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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승엽의 논란 및 사건 사고를 다룬 문서.2. 꿈보다 돈?
이승엽은 2004년과 2007년 자유계약신분으로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각각 치바 롯데와 2년 5억 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4년 30억 엔의 계약을 맺으며 미국 진출을 포기한다. 그의 이러한 선택을 두고 일각에서는 돈을 위해 꿈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한다. 2004년 그가 LA 다저스로부터 제시받은 계약규모는 100만 달러 정도의 마이너계약[1]이었으며, 2007년에는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요미우리에서 당시 일본프로야구 외국인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았으니 금전적으로 미국행보다 NPB에 남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또한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기 위해서라는 건 FA선수들이 밥먹듯이 하는 말이다. 류중일도 말했는데 야구는 1명이 잘 한다고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이승엽이 요미우리에 잔류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갔다고 해서 요미우리가 우승을 못 한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6~2007년 이승엽이 그나마 일본에서 평타 이상 칠 때는 팀은 우승하지 못했다. 그리고 먹튀가 된 2009년에 요미우리가 우승한다. 팀을 정상으로 올리겠다는 건 형식적인 말이라는 것이다. 솔직한 이유는 우승을 하고 싶어서[2]가 맞다. 팀이 잘나가는 팀이라야 분위기도 있고 신나는 법이다. 비밀번호를 찍는 팀보다는 훨씬 팀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다른 솔직한 이유로는 당시 메이저리그에 가서 성공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3] KBO에서 슈퍼스타였는데 일본에 와서는 타이틀 1개도 수상을 하지 못했으니 메이저리그에 가서 데뷔시즌을 2004년처럼 망할 경우 몸값은 4년 30억 엔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에서 반토막 났을 것이다. 그래서 도박보단 안전하게 30억 엔을 받은 것이다. 이승엽을 아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승엽은 도박같은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반면 이대호는[4]일본에서의 거액을 뿌리치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였고 심지어 최향남도 메이저 도전을 했는데 메이저리그 도전이 아니라 요미우리에 잔류한 후 30억 엔을 먹튀한 것은 위 내용을 뒷받침해준다. 2010년 부활을 노렸다고 반론할 수도 있는데 2010년 이승엽 성적을 본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이대호가 이승엽과 비슷한 대박계약을 포기하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해서 모든 악조건과 메이저 백업을 감수하고 도전하면서 이승엽과 비교되고 있다. 2017년 황재균 역시 무모한 도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본인의 꿈을 위해 트리플A로 가면서 국내에 잔류할 경우, 메이저리그 도전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돈을 포기했다. 과연 이승엽의 꿈이 메이저리거였을지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인기를 얻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안전한 길을 따라가면서 꿈이라 외치는 메이저리그에 도전의지가 과연 있었는지부터가 의문인 셈이다.
하지만 어디 가든 그건 선수의 자유이며 주전경쟁에 부담을 느껴서 좀 쉬운 무대에 있는 선수들도 아주 많다. 타 종목도 다를 건 없어서 대표적으로 설기현이 있다.
또한 이대호, 황재균을 따지고 보자면 이들은 미국에서 실패하고 한국 혹은 일본으로 가도 어차피 포기한 만큼의 고수익이 어느정도 보장되어 있는 선수들이며 만일 메이저에서 성공한다면 그 몇 배의 돈을 받을 수 있는 데다가 저 정도의 돈을 포기할수 있을 정도로 누적연봉도 괜찮았던 데다가 아시아 무대에서 자리도 하나 보장되어 있었다. 반면 이승엽은 앞에 두 사항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몇 가지가 애매했는데 일단 일본에서 이대호만큼 하지는 못했고(몇 시즌 정도 부진했다)한국에서도 당시 선동열 감독 덕분에 확실하게 자리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실패 후 리턴 시 자리보장이 안 되었던 상황.
2.1. 반론
애시당초 이건 논란거리가 아니다.프로 뿐만 아니라 애초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돈을 중요시 여기는게 잘못된 건 아니다.더구나 그가 해외로 진출한 2004년 당시에는 KBO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가 단 한명도 없었을 뿐 아니라, 리그의 수준차와 위상을 감안할 때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하는 것 역시 충분한 도전의 가치가 있었음이 사실이다. 2007년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 진출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가 이를 포기하고 요미우리에 잔류한 이유는 팀을 일본 정상으로 올려놓기 위해서였다.[5] 이는 그가 요미우리에 잔류한 직후부터 본인이 누누히 밝혀온 내용이고, 이는 실제 계약 조건에 요미우리가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할 경우 메이저리그 진출을 보장한다는 옵션을 건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더군다나 당시 그는 메이저리그의 모구단으로부터 상당히 좋은 조건의 계약을 제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2003년 양키스와 계약한 마쓰이의 경우를 참고해보건대 WBC와 NPB에서 대활약한 이승엽이 메이저리그에 갔다면 이대호처럼 1년간 리그 적응 검증 후에 대박계약을 노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서전에서도 아베 신노스케와 같은 선수들이랑 같이 요미우리를 우승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2009년에 요미우리가 우승했을 때,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라 분했다고...
