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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22:10:13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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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ge Against The Machine
1992
Evil Empire
1996
The Battle of Los Angeles
1999
Renegade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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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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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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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daa520> 이름 <colbgcolor=#0c0000><colcolor=#daa520>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팀 커머퍼드, 잭 데 라 로차, 브래드 윌크, 톰 모렐로
입성 연도 2023년
후보선정 연도 2018년, 2019년, 2021년, 2022년, 2023년
후보자격 연도 2018년 }}}}}}}}}

파일:D35299F0-A94E-4256-858A-16C852ABB793.png파일:Acclaimed-Music-Logo-Dark.png
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1990년대 아티스트
31위

파일:Evening_Standard_logo_투명.png
이브닝 스탠더드 선정 25대 미국 록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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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fff> 2018년 이브닝 스탠더드The 25 greatest American rock bands of all time를 발표.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너바나 비치 보이스 에어로스미스 이글스 R.E.M.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건즈 앤 로지스 라몬즈 플리트우드 맥 본 조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토킹 헤즈 스틸리 댄 메탈리카 펄 잼 스트록스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더 밴드 픽시즈 벨벳 언더그라운드 버즈 블론디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밴 헤일런 도어즈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 푸 파이터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같이 보기: 영국 밴드, 미국 밴드
}}}
}}}}}} ||

파일:스핀(잡지) 로고.svg
스핀 매거진 선정
지난 35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0,#fff> 2020년 음악 잡지 스핀창간 35주년을 기념해서 1985년부터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를 발표했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너바나 프린스 마돈나 N.W.A 나인 인치 네일스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투팍 샤커 Run-D.M.C. R.E.M. 퍼블릭 에너미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건즈 앤 로지스 비스티 보이즈 닥터 드레 U2 펄 잼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The Neptunes 노토리어스 B.I.G. 토리 에이모스 마이클 잭슨 제인스 어딕션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아웃캐스트 라디오 헤드 칸예 웨스트 제이지 에미넴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비욘세 리키 마틴 레이디 가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스파이스 걸스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비키니 킬 드레이크 빌리 아일리시 서브라임 노 다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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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fff>{{{#!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000> 파일:ratmlogo.jpg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
}}}
파일:Rage-Against-The-Machine-press-photo-2020-billboard-1548.webp
▲ 왼쪽부터: 팀 커머퍼드, 브래드 윌크, 잭 데 라 로차, 톰 모렐로
A.K.A. RATM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결성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데뷔 앨범 [1]
멤버 잭 데 라 로차 (보컬)
톰 모렐로 (기타)
팀 커머퍼드 (베이스 기타)
브래드 윌크 (드럼)
장르 랩 메탈, 뉴 메탈, 얼터너티브 메탈, 랩 록
링크 파일:ratm.png 인스타그램

1. 개요2. 멤버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앨범3.2. 라이브 앨범
4. 음악 성향5. 정치 성향6. 활동
6.1. 1990년대6.2. 2000년대
7. 이야깃거리
7.1. H.O.T.의 표절7.2. Killing in the Name 2009년 크리스마스 차트 1위 사건7.3. Sleep Now In The Fire

[clearfix]

1. 개요

We're Rage Against the Machine from Los Angeles, California!
Fuck you, I won't do what you tell me! [2]
좆 까, 니가 하라는 대로 안 해!

Rage Against the Machine. 약칭 RATM. 미국의 4인조 메탈[3] 및 펑크 메탈, 뉴 메탈 밴드.

뛰어난 음악 실력과 사회 비판적인 가사, 그리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평단에서도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 밴드이다. Run-D.M.C., 퍼블릭 에너미, 비스티 보이즈를 이어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랩 메탈 밴드이며, 특히 이들의 데뷔 앨범은 이미 클래식의 반열에 올랐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사회운동가, 힙합 팬, 메탈 팬, 펑크 록팬을 아우르는 두터운 팬층을 가진 밴드이며 이 이유는 아래에 서술한다.

2. 멤버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앨범

3.2. 라이브 앨범

4. 음악 성향

그루브 있는 메탈 사운드에 날카로운 하드코어 랩을 얹은 랩메탈/뉴 메탈을 하는 밴드다. 곡 자체는 단순한 기타 리프의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 리프와 그루브가 하나하나 깔끔하면서도 중독성 있다.

