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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雙權쌍권(雙權)은 12.3 내란 사태와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라는 정치적 격변기에 친한을 친윤이 축출한 뒤 다시 국민의힘의 전면에 나섰던 두 핵심 중진 정치인,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를 함께 지칭하는 별명이다. 두 인물 모두 성씨가 권씨라는 공통점에서 착안하여 언론과 정치권에서 사용되었다.
이들은 과거 이준석 초대 국민의힘 대표를 당에서 축출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찬동했던 인사들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최고위원 전원 사퇴로 한동훈 대표의 지도부가 붕괴하는 바람에 한동훈 대표가 사실상 강제적으로 사퇴하면서, 각각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로서 당권을 이끌었다. 이후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를 재경선을 통해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교체하려 시도하는 등, 당내 친윤계 중심의 지도체제 구축을 시도한 인물들로 평가받으며 비윤계 국힘 지지자들은 적을 도와주는 내부의 적으로 볼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당내외의 상당한 반발에 직면했으며, 결과적으로 당원투표에서 한덕수 교체 안건이 부결되고 김문수가 대통령 후보로 복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남에 따라 '쌍권 체제'는 반 년이 채 안 가 막을 내렸다. 이후 대선마저 패배하며 권성동 원내대표 또한 사퇴하면서 불명예스러운 지도부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으며 권성동은 통일교 게이트에 휘말리며 수사를 받았고 이후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어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되어 재판받고있다.
2. 역사
2.1. '쌍권 체제'의 성립 배경
12.3 비상계엄 선포와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1차 의결이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책임을 지고 추경호 의원이 당 원내대표가 사퇴하자, 후임 원내대표 선거에서 권성동 의원이 경남지역 4선 중진이자 친한/비윤계 김태호 의원을 꺾고 약 2년 만에 원내대표직에 복귀했다.이후 2차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 5인이 총사퇴[3]하여 지도부는 공백 상태가 되었다. 이에 따라 12월 30일, 권영세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원내대표인 권성동 의원과 함께 당을 이끄는 이른바 '쌍권 체제'가 공식적으로 형성되었다.
2.2. 주요 활동과 논란
'쌍권 체제'는 출범 이후 당내 주도권 확보와 대선 국면의 안정을 목표로 리더십을 발휘하고자 했다. 특히 2025년 5월 4일 이후 진행된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과정에서 김문수 후보 및 그를 지지하는 당내 인사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가장 큰 논란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정계에 입문하고 21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당시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와 한덕수 예비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이 난항을 겪자, 2025년 5월 10일 심야에 지도부가 김문수 후보의 후보자 지위를 박탈하는 결정을 내린 사건이다. 지도부는 이러한 결정의 주된 근거로, 경선 과정에서 김문수 후보가 약속했던 한덕수와의 신속한 단일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제시했다.[4]
2.3. 체제의 붕괴
그러나 이러한 후보 교체 시도는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과 함께 당원 및 여론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어차피 이전부터 여러 극우 유튜버들의 선동으로 쌍권의 인식은 망가졌다. 외부의 적을 망상으로 만들어내 돈벌려는 극우 유튜버에 둘의 정치생명은 끝난 셈. 결국 국민의힘은 2025년 5월 10일 야간, 한덕수 후보를 내세우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김문수를 대통령 후보로 복권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즉시 사퇴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자리를 유지하며 당대표 권한대행까지 맡게 되었다. 이로써 '쌍권 체제'는 실질적으로 붕괴했으며,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선에 참패한 뒤 권성동도 2025년 6월 5일,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3. 공통점
두 정치인은 다음과 같은 여러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출생
- 4월생이다. 권영세는 4월 1일생, 권성동은 4월 29일생이다.[5]
- 2026년 기준으로 60대 중반이다. 2026년 현재 권영세는 1959년생으로 67세, 권성동은 1960년생으로 66세로, 한 살 차이다.
- 안동 권씨이다.[6]
- 법조 경력
- 법과대학 출신이다. 권영세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77학번, 권성동은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80학번(1년 재수)으로 학번상 3년 차이가 난다.
- 검사 출신 법조인이다. 검사로서의 실제 근무 기간은 권성동 의원이 더 길다.
