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관
1969년 6월 10일 관광호라는 명칭으로 운행을 시작하였으며,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4년 8월 15일 지금의 명칭인 새마을호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새마을호 전용 객차는 2018년 4월 30일에 익산발 용산행 장항선 #1160열차의 운행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1] 2014년 새마을호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ITX-새마을이 등장하여, 장항선을 제외한 모든 노선에서 새마을호를 ITX새마을호로 대체하였다.2. 상세
2.1. 관광호 시절
자세한 내용은 관광호 문서 참고하십시오.2.2. 새마을호로 명칭 변경
1974년 8월 15일,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개통과, 이에 따른 열차운행시각표 개정으로 열차등급 명칭이 '새마을'로 변경되었다. 명칭은 새마을운동의 그 새마을에서 따왔다. 이와 동시에 당시 서울역 남부역사 대합실을 새마을호 전용대합실로 배정받았다. 1975년 11월 15일에는 호남선 서울~광주 구간에, 1976년 7월 1일에는 호남선 서울~목포 구간에, 1979년 4월 1일에는 동해남부선 서울~경주 구간에도 운행을 시작하였다.[2] 1980년 4월 10일에는 DEC 디젤동차(우등형 디젤 전기동차)를 전라선 서울~전주 구간에 투입하여 운행을 개시하였으며[3], 이후 남원,순천을 거쳐 1985년 8월 12일에는 운행구간이 서울~여수로 연장되었다. 그리고 1984년 1월 1일에는 여객열차 운행등급이 개정되어 우리가 흔히 아는 새마을호 - 무궁화호 - 통일호 - 비둘기호의 4회의 등급 체계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1981년 10월 전산발매를 개시하였다. 당시 전산발매가 뭐가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한글이 풀어쓰기가 되지 않고 완벽하고 미려하게 지원되는 최첨단 하이테크놀로지(!) 컴퓨터로 발매하였다. 컴퓨터 값도 굉장히 비싼 시절이었다. 한글 지원 컴퓨터로 승차권을 뽑았다는 그 자체로 이미 새마을호는 최첨단이었다.[4] 이래저래 시대를 앞서가도 과하게(?) 앞서가던 열차. 그때 당시엔 새마을호만 발매했다가 3년 후인 1983년이 되어서야 무궁화, 통일호의 전산발매도 개시하였다.
부가설명을 하자면, 당시 컴퓨터 1대 값은 100만 원대 중반이었지만 그나마도 한글 지원이 안 되었다. 한글 지원 자체가 대단한 기술적 진보였음을 감안해야 하며 1981년 당시에 한글이 나오는 컴퓨터는 엘리트 of 엘리트인 전자공학과 내지 컴퓨터공학과의 대학원생들만 조심조심 만지던 귀한 물건이었다. 9급 공무원 초봉 10만 원대, 짜장면 한 그릇 500원 하던 시절이다. 서울-부산 새마을호 운임 14,300원(2022년 기준 20만원), 특급(통일호급) 5,600원(2022년 기준 8만원). 2019년 현재 9급 공무원 초봉 159만 원이고 KTX 서울-부산간이 약 6만 원[5], 동일 구간의 ITX-새마을 요금이 42,600원, 무궁화호로는 28,600원, 신형 데스크톱 컴퓨터의 가격이 본체만 싸게 산다면 20만원대에도 구할 수 있고, 고사양 게임 플레이 등의 특수한 용도로 작정하고 맞추지 않는 다음에는 거의 300만원을 넘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당시의 새마을호는 명실상부한 금수저의 전유물이었다. 그만큼 승차권 발매 장비까지도 최고급으로 무장했다는 의미였다.
등장 당시에는 서울 - 부산간 운행시간이 최고속도 110km/h로 4시간 50분이었다. 그러나 침목의 콘크리트화, 레일의 중량화 및 장대화 등의 지속적인 선로 개량 공사를 거쳐 몇 번의 운행시간 단축 끝에 1985년 11월 16일, 드디어 동일 구간을 최고속도 140km/h로 4시간 10분만에 주파하는 데 성공하였다. 1985년 11월 16일 당시 새마을호로 운행되는 모든 차량이 일반(직각)형 새마을호였으며 직각형 새마을호의 경우 대차가 NT-21,MAN, 세브론이었기 때문에 150km/h로 주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당시 새마을호가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는 사실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라는 노래에서도 알 수가 있는데, 이 노래의 맨 마지막에 '새마을호 날아가는 소리 자가용차 클락션 소리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당대의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소재 중 하나로 새마을호를 넣은 것이다.
