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5 시즌 참가 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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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 FC 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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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 | 스쿼드 · 스쿼드(간략) · 임대 명단 · U-21 | |
역대 시즌 | 2008-11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2015-16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리그 · 2020-21 /리그 · 2021-22 /리그 · 2022-23 /리그 · 2023-24 /리그 · 2024-25 /리그 | |
더비 매치 | 머지사이드 더비 | |
구단 시설 | 구디슨 파크 · 에버튼 스타디움 | |
관련 인물 | 파하드 모시리 · 레전드 · 역대 감독 | |
스폰서 | 캐스토어킷 스폰서 · Stake메인 스폰서 · Christopher Ward슬리브 스폰서 |
에버튼 FC | ||
Everton FC | ||
<colbgcolor=#274488><colcolor=#fff> 정식 명칭 | Everton Football Club[1] | |
별칭 | 토피스 (The Toffees) 과학학교 (The School of Science) 시민구단 (The People's Club) | |
약칭 | EVE | |
창단 | 1878년 1월 1일 ([age(1878-01-01)]주년)[2] | |
소속 리그 | 프리미어 리그 (Premier League) | |
연고지 |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리버풀 | |
홈구장 | 구디슨 파크 (Goodison Park) (39,414명 수용)[3] | |
산하 구단 | 에버튼 아카데미, 에버튼 위민 | |
라이벌 | 리버풀 FC - 머지사이드 더비 | |
구단주 | [[영국| ]][[틀:국기| ]][[틀:국기| ]]파하드 모시리[4] | |
회장 | 공석[5] | |
단장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케빈 텔웰 (Kevin Thelwell) | |
감독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션 다이치 (Sean Dyche) | |
주장 | [[아일랜드| ]][[틀:국기| ]][[틀:국기| ]] 셰머스 콜먼 (Séamus Coleman) | |
부주장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제임스 타코우스키 (James Tarkowski) | |
공식 웹사이트 | ||
팬 커뮤니티 | ||
우승 기록 | ||
프리미어 리그 (1부) (9회) | 1890-91, 1914-15, 1927-28, 1931-32, 1938-39, 1962-63, 1969-70, 1984-85, 1986-87 | |
EFL 챔피언십 (2부) (1회) | 1930-31 | |
FA컵 (5회) | 1905-06, 1932-33, 1965-66, 1983-84, 1994-95 | |
FA 커뮤니티 실드 (9회) | 1928, 1932, 1963, 1970, 1984, 1985, 1986*, 1987, 1995 | |
UEFA 컵위너스컵 (1회) | 1984-85 | |
클럽 기록 | ||
최고 이적료 영입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히샬리송 (Richarlison) (2018년, From 왓포드 FC, 5,000만 £) | |
최고 이적료 방출 | [[벨기에| ]][[틀:국기| ]][[틀:국기| ]] 로멜루 루카쿠 (Romelu Lukaku) (2017년, To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7,500만 £) | |
최다 출장 | [[웨일스| ]][[틀:국기| ]][[틀:국기| ]] 네빌 사우스올 (Neville Southall) - 750경기 (1981~1998) | |
최다 득점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딕시 딘 (Dixie Dean) - 383골 (1925~1937) | |
리그 득점왕 (12회)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딕시 딘 (1927-28, 1931-32)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토미 로튼 (1937-38, 1938-39)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잭 사우스워스 (1893-94)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지미 세틀 (1901-02)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알렉스 영 (1906-07)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버트 프리먼 (1908-09)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바비 파커 (1914-15)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윌프 채드윅 (1923-24)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밥 래치포드 (1977-78)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게리 리네커 (1985-86) |
[clearfix]
1. 개요
Nil Satis Nisi Optimum |
에버튼 FC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소속 프로 축구 구단이다. 연고지는 잉글랜드 리버풀[6]. 홈구장은 구디슨 파크.
1878년에 창단되었으며 풋볼 리그의 원년 멤버이자, 프리미어 리그 통산 9회 우승을 달성한 리그 내 굵직한 역사를 가진 구단이다. 또한 2023-24 시즌까지 잉글랜드 1부리그에서 가장 많은 시즌[7]을 참여하고 있는 최장수 팀이며, 풋볼 리그 누적 승점 1위, 1부리그 누적 승점 3위[8] 등의 기록을 가진 클럽이다.
2. 특징
과거 시절부터 팀의 유스나 젊고 포텐셜 있는 선수를 종종 잘 키워낸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사우스햄튼 FC 유스에 비해 거상 이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박 또는 알짜 선수도 잘 키워내는 편. 웨인 루니가 가장 유명하고 로스 바클리, 앤서니 고든도 에버튼 유스 출신이다. 그러나 둘 다... 최근에는 재러드 브랜스웨이트가 좋은 모습을 보이며 잘 성장 중이다.2.1. 토피스
에버튼의 대표적인 애칭은 토피스인데, 이에 몇 가지 가설이 있다.- Old Ma Bussell: 에버튼 창단 초기, 거리에서 사탕을 팔던 버셸 부인은 에버튼의 풋볼 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온 팬들을 위해 '에버튼 토피'를 만들었고, 그 팬들은 '토피맨'으로 불리게 됐다는 설.
- Mother Noblett's Toffee Shop: 1892년, 노블렛 부인은 안필드 근처에 있던 가게를 구디슨 파크 근처로 옮겼다. 당시 구디슨 파크는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신구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노블렛 부인은 경쟁 상대였던 버셸 부인에 밀리지 않으려 '에버튼 민트'를 고안해 큰 성공을 거뒀는데, 이때 에버튼의 명소이자 에버튼 엠블럼에도 있는 루퍼트 왕자의 탑[9] 맞은편에 위치해 있던 노블렛 부인의 토피 샵이 유명해져 에버튼 팬들을 토피스라고 부르게 됐다는 설.
2.2. 1부 리그 최장수 클럽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틱 클루브, 세리에 A의 인테르 같은 1부 리그 개근 팀이 없는 잉글랜드 리그에서, 2024-25 시즌 현재 1부 리그에서 121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으며, 강등 없이 71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1부 리그에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르고 있는 팀이다.[10][11] 통산 9회의 1부 리그 우승 경력은 잉글랜드 전체 클럽 중 5번째로 많고 FA컵도 5회 우승을 기록한 명문 클럽이다. 엠블럼에 있는 'Nil satis nisi optimum'은 라틴어로 '최고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란 의미다.하지만 23-24 시즌 프리미어 리그의 수익성 및 지속 가능성 규칙(PSR)을 위반으로 10점 삭감되어 19위로 추락해버려 강등 위기에 처해졌다. 다만 이후 안정적으로 승점을 쌓고 다시 17위로 강등권에서 벗어나고 13위까지 올라가는 듯 했으나 승점 10점 삭감으로 강등권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항소를 통해 6점 삭감으로 처리되어 26라운드 기준으로 15위로 다시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버튼은 35R 브렌트포드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24-25시즌도 1부 리그에서 보내게 되었다.