- 비육군 군법무관 출신이다. 권영세는 공군, 권성동은 해군에서 복무했다. 특수사관 후보생들은 기본적으로 육군에서 훈련을 받고 임관 시 군종이 추첨으로 정해지는데, 군 규모상 대부분 육군으로 배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흔치 않은 경우이다.
- 정치 경력 및 활동
- 첫 원내 입성을 재보궐선거를 통해 이루었다. 권영세는 전임자 김민석 의원의 서울특별시장 출마로 인한 사퇴(제16대), 권성동은 전임자 최욱철 의원의 의원직 상실(제18대)로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 40대에 재보궐선거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권영세가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을 때 43세였고, 권성동이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을 때 49세였다.
- 현역 국민의힘 소속 제22대 국회의원이자 5선 국회의원이다.[7]
- 이른바 험지에서의 정치 활동이나 당선 경험은 없다. 권영세는 경합 지역으로 분류되는 영등포구 을[8]이 과거 지역구였으며, 보수 우세 지역인 용산구가 현재 지역구이다. 권성동은 전통적인 보수 강세 지역인 강릉시에서만 당선되었다.[9] 그러면서도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영남 지역에는 출마한 적이 없다.
-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에는 출마한 적이 없다.
- 2024년 12월 3일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본회의의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했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 친윤계 인사로 분류된다.[10]
- 신체
- 장신으로 알려져 있다. 권영세는 179cm, 권성동은 178cm로, 1950년대 ~ 1960년대생 남성 평균 신장은 물론, 1980년대 ~ 1990년대생 남성 기준으로도 큰 편에 속한다.
- 안경을 착용한다. 모든 선거 포스터에서 안경을 착용한 모습을 사용했을 정도로 정계 활동 기간 내내 안경을 써왔다. 권성동 의원의 경우 덴마크의 고급 안경 브랜드인 린드버그의 9704 모델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문재인, 홍준표, 송영길 등 다른 정치인들도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모델이다.
- 얼굴에 대한 평가가 유독 박한 편이다. 권영세는 건대추를, 권성동은 블로브피시, 코끼리물범을 연상시키는 외모라고 조롱받는다.
- 종교
- 가톨릭 신자이다.
- 인간관계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훨씬 이전부터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왔다. 권성동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외가와 같은 강릉시 출신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직접 '불알친구'라고 언급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 권영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과 친분을 맺어 사법시험을 함께 준비했고, 검사로 재직할 때도 서로 인연을 이어왔다고 한다. #
- 20대 대선의 주요 후보였던 인물들의 대학교 해당 학과 2년 선배라는 공통점이 있다. 권영세는 서울대학교 법대 77학번으로 윤석열(서울대학교 법대 79학번)의 과 2년 선배이고, 권성동은 중앙대학교 법대 80학번으로 이재명(중앙대학교 법대 82학번)의 과 2년 선배이다. 이들은 각각 과 2년 후배인 윤석열, 이재명과 사법시험을 함께 공부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11]
- 가족
- 둘 다 자녀가 2명씩이다.
4. 평가
쌍권 체제의 활동과 그 결과가 영 좋지 않다 보니 정치권, 심지어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일관되어 있다. 쌍권 체제에서 벌어진 정치적 행위는 하나하나가 굵직한 대형 사고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낸 게 하나도 없다. 먼저 본인들의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대통령의 탄핵을 방어하지도 못했는데 이후 제멋대로 대선 후보 교체를 시도하려다가 당원들의 거센 반발로 역풍만 맞아버렸으며, 결국 대선에서 패배함에 따라 본인들의 정당이 야당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물론 헌법에 위배되는 비상계엄이라는 대형 사고가 일어난 이상 탄핵을 방어하기는 어렵기도 했고, 대선 승리는 더더욱 쉽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쌍권 체제가 택한 전략은 좋지 못했다. 비상계엄을 대놓고 옹호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과 제대로 선을 긋지도 않은 이도저도 아닌 상태를 유지했으며, 윤석열을 지키고 탄핵을 막아야 한다는 세력과 윤석열과 결별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는 두 세력이 당 내에서 충돌하는데 지도부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자 당은 더 큰 혼란 상태로 빠졌다. 와중에 후보 교체 시도라는 당내 민주주의마저 위협하는 대형 사고를 터트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쌍권에 대한 평가는 나락을 가버렸고, 권성동과 권영세 두 명의 정치 체급은 쌍권 체제 이전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게 되었다.