2.3. 유선형 객차와 PP동차의 도입
대한민국이 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고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으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자, 철도청은 열차의 고급화 전략을 시행한다. 이에 1986년 7월 유선형 객차가 도입되고 1년 후인 1987년에 PP 동차가 도입되어 새마을호의 전성기이자 철도계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20세기 후반 (고속철 제외) 전세계 최고라는 열차로 평가받는다. 이 때 같이 도입된 기관차가 바로 지금은 운행을 중단한 7000호대 디젤기관차이다. 7000호대 기관차는 당시 새마을호 전용 견인기로 운행하였다. 그러나 소음 문제로 인해[6] PP 동차의 도입 확대와 동시에 퇴역할 때까지 주로 무궁화호나 통일호 등의 하위 등급 열차를 견인하게 된다. 또한 1988 서울 올림픽을 대비하여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동해남부선 경주역 방면으로도 동차형 새마을호를 투입하는 패기를 보여주였으며, 1988 서울 올림픽기간에는 PP 동차형 8량 1개 편성을 차출하여 특별 도색을 한 후 '88세계평화열차'로 운행하기도 하였다.PP 동차의 엔진은 무려 잠수함용 독일제 MTU社 엔진이다. 당시 디젤 엔진 기술 치고는 매우 조용했다.[7]
식당차도 이때가 전성기였다. 햄버그 스테이크 자체가 귀하던 시절 한우 스테이크가 아주 일품이었다. 가격도 당연히 안드로메다 급이었다. 자판기 커피 수준의 커피 한 잔이 1천 원이었는데, 새우깡 한 봉지가 100원(현재 1300원) 이었음을 감안하면 지금 물가로 13000원 정도 하는 사치스런 가격이였다.
2.4. 장대형 새마을호와 후기형 PP동차의 도입
한동안 직각형, 유선형, PP 동차가 공존하고 있었는데 1991년 갑자기 또다른 종류의 새마을호가 등장을 했으니 바로 차량 완성도면에서 당대 최고의 수작인 장대형 새마을호였다. 어느정도였냐 하면은 이전의 새마을호 차량들을 모조리 똥차로 만들어버렸을 정도였다.[8][9] 그리고 1992년부터 PP 동차가 다시 도입되었으나 객실은 장대형 새마을호의 스펙을 그대로 따라 역시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했으며 동력차 형상도 더욱 멋있게 변하였다. 장대형 새마을호와 후기형 PP 동차의 도입으로 최첨단 최고급열차로써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히게 되었으며 1990년대 초반이야 말로 새마을호의 극성기라고 할 수 있다.2.5. 운행 횟수와 노선, 정차역의 확대
경제 성장에 따라 고급 열차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했고, 이에 발맞춰 새마을호의 운행 횟수와 노선, 정차역도 꾸준히 늘어났다.1994년 개정부터 1999년 개정까지의 열차번호는 다음과 같이 할당되었다.
#1~#50: 경부선
#51~#60: 경전/동해남부선
#61~70: 장항선
#71~80: 호남선
#81~90: 전라선
#91~100: 중앙/태백/영동선
1999년 개정 이후 2004년 경부고속선 1단계 개통 이전까지는 #1~#60은 경부선, #61~#100은 경전/동해남부선, #101~#120은 장항선, #121~#160은 호남선, #161~#180은 전라선, #181~#200은 중앙/태백/영동선으로 열번이 할당되었다. 물론 실제로는 중간에 비는 열번이 있었고 새마을호의 수요가 폭발적이었던 2003년 기준으로 경부선은 21왕복, 경전선 2왕복, 동해남부선 4왕복(포항 2왕복, 울산 2왕복), 장항선 3왕복, 호남선 8왕복(목포 3왕복, 광주 5왕복), 전라선 3왕복, 중앙선 2왕복, 태백ㆍ영동선 1왕복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주말열차로 경부선은 2왕복, 태백ㆍ영동선은 1왕복, 전라선 1왕복, 서부경전선 1왕복이 추가로 운행되었다.
원래 새마을호는 주요 대도시의 기차역에만 정차하는 말 그대로의 특급이었다. 물론 이것도 1990년대 중반까지 경부선 서울~부산 구간만 해당되던 이야기다. 후일 울산행으로 운행구간 연장하는 동해남부선 경주행의 경우 김천역, 구미역, 영천역 등에도 추가로 정차하였고,[10] 호남, 전라선의 경우도 서울~서대전 구간은 대부분 무정차였으나, 서대전 이남 구간부터는 새마을호 치고는 적지 않은 곳에 정차하면서 운행하였다.[11] 아래 항목에 서술하겠지만, KTX 개통 이후에는 코레일의 의도와 KTX가 정차하지 않는 시에서 빗발치는 정차 요구가 맞물려 경부, 호남선에서는 예전보다 더 많은 역에 정차하게 되었다. 기존에 정차하지 않던 평택, 청도, 강경[12], 신태인, 일로역 등. 화명역도 한때 정차하다 통과하는 것이 그 예.
2.5.1. 운행 노선의 확대
1988년 11월 1일에는 중앙선 청량리 - 안동간 열차가 운행을 개시하였는데[13], 대신 죄다 직각형인지라 차별하는거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메인인 경부선조차도 직각이 아직도 다니고 있었다.[14] 1992년 11월 21일 1왕복에서 2왕복으로 증회되었다.1989년 10월 22일에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울산의 공단 지역 고급 수요를 타겟으로 하여 동해남부선 서울 - 경주간 열차의 운행구간을 울산역까지 연장하였다. 1990년 3월 15일에는 청량리역에서 태백선을 거쳐 동해역까지 운행을 개시하였다.[15]
1991년 11월 25일에는 장항선 서울 - 장항 구간에서 운행을 개시하였다.[16] 1992년 12월 5일 1왕복에서 2왕복으로 증회되었다.
