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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자이크로 FC | |||
Goyang Zaicro FC | |||
<colbgcolor=#171c61><colcolor=#f7e2c8> 정식 명칭 | 고양자이크로축구단 | ||
영문 명칭 | Goyang Zaicro Football Club | ||
법인명 | (사)고양하이에프씨 | ||
창단 | 1999년 4월 3일([age(1999-04-03)]주년) | ||
해체 | 2017년 1월 16일([age(2017-01-16)]주년) | ||
구단 형태 | 종교 구단 | ||
소속 리그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1999~2002) 내셔널리그 (2003~2012) K리그 챌린지 (2013~2016) | ||
연고지 | 경기도 고양시 | ||
홈구장 변천 | 익산공설운동장 (2003 / 18,317석) 김포종합운동장 (2004~2006 / 5,068석) 안산와~스타디움 (2007~2012 / 35,000석) 고양종합운동장 (2013~2016 / 41,311석) | ||
연고지 변천 | 전라북도 익산시 (2003) 경기도 김포시 (2004~2006) 경기도 안산시 (2007~2012) 경기도 고양시 (2013~2016) | ||
구단명 변천 | 할렐루야 축구단[1] (1999~2002) 익산 할렐루야 FC (2003) 김포 할렐루야 FC (2004~2006) 안산 할렐루야 FC (2007~2011) 안산 H FC (2012) 고양 Hi FC (2013~2015) 고양 자이크로 FC (2016) | ||
이사장 | 이영무 | ||
단장 | 이웅규 | ||
상징색 | 빨강색, 남색 | ||
웹사이트 | [2] | ||
우승 기록 | |||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1회) | 2006 | ||
퀸스컵[3] (1회) | 2009 | ||
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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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고양시를 연고로 K리그 챌린지에 참가했던 축구단.1999년 창단되어 할렐루야라는 이름으로 실업 리그에서 익산-김포-안산을 거쳤고, 2013년 고양에 마지막 터를 잡으며 프로 전환했다. 하지만 2016 시즌을 끝으로 K리그 탈퇴를 신청하며 해체되고 만다.
2. 시즌별 일람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171C61> | 고양 자이크로 시즌별 일람 |
시즌 | 리그 | FA컵 | ACL | CWC | ||||||||||
디비전 | 리그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점 | ||||
2013 | 2부 | K리그 챌린지 | 6 | 35 | 10 | 11 | 14 | 43 | 50 | -7 | 41 | 16강 | - | - |
2014 | K리그 챌린지 | 8 | 36 | 11 | 14 | 11 | 36 | 41 | -5 | 47 | 2라운드 | - | - | |
2015 | K리그 챌린지 | 8 | 40 | 13 | 10 | 17 | 46 | 68 | -22 | 49 | 32강 | - | - | |
2016 | K리그 챌린지 | 11 | 40 | 2 | 10 | 28 | 21 | 72 | -51 | 16 | 3라운드 | - | - |
3. 역사
3.1. 할렐루야 독수리의 후신?
"고양은 1980년에 출범한 할렐루야 축구단의 역사를 계승한다. 반면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고양과 할렐루야의 기록을 구분하고 있다. 1983년 K리그 원년멤버로 참가해 초대 우승을 차지했으나 1985년 아마추어로의 전환하며 K리그 무대를 떠났다. 1992년 이랜드 축구단이 1983년 창단된 임마누엘 축구단을 인수, 재창단하며 실업 무대를 평정했으나 1998년 해체됐다. 1999년 임마누엘 소속 선수들을 주축으로 할렐루야가 다시 창단했고 내셔널리그에 참가했다. 2012년 고양시에 둥지를 틀었고, 프로팀으로 전환해 2013년 챌린지에 참가했다. 올해는 지난해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승격의 기틀을 만들 계획이다. " - 과거 연맹 웹 사이트의 구단 소개글.
일단 구단에서는 한국 최초의 프로구단인 1980년에 창단한 할렐루야 독수리의 후신으로 자처하고 있다. 할렐루야 독수리는 1983년 초대 프로리그(슈퍼리그)에서 우승했으나 프로 무대 대신에 창단 본래의 목적인 선교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1986년부터 프로리그에서 실업리그로 옮겼으며, 결국 1998년에 IMF로 해체되었다.
이것을 한국 개신교 22개 교단 총무단과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같은 시기에 해체된 이랜드 푸마 축구단[4]과 합쳐져서 할렐루야 축구단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할렐루야는 이랜드가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의 키트를 지원받았었다. 이를테면 예전에는 푸마[5]나 뉴밸런스 같은 브랜드들이었다.
일단 1999년을 기점으로 구단 역사의 승계 여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 1. 할렐루야 축구단의 후신이다 : 초대 할렐루야 축구단의 구단주였던 최순영 前 신동아그룹 회장이 1999년 할렐루야 축구단 재창단 후 기념행사에 꾸준히 모습을 나타냈으니 재창단된 할렐루야 축구단의 정통성을 인정해줄 수 있다.
- 2. 임마누엘 축구단의 후신이다 : 1999년 당시 해체된 할렐루야 축구단 출신 선수들 10명을 데려온 뒤 단순히 구단명을 변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랜드 푸마는 이랜드의 후원 철회 후 해체된 것이 아니라 이영무 감독의 주도하에 남은 선수들을 끌어모아 임마누엘 축구단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어 이후 Hi FC로 이어진다.
- 3. 할렐루야와 임마누엘, 어느 쪽의 후신도 아닌 완전 새로운 별개의 구단이다 : 초대 할렐루야 축구단의 운영주체였던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은 1997년 할렐루야 유소년 축구클럽을 창단해 지금까지도 운영하고 있으나, 1999년 재창단한 할렐루야 축구단은 안산 ~ 고양 시절 별도의 유소년 축구단을 운영해왔었다.
프로축구연맹에서는 1999년 재창단된 할렐루야를 위의 소개글처럼 '1998년 할렐루야 축구단이 해체하자 임마누엘 축구단에서 할렐루야 축구단 소속 선수들을 들여오며 재창단한', 즉 1980년의 초대 할렐루야와 별개의 팀으로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는 듯한 문구가 있다. 이 문구는 역사 계승을 인정하는 문구와 해석상 충돌한다. 다만, 임마누엘 축구단(이랜드 푸마)은 프로축구 무대에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Hi FC가 임마누엘 축구단의 후신인지에 대해서는 연맹 또한 해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
어차피 1999년을 기해 이영무 개인의 사유구단이 되어버렸다 봐도 과언이 아니므로, '운영의 주체'에 중점을 뒀을 때 그냥 1999년 창단됐던 팀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 고양 자이크로의 리그 탈퇴 및 해체 후 이영무는 아프리카 축구선교를 간답시고 또 '할렐루야 축구단'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쯤 되면 주변에 온갖 피해를 줘가면서까지[6] 개인이 편한대로 없앴다 만들었다를 반복한다고 볼 수 밖에 없으며, 이런 막장스런 구단에는 역사의 승계니 뭐니 운운할 가치조차 없다. 일단 원년 할렐루야 축구단 시절의 우승 트로피는 이영무가 개인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구단의 역사에 관련된 기사들.