원 영상 아카이브
톰 모렐로는 현대판 지미 헨드릭스라고 불리며 기타를 이용해 턴테이블 소리나 이펙터를 이용해 온갖 신기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멤버 중에 DJ가 있어서 이 밴드를 턴테이블 디스크 스크래치를 섞은 힙합밴드인 건가 하고 착각할 정도.[6] 몇몇 소리는 이펙터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기타 현의 스크래칭만으로 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운드를 통해 단순한 리프의 곡을 풍성하게 만든다. 보통 스크래치 디제이는 LP와 크로스 페이더를 사용하여 음을 컷하며 디제잉하는 반면 모렐로는 그것을 응용하여 스크래치하듯 기타의 현을 손톱으로 긁고 기타의 전원을 껐다 켰다 하면서 스크래칭을 하는 독보적인 연주법을 선보인다. 특히 Bulls on Parade의 간주 부분의 역동적인 기타 스크래칭은 오히려 턴테이블 디제이들이 따라하기도.

잭의 랩과 그로울링 역시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공격적이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곡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하는데 적합한 보컬이다. 랩 실력 또한 수준급이며 리릭시스트 라운지라는 힙합 엠씨들의 컴필레이션에 자주 참여하였다. 멕시코계로 어린 시절 어느 정도의 인종차별에 시달렸다고 하며 본인의 분노를 표출할 수단은 랩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대에서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그야말로 "선동"시키는 랩핑과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라이브 실력이 대단하며, 오늘만 사는 것 같은 잭 델라 로차의 분노어린 랩핑, 메시지 전달, 연주 등 뭐하나 빠질 것이 없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보컬, 베이스, 기타, 드럼의 밴드를 이룰 수 있는 필수 요건만 갖춘 상태에서 엄청난 연주력을 보여주는 밴드. 이런 음악적 특별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이들은 앨범마다 "이 앨범은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이외의 악기는 쓰지 않았다."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기본적인 사운드는 레드 제플린에서, 랩과 락을 섞은 것은 Run DMC비스티 보이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랩이 없는 곡이 없진 않지만 극소수로, 특히 보컬에 멜로디가 들어간 곡은 커버곡인 'Beautiful World'가 유일하다.

프로듀스 쪽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이들의 음반은 믹싱과 마스터링을 이해하는 바이블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몇몇 트랙에서 오버레코딩을 한 흔적이 있지만, 기타 소리에 한해서이고 대체적으로는 4인조 밴드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 벌스 파트에선 기타의 오버레코딩을 하지 않는 등 라이브와 레코딩이 차이가 없을 정도의 사운드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프로듀스 능력과 멤버들의 연주 센스가 더해지면서, 이들의 송라이팅 중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기타 솔로 후 소리를 죽여가면서 베이스와 드럼의 간헐적인 연주만으로 긴장감을 끌어 가다가 마지막 후렴에서 감정이 기복을 터뜨리는 듯한 악곡 진행은 하드 리스너들 사이에선 고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곡이 Killing In The Name, Bullet In My Head, Ashes In The Fall, Guerilla Radio 등이 있다.

공연 때마다 웃음기 전혀 없는 순도 높은 정치적 메시지와 분노를 표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며 그 흔한 앵콜곡 하나 부른 적이 없는 밴드이다. 공연의 마무리는 항상 잭이 주먹을 치켜드는 것으로 엔딩. 드럼과 베이스의 유기적인, 단순하지만 찰진 그루브한 리듬에 변칙적이고 현란한 기타, 강력한 그로울링과 랩핑이 얹혀진 그야말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밴드이다.

랩메탈, 랩/락 밴드들은 사실 골수 힙합 팬들뿐만 아니라 골수 락/메탈 팬들애개도 완전히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RATM은 메탈/하드코어 팬들뿐만 아니라 힙합 팬들에게도 그야말로 본좌급 대접을 받았던 밴드이다. 뉴욕 하드코어 쪽에서는 태도와 사상 면에서 큰 존중을 받았고 힙합 쪽에서는 메시지와 랩 스킬, 그루브한 리듬라인에 있어 존중 받았다.

