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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17:46:43

제5공화국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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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특위구성4. 진행5. 평가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1. 개요

1988년 11월 2일부터 1989년 12월 31일까지 진행된 대한민국 제5공화국의 비리와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를 위한 제13대 국회 5공비리 특별위원회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진행한 청문회이자 헌정 사상 최초의 청문회.

2. 배경

1987년 민주화 이후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1979년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이자 제5공화국 실세 전두환과 같이 주도한 신군부 세력이었던 노태우는 자신도 5공화국의 인물이었던 만큼 5공비리 청산과 5.18 진상규명에 소극적이었지만 이듬해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야당이 여당을 앞지른 여소야대 국회가 되면서 1988년 6월 27일 국회에 5공비리 특별위원회(5공비리 특위)[1]와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광주특위)가 설치되었다.

3. 특위구성

5공비리 특별위원회는 7월 23일 4당 간사회의를 열고 산하에 4개의 소위원회를 두어 각 분야별 비리를 조사하기로 합의했다.

위원장은 제2야당 통일민주당이기택 의원이 맡았다.#

4. 진행

청문회의 핵심은 제5공화국의 비리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이었으며 1988년 10월 13일 5공특위는 일해재단의 비리규명을 위해 정주영, 안현태, 장세동 등 총 18명을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1988년 11월 2일 일해재단 관련비리 조사를 위한 1차 청문회가 열렸고 일해재단이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 후 사용하기 위해 호화시설을 건설한 점과 청와대 경호실이 각종 기금 모금 및 관리에 깊이 개입한 점, 그리고 589억 원의 기금을 징수한 과정 등을 밝혀냈다.

11월 7일 제5공화국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을 거쳐 국가 안전기획부장으로 재직했던 장세동을 증인으로 불렀으나 장세동이 전두환의 총알받이를 자처하며 적극적으로 변호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11월 9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일해재단 청문회의 마지막 증인으로 참석했다.

11월 18일 열린 광주특위에서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이 첫 번째 증인으로 참석해 발언하였다.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갖고 일해재단의 비리에 대해 사죄하고 정치자금 139억여 원과 연희동 자택 및 금융자산 39억여 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발언한 뒤 강원도 백담사로 향했다.

다음해인 1989년 2월 13일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이 5공비리특위의 종결 방침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불참하기로 하면서 청문회는 난항을 거듭하였다가 3월 22일 청문회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5공비리특위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여야합의로 일시적으로 활동을 재개한 5공비리특위는 10월 7일 전두환을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합의하였고# 12월 31일 광주특위와 5공특위 합동회의를 개최해 전두환을 증인으로 불렀으나 전두환은 질의답변 없이 발표문만을 읽고 변명으로만 일관하자 야당 의원들이 대거 항의하였다.

이 와중에 통일민주당 노무현 의원의 경우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이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으로만 일관하자, "그럼 국민의 비난은 누가 책임질 겁니까!! 본 의원은 풀리지 않은 의혹이 엄청나게 남아있습니다!!"라고 일어나 외치면서 항의한 일도 있었고,# 특히 전두환의 일방적인 발표문 낭독을 보고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의원 명패를 던졌다.#

결국 5공 청문회는 1988년 12월 10일 발족한 5공비리 특별수사부의 수사를 통해 전경환을 비롯한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 10명과 장세동 전 안기부장, 이학봉 전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 등 모두 47명이 구속되고 29명이 불구속 입건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한편 청문회가 끝난 다음날인 1990년 1월 1일 김종필 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신년 단배식에서 “증언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나, 이제 5공 문제는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미완의 장으로 남겨놓자”며 “정치권은 새로운 경제 도약과 정치 안정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5. 평가

헌정 사상 최초로 개최된 청문회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5공비리와 5.18의 핵심인 전두환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청문회 이후에도 전두환은 광주 학살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발포 명령 사실도 끝까지 부인한 채로 2021년에 사망하면서 오늘날까지 5.18 민주화운동이 왜곡 및 망언으로 얼룩지게 된 계기를 만들고 말았다.[2]

그나마 유일한 성과라면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그동안 전두환 정권에서 왜곡하여 주장했던 '빨갱이들의 폭동'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는데 왜냐하면 5공 청문회 자체가 가해자가 자신의 치부를 조사하는 격이었기 때문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다 자세한 조사는 세월이 흐른 뒤인 1998년에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시작되었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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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식 명칭은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다.[2] 특히 5공의 핵심 실세인 정호용장세동은 일관되게 사실을 왜곡하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국회와 국민을 우롱하는 행태를 일삼았다. 더 웃긴 건 정호용은 당시 현직 국회의원이였으면서도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에 대해 질의하는 동료 의원을 향해 "봐도 보이지도 않으니 글씨를 크게 해서 다시 가져오라"며 조롱하는 막장행각을 보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