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fefe01> | 한신 타이거스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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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fefe01><colcolor=#fefe01,#000000> 모기업 관련 정보 | 한신 전기철도 · 한큐한신토호그룹 | |
연고지 관련 정보 | 간사이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 일대 · 오사카부 오사카시 | |
일본시리즈 우승 ★★ | 1985 · 2023 | |
리그 우승 (10회) | 1937 추계 · 1938 춘계 · 1944 · 1947 · 1962 · 1964 · 1985 · 2003 · 2005 · 2023 | |
클라이맥스 시리즈 | 2007 · 2008 · 2010 · 2013 · 2014 · 2015 · 2017 · 2019 · 2021 · 2022 · 2023 · 2024 | |
시즌별 요약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구단 상세 정보 | 역사 · 선수단 · 역대 등번호 · 역대 선수 · 유니폼 · 응원가 · 사건사고 · 한신아재 · 커널 샌더스의 저주 · JFK · 4466566664 | |
주요 인물 | 감독 후지카와 큐지 · 선수회장 나카노 타쿠무 | |
주요 명장면 | 백스크린 3연발 · 일본프로야구 최장시간 소요 경기 · 2014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 고의사구 끝내기 안타 2022년 센트럴 리그 3위 | |
경기장 | 1군 한신 고시엔 구장 · 고시엔 기간 교세라 돔 오사카 · 2군 닛테츠코한 SGL스타디움 아마가사키 · 지방구장 머스캣 스타디움 | |
홈 중계 채널 | / | |
기타 정보 | 한신 본선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 전통의 일전 · 도쿄온도 · 죽음의 원정 | |
틀 문서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 선수 · 역대 감독 · 영구 결번 ·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1. 개요
한신 타이거스의 역사 및 시즌별 기록이다. 시즌별 기록은 1985, 1992년, 2003년, 2005년열광적인 팬에 비해 솔직히 과거 성적은 초라할 정도. 그래도 1970년대까지는 주니치와 더불어 요미우리의 독주에 딴죽을 거는 라이벌이었지만, 우승 경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데, 만년 2위 주니치 드래곤즈나 답 없기로 유명했던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조차 두 번 해본[1][2] 일본시리즈 제패를 이 유명한 구단이 2023년에야 딱 두 번 한 것은 지금도 일본의 미스테리.[3] 카케후 마사유키-랜디 바스-오카다 아키노부라는 전설적인 클린업을 앞세운 1985년에 한신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이게 감이 안온다면 KBO 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는 2번이나 우승을 했고 최근의 우승이 1992년이다.[4][5]
더 치욕적인 사실은 1982년 KBO 리그 창설 이래 원년 구단들 중 1번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거나, 1980년대 이후 한국시리즈를 우승하지 못한 팀은 없다. 그나마 유일하게 한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팀이 삼성 라이온즈인데 구단 첫 우승을 1985년, 즉 한신과 동년에 이뤘다. 다만 차이점은 한신은 이때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룬 것이고 삼성 라이온스는 전후기 통합우승을 해서 당시 규정상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고, 때문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은 2002년이다.[6] 유일한 1회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한화(게다가 이쪽은 1986년 창단. 즉 원년 구단은 아니다)마저 1999년에 우승을 한 실정이다. 재정난으로 해체한 현대 유니콘스조차 4회 우승으로 현대 왕조를 이뤄냈고, 롯데 자이언츠의 뒤를 잇는 최장기간 한국시리즈 비우승팀인 한화 이글스도 1999년에 우승을 맛본 팀이다.[7] 여기에 2010년대에 창단한 NC 다이노스[8]가 2020년에, kt wiz[9]가 2021년에 첫 우승을 했다. 일본 국내로 눈을 돌리면 라이벌 퍼시픽리그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 9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뤄내는 역사를 만들었을 정도다.[10] 메이저리그 팀들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고있는 팀들을 꼽자면 뉴욕 메츠[11], 볼티모어 오리올스[12], 디트로이트 타이거스[13], 그리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14]가 있다.[15]
더 심하면 1979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있기도 하고, 이해 히로시마 토요 카프가 처음으로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주니치는 그렇다 치고,[17] 센트럴 리그 3약으로 분류되는 야쿠르트(일본시리즈 우승 6회), 히로시마(일본시리즈 우승 3회)보다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가 적으며, 요코하마(일본시리즈 우승 2회)와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가 같다. 1985년 한신의 우승으로 충격받은 일본인 중 하나인 소설가 타카하시 겐이치로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優雅で感傷的な日本野球)>라는 소설을 써서 내놓기도 했다. 한국과 비교하면 키움 히어로즈가 아직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내지 못했지만 2000년대 창단된 팀이며, NC의 우승 전까지 KBO의 유일한 1회 우승팀이었던 한화 이글스도 1999년이다... 메이저리그 소속팀들 가운데 2023년까지 우승하지 못한 팀들이라면 콜로라도 로키스, 시애틀 매리너스, 그리고 밀워키 브루어스, 그리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그리고 탬파베이 레이스가 있긴 한데... 메이저리그는 30팀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놓고 겨룬다.[18]고작 12팀 밖에 안되는 NPB와는 또 다르다.