1992년 10월 1일에 드디어 경전선에 투입. 서울 - 마산 구간 운행이 시작되었다.[17] 1993년 3월 1일 시간표 개정 때는 경전선 서울 - 진주[18] 구간에서도 운행을 개시하였다. 같은 해 12월 5일에는 동해남부선 서울 - 포항구간에도 운행을 개시했으며, 1993년 5월 1일에는 1왕복이 증편되었다.[19] 그리고 일부 열차가 김영삼 대통령 지시에 따라서 조치원역에 정차하게 되었다.#
1994년 3월 31일에는 태백선 경유 청량리 - 동해간 새마을호의 운행구간을 청량리 - 강릉으로 연장하였으며, 7월 15일에는 동해남부선 서울 - 해운대 구간에 운행을 개시하였다.[20]
한국고속철도(KTX) 개통 이전에 새마을호의 기점역은 서울역이나 청량리역이었으며, 이들 중 울산, 진주, 포항, 안동행이 나름대로 특이하고 또 기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운행 계통이었다.
2.5.2. 정차역의 확대
경부선은 1993년까지 서울 - 부산 구간을 운행하는 대부분 열차는 대전역, 동대구역에만 정차하였다. [21][22] 그러나 1993년 봄부터 통일호가 줄어들고[23] 새마을호, 무궁화호 편수가 늘어나면서 영등포[필], 수원[필], 천안[필], 조치원, 구포[필]에 추가 정차하기 시작했고, 김천[필], 구미[필], 밀양에 정차하는 열차도 늘어났다. 영등포, 수원, 대구, 구포역은 이때까지는 야간열차만 왕복 1회씩만 정차하였다. 천안역은 장항선 열차만 정차하였으며, 조치원 정차는 이때가 처음이다. 경부선 열차외에 김천, 구미역은 주로 동해남부선 열차가, 밀양역은 경전선 열차가 정차하였다.1994년 3월 31일 열차시각표 개정으로 이들 역에 정차하는 새마을호는 더욱더 늘어났으며 속칭 '서대동부' 새마을호는 3왕복으로 줄었다. 당시 #3, #4, #13, #14, #29, #30. 서울역과 부산역을 각각 8시, 12시, 16시 정각에 출발했다.[30] 그 이후로도 정차역은 꾸준히 늘어 1996년 6월 1일에는 영동역, 1998년 9월 1일에는 신탄진역 정차 열차까지 등장하였다.[31] 마찬가지로 12월 1일에는 동대구역까지 운행했던 새마을호를 부산역까지 연장운행하게되었다.
1999년 6월 1일 열차시각표 개정으로 대전역과 동대구역만 정차하는 서울 - 부산간 새마을호는 단 2왕복으로 줄어들었다. 당시 #1, #2, #3, #4. 서울역과 부산역을 각각 8시, 16시 정각에 출발하던 열차이다[32]. 이들은 KTX 개통 직전까지 다이어가 사실상 수정된 적이 없었다. 나머지 열차들은 정차역이 더욱 늘어 왜관역과 경산역에도 정차하였다.
주로 영등포역, 수원역, 천안역, 김천역, 구미역, 구포역에 새마을호 다수가 정차했으며[33], 조치원역, 영동역, 밀양역도 꽤나 많이 섰었다.[34] 지금은 전 열차가 정차하는 대구역은 KTX 개통 이전에는 방향별로 단 1대만 정차했다. KTX 개통 이전 #37, #38. 1999년 6월 1일 시각표 개정 이전 #43, #44. 서울역과 부산역을 각각 23시 정각에 출발, 야간에 운행했다. 당시 정차역은 서울 - 영등포 - 수원 - 천안 - 대전 - 대구 - 동대구 - 밀양 - 구포 - 부산. 서울 - 부산간 정기 새마을호 중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유일한 열차였다. 그러나 의외로 대전에서 바로 대구역으로 가는 급행 기능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 당시까진 나름대로 정차 패턴이 있었다. 서울~대전/서대전 구간에선 2개역 이상 정차하지 않았으며[35][36] 대전 - 동대구 구간도 일부열차[37][38]를 제외하곤 영동, 김천, 구미, 왜관, 대구[39] 중 한 군데만 선택정차했다. 부산행 기준 동대구 - 부산 구간에선 밀양역 또는 구포역에 선택정차 하거나 #1, #3열차처럼 아예 무정차로 운행했다.[40]
2.6. 한국고속철도(KTX) 경부고속선 1단계 개통 이후
2004년 4월 1일, 한국고속철도(KTX) 개통 때 열차시각표 개정에서 철도청은 특급이었던 새마을호를 무궁화호급으로 격하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일단 KTX가 1~3자리 열번을 쓰도록 열번을 갈아엎으면서 새마을호는 4자릿수 열번(#10XX~11XX)을 쓰게 되었으며 KTX와 겹치던 경부선/호남선 열차는 대량감편이 일어났다.경부/경전/동해남부선 새마을호 개편은 개악에 가까웠는데, 당시 서울 - 부산간 새마을호는 해운대행을 합쳐도 21왕복이 다니던게 9왕복으로 감축되고 옥천역, 삼랑진역까지도 정차하였으며[41], 그와 동시에 경전선에서 1왕복 다니던 서울~진주간 새마을호 폐지[42], 동해남부선 동대구~울산, 동대구~포항간[43][44] 단거리 새마을호 신설 등의 변화가 있었다. 동시에 서울 - 울산/포항 새마을호는 4왕복에서 2왕복으로 감축되었다. 사실상 새마을호를 이용해 동대구역에서 환승하라는 코레일의 뜻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진주간 새마을호는 11일 후인 2004년 4월 12일 부활, 그로부터 3년 1개월 만인 2007년 5월 31일을 끝으로 다시 폐지되었다.[45]
