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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color=#fff><colbgcolor=#0047a0> | |||
| | |||
| 출생 | 1905년 9월 10일[1] | ||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 |||
| 사망 | 1946년 10월 6일 (향년 41세) | ||
|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現 경상북도 구미시) | |||
| 본관 | 고령 박씨[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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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자매 | 큰형 박동희 작은형 박무희 누나 박귀희 남동생 박한희(요절) 여동생 박재희 남동생 박정희 | ||
| 배우자 | 조귀분 | ||
| 자녀 | 장남 박준홍 장녀 박영옥 차녀 박계옥 3녀 박민정 4녀 박금자 5녀 박설자 | ||
| 친인척 | 사위 김종필 | ||
| 학력 | 구미공립보통학교 (졸업) | ||
| 종교 | 무종교 (무신론) | ||
| 신체 | 180cm[3], O형 | ||
| 정당 | 선산청년동맹 신간회 건국동맹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민주주의민족전선 조선공산당 남조선로동당[4] | ||
| 경력 | 선산청년동맹 집행위원 신간회원 조선중앙일보 대구지국장 동아일보 구미지국장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인민위원회 내정부장 조선인민공화국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 선산대표 민주주의민족전선 선산군지부 사무국장 조선공산당 선산군당 총책 | }}}}}}}}} |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공산주의자. 박정희의 친형이자 김종필의 장인이기도 하다.[5] 후술되어 있듯 대구 10.1 사건 당시 사망한다.2. 생애
1920년 구미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9년 처음으로 개교한 대구사범 제1회 입학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는 경성사범, 평양사범, 대구사범 단 3곳의 사범학교만 존재했다. 사범학교는 월사금 등을 일절 받지 않는 데다 용돈조로 격려금까지 지급되고 졸업과 동시에 교사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무지막지한 경쟁률을 자랑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면 고등보통학교(1930년대에 구제중학교로 통합.)만 갈 수 있는데 연희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 같은 구제전문학교는 학제상 고등보통학교보다 높은 곳이라 갈 수 없었다. 반면 사범학교는 고등보통학교에 상응하는 중등교육기관이라 갈 수 있었다. 그리고 3년 뒤 막내 동생인 박정희가 대구사범 입학시험에 합격했다.1927년 신간회에 참여해 활동했다. 1931년 신간회 해산 이후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이듬해에는 《동아일보》의 구미지국장 겸 주재기자로 활동했다. 대부분 독립운동가들이 가난하게 산 것과 대조적으로 박상희는 사업을 잘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고 그 돈으로 직계가족들뿐만이 아닌 박정희의 아내 김호남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까지 봉양할 수 있었다. 194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매일신문 기자 겸 선산 지국장으로 이직했다. 이 시기에 신경육군군관학교에 다니던 동생 박정희가 창씨개명을 하고 오라고 휴가를 받아서 왔다고 찾아와 상의를 하자 고령 박씨를 바탕으로 다카키로 창씨하게 되었는데, 이름은 따로 바꾸지 않아 창씨명은 고목상희, 즉 다카키 소기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여운형이 조직한 비밀결사단체인 조선건국동맹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었고 수감된 상태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8.15 광복 후 구미에서 그의 정치적 인기는 대단했다. [6] 이것 때문에 구미 지역 지식인, 항일운동가 그룹의 리더로 일제가 패망하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구미 지부를 창설하고 건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되자 반탁운동을 지도하였으나 조선공산당을 이끌던 박헌영이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하면서 좌익그룹이 신탁통치 찬성으로 돌아서자 당의 결정에 따랐는지 이후 침묵을 지켰다. 여담으로 《동아일보》의 신탁통치 오보사건은 광복 이후 한반도의 현대사를 결정지은 역사상 최악의 오보로 기록된다.
