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27 18:00:46

한국형 판타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역사적 한국 판타지 장르에 대한 내용은 가상 역사 판타지 문서
번 문단을
사극 판타지 부분을
, 허구적 상상력이 결합된 사극에 대한 내용은 퓨전 사극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역사
2.1. 이전: 해외 판타지 매체의 재현2.2. 2000년대
2.2.1. 시장 성장과 한국적 니즈의 발달2.2.2. 하이텔 한국적 판타지 논쟁2.2.3. 주된 장르적 시도 양상2.2.4. 당시 한국적 판타지 개념의 한계
2.2.4.1. 민족주의적 반감의 영향과 한계2.2.4.2. 외면받은 한국적 환상문학2.2.4.3. 간과된 한국 판타지 소설의 변화
2.2.5. 그 외 장르적 시도2.2.6. 그 외 담론과 논쟁2.2.7. 결론
2.3. 2010년대
2.3.1. 한국형 판타지 니즈의 축소2.3.2. 웹소설에서 정립된 한국적 판타지
2.4. 2020년대
2.4.1. 한국형 판타지 담론의 종결2.4.2. 웹소설 장르 코드로서의 가능성2.4.3. 해외에서 향유되는 한국 판타지
3. 분류
3.1. 2000년대3.2. 2010년대
4. 유사 사례
4.1. 한국적 라이트 노벨4.2. 한국형 사극4.3.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한국적/한국형 판타지는 한국 장르 판타지 씬 내부에서 한국적인 판타지 창작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뤄져온 논쟁, 장르 개념이다.

'한국적 판타지'는 2001년 하이텔에서 군사소설가 김경진과 안병도, 그리고 판타지 소설가 이영도/이우혁하이텔 한국적 판타지 논쟁을 통해 한국 장르 판타지씬의 주요 논쟁 거리로 부상한다. 이 논쟁은 소득없이 끝났으나, 이후 한국적인 판타지 창작물이란 무엇인가, 나아가 한국적인 게 무엇인가?란 물음으로 이어지며 장르 판타지 씬의 기나긴 논쟁의 씨앗이 된다.

하이텔 논쟁 이후 한국적 판타지는 00년대의 한국형 XXX 유행과 맞물리며 한국형 판타지로 변형되었고, 동시기 블록버스터 무비로 성공한 영미권의 판타지 창작물, 국제적인 인지도를 가진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에픽적이고, 완성도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을 수 있는 한국형 판타지가 나올 수 있는가?라는 의미도 덧붙여진다.[1]

이러한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논쟁, 개념은 10년대 웹소설 시기 한국 그 자체를 반영한 웹소설 장르들과 웹소설 향유자들의 인식 변화로 어느정도 정리된 것으로 여겨진다.

문서에서는 판타지 소설 장르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판타지 소설 이외의 한국적인 판타지 창작물을 총괄하는 문서가 아닌 점에 유의. 이에 대해선 가상 역사 판타지, 사극 판타지 항목 참고.

2. 역사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논쟁, 개념은 시기별로 세가지로 나뉜다.

2.1. 이전: 해외 판타지 매체의 재현

90년대 말부터 00년대까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 한국 판타지 소설은 영미권과 일본을 위시한 외국 판타지의 카피작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 장르 판타지씬은 문학의 변두리이자 매니아적 서브컬처로 장르의 외연적, 내연적 확장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로부터 시작된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은 외국의 판타지 자료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당대 판타지 창작자들의 외연적, 내연적 확장은 현실적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초창기 한국 장르 판타지 씬에선 국내 장르 판타지의 개척과 한국형 판타지의 창출이라는 이념 하에 시대적 제한을 벗어나 해외 판타지 매체[5]를 광적으로 수집하고, 그것을 자신의 목소리로 재매개하여 재현하는. 즉 창작물로 재현하는 행위가 일상화된다.[ㅇ]

한편 한국 판타지 소설의 복제, 재현 대상이었던 서양하이 판타지, 소드 앤 소서리일본용사물은 나름대로의 정서나 전통적 소재, 이미지를 판타지 창작물에 넣거나 자신들만의 판타지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결과물이었다. 당시 판타지 향유자들이 해외 매체를 광적으로 수집하여 국내 장르 판타지를 개척하고, 한국형 판타지를 창출하려 했다는 점을 돌아보면 이같은 해외 매체의 양상이 이후의 한국 판타지 소설의 과제, 나아가 한국형 판타지 담론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시기의 한국형 판타지 창출 이념은 한국에서 불모지인 판타지 장르를 개척하고 완성도 있는 판타지 세계관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전통적 이미지나, 국수주의,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은 00년대의 한국형 판타지 담론과는 의미가 다르다.

