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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3:37:26

제3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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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단 | 해체된 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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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군단
第三軍團
III Cor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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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과 동해안을 수호하는 최강무적 산악군단
창설일 1950년 10월 16일(제3군단)[1]
1953년 5월 1일(제3군단)
상징명칭 기린대(麒麟臺), 산악(山嶽)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지상작전사령부
규모 군단
역할 강원특별자치도 동부전선 및 동해안 방어[2]
군단장 중장 서진하 (육사 49기)
부군단장 소장 김동수 (육사 48기)
참모장 준장 김선문 (육사 53기)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기린면

1. 개요2. 연혁 및 특징3. 편제
3.1. 직할부대3.2. 예하부대
4. 과거부대5. 출신인물
5.1. 군단장5.2. 장교/부사관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6.2. 부대영상6.3. 산악회관6.4. 산악코스텔6.5. 군단가
7. 사건사고8. 여담
[clearfix]

1. 개요

군단사령부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군단을 두며, 그 관할구역의 작전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하여 군단사령부를 둔다.
② 군단의 명칭은 대통령이 정하고, 군단의 예속(隸屬)은 육군참모총장이, 군단의 배속(配屬)은 합동참모의장이 정하며, 군단 관할구역은 직속상관이 정한다.
파일:YA_NP_20131018_00790717.jpg
육군 제3군단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기린면을 근거지로 하는 대한민국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소속 군단.

2. 연혁 및 특징

3개의 사단과 7개의 여단을 예하에 두고 있다. 기린대[3] 또는 산악부대[4]로 불린다.

한국 전쟁 중 1950년 10월 16일 서울시 중구 남산동에서 초대 이형근 소장이 군단장에 임명되고 9사단, 11사단을 편성하여 창설되었다. 그러나 창설 7개월 만인 1951년 5월 16일 창촌으로 철수하던 제9보병사단이 중공군의 2개 군단에 의해 오마치 고개가 점령된 것을 알게 되었다. 5월 17일, 반격을 포기하고 현리에 집결하여 오마치 고개를 돌파하려 했으나, 북한군 제5군단, 12군단, 27군단의 공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퇴각 작전은 실패하였다. 작전이 실패하면서 군단은 전투의지와 통제를 잃었으며 후퇴하는 도중, 군단장 유재흥 소장이 지휘권한을 버리고 항공기로 이탈하였고, 5월 22일 강원도 인제군 관대리까지 후퇴하였다. 1951년 5월 26일 미국 제8군 지휘관 제임스 밴 플리트 대장이 책임을 물어 유재흥의 직위를 박탈하고 3군단을 해체시켰다. 군단 예하의 제2, 5, 9, 11사단은 각각 미8군 예하 배속되었다.

1953년 5월 1일, 강문봉 소장을 군단장으로 임명하고 제20, 22사단을 예속받아 강원도 인제군 관대리에서 재창설되었다. 같은 해 12월 15일, 제1야전군 예하의 군단이 되었다. 이후 주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12사단을 궤멸시킨 매봉·한석산 전투를 비롯해 백석산, 펀치볼 전투 등에서 영토를 사수, 확보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1968년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소탕작전, 1990년 제4땅굴 발견,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소탕작전 등을 완수했다. 1972년 7월 27일 소양강댐이 건설되어 본래 주둔지인 관대리가 물에 잠기자 부대를 기린면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983년에 제22보병사단과 제68훈련단을 의정부로 이전한 제7기동군단에서 편입했으나, 1987년에 영동지역의 지역방위 기능을 다시 제8군단으로 분리하면서 다시 빠져나갔다.

