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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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399> 출생 | <colbgcolor=#ffffff,#191919>1958년 1월 21일 ([age(1958-01-21)]세) |
서울특별시 | |
복무 | 대한민국 해군 |
기간 | 1980년 ~ 2016년 |
임관 | 해군사관학교 (34기) |
최종계급 | 대장 |
최종보직 | 해군참모총장 |
주요보직 | 해군작전사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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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해군 대장으로 31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2. 생애
1958년 1월 21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정확히 본가 쪽은 강원도 횡성군이라고 한다.[1]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6년 해군사관학교 34기로 입학하여 1980년에 항해병과 소위로 임관했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대위 시절에 국방대학원에서 안전보장 석사를 받았다. 1989년 소령으로 진급했고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랭커스터대학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해군대학과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의 학술지, 회의를 통해 다수의 해군력 관련 논문을 발표하는 등 용장보다는 지장에 가깝다.2002년에는 5전단 예하 51전대 소속 충남함 함장을 역임하며, 샤렉스에 참가했다. 또한 60여명에 가까운 수병의 이름을 한명 한명 기억하며 불러주는 자상함을 보였다. 특히 전산병인 신석철 병장에게 논문 타이핑을 맡긴 후 수고했다며, 당시 병장 월급 18,800원 보다 많은 3만원을 수고비로 줘서 엄청난 감동을 선사했다는 후문이 있다.
2006년 준장으로 진급한 후 제2전투전단장[2],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부장 등을 지냈다. 2011년에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해군교육사령관에 올랐다. 2012년에는 해군작전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4년 10월에는 해군본부로 옮겨 해군참모차장이 되었다. 이미 중장으로 3년을 근무했고 해군의 인사적체가 타군에 비해 심각한 터라 해사 34,35기 두 기수를 건너뛰고 해군참모총장이 나올 가능성도[3] 제기되어 해군참모차장이 마지막 보직이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해군참모차장 재임 중에 해군참모총장인 황기철 제독(해사32기)이 통영함 비리 누명으로 조기 퇴임함에 따라 2015년 2월 23일에 해군참모총장으로 내정되었다.
이미 대한민국 공군에서는 2014년 4월에 1980년 임관자인 공사 28기 출신 공군대장 최차규 장군을 배출했고 대한민국 육군에서도 2014년 하반기에 1980년 임관자인 육군대장 김현집 장군과 장준규 장군(모두 육사 36기)을 배출한 관계로 해군에선 상대적으로 기수가 늦어져 인사적체가 일어나던 상황이라 해사 33기는 대장 진급이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해사 1기수 선배이자 해사 33기 마지막 현역인 해군중장 구옥회 제독은 이미 면직되어 예편 대기중이다.[4] 구옥회 제독 등 두명의 중장은 2015년 5월 예편 하였다.
2015년 2월 27일에 취임했다. 보직 및 진급 신고는 2월 26일에 했다. 방산비리 문제에 엄중히 대처할 것을 취임사에서 밝혔다.
하필이면 해군사관학교 69기 졸업식(2월 26일)을 이틀 남긴 2월 24일에 해당 인사 문제가 불거진 터라 해군 장교단은 좀 뒤숭숭했다고 한다. 4월에 정기인사인데 왜 2월로 앞당겼는지... 졸업식엔 황기철 제독이 참여했다. 당일 정호섭 제독은 청와대에 가서 보직/진급 신고를 해야 해서 졸업식 다음날인 27일에 취임했다.
취임 후 서해 NLL을 방문한 정호섭 제독. 인터넷에선 윙가르디움 산이없싸, 아씨오 마운틴, 국방부와 마법의 지팡이 등의 짤방으로 통하고 있다.
2016년 9월 19일 부로 현 대한민국 합동참모차장인 엄현성 중장(해사 35기)이 후임 해군참모총장으로 내정되면서, # 군 생활을 마감했다.
