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휘트니 휴스턴
, 머라이어 캐리
세계 3대 디바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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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계 3대 디바 셀린 디옹 · 휘트니 휴스턴 · 머라이어 캐리 |
대한민국에는 흔히 '성량의 휘트니 휴스턴, 기교의 머라이어 캐리, 음색의 셀린 디옹'[3]이라는 말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Vocal Trinity'라는 말로 아주 잘 알려져 있다.[4]
전세계 여가수들의 롤모델이자 전설로 현재까지도 저 3명을 뛰어넘은 여가수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위상이 대단하다. 상업성을 기준으로는 마돈나를 제외하고 3대 디바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둔 여자 가수가 없고, 가창력을 기준으로는 3대 디바보다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여자 가수를 찾기 힘들다.[5][6] 커리어상으로는 압도적인 전성기의 휘트니 휴스턴,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가수로 자주 거론되는 머라이어 캐리, 앨범 판매의 여왕인 셀린 디온으로 분류된다.
다만 가창력이라는 정량적으로 세밀하게 파악하기 힘든 이유를 제외하면 이 사람들이 경제가 발전하고 미국 중심의 세계화가 충분히 진행됐으면서도 온라인이 발달하지 않아 실물 음반을 팔아제낄 수 있던 80~9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여가수들이었던 이유는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마돈나가 이들보다 더 상업적으로 성공한 이유도 좋은 시대를 같이 보냈다는 마찬가지의 이유고...[7]
여담으로, 3대 디바 모두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산하에 소속되어 있었다.[8][9]
또 하나의 여담으로 그녀의 각 대표곡들인 I Will Always Love You,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My Heart Will Go On은 가수는 몰라도 노래는 알 정도고 모두 90년대에 발매된 노래이다. 또한 보이스적으로도 흑인, 혼혈, 백인 케이스로 나뉘어져 있다.
2. 목록
2.1. 휘트니 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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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휴스턴 |
1990년대 초중반 《The Bodyguard OST》로 압도적인 전성기를 누렸는데, 《The Bodyguard OST》는 여자 가수 최다 판매 음반이자 세계에서 3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며 "I Will Always Love You"는 여자 가수 최다 판매 싱글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다. 커리어 내내 11개의 빌보드 1위곡, 23개의 빌보드 Top10곡을 만들어냈고 22개의 싱글을 각각 전세계 100만 장 팔아치우는 등 만만찮은 상업적 성과를 기록했다. 평생 6개의 그래미, 22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를 포함 600개 이상의 상을 수상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여성 아티스트이다.
가창력 면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을 제외하고는 평단, 대중 가릴 것 없이 압도적인 여자 가수 1위로 평가받는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여자 가수에 아레사에 이어 2위를 차지하거나 혹은 1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남자 가수까지 포함해도 역사상 가장 훌륭한 가수,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로 세계 5위권을 다투는 편.#1 멜리스마(melisma)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팝에 도입한 인물이다.
영향력도 어마어마한데, 아래에 서술할 머라이어 캐리나 셀린 디옹의 데뷔 및 성공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셀린 디옹과 머라이어 캐리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우상으로 여기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뿐만 아니라 자넷 잭슨, 아니타 베이커, 토니 브랙스턴, 브랜디, 비욘세, 앨리샤 키스 등등 후대 흑인 여성 아티스트들의 대중음악계 진출과 상업적 성취의 길을 닦아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마이클 잭슨과 함께 인종 간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받던 흑백 크로스오버 스타였다.#2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시조이자 흑인 음악의 두 뿌리인 R&B와 가스펠을 당대에 맞게 완벽하게 표현해냈던 가수로 인정받았다. 대중음악에 최초로 '디바'라는 단어를 도입한 인물이며 '디바의 원조', '모든 디바를 끝내는 디바', '디바 중의 디바'로 여겨지는 가수로서, 1990년대 '디바 전쟁'을 이끌기도 했다.#3
오늘날 흑인 사회에서 마이클 잭슨과 함께 전설로 추앙받고 있으며 2014년 R&B 역사에 끼친 영향력을 인정받아 R&B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20년에는 모든 가수의 최고 영예라고 할 수 있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는 입성하지 않았는데, 사실 《The Bodyguard OST》의 대성공 이후인 1995년 협회 측으로부터 입성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휘트니의 올케 Pat Houston에 따르면 휘트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서 거절했다고 한다.#4 가수 생활 이외에도 배우와 영화 프로듀서, 모델 일을 하기도 했다.