2.2. 2000년대

2.2.1. 시장 성장과 한국적 니즈의 발달

90년대 중후반 PC통신에서 창작, 소비되기 시작한 한국 판타지 소설은 퇴마록, 드래곤 라자의 출판 붐을 통해 대중 시장에 급부상, 파란을 일으킨다. 이 때 판타지 소설은 대중들에게 관심있게 소비되면서도 비판받기도 했는데, 주된 비판점은 문학성의 부족[7], 그리고 서양과 일본의 매체를 바탕으로 창작하는 관습에 대한 비판이었다.[8]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들의 반발, 문학계의 비판, 왜색과 서구적 모티브에 대한 민족주의적 비난 등이 나타나곤 했으며, 당시 군사소설가 김경진은 하이텔 게시판에서 이영도에게 한국적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며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한편 문학성, 독창성의 추구, 니즈는 한국 장르 판타지 씬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상술된 것처럼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은 해외 매체의 복제, 재현으로 시작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완성도있고 성공적인 세계관 구축으로 평가받는)해외 매체를 한국 판타지 씬이 도달해야 할 목표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해외 판타지 매체들은 타국의 장르와 자국 문화를 접합하거나(주로 일본), 자국 문화와 정서를 통해 판타지 장르를 새로이 정립하기도 했다.

이같은 목표, 니즈, 비판이 뒤섞인 결과, 한국 판타지 소설 장르를 개척하고 완성도 있는 판타지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니즈에 또다른 니즈가 추가된다. 해외 매체의 재현, 재매개를 통한 완성도 있는 한국의 판타지 창출에서 나아가, 한국 고유의 전통적 소재나 색, 세계관을 판타지적으로 재해석하여 완성도 있는 판타지를 창출하길 바라는 니즈, 즉 한국적 판타지에 대한 니즈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초창기엔 불모지였던 한국의 판타지를 해외 매체의 재현, 재매개를 통해 개척한다는 의미의 기존 한국적 판타지 관념은, 대중의 관심과 비판, 내적 성장이 더해진 이 시기를 거치며 해외 매체의 복제, 재현 중심이던 판타지 씬의 장르 헤게모니를 변화시킨다는 의미를 더하게 된다.

2.2.2. 하이텔 한국적 판타지 논쟁

한국적 판타지 니즈가 대중의 주목과 내적 성장하에 점차 생겨나기 시작한 가운데, 한국적 판타지를 본격적인 담론으로 끌어올린 사건은 2001년 1월 하이텔 시리얼 잡담란에서 군사소설가 김경진/안병도, 그리고 판타지소설가 이영도/이우혁한국적 판타지 논쟁으로 여겨진다.
제가 한국적 환타지라는 말을 쓰고 꺼낸 것은 바로 앞의 문제와 연관된 선상에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언급하건대, 저는 한국적 환타지 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환타지의 전부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므로 한국적 환타지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도 절대 배제해야 될 위험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한국적 환타지는 대단히 좋은 것이라 여깁니다. 우리가 그런 시스템을 못 만들면 할 수 없지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한국적'이라는 색깔을 붙여야만 된다는 국수주의 또한 대단히 위험한 것이겠지요. 한마디로, 환타지는 폭 넓은 것이며 한국적 환타지도 환타지의 한 갈래임에 불과합니다. 한국적 환타지를 만들어 독창적 가치관을 만들었다고 해도 환타지의 주류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중세서양이 환타지의 정형이 아닌 것 처럼, 한국형 환타지도 환타지의 정형은 될 수 없는 겁니다. 환타지는 바로 그 제한 없음과 무한히 뻗을 수 있는 요소 때문에 환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우혁 - 하이텔에서 김경진, 안병도가 이영도를 비난하는 것을 보고
미국 작가가 어떻게 하이 팬터지를 쓰는가 등의 이야기는,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셨습니다. 미국은 유럽을 가져다 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그래서 팬터지를 완성시켰습니다.
(중략)
한국적 팬터지가 뭡니까? 말씀해주시지요. 쓰신 바대로 그걸 생각할 능력도 없고 생각도 없으셔서 다른 것들은 서양 오랑캐 것이라고 비웃어버리는 재미만을 탐닉하실 생각이십니까? 님께 그걸 생각할 능력도 있고 생각도 그렇게 많으시다면(연작물로 3회째니 그럴 의도는 충분하시다 판단됩니다.) 이제 제발 좀 써 주십시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는 식은 사실 지겹습니다. 밥이니 한식이니 질그릇이니 하는 모호한 상징어들로 빙빙 도는 것도 보기 좋지 않고요. 한국적 팬터지가 뭡니까?
이영도 - 한국적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고 본인을 비난한 김경진, 안병도에게 남긴 글

