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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2:07:06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반응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
1. 개요2. 대한민국의 반응
2.1. 방한(또는 내한) vs 귀국 논란
2.1.1. 방한이다2.1.2. 귀국이다
3. 유승준 측의 주장과 반론
3.1. 고의적인 병역 기피를 위해 시민권을 신청한 것이 아니다
3.1.1. 반박
3.2. 계약 문제가 얽혀 있었다
3.2.1. 반박
3.3. 9.11 테러로 당시 미국에서 외국인 영주권자에 대한 제도가 급변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3.3.1. 반박
4. 유승준 옹호론과 그에 대한 반박
4.1. 미국 영주권, 시민권 이해 부족4.2. 입국 금지가 인권침해다
4.2.1. 인권 침해라 볼 수 없는 이유
4.3. 다른 외국 국적 연예인과 형평이 맞지 않는 괘씸죄 적용이다4.4. 연예계에서

1. 개요

유승준병역기피에 대한 반응, 그리고 이에 대한 유승준의 해명과 옹호론, 반박을 서술하는 문서.

2. 대한민국의 반응


당연히 대중들은 큰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다. 인터넷에서는 비난이 쇄도했고, 보건복지부의 금연홍보대사 지정도 취소되었으며 CF도 줄줄이 계약 해지되었다. 입대로 인한 공백기는 가수 생명에 치명타라면서 옹호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지만 여론은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진 후였다.

말 그대로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병무청은 논의를 거쳐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 유승준의 입국 금지 조치를 요청했고,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여 2002년 2월 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입국하려던 유승준은 입국이 거부되어 대한민국 출입국심사 라인을 넘지 못하고 약 6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그대로 미국으로 되돌아갔다.[1] 본래는 입국 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로 계획했지만 입국 금지되면서 이것마저도 무산되었다. 유승준은 이에 대해 유감스럽고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아버지와 오랜 상의 끝에 내린 결정이기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떠나기 전까지도 '자숙 기간을 가지고 여러분이 용서해주시면 돌아오겠다'고 밝히고 간 것을 보아 이 입국 금지가 한시적일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여론은 잘했다는 것이 대다수였고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얘기도 있었지만 결론은...

당시 이 사건으로 다소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던 병역특례요원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병역특례업체에 해당되는 회사에서 근무하려는 병역특례요원은 회사 내 업무 특성에 적합한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들만 근무할 수 있었는데 당시까진 같은 급의 대강 비슷한 자격증이면 그냥 근무가 가능했었다. 그러나 유승준 사건이 터지면서 병역특례에도 부랴부랴 긴급 감사가 떨어졌고, 이로 인해 정확히 필요한 자격증 없이 근무하던 병역특례요원들은 자격요건이 박탈되어 군대에 끌려가야 했다. 당연히 이들은 지금까지도 유승준에게 이를 갈고 있다.

매우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큰 파장과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가 '입영통지서가 나온 상태에서 국방의 의무를 무시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버린 외국인'이었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국제법상 국가는 자국민의 입국을 막지 못한다. '자국민의 입국 금지'는 국제법으로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그를 입국 후 체포해서 처벌해야지, 아예 입국 금지를 시킬 수는 없다. 다만 출국 금지는 시킬 수 있다. 용의자가 처벌을 면피할 목적으로 해외로 도주하는 걸 막기 위해 출국 금지를 거는 경우는 존재한다. 하지만 자기 나라로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자국민에게 국적 삭제 내지는 입국 금지 조치를 하는 건 1950년대 이승만 정부 시절에나 있던 이야기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한제국영친왕으로, 그는 이승만에 의해 국적을 삭제당해 무국적자가 된 것에 이어 입국 금지마저 당했다. 박정희 정부에서야 겨우 입국 금지가 풀리고 국적 회복이 되어 고국에 돌아와 고국의 땅에 묻힐 수 있게 되었다. 이승만 본인 또한 4.19 혁명으로 하와이로 도망간 이후 후임 정부에 의해 입국 금지를 당했지만... 그 악명 높은 군사 정권조차 자국민 입국 금지는 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군사 정권 유지에 눈엣가시였다는 김중태를 국외 추방할 때에도 추방만 시켰을 뿐 이승만이 영친왕에게 했던 국적 삭제나 입국 금지 조치는 하지 않았다. 또 이보다 더 세게 나간 김중업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완전한 국적 빼앗김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유승준은 자국민이 아니므로 해당사항이 없다. 그는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국적상실신고를 한 그 순간부터 '한국인 유승준'이 아니라 '미국인 스티브 유'가 되었다. 이제 그는 외국인이 되었기에 입국 금지 조치가 가능하다. 국제법상 외국인의 입국 허가는 해당 국가의 자유 재량에 달린 것이지 반드시 받아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 당장 한 평생 선량하게 살아온 인물이라도 해외 여행을 하다가 석연찮은 이유로 입국이 거부되는 경우도 있다.[2] 그리고 이건 어디가서 따질 수도 없다. 입국을 받아주고 안 받아주고는 순전히 그 나라 마음이기 때문이다.[3] 연쇄 살인을 저지른 중범죄자라도 그 나라에서 받아주면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개미 한 마리 못 죽이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못 하는 선량한 사람이라도 그 나라에서 안 받아주면 못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미국인인 유승준의 입국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전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고유 권한'이다. 앞서 말했듯이 국제법상으로 외국인의 입국은 해당 국가가 반드시 받아주어야 할 의무가 없다. 공항이나 항구 등에 출입국심사대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극렬 팬덤들은 맹비난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국제법상으로 아무 문제 없다. 유승준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엄연히 입국 심사 기준에 따라 그의 입국을 받아주거나 혹은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래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유승준의 입국을 불허한 것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국제법을 어기고 불법적으로 행동한 것이라면 당연히 다른 국가들의 제재가 들어오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짓을 한 국가가 어떤 꼴이 나는지는 바로 윗 동네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아무 일도 없다.

군의 반응은 극렬의 분노 그 자체. 스타부터 시작해서 이등병까지 맹렬히 증오하고 있다. 이 분노가 대놓고 드러난 사례가 유승준이 2020년에 말썽을 일으켰을 때 모종화 당시 병무청장과 서욱 당시 국방장관의 반응인데, 그 둘 역시 단호하게 전례가 없는 수법으로 병역을 기피한 유일한 사례로 못박았다. 국회의원들조차 유승준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을 넘어 국가 및 정부 관계자, 국민를 우롱하고 기만한 악질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파장이 컸는지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팀 오인용연예인 지옥에서 스티붕유 라는 비하 캐릭터를 등장시켜 소재로도 썼을 정도이다.