5. 정치 성향

이들은 굉장히 진보적인 성향으로 유명한데, 존 라이든, 존 레논, 로저 워터스 등과 비견될 정도이다.[7] 특히 음악가가 자신의 정치 성향을 음악으로 표출하는 일은 흔하고[8] 록 음악가들 대부분이 진보 성향이지만, RATM은 사회운동을 하기 위해 음악을 한다고 할 정도로 그들의 음악에서 정치적 메시지의 비중이 아주 높다. 들고 일어나자는 식의 가사가 많다.[9][10] 우파 유저가 RATM을 보고 "예전과 달리 너네 음악이 정치적으로 변했다"며 보이콧을 하자 톰 모렐로가 우리 음악은 언제나 정치적이었다고 쏘아붙일 정도이다.#

파일:attachment/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23.jpg
밴드의 정치 성향을 잘 보여주는 1집 앨범 자켓. 1963년 불교를 탄압하는 남베트남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소신공양틱꽝득 스님의 사진을 사용했다.

이들은 경제적 자유주의나 문화적 보수주의, 즉 보수(우파) 성향에 대해 30년 넘게 지속적인 비판을 해오고 있다.

밴드 이름 Rage Against The Machine에서 Machine은 자본주의와 그 시스템, 나아가 서구 기계 문명 전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이들의 성향은 아나키즘, 반자본주의, 반권위주의이다.

Bullet in the Head나 Township Rebellion, People of the Sun 등의 곡과 사파티스타에 대한 지지에서는 아나키즘 성향이 드러난다. 밴드의 거의 모든 음악들은 이런 견해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Sleep Now in The Fire나 Guerrilla Radio의 뮤직비디오, Maria의 가사 등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이는 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반미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일례로 Know Your Enemy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모든 것이 너의 적'이라고 규정하며, 2집 앨범 Evil Empire는 미국을 악의 제국이라고 표현했다. 또, 1996년 SNL 공연에선 성조기를 거꾸로 달려하더니 199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는 아예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정치성향을 노래로 표현하다보니 정치인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 가령 "Guerrilla Radio"에서는 대놓고 "고어에게 표를 주든가 아니면 마약왕의 아들에게 주든가"라는 가사[11]가 나오며, Testify 뮤직비디오에서는 아예 그 둘이 외계인이 보낸 첩자로 사실 한 몸이었다는 식의 풍자를 했다.

음악적인 메시지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행동파 뮤지션이기도 하다.[12] 1집 수록곡인 Freedom은 특별한 증거 없이 FBI 요원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복역 중인 미국 원주민 출신 인권운동가 레오너드 펠티어(Leonard Peltier)를 위해 만든 곡이며, 3집 수록곡인 "Guerrilla Radio[13]"는 흑인인권 운동가 무미아 아부 자말[14]의 무죄를 주장하는 곡인데, 이 싱글의 수익을 직접 그의 석방운동에 일부 기부하기도 했다. 자세한 관련 기사는 여기로.

거기에 공연심의에 반발에 공연장에서 네 명이 단체로 나체로 침묵시위를 하는가 하면, 어린이들의 피땀을 뺏어 마시는 대기업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하기도 하는 등 사회적 참여도 대단한 편이다. [15]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2010년 한국의 기타 회사였던 Cort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과 연대해 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해고노동자들의 미국 원정 시위와 공연에 동참하기도 하며, "기타는 자유를 위한 수단이지 착취의 수단이 아니다(Guitars should be a means to liberation, not exploitation)."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밴드가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된 데는 성장환경이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톰 모렐로의 아버지는 케냐 독립운동 게릴라 리더 출신이자 케냐 독립 후 UN 대사 등 외교관으로 활동한 응에테 은조로게고 큰당숙이 케냐의 국부인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인데, 아버지가 케냐로 돌아가면서 헤어졌기 때문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지는 미지수.[16] 대신 그를 홀로 키운 어머니의 영향이 많이 보인다. 우선, 톰의 어머니인 메리 모렐로는 고등학교 교사이자 활동가로서 반검열 활동단체인 PFRR[17]의 회장이다. 이 단체는 PMRC[18]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단체로서도 유명하다.

또한 톰에게 대학 진학을 권했던 사람 역시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에게 "네가 무슨 음악을 하든 네 음악적 메시지는 네 학력에 의해 좀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이유로 대학 진학을 권고했다고 한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이 무려 하버드 대학교. 본인은 하버드 출신으로 좋았던 것은 알바 구하기 쉬웠다는 점 말고는 없었다고는 하지만 당연히 이 말은 농담이다. 실제로 톰 모렐로의 하버드대 출신의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은 꽤나 큰 공신력과 지지 기반을 가지게 해주었다. 사실 RATM에서 전 곡의 가사는 보컬인 잭 데라로차가 작사했는데, 국내에서는 사회적 활동이나 음악적 사상의 부분에서 톰 모렐로가 더 부각이 되는 것이 이 증거라고 할 수 있다.[19][20]

잭 데라로차의 집안도 꽤나 엘리트 집안이다. 잭의 아버지인 로버트 데라로차(Robert de la Rocha)는 유명한 미술가였고[21], 어머니 올리비아 로린 카터(Olivia Lorryne Carter)는 문화인류학 교수 출신이다.