3. 1군 스쿼드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에버튼 FC 2024-25 시즌 스쿼드 | ||||
<rowcolor=white> 1 | 2 | 5 | 6 (VC) | 7 | |
조던 픽포드 Jordan Pickford | GK 1994.03.07 ([age(1994-03-07)]) 2017~2027 | 네이선 패터슨 Nathan Patterson | DF 2001.10.16 ([age(2001-10-16)]) 2022~2027 | 마이클 킨 Michael Keane | DF 1993.01.11 ([age(1993-01-11)]) 2017~2025 | 제임스 타코우스키 James Tarkowski | DF 1992.11.19 ([age(1992-11-19)]) 2022~2026 | 드와이트 맥닐 Dwight McNeil | FW 1999.11.22 ([age(1999-11-22)]) 2022~2027 | |
<rowcolor=white> 8 | 9 | 10 | 11 | 12 | |
오렐 망갈라 Orel Mangala | MF 1998.03.18 ([age(1998-03-18)]) 2024~2025[1] | 도미닉 칼버트르윈 Dominic Calvert-Lewin | FW 1997.03.16 ([age(1997-03-16)]) 2016~2025 | 일리망 은디아예 Iliman Ndiaye | FW 1997.03.16 ([age(1997-03-16)]) 2024~2029 | 잭 해리슨 Jack Harrison | FW 1996.11.20 ([age(1996-11-20)]) 2023~2025[2] | 주앙 버지니아 Joao Virginia | GK 1999.10.10 ([age(1999-10-10)]) 2019~2025 | |
<rowcolor=white> 14 | 15 | 16 | 17 | 18 | |
베투 Beto | FW 1998.01.31 ([age(1998-01-31)]) 2023~2027 | 제이크 오브라이언 Jake O'Brien | DF 2001.05.15 ([age(2001-05-15)]) 2024~2028 | 압둘라예 두쿠레 Abdoulaye Doucouré | MF 1993.01.01 ([age(1993-01-01)]) 2020~2025 | 유세프 체르미티 Youssef Chermiti | FW 2004.05.24 ([age(2004-05-24)]) 2023~2027 | 애슐리 영 Ashley Young | DF 1985.07.09 ([age(1985-07-09)]) 2023~2025 | |
<rowcolor=white> 19 | 22 | 23 (C) | 27 | 29 | |
비탈리 미콜렌코 Vitaliy Mykolenko | DF 1999.05.29 ([age(1999-05-29)]) 2022~2026 | 아르만도 브로야 Armando Broja | FW 2001.09.10 ([age(2001-09-10)]) 2024~2025[3] | 셰이머스 콜먼 Séamus Coleman | DF 1988.10.11 ([age(1988-10-11)]) 2009~2025 | 이드리사 게예 Idrissa "Gana" Gueye | MF 1989.09.26 ([age(1989-09-26)]) 2022~2025 | 예스페르 린스트룀 Jesper Lindstrøm | MF 2002.02.29 ([age(2002-02-29)]) 2024~2025[4] | |
<rowcolor=white> 31 | 32 | 37 | 42 | 45 | |
아스미르 베고비치 Asmir Begović | GK 1987.06.20 ([age(1987-06-20)]) 2024~2025 | 재러드 브랜스웨이트 Jarrod Branthwaite | DF 2002.06.27 ([age(2002-06-27)]) 2019~2025 | 제임스 가너 James Garner | MF 2001.03.13 ([age(2001-03-13)]) 2022~2026 | 팀 이로에그부남 Tim Iroegbunam | MF 2003.06.30 ([age(2003-06-30)]) 2024~2027 | 해리슨 암스트롱 Harrison Armstrong | MF 2007.01.19 ([age(2007-01-19)]) 2024~2027 | |
<rowcolor=white> 75 | |||||
로만 딕슨 Roman Dixon | DF 2004.12.26 ([age(2004-12-26)]) 2024~2027 | |||||
구단 정보 | |||||
감독: 션 다이치 / 홈 구장: 구디슨 파크 | |||||
출처: 영어 위키백과, 에버튼 공식 사이트 / 마지막 수정 일자: 2024년 11월 23일 |
※ 주의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간략 틀을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간략 틀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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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단주
기존 구단주 빌 켄라이트의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 2016년 2월 28일 이란의 부호 파하드 모시리가 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켄라이트 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켄라이트가 회장 직위는 유지한다. 켄라이트의 대리는 존 우즈.2018년 파하드 모시리가 에버튼의 지분을 51%까지 늘렸고 켄라이트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2023년 9월 미국 사모펀드 777파트너스와 에버튼 구단 매각 협상을 진행하였고 모시리와 매각에 합의하였지만 에버튼 스타디움 건설로 인하여 부채가 늘어나게 되었고 또한 777 파트너스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서 부채 상환이 지연되고 또한 777 파트너스 인수 자격에서 통과하지 못 하게 되면서 모시리 구단주는 빠른 매각을 위해 777 파트너스와 매각을 보류하고 새로운 매각 대상을 찾을 예정이라고 한다.
2024년 6월 21일 엘 보블 BBC 등과 같은 유력 매체에서 파하드 모시리와 프리드 킨 그룹 간에 인수 독점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하였지만 7월 20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서로 인수에 대한 입장 차이로 협상이 최종 결렬되었고 결국 프리드 킨 그룹은 에버튼 인수에 대해서 포기하였다고 보도하였다.
하지만 2024년 9월, 돌연 프리드킨 그룹이 에버튼 지분 94% 인수를 발표했다.[12] 현재 존 텍스터 올랭피크 리옹 구단주와 구단 인수에 관한 찐한 링크가 뜨고 있었고, 프리드킨 그룹 관련 소식이 전무해서 그대로 텍스터가 인수를 완료할 것으로 보였는데, 굉장히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5. 엠블럼
<rowcolor=#ffffff> 1978~1982 | 1982~1983 | 1983~1991 | 1991~2000 | |
<rowcolor=#ffffff> 2000~2013 | 2013~2014 | 2014~현재 |
- 13-14 시즌 잠시 바뀐 엠블럼은 팬들 사이에서 최악으로 꼽힌다. 오죽하면 고속도로 표지판같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
6. 홈구장
자세한 내용은 구디슨 파크 문서 참고하십시오.6.1. 에버튼 스타디움
자세한 내용은 에버튼 스타디움 문서 참고하십시오.현 홈구장 구디슨 파크는 1892년에 지어진 오래된 구장이기 때문에 구디슨 파크를 대체할 새 구장 에버튼 스타디움이 브램리무어 부두에 신축중이고, 2025-26 시즌에 개장될 예정이다.
