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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한민국의 국가철도 및 전용철도 노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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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의 수려선 혀기형 증기기관차. 미군 철덕 Don Ross가 촬영하였다. 촬영지는 Don이 모른다고 언급하여 현재도 불명이다.[1][2]
1960년대 수려선 디젤동차. 이천역에서 촬영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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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水驪線 / Suryeo Line한국의 옛 철도 노선.
1931년에 부설됐으며 수원~용인~이천~여주 간 총 73.4㎞ 구간을 이었다. 반대편에서 직결되던 당시의 수인선과 마찬가지로 궤도 간격이 표준궤(1435㎜)보다 좁은 협궤(762㎜) 노선이었다. 노선 구간 복원도.[4] 일제가 부설할 당시에는 쌀 수탈을 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수원과 용인, 이천, 여주를 오가며 쌀을 실어날랐고 광복 후에는 도민들의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경기도를 동서로 이어주던 협궤열차였다.
구체적 노선도.
2. 역사
수원~여주 간 경동철도(京東鐵道)는 10여년 전부터 문제를 거듭해왔던 바, 1927년 자본금 5백만 원으로 회사를 조직할 예정이었으나, 용이치 못했으므로 1928년에 자본금 3백만 원을 축소시켜 2백만 원으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총독부 당국이 자본력을 인정해주지 않음으로써 회사 측은 재차 1백만 원을 추가 모집, 총 자본 3백만 원으로 완전히 성립되었다. 그 사이, 역원간에 어떠한 불미스런 내홍이 일어나 파란이 있었던 탓에 잠시나마 세간의 이목을 꺼리게 되었다가, 안정된 상태로 복귀하여 제반 설비에 노력하던 도중 작년[5] 12월 28일에 수원~용인 간 공사 착수의 일부 허가를 획득하였다. 지난 2월 2일엔 경부선의 수원역 광장에서 기공식까지 거행하게 되었으며, 15일엔 터널[6]이 소재한 용인군 기흥면 영덕리 뒷산과 수여면 삼가리 뒷산 사이의 일반 공사가 먼저 착수되었다.
착공을 보도한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개통일은 1930년 12월 1일. 구간은 수원 - 용인 - 이천 - 여주. 42번 국도와 노선이 많이 겹치며 실제로 일부 구간이 수려선 노반 위에 지어졌다.
경기도의 쌀을 일본으로 이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선이다. 이천, 여주 지역 쌀을 운송하는 노선으로 부설되어, 수원역에서 수인선과 연계되어 인천항을 통해 반출되곤 했다. 이외에도 이천 구간은 안성선과 연결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으나 태평양 전쟁으로 안성선 일부가 폐지되면서, 흑역사가 되었다. 그런데 수원시에서 발간한 시 역사 책자에 따르면 의외로 당시 교통 상황이 열악했기에 여객 수요가 많았다.
1971년 12월 영동고속도로의 신갈~여주~원주(새말) 구간이 개통되면서 주변 도로교통의 발달로 치명타를 맞게 되었고[7] 결국 이듬해인 1972년 4월 1일에 폐선되고 말았다. 일부 역의 주민들은 수려선 이외에 다른 교통수단이 없으므로 폐지 반대 여론이 심했으며, 아예 주민들이 교대로 서울에서 시위도 했다고 한다.
현재 이 노선에 해당되는 구간은 토막난 채 제각각으로 개궤 및 이설되었다.
현재 노선들과의 비교도.(빨간색: 수려선, 파란색: 경부선, 노란색: 수인분당선, 연두색: 용인 경전철)크게보기[8][9][10]
수려선 당시 | 현재 |
수원역 ~ 화성역 | |
원천역 ~ 덕곡역 | |
수원역 ~ 신갈역 | 분당선 수원역 ~ 기흥역 구간 |
신갈역 ~ 마평역 | 용인 에버라인 기흥역 ~ 용인중앙시장역 구간 |
유산역 ~ 여주역 | 경강선 이천역 ~ 여주역 구간 |
재밌는 점은 분당선도 수원역에서 수인선과 직결되었다.[11] 다만 분당선, 용인경전철, 경강선을 모두 이어도 용인-이천 사이가 이어지지 않아 완전한 노선이 돌아오지 않는다.[12][13] 만약 이 노선을 복원한다면 영동고속도로의 상습 정체를 완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현재 이 노선의 사실상 후신격인 반도체선이 추진 중이다.