이승엽은 2009년 시즌을 앞두고 이루어진 민훈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06년 시즌 이후 메이저리그 몇몇 구단에서 요미우리에 맞먹는 오퍼를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2006년은 WBC에서의 MVP급 활약에 이어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의 MVP급 활약으로 인해 이승엽의 주가가 가장 높았던 시기이며, 실제 시즌 중에도 뉴욕 양키스를 비롯한 메이저리그 구단의 구체적인 관심이 보도되기도 했다.# 당시의 이승엽을 둘러싼 여러 상황을 고려해볼 때 요미우리에서의 연봉 6억엔 수준은 아니더라도 연 3~400만달러 수준의 오퍼는 충분히 받았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적어도 돈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요미우리와의 4년 30억엔 계약 후 이승엽은 언론에 "하라 감독을 헹가레쳐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이승엽은 04~05년 시즌 발렌타인 감독 밑에서 플래툰기용을 겪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고 자신을 중용해준 하라 감독에 진심으로 감사를 느꼈을 것이다. 힐링캠프에서도 밝혔듯, 하라 감독은 06년 시즌 도중부터 내년에도 이승엽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해주었고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주는 등의 정성을 보였다. 이승엽이 대활약한 06년 시즌은 요미우리의 팀 성적이 좋지 않았고 이승엽은 "내가 이대로 메이저리그에 가버리면 나 혼자 요미우리라는 팀을 이용한 결과밖에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다는 말을 하며 요미우리 우승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만약 이승엽이 활약한 06시즌에 팀이 우승, 혹은 적어도 성적이 좋았다면 이승엽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NPB에서는 02년의 마쓰이 히데키, 13년의 다나카 마사히로, 15년의 이대호, 22년의 요시다 마사타카 등등 선수의 활약과 팀 우승이 겹친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사례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팀 우승은 개인의 역량만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아닌 만큼 행운이 겹쳐야 하는 부분도 있으며, 아쉽게도 06년의 이승엽에게는 그런 행운이 겹치지 않았다. 팀이 우승한 09년에는 정작 이승엽이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며 메이저리그의 꿈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06년 시즌 이후 메이저리그에 가지 않은 것은 연봉차이라는 부분보다도 이승엽이 활약한 시즌에 팀의 성적이 받쳐주지 못한 것, 그에 따른 이승엽의 심리적 부채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3. 2003년 서승화와 난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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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날 경기에서 서승화는 등판하지 않았다. 하지만 LG와 삼성간 빈볼성 힛 바이 피치와 위험한 수비 및 주루를 주고 받았고 결국 9회 삼성 라형진이 LG 장재중을 맞춤으로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게 된다. 이후 선수들이 모여드는 과정에서 이승엽이 먼저 서승화에게 달려가 밀치면서 둘의 난투극이 시작되게 된다.[6]
어찌보면 이승엽의 흑역사 중 가장 큰 사건. 서승화의 향후 행적이 어떻든 이승엽의 행동이 결코 타당치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1. 주장
2003년 8월 9일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쓰고 있던 도중 평범한 벤치 클리어링이 아닌 주먹다짐 난투극+출장정지로, 이승엽하면 떠오르는 겸손, 매너, 인성과 매우 괴리감이 느껴지는 사건이다. 펠릭스 호세가 2001년 배영수에게 참교육과 비슷한데, 호세는 이 참교육으로 출장정지와 2001년 성적만 보았을 때 MVP는 역대 단일시즌 OPS 3위, 출루율 1위 기록으로 호세가 1순위였는데, 참교육 1방으로 골든 글러브까지 날라갔다는 점에서 이승엽이 2003년 난투극을 하고도 호세처럼 MVP, 골글 수상을 못한 것도 아니라서 승까들은 2001년 호세가 MVP 못 받았으니까 2003년 MVP도 이승엽이 받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벤치클리어링에서 주먹이 오고 간 사건은 거의 드물며, 이승엽이 그 중 1명인데 그의 인성에 대한 호평은 서승화와의 난투극을 보았을 때 전혀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승빠들은 서승화같은 쓰레기 투수에게 국민타자가 참교육으로 응징해 준 거고, 서승화같은 2승 23패 투수를 언급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승빠들이 옹호를 해도 이승엽이 벤치클리어링에서 폭력을 휘두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며 그 당시 이승엽 나이는 28세라는 점에서 어렸을 때라고 변명도 힘들다.[7][8]
이승엽은 "모범이 되어야할 프로선수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면서 잘못된 모습을 보인 것을 후회한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막상 SBS 힐링캠프에서는 서승화가 중학교 후배인데 사과를 안 했다는 이상한 사족을 달기도 했다.[9]
3.2. 반론
여기서 문제는 이승엽의 난투가 올바른 행실이니 아니니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경기중 난투는 분명히 잘못된 행동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 사건을 가지고 그의 겸손, 매너, 인성과 관련지어 억지로 그를 까내리려고 하는 무리들이 문제다. 여기서 해당 사건을 제시하는 무리들의 목적이 이승엽에 관한 사건을 정리하는 차원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당시 삼성과 LG의 경기는 경기 초부터 벌어진 사구 등의 문제로 인해 두 팀 간의 감정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고, 이승엽 또한 이미 당일 경기에서 고의성 사구를 맞은 상태였다. 그리고 9회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하고 이승엽과 서승화의 난투가 벌어졌다. 비록 이승엽이 사구를 맞기는 하였으나 엄밀히 말하면 서승화가 가해자는 아니었다. 더구나 서승화는 그 당시 거의 주목받지 못한 어린 선수였기 때문에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였던 이승엽에게 여론이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일말의 변명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승화는 이 사건 이후 그가 은퇴할 때까지 끊임없이 벌어진 일련의 사건사고[10]는 물론이고, 사기혐의로 피소까지 되는 등의 막장행각으로 인해 동료의식은커녕 상식이라곤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는 인성 쓰레기의 깡패였음이 명백하게 밝혀졌기에 그를 감싸는 여론 역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11] 실제로 이승엽은 평소 서승화의 행실에 문제가 있어 감정이 상한 상태[12]였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했다. KBO에서는 이 사건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으로 판단하여 비교적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이승엽은 이후 인터뷰에서 직접 당사자들이 만나 화해했으며, 본인도 그때의 일을 후회한다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반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무리들은 이 사건을 끌어다 그의 인성을 폄훼하는 하나의 소재로 이용함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 사건의 이승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른데 프로야구 역사상 몇 안되는 경기장 선수 폭력사건이자 어린 아이들에게는 문화 충격이기 때문이다. 이승엽의 실수라 보고 10년이 넘은 이야기+추가 사건 없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저런 어린이들 앞에서 싸움질이나 하는게 레전드냐? 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경기장에서 난투극을 벌였는데도 레전드라고 대접받는 선수들이 각 구단마다 하나씩은 있는데 이승엽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3.3. 결론
이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서로 거친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자.13년 후 일어난 삼성-한화 폭력 사태 때는 폭력의 원흉이었던 윤성환 대신 사과했다. 벤치클리어링때 이상군을 찼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었으나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4. 팬 서비스 관련 논란
Q. 이승엽 선수는 싸인 잘 해주는 편이신가요?
이승엽: 아뇨. 싸인 잘 안해줍니다.
