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2:41:54

차이잉원/2016년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차이잉원
1. 개요
1.1. 5월1.2. 6월1.3. 7월1.4. 8월1.5. 9월1.6. 10월1.7. 11월
2. 차이잉원 총통 1기 린취안 내각(林全內閣)(2016년 5월 20일 ~)

1. 개요

중화민국 제14대 총통차이잉원의 총통 취임식 이후 행적을 모아둔 페이지이다.

1.1. 5월

(차이잉원의 취임연설 영상)
연설 전문(중국어) 연설 전문(영어)
5월 20일 총통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차이잉원은 취임식 본행사에 앞서, 전통에 따라 국부 쑨원의 초상화 앞에서 총통 취임 선서를 했다. 동시에 같은 민진당 소속의 쑤자취안 입법원장으로부터 총통의 상징인 옥새 국새를 전달받는 의식도 진행했다. 취임선서 영상. 또한 평소와는 다르게 중화민국 국가를 완창하였다.

이날 차이잉원의 취임연설은 '경제 체질의 전환'(經濟結構的轉型), '사회안전망의 강화'(強化社會安全網), '사회 정의의 공평 실현'(社會的公平與正義), '동아시아 지역질서, 양안관계의 평화 안정'(區域的和平穩定發展及兩岸關係), 그리고 '외교와 글로벌 문제'(外交與全球性議題) 등 5개 주제를 다루었다. 특히 국내외의 관심을 집중시킨 양안관계에 대해서는 "1992년 이후 양안이 꾸준히 대화, 협상을 해왔으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92공식에 대한 부정, 인정을 모두 명확히 하지 않는 모호함을 보인 것이다.

취임식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총 3시간 동안 거행되었고, 식전 행사로 타이완 섬의 역사를 요약하는 현대무용이 펼쳐졌다. 여기에는 일본군의 원주민 탄압인 우서 사건, 중화민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인 1947년의 2.28 사건, 민진당의 기원을 제공한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 1990년의 야생백합화 운동, 그리고 마잉주 전임 총통에 정치적 타격을 가한 2014년의 해바라기 운동에 관한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견상 중화민국의 정치/사회적 민주화 성과를 보여준다는 취지였지만, 사실상 국민당을 공개적으로 디스한 것이나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당시 행사 풍경 물론 가짜 대만인진짜 대만인의 땅을 뺏고 진짜들은 가짜를 피해 높은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장면은 안 나왔다. 그리고 차이잉원의 취임 연설 후에 소년 합창단, 참석 청중들과 함께 민중가요 메이리다오(美麗島)를 함께 부르면서 정점에 달했다..[1]

중국은 차이잉원이 취임사에서 92공식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자 핵심을 우회하지 말라거나 '92공식'을 '92사실'로 대체했다면서 반발했다. 한국에서는 한국-대만 FTA를 시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오는 중이다.

파일:external/image.peoplenews.tw/0844895a-c64e-4d01-850f-5f864b9a04f0.jpg
취임식 직후, 린취안(林全) 행정원장(총리격), 린비자오(林碧炤) 총통부 비서장(대통령 비서실장격), 우자오셰((吳釗燮) 국가안전회의 비서장(국가안보실장격) 등 내각 주요 인사들의 임명에 관한 공문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총통 업무를 시작했다.