전군에서 근무 환경이 척박하기로 손에 꼽히는 군단 중 하나이다. 수도군단은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제1군단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제2군단은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제5군단은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제7기동군단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인데 반해 제3군단은 주둔지가 군단급 중에서는 유일하게 급이자 행정구역이 DMZ에 마주하는 유일한 지자체다.[5]

스스로를 산악군단이라 자부하는 군단인 만큼 유달리 산을 홍보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에 걸맞게 소속 사단들은 한결같이 근무 환경이 최악을 달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3군단은 155마일(248km) 휴전선 중 가장 넓은 일반전초(GOP)를 담당하고[6], 평균고도는 물론 가장 높은 해발고도에 위치[7]해있기 때문이다. 제12보병사단제21보병사단의 경우, 제7보병사단과 더불어 가장 험준하기로 유명한 GOP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 부대의 주둔지는 강원도 인제군, 양구군, 홍천군[8] 일대. 지금은 해체되어 없어졌고 비록 GOP 사단은 아닌 예비 사단이지만 살인적인 행군량과 훈련량으로 악명이 높았던 (구)제2보병사단 또한 3군단 예하 사단이었다.

교통도 열악해서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여기로 오려면 홍천을 지나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까지 올라가서 31번 국도로 현리까지 역행하는 경로가 가장 안전했다. 홍천에서 현리로 바로 가는 451번 지방도는 말 그대로 산을 넘고 돌아가기 때문에 구배와 경사가 험악하기로 악명 높기 때문이다. 금강고속에서 운행하는 홍천-현리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이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쳐가는데, 길이 오죽 험하면 1월 중순에는 시외버스 운행이 전면 중단되고, 동서울까지 연장하는 회차에는 현리나 동서울에서 출발한 차량이 홍천에 도착하면 운전자를 교체한다. 구간만 운행하시는 분이 6명 정도 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래도 양구보다 나으리에 해당되는 동네이지만, 지금은 양구는 춘천까지 도로로 40분, 현리는 서울양양고속도로로 2시간 이내 정도면 간다.

단 여전히 추운 동네인 건 어쩔 수 없는 듯. 제12보병사단, 제21보병사단 GP/GOP는 고지대라 7월 아침 기상시에 입김을 불면 입김이 서릴 정도이다. 산간 지역으로 추정되는 모 예하 부대에서는 병사들이 하절기에 추워서 전투복 소매를 내리니 행정보급관이 '하절기에는 팔을 걷어 올리는 것이 원칙'이라며 전투복은 하절기에 맞춰 팔을 걷어 입되, 추우면 그 위에 야전상의를 덧입으라고한 적도 있다. 육군의 복제규정에 의거, 야전상의는 사계절 언제나 착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훈련소는 낮은 곳에 있으니 그나마 괜찮은데, 7월에 신병교육대에 입소해 GOP로 자대 배치를 받으면 깔깔이를 입고 돌아다니는 이들을 볼 수도 있다.

경례구호로는 '충성'을 사용하며 1997년도에 '단결'에서 '충성'으로 변경되었다.

2023년 5월 1일에 제8군단이 해체되어 제8군단에 있던 예하부대를 이관받았다.