Q. 이유가?
이승엽: 이유는.. 제가 너무 많이 해 드렸던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예전부터 너무나 많이 해드렸기 때문에 싸인에 대한 노이로제. 예전에 지인들, 팀에서 원하는 것, 팬들이 원하는 것 다 해드리다보니까 싸인에 대한 희소가치가 아무래도 좀 떨어지겠죠.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직거래가 되는 걸 봤을땐 '아 내가 해줘서는 안되는 거구나' 그래서 웬만하면 안 해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린이 팬들이나, 공에다 이름을 써달라고 하는 분들에게는 해드리는 편이고, WBC 기념볼 같은 건 제가 좀 의심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좀 줄이고 있어요. 하지만 올해 다시 달리 마음을 먹어서 웬만하면 해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야구상회] 이승엽이 사인에 인색한 이유는?
국민 타자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팬 서비스 논란이 생겼다. 국민적인 스타로 사랑받으며 굉장히 많은 사인 요청이 있었을 것이고, 거부한 사례가 있더라도 사인을 한 경우가 분명 더 많았을 것이며 이에 따른 부작용이 있었을 것임을 예측하더라도 팬 서비스와 관련된 논란이 생긴 점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예전부터 이승엽에게 사인을 받기 힘들다는 사실은 삼성 라이온즈 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사인을 거절당했다는 현장 팬들의 목격담은 정말 흔해빠졌다. 모함이나 억까라고 치부하기엔 구체적인 증언이 워낙 수두룩한 데다, 결정적으로 그 유명한 사인의 희소성 발언이 떡하니 남아있다. 해당 인터뷰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사인볼 등을 내다 파는 무개념 되팔이들 때문에 해주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팬들 전체를 잠재적 되팔이로 간주한 것마냥 팬 서비스에 너무 인색했다. 그리고 사인의 희소가치 발언은 삼빠들도 실드를 못 쳐주는 명백한 실언이다.이승엽: 아뇨. 싸인 잘 안해줍니다.
Q. 이유가?
이승엽: 이유는.. 제가 너무 많이 해 드렸던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예전부터 너무나 많이 해드렸기 때문에 싸인에 대한 노이로제. 예전에 지인들, 팀에서 원하는 것, 팬들이 원하는 것 다 해드리다보니까 싸인에 대한 희소가치가 아무래도 좀 떨어지겠죠.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직거래가 되는 걸 봤을땐 '아 내가 해줘서는 안되는 거구나' 그래서 웬만하면 안 해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린이 팬들이나, 공에다 이름을 써달라고 하는 분들에게는 해드리는 편이고, WBC 기념볼 같은 건 제가 좀 의심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좀 줄이고 있어요. 하지만 올해 다시 달리 마음을 먹어서 웬만하면 해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야구상회] 이승엽이 사인에 인색한 이유는?
그나마 희소성 드립을 옹호하자면, 중고나라에 거래가 되는 현상을 보고 희소가치를 높여 사인을 받은 사람이 팔아먹지 않고 간직하게 만들겠다는 맥락에서 만든 얘기 같은데, 후술하겠지만 사인의 거래를 막기 위해서는 오히려 사인볼을 많이 뿌려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중고거래를 효과적으로 막음과 동시에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팬 서비스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승엽의 방법은 옳다고 할 수도 없다.
본인이 삼성을 넘어 한국 야구의 스타이기 때문에 크게 비판을 받았으며, 팬 서비스 외에는 별다른 구설수가 없고 개인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열심히 해왔음에도 그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킨 일등공신이 되고 말았다. 자신도 이를 인지하고 있어서 강연이라도 나가면 문제의 희소성 영상을 틀고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할 정도로 반성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아 은퇴한 지금도 팬 서비스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꾸준히 소환되어 욕을 먹는다.
프로 선수들의 팬 서비스 논란이 계속 일면서 이승엽이 팬 서비스에 인색한 사실도 웬만한 야구팬이면 다 알 만큼 많이 퍼지긴 했으나,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이승엽의 은퇴를 앞둔 2017년 9월 1일 네이버 스포츠에서 준비한 이승엽 은퇴 기념 이벤트였다. 네이버가 그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이승엽 관련 일화를 제보받으며 경품을 내걸었는데, 이벤트는 뒷전이고 지난날 그의 형편없던 팬 서비스에 대한 팬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이승엽이 오랫동안 국민 타자로 사랑받았던 만큼 이런 괴담의 피해자가 전 구단을 걸쳐 여럿 있었고, 이것이 하나하나씩 누적되면서 해당 이벤트 댓글창의 분위기는 매우 살벌했다. 특히 일화 중에서 사인을 요청한 어린이 팬에게 "저리가라 이새끼야"라고 박대했다는 제보가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에 떠돌아다녔고, 사이버 렉카들도 이걸 물면서 한동안 시끄러웠다.[13] 네이버 측에서는 좋은 뜻으로 마련한 이벤트였으나 뜻하지 않게 과거의 좋지 못한 행적만 드러나게 되어 망신살만 톡톡히 뻗쳤다.