국방부장으로 예비역 공군 장성 출신의 펑스콴을 임명했다. 징궈 전투기를 비롯한 대만의 항공기 제조사인 한상항공공업(漢翔航空工業股份有限公司)의 사장을 역임한 인물인데, 방위산업의 활성화를 강조한 차이잉원 총통의 정책 의지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현역 고위장성을 퇴역 직후 국방부장으로 임명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전역한지 10년이 넘은 인물을 국방부장으로 임명했다는 점에서 문민통제를 고려한 인사로 평가된다.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하자마자 마잉주 정부 시절 결정된 '중국인 정체성 교육과정'을 전면 폐기하고, 천수이볜 정부 시절의 '대만인 정체성 교육과정'으로 회귀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기사 마잉주 정부의 색깔을 지우는 것은 물론 대만 독립 성향을 취임 직후에 곧바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첫 외빈 회담에서 중화민국이라는 언급을 안 하고 대만 정부(Taiwanese government)라고 언급함으로써 대만 독립 성향을 많이 보이고 있다.기사 이 소식을 들은 중국 측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실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대만 측과의 대화와 연락 기제(메커니즘)를 계속할 수는 없다"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여기에 중국은 차이잉원 총통 취임에 즈음하여 대만 점령을 가정한 군사훈련도 실시하는 등 차이잉원의 민진당 정부가 분리 독립에 나설 가능성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2016년 5월 23일 총통부가 신임 주미대표로 가오스타이(高碩泰)를 임명했는데, 직함을 기존의 '대표'(代表: representative)가 아닌 '대사'(大使: ambassador)로 발표했다.[2] 한국 기사 원래 대표는 차관급으로 파견하는데 이번에 차이잉원이 주미'대사'를 지명하면서 장관급으로 승격시켜 보냈다. 일단은 주재국인 미국은 기존의 '대표' 직함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적인 외교 관계로 규정 및 승격시킬 의향을 드러낸 것. 이는 1979년 미국과 대만의 단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3] 당연히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차이잉원 정부가 취임 직후부터 독립 성향의 행보를 실천에 옮겨나가자 중국 관영 언론은 "대만 신임 총통이 정치 문제에 있어 보다 극단적인 것은 결혼을 안해 사랑과 가족 생활에서 경험하는 감정적 균형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감행하고,[4] <환구시보>[5]"중국은 대만독립 세력에 대해 경각심과 교훈을 줄 수 있는 수단이 있고 반분열국가법에 따라 이들을 근원적으로 타격할 능력이 있다"고 경고했다."라며 전쟁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극단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6] 중국 공산당 차원에서도 대만 수출입을 본격적으로 제재하기 시작하면서(검역 강화 형식) 경제 제재에 가는 등, 양안관계 경색은 기정 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비슷한 시기에 마잉주 전임 총통이 퇴임 직전 일본의 오키노토리 섬 인근에 배치했던 순시선을 철수한다는 보도가 일본 언론으로부터 나오면서, 일본과의 타협 가능성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국 국민당은 물론, 민진당까지 "대일 저자세"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순시선 철수는 없다"고 발표했다.

5월 25일 펑스콴 대만 국방부 신임 장관은 입법원(국회) 청문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버틸지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최후의 한 명까지 싸울 것"이라는 군사적으로도 강경한 발언을 했다. 중국보고 배째라를 대놓고 선포한 것. 지금까지 내용이 취임 후 딱 일주일만에 벌어진 일들이다. 찾아보면 더 있다

총통 취임 일주일째 되는 날인 2016년 5월 26일에는 기존 대만이 대외적으로 쓰는 명칭인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 TPE)'라는 호칭을 폐지하고 국제 무대에서 '중화민국, 대만(Republic of China, Taiwan: ROC(TWN)'이라는 본국 국명을 그대로 쓰기로 하였다. 대만 기사한국 기사 하나의 중국이라는 힘의 논리를 앞세워 '중화민국'이나 '대만' 어느 쪽으로도 국명을 쓰지 못하게 하는 중국의 외교 압박을 스스로 견디겠다는 선택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행정원이 그렇게 쓰겠다는 것일 뿐 중화민국이란 국명이 바뀐 것은 아니다.[7]

5월 26일 같은 날 장샤오웨(張小月) 대륙위원회 주임(한국의 통일부 장관에 해당)이 "중국 대륙은 거기 있고 우리의 이웃"라고 표현하였다. 대만독립이라기 보다는 차이잉원이 예전에 리덩후이 시절에 디자인하였던 양국론(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은 특수한 관계의 별개국가)에 가까운 입장표현이었으나 기사 이 소식이 중국에 보도되자 대륙 네티즌들이 장샤오웨 주임에 대한 신상털이페이스북 테러에 나서고, 웨이보바이두 등에서 "'이웃'이라는 표현은 분명히 '양국론'을 뜻한다", "중국은 당신의 이웃이 아니라 바로 조국",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을 뿐"이라는 등의 중국공산당 입장에 충실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대륙위원회는 불과 9일 전에, 마잉주 퇴임 전이긴 하지만 '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을 재확인했다.