7. 응원가
7.1. We're forever Everton
가사 |
Everton, Everton, We're Forever Everton All for one One for all Everton's the team that plays beautiful football We've got the best supporter's On any football ground And as long as they're behind us We'll never let them down The men who go from Merseyside To sail the seven sea's Will hear the call of Everton Come riding on the green Everton, Everton We're Forever Everton All for one One for all Everton's the team that plays beautiful football We're the kings of Goodison We play in Royal Blue On the ball the Toffeemen Will play it sweet for you We play it on the carpet We play it in the air Whichever way we play it We play it fair and square Everton, Everton We're Forever Everton All for one One for all Everton's the team that plays beautiful football The story that is Everton From the days of Dixie Dean The story we will carry on The glory of our team In every land and continent Wherever football goes We'll play the game that's Everton And bring the honours home Everton, Everton We're forever Everton All for one One for all Everton's the team that plays beautiful football |
7.2. Spirit of the blues
가사 |
It's good news, for the Blues and there's no more time to lose 'Cos we're hot on the trail and there's no way we're gonna fail. So get your coat on, and get moving 'cos we don't know the meaning of losing So come on, come on, get down to Goodison Park. Wooooo… Everton, we never shone so brightly Everton, the spirit of the Blues. Everton, we never shone so brightly Everton, the spirit of the Blues. We're on, the move 'cos we've got something to prove It's no, surprise, the Blue boys are on the rise So get your coat on, and get moving 'cos we don't know the meaning of losing So come on, come on, get down to Goodison Park. Wooooo… Everton, we never shone so brightly Everton, the spirit of the Blues. Everton, we never shone so brightly Everton, the spirit of the Blues. Everton, we never shone so brightly Everton, the spirit of the Blues. Everton, we never shone so brightly Everton, the spirit of the Blues. Everton, we never shone so brightly Everton, the spirit of the Blues. |
8. 스폰서
8.1. 유니폼
2024-25 시즌 유니폼 킷 | |||||
HOME | AWAY | THIRD | GK HOME | GK AWAY | GK THIRD |
<rowcolor=#fff> 슬리브 스폰서 | 메인 스폰서 | 유니폼 메이커 | |||
- 엄브로 (1974~1983/1986~2000/2004~2009/2014~2020)
- 르꼬끄 스포르티브 (1983~1986/2009~2012)
- 푸마 (2000~2004)
- 나이키 (2012~2014)
- 험멜 (2020~2024)
- 캐스토어 (2024~ )
8.2. 스폰서
- 하프니아 보험[13] (1980~1985)
- NEC (1985~1995)
- 단카[14] (1995~1997)
- ne 2 one[15] (1997~2002)
- 케지안 그룹[16] (2002~2004)
- 타이베브(창 맥주) (2004~2017)
- 스포트페사[17] (2017~2020)
- 로비오 엔터테인먼트(앵그리버드)[18] (2017~2020)
- CAZOO[19] (2020~2022)
- Stake (2022~ )
- Kick[20] (2023~2024 )
- 크리스토퍼 와드[21] (2024~ )
- etoro (2023~ )[22]
- 레드불 (2024~ )
- 칼링[23] (2017~ )
- 네미로프[24](2024~ )
8.3. 기록
에버튼은 축구와 관련해서 다양한 최초의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우선 에버튼의 홈 경기장 구디슨 파크는 세계 최초의 축구 전용 경기장이며, 여기서 최초의 FA 컵 결승전이 개최되었다. 경기장에 조명 스탠드와 스코어 보드, 선수단 대기 더그아웃을 가장 먼저 설치하며 축구 경기장의 현대화에도 기여했다. 위에 나온 대로 하층 노동자들이나 본다고 무시당하던 프로 축구에 처음으로 왕세자가 찾아온 것도 에버튼 경기이다.1933년에는 최초로 선수들의 유니폼에 등번호를 넣었다. 1888년 풋볼 리그 창설, 1992년 프리미어 리그 창설 때 원년 멤버로 참가하였다. 또한 최초로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르는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70년 유러피언 컵, vs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9. 역사
에버턴 F.C.는 1878년, '세인트 도밍고 교회'의 신자들이 창설하여 '세인트 도밍고(St. Domingo's)'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원래 이 팀은 크리켓 팀이었으나, 크리켓이라는 경기가 여름철에만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어서 구단은 겨울철에도 할 수 있는 스포츠 팀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별도의 축구팀을 만들게 되면서 St. Domingo's Football Club이 에버튼 축구 클럽의 시초가 된다. 그리고 1년 후에 인기가 많아지면서, 지역의 이름을 따 에버튼 FC(Everton FC)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에버턴의 초창기 구장은 '스탠리 파크'로 관중석이 없는 일반 공원에서 경기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인근의 많은 인파가 몰렸고, 항상 소음이 끊이지 않아 소음 문제를 야기시켰다. 또한 제대로 된 구장이 있어야 풋볼 리그에 정식 프로 축구 클럽으로 등록될 수 있었기에 에버튼은 새 홈 구장을 물색해야 했다. 이에 구단은 스탠리 파크 바로 옆의 안필드 부지를 찾게 되었다. 당시 안필드는 초대 회장인 존 하울딩의 동료 양조업자 존 오렐의 소유 부지였고, 에버튼은 1885년 안필드를 임대해 축구 구장으로 개장하게 되면서 안필드 스타디움의 첫 주인이 된다. 에버튼은 안필드에서 정식 프로 축구 클럽으로 발돋움하여 1890-91 시즌 사상 첫 번째 풋볼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첫 번째 우승 직후인 1891년, 구장 부지 소유주 존 오렐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안필드 부지에다가 자신이 보유한 다른 토지로 이어지는 진입로를 놓겠다고 선언하며 사건이 시작되었다. 이 진입로는 안필드의 메인 스탠드를 통과하여 지어질 예정이었는데, 이 당시 영국에서 프로 축구 구단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경기장과 바깥 구역을 구분할 수 있는 제반시설[25]을 갖추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진입로에 의해 메인 스탠드가 사라진다는 것은 안필드가 프로 축구 경기장으로서 활용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결국 이 상황을 막기 위해서 회장 하울딩이 직접 안필드를 매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하울딩과 에버튼 구단 간의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하울딩은 경기장을 본인의 소유로 직접 구입했기에 수익을 위하여 회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 측에 대폭 상승한 경기장 임대료를 청구했고,[26] 경기장의 소유권을 통해 구단 내에서 본인의 입지를 올리고자 했다. 당시 에버튼은 수 많은 주주들과 이사진의 회의를 통해 집단 운영되고 있었는데 하울딩은 이러한 구조 때문에 회장으로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적다고 느껴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그러나 에버튼 이사진 또한 불만은 마찬가지였다. 구단 이사진들은 에버튼 선수단에게 경기 전에 자신이 소유한 호텔을 이용하도록 하는 등의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하울딩에게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하울딩은 영국 보수당 정치인이었고, 에버튼 이사회 인사들은 영국 노동당 정치인들이 많았으며, 하울딩은 양조업자인 반면 에버튼의 핵심 이사진들 중에선 성공회 목사 등의 종교계 인사들이 있어와 구단 내부에서는 껄끄러움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어져오던 갈등은 임대료 문제를 계기로 폭발하고 말았고, 의견 다툼은 봉합되지 못했다. 결국, 에버튼의 주주 279명은 1892년 1월에 회의를 열어 하울딩과 결별을 선언하고 홈 구장 이전을 결정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서 에버튼은 1892년 3월 15일 안필드를 떠나 구디슨 파크[27]로 옮겨왔다. 1892년에 지어진 구디슨 파크는 잉글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지어진 축구 전용 구장이기도 한데, 개장 이후 영국 왕 조지 5세가 방문하면서 더 인지도를 높이게 된다. 한편, 에버튼이 나간 안필드에는 존 하울딩이 새 축구 클럽을 창단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리버풀 FC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에버튼과 리버풀 사이의 축구경기는 머지사이드 더비로 불리며 이피엘에서 유명한 더비 매치 중 하나가 되었다.