이 이후로 이승엽 관련 기사는 죄다 희소성 관련 드립, 싸인 팔아먹을까 봐 안해준다는 발언에 관한 조롱성 댓글들이 베댓을 갈 정도로 이미지가 추락했다. KBO 홍보대사가 된 뒤에도 이런 상황은 변함이 없어서, 이승엽이 자서전을 내면 '자서전 희소성 떨어지니까 조금만 찍어라', 아시안 게임 해설위원으로 활동한다고 하니까 '목소리 희소성 떨어질 텐데 걍 해설하지 말고 집에 있어라' 같은 조롱성 댓글이 쭉 달린다. 사인의 희소성으로 신나게 깐 다음에는 항상 박용택의 '사인을 뿌려서 가치를 떨어트리겠다' 발언을 들고 와서 2차로 뚜드려 패는 것이 국룰. 어린이 팬 사인 거부 소문이 원인이 된 건진 모르겠으나, 사인 관련 발언에 대해 공개 사과를 하지 않는 한 이것은 평생 이승엽을 따라다니는 굴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말이 계속 나오자 '은퇴 얼마 안 남았으니 이제라도 팬 서비스 잘해주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2016년에 한 삼성 팬이 잠실야구장에서 본 모습으로는 여전히 사인을 안 해주고 있다고 한다. 싸인 잘해주는 놈들과 안해주는 놈들 정리 그리고 앞서 이승엽 본인이 말한 것처럼 공에 이름을 써달라고 하는 분들에게만 해드리겠다고 했는데, 그런 말을 꺼내기 전에 냅다 거절부터 해버리니 그냥 안 해주겠다는 뜻과 다를 바가 없다.
은퇴 후에는 좀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여러 이벤트에서 사인 잘 해줬다는 당연한 얘기밖에 없다. 그것도 한정된 인원만 사인해주는데, 많아야 100명대 인원에서 끊고 당첨되지 않은 20명을 추가로 사인해 준 정도다.[14] 본인 자서전 사인회에선 자기 책을 산 사람에게만 응모 기회를 준다는 얘기까지 나오며 비웃음을 사는 중. 아주 친절하게도 다른 데서 구입한 자서전도 인정된다고 한다.# 은퇴를 코앞에 두고 열리는 은퇴 투어 중에 사인회를 가지기도 했는데, 경기 전 본인을 보고 자라온 20~30대의 팬들 대신, 은퇴 투어를 준비한 각 구단에서 36명씩 미리 뽑아둔 어린이 팬들만 따로 싸인해주는 바람에, 이제와서 이미지 세탁하느냐고 까는 팬들도 많다.[15]
또한 팀 내 영건인 구자욱, 박해민 등의 팬서비스가 나쁜 것도 이승엽의 영향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선수들은 팬썹이 좋은 편인데, 유독 삼성 선수들만 이 모양이라며 이승엽이랑 묶여서 까였다. 특히 구자욱은 거절할 때 태도까지 안 좋아서 안 좋은 의미로 이승엽의 후계자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16][17]
위 영상에서는 싸인의 희소성 발언이 나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여태까지 많이 해줘서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하며, 또 다른 이유로 자기가 해준 사인볼이 중고나라같은 중고 사이트에 올려진걸 보고 꺼린다고 언급하였다. 전자는 일고의 말할 가치도 없는 잘못된 생각이나, 후자의 경우 사인을 해준 선수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18][19] 이런 점에 대해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강경한 대응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옳고 그름은 둘째치고 관련 평가에 관하여 한 번 알아둘 필요는 있다(NPB 주니치 드래곤스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구단 차원에서 사인볼 판매 금지를 요청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강경대응도 불사할 수 있다고 경고한 일이 있다. (원문 링크).
그래서 일각에서는 사인에 받는 사람 이름을 같이 기재하거나 사실상 사인을 뿌리는 식으로 해서[20] 매물가를 엄청나게 떨어트려, 결과적으로 사인의 중고거래를 억제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애당초 그런 이유로 모든 사인을 거절하는 것은 정말로 순수한 의도로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의도까지 왜곡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즉, 사인을 해서 사인볼을 팬에게 넘겨준 시점부터 그 공의 소유권 및 처분권은 오롯이 그 팬에게 있으므로, 그 팬이 그 공으로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기분이 나쁜 것은 기분이 나쁜 것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팬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 내지 책임감의 표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프로가 가져야 하는 자세라고 할 수는 없다.
메이저 리거들의 경우에도 판매용 싸인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싸인을 거절하지는 않는다. 한 예로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경우에는 판매용으로 쓰지 못하게 야구공의 싸인 위치를 약간 틀어서 해줄지언정[21] 팬들의 싸인 요구를 거절한 적은 없다.
이 사태는 이승엽 본인의 겸손 등의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도 자업자득이기에 할말은 없다. 본인의 이미지 관리를 다른 곳에서 아무리 잘한다 한들, 이승엽이 최고의 커리어를 쌓은 곳은 프로야구다. 정치인도 자신들의 지지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킨다. 하물며 팬의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선수가 팬들 대하는 태도가 엉망이라면, 평소 아무리 인성이 좋아도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
삼성 팬들 중 일부는 이승엽이 은퇴 전에는 자신에게 혹독하고 팬 서비스를 할 시간에 훈련을 더 하는[22] 성향을 가졌으나, 은퇴 후에는 여유가 생겨서 개인 SNS를 시작하는 등 팬들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좀 더 보여주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본인이 KBO 홍보대사를 하고 싶다는 인터뷰도 했고, 이런 의견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물론 이것이 이전까지의 행적을 만회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약속처럼 은퇴 이후에는 팬들에게 잘 해주는 편이다.
그리고 시대가 지날수록 팬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바뀐 것도 크다. 과거에는 야구 잘 하는게 최고의 팬 서비스라고 인식되었지만, 요즘은 팬들이 생각할 때 야구선수에게 팬 서비스란 부업이 아닌, 야구와 마찬가지로 본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편, 2021년 8월 12일에 박동희 야구기자가 조사하면다나와 유튜브 채널에서 팬 서비스에 대한 썰을 풀었다. 어느 야구 팬이 싸인을 요청하자, 한숨을 쉬고 거부하며 그냥 가버리자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사례를 이야기하며 '아주 유명한 선수'라고 언급했고, "넌 팬을 잃은 동시에 모멸감을 준 거야."며 악평을 하였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겪었던 선배 야구선수들의 좋은 팬 서비스가 있던 시절을 비교하며 악평을 하였고, 누구인지 제보를 받는다고 다시금 이야기를 했는데, 하도 팬 서비스에 대한 악명이 너무 많은 것으로 유명한 어느 선수를 거론하며, "당연히 대놓고 싸인을 거부하는 선수로 유명한 이 선수, 그 선수가 아니냐?"라면서 대놓고 조롱하는 야구 팬들의 반응이 많았다.