3. 편제

3.1. 직할부대

3.2. 예하부대

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5.1. 군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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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이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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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준
7대
양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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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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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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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군단장.
||<-6><rowbgcolor=#1e2087> 역대 제3군단장 ||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이형근 예) 대장 군영 1기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2대 유재흥 예) 중장 군영 1기 합동참모의장, 제1야전군사령관 국방부장관
3대 강문봉 예) 중장 군영 1기 제2작전사령관 前 6대 국회의원
4대 송요찬 예) 대장 군영 1기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5대 이성가 예) 소장 군영 1기 육군대학 총장, 제5군단
6대 오덕준 예) 소장 군영 1기 前 군단장
8대 양국진 예) 중장 군영 1기 前 군단장
9대 최석 예) 중장 군영 1기 前 군단장
10대 최창언 예) 중장 군영 1기 前 군단장
11대 서종철 예) 대장 육사 1기 육군참모총장,제1야전군사령관 국방부장관
12대 이창정 예) 소장 육사 1기 前 군단장
13대 황엽 예) 소장 육사 1기 前 군단장
14대 심충선 예) 중장 육사前 군단장
15대 박춘식 예) 중장 육사 5기 前 군단장
16대 최세인 예) 대장 육사 3기 제1야전군사령관
17대 이동화 예) 중장 육사 2기 前 군단장
18대 김재규 예) 중장 육사 2기 국군보안사령관 중앙정보부장[25]
19대 정승화 예) 대장 육사 5기 육군참모총장, 제1야전군사령관
20대 김학원 예) 중장 육사5기 前 군단장
21대 윤성민 예) 대장 육사 9기 합동참모의장,제1야전군사령관 국방부장관
22대 전성각 예) 중장 육사 8기 前 군단장
23대 이상훈 예) 대장 육사 11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국방부장관
24대 한철수 예) 대장 육사 12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5대 신치구 예) 중장 갑종 22기 前 군단장
26대 이진삼 예) 대장 육사 15기 육군참모총장, 제1야전군사령관 체육청소년부장관
27대 박익순 예) 중장 육사 16기 前 군단장
28대 편장원 예) 대장 육사 18기 합참 1차장
29대 김종배 예) 중장 육사 20기 前 군단장
30대 이규환[26] 예) 중장 육사 21기 합참 작전본부장, 인사군수본부장
31대 김석재 예) 대장 육사 23기 제1야전군사령관
32대 박봉식 예) 중장 육사 25기 前 군단장
33대 신일순 예) 대장 육사 26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34대 권영기 예) 대장 갑종 222기 제2작전사령관
35대 박흥렬 예) 대장 육사 28기 육군참모총장 대통령경호실장
36대 최용주 예) 중장 3사 4기 육군항공작전사령관
37대 김일생 예) 중장 3사 8기 前 군단장 병무청장
38대 이성호 예) 중장 육사 33기 국방대학교 총장 국가안보실 제2차관
39대 이용광 예) 중장 학군 16기[27]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40대 한동주 예) 중장 3사 14기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41대 나상웅 예) 중장 3사 16기 육군교육사령관
42대 김병주 예) 대장 육사 40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28] 국회의원(21,22대)
43대 김승겸 예) 대장 육사 42기 합동참모의장[29]
44대 박상근 예) 중장 학군 25기[30] 육군교육사령관
45대 전동진 예) 대장 육사 45기 지상작전사령관
46대 신희현 예) 대장 학군 27기 제2작전사령관
47대 김봉수 중장 육사 47기 제2작전사령관 직무대리
48대 서진하 중장 육사 49기 現 군단장

동부전선의 중심 부대인데다가, 군단급 부대 중에서는 휴전선과 가장 가까이에서 근무하는 부대인만큼 꽤나 요직으로 여겨진다. 근무환경이 척박하고 서울과의 거리가 꽤나 먼 편이므로 서울과 가까이 있는 부대의 진급률이 높던 시기에는 눈에 띄는 요직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1, 5군단장이나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서울과 가까이 있는 부대를 지휘하는 보직이 훨씬 더 대접받았다.[31] 군사정권 종식 후, 서울보다는 휴전선과의 거리를 중요시하면서 대장 진급자를 꽤나 배출하는 요직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10년 간 3군단장 출신 대장이 4명이 배출되는 등 전통의 요직인 1군단장, 5군단장, 특전사령관[32]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실상부한 요직으로 부상하고 있다.[33] 경의선(1군단), 경원선(5군단) 등 서울로 진격하는 축선을 지키지는 않고 있으나, 8군단 통합 후 동해안 축선 및 해안 경계라는 막중한 임무를 담당하게 되어[34] 오히려 더 큰 무게감이 있는 보직이 되었다는 점에서 확정적인 요직으로서 자리매김하였다.

5.2. 장교/부사관

직할부대 출신만 기재 요망.

5.3.

직할부대 출신만 기재 요망.

6. 기타

6.1. 근무환경

이전의 인제-원통-양구에 대한 한탄과는 달리, 서울양양고속도로 인제IC가 개통된 뒤론 서울 접근성은 엄청나게 올라갔다. 3군단 사령부와 13항공단 기준 현리->동서울 직행 시외버스는 1시간 53분이며, 정체만 없다면 자차로 2시간 안쪽으로 서울 진입이 가능할만큼 고속도로의 혜택을 많이 보는 중이다.물론 안 막히는 날이 없다.