거기에 톰이 흑백혼혈로서, 잭이 멕시코계로서 받은 인종차별 역시 이들의 노선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외에도 퍼블릭 에너미비스티 보이즈에게서 음악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편, 그들의 안티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음악을 자본주의의 수혜자인 대기업 소니를 통해 유통하는 것을 들어 말과 행동이 다른 거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22][23] 이에 대해 보컬 잭 데 라 로차는 한 인터뷰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정치 토론에 참여시키고 대화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다. 소니가 가지고 있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는 더 많은 사람들을 혁명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싸움에 동참하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도구다."라고 답했다. #[24] 또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는 "결국 정보의 보급은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통로를 향해서 보급되기 마련이다. 노엄 촘스키가 반스 앤 노블[25]에 자신의 책이 팔리는 것을 반대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자신의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니까. 그렇기에 무정부주의자들이 점거한 건물에서 공연을 하는 것도 멋지지만 그라나다 힐스에서부터 슈투트가르트까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혁명적인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도 꽤 멋지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

2022년 6월 24일 미국 연방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하여 낙태에 대한 헌법적 보호를 폐지했다. 이에 대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빈곤층 및 노동자 계급의 재생산권[26]을 제한하는 행태라고 비판하며, 티켓 판매로 모인 후원금 47만 5천 달러를 위스콘신 주일리노이 주에 위치한 재생산권 운동 단체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27]

6. 활동

6.1. 1990년대

결성 전 톰 모렐로가 활동하던 밴드인 Lock Up이 해체된 이후, 같은 밴드 소속의 드러머인 존 녹스가 새로운 밴드를 준비중이던 모렐로에게 팀 커머퍼드와 잭 데 라 로차를 초대하여 함께 잼을 하자고 권했고, 여기에 모렐로가 당시 오디션에 낙방하던 브래드 월크에게 연락하여 모인 것이 결성의 시초가 된다. 이들은 잭 데 라 로차가 전 언더그라운드 하드코어 펑크 밴드 'Inside Out'을 위해 썼던 곡에서 영감을 얻어 현재 팀명을 정했다.

이후 총 12곡이 작업된 데모 테이프를 작업 후 (당시 2곡은 B-Side로, 3곡은 미수록되어 최종 9곡으로 완성) 여러 레코드 사의 제의를 받던 중 Epic Record와 계약하게 된다. 이들이 추구하는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의외일 수도 있으나, 톰 모렐로가 밝힌 바로는 '우리가 원하는 요청을 Epic이 수용했고, 이를 끝까지 존중했습니다. 우리가 창작하려는 모든 활동에 있어 최소한 이들과의 이념적인 갈등은 없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레이블 계약 이후 밴드의 데뷔 엘범이자 셀프 타이틀 음반 'Rage Against the Machine'이 1992년 11월에 발매되었다. 초반 판매량은 저조한 편이었으나 라디오를 중심으로 Killing in the name이 반응을 보이면서 상업적, 비평적인 성공을 모두 거두게 된다. 1993년 투어 중간에 참여한 Lollapalooza 페스티벌 참여 이후 밴드의 인지도는 더욱 상승했으며, 이는 이전 7만장 수준을 보이던 앨범 판매량이 40만장으로 치솟아 오르는 쾌거를 일으킨다. 이후 유럽 투어를 통해 인지도를 더욱 확대함으로써 96년 기준 미국내 100만장을 돌파하며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로 부터 트리플 플래티넘을 획득한다. 월드 와이드 기준은 300만장으로 추산된다.