파일:external/static.ettoday.net/d1814805.jpg
2016년 5월 30일에는 동부 화롄의 공군 기지를 방문했다. 총통 취임 후 최초의 군부대 시찰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나는 3군 총사령관으로 지금 이후 국군의 영광과 불명예는 나의 영광과 불명예. 앞으로 항상 국군과 함께 하면서 개혁을 추진하고 국가를 보위할 것"이라며 영토/영공 수호 의지를 밝혔다. 기사 문제는 이 날 차이잉원이 군부대를 시찰하러 간 사이 대만의 사기, 절도 전과가 있는 40대 실업자가 흉기를 들고 총통부 청사에 침입을 시도하는 아찔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1.2. 6월

2016년 6월 1일 차이잉원 정부가 TPP 가입 및 FTA 확대를 위해 미국돼지고기 수입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국민당 입법위원(국회의원)들이 의장석과 발언석을 점거하고 국회 공성전이 벌어졌다.[8] 린취안 행정원장(총리)의 시정연설도 무산.

2016년 6월 4일 천안문 사태 27주년을 맞아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민이 중국을 전진시킬 수 있다", "대안'(對岸·중국)의 집권당만이 중국 국민의 과거 상처를 없앨 수 있다", "톈안먼 사태를 양안(兩岸·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영원히 말하지 못할 일로 만들지 마라", "언젠가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양측의 견해가 일치하기를 희망한다" 등의 중국공산당 비판 논조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에 대해서는 전임 마잉주 총통도 "중국이 톈안먼 사태를 제대로 평가하면 세계로부터 존경을 얻을 것", "양안 국민 간 거리를 좁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대파를 잘 대우해 양측의 공통된 핵심 가치를 만드는 것"이라며 차이잉원의 중국 공산당 공격을 지지했다. 본격 위 아 더 월드 기사

파일:external/img.ltn.com.tw/phpmZDDVA.jpg
2016년 6월 4일에는 동북부 이란(宜蘭)현 쑤아오(蘇澳) 해군기지를 방문하여 대만이 독자 개발, 건조한 투오장(沱江)급 스텔스 초계함에 승선했다. 이 자리에서 "국산 군함들의 건조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외교적 방해로 외국산 무기의 수입이 어려운 상황을 반영하고, 방위산업 활성화를 국내 경제의 부흥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를 반영한 것.

2016년 6월 들어서 대만과 일본 관계가 급격하게 개선되고 있다. 기사 셰창팅 주일대표가 일본 식품의 대만 수입 규제한 것을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이에 일본에서도 대만에 교향악단 파견 등을 거론하는 등 본격적으로 대만-일본 관계 개선 조짐이 보이고 있다.[9] 기사

이런 와중에 린취안 행정원장은 6월 3일 "(위안부 동원은) 자원일 수도 있고, 강제일 수도 있다. 여러 의견을 존중할 것"이라고 발언했는데, 여야와 언론을 막론하고 비판이 이어지자 하루만에 "여성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체제 폭력과 사회 구조적 요소로 인해 심신의 자주와 존엄에 상처를 입어서는 안된다"며 사과를 표했다. 이러한 대일 저자세 외교 행보에 대해 대만 유력 신문 <연합보>는 "미국처럼 법령으로 대만 방위공약을 약속하고, 무기를 판매하지도 않는 일본에 저자세를 취하여 얻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런 반중-친미 노선을 노골화하자 중국에서는 계속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만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폭스콘을 통한 애플이 부각되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은 대만으로의 무역액을 9%나 줄이고 요우커 방문을 15%나 줄여버리는 등 본격 대만 경제에 대해 조이기 공격에 나서고 있다. 이에 차이잉원 정부는 6월 9일 중국 본토에 진출했던 대만 기업들을 대만으로 돌아오게 하는 추진책을 발표하는 등 "중국은 필요없다"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2016년 6월 3일 총통부가 셰창팅의 주일대표 임명을 정식 발표했는데, 지난 5월의 주미 '대사'처럼 이번에도 주일 '대사'라는 호칭으로 발표했다.[10] 역시나 중국의 반발이 전망되고 있다. 기사

