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The empire where the sun never sets
(El imperio donde nunca se pone el sol)
전성기 합스부르크 스페인에서 유래된 관용어구로, 그 영토가 광대해 지구 안의 자국 영토가 낮과 밤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해가 뜨지 않는 나라와 논리적으로는 같은 말이다. 쉽게 말해서 본토가 밤이더라도 자국영토인 식민지가 낮이고 본토가 낮일 때 식민지가 밤인 경우. 즉, 어떤 시간에 봐도 국가의 실효 지배 영역 어딘가는 해가 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지구 반대편에 작은 섬이라도 식민지를 갖고 있다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지만[1] 실제로는 거대한 국가임을 시간대와 관련지어 표현하는 말이다. 이런 곳의 특정 지역에 전쟁이 난다든지 등의 이유로 헬게이트가 열려서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할 필요성이 상당할 경우 일부 지역에 대해 여행금지가 적용될 것이다.[2](El imperio donde nunca se pone el sol)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따르면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를 침공하기 전 '페르시아의 영토를 천상의 끝까지 넓혀 페르시아 제국 밖엔 해가 비치지 않게 하리라'라는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절에는 관용적인 표현이었지만, 시대가 흐르며 국가 제도와 기술의 발전, 지리상의 발견으로 인해 정말로 지구 곳곳에 영토를 두어서 실제로 24시간 내내 영토의 어딘가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몇몇 탄생하였다. 전성기 시절 대영제국과 스페인 제국이 대표적인 케이스.
농담 삼아 핀란드 같이 위도가 높아 백야 현상으로 인해 해가 몇주, 혹은 몇달간 떠있는 나라를 이렇게 부를 수도 있다. 또한 '항상 자국 영토 어딘가는 밤이라는 뜻'도 되므로 사실 '해가 뜨지 않는 나라'라고 비꼬는 경우도 있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광대한 영토를 가진 식민제국 치고 구린 역사가 없는 나라가 없다보니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
2. 목록
2.1. 포르투갈 제국(1530년 경~1999년)
원주민을 학살하며 금을 찾아 내륙으로 확장하던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은 이미 강력한 토착세력이 있던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로 나가면서 당시만 해도 크게 매력적이지 않던 내륙까지 들어가는 대신 보통 해안가에 무역 거점 위주로 식민지를 건설하여 차지한 면적이 그리 넓지 않아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또 국왕이 북아프리카 원정에서 실종되면서 1578년부터 1640년까지는 스페인왕이 왕위를 계승해 동군연합이 수립되어 본국이 실질적으로 스페인의 일부로 여겨졌고[3] 이로 인해 식민지 개척이 주춤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기간 동안 포르투갈인들은 그동안 스페인과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진출하지 않기로 합의했던 남미 내륙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면서 남미 동부 끄트머리에 살짝 걸쳐있던 브라질이 왕정복고[4] 시기에는 오늘날과 비슷하게 남미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의 이베리아 침공 이후 본토가 어수선한 틈을 타 1822년 브라질에서 왕세자가 스스로 독립을 선포하고 다른 후발주자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대략 3~4세기에 걸친 "해가 지지 않는" 식민제국은 끝이 났다. 포르투갈 스스로는 제국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브라질을 갖고 떨어져 나간 왕세자가 스스로 황제에 오르고, 이후 이 왕세자가 두달 간 포르투갈의 왕이 되면서 어부지리로 제국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다(...). 포르투갈이 공화국으로 전환된 것은 1910년이었다.
브라질, 그리고 1961년 인도에게 무력합병당한 인도 식민지를 제외한 각 지역의 식민지들은 안토니우 살라자르 사후인 1975년까지 독립이 되지 않았다. (이는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 가운데 스페인령 사하라, 즉 서사하라(1976년)와 함께 가장 늦은 것이었다.) 즉 리스본이 밤일 때 포르투갈령 티모르와 마카오에는 해가 떠 있었다. 지도상에서는 따로 떼어놓아서 잘 실감이 안 나는데 이들 식민지 땅들을 유럽에 이어붙여 놓으면 포르투갈에서 소련까지 닿을 정도로 넓었다.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문서 참고) 이들 나라는 모두 1975년 동시 독립됐고, 앙골라, 모잠비크 등 대다수는 당시 냉전이라는 배경 속에 공산주의 국가로 변신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기 직전인 1999년 12월 20일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면서[6] 최초의 식민지 제국이자 최후의 식민지 제국으로 기록에 남게 되었다.
포르투갈 자국 내의 인정은 3년 뒤였다. 카네이션 혁명 후 포르투갈이 독립 승인 도장을 찍기도 전에 인도네시아에 강점되었던 동티모르의 독립을 2002년 인정하면서 공식적으로 식민지 시대를 마무리하였다.
