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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2,952,301명[기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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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이우의 시기(市旗). |
2. 명칭
언어별 명칭 | |||
우크라이나어 | Київ (Kyjiv, 키이우)[16] | ||
러시아어 | Ки́ев (Kiyev, 키예프)[17] | ||
세르비아어 | Кијев (Kijev, 키예브) | ||
폴란드어 | Kijów (키유프) | ||
영어 | Kyiv (공식) | Kyiv/Kiev (민간) | |
한국어 | 표준어 | 키이우[우] | 키예프[러] |
문화어 | 끼예브 또는 끼이브 |
영어 표기로는 러시아어 표기 'Ки́ев(Kíjev)'에서 유래한 'Kiev'가 그동안 일반적으로 쓰였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사실상 이 명칭은 사장되었다. 현재 대다수의 해외 언론에서 더이상 Kiev라는 표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Kyiv'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CNN, 워싱턴포스트, BBC, AP통신, 로이터 등 대다수의 주요 매체에서 Kyiv라 표기하고 있다. 이전에도 그동안 우크라이나 정부는 탈러시아 작업의 일환으로 Kiev를 하나둘씩 Kyiv로 고쳐나가고 있고 영어권 언론도 점차 이를 따르는 추세였다. 다만 우크라이나 내부에도 러시아어 인구가 많은 등[20] 현실적 이유가 겹치다 보니 Kiev 표기를 철저히 버리진 못하고 있었으나 2022년 러시아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어의 공식 사용이 배제되고 있다.[21] # 한국 정부의 공식 표기도 오랫 동안 '키예프'였다. # 다만, 키이우를 제외한 다른 도시들의 경우 '리보프'를 '리비우'로 바꾸고 '하리코프'를 '하르키우'로 바꾸는 등 러시아어식 지명을 우크라이나어식으로 바꾸는 현상은 침공 이전에도 있었다.[22]
고대 동슬라브어로 키이우는 Кꙑєвъ, 즉 '크예우' 내지는 '크예브'와 비슷하게 발음되었다. 당시 в의 발음이 /w~ʋ/였기 때문이다. 고대 동슬라브어에서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가 분화할 때 두 언어는 각각의 음운 변동 과정을 거쳤다. 이 두 언어는 어말의 단모음 ъ 탈락을 모두 겪었으나, 각각 다른 음운 변동을 겪기도 하였다. 러시아어의 경우 в의 발음이 /v/가 되고, 연구개음 뒤의 ы가 и로 변했으며 단어 끝에 위치한 유성음이 무성음이 되는 현상으로 /v/가 /f/로 바뀌어 현재 발음인 '키예프'로 정착된 것이다. 이와 반면에 우크라이나어에서는 в의 발음이 계속 /w~ʋ/로 발음되었고(현재에도 그러하다), 경음인 연구개음이 보존되었으며[23], 일부 구개음화된 е, 즉 /ʲe, je/의 발음이 /ʲi, ji/ 로 바뀌는 '이카비즘'이라고 하는 음운 변동을 거쳐 현재의 '키이우' 발음이 된 것이다.