00년대 당시는 1세대 판타지소설이 PC통신을 중심으로 등장하였고, 판타지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목받으며 태동하던 시기였다. 이 가운데 군사 소설가 안병도와 김경진은[9] 판타지 소설가 이영도에게 《퇴마록》을 예로 들며 '한국적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는 비판을 가한다. 김경진은 중세 서양 배경의 검과 마법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판타지소설들은 독창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양인이 한국인이 쓴 중세 판타지 소설을 좋아할 것 같지 않다. 드래곤 라자 같은 소설이 서양인의 책장에 꽂힐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장르와 배경 면에서 독창적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집필하는 군사소설 장르는 전투 상황 묘사에 있어서 미국과 일본 배경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이어가기도 했다. 안병도 역시 김경진과 비슷한 입장에서 이영도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에 이영도는 며칠동안 김경진/안병도 두 사람과 논쟁을 이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적 판타지가 뭔지 모르겠다'고 반론하며, 《구운몽》을 예시로 들며 "한국인이 쓰면 한국적이다."라는 반박을 하였으며, 타국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만약 김경진과 안병도가 한국적 판타지를 쓸 수 있으면 부디 직접 집필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논쟁이 심화되자 당시 게시판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우혁이 지인에게 해당 논쟁이 일고 있음을 듣고 직접 등장해서 '자신은 《퇴마록》을 한국적 판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관심 있는 분야인 건 사실이고, 왜란종결자로 관련 시도를 해 본 것'이라는 요지의 의견을 장문으로 개진하며, '한국적'이라는 강박관념 내지 색깔을 붙여야 한다는 국수주의를 경계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우혁은 한국적 판타지의 정의가 온전하지도 않은데다 한국인이 한국적 판타지만을 쓰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말미에 이영도에 대한 인신공격을 멈출 것을 종용하기도 했으나, 결국 안병도와 김경진의 어조가 격해져 인신공격 수준으로 치달았고 이에 이영도가 논의를 그만두며 논쟁은 결론 없이 종결된다.

이러한 논쟁은 이후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논쟁으로 이어지며, 웹소설 시기 이전까지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주요 논쟁거리로 자리매김한다.

김경진이 이영도를 비난하면서 보인 격한 어조는 분명 문제가 되지만, '독창적인 것이 세계적으로 어필할 것'이라는 그 논지 자체는 여전히 대중적으로 비슷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가령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예시로 들면 영국의 원작 판타지 소설을 재해석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 일본 특유의 색채를 짙게 넣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평가가 세계적으로 훨씬 좋고, 해당 작품의 한국 개봉 시점에서도 국내 평단과 대중들 사이에서는 '왜 한국은 이런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못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하이텔에서 일어난 논쟁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한편 이영도는 논쟁 1년 후인 2002년 3월, 보란듯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써냈으며, 눈마새 시리즈는 이후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담론에서 빠지지 않는 모범 사례로 꼽히게 된다.

물론 《눈물을 마시는 새》시리즈가 고평가받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플롯이나 주제의식 등의 문학적 소양과 서구형 세계를 탈피한 독창적인 환상세계의 결합에 있는 것이고 '세계관이 한국적이라서'는 아니었다. 눈마새에 도깨비나 온돌, 솟대 같은 한국적인 요소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주제의식과 직접 연결된 소재가 아니라 오로지 장치로서의 기능만 하고 있는 정도이다.

이러한 입장은 이영도 본인에게서도 여러번 밝혀진 바 있는데, 이영도는 《눈물을 마시는 새》가 한국적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피를 마시는 새》 출간 이후 인터뷰에서도 "한국적 판타지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중략) 민족이 국가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볼 때 민족 판타지라는 말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키지 않는다. 내 판타지 속에 도깨비 같은 캐릭터를 쓰는 것은 유리한 측면은 있다. 독자와 작가가 같은 언어와 같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어필할 것이다."라며 직접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10]

그럼에도 한국적 판타지의 기준점이 될 만한 작품들을 언급할 때 눈마새 시리즈는 항상 언급되며, 세계관이 한국적인 대표적 한국형 판타지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지만 이영도라는 한국인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한국적 판타지라는 점에는 부정하는 여론이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2.2.3. 주된 장르적 시도 양상

이처럼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창작 니즈가 장르 판타지 씬 내외로 축적되고 나아가 하이텔에서 유명 작가들 사이에 한국적 판타지 논쟁이란 사건까지 나타난 결과, 이에 부응한 한국형 판타지 창작물들이 판타지 씬에 투고되기 시작한다. 이 때 한국적/한국형 판타지의 창작 양상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곤 했다.

이 시기엔 보통 첫번째 방법이 많이 쓰였다. 두번째 방법은 전통 문화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해석력, 필력, 스토리 작성 능력을 많이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칫하면 중국풍의 오리엔탈 세계관만을 양산한다든지[11][12], 이미 성공적인 동양 판타지 사례인 무협 비스무리한 작품이 되기 십상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의도적으로 이것을 배제하려고 했던 작가조차 무공이나 내공 같은 것을 써 버린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13]

2.2.4. 당시 한국적 판타지 개념의 한계

그러나 위의 시도는 곧 한계를 맞이한다. 정작 한국적/한국형 판타지라는 개념 자체가 정의조차 합의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00년대 당시 한국적/한국형 판타지의 니즈는 분명 존재했으나, 장르 판타지 향유자들이 인식하는 한국적/한국형 판타지의 정의는 개개인마다 달랐고 합의조차 되지 못한 상태였다. 즉 실체가 불분명한, 논쟁적인 장르였다.