3.2. 내셔널리그의 유랑자
[7] |
안산 H FC |
Ansan H FC |
2003년에 실업리그가 K2리그로 개편되면서 전라북도 익산시를 연고로 하여 K2리그에 참가했는데 익산의 원불교측과의 마찰[8]로 경기도 김포시로 이전했다.[9] 김포 시절에는 나름 성적이 괜찮아서 2006 시즌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후 김포시와도 연고지 체결 기간도 만료되면서 2007년에는 경기도 안산시로 옮겨 2012년까지 연고지를 이어갔다.
웹 사이트에 가 보면 '2010년 안에 프로축구리그 입성 및 2020년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린다'고 나왔었으나, 실상은 2010년이 지나도 프로 입성에 실패하면서 'K리그 복귀와 세계 최고의 명문이 되기까지...'로 대문 글귀가 달라졌다. 일단 승강제가 만들어지고 아주 좋은 성적만 거둔다면 직빵으로 꿈에 그리던 K리그 복귀는 가능하다.
2011 시즌을 끝으로 안산시와의 연고 협약이 끝났는데, 놀랍게도 시장실로 쳐들어가 연고 협약을 강제로 연장했다는 설이 돌면서 축빠들에게 비난을 듣고 있다. 그러나 이 쪽은 안산시의 태도에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었다. 일단 2012년은 안산시에 눌러붙어 끝까지 시즌을 치렀다.
3.3. 프로 전환
프로 전환 이후 2015년까지 사용했던, 고양 Hi FC로서의 엠블럼.
불미스러운 일로 어찌저찌하여 안산에서 2012 시즌을 더 치렀으나 결국 연고지를 옮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시즌 종료 후 유력 연고지로 하남시가 꼽히기도 했지만, 2013년에 K리그 승강제가 도입되면서 K리그 2부리그에 참가를 천명, 이 과정에서 고양시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팀 이름을 안산 H FC에서 고양 Hi FC[10]로 다시 바꾸고 K리그 연맹의 2부리그 참가 승인으로 2013 시즌 2부리그 참가를 확정지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양 KB국민은행이 해체되고 도리어 KB국민은행이 FC 안양의 메인스폰서 참여가 확정되면서 묘하게 꼬였는데, 결국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FC 안양이 고양 KB의 후신이 아닌 신생팀으로 규정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리고 2012년 12월 17일에 프로 출범식을 가졌다. 고양 KB에 애착을 가지고 있던 고양의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지지하던 팀이 프로 진출을 거부해서 속썩이더니만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팀이 갑툭튀해서 고양 연고팀으로 자리잡아버렸으니 곱게 봐줄래야 곱게 봐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3.4. 2013 K리그 챌린지
시즌 초중반만 해도 2승 7무 8패로 충주 험멜과 함께 꼴찌를 다투는 승점자판기였고, 2008년 시즌 경남 FC에서 짤막하게 활동한 바 있는 브라질 용병 알미르를 건져왔지만, 알미르가 첫 출전한 7월 13일 경찰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무려 8:0이라는 스코어로 대패하는 치욕을 맛봤다. 이 충격적인 대패 이후 단합 대회를 가지며 팀웍을 다졌다고 한다.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8월부터 리그가 재개된 뒤로는 알미르가 6경기 3득점 3도움으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줌과 함께 알렉스까지 6경기 7득점 3도움으로 덩달아 살아나며 6연승을 달리고 있다. 특히 챌린지의 2강 중 하나인 상주 상무마저도 꺾어버렸다는 것이 주목할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6연승 이후 기세가 주춤했고, 워낙 상반기의 성적이 개판이었던지라 승격까지는 무리였다.
3.5. 2014 K리그 챌린지
결국 알미르는 울산 현대로 이적 후 임대, 알렉스는 자유계약 자격[11]으로 둘 다 강원 FC에 가버리고 말았다. 지난 시즌의 주포들을 경쟁팀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시즌 시작과 함께 이랜드로부터 스폰을 받게 되어 허전했던 유니폼에 이랜드 로고를 박아넣고 뛰었으나 이랜드 축구단 창단이 가시화되면서 이랜드가 불과 한달 남짓만에 손을 떼버렸고, 이랜드 로고도 유니폼에서 빠졌다. 일단 유니폼은 그대로 뉴발란스 후원이긴 했지만 2014 시즌 중반 이영무 감독이 구단 조직을 사유화하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제보가 문화체육관광부 신고센터에 접수되어 조사가 시작되면서 7월 27일 감독직에서 갑작스레 사임하였고 수석코치로 있던 이성길 대행 체제로 이어갔지만, 기술위원장으로서 여전히 구단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이성길 감독대행은 사실상 실권이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으로도 연봉이 하위권에 들어가는 팀인데도 이길 경기 지고 질 경기 이겨가며 어찌 어찌 중위권에서 버티고 있었지만, 팀의 득점 대부분을 책임져왔던 알렉스가 나가자 바로 붕괴되었다. 결국 애초에 가능성이 안 보이던 충주 험멜과 부천 FC 1995를 제외한 중위권 6개팀 중 최초로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가 확정되었다.
3.6. 2015 K리그 챌린지
메인 스폰도 없어 빌빌거리던 작년과 달리 굿피플이라는 수수께끼의 구호 단체를 메인 스폰서로 유치했다. 명목상으로는 국제개발 NGO인데 조직도를 보면 당시 총재가 조용기. 게다가 이 단체는 네팔 대지진 때 구호활동을 펼친답시고 네팔로 날아가 선교활동을 펼치면서 욕을 얻어먹은 바 있다. 어쨌든 이번 시즌도 고양 Hi FC는 개신교의 돈으로 굴러가는 꼴이 되었다.한편 시즌 개막 한 달여를 앞두고 기술위원장으로 옮겼던 이영무 전 감독이 무혐의 판결을 받으면서 고양 감독으로 재선임되었다. 구단 측에서는 이영무 감독이 심각한 명예훼손을 당해 구단 차원에서 원로 축구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재선임하였다고 밝혔으나, 팬들 입장에서는 어이없고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5월 초 기준으로 클래식, 챌린지를 통틀어 유일하게 무승부가 없는 남자의 팀이었다가 5월 16일 안산 경찰청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남자의 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5위로 떨어졌다. 10라운드 현재 4승 1무 4패로 5위지만 득점 6점-실점 12점으로 득실차 -6이라는 괴악한 기록을 쓰고있는데 이길 때는 1:0, 2:0, 2:1 이런 식으로 간신히 이기지만 질 때 0:5로 한꺼번에 골을 먹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게다가 다음 경기가 최근 4경기 3승 1패에 14득점이라는 엄청난 공격력을 보이는 서울 이랜드 FC 때문에 이 경기에서도 안드로메다행 열차를 탈 수 있을지 기대하는 타팀 팬들이 많았고 그 기대대로 서울 이랜드에게 2:4로 지며 4승 1무 5패 득점 8점 실점 16점 득실차 -8이 되고 만다. 그러나 바로 다음 경기에서 경남 FC에게 1:0, 대구 FC에 2:1로 2경기 연속 1점차로 이기면서 여전히 승은 패보다 많은데 득실차는 마이너스인 해괴한 스탯을 기록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기준 8승 3무 9패 20득점 29실점으로 5위를 기록 중이다. 중하위권으로 처질 것이라는 시즌 전 예상과는 달리 수원 FC와 승강 플레이오프 마지막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중. 단 여전히 이길 때는 똥줄승[12] 질 때는 안드로메다라는 공식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상태다. 그런데 7월 25일 부천과의 경기에서 2:3으로 패하면서 6위로 내려갔다. 10월 초반까지는 6위를 유지하며 부천과는 5위 다툼 중이었으나, 실점이 51점으로 공동 10위.
