작전에 나서는 것이 주권문제로 논란이 될 수도 있으나 헝가리 정부는 이것까지도 적극 수용했다. 다만 가해 선박인 바이킹 시긴호의 선장만 체포하고 배와 다른 승무원은 독일로 출항하는 것을 허가해 비난을 받았다.

또 추가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당일 헝가리 경찰에 구조 헬기 요청이 있었지만 묵살되었다고 한다. # 그리고 이 문제가 헝가리 정치권으로 번져서 야당측이 가해 선박 회사와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

가해 선박 크루즈선이 사고 당시 경보 장치를 끈 상태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수사에서 경보 장치가 어떤 이유로든 꺼져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크루즈 선장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

한편 2017년에 헝가리 고등학생들이 프랑스에서 헝가리로 버스를 타고 돌아오다 이탈리아 베로나의 고속도로에서 버스가 갑작스레 도로 경계석에 추돌하며 화재로 불타 17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당시 헝가리 정부의 사고 대처는 유족들과 피해자들에게 별다른 조치를 해주지도 않는 등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헝가리 국민들은 한국 정부가 지구 반대편에서 헝가리까지 자국 국민을 위해 구조대와 장관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헝가리 정부와 한국 정부를 비교하며 현 헝가리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거주하는 헝가리인인 유지니아가 전했다. 이처럼 헝가리 국민들도 타국에서 어린 학생들의 생명을 잃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 국민들의 심정을 잘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헝가리 국민들과 현지 언론은 한국 국민들이 헝가리인과 헝가리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고도 전해졌다.[22]
현지에서도 사고 지역에 추모 물결이 일었다. 한 헝가리 시민은 SNS에 주헝가리 한국대사관 앞에서 흰 꽃과 촛불로 추모식을 하자며 제안했고 큰 호응을 받았다. 이를 알게 된 한국 네티즌들도 이 글에 감사한다는 댓글을 많이 달았다. # 이 추모식엔 당초 예상보다 많은 150명 가량이 참여했으며 추모시가 헌사되었다. 이 중에는 맞춤법이나 문법이 완벽하지는 않은 서툰 한국어로 된 추모의 메시지들도 적혀 있었다. 현지인들이 번역기를 동원해 가며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몇몇 시민들은 국화를 내려놓고 구십도로 허리를 꺾어 절하거나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였다. 또 사고가 난 머르기트 다리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수색 작업을 지켜보고 검은 리본이 달리고 촛불, 조화가 놓이는 등 추모가 이어졌다. 추모를 하는 헝가리 시민 중에는 흰색 한복을 입고 참석한 사람도 있었다. 또 300명의 헝가리 시민들이 모여서 사고 현장 앞에서 열심히 연습한 한국어아리랑을 부르며[23] 고인들을 애도하는 행사도 열렸다. 허블레아니호 선체를 인양할 때도 도로 통제 등이 있었음에도 불만을 나타내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고 모두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유람선 사고를 전한 현지 언론 편집인이 돌연 해고됐다.# 헝가리가 오르반 빅토르의 독재국가로 전락했기에 벌어진 일.

5.4. 바이킹 라인 크루즈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들임에도 사건 발생 이후 유감 표명 하나 없었다. 사고 시간 해당 위치에 바이킹 시긴호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딱 거기까지. 자사 선박이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바이킹 시긴호 탑승객 중에는 부상자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추돌 후 그냥 가 버린 우크라이나 출신 크루즈의 선장이 체포되었다. 헝가리 경찰은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고 핵심 용의자인 선장을 체포한 상태라는 이유로 바이킹 시긴호의 출항을 허가해 해당 함선은 다른 승조원들의 지휘하에 목적지인 독일 파사우로 향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선박 62척을 보유한 대기업(미국/노르웨이 본사, 소유주: Torstein Hagen(노르웨이, 1943~))으로, 주로 미국인들에게 상품을 판매한다. 즉 사고 당시 승객 대부분은 미국인들이다. 원칙적으로라면 이 회사의 책임이 제일 크므로 배상을 해야 하지만 이런 소송에 대해 전문가가 부족한 한국에서 배상을 받아낼 수 있을지는 매우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유감조차 표명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이 회사에서는 이 사건을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당시 허블레아니 호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한국인들이었고 유럽인은 헝가리인 허블레아니 호 선장과 현지 가이드 2명뿐이었다.