경부/경전/동해남부선쪽의 임팩트가 커서 묻힌 것이지만 이쪽만 개악된 것이 아니었는데 호남선쪽은 말 그대로 개악되었다. 호남선 대전~광주간 새마을호 신설[46]과 서울/용산 - 광주 새마을호 감편, 서울/용산 - 목포 새마을호 감편도 동시에 일어났다. 목포행은 그나마 1회만 줄었지만 광주행은 5회나 다니던게 반도 안되는 수준으로 줄었으니 개악에 가까웠다. 그나마 전라선과 중앙/태백선 새마을호는 KTX가 없어서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경부/호남선은 개편자체를 피할 수 없던 것이 애초에 장거리 고속철도인 KTX가 등장하면서 적지 않은 선로용량을 잡아먹기도 했고 포지션이 중복되던 일반선 특급인 새마을호를 줄여야 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렇다보니 경부선은 반토막이 났고 동해남부선 같은 경우에는 동대구역에서 환승을 유도하도록 개편된 것이다. 호남선쪽도 크게 다를게 없어서 익산역에서 환승을 유도하도록 바뀌었다.
하지만 이용객들이 항의가 빗발치듯 쏟아지자, 2004년 7월 15일에는 새마을호의 정차역을 다시 어느 정도 줄였으며, 동대구~울산, 동대구~포항, 대전~광주간 새마을호가 운영구간이 짧고 수요가 저조하다는 이유로 폐지 크리. 이 때부터 약 2년 동안 서울~부산간 새마을은 #1001~1018, 일 9왕복 체제였다.
그 이후로는 열차시각표 개정 때마다 조금씩 정차역 수와 운행시간을 늘려갔다. 2004년 12월 15일부터는 서울~부산간 새마을호 일부가 화명역에 정차하기 시작했다.
2006년 11월 1일부터는 서울~부산간 새마을호의 편수가 일 6왕복으로 줄고[47], 서울~해운대간 새마을호와의 복합열차 운행이 폐지되었다. 그리고 경의선 서울~임진강(후에 도라산으로 연장)[48], 진해선 대구~진해간 새마을호[49]가 신설되었으며, 청량리~안동, 청량리~강릉간 새마을호가 운행을 중지하였다.
2007년 6월 1일부터는 경부선 전 새마을호가 대구역에 필수 정차하게 되고, 서울~부산간 새마을호의 편수도 일 4왕복까지 확 줄었다. 그리고 경전선 서울~진주간 새마을호가 운행 중지와 함께 운행구간이 서울~마산으로 단축되었다.[50]동시에 서울~울산간 새마을호가 동해남부선을 따라 부전까지 연장되었으며 동시에 일 6왕복으로 증편되었다. 또, 진해선 새마을도 일 4왕복으로 증편되었고 경의선 새마을호는 1일 4왕복 및 매일 운행으로 바뀌었다[51]. 이 시기에 무궁화호는 8200호대 전기기관차 견인운전이 이뤄지고, 동시에 새마을호가 노후화되어 제 성능을 못 내게 되면서[52] 무궁화가 여러 역 서고도 새마을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져 이때부터 새마을호의 운행시간은 무궁화호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까지 떨어진다. 게다가 이 시기부터 PP동차의 잔고장으로 인해 20분씩 지연을 먹고 출발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2007년 10월에는 중앙선 구간에서만 1999년식 새마을호 차량을 격하시켜서 운행하는 형태로 무궁화호 특실이 부활했다. 이는 고속버스 상대 중앙선 열차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루어지는 시설 개선의 일환이다. 왜 벌써부터 격하시켰냐면 차량의 내구연한 때문이다. 전체 새마을호 차량 중 1999년식은 극소수이며, 이것들을 모두 무궁화 특실로 운용하면 향후 새마을호 등급이 폐지되어도 계속 운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후 2008년 1월 1일에 서울~부산간 새마을호 1왕복을 살려서 일 5왕복 체제로 만들긴 했지만 이미 무궁화호와의 동일 구간 소요시간 차이는 고작 몇십 분 정도 밖에 나지 않는 상황으로까지 이르른 상황. 게다가 같은 날에는 익산 - 서천이라는 말도 안되는 계통이 생겨버렸다. 이미 실질적 폐역인 오산리역을 뺀 전역정차 계통인데, 사실 이건 장항선이 군산선의 대야 - 익산 구간을 합병하고 통근열차가 없어져버리자 궁여지책으로 굴리던 열차였다.[53]
2009년 7월 1일에는 수도권 전철 경의선의 개통으로 경의선 서울~도라산 구간의 운행을 종료하였다.
