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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엑셀

파일:현대자동차 심볼.svg 현대자동차소형차 라인업
포니 엑셀 · 프레스토 엑센트 · 베르나 (현재 국내 단종)
파일:현대자동차 심볼.svg파일:현대자동차 심볼 화이트.svg
파일:la41Aec.jpg
파일:x1excel_logo.png | 파일:x1pony_logo.png[1]
HYUNDAI EXCEL / PONY / XL[2]
MITSUBISHI PRECIS[3]

1. 개요2. 모델별 설명
2.1. 1세대 (X1, 1985 ~ 1989)2.2. 2세대 (X2, 1989 ~ 1994)
3. 평판
3.1. 국내3.2. 해외
4. 모형화5. 미디어에서6. 기타7. 둘러보기

1. 개요

현대자동차에서 1985년부터 1994년까지 생산했던 전륜구동 소형차로 현대자동차의 소형차 1세대인 포니, 포니2의 후속 모델이다.

2. 모델별 설명

2.1. 1세대 (X1, 1985 ~ 1989)

파일:hyundai_pony_excel.jpg
파일:포니엑셀 뒷면.png
<rowcolor=#fff> 내수형 전면부 출처 내수형 후면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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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세대 (X2, 1989 ~ 1994)

파일:XItrgXC.jpg
파일:GZoQ4BU.jpg
전면부 후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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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판

3.1. 국내

1980년대 한국의 엄청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1980년대 중후반 엄청난 판매량을 보였다. 사실 1980년 무렵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자동차는 고가의 사치품이었고 자동차를 보유한 사람은 부유층이거나 고위 공무원들 뿐이었다. 자동차 보급율은 10가구당 1대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급속한 국민소득 증대를 통해 80년대 중후반이 되자 어지간한 가정에 차 한대는 보유하게 되는 마이카 시대가 도래했는데, 1세대 엑셀, 프레스토는 마이카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던 차였다. 그렇게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던 1980년대 후반 자동차 시장의 대세는 소형차였고, 중~대형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었다.1980년대 중후반 대기업 초급 임원이면 스텔라나 프린스 같은 중형차가, 공립 중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프레스토가 관용차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1980년대 후반에도 중형차는 있는 집에서 굴리는 차였고 대다수의 평범한 중산층 내지는 서민들의 다수는 소형차를 구입했다. 때문에 당시 자동차 시장은 지금과 같이 중~대형 비중이 높지 않았고 소형차 시장이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동차 회사에서도 소형차 판촉에 가장 열을 올렸고 1985년에 출시된 엑셀, 프레스토와 더불어 뒤이어 출시된 경쟁 차종인 1986년에 출시된 르망과 1987년에 출시된 프라이드 모두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1990년대 들어서 국민소득이 더욱 향상되면서 중형차 시장이 상대적으로 커졌지만 20~30대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첫차를 사는 연령대도 낮아졌고, 199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소형차의 인기는 상당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출시된 것이 2세대 엑셀 X2였다. 1세대보다 젊어진 디자인을 뽐냈고 괜찮은 디자인과 성능으로 역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2세대 엑셀이 출시될 당시 시장에는 1986년 출시된 르망과 1987년에 출시된 프라이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의 평균 자동차 수명은 6~7년[4][5][6]이었다. 현대에서는 이에 따라 1985년에 출시된 X1 엑셀의 후속 차량을 개발했고 그것이 바로 엑셀이었던 것이다.

당시 기아 프라이드는 일본에서 막 들여온 따끈따끈한 차체 설계에 뛰어난 동력 성능과 경제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국내에선 크게 인기를 얻진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프라이드가 해치백, 게다가 5도어 해치백도 아니고 3도어 해치백이었기 때문. 지금이야 해치백이란 개념이 크게 요상하게 다가오지 않지만, 당시에는 해치백을 타면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사고시에 바로 골로 간다거나 하는 인식이 많았고, '꽁지 빠진 차'라는 별명을 얻어 미운 털 박히기 일쑤였다.[7] 게다가 뒷문이 없는 3도어 스타일은 우리나라에서 먹히지 않아서 포니 1세대의 3도어 모델이 포니 2에서는 사라졌을 정도이다. 이를 감안하면 3도어 모델이 어느 정도 팔렸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기아도 3도어 해치백이 우리나라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1988년에는 프라이드의 베이스인 포드 페스티바 또는 마쓰다 121에는 있지도 않은 5도어 해치백 모델[8][9], 1990년에는 4도어 세단 모델(프라이드 베타), 1996년에는 5도어 왜건 모델까지 생산하면서 마음을 돌려보려고 한다. 많이 팔긴 했지만 시장을 선도하진 못했다.