더욱 충격적인 건 1985년 폭풍간지로 센트럴리그 - 일본시리즈 우승을 따놓고 그 다음 리그 우승은 무려 18년이 지나서 호시노 감독 2년째인 2003년이란 것이다(…). 2003년 우승[19] 때는 그 고이즈미 총리까지 떠벌릴 정도로 나라에 난리가 났었다. 더 웃기는 건 고이즈미 총리는 카나가와현 출신이다.
리그 우승도 1950년 양대리그제로 나뉜 때부터 따지면 6회뿐이다. 이는 2리그 분할 이후로 따져서 센트럴리그 6개 구단중 5위. 아래로는 현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뿐이다.[20] 60년대 후반 전까지 시민들이 성금 모아서 간신히 연명하던 히로시마 카프보다도 리그 우승 횟수가 적다.[21] 거기다 2003년까지는 통산 승률이 5할 아래로 밑돌 정도였었다.
박동희 : 대통령이 4번 바뀔 동안[22]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한 팀은 롯데가 유일하다. 1992년 이후로 대통령이 4번이나 바뀌었다.
누마자와 : (한신은) 1935년 창단해 1985년 딱 1번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했다.[23] 대통령이 몇 번 바뀌도록 우승을 못했다고? 4번? (한숨을 내쉬며) 한신은 수상이 18번이나 바뀌도록 우승을 하지 못했다.[24][25]
2008년 박동희 기자와 한신의 누마자와 쇼지 본부장과의 대담에서.#
누마자와 : (한신은) 1935년 창단해 1985년 딱 1번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했다.[23] 대통령이 몇 번 바뀌도록 우승을 못했다고? 4번? (한숨을 내쉬며) 한신은 수상이 18번이나 바뀌도록 우승을 하지 못했다.[24][25]
2008년 박동희 기자와 한신의 누마자와 쇼지 본부장과의 대담에서.#
2021년 2월부터 여자 야구 팀을 설립한다.# 프로야구 구단이 여자 야구 팀을 설립한 것은 처음이다.
2. 창단 초기
구단 창단은 1935년. 그러니까 요미우리 자이언츠(당시 도쿄 교진군), 주니치 드래곤즈(당시 나고야군), 오릭스 버팔로즈(당시 한큐군) 등과 더불어 일본프로야구 원년 구단 중 하나이다. 창단 당시의 이름은 오사카 타이거스(大阪タイガース). 1940년에 당시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의 언어인 영어를 쓰지 말자는 운동이 일어나 이름을 한신군(阪神軍)으로 바꿨으나 태평양 전쟁 패전 후인 1946년에 이름을 다시 '오사카 타이거스' 로 환원했다. 그러나 팀명 연고지(오사카)와 실제 연고지(효고현 니시노미야시)가 일치하지 않았기에 1961년에 구단명에서 오사카를 빼고, 그 자리에 모기업 약칭이자 연고지역의 광역권인 한신을 붙여 지금의 한신 타이거스(阪神タイガース)로 바꿨다.센트럴 리그 팀들 중 유일하게 마이니치 오리온즈 가입에 찬성했던 구단이다. 그러다 리그가 분열할 모양새가 보이자 '마이니치의 프로 참여는 인정하지만 우리는 자이언츠와 같은 리그에 뛰겠다' 라고 하며[26] 찬성 측 중 유일하게 센트럴리그에 참가한 구단이 되었다.