2.1. 방한(또는 내한) vs 귀국 논란

이 당시 유승준의 한국 방문을 두고 일각에서는 방한(또는 내한)이다 또는 귀국이다라는 말이 오갔었는데 이제 외국인이 되었던 만큼 그 자는 방한 또는 내한이 맞다고 하지만 태어난 곳이 대한민국 서울이라고 하고 국적이 바뀌었을 뿐 고향은 대한민국 서울이며 또한 부득이한 사정으로 외국인이 되었고 한국 국적으로서 마지막으로 출국을 했으니만큼 귀국이 맞다고 하는 이들의 설전이 벌어졌다.

2.1.1. 방한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유승준은 출생지가 대한민국 서울은 맞지만 국적이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이며 또한 본인이 스스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으로 귀화를 승인받으면서 한국에 왔으니만큼 사실상 방한 또는 내한이 맞다. 아무리 태어난 곳이 한국땅이라고 해도 현재 국적이 외국이라고 하면 외국인으로 분류되고 외국인은 대한민국 헌법의 적용 대상 또한 아니고 대한민국의 의무를 가지는 대상 또한 아니기에 귀국이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하다. 귀국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에 한해서 적용되는 명칭이며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외국 국적을 가진 자가 한국에 들어온 경우는 방한 또는 내한이 맞다. 실제로 그가 소지한 여권 역시 대한민국 여권이 아닌 미국 여권이라는 것을 봐도 그는 이미 미국인이자 외국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방한 또는 내한이 맞다.

또한 유승준 같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으로 귀화한 자는 다음과 같은 의무와 혜택도 상실된다.

2.1.2. 귀국이다

귀국은 돌아갈 귀(歸)와 나라 국(國)을 쓴 한자 단어로써 한 나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국적을 암시하는 뉘앙스가 포함이 되어있지 않다. 한 사람이 오래 거주하고 집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로 돌아왔을 때 쓰는게 옳은 표현이다. 만약 귀국이라는 단어가 국적을 소유한 나라로 갔을 때만 적용이 된다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평생 살아온 대만 국적의 화교가 일본으로 잠시 관광을 갔다가 집(한국)으로 돌아왔을 경우 이를 방한이라고 해야하며 캐나다에서 어릴 적에 이민 가서 평생을 살아온 재외국민이 한국에 놀러왔을 경우 귀국이라고 해야한다.

결국 귀국이라는 단어는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에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갈리는 것 뿐이다.

3. 유승준 측의 주장과 반론

3.1. 고의적인 병역 기피를 위해 시민권을 신청한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면 유승준은 1989년 겨울에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이민을 갔고, 1997년 이후에는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사건 발생으로부터 2년 전인 2000년에 이미 시민권 신청을 했다고 한다.

2001년 10월 23일에 미국 정부로부터 시민권 취득을 위한 시민권 선서식에 참여하라고 통지를 받았지만 당시 그는 공익근무 소집예정일을 확정받았으므로 입대를 위해 참석을 거부했고,그의 2009년 인터뷰 내용에서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2002년 1월에 일본 공연 후 미국의 가족들에게 입대 전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LA로 갔는데 공교롭게도 미국 정부에서 다시 자신에게 시민권 취득 가능을 통보했고, 마침 그것이 후술할 문제들로 곤란에 처한 자신에게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였으며, 가족도 설득해서 결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가 강력히 설득했다고 주장한다.

미국 영주권자는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는 이상 10년주기로 갱신해줘야 하는 영주권 카드를 발급받으므로 유승준은 10년뒤인 1999년 겨울까지 갱신해야 하는 영주권 카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니 시점 자체는 아귀가 맞다. 또한 그의 말대로 트럼프 정권 이전까지는 영주권 갱신 비용과 시민권 취득 비용이 비슷했으므로 영주권자들은 가급적 시민권을 신청하는 경향을 보였다.[10]

유승준이 병역 대상자가 된 것은 병역법이 개정된 2001년 중반이었으므로 시민권을 신청했던 2000년 당시 그는 병역 대상자도 아니었기에 병역기피를 위해 시민권을 신청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또한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 1에서도 나오듯이 시민권 취득을 위한 시험은 그다지 어렵지 않기에 수 년 이상 미국에서 거주한 그에게는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3.1.1. 반박

그의 아버지가 시민권을 신청할 당시 병역기피 의도가 없었던 것은 사실로 보이나,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 미국 정부가, 그것도 후술하겠지만 9.11 테러 직후라 그토록 외국인들에 대한 시선이 엄격해졌던 상황에서 이미 시민권 신청을 거부한 영주권자의 시민권 신청서를 통과시켰다는 것이 개연성이 떨어진다.

시민권 신청서를 취하한 것과 단지 시민권 선서식을 거부한 것은 전혀 다르므로 유승준은 '시민권 거부'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USCIS에 자필 편지를 써서 시민권 신청을 취하하려 했다면 행정 오류가 아닌 이상 미국 정부가 다시 시민권을 신청하라고 하진 않으므로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고, 단순히 선서식을 거부했다면 시민권 신청 취하가 아니라 선서식의 날짜를 미루는 행위일 뿐이다. 백 번 양보해 유승준 입장에선 '시민권 선서식을 거부한 행위가 (시민권을 못 받게 되었으니) 시민권 거부'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뭘 잘 모르고 착각했을 뿐. 공식적으로는 신청 자체가 취하된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에서 시민권 선서가 가능한 날짜를 정해서 다시 통보를 해 주는 절차가 진행되었을 뿐이다.

또한 만약 유승준이 공익 소집을 수 개월 앞둔 상황에서 시민권 취득이 언제 다시 가능할지도, 아예 시민권을 취득할 기회가 다시 부여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시민권을 거부한 것이 사실이라면 유승준이 원래는 입대하려 했음이 입증되므로 유승준으로서는 상당히 유리한 사실인데, 소송을 건 뒤까지도 이를 쟁점화하지 않고 있다. 병역 기피를 하려는 사람이 입대일 전에 다시 시민권을 취득할 보장도 없는데 거부했다면 유승준으로서는 자신의 시민권 신청이 고의적 병역 기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임에도, 이를 언론과의 인터뷰는 물론이고 아프리카TV에서나 소송에서도 쟁점화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시민권을 거부했다는 그의 발언 자체가 거짓말이거나 (당시 본인으로서는 시민권 자체를 거부하는 거라고 생각했어도) 시민권 선서식을 거부했을 뿐이었다는 결론만이 나온다.