사건 이후에도 홈페이지에서 바이킹 시긴호의 선박 및 관련 상품 소개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추후 운항에 대한 예약도 정상적으로 받고 있다.

2019년 6월 7일에 유람선 침몰사고를 일으킨 크루즈 사에 속한 배가 독일 쪽 운하에서 갑문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6. 관련 기사

6.1. 한국 언론

6.2. 외신

유명 관광지에서 일어난 대형 사고이기 때문에 외신들도 이 사고를 크게 보도했다.

7. 논란

7.1. 언론사의 부적절한 언론 보도

처음에는 사고발생 장소를 '부다강'이라고 보도하는 등 기본적인 사실 파악도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다(Buda) 강은 루마니아에 있는 강이며 도나우 강은 헝가리어로 두나 강이라고 하며 독일에서 자주 부르는 이름이다.

위 기사 중 중앙일보의 '헝가리 유람선 침몰' 처벌·배상은 헝가리서 진행…여행사도 책임'이라는 기사의 초기 제목은 “헝가리 유람선 사망자 보험금 최대 1억 원”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일자 2시간 만에 기사 제목이 바뀌었지만 내용의 요지가 보험금에 맞춰졌음은 그대로다. 기사의 댓글과 제목 바뀌기 전 캡쳐 참고. 아카이브 이 언론사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들의 기사 중에도 보험금 위주의 관점으로 쓴 기사들이 종종 있다. 참사가 난 판에 사람 목숨보다 돈부터 계산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당시에도 언론의 윤리적 문제가 거론되었다. 시간이 5년이나 지났음에도 일부 언론의 참사에 대한 부적절한 행동이 다시 일어난 것.

다른 언론에서는 헝가리 유람선 사고 구조작업 한창인데 '사망보험금' 보도라며 지적했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유족 억장 무너지는 언론보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언론사의 구조적 문제 때문으로 추측하였다. 이런 행태는 수십여 년 전부터 계속 이어졌는데[24] 매번 욕을 먹으면서도 도무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기레기들은 기자들에게 배포된 적이 없는 내부 공유용 자료를 불법 유출해 유가족들의 개인정보를 자기들 단톡방에 뿌리기까지 했다!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며 본인 동의 없는 개인정보 노출이고 인터뷰를 거부할 권리가 침해당한 것이다. 이걸 가지고 사고가 수습되기도 전에 유가족 취재 지시를 내린 일부 언론사들은 대체 무슨 경우이며 그걸 가지고 하는 게 고작 보험금 운운이라면 무슨 공익성이 있고 경황이 없는 유가족들을 찾아가 지금 심정이 어떠시냐고 묻는 게 어떤 보도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참사 때마다 늘 똑같은 행동을 해서 욕을 먹던 언론사들의 피해자 스토킹 행태는 심각한 현실이다. 이게 정말 심각한 게 일단 한번 타사에서 유가족 관련 기사가 나간다면 일선 기자들이 윗선에서 오는 인터뷰 지시를 거부할 수 없어 무리하게 인터뷰할 가능성이 높다. 낙종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기본적인 윤리의식마저 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강릉 펜션 일산화탄소 누출 사고 등 온갖 종류의 사건 사고에서 기자들이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비윤리적인 행태를 벌이는 일이 너무 많아서 국민들에게 언론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감이 심어진 바 있다. 세월호 하나만 봐도 사고 당일 전원구조 오보부터 시작해서 아예 별도의 나무위키 문서로 만들어질 정도로 기자들의 참담한 행각들이 쏟아졌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사건 사고/언론 문서 참고. 이쯤 되면 한국 언론계의 훈련과정은 기자가 공감능력을 잃어가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한 전직 종편기자의 증언[25]도 마냥 개인의 의견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정부합동대응팀에 의하면 기자로 추정되는 한국인이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자신을 가족이라고 말하며 입장하려고 해 소동이 벌어진 바 있다고 한다. 정부 합동 대응팀은 기자들이 병원 출입을 하지 말고 가족 접촉, 병원 당국과 접촉은 자제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 역시 전술했듯이 기자들이 기삿거리를 만들기 위해 공감능력, 양심까지도 버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부 언론은 사고의 원인이 저가패키지 상품 때문이라는 기적의 논리를 펼쳤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도 5월 30일 언론사에 '헝가리 유람선 사고 보도, 재난보도준칙 준수 요청'이라는 제목으로 긴급 지침을 공유했다. 민실위는 "일부 매체에서는 온라인판 등을 통해 사고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보험금, 유언비어 등만을 부각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7.2. 악랄한 네티즌들의 망언