2.7. '비츠로' 로의 교체설과 KTX 2단계 개통 이후
장기적으로 2010년 이후 노후화된 새마을호를 비츠로로 불렸던 신형 전기 동차로 대체할 예정이었는데 경부고속선이 전 구간 개통한 2010년 11월 1일에 새마을호가 대거 감편되었다.서울~부산 구간이 겨우 일 2왕복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 였으나, 2010년 12월 14일 부로 다시 서울~부산간 일 5왕복으로 복구되었다. (이 중 밤차가 일 2왕복이기는 하지만...)[54]예전에 새마을호가 정차했던 영동, 왜관, 경산, 청도, 화명역의 정차 편수가 급감했고, 이 중 왜관역과 화명역은 다시 새마을호 무정차 통과역으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다만 왜관역은 ITX-새마을이 다시 정차하기 시작했으나, 그 횟수는...
경전선의 경우, 서울~마산간 새마을호는 2010년 12월의 KTX 개통시 일 1왕복만 남기고 나머지는 서울~동대구로 단축되었으나[55], 2012년 마산~진주구간 복선전철화 사업 완료로 KTX의 연장개통과 동시에 운행구간이 서울~진주로 연장되었다.
동해남부선의 경우 서울~포항간 새마을호는 일단 생존이나, 서울~태화강(구 울산)~해운대~부전간 새마을호의 경우는 동대구역 착발로 단축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서울 - 동대구가 2왕복에 불과하니 동대구 - 부전으로 잘려버린 셈. 서울~밀양~구포~부전~해운대간 새마을호는 운행이 중지되고 무궁화호로 격하되었다.[56]
다만 전라선은 4왕복으로 1왕복이 늘어버렸고 호남선은 변화가 없다시피하다.
그러나 2011년부터 경부선 상에 슬금슬금 새마을호 임시열차가 늘어나서 서울~부산 기준으로 정규열차 일 5왕복 외에 임시열차로만 2편이 추가로 운행 중이다.
2012년 11월 1일에는 동해남부선 서울~해운대간 새마을호와 진해선 새마을호가 운행을 종료하였다.[57]
하지만 위에서도 나와 있듯이 무궁화호가 전기 기관차의 견인으로 워낙 빨라짐에 따라, PP동차형 새마을호가 역을 적게 서면서도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PP동차의 노후화와 동차형, 객차형 모두 내구연한 만료에 따라 2010년 하반기를 시작으로 시간표를 손댈 때마다 열차가 줄어드는 상황.
2016년 확인한 바로 용산-목포 간의 새마을호 운행 시간은 307분으로 294~311분의 소요되는 무궁화호보다도 느리다. ITX-새마을은 그보다 조금 빠른 271~283분 소요되므로, 무궁화호랑 차이가 없어졌다. 따라서 정차역을 조정하여 새마을호의 소요시간을 감소할 필요가 있다.
2.7.1. 등급 강등
결국 열차의 등급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새마을호는 이전까지 특급열차로 분류되었지만, 준고속 전동열차인 ITX-청춘이 등장하면서 자리를 뺏기고 무궁화호와 같은 급행 등급으로 격하되고 말았다.한때는 특급이었던 새마을호가 급행으로 강등당하고 무인역인 임피역에 정차하게 될 줄은, 서천~익산같이 무궁화호도 안 가는 단거리를 새마을호가 갈 줄은 꿈에도 몰랐던 시절은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지나가고 말았다... 물론 같은 급행 등급이라 해서 다 같은 건 아니다. 그렇긴 해도 무궁화호나 누리로에 비해선 엄연한 상위 열차이다.
2.8. 새마을호의 퇴역
2013년 1월 5일에 동차형 새마을호가 상행 #1042(포항→서울), 하행 #1005(서울→부산)을 마지막으로 전량 퇴역했다. 국토교통부에서는 2015년쯤에 객차형 새마을호 마저 차량 내구연한이 만료되어 자연스럽게 새마을호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으나, 2014년 3월에 철도차량의 내구연한 법령이 철도안전법에서 제외, 폐지되었기 때문에 객차형의 경우 2018년까지 계속 운행한다고 한다.2015년 4월 2일, 경부선상에서 최후로 비전철 객차형 새마을호가 투입되는 서울~포항 구간 운행이 종료되었다. 이로써 2018년 현재 정규편성 새마을호가 달리는 곳은 장항선만이 유일하다. 비슷한 케이스로는 퇴역 직전에 정선선 구간에서만 운행되었던 비둘기호, 퇴역 직전에 광주선 광주송정역 ~ 광주역 구간에서만 운행되었던 통근열차 등이 있다.