3. 타 노선과의 연결 문제
수원역에서 경부선, 수인선과 접속하는 것을 빼면 접속 노선이 하나도 없었다. 욕심을 내서 원주역까지라도 이었다면 지금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표준궤로 전환되어 전철을 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도 가능하겠지만 역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후신인 경강선이 원주까지 공사가 예정되어 있기는 하다.타 노선 연결 계획이 있긴 했다. 일제강점기 안성선이 여주까지 연장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안성선 항목 참조.
또 표준궤로 개궤하고, 구둔역 연장이 장기 계획에 포함되었지만 교통의 방향이 바뀌면서 무산되었다. 사실상 서울전차 외곽 이전처럼 실현 가능성은 없었는데, 선로를 더 부설할 용지가 없었다.
4. 역 보존 문제
수려선의 폐선 일자가 1972년 4월 1일. 한마디로 폐선한 지 2024년 기준으로 52년이 된 셈이다. 오천역만큼은 2015년 11월까지 살아남았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수려선 역사였다.2015년 7월 7일에 확인한 결과 여태 살아 남아 있었다. 오천역이 남은 가장 큰 이유는 폐역된 이후로도 민가와 상업시설 등으로 요긴하게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2000년에 전기공업사가 폐업하였으니, 15년 정도 방치되었다. 그래도 건물 번호(55번)까지 부여될 정도로 나름 잘 남아 있었다.
오천리 주민들과 철도 동호인들이 보존을 요구하였으나,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별 관심이 없었다.[14] 무엇보다 오천리가 마장택지개발지구와 군부대 이전까지 하는 지라, 2015년 11월 결국 오천역이 철거되었다. 이로써 수려선의 역사는 전멸하였고 남한 지역 최후의 협궤 철도역사라는 지위는 수인선의 송도역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2024년 철거되어[15] 휴전선 이남의 협궤역사는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기묘한건 수려선이 1972년 폐선되면서 화성역도 같이 사라졌는데 그 근처 버스정류장 이름이 2001년까지도 화성역.뉴코아백화점으로 남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없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뉴코아그룹이 부도가 나서 이랜드가 인수하여 이름이 2001 아울렛으로 바뀌었고, 2001 아울렛 폐점 이전까지 버스정류장 이름은 버스 정류장 이름도 "2001 아울렛"이었다. 현재는 못골.미나리광.지동시장으로 변경되었다.
5. 기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수원-여주 소요시간이 시간표 상으로만 무려 4시간 30분이었다고 한다.[16] 실제로는 5시간을 넘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1950년 4월 1일 경향신문 여행안내 기사를 보면 여주 여행 교통편을 서울역에서 수원역까지 1시간 반, 수원역에서 여주역까지 5시간, 그러니까 서울에서 여주까지 6시간 반으로 소개하고 있다.# [17][18]뿐만 아니라 기관차가 툭하면 탈선했지만 차가 가벼워서 지렛대로 쉽게 복구하여 운행했다. 나중에 도입된 동차[19]도 고장이 잦아서 연착은 다반사였다고.
수려선 구간을 대체하고 있는 역들이 존재한다. 신갈역은 분당선 기흥역 주변, 수려선 어정역과 삼가역은 용인경전철 어정역과 삼가역 주변에 있었다. 수려선 용인역은 용인경전철 김량장역[20] 주변. 유산역과 수려선 이천역은 경강선 이천역이, 무촌역이 부발역, 매류역이 세종대왕릉역, 수려선 여주역이 경강선 여주역으로 대체되었다. 장래에는 수려선 화성역에 수원 도시철도 1호선 여성회관역이, 원천역은 동탄인덕원선 원천역이, 덕곡역은 동탄인덕원선 - 용인경전철 흥덕역이 대체할 예정. 하지만 마평부터 이천 구간까지, 그리고 여주 구간 일부는 아직까지 가망이 없다.
옛 용인군의 중심지 이동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14년 전까지 옛 용인군청은 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구 구성면/읍)에 있었으나 1914년 일제의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 처인구청이 위치한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으로 이전했다. 그런데 군청소재지가 옮긴 이후에도 옛 구성면은 한동안 용인의 중심지 역할을 계속하고 있었고[21] 수려선 역시 지나갈 뻔 했으나 어른의 사정에 의해 '신갈-어정-삼가'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결국 옛 구성면은 수려선이 지나갔던 신갈보다도 발전 정도가 뒤쳐지게 됐다.