3군단 사령부는 근처 내린천에 동계 체력단련장, 하계 체력단련장을 운영하는데 바로 코앞에 있는 731 부대에서 관리한다. 여기를 관리하는 일을 자원하게 되면 일과를 빠지고 여기를 관리하게 되는데 폐장을 하고 나서 포상 휴가를 받을 수도 있다. 특히 겨울철 체력단련장은 눈이 올 때면 스케이트장 내의 눈을 제설해야 하고 모아놓은 눈을 옆에 있는 눈썰매장에 옮겨 관리한다. 기상에 따라 날이 더워서 눈이 녹으면 눈썰매장은 폐장된다.

3군단 예하 사단 신병교육대에서는 매 기수마다 일정 인원들을 3군단에 자대배치시킨다. 단, 이때는 세부적인 자대가 나오는게 아니라 3군단이라고 뭉뚱그려서 전속부대가 나온다. 몇 몇 훈련병들이 군단 사령부에 간다고 기뻐할지도 모르지만 배치 범위는 사단을 제외한 전 부대이다. 사령부 내에서 근무하는 본부근무대는 극소수의 인원들이 배치되고 단급 이상 부대인 제3포병여단, 제3공병여단, 제3군수지원여단, 제103정보통신단에서 다수의 인원들을 데려간다.

기수마다 다르겠지만 대다수의 훈련병들은 위로휴가가 많이 나오는 GOP 및 수색부대 근무를 희망한다. 비교적 후방으로 빠지는 군단직할대로 간다고 하면 시무룩하는 경우가 많다. 여타의 군단사령부나 직할대가 비교적 도시지역에 위치해있는 반면 3군단의 경우 위치가 그닥인 점도 한몫한다.

6.2. 부대영상

6.3. 산악회관

산악회관
山岳會館
Mountains Hall
위치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내린천로 3898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6.4. 산악코스텔

산악코스텔
Mountains Corpstel
위치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내린천로 3924-72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산악군단 + 호스텔
영문명은 corpstel인데 아마 corps(군단) + hostel인듯 하다

본부근무대 인원들 중에서 선발된다. 산악회관과는 다르게 손님들의 숙박이 가능하다. 근처 숙박 업소들 대비 가성비가 좋다. 육군휴드림 사이트#로 예약 가능하다.

본부근무대 인원들에 비해서 근무환경이 꼭 좋지만은 않다. 훈련이 없는 대신 전투휴무가 없고, 공휴일에도 휴무일 없이 영업을 한다. 주말(현재 월, 화)에는 식당 영업은 없지만 객실 운영은 그대로 한다. 따라서 퇴실한 객실 청소나 이불 빨래 등은 평소처럼 해야한다. 대신 분기별 위로휴가를 5일씩 받는다. 휴가가 많아보이지만 분기당 못 쉬는 주말은 주에 이틀씩만 세어도 24일을 못 쉰다, 공휴일까지 포함하면 20일 가량 손해보는 셈. 일과에 영업이 있어 다른 현역들처럼 개인정비 시간이 확실하게 보장 받기 어렵다. 일을 빨리 끝내면 빨리 쉴 수 있는 정도. 영외에서 근무하며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고 수면 시간 보장을 위해 점호는 생략한다. 일과시간에는 휴대폰 사용이 가능하다. 식당 영업을 안하는 날에 외출 신청을 할 수 있다.

회관 특성상 병사들보단 장교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운 좋으면 휴가를 받을 수도 있으며, 여름이 겨울보다 손님들이 더 많이 온다. 그러나 겨울에는 제설을 자주 해야하는데, 제설의 경우 코스텔 주변 뿐만 아니라 산악체력단련장(야외 골프연습장) 또한 맡아야 한다. 큰 업무는 식당 주방, 홀서빙, 그리고 객실 프론트로 나눌 수 있다. 주방 일이 가장 힘들다. 엑셀 쓰는 법을 알면 프론트 업무를 담당 할 수 있기에 주방과 홀 보단 좋다. 병장이 되어도 인원이 부족하면 못 쉴 수도 있다.