파일:external/img.ltn.com.tw/93.jpg
6월 7일에는 일명 '형산지휘소'(衡山指揮所)로 알려진 타이베이의 비밀 군 지하벙커에 설치된 중화민국군 합동작전지휘센터(聯合作戰指揮中心)를 방문, 중국의 군사 동향을 현장에서 보고받았다. 이날 방문은 총통 취임 이후에 실시된 육-해-공 3군의 주요 부대 시찰을 마무리하고, 중국의 군사적 압력 가중에 대한 대응 의지 표명에 의미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2016년 6월 9일 급진 친일단체 회원이 중일전쟁에 참전한 노병에게 폭언을 퍼붓는 사건이 일어났다. # 극우 단체들이 반일 시위를 벌였으며, 국민/민진 양당 지도부도 한 목소리로 비판하면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2016년 6월 18일 취임식에서 중화민국 국가를 부른 원주민 합창단이 중국으로부터 이미 확정되었던 초청을 취소당하자, 자서전 인세 50만 NTD(약 1800만원)을 기부했다. 기사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AKR20160627174100083_01_i.jpg
6월 하순부터 취임 후 첫 해외순방으로 중남미 방문에 나섰다.[11] 중간에 마이애미를 경유하면서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경제교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고 이후 파나마에서 파나마 운하 확대 개통식에 참석했는데, 방명록에 자신을 "대만(중화민국)의 총통"(President of Taiwan [R.O.C])이라고 서명했다. 이에 대해 '중화민국'보다 '대만'을 앞서 강조했다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중국 국민당 측에서는 자신의 직위를 분명히 하라며 공격하였고, 이에 시대역량측은 중화민국과 대만 모두 국제무대에서 쓰는 명칭인데 무엇이 문제냐면서 반박하였다. 한편 이번 방문이 종료된 직후 관련 예산이 다 떨어져 더 이상의 해외순방은 불가능하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전임 마잉주 총통이 퇴임 직전 순방을 간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고.

1.3. 7월

7월 1일 중화민국 해군이 훈련을 하던 도중 실수로 초음속 대함미사일 슝펑 3호를 오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사일은 조업하던 대만 어선에 충돌해(폭발은 하지 않았다.) 선장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고 8시간 후 사건을 통보받은 중국측은 왜 이리 늦게 알렸냐며 강하게 항의했다.[12] 당시 중국은 슝펑 3호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비행할 경우, 대만의 선제공격으로 간주하여 대응 공격할 방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통보가 늦은 이유는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되면서 마잉주 정권 시기의 핫라인이 끊긴 것에 있다.(...) 한편 여기에 대해서는 차이잉원 정권을 궁지에 빠트리려는 계획이 아니었냐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7월 21일 미국 유력신문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중화민국은 독립된 국가이며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매우 불공평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인터뷰 직후, 다수 언론에서 차이잉원 총통이 92공식을 정면 부정했다고 보도했는데, 정확히는 '중국이 92공식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라는 기한을 설정했다는 말이 사실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만은 이미 매우 민주적인 곳이며, 여론의 흐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기한을 설정하여' 중화민국 정부가 여론을 무릅쓰고 상대의 조건을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대답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시한부 조건'에 반대한 것이지, '92공식'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관련 내용. 다만 차이잉원은 92공식을 양안간의 정치외교적 '합의'가 아닌, '과거에 존재했던 논의' 정도로 의미를 희석시키는 모호성을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중국 입장에선 그 정도 표현도 매우 불만족스럽겠지만.



2016년 7월 26일 중화민국 입법원에서 기어이 민주진보당시대역량의 전원 찬성으로 중국국민당의 당 재산을 대만 국고로 강제 귀속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사. 국민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원내 시위까지 했으나 법안 통과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민진당과 시대역량 합쳐서 74명이고 여기서 쑤자취안 입법원장(국회의장격) 한명 뺀 73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으니... 친민당은 기권했다.

2016년 7월 27일 중화민국 중앙통신(CNA) 등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대만민의기금회(台灣民意基金會)의 설문조사 결과 지지율이 출범 당시보다 14% 떨어진 56%에 그쳤다고 한다. 50%대면 높은거 아닌가 주요 원인은 정권 출범 이후의 여러 악재 발생, 양안관계 경색에 따른 불안 때문으로 평가되었다. 이에 대해서 전임 국책고문 진헝웨이(金恒煒)은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이 대선 승리로 과장된 것이며 이것이 합리적인 수준이지만,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같은 설문조사에서 자신을 대만인으로 규정하는 응답이 80%가 넘게 나왔다.국민당 우울 기사.