1950년대에도 센트럴 리그에서 가장 많이 2위를 차지하는 등 요미우리의 대항마 역할을 했고, 1962년과 1964년 요미우리 초대 감독을 지낸 후지모토 사다요시 감독의 지휘와 고야마 마사아키, 무라야마 미노루, 진 바키 등 투수진의 활약으로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일본시리즈에서는 각각 장훈의 토에이 플라이어즈와 노무라 카츠야의 난카이 호크스에 패했다.
그러나 1965년부터 라이벌 요미우리가 V9이라는 전무후무한 전성기에 돌입하면서 한신은 불세출의 에이스 에나츠 유타카, 주전 포수이자 홈런 아티스트로 불린 타부치 코이치 등을 보유하고도 20년 넘게 우승을 하지 못했다. V9의 마지막 해였던 1973년은 한신 팬들에게 두고두고 아쉬웠던 순간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요미우리와의 치열한 우승 경쟁 끝에 한신은 남은 2경기[27] 중 한 경기만 이기면 자력 우승이 가능한 상황을 맞았으나, 주니치 원정 경기에서는 호시노 센이치에 막혀 패하고, 홈으로 돌아와 치른 요미우리와의 시즌 최종전에서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9-0으로 대패하며 안방에서 숙적이 9년 연속 우승 축배를 드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28]
3. 1985년
1985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순간 |
개막전에서는 끝내기 패배를 당했지만 4월 17일 지금도 전설 그 자체인 랜디 바스, 카케후 마사유키, 그리고 오카다 아키노부의 전설적인 백스크린 3연발을 계기로 타선이 대폭발[29], 그대로 리그 선두를 질주했다. 4월에만 9승을 거두며 선두로 치고 나간 한신은 7월 종료 시점까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2경기차로 앞선 리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다만 8월 죽음의 원정 기간[30] 중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가 터지면서 사장 나카노 하지무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터졌다. 덕분에 한 때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선두를 헌납하기도 했다. 그러나 8월 27일, 히로시마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면서 리그 선두를 탈환한 뒤 정신 차리고 다시 질주, 10월 16일 센트럴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팀으로서는 1964년 이후 무려 21년만에 세번째 센트럴 리그 우승. 이후 1985년 일본시리즈까지 진출해 일본시리즈도 우승했다.
이 우승은 그해 8월 일본 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의 영전에 바치는 선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리그 우승 후 랜디 바스를 닮은 동상 하나가 도톤보리 강에 빠뜨려지는 사건이 터졌다.
4. 1992년
1987~1991 5시즌간 B클래스를 전전했다가, 1992년엔 모처럼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 외국인 타자 듀오 토마스 오말리-짐 파치올렉이 타선의 중심을 잡고 선발진의 좌완 나카다 코지, 유후네 토시로와 우완 나카고미 신[31], 노다 코지가 모두 2점대 ERA를 기록하는 등 고르게 활약했으며 주전 3루수던 야기 히로시[32], 주전 2루수 와다 유타카, 신인 쿠지 테루요시, 카메야마 츠토무, 신조 츠요시 등의 활약도 더해져 리그 상위권에 자리를 잡았다.다만 이 시즌은 선두권과 하위권간의 격차가 10게임 안팎에서 오갔고, 특히 4위까지도 승률 5할대 초반에 자리할 만큼 선두권 경쟁이 상당히 치열했다. 일본프로야구 최장시간 소요 경기도 이 시즌의 일. 저 경기가 포함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3연전에서 위닝을 거둔 한신은 9월 20일에 2위 야쿠르트와 3경기 차 선두까지 올라 갔으나, 이후 원정 13연전에서 3승 10패로 급격히 실속해 끝내 리그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33]
최종적으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공동 2위였는데 그 2위도 성적이 67승 63패.[34] 우승팀 야쿠르트는 69승 61패 1무였다.