병무청에서는 유승준이 2년 전에 시민권을 신청해놓은 상태로 영주권을 유지하면서 개인 사정이나 다니지도 않는 2년제 학교를 등록하여 병역을 미뤄온 것은, 입대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병역 제도를 기만하고 악용한 고의적 병역 기피가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① 원고는 2001. 8.경 6집, 2002. 5.경 7집 음반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직후인 2002. 1. 24. 피고에게 여행목적을 공연·음반출판으로 하여 사증발급을 신청한 점에 원고가 2002. 2. 2. 입국거부된 후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태어 보면 원고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계속 가수로서 활동하기 위하여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② 원고로서는 미국 시민권을 신청한 후에 병역법이 개정되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대한민국 국적 상실신고를 하지 않고서는 국내에서 가수활동을 하면서 병역면제 처분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정을 알았으리라고 보이는 점, ③ 원고가 1차례 공익근무요원 소집통지를 받고 일본 공연과 미국에 있는 가족 방문을 위하여 3개월간 유예를 받아 2002. 2. 14. 공익근무요원 소집이 예정되어 있던 상황에서 여행목적을 공연으로, 여행기간을 2002. 1. 12.부터 2002. 2. 5.까지로 하여 서울지방병무청장의 국외여행허가를 받아 미국으로 입국한 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함으로써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고 병역의 의무를 면하게 된 점, ④ 원고 소속사 대표이사이자 고모부인 소외 2가 소외 1로부터 2차 미국 시민권 선서식 날짜를 통보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원고는 2차 미국 시민권 선서식 날짜가 2002. 1. 18.임을 알고 위 국외여행허가를 신청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⑤ 만일 원고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익근무요원 소집에 불응할 경우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기 위하여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서울행법 2016. 9. 30., 선고, 2015구합77189, 판결: 항소.]

3.2. 계약 문제가 얽혀 있었다

위의 영상에도 나오지만 유승준에게는 앨범을 1장 더 내야 하는 계약이 있었는데 앨범을 내기에는 입대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당시 계약을 위반하면 엄청난 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소속사에서는 주장했다.

아프리카 TV에서 그는 이 문제를 자세히 설명했는데 무려 당시 37억 원 정도의 계약이었고, 입대해서 그 계약 이행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까지 문을 닫을 상황이라는 이유로 아버지가 '입대하는 게 오히려 이기적'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음반은 결국 무산됐다(...) 당사자가 입국 금지를 당해 실질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진 데다가 여론도 워낙 최악이라 흥행 실패가 불 보듯 뻔했으므로 소속사도 음반사도 의견이 일치해 발매를 엎기로 합의한 것. 어거지로 냈으면 음반사나 CD가게가 불탔을지도

3.2.1. 반박

그러나 유승준이 신검 대상이 된 것이 2001년 중반이고, 허리디스크로 인해 4급인지 면제인지 가리기 위해 정밀검사 끝에 4급 판정을 받은 그 해 9월이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이 2002년 1월이다.

시민권 취득 불과 4~5개월 전 4급 판정을 받은 직후까지만 해도 '4급 판정 받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11] '받아들여야죠.', '저에게는 큰 도전이고... 오히려 좀 남자다워진 거 같다.'라는 말을 하다가 여론이 나빠지니까 갑자기 계약 문제로 인한 불가피성을 거론하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12]

또한 이 주장은 전술했던 '1차 시민권 취득 통보를 받았는데 입대하려고 거부했었다.'는 그의 주장과도 모순된다. '입대를 위해' 미국 시민권을 거부했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시점은 4급 확정 판정, 다시 말해서 디스크를 이유로 면제받을 수 없다는 것이 확정된 2001년 9월 이후임이 틀림없다. 전술했듯이 병역법 개정 전 그는 아예 병역 대상자가 아니었고, 2001년 9월 이전에는 면제 가능성도 있었기에 '입대를 위해' 시민권을 거부할 상황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승준 또한 아프리카 TV에서 자신의 입으로 당해 10월 경에 거부했다고 주장하였으니 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전술했듯이 당연히 그 시점에도 면제를 못 받아 계약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은 같은데,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그 때까지만 해도 입대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서' 시민권을 거부했다가, 불과 4~5개월 지나고 '계약 때문에... 어기면 저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져서요.'라는 변명은 너무도 궁색하고 앞뒤도 안 맞는다.

따라서 시민권을 거부한 일이나 계약 문제 최소한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라고 의심되며, 정말 둘 다 있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이를 이유로 시민권을 취득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대중과의 약속과 국방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난은 받았겠지만 연예 활동에 큰 지장은 없었을 것이며, 최소한 병역기피자의 대명사가 되어 추방이나 입국금지를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3.3. 9.11 테러로 당시 미국에서 외국인 영주권자에 대한 제도가 급변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9.11 테러 직후라는 특수했던 당시 미국의 상황과 미국 이민법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유승준과 가족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 유승준과 그의 가족들은 급변하는 미국의 분위기에 당황해서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으면 가족과 생이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9.11 테러 이전의 미국 입국심사는 타 국가와 비슷하게 수월했다. 지금처럼 취조를 방불케 하는 강압적인 태도나 지문채취도 없었고,[13] 심지어 여권이 없어도 미국 입국을 허가할 정도였다.

영주권자들이 긴 시간 동안 미국을 떠나 있는 것에도 비교적 관대해서 박탈 심사까지 회부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유승준이 이민 이후 처음 한국에 오게 된 것은 1997년도이며 시민권을 신청한 것은 영주권 갱신 시기인 2000년도일테니 분명 한 번쯤은 '미국에서 왜 이리 오래 떠나있는 겁니까?'란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9.11 이전에는 국경을 관리하는 주체에게 강력한 권한이 없었기에 대충 얘기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시민권 신청이 접수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송두리째 바뀌고, 아예 미국에 이민쪽만 담당하는 미합중국 국토안보부(DHS)와 이민국, 이민ㆍ세관 집행국, 관세ㆍ국경 보호청까지 한꺼번에 출범하게 된 계기가 9.11 테러이다. 미국 국토안보부라는 강력한 기관이 탄생한 이후로[14] 미국 비자 발급과 입국 심사 과정은 '외국인들을 반미주의자로 만든다.'라는 농담반 진담반인 말이 나올 정도로 엄격해졌고, 영주권자들의 미국 체류 의도 역시 대충 넘기는 거 없이 철저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법적인 측면을 얘기하면 미국의 입국심사관은 영주권자가 6개월 마다 미국에 입국하면 영주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6개월이라는 기준은 미국에 입국할 때 관광비자를 가진 외국인처럼 입국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 뿐 6개월마다 미국에 입국을 하면 무조건 영주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 영주권자는 미국에 매번 입국할 때 마다 미국에 평생 거주할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를 증명해야한다.

정확한 규정에는 일시적으로 미국을 떠나게 되는 경우에만 영주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규정을 하고 있는데[15] '일시적'이라는 문구는 귀에 걸면 귀걸이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이다. 입국심사관이 판단할 때 영주권자가 일시적으로 미국에 떠나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미국에 거주할 의도가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영주권 박탈 심사로 회부될 수 있다. 전술했듯이 9.11 이전까지는 크게 걱정할 사안이 아니었기에 1년 중 6개월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나머지 6개월은 미국에서 생활했던 유승준이 영주권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이후로는 추궁이 매우 엄격해진 것이다.