1946년 대구 10.1 사건으로 경상북도 일대에 시위가 확산되자 그는 선산-구미 지역 봉기에서 선산군 인민위원회 내정부장[7]을 담당했다. 박상희(朴相熙)는 10월 3일에 선산군 민청 간부 김정수(金鼎洙)와 더불어 봉기에 참여했다. 그들이 이끄는 2000여명의 군중들은 적기가(赤旗歌)를 부르며 구미경찰서를 습격하여 백철상(白喆相) 경찰서장에게 경찰권을 인민위원회에 이양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경찰서와 군청을 접수했으나 이튿날 경찰의 반격을 받아 박상희는 군농조위원장인 김광암(金光岩) 및 민청 간부인 장달천(張達千)과 함께 사살되었다."낫·창으로 무장한 시위대 경찰 눈알 빼고 혀 자르고" 주간조선 오마이뉴스 조선일보
유족들에 따라 증언이 갈리는데 녹두즙을 마시고는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증언도 있지만 유언을 남겼다는 증언도 있다.
현재 구미시 상모사곡동에 있는 생가 인근의 가족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3. 가족 관계
박정희의 친형, 김종필의 장인, 박준홍, 박영옥의 부친이다. 김종필과 박영옥의 아들, 딸인 김진과 김예리 남매에게는 외할아버지이고 은지원의 아버지인 은희만에게는 외삼촌, 박재옥,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에겐 셋째 큰아버지가 된다.[8] 박성빈에게는 셋째아들이다.
박정희와는 12살 차로 나이차가 많이 났기 때문에 형보다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었다. 단순히 형제 관계라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존경했다. 특히 박정희의 아버지인 박성빈은 과거에 합격하고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경력이 무색하게 말년에는 무력하게 농사를 하며 지내다가, 박정희가 성인이 되자마자 사망하였던 데 반해, 박상희는 상술하다시피 이미 젊은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뛰어들고, 신간회가 해산된 이후로도 언론인, 사업가 등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상당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에 구미에서 명성이 대단했었고, 어린 박정희에게 있어서 박상희는 따라야 할 롤 모델 그 자체였다. 박상희도 박정희를 어렸을 적부터 보살폈기에 박정희를 아꼈다.
하지만 박정희가 어린 시절 결혼한 김호남과 부부관계를 가지는 것을 거부하고[9] 교사일을 그만두고 출세를 위해서 만주군에 입대하자 동생 박정희에게 단단히 분노했고, 이후 일제가 패망하고 처량한 신세로 돌아온 박정희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핏줄은 핏줄인지라 박상희가 경찰의 손에 의해 살해당하자 박상희를 아버지처럼 여겼던 박정희는 당연히 복수심을 가졌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남로당에 입당하게 되었다.[10] 다만 6.25 전쟁 이후 반공이 국시가 된 대한민국에서 남로당 출신이란 점은 당연히 박정희에게 콤플렉스가 되었고[11] 5.16 군사정변을 통해 집권하게 된 이후부턴 형 박상희에 대해서도 별로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자식 농사에는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편이다. 첫째딸은 박영옥 여사로, 남편이 김종필 총재다. 유일한 아들 박준홍은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중국문제전공)을 수료하고 돌아와 국토통일원에서 2급 연구관을 지내며 통일문제를 연구하였고 제1무임소 장관실 정무조정실장(1급 차관보)를 역임하였다. 대한축구협회 회장(1978-9)도 맡았고, 차범근 선수가 서독 분데스리가에 진출하는데도 나름의 지원을 했다. 이후 한국 국제협력단(KOICA)에서 초대 상임고문을 맡아 외국에 원조를 제공하는 일을 책임지었다. 녹색회를 창설해서 전국적으로 자연보호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도시의 친 환경적인 개발을 연구하기 위해 녹색개발연구원을 운영했다.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도 지냈고, 구리시의 월드디자인시티(GWDC)추진위원회의 상임고문, 사회단체로 5.16 민족상 이사, 자유민주실천연합, 미주 새근성회, 민족중흥포럼, 녹색문화예술세계연맹 등의 총재를 역임했다.