2012년 2월 12일,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3대 디바 중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마이클 잭슨이 사망했을 때처럼 전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해 보도했으며 특히 미국 흑인 사회의 충격은 대단했다. 머라이어 캐리[10]와 셀린 디옹[11]은 트위터를 통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2.2. 머라이어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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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캐리 |
1990년대 전반에 걸쳐 《Music Box》, 《Merry Christmas》, 《Daydream》, 《#1's》 등의 음반들이 연달아 천문학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최전성기를 누렸으며, 커리어를 통틀어 미국에서만 75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하여 역대 여가수 판매량 1위를 기록 중이다. 또한 무려 19개의 빌보드 1위곡, 28개의 빌보드 Top10곡을 만들어냈으며 총 93주간 빌보드 1위를 기록하였는데, 1위 곡 개수로는 비틀즈에 이은 2위 기록이고 총합 1위 주간으로는 압도적 1위이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1년 연속으로 빌보드 핫 100 1위곡을 배출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빌보드에 의해 1990년대 'Artist of the Decade'로 선정되었다.[12] 세계적인 가수이지만 그중에서도 일본에서의 인기는 가히 비교 대상 조차 없을 정도였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해외 가수 앨범 1위, 3위, 4위, 7위가 모두 머라이어의 앨범이고, 비틀즈를 꺾고 일본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해외가수의 자리에 올랐으며[13], 전성기 시절 도쿄 돔 최단 시간 매진 기록을 세우는 등, 여러모로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해외 가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2001년 《Glitter》 이후로 한동안 침체기를 겪기도 했으나 2005년 《The Emancipation of Mimi》로 화려하게 부활하여 다시 한 번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으며[14]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여가수 싱글[15]이자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인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통해 커리어를 갱신하는 등, 현재진행형 리빙레전드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MTV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소리의 소유자인 머라이어의 보컬은 극한까지 밀어붙인 기교가 특히 돋보이는데, 이는 굉장히 간드러지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게다가 5옥타브의 음역대로 탈인간적인 음역대를 가지고 있으며 멜리스마, 벨팅 창법, 휘슬 레지스터 등 무수한 창법을 음역대를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이에 아레사 프랭클린과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역대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로 많이 꼽힌다.
현대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력 또한 막대한데, 1995년 작 "Fantasy"를 시작으로 힙합 아티스트들을 피처링으로 전격 기용함으로써 힙합이라는 장르를 주류로 부상시키는데 일조하였고,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팝과 힙합의 결합을 업계에 표준화 시켰다. 현재까지도 대중음악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팝 악곡에 래퍼 피처링’을 기용한 모든 음악의 뿌리는 머라이어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극한의 멜리스마(음절 쪼개기), 벨팅 창법 등 머라이어가 구사한 다양한 창법은 후대 가수들의 보컬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에 머라이어를 보고 가수의 꿈을 키운 가수들이 현재 대중음악계에 존재한다. 이를 두고 '머라이어 키즈'라고 하는데, 테일러 스위프트, 리아나, 아델 등이 이에 속한다.
미국 대중음악계에서의 성공과 영향력을 인정받아 2015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였으며, 19개의 빌보드 1위 곡 중 18개를 본인이 작사하면서 작사가로서의 천재성과 후대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받아 작사가 명예의 전당에 2020년부로 헌액되었다.
2.3. 셀린 디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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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디옹 |
휘트니 휴스턴이 배우 활동에 집중하고 머라이어 캐리도 초히트작을 다 내놓았던 시점인 1996년 4집 《Falling into You》부터 1998년 'My Heart Will Go On"까지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발매한 연달은 4개의 음반을[18] 합한 판매고가 1억 장에 육박하는 등, 만 4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초히트 음반을 연달아 배출시키면서 당시 어떤 가수들 보다도 압도적인 전성기를 누렸다. 한편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휘트니와 머라이어가 침체기였던 2002년에 발매한 《A New Day Has Come》도 성공시키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3대 디바 중 막강한 인기를 얻곤 했다.
