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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중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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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부터 1902년까지 중화전이었던 건물:
덕수궁 즉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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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문
상림원(배후림)흥복전 의효전
흥덕전 장옹대 양희당
운교 생물방소주방 어재실 양이재 함희당
사성당 우중배설청
내재실 선원전
좌중배설청
제기고
숙경재
돈덕전 생양문
환벽정 구성헌 덕경당 가정당 정관헌 수인당 양심당 포덕문
수풍당흠문각 만희당 석조전 준명당 즉조당
· 명례궁터
석어당 함유재 구여당
중명전 평성문 석조전
서관
정원 중화전 덕홍전 함녕전 영복당 공시청 비서원태의원 시강원
강태실 장방처소 광명문 내반원궁내부 원수부
용강문 승녕부 전무과 중화문
인화문
소방계 조원문 금천교 대한문
운교 건극문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 · 경희궁 }}}}}}}}}}}}
덕수궁 중화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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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중화전
德壽宮 中和殿
창덕궁 인정전
昌德宮 仁政殿
중화전 이전 덕수궁의 정전은 즉조당이었다.
덕수궁에 서양식 정전으로 석조전을 지었으나 완공 전에 국권을 빼앗겼다.
정문 · 중문 · 금천교 · 정전 정문 · 정전 · 내정전 · 태후전 · 선원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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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景福宮 勤政殿
창덕궁 인정전
昌德宮 仁政殿
창경궁 명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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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중화전
德壽宮 中和殿
경희궁 숭정전
慶熙宮 崇政殿
중화전 건립 이전 덕수궁의 정전은 즉조당이었다.
정문 · 중문 · 금천교 · 정전 정문 · 정전 · 편전 정문 · 편전 · 내정전 · 동궁 · 선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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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보물
818호 819호 820호
창경궁 통명전 덕수궁 중화전 및 중화문 덕수궁 함녕전
}}}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보물 제819호
덕수궁의 중화전 및 중화문[1]
德壽宮의 中和殿 및 中和門
소재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관리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
수량 2동[2]
지정연도 1985년 1월 8일
제작시기 대한제국, 1902년 창건, 1906년 중건
파일:external/figulr.files.wordpress.com/img_5593.jpg
파일:덕수궁_중화전_및_중화문_중화전_전경.jpg
<colbgcolor=#e3ba62> 중화전[3]
YTN 공식 유튜브의 소개 영상[4]

1. 개요2. 역사3. 정문4. 구조5. 여담6. 대중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덕수궁정전(正殿)으로, 중요한 국가 의식과 조회가 열리던 곳이다.

조선의 5대 궁 정전 중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되었으며, 처음부터 조선 왕궁이 아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세워졌다.

'중화(中和)'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을 의미하며, 《중용(中庸)》에서 유래한 것이다.

2. 역사

원래 임진왜란 당시 임시 행궁이었던 경운궁은 인조 연간 이후 즉조당석어당 및 주변 별당만 남아 있는 작은 궁이었다. 그러나 1896년(건양 원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이듬해 1897년(건양 2년) 환궁하면서, 기존의 경복궁이나 창덕궁이 아닌 공사관 근처의 경운궁을 거처로 선택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경운궁을 왕의 거처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명목상 ‘중건’이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새로운 궁궐을 창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에 따라 한동안 기존 건물인 즉조당을 태극전 또는 중화전으로 부르며 정전(正殿)으로 사용했으나, 매우 협소하여 규모가 큰 새로운 정전이 필요했다. 결국 대한제국 선포 후 5년이 지난 1902년(광무 6년)에야 정식 정전의 격식에 맞추어 중화전을 건립하였다.
파일:3_4.jpg
파일:AKR20170424052200005_04_i.jpg
<colbgcolor=#e3ba62> 중층 중화전 <colbgcolor=#e3ba62> 즉조당을 중화전으로 사용하던 당시 현판.[5]
파일:2018-04-07 21-08-32.jpg
파일:2018-04-07 21-08-22.jpg
《중화전도》 《중화전영건도감의궤 속 중층 중화전》
창건 당시에는 중층(重層) 구조로 지어졌으며, 외관상으로는 2층처럼 보였지만, 내부는 단층으로 천장이 높게 설계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과 유사하다. 특히, 외관은 창덕궁 인정전과 상당히 흡사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고종 환궁 당시, 경운궁 상황과 중층 중화전 건립
파일:중화전 의궤.png
파일:중화전 복구 공사.png
<colbgcolor=#e3ba62> 대화재 이후 경운궁 중건과정을 담은 기록인《경운궁영건도감의궤》에 실린 중화전. 단층이다.[6] <colbgcolor=#e3ba62> 중화전 복구 공사