1878년에 창설된 에버튼은 1888년부터 풋볼 리그의 원년 멤버로 활약하기 시작했으며, 1890-91 시즌 우승을 차지한 이후 풋볼 리그 초창기부터 강세를 나타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리그와 FA컵을 각각 1개씩 땄었다. 팀 역사상 첫 전환기는 1925년에 트란미어 로버스에서 딕시 딘을 사면서부터였다. 1927/28 시즌 중반까지 최고 기록은 59골이었고 그가 57골을 기록했을 때는 단 한 경기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기록을 깨려면 해트트릭을 기록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아스날이라 모든 사람들이 최다 골 기록을 깨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그는 해트트릭을 기록해 리그 최고 기록인 60골을 기록했으며, 그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29/30 시즌 때 22팀 중 꼴찌로 강등됐지만 그는 팀에 꿋꿋이 남아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1시즌만에 선두로 1부 리그에 재승격시켰고, 1931/32 시즌에 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는 경이로운 활약을 보였다.
1960년대는 에버튼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로 손꼽히는데, 이 시기에 획득한 주요 타이틀은 두 번의 리그 우승과 한 번의 FA컵 우승 등이다. 당시 에버튼은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경기 스타일로 인해 '스쿨 오브 사이언스(School of Science)'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1961년에 팀의 중앙 공격수 출신인 해리 캐터릭이 감독으로 취임하여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을 앞세운 '토탈 풋볼'을 적용시켜 로이 버논과 알렉스 영, 조 로일 등의 활약으로 1962/63 및 1969/70 시즌에 각각 리그 우승을 했고, 1965/66 시즌에는 FA컵에서 우승을 했다.
이후 1970년대 들어서는 꾸준히 리그 중상위권을 유지해왔으나 라이벌 팀 리버풀에 가려 별다른 빛을 보지 못했다. 리버풀이 유러피언 컵을 연패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에버튼은 강등권으로 내몰리는 수모를 당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84/85 시즌에는 통산 여덟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기지개를 폈고, 컵 위너스컵까지 제패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1979년부터 부임한 필립 카터 회장은 1980/81 시즌 도중에 '캐터릭의 아이들' 시절 멤버이던 하워드 켄달이 감독으로 취임하여 1985년에 리그 우승과 UEFA 컵위너스컵에서 우승시킴으로써 또 전성기를 누릴 찰나, 헤이젤 참사가 터진다.
리그 우승은 에버튼에게 새로운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는 상승세의 조짐과도 같았지만, 불운하게도 에버튼은 1985년 헤이젤 참사로 인해 다른 잉글랜드 클럽들과 마찬가지로 5년간 유럽 대항전에 참가할 수 없었다. 라이벌 팀 리버풀 팬들에 의해 일어난 헤이젤 참사는 에버튼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었고, 설상가상으로 에버튼은 리버풀과의 막판 경합을 이겨내지 못해 1985/86 시즌 리그 준우승에 머무르는 분루를 삼켰다.
1980년대 후반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에버튼은 이후 중위권과 하위권을 전전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하락세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져 매년 강등권을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대탈출'이 이어진 데다 머지사이드 더비에서도 매번 리버풀에 밀려 팀 사정이 암울했다.
2001/02 시즌 막판에 프레스턴 노스 엔드 감독이었던 데이비드 모예스를 영입하였는데, 이 영입이 구단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부임 초기부터 15위로 리그 잔류에 성공시킨 뒤 2002/03 시즌에 신동 웨인 루니의 활약으로 7위를 찍었으나, 블랙번 로버스보다 승이 많은데도 UEFA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모예스 감독은 적은 돈으로 가격 대비 성능비가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고 유소년 선수들을 대폭 기용하면서 팀의 전력을 차차 상승시켰다.
그러나 2003/04 시즌에선 한 시즌 만에 강등을 걱정할 정도까지 가면서 17위로 순위가 급격히 추락했고, 설상가상으로 2004/05 시즌을 앞두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유로 2004에서 4골을 터뜨려 득점 2위에 오른 신성 웨인 루니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팔면서 전문가들 사이에 강등 유력 후보로 거론됐으나, 잉글랜드 정통 축구의 맥을 고수하며 리그에서 폭풍을 일으켜 4위를 찍어 챔피언스 리그까지 갔다.
이후 2016/17 시즌까지는 리그에서 꾸준하게 중상~중위권 순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17/18 시즌부터 잘못된 감독 선임, 감독과 선수 간 불화 등으로 성적이 들쭉날쭉하다가 2021/22 시즌부터 강등을 겨우 면하고 있다. 1995년 FA컵 우승이 마지막 우승이다.
9.1. 전성기
1888년 창립된 '더 풋볼 리그(The Football League)'의 공식 창설 멤버인 에버튼은 1890-91시즌 클럽 역사상 최초의 우승으로 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1906년에는 첫 FA컵 우승을 달성한 에버튼은 1914-15년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고, 한동안 축구 경기가 중단되면서 구단의 상승세도 한 풀 꺾이게 된다.한동안 잠잠하던 에버튼은 1925년 클럽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딕시 딘을 영입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1927-28 시즌 39경기에서 무려 60골을 넣은 딘은 에버튼의 세 번째 리그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된다. 이 시즌에 작성한 딕시 딘의 득점 기록은 여전히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메시도 이 기록은 깨지 못했다.
에버튼은 이후 예상치도 못한 구단 내분이 발생하며 뜬금없이 2부 리그로 강등되었으나 그 다음 시즌 부진을 만회하는 엄청난 호성적을 거두고 바로 1부 리그로 재승격한다. 1부 리그로 돌아온 직후인 1931-32 시즌 기세를 탄 에버튼은 리그 4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두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고, 1936년에 토마스 H. 매킨토시가 사망한 뒤 시오 켈리 비서가 비공식적으로 팀을 지휘한 1938-39 시즌에는 팀 역사상 다섯 번째 리그 우승까지 차지한다. 그리고 20년 넘게 부진이 이어진다.