이렇듯 성공적인 가도를 달리던 그들이었지만 1994년 후반부터 투어 일정이 중단 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밴드의 해체설이 돌기 시작한다. 11월 부터 진행된 2집의 레코딩 작업에서 프로듀서 브랜던 오 브라이언과 함께 23곡의 트랙을 녹음하던 중이었는데, 이때 톰 모렐로와 프로듀서간의 음악적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이 갈등은 오래가지 않아 정리되었고 둘은 화해했다고 모렐로가 밝혔다. 1995년 11월부터 12월까지 2집 Evil Empire의 녹음 작업이 진행되었고 1996년 4월 16일에 릴리스 되었다. 1집에 비해 더욱 힙합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Public Enemy와 Clash의 중간지점이 본 앨범의 흐름이라고 톰 모렐로는 밝혔다. 첫주 249,000장이 팔리면서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국내 100만장을 돌파해 트리플 플래티넘을 획득한다.

1999년 인천에서 열린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에 참가했다가 폭우 때문에 공연을 취소하였다.[28] 그러다 2000년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단독공연을 하였다. 아래는 당시 공연 영상이다.[29]
2000년 RATM 내한공연 요약 영상

당시 공연이 무성의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이 그 당시 RATM 공연 스타일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데, 서울 공연의 세트 리스트는 앨범으로도 나온 그랜드 올림픽 오디토리엄 공연보다 한 곡 정도밖에 적지 않으며, 우드스탁 공연보다는 오히려 한 곡이 더 많다. 앵콜 무대에 관해서도, 재결합 후에는 앵콜 무대를 가지는 편이지만 이 당시에는 서울이건 LA이건 우드스탁이건 간에 앵콜 공연을 하는 일이 드물었다. 어차피 할 노래 앵콜로 나눠서 부르느니 계속해서 이어 부르는 것을 선호했던 모양. 공연 후 주먹을 치켜드는 인사 후 바로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것도 다른 공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즉, 위에서 지적한 아쉬운 점들이 특별히 한국 공연이라서 무성의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코멘트의 경우, 관객과 마주 보는 소규모 공연장에서는 많이 하는 편이지만, 우드스탁과 같은 대규모 공연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그 줄어든 코멘트마저 상투적인 관객과의 대화보다는 상당히 정치적인 내용들을 다뤘기 때문에 코멘트 내용과 크게 상관없는 한국관객들에게 굳이 해야 할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레오너드와 무미아가 억울하게 감옥에 있으니 석방해야 한다!'라는 코멘트를 한국 관객들이 잘 알아들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영어로 말할 이유가 있었을까?

6.2. 2000년대

한편 2000년에 보컬 잭 데 라 로차가 탈퇴하자 나머지 세 명의 멤버는 사운드가든 보컬 크리스 코넬와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라는 그룹을 새로 결성해 활동했다. 크리스 코넬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RATM 멤버들이기 때문에 RATM이 크리스 코넬을 영입했다는 식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음악적으로 오디오슬레이브의 리더는 크리스 코넬이고, 락알못이 들어도 RATM보다는 사운드 가든의 음악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다.

오디오슬레이브 해체 후 2007년 다시 잭 데 라 로차와 RATM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공연 활동만 하고 음반 작업은 하지 않고 있다.

2008년 9월에는 공화당 전당대회 앞에서 진행되던 메탈 페스티벌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경찰 병력이 그들의 무대진입을 막아버렸다. 그러자 RATM은 무대 아래서 공연을 벌인 후 팬들과 함께 전당대회가 열리는 센터 빌딩으로 가두 행진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는 그 다음 날인 9월 3일 같은 도시에 있는 농구경기장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열었다. 공연이 끝나고는 다들 몰려나와 전날의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반-공화당, 반-정부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에게 경찰특공대가 들이닥쳤고, 그날 경찰에 체포된 사람의 수는 102명에 달했다고 한다.

2016년-17년에는 퍼블릭 에너미, 사이프러스 힐과 함께 "프로펫츠 오브 레이지(Prophets of Rage)"를 결성하여 공연 활동을 했다.#

Prophets of Rage에 보컬인 잭 데 라 로챠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는 개인 음반 작업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톰 모렐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중요한 역사적 순간[30]에 놓인 지금,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혼돈의 시기에 중립을 지키는 자들에게 돌아간다."라고 말했듯이, 지금이 바로 그 혼돈의 시기고, 우리는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지금이 바로 우리의 노래를 불러야 할 때라고. 지금이 난동을 부릴 때야. 함께 하고 싶은 놈들은 손들어."라고 말했다. 손을 들었던 건 팀, 브레드, 척, B-real, 그리고 퍼블릭 에너미의 DJ Lord였다."