사고 직후 일베저장소어느 유저가 이 사고를 세월호 침몰 사고와 엮어 가며 고인드립을 쳐 물의를 빚었다. 이외에도 일베 및 극우 성향 사이트에서는 사고 당일 유가족을 모욕하고 정부를 비난하는 게시물이 폭주하는 수준으로 범람하였다. 이에 대해서 비판하는 기사가 무려 중앙일보에 실릴 정도였다. 추모하는 헝가리인, 조롱하는 한국인···서글픈 다뉴브 심지어 중앙일보는 위의 문단에서 지적받았듯이 이 사고에 대해 보험금에 관련된 기사를 내서 비판받았던 신문인데도 이러하다.

극우 성향 유튜버로 유명한 얼음사이다는 이 사고와 청해부대 홋줄 사고를 대비시키면서 놀러갔다가 죽은 것과 공무수행으로 사망한 것의 경중을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26] 또 다른 극우 성향 유튜버인 지식의 칼은 민경욱 대변인의 3분 발언을 옹호하면서 한국 사회가 이미 구조되기는 틀린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윤서인 또한 이미 죽은 생명보단 앞으로 쓸 돈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리면서 정부의 신속대응팀 파견이 아무 쓸모 없는 짓이며 오히려 국민들의 세금이나 낭비했다고 조롱했다.

일본에서도 이 사건이 보도되었지만 일본의 일부 극우 네티즌들은 오히려 '위안부'에 빗대 조롱하면서 한국에서 비판받았다. #

7.3. 민경욱 의원 페이스북 발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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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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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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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colcolor=#000>사망사건명
2024년 6월 24일
23
2022년 10월 29일
159 이태원 압사 사고
2020년 4월 29일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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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2019년 5월 29일
27 25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2018년 1월 26일
51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2017년 12월 21일
29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2017년 3월 31일
22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 사고
2014년 12월 1일
27 501오룡호 침몰사고
2014년 5월 28일
21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사고
2014년 4월 16일
299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010년 12월 13일
22 제1인성호 침몰 사고
2010년 3월 26일
46 천안함 피격 사건
[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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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7일
40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2003년 2월 18일
192 대구 지하철 참사
2002년 4월 15일
130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고
2001년 9월 25일
25 제7호 태창호 사건
2001년 9월 11일
2,996 28 9.11 테러
2001년 7월 24일
20 진주 관광버스 추락 사고
2000년 10월 27일
22 장수 88올림픽고속도로 추돌 참사