에버튼의 두 번째 전성기는 해리 캐터릭 감독이 부임한 1961년에 찾아왔다. 캐터릭 감독의 에버튼에서의 두 번째 시즌인 1962-63 시즌 에버튼은 25년여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성공하고, 1966년에는 FA컵을 우승한다. 1968년 다시 FA컵 우승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에버튼은 2년 후 리즈 유나이티드에 승점 9점을 앞서며 리그 우승을 거뒀다. 한편 이 기간, 에버튼은 잉글랜드 축구 팀 역사상 최초로 5년 연속 유럽 대항전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1961-62 시즌~1966-67 시즌).
1980년대 에버튼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는 1980/81 시즌 도중에 새로 부임하는 하워드 켄달 감독과 함께 찾아왔다. 에버튼은 1984년 FA컵에서 우승하고, 1984-85 시즌, 1986-87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85년 에버튼은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달성하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유일한 유럽 대항전 우승 기록이다.
9.2. 역대 시즌
자세한 내용은 에버튼 FC/역대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에버튼은 2부 리그에 있었던 4시즌을 제외한 무려 120시즌을 1부 리그에 참가 중이다.
- 개별 문서가 있는 시즌
9.2.1. 역대 리그 순위
시즌별 리그 순위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274488,#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시즌 | 부 | 리그 | 순위 |
1888-89 | 1 | 풋볼 리그 | 8 | |
1889-90 | 1 | 풋볼 리그 | 2 | |
1890-91 | 1 | 풋볼 리그 | 1 | |
1891-92 | 1 | 풋볼 리그 | 5 | |
1892-93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3 | |
1893-94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6 | |
1894-95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2 | |
1895-96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3 | |
1896-97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7 | |
1897-98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4 | |
1898-99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4 | |
1899-00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1 | |
1900-01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7 | |
1901-02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2 | |
1902-03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2 | |
1903-04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3 | |
1904-05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2 | |
1905-06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1 | |
1906-07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3 | |
1907-08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1 | |
1908-09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2 | |
1909-10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0 | |
1910-11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4 | |
1911-12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2 | |
1912-13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1 | |
1913-14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5 | |
1914-15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 | |
1915-16 |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중단 | |||
1916-17 | ||||
1917-18 | ||||
1918-19 | ||||
1919-20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6 | |
1920-21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7 | |
1921-22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20 | |
1922-23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5 | |
1923-24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7 | |
1924-25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7 | |
1925-26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1 | |
1926-27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20 | |
1927-28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 | |
1928-29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8 | |
1929-30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22 | |
1930-31 | 2 |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 1 | |
1931-32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 | |
1932-33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1 | |
1933-34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4 | |
1934-35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8 | |
1935-36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6 | |
1936-37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7 | |
1937-38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4 | |
1938-39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 | |
1939-40 |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중단 | |||
1940-41 | ||||
1941-42 | ||||
1942-43 | ||||
1943-44 | ||||
1944-45 | ||||
1945-46 | ||||
1946-47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0 | |
1947-48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4 | |
1948-49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8 | |
1949-50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8 | |
1950-51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22 | |
1951-52 | 2 |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 7 | |
1952-53 | 2 |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 16 | |
1953-54 | 2 |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 2 | |
1954-55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1 | |
1955-56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5 | |
1956-57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5 | |
1957-58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6 | |
1958-59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6 | |
1959-60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5 | |
1960-61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5 | |
1961-62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4 | |
1962-63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 | |
1963-64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3 | |
1964-65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4 | |
1965-66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1 | |
1966-67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6 | |
1967-68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5 | |
1968-69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3 | |
1969-70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 | |
1970-71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4 | |
1971-72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5 | |
1972-73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7 | |
1973-74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7 | |
1974-75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4 | |
1975-76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1 | |
1976-77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9 | |
1977-78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3 | |
1978-79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4 | |
1979-80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9 | |
1980-81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5 | |
1981-82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8 | |
1982-83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7 | |
1983-84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7 | |
1984-85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 | |
1985-86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2 | |
1986-87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 | |
1987-88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4 | |
1988-89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8 | |
1989-90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6 | |
1990-91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9 | |
1991-92 | 1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12 | |
1992-93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3 | |
1993-94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7 | |
1994-95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5 | |
1995-96 | 1 | FA 프리미어 리그 | 6 | |
1996-97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5 | |
1997-98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7 | |
1998-99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4 | |
1999-00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3 | |
2000-01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6 | |
2001-02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5 | |
2002-03 | 1 | FA 프리미어 리그 | 7 | |
2003-04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7 | |
2004-05 | 1 | FA 프리미어 리그 | 4 | |
2005-06 | 1 | FA 프리미어 리그 | 11 | |
2006-07 | 1 | FA 프리미어 리그 | 6 | |
2007-08 | 1 | 프리미어 리그 | 5 | |
2008-09 | 1 | 프리미어 리그 | 5 | |
2009-10 | 1 | 프리미어 리그 | 8 | |
2010-11 | 1 | 프리미어 리그 | 7 | |
2011-12 | 1 | 프리미어 리그 | 7 | |
2012-13 | 1 | 프리미어 리그 | 6 | |
2013-14 | 1 | 프리미어 리그 | 5 | |
2014-15 | 1 | 프리미어 리그 | 11 | |
2015-16 | 1 | 프리미어 리그 | 11 | |
2016-17 | 1 | 프리미어 리그 | 7 | |
2017-18 | 1 | 프리미어 리그 | 8 | |
2018-19 | 1 | 프리미어 리그 | 8 | |
2019-20 | 1 | 프리미어 리그 | 12 | |
2020-21 | 1 | 프리미어 리그 | 10 | |
2021-22 | 1 | 프리미어 리그 | 16 | |
2022-23 | 1 | 프리미어 리그 | 17 | |
2023-24 | 1 | 프리미어 리그 | 15 | |
2024-25 | 1 | 프리미어 리그 | - |
9.3.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274488><tablebgcolor=#274488> | 에버튼 FC 감독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1888년 ~ 현재 | ||||
1대 바클레이 | 2대 몰리뉴 ★ | 3대 커프 ★★ | 4대 소이어 | 5대 매킨토시 ★★★★ | |
위원회 | 6대 켈리 ★ | 7대 브리튼 | 8대 버찬 | 9대 케어리 | |
10대 캐터릭 ★★★ | 11대(대행) 이글레스톤 | 12대 빙엄 | 13대(대행) 버튼쇼 | 14대 리 | |
15대 켄달 ★★★ | 16대 하비 | 17대(대행) 가브리엘 | 18대 켄달 | 19대(대행) 가브리엘 | |
20대 워커 | 21대 로일 ★ | 22대(대행) 왓슨 | 23대 켄달 | 24대 스미스 | |
25대 모예스 | 26대 마르티네스 | 27대(대행) 언스워스 | 28대 쿠만 | 29대(대행) 언스워스 | |
30대 알라다이스 | 31대 실바 | 32대(대행) 퍼거슨 | 33대 안첼로티 | 34대 베니테스 | |
35대(대행) 퍼거슨 | 36대 램파드 | 37대 다이치 (다이치 체제) | |||
★프리미어 리그 | ★EFL 챔피언십 | ★FA컵 |
10. 라이벌
10.1. 머지사이드 더비
에버튼 FC Everton F.C. | 리버풀 FC Liverpool F.C. |
머지사이드 더비 (Merseyside Derby) |
11. 위상과 인기
에버튼 팬은 에버토니언(Evertonian) 혹은 토피스로 주로 불린다. 리버풀과 잉글랜드, 영국은 물론 전 세계에 광범위한 서포터층을 자랑하는 리버풀 FC에 상대적으로 밀리는 편이고 한국에선 더더욱 리버풀의 서포터 수에 비해 한참 밀리는 모습이다.일례가 에버튼의 유니폼 스폰서였던 태국 맥주 회사인 창(Chang)인데, 에버튼 서포터들은 창이 스폰서가 되자 '그런 업체도 있냐?'는 반응이었고 반대로 태국에선 '에버튼은 뭐냐?'란 반응이었다. 태국에선 리버풀이 워낙 인기가 많아 에버튼은 가려졌고, 전 태국 총리 탁신 친나왓은 리버풀을 소유하면 태국 내 입지가 강화된다고 계산해 리버풀을 사려고 했을 정도.[28] 아이러브사커의 한 에버튼 팬이 에버튼을 응원하다가 제발 한국인이면 맨유좀응원합시다란 소리를 들어 화제가 된 일도 있었다. 그래도 과거 강호이자 명문 구단으로 역사가 있기에 여기도 세계적으로 서포터층이 있다.