관광비자도 마찬가지였다.[16] 9.11 테러범들이 미국 관광비자를 사용하여 입국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에서는 관광비자의 문턱도 높이려 했는데 유승준으로서는 미국 정부가 9.11 테러로 인해 외국인들에게 지나치리만큼 엄격해진 시선을 보내고 있는 마당에 영주권을 박탈당할 경우 관광비자 역시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20년도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정책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시민권 신청 요건을 갖춘 영주권자들은 서둘러 시민권을 취득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9.11 테러라는 전대미문의 참사가 일어났던 직후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확실히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을 시 미국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유승준이 Re-entry Permit을 발급받았으면 영주권 유지에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Re-entry Permit의 정확한 용도를 모르는 것이다. Re-entry Permit은 영주권자가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잠시 미국 밖에서 체류하지만 그 이유가 소멸되면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는 문서이지 Re-entry Permit이 있다고 2년 이상 미국 밖에서 지내도 무조건 미국에 재입국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유승준은 1997년도부터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며 주로 미국 밖에서 체류하고 있었으니 Re-entry Permit은 1년짜리밖에 못 받았을 것이다. 이 정도까지 도달하게 되면 Re-entry Permit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발급이 안 되든가, 아니면 입국 심사관이 미국에 체류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여 박탈 심사에 회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현재는 일반적인 미국 영주권자가 한국 군복무를 위해서 Re-entry Permit을 발급받아서 영주권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당시까지 9.11 테러 같은 일이 터질 줄 모르고, 간신히 영주권만 유지하면서 미국 밖에 있었던 유승준이 부랴부랴 Re-entry Permit을 발급받아서 영주권을 유지하는 시도는 도박과도 같았다.

또한 유승준으로서는 Returning Resident를 통해 박탈된 영주권을 살릴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전술했듯이 9.11 테러로 외국인들에 대한 모든 절차가 매우 엄격해졌고, 이를 차치해도 해당 절차로 영주권을 회복하려면 1년간 '비자발적 돌발 사건'으로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유를 증명해야 하는데 현재까지도 이를 인정받기 굉장히 어려워서 차라리 영주권을 처음부터 신청해서 발급받는 게 더 쉽다고 할 정도이다. 더구나 미국의 입장에선 미국에 거주해야 하는 영주권자가 굳이 한국까지 가서 병역의무를 수행했다면 이는 잠시 한국에 놀러갔다가 공항에서 바로 군대에 끌려갈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고서야 자발적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었기에 유승준이 이 절차를 활용할 가능성은 없었다.

물론 미국에서 영주권자들에게 자국의 병역 의무를 수행했다고 불이익을 주는 법은 당시에 없었고, 현재도 없다. 그러나 9.11테러 직후 미국은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문턱을 급격하게 높였기에 외국인에 속하는 영주권자[17] 중 하나였던 유승준과 그의 가족들로서는 불이익을 걱정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은 맞다.

그에게 있어 불행이었던 것은 한국에서 병역 문제란 너무나도 민감한 부분인데 이에 대해 무지했고, 하필 이것이 9.11 테러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여론의 역린을 건드리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3.3.1. 반박

9.11 테러가 2001년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용한 제법 개연성 있는 소설로, 예전에 다음 아고라에 퍼진 이야기였다.
9.11 테러로 갑자기 미국 내 외국인에 대한 험악한 분위기로 인해 영주권자가 외국 군대에 입대할 경우 영주권 박탈은 물론 미국 입국조차 제한받게 되었다. 이에 시민권을 취득한 유승준은 한국에 와서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해명하려 했으나 입국금지로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해명을 꼭 63빌딩에서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전 세계적으로 전쟁을 치르려고 하고, 당연히 많은 국가들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단 빈 라덴이 숨은 아프가니스탄내륙국이라 파키스탄을 거쳐야 했다. 파키스탄은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가까웠으나, 미국에서 '석기시대로 돌아갈 준비를 하라.'고 최후의 경고를 날리자 어쩔 수 없이 길을 열어주었다.[18]

이런데도 불구하고 우방국, 그것도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동맹국의 병역 의무를 다한 것을 이유로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 말이 될까? 북한, 이란, 시리아, 이라크 같은 적성국가의 군대에 복무한 경우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유승준은 전혀 해당 사항이 없다. 참고로 2002년이면 이라크전이 터지기 이전이었다.
당시 한국군에 입대하기 위해서는 외국 영주권을 포기해야만 했고, 유승준 사건 이후에야 외국 영주권을 가진 한국인이 입대할 때 영주권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도록 법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거짓말이다. 전술했듯이 그렇게 손해가 크다면 바로 시민권을 취득하면 그만이었고, 그것을 떠나서 한국군에 입대하면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거나 미국 시민권 취득이 불가능하다는 법은 유승준 사건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영주권은 국적이 아니기 때문이다.[19]

아마 전술했듯이 미국의 적성국들로 분류되는 국가들의 군에 입대하면 미국 영주권 또는 시민권 박탈이라는 규정의 존재, 또는 미국 영주권자들이 미국 밖에 있을 경우 최소한 6개월에 한 번은 미국에 가서 영주권을 갱신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영주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규정이 한국의 병역 의무가 2년 남짓이라는 사실과 맞물려 와전된 듯하다.[20]
그럼 한국에서 병역 의무를 수행하려면 미국 영주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해결 방법이 있다. 만약 해결 방법이 없다면 징병제 국가인 한국, 이스라엘 같은 국가들의 병역 대상자 중 영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 영주권자는 언제든 미국 정부에게 Re-entry Permit를 신청할 수 있는데 이것을 발급 받으면 2년 정도는 영주권 갱신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21] 당연히 징병제 국가 국적을 가진 영주권자의 군 복무가 Re-entry Permit의 가장 일반적이고 흔한 사유이다. 다시 말해서 2002년 공익근무요원의 복무 기간이 28개월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유승준의 경우 두 번의 휴가 때 미국에 가서 영주권을 박탈당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면 얼마든지 공익근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22]

설령 그 당시 병역 수행 중이라서 미국에 가지 못 해서 영주권이 상실돼도, 불가항력적 사유가 있고 가족과 재산 등 생활 기반이 미국에 있는 것이 증명되면 Returning Residence를 신청해 영주권을 회복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유승준이 한국 법률에 의해 병역 수행 도중 불가피하게 미국에 돌아올 수 없었음이 입증되면 영주권을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23]

요약하면 유승준에게는 영주권을 유지하면서 입대할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주권을 박탈당할 경우 가족과 생이별 운운하며 무슨 남북한 이산가족 같은 신세가 되는 것처럼 동정심을 유발하는 말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미국과 한국은 남한과 북한의 관계와 달리 군사동맹국이다. 설령 유승준이 미국 영주권을 박탈당했다 하더라도 관광비자를 통해 미국 입국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9.11테러 이후로 외국인에 대한 경계가 확대되어 출입국심사나 절차가 복잡해진 건 맞지만 유승준은 영어도 유창하고, 가족도 미국에 있으며, 유명 가수라는 고소득 직업을 가진 신원이 분명한 인물이었기에 절차가 까다로워졌다고 미국에 평생 못 들어갈 것을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본인과 가족들은 '가족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흩어져 사는 게 바로 생이별'이라고 주장하지만 유승준은 나중에 가수 생활을 은퇴하고, 미국으로 다시 이민을 가고자 했을 경우 투자이민 형태로 손쉽게 이민을 갈 수도 있는 재력가였다.