저 말은 즉슨, 아마도 잭 데 라 로챠가 거절했다는 것을 완곡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의 영광과 인기만을 가지고 스타일을 우려먹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실제 잭은 솔로 활동에서도 힙합과 록을 비롯하여 일렉트로니카에 남부 민속음악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톰 모렐로 같은 경우 다른 활동에서도 뭘 해도 모렐로 같다라는 애매한 평[31]을 받고 있는 걸 보면 나름 현명한 행보라고 볼 수도 있다.[32]

잭 데 라 로차는 그룹이 한 번 해체한 이후로는 주로 힙합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런 더 쥬얼스의 2, 3, 4집에 연달아 참여해서 무지막지한 랩핑을 선보였는데, 아예 런 더 쥬얼스 제 3의 멤버로 넣어야 한다는 드립이 나돌 정도.

7. 이야깃거리

7.1. H.O.T.의 표절

1998년 국내 댄스그룹 H.O.T.의 3집 앨범 타이틀 '열맞춰'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Killing In The Name'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자세한 내용은 Killing In The Name참고. 들어보면 알겠지만 거의 번안곡 수준으로 흡사하다.

당시 PC통신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연예가 중계도 이 이슈를 다루면서 유명 음대생 수십 명을 상대로 표절 여부를 의뢰했는데 표절이라고 판단한 학생이 과반수로 나왔을 정도였다. 이에 RATM 측은 H.O.T.를 표절로 고소하겠다고 발언했으나 법정 싸움이 이득이 없다는 판단 하에 이를 취소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공연에 이 사건을 희화화하는 퍼포먼스를 여러 번 했었다는 말도 있었다. 아무튼 당시 RATM의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누군가가 이 표절 사실을 영어로 알렸고, 유저들은 표절이 분명하다며 H.O.T.를 비난하는등 며칠간 게시판이 뒤집어지기도 했다. # 2000년 RATM 내한공연 때 Killing In The Name이 나오자 사람들이 단체로 열맞춰를 떼창했다고 한다.

이 곡의 작곡가 유영진은 표절논란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넘어갔으며 H.O.T.는 이후에도 열맞춰 공연을 하기도 했다.

7.2. Killing in the Name 2009년 크리스마스 차트 1위 사건

Killing In The Name 참조

어찌 보면 영국판 파맛 첵스 사건. 물론 싱글을 돈 주고 사야 참가가 된다는 점에서 잉여력은 첵스의 그것을 초월하고, 정치적 의미에서도 거대 문화자본에 대한 저항이라는 코드가 끼어 있어서 첵스에 비해 그 의미는 더욱 묵직하다. 또한 영국판 1차 애니송 오리콘 차트 1위 만들기 운동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사건 전개가 매우 유사한데, 일본의 그것의 경우 문화 자본 내에서 비주류 문화가 주류 문화에 저항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게다가 더욱 충격과 공포스러운 것이, 저 두 사건이 모두 실패한 데 반해 이쪽은 성공했다. 역시 기행국가 영국다운 사건이다.

덧붙이자면 한국 누리꾼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씨엔블루의 외톨이야와 표절시비가 벌어졌던 와이낫의 파랑새를 차트 1위로 만들려는 운동도 이 사건을 벤치마킹했다. (외톨이야 표절논란 참고.)

그리고 그해 이 운동의 타겟(+사이먼 코웰)이자 엑스 팩터 우승자였던 조 맥엘더리는 그 후 저조한 음반판매로 인하여 2011년 소속 레이블 Syco로부터 계약을 해지당했다. 이후 오페라스타에 나와서 우승했으나 사람들은 그를 몰라본다.

7.3. Sleep Now In The Fire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Sleep Now In The Fire의 끝부분을 들어보면 엄정화의 노래 'Poison'이 나온다. 레코딩 중 일렉기타와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한인 라디오 방송 주파수가 혼선되어 엄정화의 노래가 잡음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몇 번씩 재녹음을 했을 때 오히려 잡음이 들어간 게 녹음이 잘 되기도 한 데다 멤버들이 오히려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대로 앨범에 넣어버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KBS 스펀지 41회 방송분에서 나왔다[33]. 참고로 뮤직비디오에서는 다른 소리에 묻혀서 안 들리니 들어보려면 원본 음원을 들어보자.