커리어 내내 빌보드 1위곡 4개와 Top10곡 9개를 배출하였는데 앞선 두 디바들에 비해 비교적 매우 적지만, 음반/싱글 판매량을 보면 앞선 두 디바들보다 우위에 있기도 하다.[19][20]셀린 디옹은 전 세계 10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자 여성 아티스트의 싱글로써는 3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My Heart Will Go On"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유럽 한정으로 세 디바 중 가장 먼저 데뷔하였고 프랑스어에 능통[21]해서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데, 3대 디바 중 유럽 지역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프랑스어 음반 《D'eux》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셀린의 보컬은 특유의 음색과 함께 절제되고 안정적인 점이 두드러진다. 앞선 두 디바들과의 두드러진 차이점이기도 한데, 셀린은 두 디바들과는 다르게 극한의 기교라거나 압도적인 성량을 앞세우면서 '화려함'을 주 무기로 삼지 않고 노래를 불렀으며, 바로 이 점이 셀린의 목소리를 오래 보존케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22]
마약과 흡연으로 원래 목소리를 잃어버린 휘트니나, 지나친 기교와 성대 결절로 컨디션에 따른 보컬 기복이 심해진 머라이어와는 달리, 셀린은 본인의 가창력을 거의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23]
대중들에게 항상 최고의 여성 가수로 꼽히는 인물이며, 아델과 레오나 루이스, 켈리 클락슨, 리아나 등 현재 대중음악계의 탑급 아티스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사생활에 관한 여러 구설수가 쏟아졌던 앞선 두 디바에 비하여 어떤 구설수도 나오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하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가수로 인정받아 1999년 캐나다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였고 2013년 캐나다 최고 훈장을 수상했다. 또한 미국 대중음악계에서의 성공과 영향력을 인정받아 2004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였다.
3. 여담
이들 3명이 음악계에 끼친 영향력이 워낙 엄청나다보니, 영미권 뿐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 등 동양권에서도 이들의 영향을 받은 가수들이 많다. 3대 디바의 곡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번쯤은 꼭 선곡되는 곡이며, 실력있는 많은 여자 보컬들이 이들의 노래를 커버하기도 했다. 특히 테크닉이 좋은 가수들에게 '제2의 휘트니 휴스턴' '제2의 머라이어 캐리' 같은 수식어가 붙는 걸 보면 3대 디바가 테크닉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여성 보컬의 스탠다드 이나 레전드 급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1990년대에는 이들 3명이 같은 시기에 음반을 발매해 경쟁을 벌였고, 마지막으로 3대 디바가 같은 해에 음반을 낸 건 2002년이었다. 당시 머라이어와 휘트니는 침체기에 접어들어 있어 음반 성적이 이전만큼 좋지 않았지만, 셀린 디옹은 <A New Day Has Come> 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전성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이 후에는 3대 디바 중 2명끼리만 붙곤 했는데, 2003년에는 휘트니 휴스턴과 셀린 디옹이 같은 시기에 음반을 냈고 셀린 디옹이 휘트니보다 더 높은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2000년대 중반부터 휘트니는 사실상 활동을 완전히 쉬게 되지만, 머라이어 캐리는 침체기를 딛고 부활에 성공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2007년 앨범을 끝으로 셀린 디옹이 공백기를 가지게 되고, 2년 뒤인 2009년 휘트니가 6년만에 신보를 발표할 때 머라이어도 새 앨범을 발매해 두 사람이 생전 마지막으로 경쟁하기도 했다.
이 세명 모두 나이대에 비해 엄청난 장신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들의 국적이 서구쪽인건 감안해도 모두 170cm가 넘는다.[24] 저 당시 20대 여성 평균 키는 더 작았을테니.