[ 19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99년 10월 30일
56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1999년 6월 30일
23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1998년 10월 29일
27 부산 범창콜드프라자 화재
1998년 7월 31일~8월 1일
103
1997년 8월 6일 228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1996년 7월 26일
20 철원 군부대 산사태
1996년 4월 4일
21 양평 버스 추락 사고
1995년 8월 21일
37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1995년 6월 29일
502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5년 4월 28일
101
1994년 10월 24일
29 충주 제5호 화재사고
1994년 10월 21일
32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3년 10월 10일
292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993년 7월 26일
68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1993년 6월 10일
20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
1993년 4월 19일
34 논산 정신병원 화재
1993년 3월 28일
78
1993년 1월 7일
28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
1992년 10월 22일
28 대양하니호 침몰 사고
1991년 11월 3일
22 인제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11월 4일
21 소양호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9월 1일
25 영동고속도로 섬강교 버스추락사고
[ 19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89년 9월 17일
24 전북 모래재 버스 추락 사고
1989년 7월 27일
79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1988년 3월 25일
22 안양 봉제공장 화재
1987년 11월 29일
115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1987년 8월 29일
32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1987년 6월 16일
29 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
1986년 7월 30일
21 고창 거룻배 전복 사고
1985년 1월 11일
38 양강교 버스 추락사고
1984년 3월 24일
29 영덕 시루봉 CH-53 추락 사고
1984년 1월 14일
38 부산 대아호텔 화재 사건
1983년 10월 9일
25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1983년 9월 1일
269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83년 4월 18일
25 대구 초원의집 화재
1982년 6월 1일
53 청계산 C-123 추락사고
1982년 4월 26일
62 우순경 사건
1982년 2월 5일
53 제주 C-123 추락사고
1981년 11월 22일
33 부산 금정산 버스 추락사고
1981년 5월 14일
55 경산 열차 추돌사고
1981년 2월 28일
24 대림호 침몰 사고
1980년 6월 5일
23 광주 지하살롱 화재 사고
[ 197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79년 10월 27일
26 은성탄광 화재
1979년 4월 14일
44 함백 탄광 폭발사고
1978년 7월 23일
33 한강대교 버스 추락 사고
1977년 11월 11일
59 이리역 폭발사고
1976년 10월 28일
34 동해 어선 조난 사고
1976년 5월 18일
23 답곡리 버스 추락사고
1976년 2월 28일
32 화천 버스 추락사고
1974년 11월 3일
88 대왕코너 화재사고
1974년 6월 28일
28 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1974년 2월 22일
159 YTL30호 침몰 사건
1973년 8월 12일
32 영동역 유조열차 폭발 사고
1973년 5월 16일
22 영일 건널목 열차 추돌사고
1972년 12월 24일
30 파크로버호 침몰 사고
1972년 12월 2일
53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1972년 8월 1일
26 의암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12월 25일
166~191 대연각호텔 화재
1971년 10월 13일
20 남원역 열차 추돌사고
1971년 5월 10일
80 청평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5월 10일
31 질자호 침몰 사고
1970년 12월 15일
326 남영호 침몰사고
1970년 11월 5일
31 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1970년 10월 14일
46 모산 수학여행 참사
1970년 8월 21일
25 추풍령 고속버스 추락 참사
1970년 4월 8일
33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