시즌 막판 홈경기를 뜬금없이 파주시에서 치르면서 모든 팬들을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다. 프런트 입장에서는 새 지역의 관중 동원을 노렸겠지만 그 파주 경기에서조차 관중 수를 천 명도 못 넘겼다.
시즌 최종순위는 8위. 13승 10무 17패 46득점 68실점. 득실차 -22로 최저 득실차에 , 최다실점 1위를 기록했다.
3.7. 2016 K리그 챌린지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출신의 공격수 남하늘이 입단했다. 청춘FC 종영 이후 첫 프로 진출이긴 한데, 어렸을 적 이영무 축구교실 출신이었던 영향도 어느 정도 있는 듯 하다.그리고 팀의 용품 스폰서를 맡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 자이크로[13]에서 명명권을 취득했는지, 2016년 연맹 1차 이사회에서 '고양 자이크로'로 구단명 변경이 승인되었다. 인지도를 높이려는 자이크로 측에게도, 종교색을 청산하려고 노력하는 구단 측에게도 모두 이득이 될 것이라 판단한 걸로 보인다.
이후 고양 자이크로로서의 엠블럼이 등장했는데 평판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색감이나 글씨체[14]에서나 어딜 봐도 20세기의 촌스러운 향기가 진하게 풍겨온다는 악평이다. 더불어 할렐루야의 후신을 자처하며 그려넣었던 독수리가 빠지고 스폰서 기업 자이크로 로고에 있는 곰을 집어넣었다.
유니폼의 메인스폰서로는 작년의 굿피플이 아닌 자이크로가 박히게 됐다. 참고로 자이크로는 스스로의 소개에 따르면 '2012년에 설립된 회사로 자본금 1억 5,000만 원, 매출액 32억 원, 사원수 8명 규모의 소상공인'이란다. 험멜 코리아보다도 규모가 딸리는 이런 영세한 회사한테 명명권 및 메인스폰을 맡겼다는 점에서 재정적으로 엄청난 난관에 맞닥뜨렸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2월 말 이영무 감독이 다시금 사임하고 새롭게 이낙영 감독이 부임했다. 1982년 생으로, 정식으로는 한국에서 역대 최연소 프로 감독.[15] 선수 생활은 2005년 한국 내셔널리그 소속의 강릉시청 축구단에서 몇 경기 뛴 것이 커리어의 전부다. 고려대 졸업을 앞두고 큰 부상을 입어 빠른 은퇴를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며, 때문에 2006년부터 유상철 축구교실에서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 2015년 방이중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으면서 일찌감치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최연소 프로 감독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으나, 프로 경력이 전혀 없으며 성인팀 코치조차 안 거쳐보고 처음부터 감독을 맡는다는 면에서 뭔가 불안한 시각이 있다. 뭣보다 이영무 前 감독이 구단에서 완전 손을 뗀 게 아니라 이사장으로 한 단계 더 올라간지라 사실상 바지감독이 아니냐는 설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최종 성적은 2승 10무 28패라는 괴악한 기록으로 압도적인 최하위. 경남이 2016 시즌에서 -10점을 받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보았을 때 더더욱 최악의 상태다. 놀랍게도 9월 7일 경기에 경남에게 7:0이라는 야구스코어로 패배한다. 이러다 보니 차라리 이영무가 그립다는 일부 팬도 있었지만, 이 양반도 이 양반대로 바쁜 일이 있었다.
심지어 R리그에서도 수도권 팀들이 모인 A조에서도 최하위 8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도 1승 2무 8패.[16]
결국 2016년 10월 16일, 경남과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최하위가 확정된 가운데 김현회의 칼럼을 통해 여주시로 연고지 이전을 할지도 모른다는 설도 있다는 것까지 밝혀졌다. #
게다가 10월에는 재무이사가 문화체육부의 보조금 4.7억 원 중 3.8억 원 가량을 부당집행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 중 2.9억 원 가량을 구단 운영비에 보탰고[17] 나머지 9천만 원은 허위 정산하여 재무이사가 꿀꺽했다. 재무이사가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 등을 이용해 돈세탁을 했다는 점이 특히나 상당히 악랄한데, 여기에 이영무 이사장의 친인척들이 돈세탁용 계좌까지 제공해주는 막장 중의 상막장을 보여줬다.
3.8. K리그 탈퇴와 해체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영무 이사장은 연맹 측에 K리그 탈퇴 의사를 전했고, # 탈퇴 의사가 빠르게 연맹 이사회를 통과하여 K리그 입성 4년만에 다시 프로 무대를 떠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이영무 이사장이 구단 직원 및 선수들에게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바로 연맹 측에 리그 탈퇴 의사를 전한 것이 드러나며 남다른 구단 사유화 클래스를 보여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고양 자이크로의 서포터즈인 알타이르는 페이스북을 통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알타이르 측에서는 어떻게든 구단의 프로 리그 탈퇴를 막기 위해 구단 관계자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이영무의 아내는 '공론화시키면 선수들이 다치고 연맹에서 도와줄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에 '도와준다'는 것이 '챌린지 잔류'를 뜻하는 것이냐고 되물어봤지만 '챌린지를 나가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라 재차 답변했다고 한다.
그럼 대관절 무엇을 도와주냐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데, 이영무 이사장이 연맹 측에 탈퇴 의사를 전했다는 당시의 기사를 보면 횡령 및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해야 탈퇴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연맹 측에서는 '이런 팀이 프로에 있다'는 그 자체가 부끄러운 사실이므로 횡령건까지는 무리더라도 임금체불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줘서 후딱 내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빨리 나가는 것과, 그 뒷정리를 도와준다는 소리였다.