식당이 있기에 위생점검을 받아야 한다. 회관 병력은 위생시설 근무자로 포함되어 장티푸스 접종도 받아야 한다. 보건증도 받도록 하는 편. 감찰이 쉽지 않다.

6.5. 군단가

산악을 누비며 조국을 지키는
피끓는 용사들이 여기에 뭉쳤다
우렁찬 함성속에 이 한몸 불사르며
조국통일 그날까지 힘차게 전진하자
아~아~ 우리는 국군의 선봉
길이길이 빛내리라 무적 3군단

태백준령 넘고넘어 북녘 끝까지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이 젊음 이 기백을 조국에 모두 바쳐
영광의 그날까지 힘차게 전진하자
아~아~ 우리는 국군의 선봉
길이길이 빛내리라 무적 3군단

파일:제3군단 부대마크.svg

7. 사건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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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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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3군단 예하 제21보병사단 병력[35]은 양구군청, 제22보병사단 병력[36]은 고성군청에 군·경 합동상황실을 설치한다는 명목으로 군청에 진입했다. 군부대원이 군청을 점거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2월 11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밤 11시. 21사단에 사이렌이 울리는 등 전투 준비에 나섰단 주장이 내부에서 제기됐다. 21사단 소속 한 장병은 계엄 선포 다음날 가족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당시 SNS 대화 기록을 보면, '최전방 부대라 유서도 썼다. 우리는 모두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자세한 상황은 알려주지 않고 사이렌만 울렸다' 등 계엄 당시 긴박한 상황이 담겼다.