르망은 한국에 월드카 개념으로 GM의 자회사인 오펠카데트 E를 뱃지 엔지니어링한 것인데, 폭스바겐 골프와 경쟁차는 자동차 답게 달리는것에 관련된 기본기에 관한 기술은 매우 우수한 편이었으나, 문제는 카데트 E가 유럽시장에 등장한 것은 1984년으로 다소 오래된데다, 유럽차 특유의 실용적이며 성능위주의 설계사상 때문에 사실상 국내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부분인 안락한 승차감이나 푹신하고 넓은 시트, 우수한 NVH, 내장재의 내구성과 변형으로부터 확보되는 실내부품의 내구성, 그러면서도 뛰어난 정비성 등의 부분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차량이 아니었다.[10] 1986년 3도어 해치백 레이서와 르망살롱(GTE), 1988년 5도어 해치백 펜타파이브, 1989년 GSI와 1.6 TBI, 1990년 임팩트, 1991년 이름셔 등 정말 다양한 엔진 및 트림을 내놓았고, 특히 날렵한 디자인과 중후한 승차감, 다른 차량에 비해 넓은 실내공간으로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대륙 국가의 실정에 맞춰져 고속 주행에 중점을 둔 기어비 때문에 가벼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둔중하기 이를 데가 없이 느껴지는 낮은 순발력에, 당시 대우차 특유의 엉망진창인 조립 품질이 더해져 시장에서도 고만고만한 판매율을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2세대 엑셀의 등장은 상당히 신선한 것이었다. 1988년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Y2 쏘나타의 얼굴과 꽁무니를 그대로 이식한 듯한 모습에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스타일은 소형차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중후한, 40대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실내 디자인은 소형차의 기본에 충실하였고, 쏘나타에 달리던 전자제어식 연료분사장치를 달아 힘과 연비를 동시에 잡았다.[11] 당시 잡지 기사를 보면 엑셀을 마치 스포츠카처럼 묘사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균형잡힌 기어비[12]와 리스폰스가 우수한 엔진의[13] 감각 덕이지, 실 성능은 체감 성능만큼 라이벌들을 압도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14]

하지만 실제 운전자들의 체감 성능은 매우 경쾌하고 날렵했으며, 연비 면에서 프라이드와 비교해서도 그다지 꿀리지 않으면서 결정적으로는 현대자동차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세팅이자, 한국사람들이 차량 선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부드럽다 못해 물컹할 정도의 안락한 승차감 또한 라이벌들의 경쟁력을 깎아내렸다. 현대가 기본적으로 스프링과 댐퍼를 워낙 무르게 세팅한 탓도 있지만, 구조상으로도 프라이드나 르망은 리어에 토션빔 서스펜션을 채용했지만, 엑셀은 리어에도 독립식 서스펜션인 풀 트레일링 암 방식을 채용했기 때문에[15] 승차감에서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수준이었던것이다. 거기에 쏘나타를 닮은 중후한 맛의 디자인과, 당시에는 국내 자동차 제조사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조립 품질을 자랑하던 현대자동차의 나름 치밀한 실내 마감[16] 등으로 인해 소형차 임에도 그리 궁색해 보이지 않는 그런 차가 나타난 것이다. 현대차 모델 포지셔닝의 승리였다.[17]
[18]

엑셀은 등장과 동시에 거의 매달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19]. 한 두 번 프라이드에게 자리를 내주었었고, 엘란트라에게 한 번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1992~1993년을 기점으로 점점 소비자들이 준중형, 중형차량을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엘란트라와 쏘나타 II[20] 에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그럼에도 1994년까지 수출 포함 144만여대를 판매하여 밀리언셀러를 달성했고, X1 엑셀과 합하면 250만여대를 판매하여 현대자동차의 양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한마디로 1980~1990년대의 현대자동차의 엑셀 수출이 그 당시 현대자동차의 대부분의 수익을 이룩한 것이다.

3.2. 해외

파일:external/i.wheelsage.org/autowp.ru_hyundai_pony_sedan_2.jpg
사진은 유럽 사양. 유럽 등 많은 지역에서의 수출명은 현대 '포니'였다. 즉, 포니의 4세대 모델로 취급되었다.[21]

해외에서는 과거 평판이랄 게 있지도 않았을 때부터 엑셀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미국시장에서는 포니라는 이름 대신에 엑셀이란 이름이 사용되었다.[22] 유럽시장과 캐나다에는 계속해서 포니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었다.[23] 영국, 이탈리아 등 경제 대국에 최초로 수출된 현대 차량이다.