뮤직비디오는 마이클 무어가 감독했는데, 월 스트리트의 중심지인 뉴욕증권거래소조지 워싱턴 동상 앞에서 게릴라 공연을 펼치는 장면과 빈부격차에 대한 퀴즈쇼가 교차되며 나온다. 이 뮤직비디오의 촬영 도중 마이클 무어는 경찰에 연행되었고, 밴드 멤버들은 증권거래소로 진입하려다가 경비에 의해 제지된다. 촬영을 구경하려 모인 군중들이 멤버들을 따라 거래소로 진출할 것이 우려되자 뉴욕증권거래소는 거래일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아걸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금전적 피해가 없었다는 자막이 [34] 'RATM은 테러지지자'라는 공화당 정치인의 발언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뮤직비디오가 마무리된다.

이 뮤직비디오는 2000년 MTV VMA에서 베스트 락비디오의 후보에 올랐으며 림프 비즈킷의 Break stuff에 밀려 수상은 하지 못했다. 그러자 베이시스트 팀이 림프 비즈킷의 수상에 항의하는 뜻으로 무대 뒤 세트에 올라 수상소감을 방해하는 소동을 벌였다.

팀을 매드맨이라 지칭하던 프레드 더스트와 림프 비즈킷은 5년 뒤 'RATM의 영향을 받았다'는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파일:external/brobible.files.wordpress.com/rage-against-the-machine-sleep-now-in-the-fire-640x469.png
뮤직비디오 초반부 (위 유튜브 영상 1분 3초 부분) 에 어떤 남자가 'Donald J. Trump For President 2000' 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당선됨으로써 16년이 지난 후 재조명받게 되었다. 이 MV를 찍은 마이클 무어도 2016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함으로써 주목받았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가 두통령 선거에 나온적이 처음도 아니고 저때도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아닌 개혁당이라는 제3당으로 출마하려고 굉징히 크게 주목받으며 출마를 타진하다가 그냥 엎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뭔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저런건 아니고 나름 대선후보긴했었기 때문에 들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마이클 무어 감독은 2016년 대선 당시 모두가 트럼프는 낙선할 것이라고 예견할 때 진보주의 감독임에도 세태를 정확하게 읽고 트럼프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견한 것이기에 경우가 다르다. 당연히 트럼프를 지지해서 당선을 예측한게 아니라 일반 사회세태를 분석한 것

그리고 이 곡은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오프닝에서도 쓰인 바 있다.