이 문서의 하위 항목이라 볼수 있는 폐선된 역 문서들에 사진이 올라와 있는데, 한국전쟁 휴전을 앞둔 1953년 5월 5일 미국 철덕 Don Ross 씨가 찍은 것이다. 로스는 한국전쟁 때 서울에서 철도 배차원으로서 군복무를 하였다. 당시 여주, 이천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미육군이 열차를 징발하여 운행하고 있었는데(기관사와 화부는 한국인), 로스는 친구 2명과 함께 군복무와는 상관없이 자기 취미로, 아예 기관차 앞 파일럿 빔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서, 또 석탄 칸 지붕 위에 앉아서 타고다니며 이 사진들을 찍었다고 한다. 다만, 촬영지를 잊어버리거나 촬영지가 기록되어 있어도 다른 곳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사진들이 있다. 중요한 자료인 만큼 사진 상 지형을 대조하여 정밀한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돈 로스 씨는 2022년 별세하였고 그의 사진들이 모여 있던 사이트도 기간만료로 볼 수 없다. 그의 사이트에는 그가 생전 세계를 누비며 찍어 왔던 엄청난 양과 질의 철도와 교통 자료들이 가득했는데, 이 귀중한 콜렉션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수려선 루트를 거의 유사하게 커버하는 버스는 용인 버스 10-2번(수원역~덕곡역) - 용인 버스 55번(덕곡역-강남대역) - 용인 버스 66-4번(강남대역-용인역)[22]- 용인 버스 3번(용인역-이천역) - 이천 버스 111번(이천역-여주역)이 있다.
터널은 2개(덕곡터널, 멱조현터널)가 있었으며 통칭 덕굴과 메주고개굴로 불렸다. 덕곡터널은 덕곡역과 신갈역 사이[23]에, 멱조현터널은 어정역과 삼가역 사이[24]에 있었다. 현재 전부 매몰되어 있어서 찾아보러 가봐도 어디 있는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상태이며, 자료사진도 거의 없다.
그나마 멱조현터널은 폐선 전과 폐선 후 사진이 남아있다. 위 사진의 지형을 대조하면 위치는 추측이라도 할 수 있지만 덕곡터널은 자료사진조차 없는데다가 주변 개발로 인해 증인이 없어서 작정하고 찾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을 것이다.[25]
열차가 힘이 없어서 어정 즈음해서 서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럴 때는 승객들이 내려서 열차를 밀었다.
아카라이브에 올라온 수려선 배선도
현재는 화성역 조금 지나서까지 있던 선로 자리에 도로가 깔려있다. 세권로34번길 및 세권로36번길(수인선 직결선로), 세권로35번길부터 정조로709번길, 수원천로210번길부터 경수대로565번길까지.
6. 역 목록
ㄱ.운전취급란에 ◇표는 열차교환이 가능한 역을 뜻한다.ㄴ.1971년 당시에 여객·화물 수송실적이 전혀 없는 역에는 ─표로 표시한다.
ㄷ.아래의 역 등급은 폐선 직전 당시의 등급이다.
ㄹ.행정구역란의 지명은 1972년 폐선 당시의 행정구역이다.
<rowcolor=#232323> ㎞ | 역명 | 역무취급 | 환승노선 | 등급 | 당시 행정구역 | |||
<rowcolor=#232323> 운전 | 여객 | 화물 | ||||||
0.0 | 수 원 | 水 原 | ○ | ○ | ○ | 경부선, 수인선 | 보통역 | 경기도 수원시 |
3.0 | 화 성 | 華 城 | ○ | ○ | ○ | 보통역 | ||
6.5 | 원 천 | 遠 川 | ─ | ○ | ─ | 무배치간이역 | ||
9.0 | 덕 곡 | 德 谷 | ─ | ─ | ○ | 배치간이역 | 경기도 용인군 (현 용인시) | |
12.5 | 신 갈 | 新 葛 | ○ | ○ | ○ | 보통역 | ||
15.9 | 어 정 | 漁 汀 | ○ | ○ | ─ | 무배치간이역 | ||
21.8 | 삼 가 | 三 街 | ─ | ─ | ─ | 보통역 | ||
24.1 | 용 인 | 龍 仁 | ○ | ○ | ○ | 보통역 | ||
28.4 | 마 평 | 麻 坪 | ─ | ○ | ─ | 을종대매소 | ||
31.9 | 양 지 | 陽 智 | ○ | ○ | ○ | 보통역 | ||
35.4 | 제 일 | 霽 日 | ○ | ○ | ─ | 무배치간이역 | ||
40.0 | 오 천 | 午 川 | ○ | ○ | ○ | 보통역 | 경기도 이천군 (현 이천시) | |