한국에서 이승엽이 똑같은 짓을 벌였으면 국민정서상 아무리 이승엽이라도 무거운 결과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감히 그럴 생각을 못했던 것뿐, 각자 자기 위상에 취해서 선 넘는 짓을 해 온 건 본질적으로 누가 낫다 하기도 어려운 도긴개긴이다. 그나마 사생활이 매우 깨끗하고, 술과 담배를 손대지 않은 동시에 중대한 사고는 없어서 악마의 재능 사례에는 해당되지 않는 게 위안이다. 만약 사소한 사고나 범죄까지 있었더라면, 악마의 재능 호칭을 받는 걸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4.1. 왜 문제가 되는가?
이 문단은
기업들이 매년 큰 돈을 들이며 적자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단순히 사람들에게 스포츠 보게 해주려고? 절대 아니다. 기업은 이윤을 내는 집단이지 복지와 봉사를 하는 집단이 아니다. 기업이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홍보 효과 때문이다. 어떤 스포츠에든 관심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응원하는 팀이 생기게 되고, 그 팀을 운영하는 기업을 알게 되면서 생기는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팀을 응원하는 팬들을 상대로, 기업 홍보와 마케팅 효과를 누리기 위해 큰 돈 들여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팬들의 관심과 응원을 당연시 생각하고 무시한다면, 아주 당연하게도 인기와 화제성이 떨어지며, 기업들의 관심도 떨어지게 된다. 기업의 관심이 떨어지면, 선수 자신도 대접을 전보다 못 받는 악영향을 초래하는 결과가 된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자기가 팬 하나 둘 무시한다고 해서 적어도 당장 그 결과가 직접 돌아오진 않는다는 걸 머리 속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도리적으로는 최희암 감독의 말이 두말할 나위 없는 정론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자기 위상이 있는데 하나하나 안 챙겨준들 어떠리 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이승엽 역시 자신의 그런 태도가 오랜 세월 쌓여 욕을 먹게 되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계속해서 팀에서 중용되다가 지금도 레전드 대접 받는 건 사실이다. 즉 결과적으로 업보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현역시절 오만한 태도를 고칠 수 있을 정도로 당장 가시적인 페널티를 받는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식의 영악하고 계산적인 태도는 선수를 떠나 개인의 인격적 평가에 영향을 끼친다.
메이저리그를 보자. 대부분의 선수들이 팬 서비스를 성실하게 해주며, 그렇지 않은 알버트 푸홀스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리고 선수 연봉에는 팬 서비스에 대한 가치도 들어있다. 하물며 KBO보다 훨씬 상위 리그인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팬 서비스를 굉장히 잘 해주는 편인데, 명색이 팀, 더 나아가 야구 전체를 대표하는 선수가 팬 서비스를 안 하겠다면, 그 시점에서 그 선수는 프로선수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굳이 메이저리그까지 가지 않아도 같은 한국 야구선수인 박용택, 오재원, 같은 팀 후배 장원삼 등의 선수들과 비교해 봤을 때, 이승엽은 팬 퍼스트 정신이 제대로 갖추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오직 팬의 사랑과 관심으로 살아가는게 프로선수인데, 팬을 우습게 여긴다면 도대체 프로 스포츠의 존재 의의를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결국 프로선수로서 돈은 벌고 싶은데, 서비스는 하기 싫었다는 얘기 밖에 안된다. 몇몇 팬들은 이승엽이 사인할 시간에 훈련하는 것을 선호해서 팬들을 외면한 것이라며 비호하고 있지만, 자기 시간 쪼개가면서 팬 서비스를 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난 훈련하기 싫어서 팬 서비스 하는 줄 아냐?"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사실 삼성 라이온즈는 2020년대 현재는 팬서비스가 개선되거나 마인드 자체가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지만, 과거엔 전통적으로 팬서비스에 대한 비판을 꽤 받았던 구단이다. 이승엽보다 선배인 양준혁[26][27]부터 신인이었던 구자욱[28]까지 전부 팬 서비스에 대해 좋은 소리가 없었고, 다른 구단으로 떠난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29] 투수조는 상당히 친절한 편이지만, 전술된 야수조가 문제다.[30] 특히 대표 선수인 이승엽부터가 이 부문에 무성의하니 다른 선수들까지 그런다.[31][32]
이승엽이 선수로서 전설적 성적을 남기고 은퇴를 하였으나, 결국 이 일화는 좋지 않은 꼬리표로 남겨져 앞으로도 이승엽을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다.[33] 팬 서비스는 스포츠 선수들의 기본 덕목임에도 레전드라고 추앙받는 선수가 가장 기본이 되는 팬 서비스에 소홀하며, 설득력 없는 변명으로 일관한 것은 참 아쉬운 부분이다. 2017 시즌 은퇴가 다가오자, 앞으로는 팬 서비스를 잘 하겠다고 말하였지만, 이는 면피용 대처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은퇴 이후 이승엽의 팬 서비스가 박찬호급으로 좋아져도 결국 "선수 때는 더럽게 사인 안해주더니 은퇴하고 나니까 잘해주네" 그 이상의 평가는 받을 수 없을 것이다.
2018년에 팬 서비스 논란 기사출처가 나오면서 이승엽의 팬 서비스 문제도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일부 야구팬들은 이승엽의 팬 서비스가 '그렇게까지 형편없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며 놀라워했으며, 이로 인해 은퇴 이후 어떠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고 성적까지 좋았던 선수의 평가가 급격하게 떨어진 이례적인 사태가 일어났다.
물론 선수들이 팬 서비스를 하고 안 하고는 선수의 자유나, 팬들이 그 선수에게 욕을 하고 떠나가는 것 역시 팬들의 자유다.