- 족보 기준 (박상희 소생)
- 박영옥 1929(기사). 09.28(10.30)~2015.02.21
- 박계옥 1937(정축). 01.20(03.02)~2023.01.12
- 박화자 1940(경진). 08.25(09.26)~2007
- 박금자 1942(임오). 12.18(1943.01.23)
- 박설자 1945(을유). 06.24(08.01)
- 박준홍 1947(정해). 01.05(01.26)
4. 기타
일제강점기부터 공산주의 활동을 하면서 같은 선산-구미 일대의 지식인으로서 박상희와 친분이 있었던 황태성은 대구와 경북 일대의 시위가 진압되자 곧장 월북했다. 6.25 전쟁 이후 남로당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숙청에서 무사했으며 남한 출신으론 드물게 북한 무역성 부상(무역담당 부처의 차관)을 역임하며 고위직을 지냈다.한편, 황태성은 남한에서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와의 친분을 내세워 김일성에게 비밀 특사로 파견을 요청했고, 그렇게 남파되었으나 박정희와 김종필은 옳다구나 하고 그를 간첩으로 처형했다. 다만 정치적 목적성이 다분한 행위였다 보니 지금도 '황태성 사건'은 전후관계 등 정확한 전모가 드러나지 않아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김종필이 '소이부답'[12]에서 관련 증언을 한 적은 있다. 다만 황태성을 신문한 중정이나 미국 측의 자료는 공개된 적이 없고 해당 사건의 피고인들[13]과 김종필의 발언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 무엇보다 김종필이 이전에 언론에 밝힌 것과 다른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신뢰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어 교차검증은 앞으로도 어려워 보인다.
박정희 생가는 사실 박상희 부부가 함께 살던 고택이기도 했기 때문에 박정희 안티들 중 생가를 찾아온 사람들 중엔 "우리는 박정희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박상희 선생 때문에 왔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5. 미디어에서
- 박상희의 사망에 대한 그것은 알기 싫다의 해석
그것은 알기 싫다의 특집 중 하나였던 박정희 소백과사전에서는 당시 대구 경찰서장이 박상희에 관해서는 신원을 보장한다고 할 정도로 좌우익을 막론하고 존경받던 인물이었으나, 막상 경찰의 진압부대가 들이닥친 것에 위협을 느껴 탈출하여 도망쳤고 그 과정에서 추격하던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설명했다. 이 죽음이 박정희에게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함께 이어졌다.
- 굽시니스트의 시사인 만화에서는 동생을 갈구는 역할로 나온다.#
박상희가 동생 박정희를 갈군 것 자체는 사실이다. 소학교 교사 시절 집안 어른들의 강요로 김호남과 결혼한 것이 내키지 않아 아내 김호남의 방에조차 들어가지 않는 박정희에게 역정을 내며 거의 두들겨 패다시피하여 방에 밀어 넣었다고 한다. 이후 박정희가 만주군에서 복무하다가 광복 이후 경력자 우대로 광복군 평진지대 중대장을 잠시 맡았는데, 미군정은 일체의 정치단체를 인정하지 않아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개인자격으로 입국하여 인천항에서 DDT 세례부터 맞았다. 만주군에 갓 부임했을 때는 정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고향에 왔는데, 광복 이후로는 이 개인자격 입국 탓에 거지꼴로 돌아와 버려 "그냥 선생질이나 하면 좋았을 걸 괜히 고집대로 했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느냐? "고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14]
- 만화 박정희
비록 자신은 독립운동을 하였지만 나름대로 동생의 길(만주군 입대)을 지지하고 이해하였던(실제로는 당연히 화를 냈다), 그래서 나중에 죽은 뒤 박정희가 복수심에 잠시 남로당에 투신하게 만든 계기가 된 것으로 나온다.
실제 남로당 간부들이 박정희에게 '죽은 형의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설득한 것은 맞다. 그리고 당시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던 박정희는 결국 남로당에 비밀입당한다. 그랬던 것이 여순사건 이후 숙군 사업으로 발각되어 군당국에 체포되어 종신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백선엽을 비롯한 군 상층부에서 남로당 고위층이긴 하지만 적극 가담한 일이 없으며 죽이긴 아까운 인물이라는 구명운동이 벌어져 1년 만에 석방되어 불명예 제대로 그쳤다. 박정희의 구명운동에는 일본군, 만주군, 심지어 광복군 출신들도 일부 가담했다. 이는 박정희의 복잡한 이력에 기인하는데, 복무는 만주군에서 했으되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졸업하여 일본육사에 편입, 3등으로 졸업하여 일본육사 졸업생 그룹에게도 구명을 요청할 명분이 있었다. 상기했듯 광복 후 광복군 평진지대 중대장으로 잠시 복무하여, 이때 친분이 있던 평진지대장 김학규 장군도 구명에 나섰다.