1.4. 8월

2016년 8월 1일대만 원주민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400년간에 걸친 정복과 식민화와 관련해 사죄했다.#

2016년 8월 27일에 치렀진 지방, 보궐선거에서도 어느 정도 승리를 거두었지만, 출범 100일에 맞춰 지지도 조사를 벌인 결과 차이 총통에 대한 불만족이 50%, 만족 43%로 취임 이래 처음으로 불만족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분석으로 보면 국민당과 민진당의 차이가 없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

2016년 8월 29일에 대만의 천재 프로그래머로 알려진 오드리 탕을 디지털 부문을 총괄하는 무임소장관 (특정 부처를 관장하지 않는 장관)에 임명했다. 이번에 임명된 오드리 탕은 대만의 최연소 각료이자 세계 최초의 트랜스젠더 장관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IQ 180인 탕은 12세 때 학교를 중퇴한 뒤 15세 때 중국어 기사 검색 엔진을 개발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여러 스타트업을 거치다 24세 때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다. 현재는 애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 오드리 탕은 자신은 정부와 시민이 함께 소통하고 싶어서 직책을 맡았으며, 차이잉원은 젊은 시민들부터 당선이 되었기 때문에 젊은 시민들의 민심을 잡고하는 목적도 있다. # 대만이 성소수자 같은 소수자 대우에 있어 크게 발전했는지 알수있는 대목이기도 한다.

8월 31일 양안 교류, 협력을 담당하는 반관반민 기구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의 신임 이사장에 톈훙마오(田弘茂)를 임명했다. 천수이볜 정부 시절 외교부장을 역임한 인물이었는데, 같은 시기에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이었던 차이잉원과 양안정책에 대해 서로 공조했던 점을 반영한 인사다. 당초 중국과의 대화 경험이 많은 쑹추위 친민당 주석, 왕진핑 전 입법원장이 후보로 꼽혔지만, 둘 다 사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5. 9월

2016년 9월 3일 총통부 앞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퇴직 공무원과 교사, 퇴역 군인 14만 5천명이 총통부 앞에 집결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훙슈주 중국 국민당 주석도 이에 참여하여 지지의사를 밝혔으나 차이잉원 총통은 연금 개혁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시위 주최측은 다음달에도 대규모 시위를 열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

한편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호화 전용차 구매 계획 역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9월 12일에도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백만 관광산업인 거리 시위'에서 많은 민중들이 '차이 총통은 '92 컨센서스'가 필요 없더라도 우리는 필요하다'라고 외친 것. 이에 대해서 친국민당, 경제 교류를 중요시하는 측은 '현상유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답하던가 중국과의 협상에 나서던가. 행동을 해야한다.'라고 주장했고 친민진당측, 대만단결연맹은 '92 컨센서스를 인정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을 중단해야한다.' 라고 주장했다.

차이잉원 정부 출범 이 후 첫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관한 회담을 개최하였는데,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대만 8개 시·현(縣) 지방자치단체(= 2014년 지방선거(화롄은 보궐선거)에서 국민당이 이긴 곳.)[13]에 한해 경제협력에 나서는 선별적인 혜택을 부여키로 한다. 이는 92공식을 인정하지 않는 차이잉원 정부와 별개로 친중 계열 지자체를 선별 대우함으로써 92공식 인정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

2016년 9월 29일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만의 국명 표기를 "타이완 중국(Taiwan, China)"에서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로 교체하였다. 대만 측이 계속해서 국명 변경을 요구해왔으나 WEF 측에서 묵살해왔는데, 차이잉원 총통 취임 이후 대만 정부의 외교 노력이 먹혀든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다. 당연히 중국 측에서는 반발이 예상된다. 기사

게다가 민진당 창당 30주년을 맞아 당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중국의 압력에 저항해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며 '탈중국' 노선을 천명했다. # 이에 리커창 총리가 당연히 대만 독립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기사

2016년 10월 4일 나온 기사에 따르면, 차이잉원 정부 하에서도 더 심해지기만 하는(마잉주 국민당 정부를 실각시킨 원동력인) 경기침체와 탈중국 노선에 따른 중국의 전방위적인 외교 압박으로 인해 취임 4개월만에 지지율이 50% 아래로 수직 하락하고 린취안 행정원장이 이끄는 내각(대만은 이원집정부제) 지지도는 30%대로 추락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40%대)보다 하위로 처졌다. 기사 차이잉원 정부 입장에서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린취안 내각 성립 4개월만에 내각 총사퇴 안이 민주진보당 내부에서 나오는 판이다.