45.7 | 표 교 | 標 橋 | ─ | ○ | ─ | 을종대매소 | ||
49.4 | 유 산 | 酉 山 | ○ | ○ | ─ | 무배치간이역 | ||
53.1 | 이 천 | 利 川 | ○ | ○ | ○ | 무배치간이역 | ||
57.6 | 무 촌 | 茂 村 | ─ | ─ | ─ | 임시승강장 | ||
59.7 | 죽 당 | 竹 堂 | ─ | ─ | ─ | 임시승강장 | ||
64.4 | 매 류 | 梅 柳 | ○ | ○ | ○ | 보통역 | 경기도 여주군 (현 여주시) | |
67.0 | 광대리 | 廣大里 | ─ | ○ | ─ | 을종대매소 | ||
69.7 | 연라리 | 煙羅里 | ─ | ○ | ─ | 무배치간이역 | ||
73.4 | 여 주 | 驪 州 | ○ | ○ | ○ | 보통역 |
[1] 예전엔 사진에서 보이는 간판, 랜드마크, 산, 강 등을 보고 추정했는데 1953년의 한국은 지금이랑 비교도 안 되게 산이고 들이고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지금과 비교하면서 찾기 굉장히 어렵다.[2] Don은 2022년 1월 18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3] 수려선 폐선 후 협궤 디젤동차들은 모두 수인선에서 1995년까지 운행했다.[4] 여주군은 2013년 여주시로 승격되었다.[5] 1929년으로 추정[6] 어정역과 삼가역 사이를 잇는 멱조현 터널[7] 1972년 2월 5일자 조선일보의 르포 기사에 따르면 해방 후 단 한번도 흑자가 난 적이 없으며 71년도에는 연간 2억원의 적자가 났다고 했다.#[8] 조금 시간이 지난 노선도라 수도권 전철 경강선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9] 수도권 전철 경강선과의 대조[10] 경강선 포함 대조표 포함 영상 약 1분 전후 참조[11] 다만 여객 노선이고, 무조건 수원역을 통과하는 수인·분당선과 달리 과거 수인선 - 수려선 직결 운행은 화물열차에 한정되었으며, 그마저도 수원역 외곽 직결용 삼각선으로 운행했다.[12] 여담으로 이 사이에 있는 양지면, 마장면은 현재까지도 철도가 놓여지지 않고 있다.[13] 이 구간 폐선부지가 비포장도로로 남아있던 구간들이 아스팔트로 재포장되어 자전거도로로 점점 바뀌어지고 있는 추세이다.[14] 폐선이나 폐역 부지를 관할한다.[15] 안전 등급에서 최하 등급을 받아 철거되었고, 철거된 자재로 근처에 다시 복구할 예정이다.[16] 현재는 수원역에서 수인·분당선을 타고 이매역에서 경강선 환승을 통해 1시간 35분 정도가 소요된다.[17] 현재는 수도권 전철 최소시간 기준으로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다만 경로는 크게 다른데, 서울역에서 4호선을 타고 충무로역에서 3호선 환승 → 신사역에서 신분당선 환승 → 판교역에서 경강선 환승이다. 만일 환승이 번거롭다고 판단하는 경우 서울 버스 9401 등으로 판교역,낙생육교 하차후 육교 건너 판교역에서 경강선으로 환승할 수도 있다[18] 이 정도면 차라리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더 빨랐을 것이다. 다만 그 당시에도 한강을 따라 운행하는 본격적인 여객선은 존재하지 않았다.[19] 수인선 하면 떠오르는 그 디젤동차가 수려선에도 다녔다.[20] 원래 용인역이 될 예정이였으나 이제는 용인의 중심이 이 곳만이 아니다 보니 김량장역이 되었다.[21] 김량장으로 이전한 이후에도 옛 구성면 지역을 '읍내'(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전 '읍내면' 지역. 현 행정구역상 언남동+마북동 일대)라고 지칭했다.[22] 사실 66-4는 동백투어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제일 유사한 노선은 공항버스 8165번(강남대역-구 삼가역.현 시청용인대역) 또는 용인 버스 33-2번 (강남대역-동백역)이용 후 용인 버스 5(경남여객)번 (동백역-용인역) 구간이다.[23] 기흥구 영덕동 238-30번지~기흥구 신갈동 500-4번지로 추정[24] 에이스동백타워~화운사입구삼거리 남측 추정[25] 당시 항공사진등으로 추측은 할 수 있는데 위치는 지금의 용인 태광CC 부지로 보인다. 이는 덕곡역 항목에서도 설명하고 있다.관련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