- 제3공화국
배우는 김상중.[15] 대구 10.1 사건과 관련하여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는데, 이 소식을 누나에게 전해 들은 박정희는 큰 충격에 빠진다. 회상 장면에서 자신(박상희)이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한 방편이었고, 광복된 지금은 공산당 활동에 큰 뜻이 없지만 배신자가 될 수 없어 탈퇴를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16]
-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
대체역사물인 만큼 실제 행적과 크게 달라졌다. 주인공 김유진 덕분에 동생 박정희와 함께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정작 거기서도 공산주의 물이 드는 바람에 제2차 세계 대전 중 박정희가 만주군이 아닌 미군에 투신하는 계기가 된다. 다만 전쟁 도중 "제국주의의 적"이라던 미국과 손을 잡는 소련을 보고 회의감을 가졌으니 본래 역사보다 좋은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
- 대통령 각하 만세
대체역사물인데 이 작품에서는 원 역사의 아시아 공산주의자들 대부분이 작중 등장하는 삼균주의라는 유사 파시즘을 신봉하기 때문에 본인도 이걸 신봉하고 아웅산과 찬드라 보스에게 한국이 아시아 해방을 도와줄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외교관으로 활약한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지기 싫어하는 동생이 있다고 말한다.
- Hearts of Korea에서는 대구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다가 이승만에게 잡혀 전기의자로 사형당한다. 초기 설정대로라면 여기서 박정희도 잡혀죽으나, 설정변경으로 박정희는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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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905년 8월 12일[2] 직강공파 29세손, 혁거세 65세손 ◯희(○熙), ◯인(○仁), ◯하(○河) 항렬.(족보(1)족보(2))[3] 참고로 이쪽 형제들은 막내동생인 박정희(159cm)만 키가 작고 나머지는 전부 키가 크다. 시대 보정까지 더해지면 당시엔 더 큰 장신으로 느껴졌을 듯.[4] 창당 이전 사망.[5] 장녀 박영옥의 남편.[6] 당시 대구경북 지역은 일제강점기부터 공산주의가 강한 지역이었다. 심지어 대구는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 당시 보수 성향은 전라도 지역이다[7] 조선일보 기사에선 민주주의민족전선 사무국장을 맡았다고 나오는데 그 역시 사회주의 단체였으며 남로당의 직계 전신인 조선공산당의 사실상 산하 조직이었다. # 피살당한 여운형을 제외한 의장단 전원이 북한에서 고위급 직책을 역임했다. 조선공산당 산하 정치 단체인 민족전선 사무국장과 불법화 이전까지 잠깐동안 통치기구였던 인민위원회 간부를 동시에 맡은 것으로 보인다.[8] 그러나 박재옥은 박상희가 죽기 9년 전인 1937년에 태어났고 박상희가 대구 10.1 사건에서 경찰의 총탄에 맞아죽었을 때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이였다.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은 박상희가 사망한 후인 195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4남매들에게는 큰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아예 없다.[9] 보다 못한 박상희가 박정희를 두들겨 패서 김호남과 같은 방에 집어넣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결국 박정희는 박상희가 사망한 직후에 김호남과 이혼하고 이현란과 사실혼까지 갔다가 헤어진 뒤 육영수랑 결혼한다.[10] 당시 좌익계 인사들이 찾아와서 "형의 복수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면서 입당을 권유했다고 한다. 사실 광복 이후 경찰과 국군의 대립도 심각했기 때문에 이런 측면도 고려되었을지 모른다.[11] 1963년 대선 때도 남로당 경력으로 민정당 윤보선 측에게 크게 공격받았다. 지금 와서 보면 아이러니하지만 종북몰이의 원조. 이에 당시 박정희 측에선 윤보선 측에게 매카시즘 공세를 중단하라고 요구할 정도였다.[12] 《중앙일보》 연재.[13] 황태성만 처형당했지, 나머지는 징역 살다 풀려나왔다.[14]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에도 해당 장면이 등장한다.[15] 참고로 김상중은 제4공화국에서는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의 범인 문세광 역할을 맡았다.[16] 물론 역사적으로 딱히 근거가 있는 해석은 아니다. 박상희는 실제로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