2022년 러시아와의 전쟁이 터지자, 트위터 등지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ˈkɪjiw/ 발음을 소개하거나 'Kyiv'로 철자를 고칠 것을 촉구하는 영상이 호응을 얻고 있다. 2022년 3월 1일에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은 한국 내에서 잘못된 명칭으로 본국의 수도를 부르고 있다며 크이우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을 요청했다. 해당국 정부 요청에 따라 공식 국명 표기를 러시아어식인 그루지야에서 영어식으로 변경한 조지아와 유사한 사례. 러시아에 부역하고 있긴 하지만 러시아어식인 '벨로루시'를 현지식 명칭인 '벨라루스'로 변경할 것을 비슷한 시기에 요청한 벨라루스와도 비슷하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페이스북 [24]
국립국어원과 KBS 한국어 연구부의 자문을 받아, 3월 1일 KBS 뉴스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러시아어식에 가까운 키예프라는 명칭 대신에 우크라이나어식 명칭에 가까운 키이우라고 부르기로 했다. # 우크라이나어의 и는 /ɪ/(근전설 평순 근고모음) 발음으로[25], 음성학적으로 봤을 때 한국어의 'ㅡ'에 해당하는 /ɯ/(후설 평순 고모음)보다는 'ㅣ'에 해당하는 /i/(전설 평순 고모음)에 더 가깝다. 또한 이 발음은 영어 단어 bit, 독일어 단어 bitte의 i 발음과 비슷하다. 따라서 국립국어원과 KBS에서는 음성학적 요소와 해당 발음을 'ㅣ'로 옮기는 다른 언어와의 표기 통일성을 고려하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요청한 '크이우'가 아닌 '키이우'를 채택하였다.[26][27] KBS에 이어 3월 2일 오전 중앙일보가 우크라이나식 표기를 사용하기로 했으며, 이후 3월 2일 오후, 경향신문, YTN, 연합뉴스, 조선일보, JTBC, MBC, SBS 등이 '키이우', '하르키우' 등 우크라이나 발음대로 표기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대다수의 국내 언론들은 키이우라고 표기하고 있다.
2022년 3월 2일, 국립국어원은 '우크라이나어 한글 표기 모음'을 발표하면서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지명 표기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 또한 3월 4일 수정을 통해 몇몇 지명이 추가되었다. 다만 이는 확정 표기는 아니며, 향후 정부·언론 공동 외래어 심의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2022년 3월 3일, 대한민국 외교부는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 국립국어원과의 협의를 통해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식 지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2022년 3월 10일, 국립국어원은 '키이우'를 비롯한 12개 지명에 대한 심의를 완료하였다. # 국립국어원은 우크라이나어 표기와 관용 표기(러시아어 표기)를 함께 쓸 수 있다고 밝혔다. 즉 기존에 사용해 오던 러시아어 표기인 '키예프'도 틀린 표기는 아니라는 것이다.[28]
북한의 경우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대외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기에[29] 예나 지금이나 '끼예브'로 표기한다.
3. 역사
키이우 정착 초기 시절 |
몽골 제국 침공 시절 |
결국 이 일로 북쪽의 노브고로드 공국과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에 주도권을 내주었고, 이후 블라디미르-수즈달에서 갈라져나온 모스크바 대공국이 키이우 계열 공국들을 완전히 정리하면서 동슬라브 지역의 역사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중심으로 흘러갔다.
14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킵차크 칸국의 지배로부터 키이우 일대를 해방시킨 이후로 15세기까지 리투아니아의 영토였으나 타타르족이 계속 침략하여 회복이 늦어졌다. 16세기 루블린 조약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연방 국가로 합쳐지는 와중에 키이우는 폴란드 왕국의 도시가 되었다. 한동안 키이우 시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요새 도시 중 하나에 불과했으나 코사크 헤트만 페트로 사하이다니치의 지도하에 다시금 부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키이우는 인쇄소를 적극 운영하고 성직자들의 부패를 일소하며 기강을 세워 우크라이나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1632년 페트로 모힐라가 세운 키이우-모힐라 아카데미는 학생들에게 서유럽 수준의 교육을 제공했으며 종교뿐만 아니라 세속 교육에서도 최고급이었다.[31] 주 코사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봉기한 이후(대홍수 문서 참조) 키이우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9세기 말에는 러시아 산업혁명의 한 중심지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1934년에 우크라이나 공화국은 수도를 하르키우에서 키이우로 옮겼다. 이 기간 중에 인구가 급속도로 팽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시절 |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현장이 키이우에서 불과 100 km 떨어진 곳이었다. 키이우는 체르노빌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로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천안 정도의 거리에 불과하다. 게다가 말이 100 km지 행정구역 상 체르노빌이 있는 프리피야트는 키이우 주에 속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체르노빌 폭발 사고 당시 2차 증기 폭발로 원전 바닥이 완전히 녹아버릴 위험성이 제기되었다. 그렇게 되면 키이우의 상수원인 드니프로 강은 그대로 방사능 오염이 되기 때문에 도시 전체를 고스란히 버려야 하는데, 당시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 현장에서 3명이 지하로 내려가 배수 밸브를 개장하는 영웅적인 행동으로 성공한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32] 게다가 운 좋게도 사고 이후 바람이 며칠간 거의 줄기차게 남풍이 불었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치고는 방사능 낙진의 피해가 최소화되었다.