이처럼 실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장르 판타지 씬 전체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창작물은 당연히 나오기가 매우 어려웠고, 때문에 당시 출판시장, 그리고 인터넷 연재로 쏟아져나오던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창작물들은 대부분 단발적으로 그치고 만다.

물론 개별 한국적 판타지 작품 중 상업성,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없는 건 아니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 시리즈가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개별 작품의 성취로 그친다.

즉 한국적인 판타지 작품은 줄곧 나왔지만, 해외 매체의 복제와 재현 중심이었던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장르 헤게모니까지 한국적으로 변화시킨, 한국형 판타지 논쟁을 종결시킨 작품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형 판타지 개념이 가진 한계, 정의가 합의 되지 못했다는 약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한계로 인해 한국적/한국형 판타지는 00년대 내내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한계를 맞이한다. 이러한 한계를 반영한 사건, 상황으로는 아래의 사례들이 꼽힌다.
2.2.4.1. 민족주의적 반감의 영향과 한계
00년대의 한국적 판타지 논쟁은 개별 작품의 성취외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 일부 시도와 성공적인 사례는 있을지언정, 논쟁자들이 바라던 장르내외와 국내외를 넘나들며 인정받은 한국적인 세계관 창작물은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형 판타지의 한계는 대부분의 한국적 문화 창작물 논란이 가진 한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즉 해당 시도와 논쟁은 장르와 시장 자체적으로 완숙되어 일어났다기 보단, 서구, 일본 등 외부에서 유입된 문화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한계는 당시 한국형 판타지와 관련된 비난 레파토리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당대 장르 판타지 향유층들은 "한국 판타지 씬이 한국적인 작품을 향유하지 않는다"는 맥락으로 비난받곤 했다. 즉 서구/일본 판타지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1, 2세대의 한국산 판타지 향유층들은 덜 판타지 적이거나 장르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판타지 씬이 향유하는 판타지가 한국적이지 않기 때문에 비난받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민족주의적 비판들도 그렇다면 한국적인 판타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마땅히 답변할 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이런 비판에 자극 받아 창작된 한국형 판타지들도 상당했으나, 이들도 마땅한 결론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당대 한국적 판타지는 한국적 요소에 대한 인식과 정의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적 환상문학에 대한 진지한 사유나 고찰이 아닌 민족주의적 반감, 위기의식에 의해 반발적으로 시도되는 경우가 많았고 때문에 문학적, 장르적으로 피상적인 결과물만 낼 수 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한국형 판타지 시도, 논쟁이 맞닥뜨린 대표적인 한계가 바로 서양 판타지에 한국형 소재만 넣어서 똑같이 성공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한국형에 대한 마땅한 고찰이 없다보니, 이미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서양 판타지 작품의 성과에 빗대어 한국적으로 만든 판타지가 서양 판타지처럼 성공한다면 그것이 한국형 판타지일 것이라는 결론이 암암리에 나버린 것이다. 이는 한국형 판타지가 아닌, 노벨상 콤플렉스에 가까운 결론이었다.

노벨상 콤플렉스에서 간과되던 해외의 탄탄한 기초학문처럼, 당시 글로벌한 인기를 얻었던 서양 판타지 장르는 서구권의 옛 역사전설, 신화 등을 융합하고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들이 수 세기에 걸쳐 누적된 결과였다. 즉 개념을 형성하기 위한 뼈대, 독자적인 흐름, 시장의 규모, 역사가 충분한 상태에서 진행되며 여러 성공적인 사례[14]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서양 판타지 못지 않게 한국 판타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일본 판타지의 경우에는 맨바닥에서 시작하던 한국 시장보다 상황이 훨씬 나았다. 조선시대 한반도로까지 수출되던 찬바라 소설들을 시작으로, 현대에 들어 코가인법첩(1959), 구인 사가(1979), 로도스도 전기(1988), 슬레이어즈(1990) 같이 일본 장르 판타지의 기반을 닦은 작품들은 한국 판타지 씬이 성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00년대의 한국 판타지 씬은 시작된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으며, 시장도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수준이었다. 한국적 판타지 담론이 기대하는 성공적인 한국형 판타지 창작물이 자연적으로 탄생하기 극도로 어려운 환경이었던 것. 따라서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은)한국형 판타지 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그나마 본받을만한)성공적인 외국의 사례를 카피하는 모순으로 이어진다. 이런 모순들은 대체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으며, 성공하더라도 개별 작품의 독특한 성취 정도로 남을 뿐 장르 판타지 씬의 헤게모니 전체를 바꾸진 못했다.
2.2.4.2. 외면받은 한국적 환상문학
헌데 정말 한국형 판타지가 정말 없었을까? 한국형 판타지라고 부를만한 작품이 기존에 없던 게 아니었다. 김진의 《바람의 나라》 , 김혜린의 《불의 검》, 이두호의 《머털도사》, 김삼의 작품군에서부터 《바람과 구름과 비》나 이우혁의 《퇴마록》, 《치우천왕기》, 윤현승의 《흑호》, 심형래의 영화들 까지. 이미 한국형 환상 문학이라고 할 만한 스타일은 존재하고 있었고 계속 생산되었다.
하지만 00년대 한국형 판타지 논란에선 위와 같은 작품군이 핵심적인 모델로 제시되지 못했고 받아들여지지도 못했다. 당시 핵심모델로 제시되었던 반지의 제왕 등, 기존 성공을 거둔 서양 판타지들과 비교하면 너무 형태가 달랐기 때문이다.[15]