일단 11월 8일 이사회에 보고는 되었고, 2017년 K리그 챌린지는 고양을 제외하고 진행하는 것이 잠정적으로 결론났다. 12월 임시 이사회와 2017년 1월 정기 이사회에서 결론이 나올텐데, 그동안 위에 언급한 문제들의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알타이르는 하루만에 여러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놓았다.
- 연맹은 어째서 프로 리그에 종교색이 뚜렷한 안산 할렐루야를 끌어들였는가?
- 안산 할렐루야는 어째서 1년에 구단 유지 비용만 20 ~ 30억이 들어가는, 감당 못할 프로행 제안을 받아들였는가?
- 2015년에 진작 이야기가 돌고 있었던 스포츠토토의 유소년 육성지원금 횡령 및 유용건을 어째서 2016년 막바지가 돼서야 기사화시켰는가?
- 어째서 2016년에 들어오자 고양 자이크로에게 프로에서 나가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는가?
- 전혀 프로 같지 않은 구단 운영은 혹시 고위 관계자의 통제 때문이 아니었는가?
이영무 혼자서 쥐락펴락하던, 그야말로 사유물이나 다름없는 구단을 여기저기 개신교 연줄 위주로 운영 자금을 끌어모았으나 종교 색채를 당장 지우라는 압박으로 인해 이마저도 여의찮아져서 말라죽어갔다는 정황이야 그 동안의 행보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 이 문서에서도 수 차례 언급하고 있지만, K리그 전 구단을 통틀어 최저의 인기와 성적을 자랑하는 것에 더해 서포터도 몇 명 없는지라 다른 축구팬들의 공감보다는 '그러게 왜 그런 질떨어지는 팀을 응원했냐?'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11월 21일, 구단이 사실상 공중분해 상태라는 보도가 나왔다. 선수들은 정규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 무기한 휴가를 받았지만 모두가 1년 계약이었던지라 대부분 다른 팀을 알아보고 있다고... 이낙영 감독도 1년 계약이었던지라 정황상 다른 일자리를 찾아볼 것으로 보인다. 선수단 급여 및 수당은 몇 개월째 전액 체불된 상태였고, 프런트들의 퇴사도 줄을 이었다. 아마추어 전환을 명시했으나 저런 문제들을 다 해결하려면 적어도 근시일 내에는 멀쩡하게 아마추어 무대로 가는 것마저 불가능해 보인다.
11월 25일에는 알타이르와의 인터뷰가 나왔다. 앞서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연맹이 도와준다는 것이 구단이 빨리 프로 무대에서 손 털고 나가게 도와준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체불 문제와 스포츠 토토 지원금 유용 문제를 해결해야 탈퇴 승인이 난다는 보도가 재차 나온데다가, 함부로 나서면 다친다던 선수들은 대부분이 다른 팀을 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알타이르 측은 이영무 측에서 자신들을 속이려고 대충 둘러댄 것이라 의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맹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16 시즌 고양의 선수단 연봉 총액은 6억 4,643만 원에, 평균은 2,308만 원. 2명의 외국인 선수에게는 모두 4,070만 원이 산정되어 되레 국내 선수들보다도 더 낮은 급여를 보여줬다. 참고로 연맹 규정상 명시되어 있는 선수 최저 연봉이 2,000만 원이므로 대부분의 선수들을 최저급여로 굴려먹었다는 소리. 게다가 대부분이 체불됐다.
2016 시즌 클래식과 챌린지를 통틀어 연봉 총액이 10억 아래인 유일한 팀이다. 즉, 연봉 액수로는 꼴찌인데, 유일하게 10억 아래라는 부분과 6.5억 남짓의 연봉 총액에 주목하자. 바로 윗순위 충주도 연봉 총액은 11억 남짓으로 고양보다 거의 반절쯤 더 돈을 썼다.
1월 16일 연맹이사회에서 충주 험멜과 함께 리그 탈퇴가 승인되었으며, 해당 시점에서 2017 시즌 참가팀이 모두 정해진 K3리그로 가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임금 체불과 스포츠 토토 지원금 유용건은 결국 쫓아낸 뒤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듯 하다.
3.9. 해체 이후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양시와는 애초에 연고 협약도 맺지도 않은 상태였으며, 고양시의 지원금만 낼름낼름 받아먹었다고 한다. 게다가 해체되면서 그 동안 밀린 고양종합운동장과 사무실 이용료는 한 푼도 안 내고 째버렸다고 한다. 미수금은 48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탈탈 털린 고양시 공무원들이 축구단 자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된 건지 전혀 같은 지역 내에 있는 전혀 별개의 구단인 고양시민축구단한테도 엉뚱하게 불똥이 튀어 시 지원금 3천만 원이 끊기고 졸지에 빈집이 되어버린 고양종합운동장 입성에 난항을 겪는 등 온갖 고생을 했다. #
이영무 前 이사장은 서산에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교실을 차렸다. 뒷쪽 현수막에 자신을 고양 자이크로 프로축구단 감독, 이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 또 어처구니. 2017년 3월에는 오사카 국제 고등학교 U-18 축구부 창단식에 참석했다.[18] 미국 프라미스 교회와 월드 미션 프론티어 선교회의 초청으로 2017년 6월부터 8월까지 아프리카 5개국을 돌며 축구선교여행을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자료에서는 또 할렐루야 축구단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다[19]. 축구 선교에 함께 할 선수들도 모집하고 있는데, 자격을 대충 요약하자면 '최소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했고 지금 당장은 뛸 팀이 없는 선수들'. 아프리카 축구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2017년 9월 기독교대안학교들을 대상으로 '이영무컵'이라는 유소년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이낙영 감독은 종전 직장이었던 방이중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2018년, 모교 중앙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내셔널이나 K3로 옮겨간 와중에 이도성, 이예찬, 김성수는 다른 챌린지 소속팀들로 제각기 적을 옮겼다. 골키퍼 강진웅은 은퇴 후 용문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로 지도자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16년에 입단한 신인 골키퍼 임홍현은 2017년 부로 선수 생활을 그만 둔 듯 하다가 2021년, K4리그 거제시민축구단에 플레잉코치로 부임하였다.
성인팀과 마찬가지로 연이은 체불로 인해 학부모들이 직접 돈을 모아 운영비를 충당하는 등 온갖 고생을 하다가 내쳐진 유소년팀은 U-15팀의 이용권 감독을 대표로 따로 고양 FC라는 법인을 새로이 출범, 계속 유소년 리그에 참여하고 있다. 이후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모토로 우수한 성적을 올리며 고양시 내에서 여러 후원을 받기 시작하는 등 고양 자이크로 산하 유스 시절보다 더 정상적인 운영과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 다음 카페를 통해 이들의 소식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일산 FC라는 유사 단체까지 생기며(그렇다고 고양 FC가 덕양구 지역만을 운영하는 게 아니다. 일산 FC도 덕양구 쪽에서 선수 뽑는다.) 서로 라이벌리를 만들어가며 2018년에는 상호 라이벌전도 주기적으로 하고 있는 등 꽤 잘 성장해간다. 두 팀 모두 학생+학부모+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있으며, 주로 지역의 자영업자들과 버스 회사들인 명성운수, 고양교통의 후원을 받는다. 2018년 하반기부터는 고양시청의 후원도 받는 중.