2.2. 스페인 제국(1492년~1898년)
전성기 시절에는 오대양 육대주에 걸쳐 식민지를 지배했으며 PLVS VLTRA(라틴어로 '보다 더 멀리')[7]를 국가 슬로건으로 삼고,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면적으로만 보면 인류 역사상 대영제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해양제국이자 '해가 지지않는 제국'(El imperio donde nunca se pone el sol)이라고 공식적으로 일컬어진 첫번째 국가이다.
1560~80년대 경 스페인의 영토는 서로는 아메리카 대륙, 동으로는 필리핀에 달해 인류 역사상 첫번째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세웠다. 그나마 식민지로 말뚝을 박은게 그 정도라는 거지, 실제로 찝적거린 기간을 포함하면 대략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 즉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재위 1516~1558)를 시초로 본다. 애초에 스페인이라는 단일 정체성 자체가 확립된 것이 카를로스 1세의 시대이기도 하고. 이전에는 동군연합임에도 이베리아 반도의 아라곤, 카스티야 등의 정체성이 뚜렷했다. 이러다보니 최초의 스페인 국왕으로는 카를로스 1세, 합스부르크 가문이 오스트리아계와 스페인계로 분리된 후, 진정한 의미의 첫 스페인 국왕으로는 펠리페 2세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카를로스 1세의 치세에는 여기에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가 추가된다. 그의 항목에 있는 기나긴 직함을 보라. 정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원조. 그러나 어마어마한 제위는 그의 치세 1대로 끝난다. 애초에 이 엄청난 영토는 카를로스 1세의 아버지 때 혼인동맹으로 이뤄진 영토이며, 아들인 펠리페 2세에게는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그 나머지 땅과 신성로마 제위는 사실상 그 지역을 대리해 다스리던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물려줬기 때문.동생 페르디난트 1세의 후계자들이 다스린 영토는 나중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토대가 된다.
애초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말 자체가 '짐의 제국에는 해가 지지 않는도다'라는 카를의 말에서 유래했다.
펠리페 2세 시절인 1585년부터 스스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자칭한 진성 해가 지지 않는 나라. 그 시점이 역시 혼인 동맹으로 포르투갈 왕위를 겸하게 된 직후라는 게 압권. 이 제국은 쿠바와 필리핀을 잃는 미국-스페인 전쟁(1898년) 때까지 333년간 유지되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패배로 필리핀을 미국에 넘겨주었고, 뉴필리핀도 독일 제국에 팔아 더 이상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아니게 됐다. 이후에 비록 서아프리카의 스페인령 모로코, 서사하라, 적도 기니[8]가 남았다지만 전부 본토와 비슷한 경도에 있는 지역들이라 1898~1976년의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아니다.
2.3. 프랑스 식민제국(1534년 경~현재)
프랑스의 1, 2기 식민 제국. 대략 북미와 인도의 영역이 1차 식민 제국 때, 짙은 남색 영역 즉 아프리카 영토와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영토가 2차 식민 제국 때의 영역이다. 유럽 대륙과 이집트의 영역은 나폴레옹 때 프랑스군이 점령 또는 스쳐간 지역을 모두 표시한 지도이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신성 로마 제국(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과 스페인 왕가에게 강한 경쟁심과 더불어 일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9] 하지만 늦게 시작한 식민지 정책으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했던 처지.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의 세계 제국은 하나의 워너비였다. 괜히 루이 14세가 "태양왕" 드립을 친게 아니다. (그는 말년에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명목상이나마 세계제국을 접수했다.) 이런 경향은 계속돼서 영국과 세계적으로 패권을 다툰 7년 전쟁(1754~1763) 기간에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카를 5세와 같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가지리라"라는 드립에서도 프랑스의 태양의 제국에 대한 워너비가 드러난다.
프랑스는 퀘벡 가스페(Gaspé) 만에 프랑스 깃발을 꽂은 1534년을 프랑스 제국의 시작으로 본다.
2.3.1. 프랑스 제1식민제국(17세기 초반~1804년)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해외 식민지 쟁탈전에 참여한 것은 1603년의 누벨 프랑스(뉴 프랑스)였다. 이후 프랑스령 기아나(1624), 인도 해안 일부(17세기 후반) 등에서 프랑스는 거의 영국과 맞먹는 판도를 지녔다. 하지만 루이 15세 때 7년 전쟁을 거치면서 부르봉 왕가의 전비는 완전히 고갈이 났고, 영국과 스페인에게 퀘벡 등의 북미와 인도 식민지를 넘겨주어야했다.
결국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루이지애나 판매를 거치고 프랑스에게 남은 것은 기아나와 세네갈 정도가 전부였다. 세이셸도 영국으로 넘어가고...