[1] 1992년 11월 3일 발매[2] RATM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인 Killing In The Name의 가사.[3] 랩 코어와는 다른 장르이다. 하드코어 펑크 참고.[4] 워낙 충격적인 기타 사운드를 들려주는 톰 모렐로에 밀리는 감이 있지만, 탄탄한 기본기로 그루브 좋은 라인을 연주하는 실력 좋은 베이시스트다. 베이스 기타의 슬랩 연습곡으로 RATM의 팬들이라면 Take The Power Back을 항상 추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이름이 바뀌어 적혀있다.[5] 커버 곡만으로 이루어진 커버앨범으로 MC5Kick Out the Jams 커버 곡이 유명하다.[6] Mic Check과 같은 곡이 이런 스타일이다.[7] 로지 워터스는 강경 구좌파다.[8] 대표적인 예시가 핑크 플로이드(그중 특히 로저 워터스), 존 레논.[9] 반권위주의[10] 그래서 그런지 9.11 테러 당시 라디오 방송국들이 전쟁이나 폭력, 죽음 등이 묘사된 노래 164여곡을 한시적 방송 금지 처분을 가했을 때 RATM 전곡도 포함 대상이었다.[11] 원문: More for Gore or the son of a drug lord[12] 밥 말리 참고. 특히 밥 말리의 음악생활 후반부에는 총질하는 정치깡패들이 득시글댄 자메이카 정치계의 평화를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했다.[13] 만화 BECK의 영화판 수록곡인 Evolution과 문희준의 I Don't Care For Anything But Music이 이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다[14] 인권 운동 중 경찰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형을 살았던 적이 있다. 수많은 인권운동계 언론에선 이것이 누명에 의한 음모가 아닐까 하는 의혹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재판에 재심 따위는 없었다는 거다.[15] 사진은 대중음악공연심의(PMRC)에 반대하는 의미의 나체시위 중인 RATM.[16] 다만, 아버지가 케냐에 돌아간 이후로도 종종 만나곤 했고, 은조로게가 외교관이어서 그런지 "The Ambassador"로 칭하기는 해서 부자 관계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닌 듯.[17] Parents For Rock & Rap, 록 음악을 사랑하는 부모님들의 모임.[18] Parents Music Resource Center, 음악에 대한 부모 협의회. "이 음반을 사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협조가 필요합니다."라고 적힌 흑백 딱지.를 붙이는 법. 미 상원의원 앨 고어의 부인 티퍼 고어가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낸 대중음악 검열 장치였다. 현재 시점에서는 PFRR를 포함한 사전 검열에 대한 저항운동이 거세고 무엇보다도 미국 수정 헌법 1조에 위배되어서 음반사들의 자율 심의로 바뀐 지가 오래다. 따라서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는다.[19] 간혹 톰 모렐로가 작사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RATM의 음악적 메시지를 기타리스트 학력빨에 의존하는 거품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RATM의 기타 리프 자체는 매우 단순하기 때문. 하지만 이 단순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기타 리프에 신박하기까지 한 솔로를 얹으니까 RATM을 디제잉 멤버가 있는 힙합밴드로 착각할 정도로 엄청나게 유니크한 곡이 되는 것이다.[20] 사실 잭 데라로차는 워낙 사회적 발언과 활동을 많이해서 북미권에서는 사회 운동가로 유명하지만, 대부분 미국의 정치적 문제이다보니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이 적기도 하다.[21] 링크의 문서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RATM 보컬의 아버지라서 유명한 게 아니라 RATM이 데뷔하기 이전에도 이미 이름이 알려진 미술가였다.[22] 이들이 속해있는 소속사 에픽 레코즈는 소니 산하에 있다. 많은 레이블 중 에픽을 선택한 이유는 이들이 자신들의 창작활동에 일절 관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23] 사실 자유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미국 같은 자유로운 국가가 아니었다면 이들의 음악성은 시도되지도 못하고 정치범 수용소에 가거나 강제로 침묵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긴 하다. 물론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정말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 사상이 아닌 이상에야)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걸 넘어서 자국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를 향해 자유롭게 비판을 할 수 있는 국가는 이 세상에서 생각보다 많지 않다.[24] 혹은 일설에 의하면 "체 게바라도 자신의 책을 출판한다면 더 유명한 출판사에 책을 낼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알리기 위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25] 미국 최대의 서점[26] 인간이 재생산을 할 권리와 하지 않을 권리를 모두 다룬다. 신체적 자기결정권 및 건강권, 출산과 성에 대한 성평등권, 자녀양육 등을 위한 공적 지원 요청권 등으로 구성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27] 여담으로 RATM과 친분이 있는 밴드 중 역시 낙태권을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28] 트라이포트의 후신격인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2008년 공연하는 것으로 협의를 마쳤는데 하필 드러머 부인의 출산 예정일이 그즈음으로 잡히면서 또 취소되기도 했다. 이래저래 펜타 라인과는 연이 닿지 않는 듯.[29] 공연 전체 영상을 보려면 여기로. #[30] 미국 총선을 지칭한다.[31] 자신이 메인으로 거는 스타일이 지나치게 확고한 나머지 그 스타일 하나만으로 우려먹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톰 모렐로를 카피하는 팬들 중에는 톰 모렐로 스타일로 다른 곡들을 커버하는 일종의 밈을 숏비디오로 올리기도 한다(...) 다만, 이는 톰 모렐로만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잭 와일드잉베이 말름스틴과 같은 20대에 역량을 보여줄 대로 다 보여준 아티스트들 대부분이 듣는 이야기이다. 스티브 바이처럼 나이들어도 역량을 더 보여주는 아티스트도 있으나, 스티브 바이 같은 케이스가 특이한 쪽에 속한다.[32] 실제 톰 모렐로와 관련한 혹평 중 하나가 그가 기타로 참여하면 (모든 곡이 다그러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곡들이 RATM 사운드에서 래퍼만 바뀐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다.[33] 여기서 당시 MC 였던 이혁재가 밴드명을 가지고 다소 희화화를 한 적있다. "밴드 이름은 Rage Against The Machine. 기계에 대한 분노? 랍니다." 라며 패널과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희화화 했고, 이에 RATM에 팬들에게 분노를 선사했던 소소한 이슈거리가 있었다.[34] 보면 알겠지만 이 자막은 '출연한 동물은 해를 입지 않았음' 패러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