간혹 트레이 힐만의 인터뷰를 유효한 반론인 것처럼 제시하며, 메이저도 팬 서비스 안 좋은 것은 똑같다고 반박하는 이들이 있는데, 애초부터 그 인터뷰의 장본인인 트레이 힐만은 팬 서비스가 굉장히 좋은 야구인이다. 더군다나 이승엽이 욕을 먹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사인을 안해줘서가 아니라 사인을 거절하는 이유에 대한 인터뷰, 즉 사인의 희소가치 발언 때문이다. 만약 이승엽이 훈련 등의 다른 이유를 들어, 사인의 희소가치 같은 변명 없이 팬 서비스를 좀 잘해줬다면 지금만큼 까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위의 인터뷰가 있기 1년 전, 분명히 류현진이 팬들을 무시하고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얼마나 여론에게 욕을 먹었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귀를 귀울였다면, 충분히 팬 서비스에 대한 반성을 했을 것이고, 이에 조금이라도 사인을 잘해줬을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사인을 잘 안해준다"고 밝히고, 사인의 희소가치를 들먹이는 행위는 팬들을 무시하는 행동이 얼마나 후폭풍을 몰고 올 지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었음을 보여주고, 충분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인거부를 이유로 이승엽을 비난하는 댓글 등의 내용에는 십중팔구로 자기 희소가치나 챙기는 졸렬한 놈이라는 반응이 꼭 들어간다. 희소가치 떨어진다고 사적인 자리가 아닌 곳에서도 싸인 안해준 형편없는 의식을 지적하고 있기에, 메이저리그도 싸인 안 해줘도 똑같다는 것은 유효한 반론이 될 수 없다.[34]
또한 강조했듯이, 별명은 국민타자인데, 팬 서비스와 태도가 형편없다는 이유도 있다.[35] 같은 공직자가 음주운전을 하더라도 대통령이 하는 것과 9급 공무원이 하는 것은 국민정서가 받아들이는 크기가 다르다. 이승엽은 많은 야구팬들에게 사랑과 응원을 받으면서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승엽의 행동에 배신감과 불쾌함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선수에 비해 더 큰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비판의 스피커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승엽만 까인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도 사인 안 해주었던 이범호, 나지완이나 이승엽 이상으로 태도가 안 좋았던 김민식이나 류현진 역시 욕을 많이 먹었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보통 이승엽의 이런 형편 없는 태도 뒤에 지나가던 양준혁이 나타나 '자기 사인이라도 대신 받아가라'는 했다고 하는 삼성 팬들의 증언이 퍼져 양신을 찬양하게 되었다는 경우도 많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양준혁은 기분파라 팬 서비스 퀄리티가 확실하게 좋다고 볼 수 없고 종종 욕도 먹는데, 이승엽에게 거부당한 팬들이 그냥 딱하게 보여서 잠깐 호의를 베푼 것 정도로 인성 부분에서 상당히 평가절상된 걸 보면, 그만큼 이승엽의 팬 서비스가 얼마나 안 좋았는지 알 수 있다.[36]
4.2. 해명과 사과
2020년 KBO 리그 개막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이승엽은 박재호 기자의 유튜브 채널 '개막특집 레전드 토크' 영상에 출연해서 사인 및 저리가라 논란에 대한 사과와 해명의 자리를 가졌다. 일단 그때 당시 본인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근래 각 구단 퓨처스팀, 상무, 경찰청 선수단에 강연을 했을 때도 후배 선수들에게 자신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고 얘기했었다고 언급하였다. 실제로 이승엽이 강연 때 희소성 영상을 트는 자료가 남아있다.
문제의 사인의 희소성 인터뷰는 아직도 인터뷰 당일이 생생히 기억난다며,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전제를 깔면서 본인이 그렇게 인터뷰했었던 이유를 밝혔다. 당시 성적이 좋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던 와중에 야구장 외의 장소에서 본인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스토커처럼 사인을 요구하던 사람들이 많았고, 이미 본인에게 사인을 받은 사람들이 중복해서 계속 사인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많아서 이미 사인을 받으셨으니 못 받은 분들을 우선으로 해드리겠다고 말했다가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본인의 표현으론 선수들만큼 얼굴을 자주 보는 사람들이었다고.[37] 인터뷰 당시 사인을 너무 많이 해드린 것 같고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발언은 당초 그런 사람들을 겨냥한 표현이었지만 전달이 잘 되지 않았고, 본인으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께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는 더 잘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1996년[38]에 사인을 요구하는 팬에게 욕설을 했다는 루머(저리가라 이새끼야 부분)는 강하게 부정했다. 당시 본인도 21살이었기 때문에 초등학생 팬이 말을 걸어도 존대를 하는 시절이었다며, 본인은 그런 적이 없고 정말로 자신에게 그런 욕설을 들었다면 연락주면 다시 사과드리겠다고 했다.
게다가 당시 정황을 따져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해당 댓글의 작성자는 1998년 2월 또는 12월 즈음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삼성 라이온즈는 1998년 2월에 오키나와로, 12월에는 브리즈번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그 자리에서 이승엽 대신 사인을 해줬다는 양준혁은 12월에 임창용과 트레이드되어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했고, 20대 초반의 데뷔 4년차 선수가 고3에게 막말을 한다는 것은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1998년 12월이 아니라 1997년 12월 아니냐고 말장난을 하는 주장도 있는데 직접 당시 일정을 보고 확인하자.
애초에 삼성은 매년 2월과 12월마다 호주,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떠나는데, 그래서 1996년이든 1997년이든 1998년이든 이승엽이 한국에 있을 수가 없는 시기였다. 물론 근거도 전혀 없고 이승엽을 헐뜯기 위한 루머일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으니 좀 더 그럴듯한 시기(예컨대 시즌 중이라든가)로 재포장될 공산이 있지만, 원댓글에서는 분명 1998년 12월 혹은 2월에 한국에 없었던 이승엽에게 욕을 들었다고 되어있었다.[39]마지막엔 그간의 사인 논란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본인의 업보라고 생각하며, 현역 때 더 팬들에게 친근하게 대해줬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고 있다는 멘트로 해당 건에 대한 토크를 마무리했다.