당시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폭 피해를 소련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 정부가 완전히 은폐하였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사고 며칠 후 키이우 축제가 있었는데, 당시 우크라이나 당국은 축제를 취소하기는커녕 강행하여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방사능에 많이 피폭되었고, 1986년 키이우 5월 축제와 관련된 모든 사진 기록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정부가 완전 말소했다고 한다.[33]
1991년 소련 연방 유지 투표에서는 투표에 참가한 소련 9개 공화국의 대도시들 중에 유일하게 반대표가 다수였다(44%). 현재 키이우는 서부 우크라이나의 리비우와 함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친서방 성향이 가장 강한 도시인데, 이미 이때부터 조짐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1991년 8월 소련이 해체되고 각 공화국이 독립함에 따라 키이우는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수도가 되었다.
유로마이단 사진 |
<rowcolor=#ffffff> 수도 키이우에서 출발하는 피난 행렬 #영상 |
<rowcolor=#ffffff> 공습에 대응하는 키이우의 우크라이나군 방공 시스템# |
4. 교통
시내 교통비는 비싸봐야 한화 약 250원 정도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도시철도: 키이우 지하철이 운행 중이고, 3개의 노선이 운행 중이다. 2025년 이후에는 4호선(오렌지색)도 개통될 예정이지만 전쟁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과거 소련에서 중요한 노선이기도 했고 연식도 오래되었다.
- 기타 시내교통: 경전철, 노면전차, 버스, 미니버스, 트롤리버스 등이 있다.
- 철도: 키이우 역에서 모스크바 키옙스키 역, 몰도바, 폴란드, 헝가리 등 주변 각국으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다. 하지만 최소 16시간 이상은 가야 하는 건 함정. 그렇기 때문에 기차보다 비행기를 선호하는 추세이다.[34] 기차는 일반 열차와 고속 급행 열차(인터시티[35])로 나뉘는데 일반 기차는 1, 2, 3등석이 있고 장거리 열차는 모두 침대 칸이다.
- 공항: 보리스필 국제공항과 줄리아니 국제공항이 있다.[36] 보리스필 국제공항은 키이우 동쪽 29km 지점에 있는 단 러시아 노선은 상호 제재로 단항했고 에어 아스타나, 터키항공, LOT 폴란드 항공 등을 이용하여 들어와야 한다. 키이우 시내에 있는 키이우 줄리아니 국제공항은 유럽 서부로 통하는 공항이다. 안토노프 항공이 사용하는 호스토멜 공항도 있지만 화물 공항이어서 여객 노선은 취항하지 않는다.