그리고, 이 시즌이 끝난 후 1993년부터 2002년까지 한신은 단 한 번도 A클래스에 들지 못하는 비밀번호를 쓰게 되었다.
5. 2003년
2003년 한신 타이거스의 흥망성쇠 |
호시노 센이치 감독 2년차로, 드디어 올해는 다르다를 보여줄 수 있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영입된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타선의 중심을 잡고, 포수 야노 아키히로는 하위타선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외에도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이라부 히데키를 비롯해 이가와, 시모야나기 등 선발진의 활약도 눈부셨던 시즌이다.
덕분에 전반기에만 57승 1무 22패로 선두를 질주하면서 우승을 조기 확정짓는가했더니 갑자기 8월 죽음의 원정 기간 중 4승 11패를 당하면서 우승 확정을 뒤로 미뤘다. 그래도 죽음의 원정을 마치고 성적을 회복하면서 다시 질주 태세를 이어나갔다. 이윽고 9월 15일 히로시마와의 홈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로 승리하면서 1985년 이후 18년만에 처음으로 통산 4번째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그대로 2003년 일본시리즈로 직행했다.
내친김에 18년만의 닛폰이치(日本一)까지 노렸으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지고 말았다. 홈경기를 가진 팀이 모두 이긴 소위 말하는 '안방 호랑이' 시리즈였는데, 홈 어드밴티지를 퍼시픽 리그의 다이에가 가지고 있던 덕에 원정 2연패 - 홈 3연승 - 원정 2연패를 당해 지고 말았다.
한편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한신을 구렁텅이에서 건져낸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용퇴 의사를 표명했다.
6. 2005년
정규시즌에서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일본시리즈에서 아주 큰 흑역사를 남기고 말았다. 자세한 사항은 33-4 문서를 참고. 한편, 모기업인 한신 전기철도에서는 경영 위기가 터졌다.7. 2008년
전설적인 설레발로 남은 《08激闘セ・リーグ優勝目前号 Vやねん!タイガース》 (08격전 센트럴리그 우승직전(기념)호 우승이라카이! 타이거스).[35]
7월 9일 기준 2위(주니치, 요미우리)와 13게임차인 1위(당시 51승 23패 1무 - 승률 .689, 승패마진 +28)를 신나게 달렸고, 7월 22일에 매직넘버(46)가 켜지는 등 우승 분위기를 한껏 높였다가, 기록
그리고 이 역사에 남을 만한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된 덕분에 어느정도 괜찮은 성적을 내던 오카다 아키노부는 감독직을 내놓아야 했다.
8. 2009년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 출신인 마유미 아키노부가 새 감독으로 취임. 프랜차이즈 선수 출신이 감독을 맡으면 하나같이 망한다는 기분 나쁜 징크스를 그대로 반영하듯 2009 시즌에서는 시즌 초반 5위로 추락하며 망했어요가 되려다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연패에 힘입어 시즌 중반 3위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시즌 막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2연전에서 내리 패하며 결국 최종성적 67승73패4무로 4위에 그쳤다.9. 2010년
2010년 시즌은 전 해의 불안감을 날리듯 아카호시 노리히로의 은퇴 후 영입한 외국인선수 맷 머튼과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죠지마 켄지가 대 활약하였다. 맷 머튼은 스즈키 이치로의 210안타 기록을 갱신하는 등 214안타를 때려냈고, 죠지마는 28홈런을 쳤으며 유틸리티맨 히라노 케이이치가 3할 5푼을 치는가 하면 공갈포 기질이 다분하던 크레이그 브라젤이 타율을 .296까지 끌어올리고 47홈런을 쏘아올리며 진정한 의미의 바스의 재래를 보여주었다. 2009년보다 성적이 크게 떨어지며 에이징 커브 직격탄을 맞은 카네모토 토모아키의 침체가 아쉬웠지만 토리타니-아라이-브라젤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가 모두 100타점을 넘겼을 만큼 득점력도 뛰어났다. 이처럼 전년도에 비해 타선이 매우 좋아져 줄곧 선두권을 유지하였고 한때는 1위까지 올라갔으나, 시즌 막판 계투진 붕괴로 3위 팀에게 매직넘버가 켜지는 진기록을 세웠다가 결국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그리고 2010년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1회전에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2패로 광속탈락. 1차전에선 요미우리의 선발투수 토노에게 꽁꽁 묶였고 2차전은 경기 초반부터 점수를 차근차근 쌓아나갔으나 후지카와 큐지가 불을 지르며 결국 시망.-_- 2003년 일본시리즈 6차전 이후로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1승 12패를 기록했다.