2021년 9월 이승엽을 야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추천하자는 기사가 나왔을 때, 이승엽 본인은 사인 건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하며 본인이 감독직을 맡기에 부족하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차기 감독? 감이 못 된다" 이승엽은 '반성'을 먼저 말했다 이후 2023년 대표팀은 아니지만 두산 베어스의 감독직을 맡기 시작했다.
[1] 당시 한국야구를 평가하는 미국야구의 시각이 이 정도였기 때문에 국내 프로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사실상 일본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다음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류현진 이전의 일반적인 패턴이었다.[2] 메이저리그에 하위권 팀에 갈 바에는 강팀에 남고 싶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승엽이 있던 팀들은 모두 가을야구에 갈 수 있는 강팀이었다. 오릭스가 유일한 약팀인데 이때는 국내복귀를 하고 싶었는데 선동열 덕분에 1년을 더 일본에 있어야 해서 그랬다.[3] KBO 리그에서는 밥 먹듯이 타이틀을 땄지만 일본 진출 이후에는 한 번도 타이틀 홀더가 되어보지 못했다.[4] 오승환도 거액 제시를 받은건 맞으나 원정도박 사건으로 팀에서 재계약을 안 했다.[5] 물론 가족을 위해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을 것이다.[6] 영상 38초부터 홈플레이트에 달려가는게 이승엽.[7] 참고로 전년인 03시즌에는 82이닝동안 사구가 3개뿐으로 서승화가 문제아란 인식의 시작은 벤클이 일어난 04시즌부터라고 이승엽 안티팬들은 주장하는데 애초에 사구 개수가 문제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것도 말이 안되고 사기에 후배 폭행 등 서승화의 이후 행적이 전부 이승엽과의 난투극 탓이라는 억지를 부릴 게 아니면 사실상 의미없는 주장이다.[8] 물론 프로와 사전접촉 등 입단 전부터 입방아에 오르긴 했다.[9] 이승엽은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경상중-경북고를 나왔으며 서승화는 충청도 태생으로, 한밭중-대전고를 나왔다.[10] 경기중 빈볼투구는 기본이고 상대선수의 발을 걸어 부상시키는 등 더티 플레이를 상습적으로 일삼았는데다가 말년에 2군에서 후배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밀어 상처를 내며 여러 가지 구설수를 일으켰다.[11] 지속적으로 서승화는 본 난투극 이후 문제아란 이미지가 굳어진 케이스라고 논점을 흐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문제아 이미지가 굳어졌기 때문에 후배를 폭행하거나 더티플레이를 하고 사기까지 친 것인가? 이미지가 나빠지면 실제로 막나가게 된다는 식의 주장은 삼류 자기계발서에서도 하지 않는다.[12] 후배인 서승화가 위협구를 던졌는데도 사과하지 않았고, 계속 위협적인 공을 던졌다. 사건 이후 그해 9월 말 다시 LG와의 경기를 가졌는데 당시 홈런 신기록을 코앞에 두고 있던 이승엽을 다시 상대하게 되자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항의를 하고 시속 110km짜리 아리랑볼을 마치 장난치듯이 던졌고, 이승엽은 그런 공은 치지 않겠다고 하여 볼넷으로 걸어나간 바 있다.[13] 본문은 "저리가라 x끼야!"지만 어떤 렉카가 자막화한 "저리가라 이새끼야"가 더 많이 알려졌다. 덕분에 '저리가라 이새끼야'는 싸인의 희소성과 함께 이승엽의 팬 서비스를 상징하는 어록으로 남고 말았다. 이후 이승엽은 저리가라 건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으나, 워낙 임팩트가 커서 지금도 팬한테 냉랭하게 대하는 선수가 나오면 '저리가라'는 심한 발언이 나오곤 한다.[14] 사인회 같은 여러 이벤트에서 사인을 거절한다는 게 이상한 거다.[15] 성인 팬들을 부를 경우, 그 싸인을 또 팔아먹을까 봐 일부러 어린이들만 선정했다는 설도 있다.[16] 결국 구자욱은 하도 타작을 당한 나머지 석고대죄를 하였다. 이후로는 가급적 잘해주려고 한다.[17] 실제로 이승엽이 은퇴하고 나서 삼성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는 점을 보면, 삼성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나빴던 게 이승엽의 영향이 없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18] 싸인 뿌린다는 박용택도 이 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불쾌해했다.[19] 한국의 양궁 선수 안산(양궁)도 자신의 사인이 들어간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3관왕 기념 시계 판매 글을 보고 "내가 이걸 팔았느냐. 선물이잖아 선물. 필요 없으면 그냥 조용히 버리든가 나눔을 하라. 마음을 줬는데 그걸 왜 네 용돈벌이로 쓰냐"라고 말하며 무척 불쾌해하는 글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20] 실제로 과거 오 사다하루나 박용택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21] 미국은 싸인의 위치가 그 싸인볼의 가치를 평가한다. 최상품은 '스윗 스팟'이라고 부르는, 메이저리그 공인구에서 커미셔너 싸인이 적힌 자리에 적힌 싸인.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이 자리에다 싸인 해주는 건 팔아도 된다는 뜻이고, 실제로 구장 판매용 싸인볼이나 이벤트 볼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 싸인을 해놓는다. 참고로 이 스윗 스팟은 한국식 기준과는 정반대인데, 한국은 스윗 스팟쪽은 비워놓고 그 좌우에 싸인과 싸인한 날짜를 적어 주는게 베스트다.[22] 알다시피 이승엽은 엄청난 훈련광이다.[23] 최희암 감독은 농구 감독이지만, 이 말은 인기가 있는 모든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게다가 이 시기는 아직 팬 서비스라는 것도 자리잡기 한참 전인 1990년대이고, 이 당시 농구는 프로도 아니었다.