이 와중에 중국이 대만의 외교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 바티칸과 수교를 위한 물밑작업을 하기 위해 시진핑교황한테 선물을 보내는 등의 행위를 하자 바티칸 - 대만 단교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차이잉원 정부를 더욱 압박하고 있다. 기사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면 대만이 가지고 있는 나머지 20개국의 외교관계 단절 및 하나의 중국 수용이 완성되어 대만의 수교국은 한순간에 제로로 전멸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1.6. 10월

2016년 10월 4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한테 공개적인 정상회담을 제의하였다. 기사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동등한 주권국가 자격으로 정상회담을 하자는 것. 물론 중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2016년 10월 6일 APEC 정상회담 때 차이잉원 본인이 오지 못하는 대만의 외교 현실에 따라 쑹추위 친민당 주석(대표)을 대신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기사 쑹추위는 "현재의 양안관계를 밥솥에 비유하면 아직 덜 익어서 뚜껑을 열면 안되는 상황이다. 또한 시간이 덜 됐으니 지금은 그 어떤 추측도 필요치 않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중국의 안펑산(安峰山) 중국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대만이 APEC 관련 행사에 참가하려면 'APEC 양해각서 규정'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0월 10일 쌍십절 기념행사 때 중국대화 제의를 다시 했다. 물론 중국의 반응은 냉담. 또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기지를 착공했다.

2016년 10월 15일 나온 보도에 의하면,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이 취임 5개월도 안 되어서 40% 아래, 즉 30%대로 내려갔다고 한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지율이 내려갈 것이라 보이는 중으로, 차이잉원 총통의 정치적 위기가 빨리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기사

2016년 10월 18일 태국 국왕의 분향소에 가 조의를 표했는데 영어 국명을 잘못 작성해 망신을 제대로 샀다. 기사 명색이 영국, 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아온 사람이 스펠링을 틀렸다는 개인적인 조롱을 넘어, 자신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남향정책'(동남아권과의 관계 발전) 전반이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꽤나 곤혹스러운 일.[14] 게다가 이마저도 "옆에 메모지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보고 베끼는 데도 잘못 적느냐"며 까였다.(...)

게다가 쉬쭝리(許宗力) 사법원장(대법원장 급) 내정자가 최근 양안(兩岸·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관계를 '동독, 서독 관계와 비슷한 '특수한 국가 대 국가' 관계라고 밝혔다. 양안관계에 더욱 긴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1.7. 11월

2016년 11월 5일, 가오슝에서 열린 타이완계 일본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한편, 대만 원전들을 2025년까지 폐쇄할 예정이며,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진다고 한다.#

2016년 11월 25일 APEC 정상회담 때 쑹추위 특사를 보내는 것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기는 했는데, 쑹추위의 특사자격 참석을 탐탁지 않아하던 시진핑의 기류로 인해 시진핑 - 쑹추위 회담이 1분밖에 진행되지 못했다고 논란이 되었다.

2016년 11월 27일 차이잉원 총통에 대한 지지율이 취임 6개월만에 30%대 초반으로 주저앉으면서 정치적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한다. 총통 취임 이후 공약과 엇나가는 정책 행보, 나아지지 않고 악화되기만 하는 대만 경제상황 등이 원인으로 지목 중이다. 기사 이를 두고 리덩후이 전 총통은 "잘못하면 한국 대통령 난다."라고 말했다.기사결국 가시화 되었다.

2016년 11월 29일 TVBS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26%까지 주저앉으면서 총통(대통령) 취임 6개월만에 지지율 30%도 붕괴하는 등 정치적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기사

그러던 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전화통화를 가졌다. 이는 미국과 단교한지 37년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트럼프의 통화정책에 대한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중국 전투기 6대가 대만 상공에 첫 선회비행을 가지는 등 양안관계가 극도로 불안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도 타오위안에서 열린 공공주택 프로젝트 기공식에 참석해 연설하던 도중에 간판이 머리를 덮쳤다. 다행히 별다른 부상은 없었다.#

2. 차이잉원 총통 1기 린취안 내각(林全內閣)(2016년 5월 20일 ~)


