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미합중국 육군항공수송사령관 제12, 17대 베벌리힐스 시장 해럴드 L. 조지 Harold L. George | |
본명 | 해럴드 리 조지 Harold Lee George |
출생 | 1893년 7월 19일 |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머빌 | |
사망 | 1986년 2월 24일 (향년 92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구나힐스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미합중국 공군 |
최종 계급 | 미국 공군 중장 |
복무 기간 | 1917~1946 1955 |
학력 | 조지 워싱턴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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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매사추세츠 서머빌 출신으로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 진학했으나 1차 세계 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며 중퇴해 기병 소위로 육군에 입대했다. 이후 육군통신사령부 소속 항공 지원대에 지원해 항공 과정을 수료하고 제163폭격대대 소속이 되었다. 클레르몽페랑, 제2차 마른 전투, 뫼즈-아르곤 공세에 투입되었다. 이 당시 조지는 더 많은 폭격기를 투입해 아군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1919년 미국으로 돌아와 대법원판사였던 제임스 맥레이놀즈의 도움으로 내셔널 대학 로스쿨[1]을 수료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만난 빌리 미첼의 주장과 본인의 생각을 통합했고 1929년 더 큰 폭격기를 대량으로 적 종심을 뚫고 후방의 적 기반시설을 전략폭격을 감행하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에 헤이우드 핸셀, 로렌스 S. 커터, 도널드 윌슨이 지지를 표했고 여러 항공대 장교들[2]들도 지지를 표했고 이들을 "폭격기 마피아(Bomber Mafia)"라 불렸다.
1936년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하고 제96폭격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제2폭격단장으로 최신 중폭격기인 B-17을 최초로 도입했다.
1940년 대령으로 진급했고 항공계획사단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준장으로 진급했으며 육군항공수송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아메리칸 항공 CEO이자 당시 군에 참전하고 있었던 C. R. 스미스의 도움으로 당시 브라질을 통해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가는 항로, 아이슬란드를 통해 영국으로 가는 항로를 통해 병력과 물자를 수송했고 이 공으로 수훈비행십자장, 훈공장, 육군수훈장을 수여받았다. 1945년 3월 중장으로 진급했고 종전을 맞이했다.
전후 1946년 중장으로 퇴역했고 하워드 휴즈의 도움으로 휴즈사의 임원으로 일했고 1954년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소속으로 베벌리힐스 시장에 선출되어 1년간 일하다가 1955년 잠시 공군으로 복귀해 8개월간 복무한 후 떠났다. 1959년 다시 베벌리힐스 시장으로 선출되어 1년간 있다가 물러났다. 당시 베벌리힐스 경찰들을 치하하기 위해 매년 우수경찰상을 제정했다.
1986년 사망했고 공군사관학교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