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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01:23:05

이랜드 푸마

파일:이랜드푸마.jpg
이랜드 푸마
<colbgcolor=#072854> 정식 명칭 이랜드 푸마 축구단
영문 명칭 E-Land Puma
최종 소속 리그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창단 1992년([age(1992-12-21)]주년)
해산 1998년([age(1998-02-28)]주년)
구단명 변천 이랜드 축구단 (1992)
이랜드 푸마 축구단 (1993~1998)
최종 감독 이영무

1. 개요2. 역사3. 주요 선수4. 역대 감독5. 우승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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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존재했던 실업 축구단.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중견 기업 이랜드그룹서울 이랜드 FC를 창단하기 전에 창단했던 구단이다. 서울 이랜드 FC 창단 때는 구단 차원에서의 언급이 별로 없었으나 이랜드 푸마 선수 출신인 정정용 감독을 선임하고 나서부터는 이랜드 푸마를 서울 이랜드 FC의 전신으로 은근히 언급한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지금은 없어진 고양 Hi FC의 전신으로 보고 있다. 서울 이랜드와의 관계는 모기업이 같다는 점과 인적 유산을 공유[1]한다는 점 정도로 볼 수 있다.

2. 역사

프로축구 6개 구단 체제가 고착화되던 1992년에 향후 프로구단 전환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나름 야심차게 이랜드그룹이 창단을 준비했던 구단이다. 구단의 뿌리가 기독교에 있었던 것도 있고 마침 당시 아마추어 구단 중 재정난을 겪고 있던 임마누엘 축구단이 있었기 때문에 임마누엘의 선수단 10명과 이영무 감독, 김학수 코치를 데려왔고, 프로행을 거부한 선수 등 12명을 추가로 영입해서 첫 선수단을 구성했다. 지금이야 이영무 감독이 고양 Hi FC에서의 막장 행보로 욕을 많이 먹지만, 이때는 능력있는 신실한 축구인 정도로 평가받았으므로 창단 때부터 화제가 되었다.

이후 이랜드 구단은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서 창단과 동시에 상위권 팀으로 거듭났고, 1994년 아마추어 대회인 전국축구선수권대회와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1995년에는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춘계리그, 전국축구선수권대회, 그리고 실업축구 컵대회인 실업축구선수권대회까지 3관왕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이런 무시무시한 성적에는 그럴만한 동기부여가 있었는데, 바로 1995년 K리그에 전라권 구단 창단 계획이 있었고, 이에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의 고향이 목포시인 것을 근거로 삼아 이랜드 푸마도 이 자리를 노리고 프로화를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당시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나온 특급 유망주 박건하를 영입할 수 있었고, 전력이 거의 프로급으로 갖춰질 수 있었다. 선수들도 프로에 갈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성적이 잘 나왔다고. 하지만 결국 포스코전남 드래곤즈가 창단되어 이는 무산되었다.

구단의 투자도 만만치 않게 빵빵했다. 1994년 2관왕을 달성하고 베트남에서 열린 호치민시티컵 친선축구에서도 한국 대표로 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한껏 고무된 구단은 1995년 해외 전지훈련을 보내줘 선수단이 태국에서 동계훈련을 하고 오는 등 실업구단에선 보기 힘든 대접을 받았다. 1996 시즌을 대비해선 독일과 영국을 가는 유럽 전지훈련도 소화했고, 선수수급도 매년 7~8명의 대학리그 준척급 선수들을 수혈하는 등 거의 프로와 다름없이 운영되었다.

그러던 와중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졌고 소비재 중심의 이랜드그룹은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경영난에 빠진다. 더이상 축구단을 운영할 여력이 안되었던 이랜드는 1998 시즌 직전인 1998년 2월에 팀 해체를 선언하고 축구단을 접었다. 이후 이 선수단과 이영무 감독을 할렐루야 축구단이 흡수 합병하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고양 Hi FC의 전신 할렐루야 축구단이 완성된다.[2]

구단 역사상 전혀 관계는 없지만 서울 이랜드 FC를 운영하는 이랜드 그룹은 이랜드 푸마가 나름 본인들의 옛 구단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랜드 푸마 소속 선수들을 지도자로 활발히 영입하고 있다. 박건하, 인창수, 정정용 등 푸마 출신 감독이 벌써 세 명째 부임 중이다.

3. 주요 선수

4. 역대 감독

5. 우승 기록


1995년이 최전성기로 이때 이랜드는 리그인 전국실업축구연맹전, 리그컵인 전국실업축구선수권, 그리고 아마추어 FA컵의 일종인 전국축구선수권을 모두 제패해 미니 트레블을 기록했다.


[1] 서울 이랜드 2대 감독이 박건하, 4대 감독이 인창수, 그리고 6대 감독이 정정용이었으니 실제로 인력 풀은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리얼 이랜드.[2] 원년 프로 구단인 할렐루야 독수리와는 이름만 같은 구단이다.[3] 전신인 광주 상무, 상주 상무를 포함해서[4] 한국 내셔널리그의 리그컵이었던 내셔널선수권대회의 전신[5] 베트남에서 90년대에 열던 친선축구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