즉 위의 작품군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러한 이야기의 결론은 이른바 한국형 판타지라는 것을 말하던 이들이 진짜로 바랐던 것은 결국 한국형 판타지라기보단, 서양 판타지의 논리와 재미를 그대로 답습하면서도 한국형 소재를 잘 버무려낸 판타지 소설이란 것을 재확인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앞서 설명되었듯 그런 건 존재할 수 없다. 서구의 판타지는 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담습하면서도 한국적으로 적용하려면 오류가 쌓일수밖에 없다.[16][17]이러한 소설은 일정한 재미는 보장할 수 있어도, 깊이있고 누가 봐도 한국적인 세계관이다! 라고 하기 힘들었고, 국내외적으로 인정받기도 힘들었다. 그에 반해 나름의 스타일을 갖고 쌓아올려진 한국형 환상 문학은 외려 그 때문에 논란에서 배제되거나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다.[18]
2.2.4.3. 간과된 한국 판타지 소설의 변화
한편 한국형 판타지 개념이 장르 헤게모니의 화두가 되면서, 정작 한국 판타지 소설의 점진적인 변화가 간과되기도 한다. 한국적인 색채를 띤 완성되고 에픽적인, 장르 헤게모니로서의 한국형 판타지 창작물이란 개념, 논쟁에 집중한 결과, 실제 한국 판타지 소설의 독자적인 변화, 즉 한국적인 변화를 간과한 것이다. 이는 향유층 사이에서도 양판소, 이고깽 등으로 비하되며 간과되어온 문제기도 하다.

예를 들어 초창기 한국 판타지 소설은 영미권의 소드 앤 소서리와 일본의 용사물의 재현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이러한 재현 과정에서부터 이미 원전인 영미권, 일본의 서양 판타지와 상당히 다른 형태를 띤다. 서로 다른 세계관, 정서를 지닌 영미, 일본의 판타지 클리셰들이 융합됐기 때문이었다.[19] 여기에 WRPG, JRPG, 국산 MMORPG를 위시한 다양한 게임 장르의 향유까지 반영된 결과, 이미 한국의 판타지 소설은 원전을 복제, 재현하면서도 그와 함께 변형된 판타지 세계관과 정서를 구현하게 되었다. 즉 한국인에 의해(한국적으로) 변형된 판타지란 초석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묵향 이후로는 무협소설의 영향을 받아 무공과 유사한 형태의 무술, 깨달음, 소드마스터 등의 무협풍 설정이 판타지 세계관에 도입되었으며, 이후 현대 한국인의 이세계 이동을 주제로 하는 퓨전 판타지 붐, 00년대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과 당시 청년 세대의 니즈에 영향을 받은 게임 판타지 붐을 겪으며 한국인의 니즈를 판타지 세계관 하에서 적극적으로 투영하는 문화도 자리잡는다.

이 같은 변화가 누적된 결과, 00년대 중반 한국 판타지 소설은 서양, 일본의 원전들에서 상당히 변형된 세계관과 클리셰를 갖추게 되었으며, 장르 씬을 지배하는 정서, 코드도 한국인의 니즈로 변형되기에 이른다. 즉 한국적 판타지 개념이 생겨나고, 논쟁이 무르익었던 시점에, 이미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은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담론이 원했던 한국인이 한국적인 니즈를 바탕으로 한국적으로 쓴 판타지 소설을 소비하고 있었고, 해외 매체의 복제, 재현 중심이었던 장르 헤게모니를 한국적인 코드로 변형시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00년대 한국형 판타지 담론에서, 이같은 한국 판타지 소설의 (한국적인)변화는 오히려 한국형 판타지와 거리가 먼 행태로 여겨졌다. 즉 한국적이지 않은 해외 매체 복제, 재현의 연장선으로 인식되었으며, 양산형 판타지 소설 즉 양판소라는 비하적 용어로 불리며 한국형 판타지 담론의 장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같은 한국 판타지 소설의 내부 변화는 시간이 상당히 지난 뒤, 한국형 판타지에 대한 니즈가 사실상 소멸해버린 웹소설 시대에 이르러서야 웹소설식 한국형 장르 헤게모니를 완성하며 빛을 보게 된다. 이에 대해선 후술될 #2010년대 문단 참고.