5. 관광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문화유산 | 키이우의 성 소피아 대성당과 수도원 건물들, 키이우 페체르스크 라브라 Київ: собор святої Софії та прилеглі чернечі будівлі, Києво-Печерська лавра | 르비우 역사 지구 Львів — ансамбль історичного центру | 스트루베 측지 아크 Геодезична дуга Струв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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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키예프의 성 소피아 대성당과 수도원 건물들, 키예프 페체르스크 라브라 Киев: Софийский собор и связанные с ним монастырские строения, Киево-Печерская лавра | 1990년 이찬 칼라 Ичан-Кала | }}}}}}}}} |
키이우 시내에 위치한 성 소피아 대성당.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키이우의 성 소피아 대성당과 수도원 건물들, 키이우 페체르스크 라브라 | |
영어 | [37] | ||
프랑스어 | [38] | ||
러시아어 | [39] | ||
국가·위치 | 우크라이나 키이우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0년 | ||
등재기준 | (i)[40], (ii)[41], (iii)[42], (iv)[43] | ||
지정번호 | 527 |
문제는 박물관을 비롯한 관광 시설 상당수가 많기는 많은데 성의 없이 방치되어 있다는 것. 박물관이 입장료가 한화로 200~400원 정도로 아주 싸서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설명이나 볼 게 진짜 아무것도 없다든지 하는 일이 다반사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몽골 제국, 나치 독일이나 종교를 탄압한 공산 정권 등에 의해 역사적인 건물들이 정기적으로 철저히 파괴되어 왔던 데다가, 근대 시절 이후로 우크라이나의 정부 자본이 흑해 해변 레저 관광에 집중되어서 아무래도 키이우 구시가지의 복원과 개발에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화 역사 관광을 목적으로 키이우를 방문했다면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44] 그나마 정부가 친유럽 행보를 밟게 되면서 서유럽에서 자본도 들어오고, 우크라이나 애국심 부흥을 위한 정부의 역사유물 복원 노력도 늘어나면서 점점 상황이 개선되어가는 중.
그래도 워낙 역사가 깊은 고도기도 해서 우크라이나 상황이 안정화되고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개발 및 복원할 수 있는 관광자원은 상당히 많다. 다른 관광지도 그렇겠지만 여기는 안내가 부실하다 보니 더욱더 알면 알수록 볼만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여행금지 상태이다.
- 데샤틴나 성당 터 Десятинна церква
키이우 최초의 석조로 지어진 성당이 있던 곳으로, 블라디미르 대공을 비롯하여 교황 클레멘스 1세의 유해가 묻혀있던 곳이다. 중세시대 키이우 도시의 핵심 중 핵심었던 곳이었으나, 몽골족에게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45] 이후 19세기에 새로이 재건되었으나, 사상적 이유로 종교를 탄압한 공산 정권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재건계획이 잡혀있다.[46] 우크라이나 국립 역사 박물관이 이 터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 성 소피아 성당 Собор святої Софії (Софійський собор, Софія Киівська) Saint Sophia Cathedral, Kyiv
같은 이름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 이름을 따와서 지어진 대성당. 1037년 키예프 루스의 야로슬라프 1세 대공이 비잔틴 양식으로 만들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우크라이나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는 물론 그리스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에서도 소유권을 주장하여 어떤 교단의 소유도 아니게 되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정부 소유의 박물관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으며, 전례의 경우 각 교단이 돌아가면서 할 수 있게 되어있다. 겉으로 보면 황금과 파스텔 톤 도색으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오래된 성당이 아닌 것 같지만 내부에는 일부러 옛 모습으로 남겨둔 부분도 있어 천년의 세월을 느낄 수 있다.
- 성 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 Михайлівський Золоверхий моностир
본래 키예프 루스 시절인 1113년 스뱌토폴크 2세에 의해 지어진 수도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레 황금으로 장식한 돔이 있는 성당이 있었으나 몽골족에 의해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이후 꾸준히 복원과 증축을 거치고 황금을 씌운 돔과 지붕도 늘어나서 최종적으로 18세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930년대에 우크라이나 SSR이 행정수도를 하르키우에서 키이우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정부 청사 건설을 위해 파괴했다가 소련 해체 이후 18세기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하였다. 현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본부가 위치해있다.
- 성 안드리 성당 Андріївська церква
십일조 성당 터 옆의 안드리 언덕에 18세기에 지어진 성당이다.
- 독립 광장 Майдан Незалежності(Майдан), 흐레시차티크 거리 Хрещатик
우크라이나 독립을 이끌어낸 1990년 독립 시위가 처음 시작된 곳이며, 현재 우크라이나 광장 정치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유로마이단도 이곳을 주 무대로 일어났다. 원래 흐레샤티크 광장이었으나, 독립 이후 1991년 독립 광장으로 명명되었다. 이 광장 앞을 지나가는 큰 도로가 흐레시차티크 거리로, 키이우의 중심가이다.