2017 시즌 경기 20권역 리그에서 7팀 중 2위의 성적을 거두며 전반기 고교 왕중왕전에 진출했고, 64강 상대 삼일공고를 승부차기로 꺾으며 32강에 올라갔지만, 강적 포철고를 만나 0:3으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4. 유산
팀 자체는 막장 중 막장으로 운영되었지만, 이 곳을 거쳐간 선수들은 아무 죄가 없다. 몇몇은 오히려 이 곳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다른 구단에 이적해 지금까지도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들도 많이 있다.- 김준태 - 2010년 강원 FC에서 4경기가 전부였던 별볼일 없는 프로 경력이었지만, 2015년 고양에서 38경기 2골을 기록하며 중원의 핵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활약을 인정받아 2016년, 서울 이랜드로 이적하고 3년간 활약했다. 2020년 천안시 축구단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다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 김유성 - 경남 FC와 대구 FC, 광주 FC를 거치며 5시즌 동안 32경기 출전만을 기록했다. 2015년 고양으로 이적해 2016년 상반기까지 57경기 13골을 기록하며 팀의 주포로 활약해 프로 커리어 최전성기를 보낸다.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의 복무 차 잠시 포천시민축구단에서 뛴 뒤 현재는 목포시청 축구단의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 남하늘 - 2015년 방영되었던 청춘 FC에 출연했던 공격수. 방송 이후 청춘 FC 1호 프로 진출 선수가 되어 2016년 고양에 입단했다. 프로 신인이었지만 16경기에 나서 2골을 넣는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팀 해체 이후 같은 연고지의 고양시민축구단, 일본 테게바자로 미야자키 등을 거쳐 현재는 충주시민축구단에서 활약하고 있다. 성공한 선수는 아니지만, 은퇴를 고민하던 선수에게 고양이 재기의 무대를 마련해준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 박정수 - 내셔널리그와 일본, 중국, 태국을 거쳐 29살의 나이에 고양에서 늦깎이 K리그 데뷔를 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15경기 2골의 성적을 기록했고 이후 공익 근무로 병역을 해결한 후 강원 FC에 2018년 입단하며 K리그1에 입성해 광주 FC에서 뛰었다.
- 여효진 - 과거 엄청난 유망주였다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흘러흘러 2013년, 고양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이 곳에서 그는 프로 커리어의 전성기를 찍으며 3년 동안 71경기 1골의 성적으로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지만 안타깝게도 은퇴 이후 암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2021년 7월 31일,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 알렉스 - 고양 Hi FC 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창단 멤버로 영입되어 2014년 여름, 강원으로 떠날 때까지 46경기에 나와 26골을 넣는 활약으로 팀이 중위권 싸움이 가능하게끔 만든 장본인. 고양 이후 강원, 대구, 안양, 서울 이랜드 등 여러 팀들을 옮겨다니면서 K리그 2 통산 61골을 넣었다. 현재는 FA 신분이다.
- 안지호 - 많은 논란을 가져온 선수로,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제명되었다가 2013년 복권된 뒤 2014 시즌 고양에 입단하며 K리그에 복귀한다. 이 곳에서 34경기에 출장하며 폼을 끌어올린 뒤 강원과 서울 이랜드를 거치며 프로 생활을 이어나갔다. 유산이긴 한데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유산. 현재는 강릉시청 축구단 소속이다.
- 이광재 - 2007년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 우승 당시 플레이오프의 사나이로 불리며 조커로 활약했던 공격수. 이후 전북, 대구, 그리고 중국무대까지 거친 뒤 2013년 팀의 창단 멤버로 들어와 3시즌 동안 65경기 5골을 기록하며 2015 시즌 종료 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 이도성 - 할렐루야 시절부터 함께 한 이 팀의 얼마 안 되는 레전드. K리그에 참여한 뒤로 129경기에 출장했고, 그 전 내셔널리그 시절까지 합치면 이 팀에서만 218경기를 뛰었다. 팀 해체 이후 김준태와 같이 서울 이랜드로 이적했으나, 이도성은 한 경기도 나오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 이예찬 - 2016 시즌 입단한 팀에 얼마 안 되던 유망주. 37경기에 출전하는 등 신인임에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덕분에 팀 해체 이후 서울 이랜드에 입단해 K리그 경력을 이어가게 된다. 현재는 천안 시티 FC 소속.
- 임홍현 - 2016년에 입단한 선수로, 첫 시즌 4경기에 출전했다가 그 시즌 종료 후 팀이 해체되자 한국 내셔널리그의 천안시청 축구단으로 이적했다가 1년 만에 팀을 떠나 현역 은퇴를 한 것이라 여겨졌으나, 2021년을 앞두고 K4리그의 신생팀 거제시민축구단 플레잉 코치로 합류하였다.
- 주민규 - 사실상 고양이 남긴 유산 중 가장 큰 아웃풋. 2013년 드래프트에서 고양에 지명되어 2014년까지 2시즌간 수비형 미드필더로써 56경기 7골을 기록한다. 본래 대학 시절 포지션을 고양에서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간간히 공격수 부상 시 땜빵으로 최전방에 서는 단순한 정도였는데, 이 포지션에서 잠재력을 본 서울 이랜드의 마틴 레니 감독이 2015년 창단 멤버로 주민규를 데려간다. 2015년 23골, 2016년 14골을 넣으며 2부리그를 폭격했고, 상주 입대 후 데뷔한 K리그1에서도 17골을 넣으며 단숨에 리그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오른다. 이후 이랜드, 울산 현대를 거쳐 제주 유나이티드 FC에 이적한 주민규는 2021년 첫 K리그1 득점왕과 베스트 11, 울산 현대에 다시 돌아온 2023년에는 첫 K리그1 우승에 득점왕과 베스트 11[20]을 수상받더니 2024년에는 늦은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었고 데뷔골까지 넣으면서 더욱 승승장구하고 있다.
- 진창수 - 재일교포 축구선수로 현재는 FA 신분으로 TNT FC에서 훈련중. 2008년 한국에 온 뒤 줄곧 K3와 내셔널 무대에서만 뛰다가 2013년 고양의 창단멤버로 들어왔다. 33경기 5골을 기록하며 1부리그 팀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에이전트의 일 처리 미숙으로 붕 뜨게 되었고 2014년 내셔널리그 경주 한수원을 거쳐 2015년 다시 고양에 돌아와 39경기 7골을 넣으며 주포로 활약, 2016년 부천 FC 1995에 입단하며 탈 고양에 성공한다.