반면 한신 2군은 프랜차이즈 스타인 히라타 카츠오 2군 감독의 지휘 하에 4년만의 웨스턴리그 우승을 했으나, 한신 팬들의 연임요청에도 불구하고
10. 2011년
한마디로 표현하면 타어강의 일본판 선행버전.2010년의 반등세에 자신을 얻었는지 구단 차원에서 1985 AGAIN을 외치면서 돈지랄에 나서서 연봉총액이 그동안 매년 돈지랄이라고 까던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능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 2011년 시즌 시작 전에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한신의 우승을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시즌 중반이 지나도록 우승은 커녕 플옵 커트라인인 3~4위를 왔다갔다 했고, 기어이 2011년 6월 한신 전기철도 주주총회에서 마유미 감독을 성토하는 말까지 나왔다. 급기야 시즌 막판에 포스트시즌 커트라인과 점점 멀어져가면서 관중석에서 응원 메가폰이 날아 들어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고시엔 구장의 유료 입장관중이 2만명 대로 추락하여 자리가 남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마유미 감독은 10월 16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된다.
11. 2012년
마유미 아키노부 감독이 짤리고 타격코치였던 와다 유타카 코치가 내부승격을 통해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구단 프랜차이즈 출신이 감독이 되면 망한다는 징크스 때문에 한신팬들은 우려했으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전해 부상때문에 38게임 출장에 그쳤던 조지마 겐지는 재활 끝에 복귀는 했으나, 포수가 아닌 일시적으로 1루수로 출장하게 되었고, 맷 머튼도 부상 때문에 초반 결장하는 등 어째 영 좋지 못한 기운이 감돌았는데...한마디로 망했어요.
카네모토 토모아키는 초반 주전으로 출장하다 대타로 밀려났고 아라이 타카히로 역시 부상에 시달렸으며 조지마 겐지는 24게임만 뛰고 또다시 부상을 당했다. 중심타자 맷 머튼은 에이스 노우미 아츠시와 트러블을 일으키는 등 팀은 개박살이 났다. 게다가 조지마 겐지는 복귀를 시도하다 2군 경기 도중 또 부상을 당해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고, 같은 달 카네모토 토모아키 역시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5승 14무 75패로 히로시마에도 뒤진 5위를 마크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자진 퇴단한 니시오카 츠요시와 일본 복귀를 선언한 후쿠도메 고스케에게 접촉, 영입에 성공하는 등 폭풍 돈질을 시전했다. 포수 공백 역시 오릭스에서 히다카 타케시를 데려와 메웠다.
하지만 아예 소득이 없던 것도 아니어서, 유망주 수준이었던 아라이 타카히로의 동생 아라이 료타가 시즌 초반 이후 4번 타순에 들어서며 커리어 처음으로 두자릿수 홈런을 때리는 등 분전했다.