[24] 데얀은 실력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싸인이나 셀카 요청을 받아주는 등, K리그 선수들 중에서도 팬서비스를 잘 해주는 선수로 유명하다. 본인이 짐을 든 상태로 차를 타고 어딘가로 급히 움직여야 할 상황에서 셀카요청을 받았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그 짐을 다 내려놓고 셀카요청을 아무렇지도 않게 혼쾌히 받아주는 등의 일화가 있다.[25] 일례로 FC 서울에서 대부분 학창 시절을 보내고, 실업팀 등 선수 생활도 서울에서 대부분 한 스케이트 선수 안현수도 의외로 롯데 자이언츠 팬이다. 러시아로 가고 나서도 가끔 한국에 오면 사직구장에서 목격되는 것도 그 때문. 이유인 즉슨 어릴 때 마해영이 야구장에서 사인을 해준 것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안현수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고, 롯데는 평생 팬을 얻은 것.[26] 양준혁은 일화들을 종합하면, 기분파 성향이 좀 있어서 사람마다 팬 서비스 평가가 살짝 바뀌는 편이다. 잘해줄 땐 잘 해주지만, 안해줄 땐 냉랭했다고. 팬들 대하는데 편차가 있다는 것 자체가 팬 프렌들리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는 선수는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는 충분하다. 다만, 시작부터 안해주려는 이승엽이 너무 돋보여서 나름 팬 서비스를 잘해줬던 모습이었던 양준혁이 상대적으로 부각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양준혁의 경우 팬들에게 나온 말을 보면, 본인의 츤데레 성향이 있어서 팬 서비스가 저평가 되었다는 말도 있듯이, 분명 팬 서비스가 나빴다고 보기엔 어려운 선수였다.[27] 그나마 양준혁은 사정이 나은 것이, 이승엽선수에게 사인을 요구했더니 폭언이나 철저한 무시를 받고 울적해 하는 모습을 양준혁이 보게 되어, 대신 자기 사인을 해줬다는 미담 아닌 미담이 퍼지기도 했다. 무려 2차례 증언이 있는 걸 보니, 꽤나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모양.[28] 사실 여기도 다른 선수와 그렇게 친하면서 팬서비스는 좋은 소리 못 들었으나, 지금은 부상 및 2군행으로 팬들을 만나지 못한 공백기가 있어서 팬들이 그리웠고, 이때부터 개선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굉장히 잘 해주는 편이다.[29] 참고로 삼성의 주축 타자들이었던 이 셋의 팬 서비스도 삼성 시절에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었다. 최형우는 KIA 이적 후에도 싸인이 받기 힘들다는 증언이 많이 나오는 등 여전히 팬 서비스가 나쁘다. 채태인은 팬서비스 좋기로 유명한 넥센으로 이적한 덕인지 많이 개선되었다. 박석민은 경기 전에는 절대 안 해주지만, 경기 후에는 잘 해준다고 한다.[30] 예외적으로, 유격수 김상수는 팬들에게 매우 친절하다. 굳이 가서 사인을 해주는 행동 때문에 연쇄 사인마라는 별명이 붙었다.[31] 구자욱은 삼린이 싸인도 거절하는 등 이승엽을 넘어선 팬 서비스로 여전히 논란거리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박해민은 인사도 무시하고 선물을 먹튀했다는 전적이 있어서, 박해민 데이 행사 때 팬들에게 욕을 무지막지하게 먹고, 이후 팬들한테 태도를 고치겠다고 사과한 적이 있다. 배영섭 역시 싸인 요청을 해도 그냥 무표정을 하며 지나가 버리는 것으로 유명하고, 강한울은 기아 소속이었을 때부터 팬 서비스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32] 그래도 구자욱은 인스타그램에 반성하는 글을 올린 뒤, 팬 서비스가 확실히 좋아졌다는 평을 받고 있고, 박해민 또한 현 아내에게(당시 여자친구) 한 소리 들은 뒤, 팬 서비스가 개선되었다. 그리고 배영섭과 백상원은 나란히 방출 크리였다. 강한울만 아직도 악평 일색이다.[33] 2018년 4월 본인 자서전에 대한 기사 베댓들을 보면, 이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4] 다만, 메이저리그는 무조건 팬을 최우선시하고 팬서비스가 안 좋은 선수는 연봉 계약에 불이익이 있다는 등 과도할 정도로 메이저리그 미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힐만의 인터뷰도 그에 대한 반박 중 하나였다. 이승엽을 비판하기 위해 메이저리그 팬서비스를 과하게 부풀렸다는 것. 물론 이승엽의 경우는 상기한 바와 같이 단순히 팬서비스가 안 좋다는 것을 넘어, 사인의 희소가치를 운운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으로 본인의 부실한 팬 서비스를 합리화했기 때문이다.[35] 앞서 말했듯이, 알버트 푸홀스가 욕먹은 이유와 마찬가지로 태도가 좋지 않아서라고 말해두었다.[36] 비슷한 사례로 KIA 타이거즈의 김민식이 있는데,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도 사인을 잘 안해준 나머지, 그 팬 서비스 안 좋다는 이범호가 나서서 자기가 사인 대신 해주겠다고 한 카더라가 돌기도 했다. 물론 김민식은 이승엽과 달리 이적생인데다, 성적도 좋은 편이 아니라 더더욱 까인다는 차이점이 있다. 다만, 김민식은 sk 시절에는 팬서비스가 좋았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실제로 ssg 복귀 이후에 팬서비스가 놀라운만치로 개선되었기에, 팬서비스가 안좋은 KIA 타이거즈의 팀 분위기에 따라간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37] 시도때도 없이 사인을 받아서 내다파는 장사꾼들도 분명 실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의문을 가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38] 원댓글은 1998년이나 인터뷰어인 야구부장이 잘못 말했다.[39] 1998년 2월 6일 전지훈련 출국 / 1998년 12월 4일 출국으로, 2월의 경우 1일부터 5일, 1월의 경우 1일부터 3일까지의 시간이 있으므로 아예 불가능한 사항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