퇴역 후에는 충남대학교 군사학부에서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CVX 경항모 사업을 비롯한 주요 해군력 관련 논쟁에서도 해군 원로로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2018년 기준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재도 역임 중이다.
3. 주요 행적
작전사령관 시절에 소말리아에 납치됐던 제미니호 선원 구조작전과 북한이 쏘아 올린 장거리미사일(은하-3호)을 탐지, 추적, 인양을 지휘했다.2015년 국정감사에서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대북 억지력을 위해 해상자위대와 협력할 필요가 있으며 작전반경이 광범위한 미합중국 해군 제7함대에만 의존하는 것은 건전한 생각이 아니라고 밝혔다. 관련기사#1 관련기사#2
2022년에 국민의힘 국방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4. 경력
이리함장 (중령)합참의장 보좌관
충남함장 (대령)
2함대 전투전단장
2함대 부사령관 (준장)
한미연합사 인사참모부장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부장
해군교육사령관 (중장)
해군작전사령관
해군참모차장
해군참모총장 (대장)
5. 논란
2012년 교육사령관 시절 한 교육에서 천안함 생존자들은 수치스러워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교육에 참여했던 천안함 생존 장병 김정원 전 하사는 "나약하고, 방심하고, 제대로 정신 안 차리면 천안함 사건처럼 당한다고 교육 사령관이 이야기를 하는 순간 뛰쳐나가려고 했어요. 이건 아닌 것 같아서요."라고 말해 씁쓸함을 더했다.6. 기타
- 안미희 씨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두었다.
- 교육사령관 시절 수병들에게 유독 엄했다고 한다. 전투형 군인 태세를 강조하며 교육사령부 수병 전원에게 유격 훈련과 행군을 지시하기도 했다. 통상 대한민국 해군은 해군기초군사교육단 훈련병 때에만 유격훈련과 행군을 한다. 유격이라곤 해도 육군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모의 유격이고 행군은 육군의 행군처럼 완전군장을 싸고 가는것이 아니라 총 한 자루 들고 산행하는 것. 실무부대에선 셈브레이, 당가리에 운동화만 신고 행군이라고 하면서 육군출신들이 보면 산보수준의 이동을 행군이라고 한다. 불참 시 추석특박 제외로 말년병장들도 궁시렁거리면서 갔다고....
[1] 횡성군 공근면 가곡리에 초계 정씨 집성촌이 있다.[2] 제2함대 휘하의 전투전단. 해체되었다가 2015년에 제2해상전투단으로 부활.[3] 해군에는 사례가 있긴 하다. 문정일 제독(해사23기)에서 남해일 제독(해사26기)으로 참모총장 자리가 간 것.[4] 2014년 4월에 공사 28기인 최차규 장군이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관례상 동기인 중장 2명이 전역해야 했지만 공군 내부단속을 이유로 유임되었다. 공사 28기인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공군중장 김영민 장군, 공군사관학교장 공군중장 김형철 장군이 계속 남아 근무했다.[5] 한미연합사 인사참모부 차장은 미군 대령이 임명된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정/부 중 정을 미군이 맡으면 부를 한국군이 반대로 정이 한국군이라면 부를 미군이 맡는 식이다. 예를 들어 정호섭 제독이 인사참모부장을 역임한 시기의 한미연합사령관은 샤프 미 육군 대장이었고, 한미연합부사령관은 이성출 대한민국 육군 대장이었다. 사령부 휘하의 각 참모부도 부처에 따라 부장과 차장을 한국군과 미군이 교차되어 임명됐고, 인사참모부(C/J1)는 한국군 부장, 미군 차장체제였다.[6] 한미연합사 인사참모부장은 준장 보직이다. 정호섭 제독의 전임자나 후임자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다만 정호섭 제독은 인사참모부장 재직시기에 소장으로 영전한 케이스다 보니 곧 해군본부로 발령이 났음에도 이것을 간과하고 인사참모부장을 소장보직으로 착각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