12. 2013년
후쿠도메 고스케는 타율이 1할대에 머물다 부상으로 라인업에서 빠졌고 크레이그 브라젤의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생각된 외국인 브룩스 콘래드는 그 흑역사가 많은 한신 외국인 타자 중에서도 유일하게 0홈런 0타점(57타수 10안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보이다 방출되었으나, 니시오카가 1번에서 활약해주고 루키 후지나미 신타로와 이번 시즌에 첫 선발투수로 나서는 에노키다 다이키가 선발진에 안착하며 시즌 초반까지는 순항하고 있다. 요미우리의 독주속에 한신이 추격하는 게 세리그 초반의 판도. 특히 요미우리를 상대로 성적이 좋은데, 첫 3연전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요미우리에게 3경기 연속 무득점의 수모를 안겼으며[39] 5월 8일에는 도쿄돔에서 요미우리를 상대로 6년만에 스윕에 성공했다. 잠깐 요미우리를 제치고 1위가 된 적도 있었지만, 후반기들어 주춤하며 8월 시점에서 7게임차로 벌어져 1위는 사실상 멀어졌다. 그래도 3위권과 10게임차를 벌리며 순항하다 9월 이후에 주춤해서 3위와 4게임차로 좁혀졌지만 어쨌든 3년만에 2위로 A클래스 복귀.그러나 홈에서 벌어진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승률 5할도 안되는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처절하게 발리며 2연패로 광탈. 2013년에도 또(!) 플레이오프 광탈 징크스를 끊지 못했다. 심지어 돈 별로 없는 시민구단에게![40] 한신 팬들이 할 수 있었던 거라고는 히야마 신지로가 현역 마지막 타석에서 친 대타홈런으로 정신승리하는 것 뿐이었다.. 이로써 오카다 감독 이래로 포스트시즌 성적은 통산 1승 12패. 클라이맥스 시리즈 탈락만 네번. 포스트시즌만 하면 유불리를 막론하고 실패를 거듭하는 퍼시픽리그의 이 팀과 어깨를 견줄 정도.
오프시즌에는 주니치의 선발 나카타 켄이치, 니혼햄의 포수 츠루오카 신야등 여러 FA를 노렸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오승환을 데려오며 마무리 자리를 채웠지만, 외국인 선수 엔트리 제한 때문에 준수한 선발 스탠드리지를 떠나보내야 했다.[41] 베테랑 선발 구보 야스토모도 FA권을 행사해 요코하마 DeNA로 떠나며, 고정 선발은 3명(노미, 메신저, 후지나미) 밖에 남지 않아 선발진을 채우는 게 큰 과제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구보의 보상 선수를 '요코하마의 전력 약화'를 노린다며 베테랑 포수 츠루오카 카즈나리를 데려오면서 선발진 공백은 유지된 채 주전 포수 경쟁만 더욱 큰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42]
여담으로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홈런 기록을 위한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기록 타이인 55호, 일본 기록을 경신하는 56호, 사상 최다인 60호포 모두 한신전에서 뽑아냈다.