그리고 2018년 3월 28일, 레츠코레일의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신조객차 투입으로 인한 장항선 새마을 예ㆍ발매일 조정 공지가 올라오면서[58] 2018년 4월 30일자로 새마을호의 퇴역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정규 편성 새마을호 열차의 운행은 하행 #1159, 상행 #1160으로 그 끝을 맺게 되었다.
스테인리스 차체 새마을호의 퇴역은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했던 초고속 초특급 열차이자 대한민국의 발전과 함께한 왕년의 플래그십 열차답게 마지막이란 사실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KBS, MBC, SBS 등 국내 유수 언론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그 경춘선 무궁화호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보면 된다(차량 자체가 사라져가는 것이니 더욱). 특히 4월 30일 1160편의 1개월 전 매진 사실도 언급할 정도로 상당히 큰 관심사. 특히 KBS VJ특공대, KBS 뉴스, JTBC 뉴스에서도 직접 촬영나왔고, 이들 언론사들은 1160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타고 가면서 취재를 했다.
그나마 일부 객차는 중앙선, 태백선 등의 노선에서 무궁화호 등급으로 운행하거나, 비정기 관광열차로 활약 중이다. 그러나 이것도 내구연한 문제로 2024년에 전부 퇴역할 예정이다. 그러나 새마을호의 뼈대가 남아있는 특별동차 경복호는 아직 현역으로[59], 2028년에 퇴역할 예정이다.
또한 무궁화호에서 운행하는 새마을호 객차는 2018년 12월 28일부로 무궁화호 특실에서 일반실로 격하되어 2021년 현재도 일반실 요금을 받는다. 부전-청량리, 혹은 동해-청량리 노선에서 1호차가 64석이면 새마을호 격하 객차이니 참고.
2.9. 이란으로 수출
폐지된 구 새마을호 객차 중 일부[60]는 중동 이란으로 수출되어 현업 운행 중이었으나, 그 중 몇 대가 탈선 사고로 인한 화재로 폐차되었다. 관련하여 한 일본인이 올린 글을 참고. https://twitter.com/eggry/status/702134225630154753 구글에서 "이란 새마을호"로 이미지 검색을 하면 관련된 사진 몇 장이 나온다.2.10. 후계열차 ITX-새마을의 등장
2018년부터 최종적으로 새마을호를 대체할 신형 EMU-150은 2013년 2월의 열차 이름 공모전을 통해 ITX-새마을로 명칭이 확정되었으며, 2014년 5월 12일부터 운행을 개시하였다. 그리고 2014년 7월부터 기존의 새마을호 야간열차 운행이 무궁화호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2017년부터 프리미엄 고속버스가 전부 수요를 흡수해버리면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는 ITX-새마을이 전차선 단전시간대에 운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ITX-새마을 문서를 참조.2.11. 리미트 객차 승격열차로의 차량 교체
2018년 5월 1일을 기해 기존의 새마을호 객차를 퇴역시키고 리미트 무궁화객차를 승격한 새마을호 리미트 객차로 교체되었다. 열차 번호나 운행 계통 등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특실이 사라졌다. 또한 기존 열차와는 다르게 무궁화호와 똑같이 1칸에 68석(장애인 객차), 72석(일반 객차)로 운영된다.[1] DHC 디젤동차의 부수객차 기준. DHC 동력차는 이보다 앞선 2013년 전부 퇴역하였다. 또한, 기관차 견인형의 장대형 객차는 당시 영업 일선에서 물러나 초기형은 이미 폐차된 상태였고, 후기형만 그 중 11량이 무궁화호 특실 객차로 격하되어 현재도 정규운행에 투입중이다.[2] 이때부터 김천역, 구미역에도 새마을호 정차가 시작된다.[3] DEC 동차는 1987년에 무궁화호로 격하되었다.[4] 예전에는 한글을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에 한글카드라는 기판을 별도로 설치해야만 했다. 아니면 태백한글과 같이 한글 구현하는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하는 고급기능이다.[5] 특실은 83,700원[6]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HEP 때문에 정차 상황에서도 놋치를 올리고 있어야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HEP을 철거하고 발전차를 추가 편성하는 식으로 퇴역 시까지 운행했다.