추가적으로 말하면 유승준의 팬들과 아버지는 아버지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자고 설득해서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어서 그랬다고 옹호하는데, 모순적이게도 유승준의 팬들은 처음 유승준이 부모의 반대를 뿌리치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가수로 성공했다고 칭송한다. 가수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꿈을 이루고자 할 때는 그렇게 부모의 반대도 무릅쓰고 성공할 만큼 의지가 강했던 사람이, 정부와 대중 앞에서 공언한 병역 의무 수행 때는 왜 부모의 설득에 꺾일 만큼 의지가 약해졌는지 설명하는 유승준의 팬은 아무도 없다.

4. 유승준 옹호론과 그에 대한 반박

4.1. 미국 영주권, 시민권 이해 부족

그렇기 때문에 9/11 테러까지 겹쳐서 미국내 분위기가 험악해진 상황에서 미국 시민권을 빨리 취득을 해야 영주권 박탈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문제는 유승준이 1997년도부터 한국에서 체류를 했었다는 점이다.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신청서 제출 날짜로부터 5년간 30개월을 미국 내에 체류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2000년도에 신청서를 넣지 않으면 최근 5년간 30개월을 미국에서 체류하지 않게 되므로 영주권 카드를 갱신할 바엔 시민권 취득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결국 유승준은 영주권 갱신시기가 다가오니 다른 재미교포들처럼 시민권을 받은 거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체계적인 병역기피를 위해서라면 유승준이 영주권자가 된 1989년으로부터 5년뒤인 1994년에 바로 시민권 취득 신청을 해야 했는데 유승준은 그러지 않았다. 나중(2001년)에 병역법이 바뀌어 자신이 병역 대상으로 편입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냥 병역문제에 대하여 아무 생각도 없었고 해보지도 않은 것 같다. 이는 재미 한국인 2세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며, 이들은 모병제를 운용중인 미국에서 자라다보니 병역문제에 대해서 상상조차 안 해본 경우가 많다. 혈통만 한국인 피를 물려받았을 뿐 평생 한국과 관련된 적 없이 완전한 미국인으로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본인에게 한국 국적이 있는 것조차 모른 채 미국 정보기관·직업군인·고위공무원에 지원했다가, 뒤늦게 알게 되어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꿈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이 있을 정도.[24] 하지만, 징병제 국가로서 신체적, 정신적, 가정적으로 별 문제 없는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게 너무 당연한 한국에서는 국내에서 생활하는 젊은 남자가 병역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고 하면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한국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면 한번쯤은 꼭 생각해봐야 했었다는 게 유승준과 가족들의 실수라면 실수. 한참 나중에 와서, 솔직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핑계들을 막 만들어내니 앞뒤가 안 맞게 되고 여론은 안 좋아지는 상황까지 맞이한 것이다.

4.2. 입국 금지가 인권침해다

유승준 측이 이러한 언플을 벌인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주한 미국 대사관과 각종 국내 인권 단체까지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한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더욱더 악화일로를 걸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국내 인권 단체들은 자업자득이라는 투로 요청을 외면했다. 그 이유인즉, 유승준은 단순히 징병제에 대해 반발하는 차원에서 병역거부를 한 것이 아니고, 본인이 군대를 가겠다고, 군복무는 한국남자의 당연한 의무라고 방송 인터뷰에서까지 떠들어놓고는 얍삽하게 튀어버리는 희대의 트롤짓을 저질렀기 때문인데,마치 전역을 코 앞에 둔 말년병장이 본인은 더 이상 훈련과는 무관하다는 이유로 병사들의 훈련을 빡세게 시켰으면 좋겠다고 장난질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주한 미국 대사관 대사는 "이는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가 관여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당연한 게, 당장 반미 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며, 너무 깊게 들어가면 아예 내정 간섭으로 여겨질 우려마저 있기 때문이다.[25]
그 어디서도 도움의 손길을 얻지 못한 유승준 측은 국적을 포기해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 말고도 있는데 왜 자신에게만 입국을 허가하지 않느냐면서, 결국 입국 불허가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측에 진정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으나, 위원회 역시 '외국인'의 입국 여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며 해당 진정을 기각했다.

즉,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대한민국으로 자유롭게 입국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으므로,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를 인권침해로 판단하여 인권위가 나설 수 있다. 국제법상 자국민의 입국을 거부하는 것은 불법이며, 설령 강력 범죄자라고 해도 입국 후 체포하지 입국을 거부할 수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내법에도 자국민의 입국은 무조건 허가해줘야 한다. 설령 여권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입국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주권이기 때문에, 근거만 있다면[26] 얼마든지 입국을 거부하거나 허가할 수 있다. 반대로 출국은 이런저런 여행경보, 범법자의 출국금지 등의 근거를 들어가면서 금지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유승준의 경우엔 아직 국내에 입국하지 않은 외국인이므로, 오직 '한국인' 내지 '한국에 입국해있는 외국인'의 인권만을 취급하는 인권위로서는 이에 관여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승준의 한국 국적은 유승준 자신이 버렸지 대한민국 정부가 박탈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대한민국과 이해관계가 있는 인물' 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조치'에 관련된 사안이므로, 충분히 인권위의 판단 범위 내에 들어갈 수 있는 사건이기는 하다. 또한 국가기구인 인권위 이외에 다른 군 군련 인권단체들의 기준으로 보면 징병 회피자에 대한 어떤 의미에서는 처벌, 또는 보복 등인 국가의 대응과 관련된 사안이므로 충분히 깊은 관심을 기울일 만한 사안이다.