- 키이우 동굴 수도원(페체르스크 수도원 Києво-Печерська лавра) Успенська Києво-Печерсьска лавра УПЦ(МП) Kyiv-Pecherck Lavra
지하에 개미집처럼 깊고 복잡한 터널을 따라서 만들어진 역사깊은 대수도원. 성인들의 실제 미라가 다수 안치돼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다.
- 제2차 세계 대전 박물관 «Національний музей історії України у Другій світовій війні. Меморіальний комплекс» + 조국의 어머니상 «Батьківщина-Мати»
키이우 동굴 수도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있다. 거대한 어머니상은 실제로 올라가볼 수 있다. 이 조국의 어머니상이 들고 있는 방패에는 소련의 국장이 박혀 있는데, 소련 해체 후 점점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이 강해지자 소련 국장을 떼어내자는 얘기가 나왔으나 예산 문제로 미뤄지고 있었다.[47]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하면서, 아예 소련과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하는 의미로 소련 국장을 떼어내기로 결정했고, 대신 붙일 우크라이나의 전통 문양인 트라주브를 만드는 것이 공개되었다.
- 우크라이나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 Український Національний музей «Чорнобиль»(Національний музей «Чорнобиль»)
멀지 않은 체르노빌에 직접 가 볼 수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시내에서도 체르노빌 관련 전시를 볼 수 있다.
6. 행정 구역
키이우의 행정 구역은 2001년 이래 10개 구(район)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7개 구는 드니프로강 우안에, 3개 구는 좌안에 위치해 있다. 2021년 기준 각 구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
구 | 면적(km²) | 인구(명) | 명/km² | |
셰우첸키우스키 구 | Шевченківський район | 27.0 | 215,924 | 7,997 |
솔로미얀스키 구 | Солом'янський район | 40.0 | 384,616 | 9,606 |
스뱌토신스키 구 | Святошинський район | 103.0 | 341,886 | 3,319 |
오볼론스키 구 | Оболонський район | 110.2 | 318,137 | 2,887 |
페체르스키 구 | Печерський район | 20.0 | 163,672 | 8,184 |
포딜스키 구 | Подільський район | 34.0 | 209,133 | 6,144 |
홀로시이우스키 구 | Голосіївський район | 156.3 | 254,014 | 1,625 |
드니프로 강 우안 | 1,887,382 | |||
다르니츠키 구 | Дарницький район | 134.0 | 348,401 | 2,600 |
데스냔스키 구 | Деснянський район | 148.0 | 368,461 | 2,490 |
드니프로우스키 구 | Дніпровський район | 66.7 | 357,936 | 5,366 |
드니프로 강 좌안 | 1,074,798 | |||
키이우 시 | 836 | 2,962,180 | 3,543 |
7. 여담
이곳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레비 에슈콜 총리가 태어났다. 많은 이스라엘 극우파들이 그의 생가를 방문하러 오기도 한다.대학으로는 키이우 대학교, 키이우 공과대학교 등이 있다.
소련 시절, 이곳 지명을 따서 4척이나 건조된 키예프급 항공 중순양함과 설계 도면으로만 존재하는 키예프급 구축함이 있다.
이곳에 소재한 축구팀 디나모 키이우는 우크라이나의 국민 축구팀이자, 구소련 전체를 대표할 만한 명문 구단이다.