11.1. 국내 인지도
전체적인 인지도는 당연히 빅6에 밀리지만, 워낙 프리미어 리그에서 잔뼈가 굵디 굵은 팀인지라 뉴캐슬, 레스터와 더불어 국내에서 은근 팬이 많다.가장 팬이 많은 국내 사이트는 한국 최초 에버튼 공식 팬클럽 네이버 카페 The Toffees - 에버튼 커뮤니티로 현지 언론과 담당 기자들의 정보들이 정확하게 전달돼 다양한 에버튼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다. 다음 카페 Everton FC - The People's Club는 ITK 내부 소식망까지 다뤄 전문적인 정보와 뉴스를 볼 수 있고, 좋은 정보와 재미있는 대문으로 상당히 유명하다.
서형욱의 저서 <유럽축구기행(2005)>에 2004년 vs. 사우샘프턴전 관전기가 실려 있는데, 당시 구디슨 파크에서 에버튼 서포터들과 대화해보니 동아시아인이 오는 것이 반갑다고 한다. 아시아 축구 팬이 너무 리버풀만 알아준다며 에버튼에 와서 리버풀을 더 많이 찾는다고 속상하다고 할 정도. 그나마 에버튼에서 중국인 선수가 뛸 땐 중국인 서포터가 늘어났지만 워크퍼밋 등 여러 조건 강화[29]로 중국인이 떠나자 중국인 서포터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그래도 둘러보면 여기저기 에버튼 서포터가 조금씩 보인다.
11.2. 에버튼을 응원하는 유명인
유명인 에버튼 서포터로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실베스터 스탤론이 있으며 스탤론은 영국에 오면 여길 자주 들를 정도로 팬이라고 한다. 실제로 에버튼 구단 박물관에 가보면 에버튼 머플러를 들고 웃으며 사진을 찍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에버튼의 서포터들이 재정 위기에 처한 구단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서 폴 매카트니에게 애정을 갖고 구단을 인수해달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감당할 범위가 아니라고 말했다. 전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자 WWE에 'YES!' 광풍을 일으킨 불세출의 테크니션 대니얼 브라이언도 에버튼 팬이다. 그리고 WWE출신 판당고도 에버튼 골수팬이다.라이벌 팀의 양대 전설이 된 스티븐 제라드와 제이미 캐러거도 유년 시절 에버튼 서포터였다는 얘기가 있으며[30][31] 이와 같이 리버풀 FC에서 선수 생활을 한 에버튼 서포터로는 로비 파울러, 마이클 오언 등이 있다. 캐러거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에버튼의 선수로 리버풀에게 골을 넣는 것이 소원이어서, 리버풀 대 에버튼의 자선 경기를 개최하여 에버튼이 얻은 페널티킥을 대신 차 넣으며 어린 시절의 소원을 성취하기도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버튼 유스 출신 웨인 루니의 경우는 에버튼을 떠나 맨유에서 전성기를 보내면서 에버튼 팬들에게 유다 취급을 받으면서도 "한 번 블루는 영원히 블루다"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아들도 에버튼 서포터로 등록시킨 진성 에버튼 서포터다.
또한 현재 뉴캐슬 감독인 에디 하우도 어린 시절 에버튼 팬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SPOTV 해설 이완우와 배우 이원근이 에버튼 팬으로 알려졌다.
12. 레전드
자세한 내용은 에버튼 자이언츠 문서 참고하십시오.13. 기타
- 로날트 쿠만이 에버튼 감독 시절 크리스마스 트리를 공개했는데, 이를 본 에버튼 팬들이 '트리에 빨간색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고 말해 쿠만이 빨간색 장식을 흰색으로 바꿨다.## 그리고 이를 본 에버튼 선수 케빈 미랄라스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파란색으로 장식한다.
- 에버튼은 앵그리버드 시리즈를 제작한 핀란드 게임 업체 로비오 엔터테인먼트와 업무 협약을 맺고 유니폼 왼쪽 소매에 'Angry Birds'라는 문구를 새겼다.# 그런데 앵그리버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 레드가 리버풀 엠블럼의 붉은 새를 연상시킨다며 논란이 되자, 구단에서는 '유니폼에 새긴 글씨는 붉은색이 아니라 흰색'이라며 해명했다.#
- 2000년대 들어 고질적인 재정난을 해소키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고, 일찍이 아시아 시장 개척에 열을 올린 것이 그 일례다. 2002-03 시즌부터 중국 이동통신사 케지안과 스폰서를 맺고 중국 국가대표 출신 리톄를 영입하는가 하면, 중국어 홈페이지를 열고 중국까지 가서 축구교실을 열기도 했다. 2004-05 시즌부터 태국 총리 탁신 친나왓의 리버풀 인수 움직임에 편승해 태국 맥주 회사 타이베브와 손을 잡으며 태국 유소년 선수 3명을 유스팀에 입단시켰다. 심지어 구장 매점에 창 맥주만 들이기도 했으나, 팬들의 반발로 타이베브의 양해를 구해 타사 맥주도 같이 팔았다.
- 나는 귀족이다의 주인공 유지웅이 인수한 구단이 에버튼이다. 작중에선 레드몹 레이드로 2개월간 벌어들인 22억 파운드로 구단 인수는 물론 메시, 팔카오, 카바니, 아자르, 함식, 디마리아, 카바예, 보누치, 쿠르투아 등 초호화 선수를 대거 영입해서 리그 우승을 노렸다. 작가의 말론 위 짤에 필을 받아서 에버튼을 선택했다고.