그가 병역기피 사건을 일으킨 2002년은 말 그대로 한국 인권운동 전성기의 한복판이었다. 김대중의 집권으로 6공 이후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일어나고, 그에 뒤이서 노무현이 집권했던 이 10년의 기간은 군사독재정권의 잔재인 민정당과 무관하며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 민주당계 정당이 정국 주도권을 확보한 시기이며, 민주당계 정당에 합류하여 일익을 이룬 시민사회단체들이 사회 주도 영역으로 대거 진출한 시기이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 역시 사회 전반에 만연한 권위주의적 요소들에 대한 염증과 청산 요구가 드높았던 시기였기에, 시민사회운동단체를 중심으로 한 인권 운동의 영향력이 말 그대로 순풍에 돛 올리고 모터까지 돌린 듯 폭발적으로 성장해 나가던 시기였고 이에 따라 가부장제, 여성, 어린이/청소년/학생, 수감자, 장애인 등 많은 영역에서 인권 문제에 대한 획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군인 인권 문제 역시 예외는 아니라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복무 기간 단축, 월급 인상, 가혹행위 금지 등 군인(특히 사병)의 인권 문제에 대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군 인권 개선의 성과가 '처우 개선'의 수준에 머무르고, 군 인권 문제의 핵심 중의 핵심인 징병제에 대한 개선에는 이르지 못했다. 물론 징병제 문제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인 만큼 이에 대한 책임 전부를 유승준에게 덮어씌울 수는 없겠으나, 유승준의 충격적인 병역 기피 사건으로 싸늘해진 민심 탓에 징병제에 대한 개선이나 대체, 폐지 논의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점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후 대체복무 인정 등 징병제에 대한 개선안은 해당 사건으로부터 15년 이상 흐른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야 다시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유승준은 비록 혼자 힘으로 이뤄낸 것은 아니지만 징병제에 대한 대안 논의의 시계추를 무려 15년이나 뒤로 돌리는 데 톡톡히 일조한 셈이다.

게다가 2010년대 후반에 다시 해당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그 15년간 사회 분위기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 2000년대 초반 인권 운동의 성장에 크게 일조한 탈권위주의적 분위기가 퇴색하고 '너무 권위를 무너뜨리면 사회가 오히려 혼란스럽고 효율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반작용이 강력해진 것. 따라서 유승준이 멈춘 징병제 대안 논의의 바퀴는 아직도 앞으로 굴러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군 인권단체의 입장에서 유승준의 '도와달라'는 요구는 튀밥 몇 개 먹겠다고 노적가리에 불 질렀다가 우리 노적가리까지 다 태워먹은 놈이 '노적가리가 다 타버려서 나 먹을 양식이 없으니 좀 나눠달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대체로 인권운동가들이 성격이 좋은 편이라곤 하지만, 바로 자신들에게 이렇게까지 빅엿을 먹인 놈을 도와주기 위해서 막대한 사회적 반발, 반감이라는 큰 부담까지 떠안겠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4.2.1. 인권 침해라 볼 수 없는 이유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은 죄송하게 생각하고요.
저는 진짜로 그런 모든 것을 계획하거나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국민 여러분들께 관계자 여러분들이 믿어주셨으면 감사하겠고 용서가 된다면, 용서를 또 해주신다면,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라도 한국에서 계속해서 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27]

- 2002년 인천국제공항 입국 거부 당시

물론 그의 이런 말과는 달리 20년이 넘게 지난 2024년 현재까지도 그는 한국 땅을 밟지도 못하고 있고 한국에서의 방송도 하지 못한다.
지금 제가 선택한 이 선택을 다시 번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 2002년 인천국제공항 입국 거부 당시

4.3. 다른 외국 국적 연예인과 형평이 맞지 않는 괘씸죄 적용이다

굉장히 많은 유승준 옹호론자들과 심지어 유승준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이 괘씸죄다. 하지만 이는 주객을 전도한 생각인데, 유승준이 입국금지를 당한 것은 국민들에게 실망과 배신감을 안겼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가 국가의 법적 절차를 이용하여 '병역'이라는 국가의 행정을 농락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유승준과 마찬가지의 조건을 가진 상황의 연예인들 중 '군대에 가겠다.'고 계속 공언하면서 병역판정검사를 받으며 입대를 미뤄온 경우는 없다. 당시 아무리 연예인의 병역에 관대했다고 하더라도 외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고 동네방네 '난 군대에 안 가도 되는 사람이다.'라고 떠들고 다닐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연예 기획사라면 그러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당시 연예기획사에서는 병역 문제에서 자유로운 해외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유승준의 말마따나 조용히 한국 국적을 포기하거나, 처음부터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병역 의무를 지지 않았고, 도덕적으로는 병역을 피하기 위한 국적 포기를 비난할 여지가 있었으나, 당시에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다.[31]

반면 유승준은 신체검사나 집안 사정과 학업을 이유로 한 입대 연기, 귀국보증제도 등 법에 의거해 집행되는 행정을 마음껏 사용하여 연예인으로서 이미지를 끌어올리고 이익을 챙겼다. 그리고 유승준이 한국 활동 당시 다른 외국 국적 취득 연예인들보다 높은 인기를 누렸거나, 예나 지금이나 많은 한국인에게 유명한 것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모두 유승준 본인이 한 일이다. 따라서 그에 근거한 파급력을 고려해 입국금지를 단행한 병무청대한민국 법무부의 행동을 비난할 여지는 전혀 없다.

한편, 머니투데이에서 보도한 팩트체크 기사에서는, 다른 국적포기 병역회피자와 달리 유승준만 국민정서법과 국민 감정을 거스른 '괘씸죄' 위반에 의한 '입국금지결정'이 18년간 적용돼왔다고 주장했다. 배진석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비자를 안주는 건 적법절차로 하면 되겠지만 입국금지 걸어놓고 한국에 영원히 못 오게 한다는 건 과하다"며 "범죄 저지른 외국인조차 추방이 되더라도 5년 뒤엔 법적으론 재입국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병역 문제는 통념과는 달리 대한민국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누구든간에 규제가 엄격하다. 진짜로 높으신 분들의 병역 비리를 처벌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그런 뉴스가 나올 리가 없다.[32] 실제로 거물급 정치인이자 유력 대권 후보였던 이회창두 번의 대선 도전에서 모두 아들의 병역 의혹으로 낙선했다. 실제로는 조사 결과 허위 여론공작에 의한 음해로 밝혀지면서 해당 주장을 펼쳤던 대표적 인물 중 하나로 인간해골론 등 허위사실을 공개유포하던 의사가 구속되고 누명을 벗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 사실을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당시 높으신 분의 병역 문제가 민감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지금도 정치인이 청문회에 서면 필수요소로 공격받는 것 중 하나가 본인 혹은 아들의 군복무 여부다. 또한 선거 때마다 가가호호 배달되는 선거공보를 보면 (남성 후보자의 경우) 후보자 본인뿐만 아니라 아들의 군복무 여부까지 낱낱이 공개되며, 후보자 본인과 아들의 군복무 시절 사진을 게재하는 것은 불문율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결승전에서 일본을 이기고 금메달 땄는데도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평생까임권을 받은 가장 큰 원인이 오지환박해민의 병역기피 논란 때문이었다.[33]