[7] 잠수함의 핵심은 소음 저감임을 감안하면 심장부터 최고급 명품으로 휘두른 명작이라는 말.[8] 일본 동호인들이 감탄할 정도인 차량이 바로 장대형과 후기형 PP다.[9] 이로 인해 1986년에 도입된 유선형과 그 이전세대 객차는 1994년을 끝으로 무궁화호로 격하되었다.[10] 서울 이남 정차역이 대전-김천-구미-동대구-영천-경주-울산 순이었다.[11] 광주행의 경우 주요 정차역은 두계(현 계룡)-논산-익산-김제-정읍-장성-광주, 목포행의 경우 두계-논산-익산-김제-정읍-장성-송정리-영산포(2001년 7월 이후로는 현재의 나주역)-목포, 여수행의 경우 두계-강경-익산-전주-남원-곡성-구례구-순천-여천-여수역이 주요 정차역이었다.[12] 단, 강경역은 전라선 노선 새마을호 위주로 정차했었다.[13] 정차역은 청량리 - 원주 - 제천 - 풍기 - 영주 - 안동. 1991년 7월 15일에 단양역, 1997년 11월 1일엔 양평역을 추가 정차하기 전까지 청량리 - 원주 구간을 정차 없이 주파했기에 대단한 포스를 보여주었다.[14] 물론 1992년에 후기형 PP동차 도입으로 3월에 직각형이 전부 임시열차로 격하되면서 경부선에서 투입되던 유선형 객차가 투입되다가 1993년 말 유선형의 무궁화호 격하로 장대형이 투입되었다.[15] 정차역은 원주 - 제천 - 영월 - 증산 - 고한 - 태백 - 도계 - 동해. 아무래도 당시 새마을호 중에선 가장 많은 역에 정차했던 열차가 아닐까 싶다. 거기에 험준한 태백선, 영동선 특성상 PP동차 투입이 불가능했으며, 태백선 구간에선 전기기관차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흥전역 ~ 나한정역 사이 스위치백 때문에 소요시간은 5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어떤 의미에선 서울 - 진주 편성을 뛰어넘는 새마을호 근성열차의 진정한 끝판왕 격인 노선이라 볼 수 있겠다. 특히 4년 후 강릉 연장 이후로는 더더욱. 이 때부터는 여기에 묵호 - 강릉이 추가된다![16] 정차역은 천안 - 온양온천 - 예산 - 홍성 - 광천 - 대천 - 서천 - 장항. 거리에 비례해선 적지 않은 역에 정차하였지만, 그래도 장항선 기준으로 저 정도는 충분히 특급이라 할 만했기에 새마을호로서의 매력은 훼손되지 않았다.[17] 정규열차로서 운행을 시작한 시기이지만, 이미 1990년 2월 2일부터 주말 혹은 임시열차로 운행을 하기 시작했다. 정차역은 임시열차 시절에는 유사 서대동부인 서울 - 대전 - 동대구 - 창원 - 마산이었다가 정규열차로 운행을 시작하면서 서울 - 대전 - 김천 - 구미 - 동대구 - 밀양 - 진영(1992년 11월 1일 추가정차) - 창원 - 마산이 되었다. 이후 편성되는 서울 - 진주 편성은 여기에 함안 - 진주가 추가된다.[18] 새마을호 중 가장 파란만장한 역사를 자랑하는 운행 계통이다. 일반실 4량(!), 특실(!!), 식당차 편성이었다가 1990년대 이후 일반실 6량 및 식당차 편성이 되었다. 2004년 4월 1일 KTX 개통 직후에 마산으로 단축되며 사라졌다가 불과 11일만인 4월 12일에 부활한다.[19] 당시 정차역은 천안 - 대전 - 김천 - 구미 - 동대구 - 영천 - 경주 - 안강 - 포항 혹은 수원 - 대전 - 구미 - 동대구 - 영천 - 경주 - 안강 - 포항.[20] 당시 정차역은 영등포 - 대전 - 동대구 - 구포 - 부전 - 해운대.[21] 일명 서대동부[22] 가수 김혜연의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라는 노래가 이 때문에 나왔다.[23] 적자 및 차량 노후화로 비둘기호를 줄였다. 그래서 그 빈 자리를 통일호가 채우게 되어 장거리 통일호가 줄었다.[필] 현 ITX-새마을 필수정차역이다.[필] 현 ITX-새마을 필수정차역이다.[필] 현 ITX-새마을의 필수정차역이다.[필] 현 ITX-새마을 필수정차역이다.[필] 현 ITX-새마을 필수정차역이다.[필] 현 ITX-새마을 필수정차역이다.[30] 무정차 구간은 동대구 - 부산까지 있었다. 당시 #7, #8, #19, #20, #33, #34. 서울역과 부산역을 각각 10시 정각 13시 30분, 18시 정각에 출발했다. 구포, 밀양역을 정차하지 않고 바로 통과했다고 한다. 참고로 서대동부 3왕복 중 #3, #4, #29, #30은 특실 전용 열차로 운영되었으며, 1999년 다이어 개정에서 #1, #2, #3, #4 열차로 계승된다.[31] 현재 신탄진역은 무궁화호도 선택정차하여 사실상 간이역이다.[32] 구 특실전용 열차들로, 1999년 이후 일반실로 격하되었지만 특실 시절의 좌석을 유지해 '구특전'이라 불리며 철도 동호인들이 선호하기도 하였다.[33] 모두 현 ITX-새마을 필수정차역이다.[34] 현 ITX-새마을 선택정차역들이다.