평판이랄 게 없는 이유는 이미 현대가 미국에서 딸리는 품질을 만회하기 위해 물량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의 해외 주요 광고 카피는 '@@@달러에 차를 사세요'였다. 품질이 부족한 나머지 싼 가격에나마 차를 판매한 것이다. 하지만 차를 팔 줄만 알았지 서비스 센터나 부품 수급은 엉망이었다. 결국 '몇 번 타다 버리는 현대', '싼차'라는 이미지를 굳건히 구축하고야 만다. 품질이 좋지도 않고, 서비스 정책마저도 엉망이니 내리막길이 75도로 깔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엑셀은 선대 모델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계속 싸고 싼 차로 악명을 떨치고 이러한 악명은 품질과 인프라가 완전히 개선된 지금도 어느 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한국 사람들보다는 외국인들이 주로 차량 관리를 잘하는 편인지라, 구글 검색을 하면 여전히 쌩쌩하게 엑셀을 운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문화적 차이라기 보다는 자동차 문화 성숙도의 차이라 보면 된다.

재밌는 사실은 현대에서 북미에서 미쓰비시 딜러망을 통해서 미쓰비시 브랜드로도 판매했다는 사실이다. 미쓰비시 딜러용 차량의 이름은 미쓰비시 프레시스(Mitsubishi Precis). 당시에 미쯔비시에서 자사의 소형차보다 더 가격이 낮은 모델이 필요했는데 이를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해결한 것이다. X1 엑셀부터 베르나까지, 1986년부터 이런 판매방식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24] 자세한 부분은 해당 문서 참고

일본에서도 판매된 적이 있다.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현대 XL이라는 이름을 달고 1988년에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150대 한정으로 미쓰비시를 통해 카 프라자 대리점에서 판매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자동차 커뮤니티 Edmunds.com에서 가장 못생긴 차 100위 중 83위에 올랐다. 오른 다른 국산차로는 오피러스[25], 티뷰론 터뷸런스[26]가 있다.
미주 한인시장 광고[27]

미주 한인시장 광고가 하나 남아 있다. 해당 광고는 미국 내 한인 광고 전담 대행사였던 '팬콤'에서 제작했던 광고이다. 해당 광고 외에도 2세대 현대 쏘나타, 엘란트라스쿠프의 광고를 제작한 적이 있었다. 이후 해당 회사는 2000년대~2010년대에는 포드 모터 컴퍼니의 미주 한인시장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좌측 영상은 현재의 타원형 현대차 CI 적용 이전에 만들어진 광고이며, 옆 버전은 현대차 CI 적용 후 만들어진 광고이다.

4. 모형화

모형화된 제품은 크로바완구,세창기업의 1/32 스케일 다이캐스팅 모델과 아카데미과학의 1/24 스케일의 프라모델 제품이 있다. 다만 제품화된 시기가 30년을 넘은 제품인지라 구하기 힘들고 프리미엄이 상당히 센편이다. 다이캐스팅 모델 중에 완성도가 뛰어난 제품은 세창기업 제품이다.

프라모델의 경우 다이캐스팅 미니카 모델만큼이나 구하기 어려운 편에 속했으나 최근 수출용 물량이 국내에 어느정도 풀려서 구하기가 약간은 수월해졌다. 물론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나마 다이캐스팅 모델이나 아카데미 국내판 프라모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에 속한다. 다만 프라모델의 경우 내구성 문제라던가 구매자가 직접 조립을 해야하는 번거로움, 제작자의 실력에 따라 완성도가 나뉜다는 점 때문에 자동차모형 수집가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고 프라모델 수집가나 장난감 자료수집가들이 찾는 정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다이캐스팅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하기 쉽고 디테일도 무난하고 저렴하니 포니엑셀을 찾는다면 구매해볼만하다.

람보르기니 쿤타치의 옵션으로 있던 스포일러의 별명이 현대 윙이었는데 그 이유가 그 스포일러가 이 차보다 비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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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디어에서

6. 기타

미국에 수출된 포니 엑셀 중 한 대는 역사적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다. 1991년 로드니 킹이라는 한 흑인 남성이 LA에서 하얀색 포니 엑셀(X1)을 타고 과속운전을 하다가 경찰에게 검거되었는데, 검거 후 이 경찰들이 그를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이 사건을 로드니 킹 사건(Beating of Rodney King)이라 칭한다. 로드니 킹이 폭행당하는 광경을 인근 주민이 촬영한 영상(성인 인증 필요)[29]이 방송국에 전달, 보도되며 LA 흑인 사회의 분노는 들끓었고, 결국 폭행에 가담한 경찰들이 무죄 판결을 받자마자 쌓여있던 분노와 울분이 폭발해 LA 폭동이 일어나게 된다.