러시안 레일로드의 세 주요 노선 중 하나는 모스크바와 이 도시를 연결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생활 물가가 월등히 비싼 편이다. 이 점은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으니, 다른 지역에서 키이우로 상경 온 젊은 대학생들이 우크라이나의 열악한 경제 사정상 심각한 생활고를 겪는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반의 소득 수준은 떨어지지만, 키이우는 집값이 엄청나게 비싸고 월세비도 높기 때문에 돈이 많은 불로소득자들이 많은데 키이우 시내에 외국인들과 부유층들의 화려한 생활, 하루 숙박비가 우크라이나 평균 월급에 해당하는 호화 호텔들이 즐비한 구시가지, 널려 있는 고급 승용차를 보면서 이들이 느끼는 우울감이나 소외감은 심각하다. 고학력자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대학생들 중 상당수가 범죄 혹은 매춘의 길로 빠지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론 물가가 비싼 만큼 소득 수준도 도네츠크와 함께 우크라이나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으로 키이우의 월급 수준은 러시아 전체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고,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다만 우크라이나치고는 물가가 비싸다고 해도 옆나라들(EU 국가들)보다는 전반적으로 훨씬 싸기 때문에 러시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같은 곳을 여행하고 넘어왔다면 여기는 그렇게 비싸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유럽 문화권이 대체로 비싼 편인 외식 물가도 잘 쳐줘야 한국과 비슷한 정도고 마트 물가는 비교도 안 되게 싸다.
지하철에 사람이 별로 없는 칸에서 우크라이나 남성 한 명이 유창한 영어로 달러가 가득 들어 있는 지갑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며 같이 나누자고 제안하는 모습을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뻔한 사기에 사람들이 걸리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는데, 키이우 시에 성매매 원정 관광 온 외국인들이 바가지 뒤집어쓰고 돈이 거덜난 뒤에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낚이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현재는 터키나 러시아까지 원정을 왔는지 이스탄불, 모스크바에서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저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면 어디선가 경찰복이나 경찰 증명서(당연히 가짜다)를 가진 패거리가 와서 "어디서 지갑이 없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당신 그 지갑이다. 검사 좀 해야겠으니 돈 다 꺼내라!"라고 강압적으로 돈과 피해자 지갑 속의 돈까지 꺼내게 한 다음에 스리슬쩍 갖고 빈 지갑만 돌려주는 수법에 당하게 된다. 이때 러시아어로 튕기면 금방 도망간다.[48] 러시아어를 못하고 영어만 쓰는 외국인들이 범죄자들의 주 표적이다. 기차역의 물건 보관함은 비밀번호 설정이 유명무실한 수준. 기차역 물품 보관함 직원들과 절도범들이 짜고서 비밀번호를 푼 뒤 비싼 물건을 훔쳐가고 잡지도 못하는 일이 태반이다.
2011년 8월 8일 이후부터 이상 소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코끼리가 울부짖는 듯한 금속성 소음인데, 스펙트럼 분석을 해보면 절대 동물의 발생 기관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리는 여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소음에 관한 추측은 몇 가지가 나와 있는 상태인데, 자세하지는 않지만 여기를 참고하자. 항목을 보면 과학자들이 해명한 것도 나오지만 한국에선 워낙 마이너한 이슈라 관심이 없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대구광역시에서 2011년 4월경 관측되었고 그 외 서울 근교인 성남시, 이천시 등에서도 들렸다.
헤비급 복싱 챔피언 선수로 유명했던 비탈리 클리츠코가 현재 키이우 시의 시장으로 당선되어 공직에 있으며, 2019년 재선에 성공해 현재까지 시장직을 수행 중이다. 시장으로서의 능력 역시 인정받았으며, 우크라이나의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차이콥스키 국립 음악원이 있다. #
2022년 4월 24일 함부르크와 '연대와 미래를 위한 협정'을 체결하여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가 되었다. 이 협정은 함부르크 상공회의소의 지원과 #WeAreAllUkrainians 이니셔티브 및 Hanseatic Help Association의 협력으로 시행될 것이라고 한다. 함부르크가 키이우의 재건을 지원하고 함부르크 시민들의 인도적 지원을 모을 것이라고 하며, 향후 두 도시 간에 교육, 문화, 과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
소련 건국 60주년에 만들어진 키이우 우정의 동상[49]이 있었는데 전쟁 개시 2개월이 지나고 철거당했다. 키이우시는 동상 자리에다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올릴 계획이다.