13. 2014년
오승환을 영입한 첫 시즌. 오승환이 제 역할을 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4연승을 거두고 일본시리즈를 갔지만... 해당 항목 참조.14. 2015년
한때 1등도 승률 5할이 안되던 세리그에서 나름 버텨냈지만 막판에 무너지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턱걸이하였고 와다 유타카 감독이 시즌 후 경질되었다. 해당 항목 참조.15. 2016년
가네모토 도모아키 체제 첫 시즌이었으나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해당 항목 참조.16. 2017년
2년만에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돌아왔지만 첫 스테이지를 못 넘어갔다. 해당 항목 참조.17. 2018년
2001년 이후 17년만의 최하위. 결국 카네모토 감독은 경질되었고 야노 아키히로가 감독이 되었다. 해당 항목 참조.18. 2019년
해당 항목 참조.19. 2020년
해당 항목 참조.20. 2021년
해당 항목 참조.21. 2022년
해당 항목 참조.22. 2023년
해당 항목 참조. 커널 샌더스의 저주가 드디어 풀리고 한신은 38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23. 2024년
해당 항목 참조.[1] 심지어 센트럴리그 우승도 먼저다! 전신인 타이요가 1960년 처음으로 우승했는데 한신의 첫 우승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962년(...) 게다가 타이요는 처음으로 일본시리즈 가자마자 바로 우승했는데 한신은..[2] 한신이 우승한 바로 다음 해 2024년 일본시리즈에서 요코하마가 희대의 언더독 우승을 일으키며 V3를 한신보다 먼저 이뤄냈다.[3] 2023년 일본시리즈 우승 이전에는 1985년 일본시리즈 우승이 유일했으며, 현존하는 일본 구단들 중에서 비교적 빨리 일본시리즈 우승한 어린 구단과 함께 가장 적었다.[4] 게다가 첫번째 우승조차 한신보다 1년 먼저이다.[5] 심지어 무려 1세기동안 우승을 못했던 어느 팀마저 2016년 우승을 했다.[6] 참고로 이는 KBO 리그 원년구단들 가운데 가장 늦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다.[7] 2022년까지는 LG 트윈스도 롯데와 한화 사이에 위치했으나, 공교롭게도 2023년 한신이 일본시리즈에 우승한 같은 해 무려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었다. 그 전까지 LG 트윈스는 1990년, 1994년에 90년대 2회 우승.[8] 2012년 창단, 1군 진입은 2013년.[9] 2014년 창단, 1군 진입은 2015년.[10] 창단: 2004년/일본시리즈 우승: 2013년.[11] 1986년[12] 1983년[13] 1984년[14] 1989년[15] 그럼에도 이 팀들은 한신보다도 우승횟수는 더 많다. 상세하게 설명하면 메츠의 86년도 우승은 구단 사상 2번째, 오리올스의 83년 우승은 구단의 3번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84년도 우승은 구단의 4번째, 애슬레틱스의 89년도 우승은 구단의 9번째 우승이었다. 다저스도 있었지만 2020년 우승으로 탈출.[16] 이와는 반대로 '자이언츠'를 구단명으로 사용하는 3개국 팀 가운데는 반도의 구단이 꼴찌를 기록중. 자이언츠를 쓰는 구단은 일-미-한 순이고 한-미-일 순이네? 정반대[17]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감독직에서 물러난 2011년 이후 팀이 약체화되면서 완벽한 약체로 몰락했다.[18] 2022년까지는 텍사스 레인저스도 있었지만 2023년 창단 62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같은 해 한신도 38년 만에 일본시리즈를 우승한다.[19] 자력우승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여지가 남아있던 야쿠르트를 요코하마가 박살내면서 자동 우승을 거두었다. 한신이 경기 쉬고 있는데 숙소에서 만세...는 아니고 매직 넘버가 2 남은 상태에서 같은 날 경기가 있었지만 한신은 낮경기, 야쿠르트는 야간 경기로 시간대만 달랐을 뿐이다. 그래서 경기를 이기고도 선수들과 팬들은 고시엔에 남아서 야쿠르트 vs 요코하마 경기 결과를 보았고, 요코하마가 승리하면서 18년만의 우승이 결정되자 코시엔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했다.[20] 그나마 요코하마는 1960년, 1998년 두 번 한 리그 우승에서 모두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해서 한신보다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가 많았으며, 2017년 후쿠오카에게 패하기 전까지는 일본시리즈 승률 100%였다. 게다가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진출한 일본시리즈 승률은 여전히 100%다.[21] 히로시마는 총 9회. 1975, 1979, 1980, 1984, 1986, 1991, 2016, 2017, 2018(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년도)[22]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2022년 현재는 박근혜, 문재인과 현직 윤석열이 추가되었다.