- 최병도 - 2011년 인천에서 5경기 출장에 그치며 프로와 멀어졌던 선수. 2013년 창단 멤버로 합류해 2014년까지 2시즌 동안 64경기 2골을 기록하며 2015년 부천 FC 1995로 이적, 팀의 주전 수비수가 된다.
- 홍순학 - 7년 동안 수원에서 뛰던 선수가 2015년, 갑자기 고양으로 이적해 12경기를 소화하며 로테이션 멤버로 말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이후 인도네시아 리그로 향하며 짧게 있었지만, 고양이 보유했던 선수 중 A매치 출장 경력이 있던 유일한 선수.
5. 논란과 한계
5.1. 종교 구단으로서의 색채
널리 알려져 있듯이 개신교 구단이고, 내셔널리그에 있을 때까지는 아예 선수들을 신도로만 뽑아서 크게 논란이 되진 않았다. 물론 비호감으로 여기는 사람은 있었어도 교인들끼리 골 넣고 기도를 하든 말든 자기들끼리 하는 거니까. 2012년 이전에 쓰던 팀 로고[21]를 봐도 십자가가 나온 만큼 개신교 구단이었고, 경기 전 아래와 풍경을 볼 수 있었다.경기 시작 전에 모여서 기도를 하는 모습 |
거기에 골을 넣으면 11명의 박주영이 세레모니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22]
하지만 축구를 통해 선교를 우선으로 한다는 이유로 일부 반 기독교층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 팀의 전임 감독이자 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 일하던 이영무의 "국가대표선수는 개신교도로만 이뤄져야 한다."라는 발언 및 기도로 덩달아 이 팀도 욕먹었다. 이영무는 기술위원 그만두자마자 할렐루야 감독으로 다시 돌아갔으며, 2010년에는 하나님의 국가대표라는 책을 썼다. 이 책자 앞에 당당하게 "축구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라고 적혀있다. 이영표, 허정무, 박주영 추천을 내세우며 홍보했다.[23]
그런데 웃기는 것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후 이영무의 주도로 안산에서 열린 남아공 16강 기념 자선경기[24]에서는 박지성을 끌여들였다는 거다. 이 경기에서 박지성은 감독으로 나섰다. 주최측은 빨간색과 붉은 악마가 싫다고 유니폼도 일부러 어웨이 유니폼인 흰색+파란색 유니폼을 입혀놨다. 박지성은 불교방송에서 불교 대표 유명인으로 나와 인터뷰한 바 있음에도 말이다.
월간 베스트 일레븐에서 여기 서포터 인터뷰로 종교 구단으로 이미지를 줄여달라고 아쉬워하며 그 덕에 특정종교 친목 축구단 수준으로 외면당한다면서 그래놓고 무슨 프로축구단이 되겠냐고 일침을 가한 적이 있다.
2012년, 고양 Hi FC로 팀명을 바꾸고 프로 구단으로 전환한 이후부터는 종교색을 청산하고 구단의 운영 방침 또한 철저하게 수익을 내는 방향으로 선회했으며, 무료표를 없애겠다고 선언하는 등 프로구단 다운 상업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구단명과 엠블럼에서는 더 이상 종교적 심벌을 찾을 수 없으며 십자가를 형상화하던 기존 유니폼은 민무늬 유니폼으로 교체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프로화가 되면서 기독교인이 아닌 선수들도 입단하게 되었는데 기존과 같이 기독교적 색채를 유지한다면 비기독교 선수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종교 색채 빼겠다는 말 믿고 입단을 선택한 비기독교 선수들은 사기당한 셈 아닌가. 2016년부터 드래프트 제도가 폐지되긴 했지만, 심지어 선택권도 없이 드래프트에서 이 팀에 지명되면 얼마나 억울할까? 당연히 구단으로서도 관증 흥행을 넘어서 우리나라에서 커져가는 기독교(특히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생각하면 종교색을 청산하는 게 팀에 더 도움이 된다.
5.2. 프로 전환 이후에도 버리지 못한 종교색
하지만 2013년, 다른 구단과 달리 중남미로 전지훈련 겸 자선투어를 떠났지만, 아직도 기독교적인 색채를 버리지 못했음이 드러나 온갖 욕을 다 먹었다. 심지어 경기 시작 전 후원 교회 목사가 축사에서 할렐루야를 외치기도 했다. 그리고 기독일보에서 나온 기사와 기사의 사진들을 통해 아직도 종교색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게다가 전지훈련 기간 동안의 연습경기들 도중 하프타임에 선수들이 관중들 앞에서 교회의 예배 시간이나 선교할 때에나 출만한 워십댄스를 추는 충공깽스러운 영상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축구팬들은 그야말로 분기탱천하고 있다.그리고 하프타임의 워십댄스를 남미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구실을 대며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되자 2013년 2월 1일 구단 블로그에 해명글이 올라왔다. 그런데 기껏 해명글이라고 올린 글이 "우리는 기독교적 가치를 가진 구단이다." 결론적으로 종교적 색채를 포기하지 못한 구단임을 공식 선언했고, 자연스럽게 종교색을 빼겠다는 약속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또 팀명의 Hi가 '할렐루야 임마누엘'이라는 것도 공식화했다. 전지훈련 동안 행해졌던 기독교 의식에 대해서는 '교회의 후원을 받아서 간 전지훈련이기에 후원에 대한 예우로써 기독교 의식을 행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러한 예우는 다른 방법으로 했어야지 FIFA에서도 경기 중 종교 의식을 금지하고 있는 판에 예우를 종교적인 방식으로 했다는 점에서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개선되어서 K리그 공식경기에서는 집단적인 종교적 표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중남미 전지훈련에서도 득점을 하더라도 모 선수처럼 선수 개인이 기도하는 모습은 보였어도 이전처럼 단체로 기도하지는 않았다. 또 '모든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가 존중되듯, 구단 구성원 개개인의 종교의 자유와 표현 또한 존중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는데 문제는 할렐루야 시절 기독교 선수보다 비기독교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더 좋다라고 밝힌 이유가 '비기독교 선수를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면 더 좋기 때문'이라고 한적이 있기 때문에 과연 저 선언이 실제로 지켜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여러모로 성남 일화 천마와 비교가 되는 구단. 성남 FC는 일화 시절 통일교 기업의 후원을 받는다고 해서 경기 중에 통일교 의식을 행한 적도 없으며, 관중들에게 통일교 선교 활동을 행한 적도 없었다. 또한 성남은 다른 프로구단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구단으로, 현역 시절 구단의 레전드 선수였고, 또 전 감독이기도 했던 신태용의 경우 독실한 불자인 것이 그 예.