2.2.5. 그 외 장르적 시도

한편 위의 시도 외에도, 다른 방법과 양상으로 한국적/한국형 판타지가 시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선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단발적으로 끝나거나, 장르적 문제를 겪으며 기피되고 만다.

2.2.6. 그 외 담론과 논쟁

이처럼 적지 않은 시도가 이루어지던 가운데 여러 담론이 오가기도 하였다.

2.2.7. 결론

이렇듯 한국적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스타일은 이미 확고한 형태로 존재했음에도, 2000년대 당시 판타지 소설을 쓰려던 이들 중 한국형 판타지라는 것을 시도하는 작가들 대부분은 서양 판타지가 갖고 있던 스타일에 한국형 소재를 억지로 끼워넣거나, 한국 고유의 세계관을 추구한다는 명분 아래 난해하고 매니악한 소설을 썼었기에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한국 판타지 시장이 아직 그러한 논란을 소화할만큼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애초에 서양 판타지는 세계관을 참고할 자료나 모방할 작품이 넘쳐나고, 스타일 역시 정리하기 쉽게 기준들이 나와 있었으며, 그 시작은 서구권의 옛 역사와 전설, 신화 등을 융합하여 거기에 상상력을 가미한 형태였다.[25] 일본 역시 이미 수 십년동안 자국과 서양의 문화 요소를 이용한 창작물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26] 이처럼 오랜기간 축적된 시장을, 90년대 말에서야 붐이 일어난 한국 판타지 소설계에선 작가 개인의 필력에 모든걸 의지한 채 뽑아내야 했으니 그런 작품들과 대등한 수준의 작품을 만들기가 쉬울 리가 없었다.

정리하면, 00년대 당시 활동하던 대다수 한국 판타지 소설 작가들의 작품 스타일이 서양 판타지였다는 점, 시장 자체적으로도 성숙도가 높지 않았다는 점, 억지로 서양 판타지에 한국형 소재를 끼워 맞추려 한 점, 그리고 00년대의 국내 독자들 대다수가 서양 판타지의 요소를 원했다는 점, 한국형 판타지의 정의 조차 합의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00년대 당시 한국형 판타지라는 것을 자리잡지 못하게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형 판타지 담론, 니즈는 퓨전 판타지게임 판타지를 거쳐 레이드물현대 판타지 등의 신생 판타지 작품군이 등장하며 점차 축소되고. 10년대엔 사실상 소멸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형 판타지 담론, 니즈에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형 판타지는 정통 담론과 함께 00년대 장르 판타지 씬의 상업화, 양산화를 비판하고 자성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2.3. 2010년대

2.3.1. 한국형 판타지 니즈의 축소

이처럼 00년대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주요 담론이었던 한국형 판타지는 장르문학 시장의 주 소비처였던 도서대여점이 몰락하고 시장이 축소되며 점차 중요성을 잃는다.

물론 이 시기에도 작품성과 문학성, 한국적 독창성을 요구하는 독자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이 주로 활동하던 판타지 소설 장르는 퓨전 판타지, 게임 판타지, 현대 갑질물의 유행을 거치며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었고, 때문에 자연스레 한국형 판타지 담론을 주장할 독자들의 규모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변화 누적도 영향을 끼쳤다. 한국적 판타지 담론은 작품성, 독창성과 한국적 이미지를 주요 코드로 삼았으나, 정작 실제 (도서 대여점 하)장르 판타지 씬의 코드는 상업성과 출판사의 출판 전략하에 적극적으로 클리셰를 전유하고, 독자들의 니즈 충족 즉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작품성, 독창성을 중시하던 판타지 향유층이 대거 이탈한 결과, 한국형 판타지 담론도 마찬가지로 축소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도서대여점의 몰락으로 인한 시장의 축소, 도서대여점 말기 등장한 현대 갑질물을 필두로 한 현대 판타지의 유행, 웹 상에서 로맨스 판타지, 미션물, 레이드물 유행이 이어지며 한국형 판타지 니즈는 사실상 소멸하게 된다.

그러나 10년대에 이르며 상황이 변한다. 도서대여점 사멸 이후 웹소설로 무대를 옮긴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은 향유층의 니즈와 대리만족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클리셰와 코드를 축적시켰는데, 이처럼 과거 한국형 판타지 담론에서 배제되었던[27] 향유층의 니즈에만 집중한 결과 오히려 이전의 시도들보다 더욱 한국적인 판타지를 창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과거 한국형 판타지 논쟁처럼 완성도있는 동양적인 판타지 세계관을 목표로 하진 않았으며, 현대 한국인인 독자의 대리만족과 니즈 충족을 목표로 하였다. 이 결과 웹소설은 판타지에 현대 한국인의 정서, 인식을 반영하거나, 나아가 한국과 한국인 그 자체를 판타지화하기에 이른다.