[23] 롯데 자이언츠가 1982년 KBO 리그 원년 멤버로서 1984년 우승까지 불과 2년이란 기간이 지났고 이것 또한 구단의 첫번째 우승이다. 1935년 창단해 1985년, 무려 50년이란 기간을, 그것도 구단의 첫번째 우승기록인 한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에어컨 앞에서 부채질하는 형국인 것이다. 물론 1949년까지는 일본시리즈가 없었기에 실질 햇수는 35년이지만 그래도 정말 오랫동안 우승 못한 건 사실이다.[24] 다만 이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한 대한민국과 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의 차이점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나라를 뒤엎을 큰 잘못이 아닌 이상 대통령의 임기가 보장되는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은 내각제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상 그만큼 수상이 정해진 임기를 대부분 못 채우고 자주 바뀌기 때문.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에 일본은 수상이 무려 5번씩이나 바뀐 적도 있었다.[25] 게다가 헤이세이 연간 단 한차례의 일본 시리즈 우승도 이루지 못했다는 점 역시 수치라면 수치인데 히로시마 역시 헤이세이 연간우승이 없지만 그래도 몇번이나 우승은 해봤기에... 결국 2023년 레이와 시대에 와서야 일본시리즈에 우승했다.[26] 애초에 최대 라이벌이 자이언츠인데다 한신 - 자이언츠 전이 사라지면(교류전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다) 그만큼 인기와 흥행을 보장하기는 힘들게 된다.[27] 주니치 원정과 요미우리 홈 경기[28] 경기 종료 직후 분노한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카메라를 부수는 등 난동을 피우자, 요미우리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우승 확정 후 관례였던 우승 감독 헹가레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29] 당시 허용 투수가 '한신 킬러'로 정평이 나 있던 마키하라 히로미로, 2022년 사사키 로키 이전까지 일본프로야구의 마지막 퍼펙트 게임 기록 보유자였다.[30] 한신은 여름 고시엔 대회로 인해 홈구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연속 원정을 다니게 되는데 이 기간 승률이 좋지 않은 편이다.[31] 은퇴 후 대만프로야구에서 코치를 볼 때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다.[32] 다만 외야나 1루도 가끔 보기도 했었다.[33] 공교롭게도 리그 우승을 좌절시킨 경기는 주니치 드래곤즈 전이었고 그 경기의 주니치 선발 투수는 요다 츠요시, 포수는 야노 아키히로였다. 29년 후 그 요다 츠요시는 주니치의 감독으로서 한신의 리그 우승의 꿈을 좌절시켰다.[34] 요미우리는 130경기 67승 63패, 한신은 132경기 67승 63패 2무. 당시에는 무승부는 재경기 규정이 있어서 각 팀들 시합 숫자가 다른 경우가 있었다.[35] 이 잡지는 9월 3일, 요미우리와 5게임차 벌어진 1위를 기록하고 있을 때 나왔다. 5절못??[36] 이게 역대로 전반기에 매직넘버 켜진 4팀(65난카이, 95오릭스, 03한신, 그리고 08한신) 중 유일하게 리그 우승을 못 한 사례다.(...) 공교롭게도, 저 팀들 중 일본시리즈를 우승한 팀은 없다.[37] DTD라고는 하지만 사실 8~9월에 한신은 5할승부는 했다. 정확히는 8월 초에 후반기 시작하자마자 5연패+1승+3연패로 한 번 고꾸라지기는 했는데 8월 말에 5연승+1패+2연승으로 다시 회복한다. 8월 25일 기준 승패마진 +10에서 9월 21일 기준(이 날 요미우리는 세리그 공동 1위를 기록한다.) 승패마진 +23까지 만든 교진이 대단했을 뿐.[38] 그렇기 때문에 DTD보다는 SK 와이번스의 2019년 행보에 더 가깝다.[39] 중간에 0-0 무승부가 있어 3연속 완봉승에는 실패했다[40] 전북 현대 모터스가 대전 시티즌에게 털린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충격이다. 물론 히로시마는 과거에는 몰라도 2013년 현 시점에서는 엄밀한 의미의 시민구단은 아니지만. 하지만 돈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FA 영입 선수가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없다.[41] 참고로 나카타, 츠루오카 신야, 스탠드리지 세명 모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했다.[42] 다만 2015년 시점에서 보면, 이와타 미노루, 이와자키 스구루, 고졸 또는 대졸 신인들이 나머지 선발 두 세자리를 메우는 식으로 운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