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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적 제124호 덕수궁 | ||
<colbgcolor=#e3ba62> 덕수궁 광명문 德壽宮 光明門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5-1) | |
건축시기 | 1897년 (창건) / 1904년 (중건) / 1938년 (이건) / 2019년 (이전 복원) |
<colbgcolor=#e3ba62> 광명문[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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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덕수궁 함녕전의 정문이다.위치는 함녕전의 남쪽이며,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 사이이다.
2. 역사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본디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이었다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잠시 머물던 행궁이었고, 그나마도 인조 이후엔 왕들의 흔적이 서린 즉조당[2]과 주변 몇 채 정도만 뺀 나머지 건물들을 전부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주면서 약 270년 간 비어있었다.그러나 1896년(건양 원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이 환궁[3]을 경운궁으로 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건 공사를 명하여 그제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궁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당연히 임금이 머물 정식 침전 역시 필요했고 그에 따라 1897년(건양 2년) 함녕전을 건립했다.
<colbgcolor=#e3ba62> 고종 생전의 광명문 모습 |
건립한 지 불과 7년만인 1904년(광무 8년)에 함녕전 온돌을 수리하다 대화재가 일어나 소실되었고[4] 그해 12월에 다시 지었다.
<colbgcolor=#e3ba62> 고종 장례식 때 광명문을 통과하는 상여 | <colbgcolor=#e3ba62> 양 옆 행각이 헐린 광명문 |
<colbgcolor=#e3ba62> 전시소 시절의 광명문. 왼쪽은 현판 색이 바뀐 모습이고, 오른쪽은 원래 색을 찾은 모습이다. |
<colbgcolor=#e3ba62> 광명문 이건 복원 준공식 |
3. 구조
원형 주춧돌 위에 원기둥을 올린 뒤 그 위에 1층[6]짜리 건물을 올렸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처마는 겹처마이다. 또한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를 양성바름한 뒤, 2개의 취두와 4개의 용두, 그리고 동, 서 양쪽의 추녀마루 위에 5개의 잡상과 각 처마 끝에 토수를 놓았다. 평방 없이 창방 위에 바로 공포를 놓은 형태로, 공포는 익공 양식이다. 그리고 공포 사이마다 화반 3개 씩을 두었으며 공포와 화반 사이의 틈을 벽으로 메꾸지 않았다. 문짝은 나무 판으로 중앙 열 3칸에 달았으며 가운데 왕이 다니는 어칸(御間)을 조금 더 넓고 높게 만들었다. 양 측면의 칸 마다 중인방을 끼우고 위, 아래를 나무 판으로 마감했다. 천장은 서까래와 구조들이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했고, 문 위는 풍형 홍살을 꾸며놓았다. 단청은 모로단청[7]으로 입혔다.[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선조가 머물고 인조가 즉위한 곳이다.[3] 還宮. 궁으로 돌아가다.[4] 이 때 광명문 뿐 아니라 주요 건물 대부분이 불타버렸다.[5]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흔히 ‘석조전 서관’으로 부르는 건물이다.[6] 보통 한옥의 경우 단층(單層)이라 표현한다.[7] 부재 끝부분에만 문양을 넣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한 단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