2.3.2. 웹소설에서 정립된 한국적 판타지

이렇게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논란은 그대로 다른 한국적 서브컬처 논쟁과 비슷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로 흐지부지 되는가 했지만, 2012년에 이르며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조아라 노블레스에 등장한 《나는 귀족이다》로부터 시작된 레이드물, 《메모라이즈》부터 시작된 한국식 이세계물, 도서대여점 시대 말기에 등장한 현대 판타지와 같은 새로운 판타지 장르들이 주류로 발돋움하며 탁상공론에 불과했던 한국형 판타지가 마침내 그 실체를 얻게 된 것이다.

대여점에서 웹소설로 개편된 판타지 소설 시장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식 이세계물이나 헌터물, 전문가물 등의 장르는 현대 한국의 정서나 서사를 담고 있으며, 심지어는 한국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실체는 기존 담론에서 원했던 형태, 말하자면 서양 판타지와 한국 전통 문화의 융합과는 사뭇 다른 편이다. 그러나 전통적 소재를 차용해야지만 한국적인 건 아니며, 오히려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적인 코드와 문화 요소, 현대 한국인의 욕구와 정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이 장르들은 그토록 찾아 해매던 한국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형 판타지 담론에서, 향유층 사이에서도 논외로 여겨지던 한국 판타지의 점진적인 발달이 마찬가지로 웹소설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전처럼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예술성과 문학적 깊이는 상업성과 나름의 세계관을 달성한 웹소설이 넘어서야 할 다음 계단이 아니라, 웹소설이 창출한 한국형 판타지 세계관처럼, 웹소설의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형성될 가치라는 것이다.

2.4. 2020년대

2.4.1. 한국형 판타지 담론의 종결

20년대 시점에선 '한국형 판타지'와 '비한국형 판타지'의 구분이 사실상 소멸했다.

웹소설 향유층은 한국인이 웹소설을 썼다면 로맨스 판타지, 일본식 이세계물, 캐빨물, 게임 빙의물, 정통 판타지, 정통 무협, 판타지 웹소설 등 어떤 장르라 하더라도 한국적인 한국의 장르 소설로 인식한다. 즉 20년대 시점에서 한국형 판타지 담론은 종결됐으며, 이영도하이텔 논쟁에서 밝혔던 것처럼, 한국인이 쓰면 한국형 판타지라는 인식이 20년이 지나서야 웹소설 전체에 뿌리내린 것이다.

2.4.2. 웹소설 장르 코드로서의 가능성

그러나 한국형 판타지 담론의 종결외에, 한국형 판타지라는 용어, 개념 자체는 소멸하지 않았다. 그 자체를 특징으로 내세운 작품들도 종종 나타나기 때문. 이런 작품들은 (한국형 판타지 담론처럼) 장르 헤게모니적 의미보다는, 특정한 장르 코드 의미로 언급된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판타지 소설을 비판하는 담론이던 정통 판타지가 웹소설 시대에 특정 장르 코드로 변형된 것과 비슷하다. 다만 WRPG에 영향을 받으며 구체화된 정통 판타지에 비해, 웹소설 장르 코드로서의 한국형 판타지는 아직 뚜렷한 실체와 장르적 유행을 이루진 못한 상태다.

2.4.3. 해외에서 향유되는 한국 판타지

한편 한국적 판타지 담론이 사실상 소멸한 10-20년대 웹소설 시기엔, 오히려 한국적 판타지 담론에서 원했던 또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00년대 서양 판타지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소비 되진 못했더라도, 해외에서도 한국 판타지 장르가 향유되는 양상이 생겨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달빛조각사를 위시한 웹소설 장르와 해외 웹소설 장르 LitRPG의 형성, 그리고 2020년대 웹소설 원작 웹툰의 해외 흥행과 애니메이션화가 있다.
즉 00년대 한국적 판타지 담론이 원했던, 한국의 판타지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향유되길 바라던 기대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형 니즈가 소멸해가던 10년대-20년대에서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3. 분류

3.1. 2000년대

2000년대의 한국형 판타지 소설은 명확한 결론과 정의를 내리지 못했지만, 어느정도 '한국형 판타지'스럽거나 그에 근접하다고 여겨졌던 장르들은 아래와 같다.

3.2. 2010년대

2010년대 후반 이후의 한국형 판타지로 분류되는 장르들.