그러나 1904년(광무 8년) 경운궁 대화재로 중화전이 소실된 후, 1906년(광무 10년) 중건되었다. 하지만, 재정난과 국권 상실 직전의 상황으로 인해, 이전의 중층(복층) 구조 대신 단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이곳에서 열린 주요 행사는 1907년(광무 11년) 1월, 당시 황태자 순종순정효황후의 결혼식, 같은 해 7월 고종의 강제 양위식이 있다. 다만, 양위식 당시 고종과 순종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내관들이 대신 진행했다. 정식 즉위식은 같은 해 8월 27일 덕수궁 돈덕전에서 거행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고종이 승하한 후, 일제는 1933년 덕수궁을 공원화하며, 중화전 앞뜰의 박석을 제거하고, 잔디와 꽃을 심는 등 중화전 일대를 훼손했다. 이후 1980년대 말,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이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3.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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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조

파일:덕수궁_중화전_내부.jpg}}} ||
<colbgcolor=#e3ba62> 중화전 내부[8]
단청은 은은한 채색의 모루단청이며, 광창과 꽃살 분합문을 설치하여 장식성을 높였다.출처. 내부는 하나의 개방된 공간으로 설계되었으며, 정면 중앙 칸의 북쪽에는 당가[9]와 옥좌를 배치하였다. 또한, 고주와 창방에는 낙양각을 달아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였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에서 제작한 사이버 전각 전시관에서 보다 생동감 있는 내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파일:junghwajeon04.jpg}}} ||<width=313>
파일:80f0d6fef68c46739d4c069bb8d0c46f_1476175439672.jpg
||
<colbgcolor=#e3ba62> 중화전 답도에 새겨진 용 <colbgcolor=#e3ba62> 중화전 천정의 용
처음부터 대한제국의 황궁 정전으로 지어진 만큼, 답도에는 쌍룡이 새겨져 있다. 즉,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한 마리는 4조룡, 다른 한 마리는 5조룡이다. 이는 각각 조선과 대한제국을 상징한다. 또한, 내부 천장에도 봉황이 아닌 용이 조각되어 있다. 참고로 경복궁 근정전에도 용이 장식되어 있으나, 이를 비교해 보면, 중화전의 용은 좀 더 몸집이 작고 통통한(...) 형태를 띠고 있다.
파일:junghwajeon02.jpg}}} ||
<colbgcolor=#e3ba62> 중화전 행각 흔적
중화전에는 정전의 격에 맞는 행각이 없다.(...) 이는 일제강점기 공원화 과정에서 석조전 정원이 중화전 행각을 침범하면서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행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중화전 뜰 동남쪽 모퉁이에 일부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원래의 모습과 달라져, 현재는 시민들이 쉬어가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5. 여담

6. 대중 매체에서

대한제국 시기를 다룬 작품 자체가 별로 없고, 있어도 다른 궁궐에서 촬영을 하기 때문에 실제 중화전이 사극에 등장한 적은 거의 없었다.

[1] 건물과 문을 포함한 권역의 정식 등재명칭.[2] 중화문 포함. 국가유산청의 공식 기준 참조.[3] 두 번째 사진 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4] 중화전만 개별적으로 소개하는 영상이 없어 부득이 덕수궁 전체를 다룬 영상으로 대체한다.[5] 왜 이 현판이 즉조당에 걸렸는지는 이 포스팅을 참고.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한 때 인터넷 상에서 중층 당시 중화전에 걸었던 현판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참고로 중층 중화전 현판은 경운궁 대화재 당시 같이 불 타 없어졌다.[6] 사진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7] 소의 혀 모양으로 오려낸 장식 부재.[8]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9] 옥좌 위에 다는 집 모양의 모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