[1] 아름다운 대만섬을 칭송하는 노래다. 의미로 따지면 한국의 아침 이슬, 상록수 정도 되는 노래로, 원래 정치색을 갖고 만든 노래는 아니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되었고, 그로 인해 독재 정권이 금지곡으로 지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메이리다오는 작곡자가 이미 죽은 뒤 유작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작곡자가 정권의 고초를 겪을 일은 없었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국민당 사람들도 있는데(대표적으로 훙슈주) 그 얘기가 뉴스에 나오면 금지곡으로 지정한 과거 시절의 원죄로 욕 많이 먹는다.[2] '대표'는 미수교국에 파견하는 인물로 외교관 신분이 아니지만, '대사'는 수교국에 파견하는 외교관 신분의 인물이다.[3] 그런데 이 일에 관해 총통부 홈페이지는 중국어판과는 달리, 영문 홈페이지에 신임 주미대표를 '대사'로 표기하는 공지 내용을 게재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대사' 임명을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며, 주미대표의 '대사' 표기가 일종의 대만 내부용으로 그칠 가능성을 암시한다.[4] 이런 식의 발언은 역시 미혼 여성인 박근혜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우호적인 입장과 모순되었으며, 당연히 대만 뿐만 아니라 다른 중화권 언론으로부터 "유치하다"는 비판을 받았다.[5]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 <인민일보>의 해외판 자매지로 '중국 공산당의 본심'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6] 반분열국가법은 첫 민진당 출신 대만 총통으로 독립 성향이 강했던 천수이볜의 재임 시절인 2005년 중국이 제정했는데, 대만의 분리 독립을 막기 위해 '비평화적' 수단의 동원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7] 그리고 비정치적 단체, 예를 들어 올림픽같은 경우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올림픽의 명분적 출전 주체는 대만 정부가 아니라 중화올림픽위원회이기때문.[8] 위의 뉴스 영상에도 나오지만, 단순히 외국산 육류를 수입하는 차원을 넘어, 식품안전(인체 유해성이 의심되는 성장촉진제 검출 돼지) 문제란 점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상황으로 대입하자면, 한미FTA 체결 조건으로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내건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9] 당시 일본 교향악단의 대만 방문에는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의 모친도 동행하여 차이잉원 총통과 회동했다.[10] 앞서 발표한 '주미' 대사건과 마찬가지로 역시 총통부 중국어판 공지에만 나오며, 영문 공지에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국내 발표용에 가깝다고 여겨진다.[11] 대만은 중국의 압력으로 인한 외교적 고립으로 총통이 공식 방문할 수 있는 나라가 중남미, 아프리카, 남태평양의 군소국가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대만/외교 참조.[12] 겨우 미사일 오발사건 가지고 무슨 난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슝펑 3호는 항공모함을 격파할 목적으로 도입된 위력적인 무기다.[13] 먀오리, 롄장, 화롄 , 난터우, 타이둥, 진먼현. 신베이시[14] 이보다 앞선 1년 전에는 미국 방문 기간에 "(대만(Taiwan)이 아닌) 태국(Thailand)에서 온 지도자"라고 소개받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타이완과 타일랜드를 헷갈리는 건 외국도 마찬가지인듯[15] 예비역 공군 상장(대장)[16] 10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문민이다.[17] 쉬워저는 직전임 마잉주 정부에서 재정부 차관이었다. 마잉주 총통 때의 장관이 물러나자 그 차관을 후임으로 지명한 것이라 마잉주 정부 때와 예산분야에선 별 차이 없을 거라고 관측되고 있다.[18] 몽골과 중국대륙 소수민족을 담당하는 위원회다. 마잉주 정부에서 폐지가 의결되었지만 차이잉원 총통 들어오면서 폐지가 흐지부지되고 살아남았다. 이 정권이 대륙위원회와 함께 앞장서서 없애야 하는 조직인데.[19] 중화민국 국적의 해외거주자, 즉 화교에 대한 업무를 처리한다.[20] 대만 원주민을 담당하기 위한 조직이다[21] 객가인들을 담당하기 위한 조직이다[22] 리덩후이 시절에 내각에 있어서 당시는 국민당이었다. 리덩후이가 국민당에서 축출될 때 같이 탈당[23] 특이하게 이 환경보호서 부서장(한국의 환경부 차관)이 '대만녹당' 소속이다. 한국으로 치면 녹색당 당원이 환경부 차관에 오른 것.[24] 이 중 장징썬은 푸젠 성 주석을 겸하며, 출범 당시에는 스쥔지가 타이완 성 주석을 겸하였으나 현재는 쉬장야오로 바뀌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