다만 사례가 다르므로 굳이 언급하려면 박주영, MC몽이 적당하다. 박주영은 편법을 통해 모나코 장기체류를 이용해 사실상 병역면제가 되었고, 논란이 커지자 입대한다고 했다. 결국 결과도 좋았고 2012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로 마침내 병역특례를 받아냈기에 묻혀서 그렇지 사실 오지환과 박해민과는 경우가 전혀 다르다. 손흥민은 면제 여론이 우세했지만, 오지환과 박해민은 비난투성이였다. 사실 비리를 저지른 게 아님에도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임승차 이미지가 심하게 컸다. 나중에는 국대에 갈 만한 실력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번졌으나, 원래 이 둘의 국대 승선이 욕을 먹었던 이유는 상무 입대가 가능한 마지막 해에 입대를 미뤘고, 국대 승선을 못 하면 병역을 그냥 현역으로 가야 하는 상황까지 만들어놓고 국대 승선을 노렸기 때문이다. 즉, 야빠들에게는 병역 혜택을 받기 위해 일부러 입대도 오랫동안 안 하고 국대를 이용하겠다는 의도로 비춰져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것.[34] 결국 오지환이 싫어서[35] 까이는 게 대다수다.[36] 마동석도 미국 국적자이지만, 까이는 빈도는 적다.

현실에서 일어난 법 개정 사태를 보면 유승준, 박주영, MC몽 이 세 사람이 개인 유명인으로서는 00년대 병역법 개정의 선두주자들이라 할 수 있다.