로드니 킹이 현대 엑셀을 타고 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상술했듯 현대는 당시 공격적인 저가 정책과 마케팅으로 미국 시장에 정착하고자 했고, 로드니 킹[30]을 포함한 저소득 흑인 또한 현대 엑셀의 주요 구매층이었기 때문이다. 힙합 음악의 가사에서 가난함을 상징하는 요소로 현대차가 등장하는 건 이런 이유가 있다.

LA 폭동의 주요 피해자가 어렵게 정착해 자신들의 터전을 이룬 코리아타운의 한인들임을 엮어서 생각해보면 과거 인지도 낮고 가난한 나라에서 와 온갖 무시와 역경을 무릅쓰고 빈손으로 성공을 위한 사투를 벌이던 재미 한국인과 한국 기업 현대자동차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공했음에도 현지 혹은 다른 나라의 자동차를 마다하고 한국산 자동차만을 고집하는 나이 든 재미 한국인들도 어렵지 않게 여러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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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 수출형에는 '포니' 명칭을 사용했다.[2] 1세대 엑셀의 일본 수출명[3] 북미 시장에 3도어/5도어 모델 한정으로 미쓰비시 브랜드로 리뱃징하여 판매되었다.[4] 그 이전에는 1985년 스텔라의 광고에선 대놓고 교체 주기를 2년 정도로 말할 정도였다.[5] 현재 10년 이상으로 늘어난 것에 비교하면 정말 짧았는데 당시에는 국내 기술이 없어 해외 차들을 뱃지 엔지니어링으로 들여왔어도 조립 기술 및 강판 방청 기술이 떨어지는 바람에 3년 타면 신차와는 많은 차이가, 8년쯤 타면 폐차 일보 직전일 정도로 하체 부식이 심했으며 정비망조차도 열악하여 부품을 찾으러 일일이 발품을 팔아야 했기 때문에 1996년만 해도 1986년식 차를 길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2020년대에도 2010년대의 초의 차는 흔하게 볼 수 있고, 2000년대 초의 차도 제법 보이는 것은 물론, 심지어 1990년대의 차도 간혹이나마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해외 메이커의 이 차 저 차를 뱃지 엔지니어링으로 들여오다 보니 모델간 일관성도 없었고 이는 단종시 부품 수급에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6] 과거 대한민국의 중고차 시장 추이를 보면 1990년대까지도 국산 중고차=수출 정도로 인식되다가 1997년 외환 위기 직후인 1990년대 말에 한 번 급성장한 후 2008년 금융위기까지 대체로 답보 상태였다가 이후에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는데 이즈음 해서 국산 중고차도 꽤 몰 만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덕분이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 같은 게 벌어졌어도 씨알도 안 먹혔던 게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나마 품질이 많이 높아진 지금도 러시아처럼 주행 환경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는 버스 같은 고가품이 아닌 이상 우핸들 일본제 중고차량을 선호하지, 한국제 중고차량은 찬밥 취급이다. 물론 이는 2000년대 국산차가 원가절감이 워낙 심해 부식이나 소음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고, 러시아에서도 대한민국제 신차는 일제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인기가 많다. 국산차도 결함 차종이 아닌 이상 50만 km 주행은 기본인 시대다.[7] 돈이 문제였다. '세단에서 트렁크 길이가 잘린 차'면 손해보는 느낌이 드니까 그만큼 싸야지 싶은데 그 정도로 싸진 않았다.[8] 한국에서 도어 숫자를 계산하는 방법은 최근까지 유리가 달린 문이었으나, 벨로스터부터는 아닌 듯 한데, 이 기준에 따르면 벨로스터는 4도어 차량이다.[9] 기아자동차가 내수를 위해 자체 개조한 5도어는 이후에 페스티바, 121로 역수출나갔다. 아예 없지는 않다.[10] 이 때문에 엑셀이 출시된 이후에도 르망이 한국에서 "고속도로의 왕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11] 다만 이 전자제어식 연료분사장치(MPI)가 달린 모델인 TRX와 GLSi 모델의 경우 당시의 일반 배터리가 아닌 특수 배터리를 순정으로 장착해야 했기에, 차량 유지비가 조금 더 나가기도 했다.