8. 여담



[1] 1951년 5월 26일 부대해체[2] 본래 제3군단은 강원특별자치도 동부전선 방어가 주 목적이었지만 (구)제8군단이 흡수, 통합됨에 따라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도 제3군단 작전지역으로 포함되었다.[3] 기린대는 사령부가 위치한 인제군 기린면에서 따온 것이다. 기린대의 '대'는 무리를 나타내는 隊를 사용하고, 교육기관인 화랑대, 상무대 등은 돈대 대(臺)를 사용한다.[4] 부대의 명칭에는 고유명칭, 통상명칭, 상징명칭이 존재한다. 고유명칭과 통상명칭을 함께 사용한 것을 금하며 추가로 상징명칭이 아닌 애칭, 별칭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국방부 훈령인 국방조직 및 정원 관리 훈령에 어긋난다.[5] 기존 제8군단이 양양군 손양면에 위치하여 사령부가 군급에 위치한 유일한 군단은 아니었으나 2023년부로 3군단에 흡수,통합된 이후로 옛말이 되어버렸다.[6] 제21보병사단[7] 제12보병사단[8] 제36보병사단 책임 지역이지만 20기갑여단 및 소수의 부대가 주둔 중이다.[9] 본부소대, 경비소대, 수송소대, 군악대가 있다. 이 중에서 군악대는 제2보병사단 군악대였으며, 해체 과정에서 양평으로 이동하지 않고 3군단 본부근무대로 예속 전환되었다.[(구)8군단] [11] 산악여단은 예하부대가 아니라 군단 직할부대로 취급된다.[전시한정] [13] 항공단 야전 군단 직할 배치 계획에 따라, 군단 직할부대로 편성.[14] 3군단 직할 항공지원단[15] 2023년 창설. 기존 3군단 지역을 관할하던 513방공대대와 8군단 지역을 관할하던 518방공대대를 예하에 둔다.[16] 2023년 창설. 기존 308경비연대가 3군단으로 예속 전환되면서 단급 부대인 303경비단으로 개편.[(구)8군단] 국방개혁 2020에 따라 제8군단의 해체가 결정되면서 2023년 5월 1일부로 제3군단 예속 전환.[(구)8군단] [(구)8군단] [20] 2019년 11월 국방개혁 2.0으로 인해 부대 해체 후 개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32보병연대는 해체, 제17보병연대는 제12보병사단, 제31보병연대는 제21보병사단에 편입되었다. 해체와 동시에 구 제20기계화보병사단 사령부로 이전했고 창설준비단이 제7기동군단 예하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2021년에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재창설되었다.[21] 과거 3사단이 이 군단의 초기 사단이었는데, 이후 부대 개편으로 오늘날의 제5군단 소속으로 변경되었다.[22] 제1군단으로 이관[23] (구)제1야전군사령부 직속이었다가 2016년 12월에 제7기동군단으로 이관[24] 1953년에 창설된 육군 최초의 전차대대. 2010년대까지 K-1 전차를 운용하는 3군단 유일의 기계화제대였다. 그러나 국방개혁 2.0으로 2020년 1월 초 부대를 해체하여 제3군단 예하 제12보병사단과 제21보병사단 직할 전차중대를 대대로 증편하는데 사용되었다. 1중대는 제21보병사단으로(해체된 제2보병사단 전차중대와 합쳐 총 3개 중대, 1개 대대 편제), 2&3중대는 제12보병사단으로 편입되었다. 1963년 4월 5일 부대창설. 1972년 동해안 대간첩작전 중 간첩선 격침[25] 국가 원수를 살해했다는 이유 때문에 인트라넷상의 군단장 소개에서는 제명되어 있었다. 물론 군단본청 앞 기념식수에는 적혀있다. 육군보안사령관으로 있다가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 도청 건으로 제3군단장으로 전보되었고, 제3군단장 시절 한계령 도로 건설을 지시하였다. 그가 군단장 재임시절 그의 전속부관이 박흥주였다. 국방부가 최근 관련 훈령을 개정하면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출신 부대의 지휘관 명단에 복권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중앙일보2019.05.02[26] 아들은 육사 48기 출신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중장). 12사단장 재직시 2022년 5월에서 6월까지 군단장 직무대리직을 수행했다.[27] 경상대학교[28] 육사 40기 중 김운용과 함께 가장 먼저 대장 진급하였으며 포병장교 출신으로는 꽤 오랜만에 대장진급이 나왔다.[29] 보병 대위 시절 베트남전 이후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유일무이하게 을지무공훈장을 수훈받은 경력이 있으며, 현재까지 모든 진급을 1차에 한 육사 42기의 선두. 군단장 역임 후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하였으며, 2020년 9월 대장 진급 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영전하였고 이어 2022년 5월 합참의장으로 지명되었다.[30] 중앙대학교[31] 1,5군단장과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은 육사 출신들의 보직이기도 하다. 물론 이 때에도 상대적으로 눈에 안 띄었다 뿐이지 꾸준히 대장 진급자를 배출하고 있었다.[32] 이 보직은 숫제 황태자 용도로 활용될 정도의 극요직인데 그렇게 황태자 대우를 받으며 특전사령관을 거쳐 대장에 빨리 올라간 장성들로는 남영신손식이 있다.[33] 특전사를 제외하면 각각 서부전선(1군단), 중부전선(5군단), 동부전선(3군단)을 지키는 최전방 군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34] 동해안은 서울로 연결되지 않을 뿐, 전쟁이 발발한다면 위의 두 축선과 함께 고성-속초-양양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주요 진격로로 꼽힌다. 지형 등의 문제로 인해 대규모 병력이 전개될 수 있는 경로가 이 셋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동해 자체도 북한의 주요 침투로로 쓰인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동해안 경계 또한 엄청 막중한 임무임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2023년까지는 동해안 경계를 전문으로 하는 군단이 존재했을 정도이다.[35] 교훈참모, 군사경찰대대 등 7명[36] 영관급 장교와 56여단 준사관 등 2명[37] 현.제2신속대응사단으로 예하였던 금성대대는 제21보병사단으로 이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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