종교 구단으로서의 구단 미래상을 구상한 문서도 있어 비난받고 있지만 사실 이 문서는 프로 출범이전 안산 할렐루야 시절 발표한 내용이다. 물론 프로화 한 지금도 크게 달라진 마인드가 보이는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소속 구단인 셀틱 - 레인저스가 왜 종교색을 빼버렸는지 모른다면 더 이상 프로구단으로서의 목적과 발전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일단 경기에서는 예전 같은 집단적인 종교적 표현을 내보이지는 않는 중. 물론 집단적인 표현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놨기 때문에 개별적인 기도 세레모니는 간간히 보인다. 이세환 선수가 기도 세레모니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식사나 의료지원은 외부 업체 및 병원과 협약을 맺어 해결했다만 뉴발란스로부터의 후원이 여전히 빠듯하여 기독교 단체로부터 받는 후원이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인 관계로[25] 비시즌기에 앞선 중남미 축구 선교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그 전에 이영무 단장 겸 감독부터가 목사다.
그래도 대외적으로 종교색을 털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는 자각이 있긴 한 것인지, 여러 움직임을 보여주고는 있다. 그 중 하나가 2013년 9월 전통 문화 교육 기업이라는 풍류도와 협약을 맺은 것. 대략 홈경기 공연팀, 관람, 에스코트 등을 지원받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풍류도 웹 사이트의 선풍칼럼을 훑어보면 대충 감이 오겠지만 특정 색채를 지닌 단체다.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카오틱한 이런 행보에 잠시 많은 이들이 혼돈에 빠지기도 했다.
2014년 7월, 성적상으로 큰 문제가 없음에도 이영무 감독이 자진 사퇴를 발표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는데, 주된 원인은 종교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구단이 지속적으로 종교적 활동을 벌이는 점, 구단 재정의 대부분이 종교 단체의 후원으로 충당되는 점등이 주된 문제로 지목되었다. 고양의 종교 문제를 프로축구연맹에서 계속 주시해왔고 이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냄에 따라 구단에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영무 감독은 자진사퇴 반년 만인 2015년 2월, 다시 감독으로 컴백하며 그냥 고양이 노답 구단임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이후 2016년 팀명이 고양 자이크로로 바뀌고 이낙영 감독이 새로 선임된 이후로도 이사장 자리를 지키는 등 그간의 모습들을 보면 사실상 종교색채를 완전히 지워내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5.3. 막장 운영과 팬들의 외면
비단 이러한 종교적 색채, 종교 강요 문제와 별개로 팀 운영이 제대로 되는가 하면 그것도 절대 아니었다.우선 16 시즌 기준 K리그의 23개 구단 중 유일하게 공식 웹사이트도 없었고, 그나마 대체용으로 만든 블로그조차도 기본적인 관리며 방문객 수며 모두 하나같이 부실하다. 심지어는 홈구장 내에 매점이나 식당, 기타 부속시설 등 편의시설도 빈약하고, 중계 카메라에 잡히는 E석으로만 관람을 제한하거나, 팀명이 자이크로로 바뀐 이후로도 구단 버스 등 여러 시설물을 제때 교체해 주지 않고 Hi FC 시절의 로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영무가 이사장으로 자리잡은 뒤에는 2016년 재무이사가 국가 지원금을 세탁하여 부정집행하는데 힘을 보태준다든지, 16 시즌을 끝내고 K리그를 탈퇴하겠다고 나서는 등 이젠 과한 종교 색채고 뭐고 다 떠나서 아예 구단의 사유화가 제일 우려되는 상황.
이딴 식의 무개념 행보를 옛날부터 쭉 봐 온 고양시민들은 물론이고 외지인들한테도 지지를 받을 리도 만무하기에 구단의 인기 면에서도 더더욱 바닥을 기고 있다. 프로 출범 첫 해인 2013년에 기록한 평균 관중은 738명으로, K리그 21개 구단 중 압도적인 꼴찌를 기록했으며, 이후 2014년에는 603명(22개 구단 중 21위), 2015년에는 682명(23개 구단 중에서도 꼴찌)으로 2015년 K리그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세 자릿수의 평균 관중을 기록한 것은 물론,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했던 2016년에는 347명이라는, 전례가 없고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충격적인 평균 관중수와 함께 개막전을 포함한 홈 20경기 중 단 1경기도 관중 1,000명을 넘기지 못한 치욕스러운 기록까지 세우는 등 K리그를 넘어 명실상부 국내 4대 스포츠 리그 최악의 비인기 구단으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 게다가 오랜 고양토박이들이나 고양시에 거주하는 골수 축빠들조차도 고양 자이크로가 본인들의 지역을 연고로 한 축구단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또한 아무리 관중과 인기와 성적이 저조하다 해도 편의시설 같은 것이라도 제대로 갖추며 운영한다면 괜찮겠는데, 그것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고양 자이크로 홈경기 홍보 현수막조차 없었다. 고양시에 있는 스포츠팀이 뭐 있는지 물어보면 NC 다이노스의 퓨쳐스리그팀 고양 다이노스나[26]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농구팀이라고 얘기를 많이 한다.[27] 서울 이랜드 FC의 팬인 한 블로거가 2016년 고양 자이크로와의 원정 경기를 직관 갔을 당시의 모습을 올렸다[28].
결국 과한 종교적 색채와 개막장 운영 때문에 프로 전환부터 해체될 때까지 고양시민들로부터 철저히 평판이 나빴던 것은 물론 끝까지 지지했던 기존의 크리스천들도 처참한 성적과 막장 운영에 학을 떼고 등을 돌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기사에 달렸었던 댓글들을 보면 종교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차라리 FC 서울[29]을 응원하거나 KBO 퓨처스리그의 고양 다이노스 경기를 보러 가겠다는 소리까지 나왔을 정도. 현재는 포탈들이 연예 뉴스와 스포츠 뉴스의 댓글 달기 정책을 전격 폐지하여 해당 댓글들을 어떤 방법으로도 볼 수가 없다. 구단 재정 상황이나 성적이 좋지 못해 관중이 많이 찾아오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쳐도 광역 인구 1,000만 명을 돌파한 연고지, 그것도 수도권에 위치한 구단으로서 믿겨지지 않을 수준의 처참한 흥행을 기록한 것과 지나친 종교 색채 논란을 넘어 막장 운영까지 더해졌으니 이 정도면 기본적인 프로 구단으로서의 존재 가치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팀이라 해도 무방하다. K리그 시민 구단 운영의 비판점에서는 시민 구단을 변호하거나 반박하는 의견도 많이 존재한다.[30] 하지만 이 구단의 운영에 대해서는 옹호 측에서마저도 반박도 하지 않거나 똑같이 혹은 더 심하게 깠었다.