4.4. 연예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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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 6시간을 기다렸다는 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몇 시간을 땡깡부렸다거나 하는 의미가 절대 아니고 그냥 그 다음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가 출발할 때까지 기다린 것뿐이다.[2] 예를 들어 아무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란에 입국한 이력이 있는 인물은 미국 입국을 거부당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북키프로스로 바로 입국한 이력이 있는 인물은 키프로스그리스 입국을 거부당했다.[3] 어느 나라에 놀러가려고 했는데 입국 거부 당했다고 그 나라 소재 한국 대사관에 가서 호소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그건 그 나라 정부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저희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이다.대한민국 외교부가 무능하기로 소문나긴 했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놈들 잘못이 아니다.[4] 대한민국 국가 유공자는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이들과 그 유족들에 한해서 국가보훈처 훈령에 따라 면세 및 면제와 소득 혜택 등이 주어진다.[5]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 아닌 외국인은 기초수급자 신청도 할 수 없다. 다만 본인이 대한민국 지역에 거주하거나 배우자 또는 자녀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경우나 동거하는 경우는 예외.[6] 대한민국 지역 거주자이거나 배우자나 자녀 등이 대한민국 국적이나 거주를 할 경우를 제외하고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수급 대상이 아니다. 또한 유승준은 현재 대한민국 입국도 금지되어서 미국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 대상에서도 제외된다.[7] 외국인의 경우 당사자의 국가와 상호 협의를 해야만 조사를 받을 수 있다. 유승준도 한국 국적을 유지했으면 병역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으나 미국 국적으로 귀화하였기 때문에 대한민국 병무청 및 검경의 조사 대상에서도 제외 및 면책 대상이다.[8] 이 경우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이상의 외국인은 북한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권리도 가진다. 유승준이 속한 미국은 현재 북한과는 미수교 상태이지만 미국 국민은 북한을 여행하는 자유를 가질 수 있다.[9] 현재 대한민국 성우계는 만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에 한해서 성우 지원이 가능하다.[10] 영주권을 갱신하면 10년 후 다시 해당 절차를 밟고, 수수료를 납부해야 하지만 시민권 취득은 한 번으로 끝나기 때문이다.[11] 이것만 봐도 당시 사회가 연예인의 병역에 얼마나 관대했는지 알 수 있다. '면제를 못 받으셔서 어쩌면 좋아요.'라는 뜻이다.[12] 앨범 계약 문제 이야기는 공항에서 본인 입으로는 안 했으나, 사건 직후 연예가중계 영상을 보면 사건 당시부터 이미 하고있었다. 몇 년 만에 나온 얘기는 아니다.[13] 한국은 주민등록제도로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들고, 그 때 열 손가락 지장을 찍어서 경찰서에 보관하기 때문에 별 거부감이 없지만 외국에서 이런 절차는 범죄자들만 수행한다.[14] 한국과 일본의 경우 출입국을 담당하는 부서는 법무부 산하에 있는데 미국은 아예 외국인들의 출입국과 비자 문제를 전담하는 독립된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해당 문제에 미국이 얼마나 엄격해졌는가를 알 수 있다.[15] 원문: We hold that a permanent resident returns from a “temporary visit abroad” only when (a) the permanent resident’s visit is for “a period relatively short, fixed by some early event,"[16] 당시 대한민국 국적자는 미국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없었다.[17] 미국 영주권자는 여전히 미국법 상 외국인이다. 단지 Lawful Permanent Resident이라고 부르며 외국인이지만 평생 미국에서 살게 해 주는 것이다.[18] 2006년 파키스탄 대통령이 방미해서 밝힌 사실인데, 이 발언의 당사자라고 알려진 리처드 아미티지는 '그런 적 없다. 당시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라.'며 적극 부인했다.[19] 영주권과 시민권의 유의미한 차이는 사실상 국적과 피선거권이고 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은 일부만 허용되는 겅우가 있다. 그 이외에는 영주권의 대상인 국가 사람과 거의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거주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지는 것. F4 비자같은 것도 폭넓은 직업의 자유를 갖게 되지만 그래도 제한이 있는데 비해 영주권은 그런 거 없다.[20] 차인표는 입대하면서 미국 영주권을 포기했는데 유지할 방법이 없던 것이 아니라 딱히 유지할 필요가 없어서로 추정된다.[21] 다만 최근 5년 내에 미국 밖에서 지낸 기간이 총 합쳐서 4년을 넘길 경우 Re-entry Permit은 1년짜리로 나오게 된다.[22] 참고로 2019년 현재는 영주권자들의 입영을 독려하기 위해 영주권자가 일반 사병으로 입대하면 영주권 유지를 위해 1년에 1, 2회 출국이 가능하며, 왕복 비행기 표 비용도 병무청이 대준다. 이 제도는 2004년부터 눈돌리기용으로 갑작스럽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없었지만, 영주권 유지를 위해 당시 최고 스타 중 한 명이자 연예 활동 중에도 부지런히 미국을 들락날락했던 유승준이 비행기 티켓 값이 없어서 영주권 유지를 위해 미국을 못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므로, 전혀 유승준을 옹호할 근거는 못 된다.[23] 다만 이 경우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 영주권자는 원칙적으로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고 여기므로 영주권자인 유승준이 한국에 잠시 놀러왔다가 공항에서 바로 군대로 끌려간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충분히 Re-entry Permit을 사전에 신청할 수 있었다고 보고 사전 절차를 밟지 않은 이유를 추궁당하거나 Returning Residence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24]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되긴 하지만 이미 18세를 넘었다면 불가능하다. 아직 미성년자일 때 알게 되더라도, 이 절차가 자그마치 1년 이상이 걸리므로 17세가 된 후에 알게 되었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일찍 알게 되더라도, 아직 어린 나이엔 혼자 무언가를 하기 어려워 부모에게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업에 바쁜 사람들이 이런저런 서류 떼고 기관을 돌아다니기도 힘들어 결국 국적상실이고 꿈이고 뭐고 그냥 모든 걸 포기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25] 사실 여기서 미국 대사관이 개입하기만 해도 내정간섭이다. 외국인 입국금지에 대한 여부는 오롯이 그 국가의 주권사항이기 때문.[26] 근거가 없어도 된다. 그냥 이유를 대지 않고 입국을 금지시켜도 아무 상관없다. 그 정도로 외국인의 입국은 그 나라의 주권과도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재량권이 엄청나게 부여되어 있다. 당장 미국만 봐도 단지 중동국가에 방문했다는 이력만으로도 입국을 거부한 사례가 수도없이 많다.[27] 죄송하다고는 말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대한민국 군인들과 군입대를 앞둔 청년들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28] 유승준의 생년이 1976년생인 점을 봐도 당시 성인이 되어서 징병 검사 및 군입대 대상에 포함된 1996년생들과는 무려 20살 차이로 삼촌과 조카뻘에 가깝다. 또한 당시 군 전역을 하고 예비군으로 편입된 1986년생들과도 무려 10살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가 한국에서 데뷔했던 1997년생들은 당시 만 18세의 고3이었고 바로 1년 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동갑내기들이 사망했던 아픔을 경험하였고 이듬해인 2016년에 성인 나이인 만 19세가 되면서 이들도 징병 검사 대상과 군입대 대상이 되어서 군입대를 하였다. 그리고 2022년 기준으로 미국인으로 귀화했던 해인 2002년생들도 이제 성인이 되어서 군입대를 앞두거나 군입대를 하고 있다.[29] 특히 스티브 유가 진짜로 들어온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인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던 사람 및 수행하려는 사람들의 이익" vs "스티브 유 개인의 이익"과 비교형량하면 뭐가 더 큰지 생각만 하면 알 수 있다.[30] 또 한 스티브 유가 발급하려는 비자가 F4라는 비자인데 이 비자가 "외국인이 대한민국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비자이며 이 비자발급에 계속 신청하고 있는 지라 목적이 "미국은 세금을 많이 때는 나라라서 대한민국을 조세포탈지로 사용할 목적"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이 이러면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에 몹시 회손이 된다.[31] 이들 외국 국적 연예인들은 다른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군대는 가지 않았지만 대신 그만큼 한국인으로서 대우 역시 받지 않았다. 당장 이런 외국 국적 연예인들은 활동에 걸맞은 비자를 받아야 하며 꼬박꼬박 갱신해야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다.[32] 실례로 2022년 러시아 동원령 당시 푸틴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의 아들 니콜라이가 반정부 방송에서 전화통화 중 대놓고 동원 안 간다고 천명했음에도 권력자의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러시아 국내에선 그대로 묻혔다. 정치인들의 언론통제가 심한 나라면 이런 막장 상황이 나온다.[33] 경기 전에도 잡음이 있었고 첫 경기부터 졸전을 치르는 등 경기 측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도 있었다.[34] 이동국도 사실 병역비리 논란이 있었고,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 승선했지만 비난받지 않았고, 결국 금메달을 받지 못해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수많은 스포츠스타들이나 유명인들과 같이 걸렸는데, 이동국이 묻혔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 때 군대 갔다가 복귀한 운동선수들 중에서 이례적으로 오래, 그리고 당시 젊었던 나이로 인해 늦게까지 활동했기 때문인 점이 크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는데, 여러 국가대표팀에서의 혹사로 인해서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당시 4강 신화를 쓴 선수들이 누렸던 병역특례를 받지 못했다는 나름대로의 억울한 점이나 부채감 같은 것을 이 때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이 때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당시 여러 사람들이 걸렸다가 비슷하게 복귀했다는 점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오래 활동하는 이동국만이 묻힌 듯이 느껴지는 점이 있다.[35] 더욱이 오지환의 소속팀 LG 트윈스는 2002 시즌 도중 서용빈에게 사회복무요원 소집 통지서가 날아왔을 때 시즌 이후로 소집을 연기해 달라고 병무청에 땡깡부린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지환 논란과 관련해 더욱 비난을 받았다.[36] 살인태클 논란 등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에다가 경기 전 장염에 걸린 것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37] 허리디스크가 있는 사람이 근육으로 지지하기 위해 몸을 만드는 케이스가 생각보다 흔하다.[38] 거기에 터보 초창기 당시 김종국이 얼마나 앵벌이식으로 당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고, 이 때의 고생으로 허리디스크가 온 케이스이다.[39] 그렇지만 격투기 선수 정찬성도 보충역으로 병역을 마쳤고, 심지어 김종국보다 튼튼한 야구선수들인 이승엽박용택은 부상으로 면제되었다. 물론 이승엽은 국제 대회에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 역할을 잘 한 게 더 크긴 하지만... 결국 방송에서의 이미지가 독이 되어버린 케이스.[40] 2019년 MC몽이 8년만에 대중들 앞에 컴백했을 당시에도 역시 유승준의 사건이 다시 한번 더 재조명 되었었다.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두 사람을 병역기피의 대명사라고 하면서 여론의 비난은 여전히 격렬한 상황.[41] 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MC몽 병역비리 사건 참고.[42] 하지만 일부 몇몇은 MC몽은 유승준보다도 죄질이 더 중하다고 비난을 하는데, MC몽은 병역비리 사건 이후로 한동안 뜸했다가 작곡가 이단옆차기의 활동 의혹과 동시에 2014년부터 다시 컴백에 시동을 걸면서 현재 국내에서 음악 활동을 하면서 저작권료로 영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유승준은 입국도 못하고 국내에서 영리 활동을 못하고 있다는 상황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논란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고 있는 MC몽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비난하고 있다.[43]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서지 유승준을 처벌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즉, 입국 금지는 유승준에게 불이익이 가기는 해도 처벌이 아니다. 과징금이나 가산금 등이 처벌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44] 참고로 제이윤과 비프리는 둘 다 군필자며, 특히 제이윤은 유승준과 달리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보충역으로나마 병역을 마친 몸이다.[45] 다만 이 문제는 정치적인 부분에서 비롯된 문제라 본 문서의 병역 문제랑은 별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