[ 196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69년 9월 17일
37 창녕 기관선 - 남지교 충돌 사고
1969년 1월 31일
41 천안 열차 추돌사고
1968년 10월 30일
48 산청 버스 추락 사고
1968년 1월 8일
41 함양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10월 16일
42 금릉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9월 15일
29 삼양수산 원양어선 침몰 사고
1967년 4월 8일
80 서울 청구동 C-46 추락사고
1967년 1월 19일
39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1967년 1월 14일
93 한일호-충남함 충돌 사고
1967년 1월 1일
41 서문시장 화재
1966년 1월 18일
22 중구 남산동 판자 아파트 화재
1964년 7월 29일
95+ 서해 어선단 실종 사고
1963년 10월 23일
49 여주 조포 나룻배 침몰 사고
1963년 6월 25일
70 거제 장승포 산사태
1963년 1월 18일
140 연호 침몰 사건
1962년 9월 7일
36 한남동 나룻배 침몰 사고
1960년 3월 2일
62 부산 국제고무공장 화재
1960년 1월 26일
31 서울역 압사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59년 7월 17일
67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
1957년 2월 22일
21 한강 미 공군 C-124A 추락 사고
1956년 1월 12일
66 태신호 화재
1955년 3월 2일
42 부산역 열차 화재
1953년 11월 27일
29 부산역전 대화재
1953년 1월 31일
56 오산 건널목 추돌 사고
1953년 1월 25일
66 행운환 침몰 사고
1953년 1월 9일
330 창경호 침몰 사고
1952년 11월 16일
25 강릉 공항 미 공군 C-46D 추락 사고
1952년 10월 16일
44 양평 미 공군 C-119C 추락 사고
1951년 7월 11일
94 제5편리호 침몰 사고
1951년 7월 11일
30+ 제13호 침몰 사고
1950년 6월 30일
23 부산 미 공군 C-54G 추락 사고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49년 10월 5일
71 평해호 침몰 사고
1949년 8월 18일
51 대강 터널 질식 사고
1948년 6월 8일
150 미군 독도 오폭 사건
1947년 8월 19일
23 태양환호 침몰 사고
1946년 11월 13일
42 영등포역 열차 충돌 사고
1946년 10월 22일
59 어청도 기뢰 폭발 사고
1945년 9월 29일
73 대구역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8월 24일
549​~𔁳,000+
우키시마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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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각 해당 언어판 위키백과 문서의 표제어다. 헝가리어로는 2019년 부다페스트 선박(보트) 재해라는 의미이며 일본어판(ハンガリー遊覧船沈没事故)과 핀란드어판(Budapestin veneonnettomuus) 문서도 헝가리나 부다페스트라는 지명을 제목에 명시했다. 한편 영어로는 허블레아니 호 침몰이라는 의미고 중국어판(人魚號沉沒事故)과 포르투갈어판(Naufrágio do Hableány) 문서가 허블레아니 호라는 배 이름을 제목에 명시했다.[2] 여행 상품의 주력은 크로아티아두브로브니크스플리트였다. 9박 10일, 12박 13일 등으로 혼선이 있었는데 여행사의 동유럽 관광 상품이 다양해서인 듯하다. 5월 25일 출국, 6월 2일 귀국이면 9박 10일이 맞다.[3] 다뉴브 강 유람선 투어는 어느 여행사건 헝가리 일정이 포함된 상품에 항상 포함된다.[4] 초기에는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세체니 다리(Széchenyi lánchíd, 통칭: 체인 브리지)로 알려졌지만 세체니 다리를 '통과'했다는 것이 오인된 것으로 확인되었다.[5] 배가 하천에 놓인 다리를 통과하려면 사고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미리 정해진 길로만 다녀야 한다. 선박이 지날 수 있는 곳은 다리 상단부에 녹색 신호등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사고 동영상을 보면 사고를 낸 대형 선박이 급격히 우측으로 틀어서 지나가는 교각의 윗부분을 보면 녹색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사고를 낸 선박이 왜 강의 중간 부근으로 항해하다가 다리에 근접한 후 급격한 선회를 했냐는 것인데 아마도 이것은 전체 국회의사당 건물을 한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위치인 강 중간으로 항해하다가 다리에 근접하여 다리를 지나가기 위하여 급격히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사고 동영상에 나오는 다른 배들도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위험한 운행 방식이 그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6] 어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배가 2초 만에 가라앉았다고 한다. 