1979년에 수도 중심부에 세워진 조국 기념비는 칼과 방패를 들고 있다. 2023년 8월에, 방패에 새겨진 소련 문양을 삼지창 문양으로 교체했다.
8. 자매결연 도시
[우] 우크라이나어 발음 /ˈkɪjiw/을 살린 표기. 한국방송공사(KBS)와 국립국어원이 합의한 우크라이나어 한글 표기이며, MBC, SBS, YTN, JTBC, 한겨레, TV조선 등에서도 채택했다. 현지인의 발음 비교 영상 및 우크라이나인 유학생의 설명 참조.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 측에서는 '크이우'로도 표기한다.[러] 러시아어 표기.[기준] 2022년 기준.[기준] [5] 우크라이나어: Мати міст руських[6] 영어: Mother of Rus' Cities[7] 러시아어: Мать городов русских[8] Місто, де все починаєтьс[9] Города-герои[주소] 12, Striletska St., 01901, Kyiv, Ukraine[11] 한국시간으로 2022년 2월 13일 0시부터.[우] [러] [14] 과거에는 러시아어 비율이 상당히 큰 비율을 차지하였고 2016년 이전까지는 키예프가 공식 도시명이였으나 탈공산화, 우크라이나어 사용 캠페인 등이 있었으며 2016년에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에 의해 키예프의 공식적인 도시명이 키이우로 개명 되었으며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우크라이나어가 헌법으로 공용어로 지점됨에 따라 현재는 우크라이나 내에서는 키예프 보단 키이우로 더 많이 불린다.[15] 우리나라로치면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의 느낌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16] 실제 발음은 [ˈkɪjiu̯\]로 키이우 보단 크이유에 더욱 가깝다.[17] 다만 실제 러시아어 발음도 [ˈkʲi(j)ɪf\]로 '키이프'에 가까워 우크라이나어 발음과 비슷하다. 1918년 문자 개혁 이전 표기로는 Кі́евъ.[우] 우크라이나어식 독음[러] 러시아어식 독음[20]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현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모어는 러시아어이다. 그들은 모두 대통령이 된 이후 우크라이나어 사용 빈도를 늘렸다.[21] 두 단어의 2022년 구글 검색어 트렌드 비교 현황으로 보면, kyiv:kiev 비율이 개전 주간인 2월 20-26일의 69:100 에서 1주일 후 현재 70:91로, 사용 빈도의 차이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22] 사실 여러 국가와 민족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유럽의 특성상 국제적으론 특정 지역이 재소한 국가의 언어와 다른 나라의 말로 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스흐라벤하어는 영어인 헤이그란 명칭으로, 이스탄불 해협은 그리스어인 보스포루스 해협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불린다.[23] 이 경우는 и가 도로 탈경구개음화되어 ы와 и가 하나의 모음으로 통합된 경우에 가깝다.[24]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국 정부의 공식적인 명칭 정정 요청이 있을 경우 이걸 거절한 적이 없다.[25] 정밀 전사로는 약간 조음점이 내려간 근전설 평순 중고모음이다(Rusanivs’kyj, V. M.; Taranenko, O. O.; Zjabljuk, M. P.; et al. (2004)). 다이어크리틱 없이 표현할 수 있는 기호가 없기에 가까운 ɪ를 쓰는 것.[26] 어쩌면 대사관 측에서는 우크라이나어의 и /ɪ/와 і /i/를 한글 표기에서 구별하고 싶었기에 한국어 ㅣ에 더 가까운 і /i/는 ㅣ로, 더 거리가 있는 и /ɪ/는 ㅡ로 적도록 정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어에는 ㅣ로 옮길 수 있는 글자가 и와 і 외에도 ї /ji/와 й /j/가 있어 총 4개의 문자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다만 대사관처럼 и를 ㅡ로 적어도 중복을 피하기는 어려운데, 원어에서 모음 음가가 없는 경우에 한국어의 한글 표기에 삽입되는 ㅡ와 겹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Крим의 한글 표기로 대사관은 '크름'을 제시했는데, 두 번째 ㅡ는 и를 옮긴 게 맞지만 첫 번째 ㅡ는 한국어의 한글 표기에서 'ㅋ름'과 같은 표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삽입된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크름'이 원래 Крим인지 Кирим인지 알 수 없다. 