자이크로가 해체된 현재는 4부리그 K4리그 참가팀 고양시민축구단이 사실상 고양 지역 축구단의 정신적 후계자로 인정받는 추세아. 물론 자이크로가 있었을 때는 이 둘이 같이 있었지만, 애초에 사이가 좋을 리는 만무했다. 더욱이 고양 KB국민은행 시절을 응원하던 팬들은 이미 이 팀을 감히 건방지게 굴러 들어온 돌로 치부하면서 고깝게 여기기도 하고 자이크로가 사라진 뒤 유일하게 남은 고양 연고 축구단이 고양시민축구단인 것도 있고, 자이크로보다도 훨씬 정상적인 운영을 보여주고 있기에 차라리 그 쪽이 시민들에게 지지를 더 많이 얻는다.
그런데 바닥에는 바닥이 더 있다더니 구 K3리그에서는 서울 FC 마르티스라는 자이크로보다도 더 막장인 팀이 있었다. 개신교 구단이라는 점도 같다. 물론 아마축구[31]라는 걸 참작해도 이 팀의 막장성은 차라리 고양 자이크로가 오히려 새 발의 피일 정도다.[32] 해체는 아니지만 그 막장 끝에 결국 5년 간 출전 자격을 전격 박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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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리그에 참가했던 할렐루야 축구단의 후계다.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연맹 웹 사이트에도 할렐루야 축구단의 후계로 기록되어 있다.[2] 사실상의 공식 웹 사이트다. K리그 소속 구단 중 유일하게 공식 웹사이트 없이 블로그를 통해 소식을 전달했다.[3] 태국축구협회에서 주최한 컵대회로,1970년 첫대회가 진행되었으며 2010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4] 1990년대 중반 실업무대의 최강팀으로, 당시 팀의 간판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레전드 중 하나이자 서울 이랜드 FC의 2대감독인 박건하로, 프로무대로 진출하기 전에 뛰었다.[5] 현재는 푸마에서 한국 현지법인을 설립하여 푸마코리아로 떨어져 나간 상황이다.[6] 프로 시절에는 대부분의 선수를 연맹 규정상 최저 봉급으로 굴려먹던 것에 더해 밥먹듯이 체불을 일삼았고, 심지어 후술하듯 마지막 시즌에는 경기장 및 사무실 이용료를 고양시에 한 푼도 안 내고 튀어버렸다.[7] 2012년에 사용한 '안산 H FC'의 로고[8] 익산시는 원불교의 성지이다.[9] 이 과정에서 인천광역시도 가세했는데, 이들은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 활용을 위해 축구단 신규 창단과 할렐루야 축구단의 유치 중 하나를 고민하다가 인천 유나이티드 FC라는 이름의 시민 구단을 창단하였다.[10] 팀명인 Hi가 할렐루야와 임마누엘의 약자를 합친 것이다.[11] 체불이 이어지자 못 견디고 계약해지를 요청했다고 한다.[12] 지금까지 올린 8승 모두 1점차 승리다.[13] 과거에 FC 안양의 유니폼을 후원했던 적이 있다. 이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유니폼을 후원했는데, 품질이 좋지 않아 말이 많았고, 또한 야심차게 준비했던 중국, 베트남 진출조차도 말짱 물거품이 돼버리며 재정난을 겪다 2020년 10월 폐업신고를 하면서 문을 닫았다.[14] 하필 한글 글씨체가 서울남산체라서 고양과 관련도 없는 서울서체는 왜 사용하는 것이냐는 비판도 많이 있다.[15] 1994년, 조윤환 감독이 33세의 나이로 유공 코끼리 축구단을 맡은 전력이 있었지만, 그 기간이 2달 남짓에 거진 감독 대행 수준이었다.[16] 챌린지 팀 중에는 서울 이랜드가 3위, 부천이 4위, 안산이 6위를 기록하고 있다.[17] 유소년 및 아마추어 축구 활성화 명목으로 지급된 보조금이므로 오로지 해당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 가령 '고양 자이크로배 고양시내 아마추어 축구대회' 같은 대회를 열어서 대회 운영비 및 상금에 사용했다.[18] 오사카 소재의 한국계 학교지만, 축구부 창단식은 서울특별시에서 열렸다.[19] 고양 자이크로 시절에도 코치였던 서현철이 할렐루야 축구단의 코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20] 2022년 득점왕은 조규성이 가져갔으나 베스트 11은 2022년에도 선정되어 3년 연속 수상이다.[21] [22] 그나마 이런 세레모니를 자주 선보이는 박주영이나 김신욱 같은 선수들도 골을 넣은 그 자리에서 하지는 않고 자리를 잡아 올린다. 그래서 일각에선 이 둘은 그래도 진심을 담아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올리는 게 느껴진다는 평도 다수 있다.[23] 참고로 책 추천인 3명도 모두 크리스천이다.[24] 대표팀의 기독교 신자팀 vs 할렐루야.[25] 본 문단에 걸려 있다가 웹 사이트 폐쇄로 인해 삭제된 링크 중 하나는 '고양시 목회자축구 선교단(약칭 고목선)에서 고양 Hi FC를 위한 돈을 모금하고 있다는 글이었다.[26] 2018년을 끝으로 현재는 본 연고지 창원시로 이전. 현재는 키움 히어로즈의 2군 고양 히어로즈가 대신 들어섰다.[27] 이 팀도 사실 대구광역시에서 14년 동안 있다가 야반도주식으로 연고지 이전한 거라서 처음부터 좋게 보는 사람들도 없었다. 하지만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나가고 2016년에 한 차례 우승하면서 고양시의 인기 스포츠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는데, 2022년 모기업 오리온그룹이 구단 운영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구단이 해체되면서 2022년을 끝으로 팀이 해체되고 고양 캐롯 점퍼스로 재탄생되었고, 이후 캐롯을 거쳐 다시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로 바뀌었다.[28] 이 날이 고양 자이크로의 마지막 홈경기날이었고, 고양 오리온의 2016-17 시즌 홈 개막전이기도 했는데, 얼마나 인기가 없고 고양시민들조차 무관심했는지를 대변해주기도 한다.[29] 고양시에서 제일 가까운 K리그 팀이자 매년마다 수만 명의 평균관중을 달고 다니는 K리그1의 명실상부 인기 구단이다.[30] 아무래도 한국 축구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인기만 기형적으로 과하게 높고 반대로 국내 리그인 K리그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그 아성에 썩 못 미치는 수준인데, 이런 상황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 수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런 시민 구단들이 필요한 측면도 없지않아 있고 또 해외의 리그 규모가 약소한 축구 리그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종종 볼 수 있긴 하다. 물론 이것이 정상적인 체계냐는 지적과는 별개의 문제지만, 어느 정도는 이런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31] 당시 기준이다. 현재는 세미프로 리그로 구분이 개정되었다.[32] 적어도 고양 자이크로는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K리그 챌린지였던 당시 2부리그의 중하위권 정도는 찍어줬고, 경기를 이기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는 축구팀으로서의 일정 수준의 경기력만큼은 보장되는 팀이었다. 하지만 마르티스는 팀 운영 기간 내내 탈꼴찌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축구팀으로서의 경기력과 운영조차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