아무리 작아도 선박이 2초 만에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고 초기에는 '비유적 표현'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공개된 CCTV를 보면 충돌과 동시에 배가 우측으로 뒤집어졌고 그대로 충돌 선박이 밀고 들어오면서 배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정말로 2초 남짓한 시간에 배가 물속에 처박혀 버렸다.[7] 한강 유람선의 경우 동일선박에 대해 유람선과 크루즈라는 단어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8] 하천 운항용 중소형선박은 해상 운항용 선박보다 내구 연한이 길다. 염분이나 풍랑으로 인한 선체 피로를 적게 받기 때문이다.[9]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순식간에, CCTV상으로는 2~5초 만에 침몰했다. 미리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게 아니었으면 구명조끼가 있는 곳을 미리 알았다 해도 거기까지 가서 착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 아니다.[10] 조타실은 선박이 진행하는 앞쪽을 향해 창이 나 있지 뒤쪽으로는 안 나 있다. 선장 입장에서는 뒤에서 오는 배가 자기 배를 들이박는지 충돌 전까지 알 방법이 없다.[11] 다만 비치했다는 것과 그게 실제로 활용되냐 여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법률적 기준에 맞춰 구명조끼를 비치했어도 승객들에게 비치 장소를 알려주거나 제공하지 않고 사용법 안내를 안 하면 구명조끼가 있으나 마나다. 타이타닉에는 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승객의 절반이 탈 수 있을 수량의 구명보트만 비치되어 있었다. 이는 당시 법률상 합법이었으며 오히려 의무 규정사항보다 더 넉넉하게 실은 것이었다.[12] 현장에 있었던 여행사 직원도 사고로 인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이후 사망이 확인되었다).[13] 사고와 관련된 참좋은여행사 자체가 중장년층 대상의 패키지 상품을 주로 다루는 곳이다 보니 가족 단위의 피해자가 많았다.[14] 망망대해도 아니고 강이나 호수인 경우 수면이 잔잔하다면 알아서 수영해 빠져나오거나 침몰 전에 구조대가 빠르게 올 수 있는 등 여건이 좋기 때문.[15] 뉴스에는 49명이라고 보도한 걸 보아 제일 처음 떠난 10명은 포함되지 않은 듯하다.[16]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무리한 수색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17] 다만 이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데 애초에 위에 서술된 대로 2초에서 5초 사이에 배가 완전히 침몰하는 상황에서 선장이 의무를 다하거나 탈출하거나 등의 사이에서 선택지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뭔가 판단을 내리고 몸을 움직이려고 하기도 전에 배가 통째로 가라앉았기 때문[18] 비즈니스 제트기빌려서 출동시키면 안 되겠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에 저 정도 인원을 출동시킬 만한 비즈니스 제트기가 별로 없다. 설령 비즈니스 제트기를 빌린다고 해도 절차가 복잡하고 서비스 특성상 호화스러운 경우가 많아 출동 대원들을 위한 식사와 다과 준비에 시간이 필요해서 오히려 출동이 늦어질 수도 있다.[19] https://www.yna.co.kr/view/AKR20190530162352504?input=1179m[20] 기사를 보면 아시아나항공 OZ367편을 탔다고 하는데 해당 항공편은 인천상하이행 노선이다. 상하이에서 다른 곳을 경유한 뒤 유럽 대륙 내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노선으로 환승할 것으로 보인다. 급히 항공편을 수배했던 터라 해당 인원들 전부 외항사를 이용한다. 출발 항공편이 저녁에 출발했고 저녁에 유럽으로 가는 스타얼라이언스 항공사가 루프트한자밖에 없는 바람에(나머지는 SAS, 스위스 국제항공이 있는데 모두 아침 혹은 정오 즈음에 출발한다) 이들은 프랑크푸르트로 간 뒤 부다페스트로 갈 것으로 보였다. 다른 기사에는 청두를 경유해서 간다는 말도 있으며 이 경우 중국국제항공을 이용하여 프랑크푸르트로 간 뒤 부다페스트로 갔을 가능성이 높다.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터키항공을 이용하여 부다페스트로 가서 상황을 지휘했다.[21] 그나마도 상황을 전달해 줄 직원도 실종된 상태(결국 사망이 확인되었다)였던지라 참작이 가능하긴 하다.[22] 유럽 국가 중 한류와 한국 문화, 한국에 대한 호감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헝가리이다. 헝가리 인구가 960만 명인데 한국 문화 동호회에 가입한 헝가리인은 90만 명이니 비율상 결코 작지 않다.[23] 로마자로 표기된 한국어 가사 종이를 현장에서 나누어주었다고 한다.[24] 1993년에 벌어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25] 다음 스토리펀딩에 연재된 전직 채널A 기자 이명선의 글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이다. 글쓴이는 링크의 일화에 대해 이 에피소드는 '나는 왜 한국 언론계를 떠났나'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대안언론에서 일하는 중.[26] 이에 대해서 군인과 민간인의 생명을 구분하냐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