윙이 3명 스트라이커가 2명
2012년 8월 8일(현지 시간), AEK 아테네와의 친선 경기에서 한 수비수가 골을 넣자 열광한 팬들이 피치로 난입해 선수들과 같이 골을 축하했다. 골의 주인공은 토니 히버트. 10세 때부터 에버튼 유스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2001년 데뷔 이후 12시즌간 에버튼 유니폼만 입으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한 원클럽맨이다. 308경기를 출장한 그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동안 골을 못 넣었다는 점. 서포터들도 '히버트가 골을 넣으면 우리는 폭동을 일으킬 거야[32]'란 응원가를 부르며 그의 골을 학수고대해왔는데, 드디어 이날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것이다. 그것도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치러진 친선 경기에서. 이후 15-16 시즌에도 재계약을 했다고 한다.
- 2016년 6월 파하드 모시리 구단주가 에버튼을 인수하고 5년간 이적료로 5억 파운드 이상을 썼다. 모시리는 신구장 에버튼 스타디움 건설을 추진하는 등 점점 에버튼 팬들의 지지를 샀으나, 2021-22 시즌 전 리버풀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를 에버튼 감독으로 선임하는 결정을 해 큰 논란을 빚었다.[33]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의 거주지 인근엔 '우리는 당신이 어디 사는지 안다. 에버튼 감독직에 서명하지 마'[34]란 현수막이 걸렸을 정도로 전 리버풀 감독에 대한 에버튼 현지 팬들의 반대가 상당했는데, 이를 무릅쓰고 강행했다가 12월 2일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4:1로 패하고 에버튼 팬들에게 보드진 아웃 소리까지 들었다. 이 경기 직후 마르셀 브랜즈 디렉터가 경질됐고, 베니테스도 얼마 못 가 1월 16일 경질됐다.
- 2016년 7월에 보스니아인 한 명이 영국 프로 축구 리그 4티어에 걸쳐 있는 92개 팀에 왜 자신이 이 팀의 서포터여야 되는지 묻는 이메일을 보냈고 이를 레딧에 인증했는데, 이 중 실제로 답장한 팀은 10개 정도였고 상당수가 복붙 메시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에버튼은 답장과 함께 같은 보스니아인인 무하메드 베시치가 특별히 비디오 메시지를 제작해서 보냈고, 정성 끝에 그 사람이 에버튼을 응원하게 된 일이 있었다.#
- 이상하게 최근 선수들의 골절상이 잦다. 2014년 브라이언 오비에도를 시작으로 2017년 셰이머스 콜먼, 2018년 제임스 맥카시, 2019년 안드레 고메스까지 매우 심각한 부상을 당한 전력이 있다. 부상 기간이 각각 오비에도 7개월, 콜먼 10개월, 맥카시 1년이었다. 고메스는 3~5개월로 예상됐으나 다행히 2개월여만에 피치에 복귀했다.
리버풀이 훌리건으로 유명한 탓에 상대적으로 에버튼 팬들은 얌전한 이미지가 있지만, 2019년 1월 FA컵 밀월전에서 훌리건 원탑으로 불리는 밀월 팬들과 에버튼 팬들이 경기 전에 한판 뜬 적이 있다. 또한 지난 시즌 연패로 강등권으로 추락하자 파란색 홍염을 터뜨리며 항의하기도 하였다.
2020-21시즌 25R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에버튼이 2-0 완승을 거두자 홀리 로사리 성당 신부가 미사를 하는 도중 찬송가 대신 에버튼 응원가를 틀고 에버튼 머플러를 등장시켜 화제를 모았다.#
13.1. 불운한 클럽
에버튼은 상승세를 타면 자신들 책임이 아닌 사건에 억울하게 휘말려 상승세가 꺾였다.1914-15 시즌에 1부 리그를 우승하자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리그가 중단됐고, 1938-39 시즌엔 1부 우승컵을 탈환했으나 또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리그가 중단됐다. 1968-69 시즌엔 3위로 마쳐 이듬해 인터-시티 페어스컵 출전 자격을 획득했으나 페어스컵의 1도시 1구단 출전 악법때문에 2위 리버풀에 밀려 출전권이 박탈됐고, 최전성기인 1980년대엔 헤이젤 참사로 인해 UEFA가 잉글랜드 클럽들의 유럽 대회 출전을 금지해 2번의 유러피언컵과 1번의 UEFA컵 진출 기회를 놓치는 등 실력에 비해 지독히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런 에버튼의 불운에 리버풀이 원인을 제공한 사례가 많은 것도 리버풀에 대한 에버튼 서포터들의 반감이 큰 이유 중 하나다.
2015-16 리그 22R 첼시전에서 오심으로 밝혀진 98분 존 테리의 골로 승점 3점을 도둑맞았다. 경기가 끝난 후 거스 히딩크 감독도 존 테리의 골이 오심이라고 인정할 정도. 또한 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리그컵 준결승에서 맨시티와의 경기 중 오심 골로 패했다.
최근 시즌인 2023-24 리그 에서도 전 시즌과 달리 초반에 상승세를 타는 듯 싶었으나...10점 승점 삭감을 당해 중위권에서 강등권으로 밀려났다. 현재 승점 삭감이 없었더라면 에버튼은 높은 순위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항소를 하여 6점 승점으로 조금 완화되어 강등권에서 일단 벗어난 순위로 자리잡게 되었다.