4. 관련 문서
[1] 3대 디바라는 이름값 답게 가창력, 상업성, 유명도, 영향력 이 4가지 부분에서 세 사람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90년대에는 토니 브랙스턴이나 샤니아 트웨인까지 포함해서 '4대 디바'와 같이 불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오롯이 세 가수만이 '3대 디바'로 꼽힌다.[2] 다만 휘트니 휴스턴은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인기를 먼저 누렸다. 1993년 영화 <보디가드> 이후 가수보다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쌓는 데 더 집중하여, 1990년대에는 두 디바보다는 가수로서 활동량이 적었다. 물론 《The Bodyguard OST》와 I Will Always Love You가 워낙 레전드급으로 히트했다 보니, 임팩트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exhale도 꽤나 크게 히트했고, 정규 4집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3] 이들의 라이브 공연을 보면 왜 이러한 별명이 붙여졌는지 알 수 있다.[4] 간혹 세계 3대 디바라는 호칭 자체가 한국에서만 만들고 유효되는 호칭인줄 알지만 이미 그래미에서 저 3명을 두고 앞서 표기한 'Vocal Trinity'라 했기에 틀린 호칭은 아니다.[5]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아레사 프랭클린, 라라 파비앙, 패티 라벨, 리사 피셔 등 훌륭한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이 몇몇 있고, 샤니스 윌슨처럼 음역대가 동급인 가수도 있지만, 이들 중 누구도 3대 디바만큼의 성공을 거둔 적은 없다.[6] 후대 가수들 중 3대 디바와 그나마 견줄만 할 정도의 성공를 거둔 가수들은 비욘세, 리아나, 테일러 스위프트, 아델 정도인데, 비욘세를 제외하면 보컬 역량으로는 3대 디바와 비견되지도 못할뿐더러, 본인들도 3대 디바들과 비교되는 걸 실례라고 여길만큼 그 위용이 엄청나다.[7] 후배들뿐만이 아니라 선배들까지도 제끼고 마돈나, 더 하자면 자넷 잭슨 같은 사람들까지 포함해 이들이 최고의 상업적인 성과를 거둔 이유는 시대적인 환경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이들의 시대의 지배자들이었던 것은 맞고.[8] 머라이어 캐리는 아예 1990년대에 소니 뮤직(전 컬럼비아 레코드)의 사장이었던 토미 머톨라와 결혼까지 했었다. 2000년 이후엔 여러 소속사로 이적했다가, 2015년에 에픽 레코드로 이적하면서 다시 친정으로 돌아갔다.[9] 셀린 디옹은 아예 1990년 미국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계속 활동중이다. 휘트니 휴스턴(아리스타 레코드)은 원래 베르텔스만 뮤직 그룹(BMG) 소속이었다가, 2004년에 소니 뮤직이 인수합병하면서 소속이 바뀌었다.[10] 세간에 돌았던 사이가 항상 안 좋았다는 말과 달리, 가장 먼저 애도를 표한 사람은 머라이어였다.[11] 셀린 또한 휘트니는 자신의 우상이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고 휘트니 휴스턴 사망 후 그래미 시상식에서 짧게 "Saving All My Love for You"을 불렀으며 후에는 "Greatest Love of All"을 열창하며 휘트니 휴스턴을 추모했다.[12] =1990년대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13] 총 1800만 장[14] 그 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리드 싱글 We Belong Together는 그 해 연간 1위는 물론, 2000년대를 통틀어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노래가 되었다.[15] 2024년 기준 최소 2000~2500만 장 / 현재까지도 매년 수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16] 미국 출신으로 오해 받는다.[17] 1집 《Unison》, 2집 《Celine Dion》[18] 4집《Falling into You》, 5집 《Let's Talk about Love》, 캐럴 음반 《These Are Special Times》, 컴필레이션 《All the Way... A Decade of Song》. 4집이 2,800만, 5집이 3,000만, 캐럴 음반 1,150만, 컴필레이션 2,200만[19] 빌보드가 전체 판매량과는 관련이 없다는 걸 퀸과 더불어 보여준 셈.[20] 셀린 디옹 입장에선 억울할만 한게, 음반 판매량이 너무 잘 나오다 보니 막상 싱글 판매가 잘 안되었다...거기다 본인도 그쪽엔 관심없다 보니, 차트 커리어는 생각보다 약하다.[21] 프랑스어 말고도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등등을 마스터 해 음반을 내거나 해당 국가에서 직접 노래하기도 한다.[22] 사실 셀린은 미국 데뷔 시작인 1990년 Unison부터 후두염이 있었다. 이 때문에 피로했던 스케줄을 시작으로 목을 함부로 했다가는 금방 목소리를 잃을 것 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3주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두 디바보다 혹독한 목소리 관리를 하는것도 저 이유 때문이다.[23] 목관리 하는 방법을 보면 가창력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방법이 있다. 무대에 나가기 전에 말을 하지 않는다는지 산소호흡기를 착용하면서 무대를 준비하면서 운동도 되게 열심히 한다. 무리를 너무 해서 많이 마른 체격이긴 하지만 Courage World Tour의 그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24] 구글 프로필 기준으로 머라이어 캐리: 175cm, 셀린 디옹: 171cm, 휘트니 휴스턴: 173cm[25]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3대 디바의 저작권 및 유통권은 소니 뮤직이 전부 가지고 있다. 머라이어 캐리는 중간에 다른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긴 했지만, 2015년에 에픽 레코드(소니 뮤직)에서 발매한 베스트 앨범 "#1's to infinity"에 노래들이 잘만 들어간거 보면 딱히 문제는 없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