2.3.2. 프랑스 제2식민제국(1862년~1980년)
근대 프랑스의 식민지 확장은 1830년대 샤를 10세의 알제리 침략을 시초로 보지만, 가장 대박을 친 때는 나폴레옹 3세 때였다. 1860년대 멕시코에 괴뢰제국을 세우려 찝적거리질 않나, 베트남에 코친차이나 식민지를 세우지를 않나... (병인양요도 이 때의 일이다.) 프랑스는 다시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복귀했다!이 시기의 프랑스 식민제국은 영국과의 협력으로 잘 드러난다. 파쇼다 사건의 빠른 해소나 수에즈 운하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런 프랑스의 제국주의도 비시 프랑스의 성립과 함께 저물기 시작했다. 식민지는 자유 프랑스와 비시 프랑스로 갈라졌고, 인도차이나는 일제의 침략이 이뤄졌다. 전후 대부분의 식민지는 독립했고, 1950년대 알제리, 모로코까지 차례차례 독립하며 프랑스의 식민역사는 해외 영토로 승격된 프랑스령 기아나(1982년)와 일부 제도를 남겨놓고 끝을 맞이했다.
2.3.3. 프랑스 식민제국의 잔재(~현재)
프랑스는 아직도 유럽 바깥에 레지옹(Région)과 해외 공동체, 특별 공동체 등을 두고 있다. 카리브해에 있는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생마르탱·생바르텔레미, 남아메리카의 프랑스령 기아나, 북아메리카의 생피에르 미클롱, 인도양의 레위니옹·마요트, 남태평양의 왈리스 퓌튀나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누벨칼레도니·프랑스령 남방 및 남극 지역 등을 포함하면 영토가 어마어마하다. 시간대만 무려 12개나 달한다! 파리가 밤일 때 남태평양에 있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타히티 섬 파페에테는 대낮이라 여전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가 타히티를 보호국으로 삼은 것이 1847년이니 역사가 끊기지 않은 셈.프랑스가 현재 배타적 경제수역(EEZ) 면적 1위를 기록한것도 이 시대의 산물이다.
2.4. 대영제국(1607년~현재)
흔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칭하면 떠올리는 나라가 바로 대영제국인 만큼, 이 분야의 최강자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은 남극을 포함한 모든 대륙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영토는 인도 제국을 비롯해 서쪽으로는 캐나다와 뉴펀들랜드, 남쪽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1795년부터), 동으로는 호주(1788년부터)와 뉴질랜드(1840년부터)에 달했다. 특히 뉴질랜드는 정확히 런던과 지구 반대편에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 대영제국의 일부였던 곳뿐만이 아닌 현재 영국령인 땅만 간주해도 마찬가지다. 인도양의 차고스 제도와 태평양의 핏케언 제도 덕분에 현재까지도 이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대영제국 아래 인류 거주지의 1/4(3,670만km^2, 한반도의 약 180배.)과 1921년 통계 당시 세계인구의 1/4(4억 6,000만)이 있었다.
문헌적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자칭한 것은 7년 전쟁 직후인 177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본격적으로는 1820년대부터 대영제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확인된다. 물론 인도 제국을 포함했기에 Empire(제국)이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따지면 대영제국의 역사는 1877년부터 1947년(인도 독립의 해)까지 70년이 된다. 이후 유럽연합의 전신이 되는 유럽 공동체 가입 문제로 캐나다와 뉴질랜드가 사실상 독립된 정부를 가지게 된 게 1970년대이나, 지금까지도 명목상 찰스 3세가 국왕으로서 군림하고 있는 영연방 왕국들이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에 있다. 게다가 시간대 상으로 거의 정반대에 위치한 핏케언 제도와 차고스 제도를 가지고 있어[11] 지금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맞다.
하느님은 영국인들이 해가 지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해가 지지 않게 하셨다는 미국발 블랙 유머[12]도 있다. 한편으로는 영국 음식이 워낙 맛없어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다.
사족으로 영국 자체는 위도가 꽤 높은지라 7~8월에는 일시적으로나마 이 문서와 다른 의미에서 해가 지지 않는다.
현재는 EU 탈퇴와 동시에 쌓여가는 여러 문제점들로 인해 해가 뜨지 않는 나라 라고 불러야 하는거 아니냐는 블랙 유머가 돌고 있기도 하다.
2024년 영국이 '물리적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인 차고스 제도의 주권을 모리셔스에게 반환하기로 결정하였다.
2025년 3월 21일 전까지 차고스 제도 반환이 끝난다면 2025년 3월 21일 협정 세계시 기준 2시 50분에 대영제국에 해가 지게 된다.