결국 и를 ㅣ로 적건 ㅡ로 적건 겹치는 경우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어에서도 ㅣ로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и, й, ы 등 3개가 있으며, 실제로도 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ㅣ로 표기한다.[27] 우크라이나어의 и(/ɪ/)보다도 더 한국어 ㅡ(/ɯ/)에 가까운 폴란드어의 y와 러시아어의 ы(공통적으로 /ɨ/)도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에서는 ㅣ로 옮긴다. 다만 슬라브어파에 속하지 않는 루마니아어는 예외적으로 /ɨ/에 해당하는 â와 î를 ㅡ로 옮긴다. #[28] 그리고 이 영향으로 국내 언론들도 우크라이나 실효지배 지역들의 표기를 우크라이나 식으로 바꿨는데, 예를 들어 지금은 러시아가 실효지배중인 아브데옙카 같은 경우 2017년 러시아식 표기인 아브데예프카 등으로 기제했다가 아우디우카로 바꿔 전하기 시작했다.[29] 헝가리를 '웽그리야'에서 '마쟈르'로 바꾸듯 러시아식에서 현지어식으로 지명을 바꾼 경우는 크로아티아를 빼고 러시아와 척을 지지 않는 국가다. 친러 국가인 세르비아 입장에 따르면 세르비아어의 방언으로 크로아티아의 지명을 표시했다고 할 여지는 있지만 말이다. 예루살렘도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배경에서 '꾸드스'라고 부른다.[30]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 일대.[31] 페트로 모힐라는 우크라이나어 서적을 최초로 인쇄한 인물이기도 하다. 유럽의 민족 형성에서 종교적 정체성 및 문어 확립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 민족사에서 모힐라의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정작 모힐라는 루마니아인 대귀족이다.[32] Alexei Ananenko(생존), Valeri Bezpalov(생존), and Boris Baranov(2005년 심장마비로 사망).[33] 당시 우크라이나 서기장은 훗날 자살했다는 괴소문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당시 우크라이나 SSR 서기장 셰르비츠키는 1990년에 자연사했다.[34] 더 익스트림한 여행을 원한다면 장거리 버스도 있다. 하지만 최소 누워서 가는 침대 칸 기차보다 더욱 힘들다.[35] 인터시티 열차는 한국 현대로템으로부터 수입한 열차이다.[36] 전자는 한국으로 치면 인천공항, 후자는 김포공항에 해당한다.[37] Kyiv: Saint-Sophia Cathedral and Related Monastic Buildings, Kyiv-Pechersk Lavra[38] Kyiv : Cathédrale Sainte-Sophie et ensemble des bâtiments monastiques et Laure de Kyiv-Petchersk[39] Киев: Софийский собор и связанные с ним монастырские строения, Киево-Печерская лавра[40]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4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4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4] 그런 상황이었는데 한 술 더 떠서 크림 반도는 러시아가 집어가고, 오데사를 비롯한 흑해 연안 일대에는 계엄령이 나오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관광업은 완전 몰락했다.[45] 블라디미르 대공과 클레멘스 1세의 유해는 이후 동굴 수도원과 성 소피아 성당으로 재안치되었다.[46] 복원이 되면 우크라이나 정교회 소유가 된다고 한다.[47] 그래도 레이저를 쏴 방패에 트라주브가 비춰지도록 한 적은 많았다.[48] 한 사례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호텔 직원하고 지하철 사기꾼밖에 없었다고 한다.[49] 러시아 SSR 노동자와 우크라이나 SSR 노동자가 함께 소비에트 노동 훈장을 들어올리는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