[35] 영등포&수원, 영등포&천안, 영등포&조치원, 수원&천안, 천안&조치원[36] 단 서울발 부산행 #9열차는 KTX 개통 이전 말년에 서울 - 영등포 - 천안 - 신탄진 - 대전 - 영동 - 구미 - 동대구 - 구포 - 부산역에 정차하였다. 이 외에 서울 - 대전/서대전 구간 사이에 정차역이 3개를 넘긴 편성은 하행 부산행 #37과 울산행 #91,73, 포항행 #75,97, 목포행 #125, 광주행 #149이 있으며, 상행 부산발 #42,18,32,38과 울산발 #74, 포항발 #98, 목포발 #124, 광주발 #144가 있었다.[37] 하행 부산행 #7, 해운대행 #51, 진주행 #61, 울산행 #91,93, 포항행 #75,77열차.(김천,구미역.) 부산행 #9열차.(영동,구미역.) 부산행 #17열차.(김천,구미,왜관역.)[38] 상행 부산발 #8, 진주발 #62, 포항발 #76,78, 울산발 #92,94(구미,김천역) 부산발 #10, 해운대발 #40열차.(왜관,구미역) #42열차.(구미,영동역) #46열차(김천,영동역)[39] 부산행 막차 #37, 부산발 막차 #38열차 한정.[40] #1,2,3,4 외에는 하행 #17,45,27, 상행 #18,46열차가 동대구~부산 구간을 무정차로 운행했다.[41] 2004년 4월 1일 개정 시간표에 의하면 옥천에 서던 새마을호는 #1005, #1011, #1013(하행), #1042(#1044 복합), #1006, #1034(상행)이 있었으며 삼랑진에 서던 새마을호 열차는 저녁/심야 열차인 #1013, #1015(하행), #1006, #1012(#1040 복합), #1016(상행)이었다.[42] 이를 대체하기 위해 대구 - 진주 무궁화호 4왕복(#1321~#1328)가 신설되었다. 하지만 서울 - 마산 새마을호(#1031~#1034)는 증편되었고 서울 - 진주 무궁화호는 유지되었다.(#1217~#1218)[43] 워낙에 거리가 짧아서 그런지 복합열차가 아닌 개별로 운행했다. 동대구 - 포항 열차는 경주역에서 진행방향만 바꾸고 목적지로 향했다.[44] 동대구 - 포항은 6왕복(#1141~#1152), 동대구 - 울산은 5왕복(#1161~#1170)이었으며 꼴에 새마을호라고 특실이 있었다.[45] 그리고 5년만인 2012년 기존 마산행이 진주까지 연장되면서 부활, 2014년 ITX-새마을로 전환되었다.[46] #1121~#1128.4왕복이었으며 전부 특실과 식당차가 없이 일반실로 구성되었다. 하다못해 동대구 - 포항/울산 열차도 특실이 있었는데 얘네는 단거리 수요를 잡으려고 했는지 연산역에 세우는가 하면 정차역도 무궁화호와 다를바가 없었다.[47] 주말한정으로 #1091, #1092 열차가 있어서 7왕복.[48] 평일에만 운행, #1071~#1074[49] #1081~#1084. 매일 운행했으며 진해선 통근열차 대체 및 경전선과 진해선 KTX 환승연계를 노리고 신설했다.[50] 진주역의 종착역 기능의 상실이 이뤄지면서 생긴 변화로 같은 날에 #1271, #1272 무궁화호가 진주에서 연장되어 서울 - 순천을 운행하도록 조정되었으며, 새마을호는 기존 마산행이 2왕복에서 3왕복으로 조정되었다.[51] 하지만 엄밀히 매일도 아닌 것이 월요일은 운행하지 읺았다.[52] 1987~1988년식 PP동차는 폐차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코레일은 최초의 PP동차인 101호를 그대로 수색에서 분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53] 당시만 해도 RDC 동차도 없었고 딱 1편성 다니던 NDC 동차는 대구 - 마산에서 다니고 있었기에 빼오기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장항선에 다시 PP동차가 투입되면서 회차시설도 없던 서천 - 익산 단거리 계통에 그 차를 써먹는게 낫다 싶었던 철도공사는 단거리 새마을호를 만들어버렸고 요금도 2,500원만 징수했지만 요금이 통근열차 시절보다 폭등한데다가 장항읍과 군산시 도심에서 역이 없어지는 이중고 때문에 수요가 너무 없어서 사라지고 만다. 이 계통은 새벽에 익산에서 #1172로 올라가서 #1171로 내려갔으며 2시간 가량 대기하다가 #1156 열차로 용산으로 올라갔다.[54] 같은 날에 무궁화호도 증편되어 서울 - 부산 무궁화호가 14왕복이 되었다.[55] 서울 - 동대구 열차는 #1021~#1024 2왕복만 운행[56] #1251~#1254 열차로 2왕복이었다.[57] 그리고 마산 - 진해 무궁화호가 신설되었다.[58] 舊 새마을호는 일반실 64석, 특실 60석을 수용하도록 되어있으나 新 새마을호는 일반실 72석을 수용한다.[59] 경원선, 경의선, 경부선 등에서 시운전 사례가 간간히 목격되기도 한다.[60] 차번으로 보아 DHC 디젤동차용 부수차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