2.5. 러시아(1721년~현재)
러시아의 영토 확장은 일반적인 서구열강의 '해외 식민지' 스타일이 아니라 연속적인 육상 영토의 확장이었기 때문에 꽤 특이한 케이스인데, 오늘날까지 러시아는 진짜 이론상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다. 서쪽 끝 칼리닌그라드에서 막 해가 지면 동쪽 끝 캄차카 반도에선 해가 이미 떠 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그 광대한 영토만 차지하고서도 거대제국의 반열에 오른 만큼 다른 서구열강들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불을켜고 식민지를 개척할 때 이쪽은 아예 유라시아를 미친듯이 정복하며 본토의 영토를 매우 확장시켰다.러시아 제국의 경우 한때 알래스카(1704~1867) 까지 진출했던 시절에는 오늘날 러시아보다 더 확실하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사실상 연안만을 다스린 케이스다. 사실 19세기에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연안을 넘어 지금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처까지 러시아 세력이 남하하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인들이 건설한 요새 포트 로스(Fort Ross)는 미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심지어 한 때는 하와이 제도의 카우아이 섬에도 러시아가 진출하여 러시아 병사들이 주둔했던 기지인 포트 엘리자베스의 위치를 적은 알림판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하와이가 러시아 땅이 될 뻔한 사연
2.6. 미국(1898년~현재)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스페인 제국의 기세를 꺾은 1898년부터 "엉클 샘은 해가 지지 않는다"라는 드립이 시작되었다. 1946년 필리핀을 마지막으로 상당수의 식민지가 독립했음에도, 미군이 주둔 중인 동네만으로는 그냥 세계를 몇 바퀴를 감아도 모자라지 않으며 해외에 파견한 병력들을 꾸준히 유지, 활용하면서 반미 성향 국가들을 견제하는 중이다.미국 영토에 속하는 자치령만 따져도 괌이나 푸에르토리코 같은 영토가 있어 24시간 중 22시간 가량 해가 지지 않는다. 본토 및 자치령 포함 최서단의 괌(동경144° 47′)은 GMT +10시간, 미 대륙 최동단 루벡(lubec)과 푸에르토리코 옆의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서경 064° 42)는 GMT -4시간으로 10시간 차이가 난다. 미국에는 총 11개의 시간대가 있으며 가장 빠른 시간대와 가장 느린 시간대 사이에 10시간 차이가 난다.
[1] 지구상으로 본토와 정 반대편을 포함하는 초소형 식민지가 있어도 결국 면적이 존재하는 이상 해가 지지 않는다.[2] 과거에는 국가 단위로 지정되다보니 본토는 평온하지만 식민지에 헬게이트가 열렸다면 특정 지역에 대해 출국권고 정도만 내릴 수 있었으며, 본토에는 헬게이트인데 식민지가 평온하다면 그 식민지까지도 여행금지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필리핀의 잠보앙가, 술루 제도가 원인을 제공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를 고쳐 일부 지역만 여행금지가 발효될 수 있도록 하였다.[3]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의 왕을 겸임한 것이므로 명목상으로는 포르투갈은 여전히 독립국이었다.[4] 스페인 왕이 통치하던 포르투갈에 새로운 왕정을 세웠기 때문에 독립이 아닌 왕정복고라고 한다.[5] 윗 그림을 확대하면 독립 연도 확인이 가능하다.[6] (후술할 2002년 동티모르에 대한 뒤늦은 독립 인정을 제외하면) 마카오는 포르투갈은 물론 더 나아가 유럽 국가 최후의 아시아 식민지였기도 하다.[7] 본래 카를 5세의 개인 좌우명이었지만, 후에 압스부르고 왕조의 왕가 문장에 쓰였으며, 현재도 스페인 국기의 국장에도 들어있는 국가 슬로건이다. 헤라클레스 기둥을 상징하는 두 기둥에 쓰여져 있다.[8] 이들 지역은 20세기 후반에 철수[9] 거꾸로 카를 5세 때처럼 스페인과 독일이 손을 잡고 자신들을 조여들여오는 것은 견딜 수 없어했다. 이런 케이스가 끔찍하게도 나치 독일 때 재현되어 프랑스 침공에 털리고 비시 프랑스 시대를 겪는다.[10] 이 지도는 영국이 가졌던 모든 해외 식민지를 나타낸 것이지 어떤 시점의 대영제국의 최대 판도를 표현한 것이 아니다. 가령 북아메리카 식민지 지역이 미국 독립 전쟁으로 독립하기 전의 시점에서 영국은 아직 인도 전역을 차지하지 못했다.[11] 핏케언 제도는 UTC-8, 차고스 제도는 UTC+6[12] 아일랜드발 블랙 유머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