- 홍준표 전 대구광역시장은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진 강제적인 후보 단일화 시도에 대해, "정당정치의 기본도 모르는 인간 말종"이라며 쌍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 또한 그는 쌍권을 비판하면서 이들이 윤석열을 정치권으로 데려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윤석열도 함께 비판했다.
- 21대 대선 이후 안철수 의원은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내정되었다. 그러나 임명된 당일인 2025년 7월 7일 날치기 혁신위를 거부한다며 바로 사퇴했다. 안철수는 최소 2명에 대한 인적청산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하는데, 2명의 쇄신 대상은 사실상 쌍권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
이후 권성동은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 1억 원을 수수받은 혐의로 1심 징역 2년을 선고받으며 정치적으로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권영세는 본인의 지역구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긴 해서 아예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권성동에 비하면 나은 처지다.
5. 여담
- 과거 같은 성씨를 가진 유력 정치인들이 '양김'(김영삼, 김대중)이나 '삼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으로 불린 사례와는 달리, 이들은 '쌍(雙)'이라는 접두사가 붙어 지칭되었다. 이는 이전의 인물들이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복합적인 관계였던 반면, '쌍권'은 특정 시기에 정치적으로 유사한 목표를 가지고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권(權)'[12]이라는 성씨와 '쌍'이라는 접두사의 결합이 주는 어감[13], 그리고 '쌍'이라는 단어가 가진 특성(무기음)이 당시의 긴박하고 다소 부정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데 용이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나아가 두 사람의 성씨가 비슷한 것에 착안하여 '쌍권총'에 빗대어 불리기도 했다. # 혹은 권투로 불리기도 한다.
- 매일신문에서는 이들의 정치적 행보를 후한 말의 혼란기에 권력을 다투다 함께 몰락한 이각과 곽사에 비유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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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現 국민의힘 소속.[2] 現 국민의힘 소속.[3] 한동훈 대표는 사퇴 의사가 없었지만, 친윤 최고위원들은 물론 당시 친한으로 분류되던 장동혁, 진종오 최고위원까지 사퇴해 사실상 끌려내려간 모양새로 사퇴하게 됐다.[4] 실제로 2025년 5월 9일,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법원에 신청한 후보자 지위 인정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주된 이유 역시 이와 동일했다. 서울지방남부법원은 김문수가 국민의힘 경선 후보자 시절에 한덕수와의 단일화를 적극적이고 반복적으로 공약했던 것이, 단일화 찬성 여론이 80%를 넘어가는 정국 속에서 당원과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여 후보자에 선출되는 것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인정했다.[5] 단, 권영세의 경우, 음력 기준 생일은 2월 24일이며, 권성동이 음력 기준으로도 4월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6] 권영세: 추밀공파 34세손 영◯(寧) 항렬, 권성동: 복야공파(僕射公派) 흥문계(興門系) 37세손 ○동(東) 항렬.[7] 다만, 권성동은 강원 강릉시에서 5선 연속(제18-22대) 당선되었으나, 권영세는 서울 영등포구 을에서 3선(제16-18대) 후 두 번 연속(제19·20대) 낙선한 뒤, 용산구로 지역구를 옮겨 재선(제21·22대)에 성공했다는 차이가 있다.[8] 강남3구 못지않게 보수 초강세 지역인 여의도를 끼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보수표가 상당히 나오는 지역구이다.[9] 이들은 당 지도부로서 선거를 지휘할 때도 서울이나 자신의 고향 중심으로 지원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10] 그러나 전술했듯, 이들의 일부 행보는 강성 친윤 지지층으로부터도 비판을 받기도 했다.[11]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의 대학 과 2년 선배라는 이색적인 공통점이 생겼다.[12] 이 한자는 권력(權力)이라는 단어에도 쓰인다.[13] 즉 쌍으로 권력을 쥐고 당을 좌지우지했다는 느낌으로 언중이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