13.2. 리그컵 무관
잉글랜드에서 손꼽히는 명문인 에버튼이지만 EFL 컵[35]에선 우승 경력이 없다. 준우승 기록만 2번 있을 뿐이다(1977, 1984). 참고로 역대 리그 컵 우승팀들을 살펴보면 레스터 시티[36], 미들즈브러[37], 루턴 타운 등 중소 클럽도 많다.10-11 시즌 리그 컵에서는 3라운드에서 3부 리그 팀 브렌트포드와 맞붙어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졸전 끝에 패배, 자이언트 킬링의 희생양이 되며 좀처럼 풀릴 기미가 안 보이는 악연을 지속하게 되었다. 이후 15/16 시즌에 준결승전 까지 가며 오랜만에 우승에 도전했지만 그마저도 오심 골이 나오면서 패하고 만다. 20/21시즌에는 8강전인 맨유전에서 에딘손 카바니가 예리 미나의 목을 조르는 행위가 있었지만 VAR이 8강전까지는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심판이 보지를 못해 카바니의 퇴장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그 카바니에게 0-0 상황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패배의 빌미가 된 선제 실점을 하고 말았다.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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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96년 해체로 로고는 전해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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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color: #FFF;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or: #000" | 순서 | 우승팀 | 국가 | 첫 우승연도 | 우승 횟수 | |
1 | <colbgcolor=#ffd700,#000> ACF 피오렌티나 | <colbgcolor=#eeeeef,#191919> | 1961년 | ★ 1회 | ||
2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1962년 | ★ 1회 | |||
3 | 토트넘 홋스퍼 FC | 1963년 | ★ 1회 | |||
4 | 스포르팅 CP | 1964년 | ★ 1회 | |||
5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 1965년 | ★ 1회 | |||
6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1966년 | ★ 1회 | |||
7 | FC 바이에른 뮌헨 | 1967년 | ★ 1회 | |||
8 | AC 밀란 | 1968년 | ★★ 2회 | |||
9 | ŠK 슬로반 브라티슬라바 | 1969년 | ★ 1회 | |||
10 | 맨체스터 시티 FC | 1970년 | ★ 1회 | |||
11 | 첼시 FC | 1971년 | ★★ 2회 | |||
12 | 레인저스 FC | 1972년 | ★ 1회 | |||
13 | 1. FC 마그데부르크 | 1974년 | ★ 1회 | |||
14 | FC 디나모 키이우 | 1975년 | ★★ 2회 | |||
15 | RSC 안데를레흐트 | 1976년 | ★★ 2회 | |||
16 | 함부르크 SV | 1977년 | ★ 1회 | |||
17 | FC 바르셀로나 | 1979년 | ★★★★ 4회 | |||
18 | 발렌시아 CF | 1980년 | ★ 1회 | |||
19 | FC 디나모 트빌리시 | 1981년 | ★ 1회 | |||
20 | 애버딘 FC | 1983년 | ★ 1회 | |||
21 | 유벤투스 FC | 1984년 | ★ 1회 | |||
22 | 에버튼 FC | 1985년 | ★ 1회 | |||
23 | AFC 아약스 | 1987년 | ★ 1회 | |||
24 | KV 메헬렌 | 1988년 | ★ 1회 | |||
25 | UC 삼프도리아 | 1990년 | ★ 1회 | |||
26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1991년 | ★ 1회 | |||
27 | SV 베르더 브레멘 | 1992년 | ★ 1회 | |||
28 | 파르마 AC | 1993년 | ★ 1회 | |||
29 | 아스날 FC | 1994년 | ★ 1회 | |||
30 | 레알 사라고사 | 1995년 | ★ 1회 | |||
31 | 파리 생제르맹 FC | 1996년 | ★ 1회 | |||
32 | SS 라치오 | 1999년 | ★ 1회 |
[1] /ˈɛvətən/[2] 세인트 도밍고스 FC로 창단.[3] 2025-26시즌부터 에버튼 스타디움을 사용할 예정이다.[4] AS 로마 구단주이자 프리드킨 그룹 회장인 댄 프리드킨에게 2024년 9월 23일 지분 94% 매각에 합의하면서 인수 절차가 완료되는대로 에버튼 구단주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5] 전임 회장이던 빌 켄라이트 (Bill Kenwright)가 2023년 10월 23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6] 에버튼은 리버풀 서북부의 구다.[7] 4시즌만 2부 리그 참여.[8] 1위 리버풀, 2위 아스날, 4위 맨유.[9] 루퍼트 왕자의 눈물로 유명한 루퍼트 왕자가 머물렀다는 얘기로 이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루퍼트 왕자 사후 거의 100년이 지나 건설된 건물이다. 다만 이 지역이 잉글랜드 내전 당시 왕당파였던 루퍼트 왕자가 리버풀 성을 공격하기 위해 진지를 지었던 곳이긴 하다고.[10] 연속 참가 기록은 1부에서 98시즌째 버티고 있는 아스날이 1위다.[11] 2위는 아스톤 빌라(109시즌), 3위는 리버풀(108시즌), 4위는 아스날(...)(106시즌)이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클럽은 1부 참가 기간이 100시즌 미만이다.#[12] 인수 절차는 12월 초반에 마무리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13] 덴마크의 보험업체. 1993년 파산.[14] 미국의 사무기기 업체.[15] 2002년에 T모바일로 합병.[16] 중국의 이동통신 업체. 2013년 파산.[17] 아프리카 기반의 사설베팅사이트.[18] 슬리브 스폰서.[19] 영국의 중고차 업체.[20] 슬리브 스폰서[21] 슬리브 스폰서[22] 이스라엘의 주식 거래 플랫폼[23] 영국의 양조 회사[24] 우크라이나의 양조 회사[25] 광고판, 개찰구, 스탠드 등의 시설이 필요했다.[26] 150% 상승한 250파운드를 임대료로 요구했다.[27] 당시 이름은 미어그린(Mere Green)이었다.[28] 참고로 창은 에버튼 경기장에선 창 맥주만 판매하란 방침을 내세웠다가 에버튼 서포터들이 반발해 없던 일로 했다. 구디슨 파크 매점에서 창 맥주를 팔긴 하지만 당연히 인기는 진짜 없다.[29] 프리미어 리그가 피파 랭킹 70위 내 나라들 선수들로 영입 조건을 강화해 중국인 선수들은 들어올 수 없게 됐다.[30] 사실 제라드가 원래 에버튼 서포터는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열렬한 리버풀 서포터였고, 제라드의 삼촌이 에버튼 서포터였다고 한다. 그래서 둘은 항상 제라드를 각자 자기들이 응원하는 팀의 서포터로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제라드의 어린 시절 에버튼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어서 그가 에버튼 서포터였다고 설명이 돼 있는 거 같지만 그건 그의 삼촌이 제라드의 아버지 몰래 에버튼 경기에 데리고 가면서 찍었다고 한다. 이 삼촌의 아들이자 스티브의 사촌동생인 앤서니 제라드(허더즈필드 타운 소속 중앙 수비수)는 실제 에버튼 유스로 축구 인생을 시작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제라드는 어느 한 팀이 중요한 게 아니고 축구 자체가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한테 토트넘, 맨유 같은 여타 팀의 유니폼을 사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어느 팀이든지 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 게 즐거웠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현재에 와서는 삼촌을 따라 에버튼 경기장에 간 것이나, 에버튼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은 것이 조금은 부끄러운 과거라고 선수 본인이 자서전에 기고한 바 있다.[31] 제이미 캐러거는 진짜 어릴 때는 에버튼 서포터가 맞다. 그래서 포포투 인터뷰 때 처음 프로 데뷔했을 때는 리버풀과 에버튼이 둘 다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느날 중요한 경기에서 패하고 울적한 기분으로 펍에 갔더니 에버튼 서포터들이 리버풀을 조롱하는 것에 빡쳐서 팬심을 버렸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지금은 에버튼이 무조건 졌으면 좋겠다고 한다.[32] When Hibbo scores, We Riot[33] 에버튼과 리버풀은 라이벌 관계기 때문에 두 팀 감독을 다 해본 사례는 윌리엄 에드워드 바클레이가 1888년 에버튼의 첫 감독, 1892년 리버풀의 첫 감독을 맡은 이래로 없었다.[34] We know where you live. Don't Sign[35] 2016년부터는 카라바오 컵. 스폰서에 따라서 컵 이름이 계속 바뀐다.[36] 우승 경력이 무려 3회이며, 아스날 FC보다도 많다.[37] 한국에서는 이동국이 한때 뛰었던 팀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