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000><colcolor=#fff> 베네딕트 안톤 아우프슈나이터 Benedict Anton Aufschnait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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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 | 1665년 2월 21일 |
| 신성 로마 제국 티롤 후백국 키츠뷔엘 | |
| 매장 | 1742년 1월 24일 (향년 77세) |
| 신성 로마 제국 파사우 주교령 파사우 | |
| 종교 | 가톨릭 |
| 가족 | 아내, 아들[1] |
1. 개요
오스트리아의 바로크 시대 작곡가이자 궁정악장(카펠마이스터), 음악 이론가.2. 생애
젊은 시절의 그는 빈에서 다년간 머무르며 음악 교육을 받았는데, 궁정 오르가니스트 가문이었던 에브너(Ebner) 가문의 일원으로부터 배웠다고 한다.[2] 이 기간 동안 황실은 아니지만 최소한 궁정과 가깝고 또 관련되어 있는 예배당에서 지휘자(혹은 음악 감독)로 활동하였으며,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규칙을 따르는 Chorherren(수도회 형제)들의 축제에서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스트리아의 수도원에서도 연주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1705년 1월 16일에 파사우의 주교이자 추기경이었던 요한 폰 필립 람베르크는 그를 카펠마이스터로 임명한다.[3] 이후 그는 궁정에 머무르되 1724~1725년 이후의 어느 시점부터는 합창 지휘자 역할을 겸하였고, 1738년 이전의 어느 시점에 안톤 프란츠 포풀로룸(Anton Franz Populorum, 1707-1757)이라는 작곡가에게 카펠마이스터 직위를 넘겨주게 되었다.
당시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1835년의 '실링 음악백과'에 '훌륭하고 또 인기 있는 교회음악 작곡가였다(ein ausgezeichneter, auch sehr beliebter Kirchencomponist)'라고 쓰여있는 등, 카펠마이스터로서 수많은 작품들을 각지에서 출판하며 상당히 명망 높은 작곡가로 자리매김했을 것으로 보인다.
3. 주요 작품
현재 남아있는 그의 작품은 총 300여 곡이다.괄호 안은 출판된 지역과 연도이다.
- 종교 음악
- Concors discordia (협화와 불협화), Op. 2 (뉘른베르크, 1695)
- Dulcis Fidium Harmoniæ (조화를 이루는 달콤한 현), Op. 4 (아우크스부르크, 1703)
- Memnon sacer ab oriente (동방으로부터 온 거룩한 멤논), Op. 5 (아우크스부르크, 1709)
- Alaudæ V (5마리의 종달새)[4], Op. 6 (1711)
- Aquila clangens (독수리의 울음), Op. 7 (파사우, 1719)
- Cymbalum Davidis (다윗의 심벌), Op. 8 (파사우, 1728)
- Miserere pro tempore quadragesimae (사순절을 위한 미제레레), Op. 9 (미발표, 1724)
- Requiem (진혼미사) in C major (1738)
- Serenada della pace (평화를 위한 세레나데) in C major
- Sonata gloriosa (영광의 소나타)
- Ave Regina (만세의 여왕) in B-flat major
- 세속 음악
- Kommt, beschaut die Weisheit (오라, 지혜를 바라보라)[5]
- Litaniae Lauretanae (로레토의 기도문)
- Concerto o parthia della cortesia (예절을 위한 콘체르토 혹은 파르티타)
- 음악 이론서
- Regulae Compositionis Fundamentalis Musurgiae(음악 작곡의 기본적 규칙)[6]
- Anweisung oder Fundamentalregeln, um eine gute Musik zu componieren(좋은 음악을 쓰기 위한 지침 혹은 기본 규칙)
4. 외부 링크
이 링크에서 그의 곡들을 들어볼 수 있다.[1] 두 차례 결혼했는데, 두 번째 결혼생활에서 아들을 얻었다고 전한다.[2] 그는 당대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볼프강 에브너의 아들인 요하네스 에브너를 스스로의 음악적 모범으로 언급한 바가 있는데, 이를 미루어 보면 아우프슈나이터는 그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크다.[3] 그의 전임자가 바로 게오르크 무파트였다.[4] 전술했던 파사우의 주교에게 헌정된 미사곡이다.[5] 크리스마스를 위한 트리오 소나타이다.[6] 해당 저서에서 아우프슈나이터는 자신의 음악적 귀감 혹은 모범이 된 인물들로 자코모 카리시미, 오를란도 디 라소, 요한 카스파르 케를, 아담 굼펠츠하이머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