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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15 07:52:19

덕수궁 덕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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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4호 덕수궁
<colbgcolor=#e3ba62> 덕수궁 덕홍전
德壽宮 德弘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5-1)
건축시기 1896년 (창건)
1904년 (중건)
1911년 (덕홍전 개조)
파일:덕홍전1.png
파일:덕수궁_덕홍전.jpg
<colbgcolor=#e3ba62> 덕홍전[1]
1. 개요2. 역사3. 구조4. 여담

1. 개요

덕수궁전각이다. 함녕전 서쪽에 있다. 덕수궁의 건물들 중 (현대에 세운 시설물을 제외하고) 가장 나중에 지었다.

'덕홍(德弘)' 뜻은 '덕(德)이 넓고(弘) 크다'이다.

2. 역사

덕홍전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처음 지었다. 즉, 조선왕조 시절에는 없었다.
파일:경효전.png
<colbgcolor=#e3ba62> 덕홍전 자리에 있던 경효전[2]
원래 덕홍전 자리에는 경소전이 있었다. 경복궁에 있었는데 1896년(건양 1년)에 경운궁(덕수궁)으로 옮긴 것.[3] 이후 명성황후의 빈전으로 사용했으나 국장 이후에는 '경효전'으로 이름을 바꾼 뒤 혼전으로 활용했다. 이 때는 , 으로 침전 함녕전과 영역을 구분했다.
파일:경효전 의궤.png
<colbgcolor=#e3ba62> 《경운궁중건도감의궤》의 경효전 모습[4]
1904년(광무 8년) 경운궁 대화재로 경효전은 불탔다. 명성황후신주는 임시로 준명전 서행각에 봉안했다가 고종이 머물던 중명전 근처의 수풍당으로 이전했다. 이후 옛 경소전 모습대로 재건했지만 명성황후의 신주를 다시 이곳으로 옮기지는 않았다.[5][6]

이렇게 제례와 인연이 멀어지고, 또한 고종이 살던 함녕전과 가까워서인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경소전을 알현실로 고쳐 짓고 이름을 덕홍전으로 바꾸었다. 이 때, 창덕궁의 알현실로 개조되었던 인정전을 참고했다고 한다.

주변도 크게 달라졌다. 우선 함녕전과 영역을 구분하던 을 헐고 같은 영역으로 만들었다. 혼전 관련 시설들을 전부 없애고, 대신 덕수궁 내 이왕직 청사[7] 및 귀빈실과 찬시실 등을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귀빈실 및 함녕전과 통하는 복도를 설치했다. 함녕전에 거주하던 고종이 편하게 덕홍전을 오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파일:일제강점기 덕홍전 실내1.png
<colbgcolor=#e3ba62> 1925년 12월 호 《조선과 건축》[8]에 실린 일제강점기 덕홍전 실내[9]
1919년 고종 승하 이후 덕수궁은 비었고 그 후 1933년 일제덕수궁공원화하면서 많은 전각들을 허물었다. 그럼에도 덕홍전은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다.

3. 구조

4. 여담


[1] 첫 번째 사진 출처 - 덕수궁 트위터.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 사진 출처.[3] 당시 아관파천으로 고종경복궁을 떠나고 경운궁을 환궁(궁으로 돌아가다)할 곳으로 정하면서 경복궁의 건물 일부를 경운궁으로 옮겨지었다.[4] 사진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5] 수풍당에 계속 있다가 1919년 1월 고종 승하 후 1921년 3월에 종묘에 같이 모셔졌다.[6] 임금의 생전에 황후, 왕비가 죽은 경우에는 신주를 혼전에 계속 두고 있다가 임금이 죽은 다음에야 같이 종묘에 봉안할 수 있었다.[7] 일제강점기 이왕가(옛 대한제국 황실)을 담당하던 기구.[8]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건축 단체 조선건축회가 1922년 6월부터 1945년 2월까지 펴낸 기관지.[9] 사진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사진 아래 설명에는 석조전(石造殿)으로 적어두었으나 잘못 쓴 것이다.[10] 사진 출처 - 카카오맵.[1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트위터##.[12] 총괄 디렉터는 서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