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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22:54:36

유진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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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계 정당의 계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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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산계
친유진산계
<colbgcolor=#ffd700> 형성 <colbgcolor=#ffffff,#1f2023>1963년
소멸 1974년
수장 유진산
정치적 이념 보수주의
반공주의
중도통합론
경제적 이념 시장자유주의
주요 정치인 유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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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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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민당 내에 제5~7대 대표, 제8대 총재 유진산을 따르던 인물을 일컫는다.

2. 역사

민주당에서 윤보선 중심에 구파(구파동지회)에 속하며 신민당, 민정당 창당 때 모두 합류했다. 그리고 신민당 창당 3년 후 대표에 선출되며 당내 기반을 세웠다. 유진산계는 구파를 중심으로 김영삼 등 범유진산계를 형성하며 세력을 넓혀 갔다. 이때 김영삼이기택[1]도 유진산계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5대 대표로 선출된 뒤 6~7대 대표까지 역임하며 호평을 받았다. 이때 김대중김영삼과 마찬가지로 유진오·유진산계에 합세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고[2], 전당대회 뒤 당시 대표 유진오는 새 총무로 김대중 지명 인준 가능성을 타진했는데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전직 총무였던 김영삼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그는 필동 직계 정성태를 추천했다.[3] 당연히 김대중의 반발했고 유진산을 찾아갔으며 이후 유진산은 유진오에게 압력을 넣었다. 결국 유진오는 김대중을 총무로 지명했으나 인준 투표 결과 김대중 총무안은 인준에 필요한 과반수에서 6표 모자라 부결되고 말았다.[4]

별 수 없이 유진오정성태를 재임명해 재인준을 받았으나 또 물러났고[5], 그 뒤를 김영삼이 다시 이어받았다.[6] 이후 유진산은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파 당원에게 김영삼 지지 엄금 명령을 내렸고, 정일형·이재형 등 진산과 라이벌 계파의 중장년층 역시 의견을 같이 했다.

김대중 총무 지명건과 제7대 대통령 선거 경선으로 인해 김영삼과 사이가 틀어졌으며, 진산 파동으로 당내 기반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전개 과정은 이렇게 되었는데, 유진산이 자신의 지역구 영등포구 갑에서 불출마하고 전국구 1번으로 등록하였는데, 이는 민주공화당의 후보이자 박정희의 조카사위 장덕진에게 지역구를 거저 주려는 심보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 유진산의 자택 앞에서 청년 신민당원들과 유진산계열 신민당 청년당원들과 패싸움을 벌였다. 급기야 1971년 5월 7일 관훈동 신민당 중앙당사에서 벽에 걸려 있던 유진산의 사진을 떼고 불태우는 난동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결국 유진산은 대표직을 사퇴하고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진산 파동, 제8대 국회의원 선거 등을 거치면서 유진산계는 또다시 변화하였다. 유진산을 중심으로 뭉쳤던 범주류는 다시 김영삼계, 고흥문계로 갈라졌다. 또한 이철승정해영이 독자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3. 구성


[1] 이기택은 처음에는 진산계가 아니라 유진오계였다. 68년 신민당이 고려대 총장 유진오를 새 당수로 영입할 당시, 유진오가 자기 사람 심기 차원에서 고대 총학생회장출신인 이기택을 끌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유진오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유진오 시대의 실질적 개막과 함께 그는 병상에 누웠다. 오랜 기간 당수가 유고 상태에 있자 진산이 차기 당수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도쿄 제국 호텔에서 맺은'倫·柳 밀약'에 따라 유진오계가 진산을 지지해 '법진산계'를 형성했다.[2] 김대중을 비롯한 신파계가 유진산을 수석부총재로 미는 대신 총무직을 보장하라는 것이 김대중의 합류 조건이었다[3] 유진오도 그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4] 이때의 비토 그룹은 김영삼 부대였다.[5] 정성태는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났다.[6] 한편 김영삼은 마지막 원내총무 임기 간에 야당의 한 세대를 뛰어넘어 대통령후보에 도전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7] 김대중 총무 지명건으로 인해 유진산과 사이가 벌어졌다. 그러나 유진산계를 일부 흡수했다.[8] 유진산의 계파 일부를 흡수하기도 했다.[9] 다만 유진오계는 필동 직계에[동반자] 정치적 동반자 정도지, 누구 게파로 들어갈 인물은 아니다.[11] 전당대회에세 유진산계가 김홍일을 밀었으나 반유진산계가 모인 민주통일당을 창당하며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