[12] 전반적인 기어비가 프라이드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굉장히 길긴 하지만, 프라이드나 엑셀이나 기어비가 길다한들, 1단의 기어비가 워낙 높아서, 결국엔 5단의 nv ratio가 기어비가 아주 짧은편의 르망의 5단과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다. 참고로 프라이드나 엑셀은 1단에서 40km/h정도면 거의 레드존 이지만, 르망은 혼자 1단에서 60km/h 가까이 찍어낸다.[13] 당시 미쓰비시 엔진들은 그 귀하고 비싼 칼만와류 방식의 에어플로우 센서를 적극적으로 채용하여 웬만한 스포츠카도 울고 갈 뛰어난 엔진 반응을 보여 주었다. 칼만와류 방식의 에어플로우 센서는 나름 비싸다는 핫필름 방식의 센서를 '싸구려'로 전락시킬 정도로 고가이다.[14] 엑셀의 공차 중량은 950kg으로써, 860kg인 프라이드는 고사하고 935kg인 르망보다도 무거웠다! 한마디로 중량이 동급에서 가장 돼지였다. 당시도 그렇고 최근까지도 '대우(쉐보레)차는 무겁고 현대차는 가볍다' 등의 통념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엑셀과 비슷한 시기의 쏘나타도 로얄살롱보다 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가볍고 대우차는 무겁다는 통념이 생긴 것은 대우차의 변속기 세팅 때문에 초반 가속이 굼떴기 때문이다. 준중형급의 경우 크루즈(라세티 프리미어)가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대우차가 무거워졌고, 그 전에는 언제나 엘란트라/아반떼보다 가벼웠다.[15] 덕분에 2000년대 이전의 옛날 현대차는 엘란트라와 아토스를 제외하면 의외로 토션빔 서스펜션을 사용한 자동차가 없다. 엑셀의 후속인 엑센트의 리어 서스펜션은 스트럿 방식을 조금 변형시킨 듀얼링크 타입으로 진화한다. 르망과 프라이드의 후속이었던 라노스와 아벨라는 계속해서 토션빔으로 생산했다.[16] 당시의 대우 에스페로보다 현대 엑셀의 인테리어 재질이 더 좋다. 대우는 이 당시 이제 막 고유모델을 내놓기 시작하던 시절이라서 경험 부족이 매우 심했으나 현대는 이미 오랫동안 자체 모델을 내놓아 왔으므로 상당한 경험을 갖고 있었던 상태라서 벌어진 대우의 비극이다. 특히 X2 엑셀은 전 세대인 X1 엑셀(포니엑셀)이 미국시장에서 품질 문제로 곤혹을 치렀던 만큼 품질 향상에 크게 공을 들였던 것도 한몫 하였다.[17] 이후 국내 자동차 관련 언론에서 현대의 모델 포지셔닝을 기준으로 차급을 선정하는 것이 대세가 됨에 따라 경쟁사 차들 중 현대차 기준 포지셔닝에 잘 안맞는 차들(즉 소형인지 중형인지 애매한 차종)은 더 성능이 우수한 모델이라도 심한 판매 부진에 시달려야 했다.[18] 광고에 나오는 여자아이 모델은 김민정이다.[19] 월 1만대는 기본이었고, 신차효과발로 가끔 한두번은 월 2만대를 넘겼다.[20] 이 모델과 1995년 출시된 2세대 아반떼는 출시 이후 월 평균 1.5 ~ 1.6만대 수준으로 팔리며 국산차 시장에서 재력가 수준의 시장 지배력을 행사했다.[21] 엑셀의 후속 모델인 엑센트도 지역에 따라 포니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었다. 즉, 엑센트가 포니 5세대였다.[22] 기존의 X1 엑셀이 '엑셀'이라는 이름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23] 현대는 1986년 북미시장 진출 이전에 캐나다와 동구권 국가에 포니를 먼저 소량 수출하였다. 따라서 유럽시장에선 포니의 이미지를 계속 부여했던 것이다.[24] 4세대 엑센트도 멕시코에서 닷지 애티튜드(Attitude)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이것도 물론 크라이슬러가 현대를 도와주거나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크라이슬러의 필요와 현대자동차의 멕시코 시장의 우회적 판매에 따라 배지 엔지니어링을 한 것 뿐이다.[25] 24위다.[26] 66위다.[27] 좌측은 현대차 현 CI 적용 이전 버전이며, 우측은 현 CI가 적용된 버전이다.[28] 덧붙이자면 BMW라고 속은 것을 알고도 계속 아끼는 것 같다. 나중에는 아버지인 조철왕이 조석의 리무진 이벤트를 피자 배달용으로 써 버리자, 리무진 차량 대용으로 엑셀을 다시 이용했다.[29] 뒤에 포니 엑셀이 등장한다.[30] 로드니 킹은 사건 당시 가석방 상태였으니 사실상 전과자인 상황에서 좋은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