4. 유사 사례

4.1. 한국적 라이트 노벨

하이텔에서 작가들의 논쟁이 일어난지 6년이 지나고 시드노벨이 창간된 2007년부터 한국적 라이트 노벨 논란이 시작되었을 때 이 개념이 다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이텔의 '한국형 판타지 소설' 논란이 한국식 vs 서양식의 문제라면, '한국적 라이트 노벨' 논란은 한국식 vs 일본식의 문제. 한국에서 나오는 라이트 노벨은 일본에서 나오는 일본적 라이트 노벨과 차별화된 점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논란의 요지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4.2. 한국형 사극

대장금》의 흥행 성공 이후 대부분의 사극이 젊은 층을 노리게 되면서, 역사 고증과 스토리라인을 말아먹고 괴상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걸 비하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4.3. 기타

5. 관련 문서



[1] 이런 의문은 한국 장르 판타지 씬에만 있던 것은 아닌데, 문학계에서 쭉 제기되어오던 '왜 우리는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가?'등의 논쟁거리가 대표적이다.[2] 웹소설 장르라면 어떤 창작이건 '한국인이 한국적으로 쓴 한국의 장르 웹소설'로 인식됨을 의미한다. 다만 한국 사극적 정서와 전통 한반도 문화와 결합된 동양풍 판타지로서의 한국적/한국형 판타지는 별도의 장르로 구분된다.[3] 한국 게임판타지 장르의 미시사 연구. 2021. 이융희. 47p[ㅇ] 앞의 연구. 이융희. 48p[5] 주로 일본의 판타지 소설 《로도스도 전기》나 《슬레이어즈》 일본의 JRPG이스 시리즈, 파랜드 스토리 시리즈, 랑그릿사 시리즈와 서양의 TRPG인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와 소설 《반지의 제왕》이 꼽힌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판타지라고 이름 붙은 모든 정보를 광적으로 수집하는 양상으로 여겨진다.(앞의 연구. 이융희. 2021. 48p)[ㅇ] [7] 이 때의 문학성은 판타지라는 장르의 문학성보다는, 당시 한국 문학계의 중심이던 문단, 대중 문학 시점의 문학성으로 언급되곤 했다.[8] 세계관적으로 독창성이 없거나 해외의 매체를 무분별하게 복제한다던지, 왜색이라던지. 이런 비판은 해외 문화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독창성 비판 자체는 상술된 것처럼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핵심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었다. 한국 장르 판타지씬은 당시 환경 상, 한정된 토대 위에서 제한적인 해외 자료를 모방하며 쌓아올린 결과였기 때문이다.[9] 이들은 비슷한 시기 명량해전을 다룬 전쟁소설 《격류》를 공동 집필했다.[10] 판타지 작가 이영도 인터뷰 전문. 2005. 7. 27.[11] 예를 들어 한국 전통 건물들의 이미지를 가져간다 쳐도, 한국 전통 건축 자체가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만의 독특한 느낌을 주는 이미지를 만들기가 애매모호하다.[12] 게다가 세심하고 방대한 중국의 환상 소재 자료는 굉장히 자주 참고되기 마련이라, 동양 판타지 세계관을 만들면 아무래도 중국적인 색채가 들어가기 쉽다.[13] 다만 한국형 판타지를 쓰면서 무협적 스타일을 '소재'로 쓰려 시도한 경우도 몇 있긴 했다.[14] 흥행, 미디어믹스 등. 특히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15] 예를 들어 이우혁의 소설들은 역사적 배경에 판타지를 섞은 가상 역사 판타지였기 때문에 방향성이 달랐고, 실제로 그렇게 소비되었으며, 따라서 장르적으로 뚜렷이 계승되지 못했다.[16] 당장 양판소를 봐도 중세 왕과 귀족의 관계는 조선시대 왕과 대신의 수직구조처럼 그려지며, 대부분의 귀족이 영지가 있는데도 왕의 부름에 응하고, 또 공후백자남은 철저한 상하관계로 묘사된다.[17] 참고로 여기서 판타지란 무엇인가? 생각해볼만 하다. 예를 들어 이우혁의 경우 가상 역사를 그리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지배층 사회같은 것이 아닌 초자연적인 힘과 존재, 우주팔계라는 거대한 세계이다. 그는 인간과 인생에 촛점을 맞춘 퇴마록을 자신의 세계관에서 서브스타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18] 윤현승이 인기 없는 작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흑호는 아는 사람만 알며, 뫼신사냥꾼도 웹툰화 이전에는 인지도가 낮았다.[19] 가령, 한국 판타지의 엘프 히로인 캐릭터는 반지의 제왕의 엘프의 영향만큼이나 로도스도 전기의 디드리트와 드래곤 라자의 이루릴 세레니얼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으며 이들의 클리셰가 융합된 형태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20] 사실 고대 한국이 모든 역사의 주도적인 배후였다든지[21] 작가 본인이 환단고기를 위서라는 것을 밝히고 소재로 인용했던 이우혁의 일부 작품군들도 성공과는 별개로 평단에 의해 '민족적 수음'이라는 논지의 비평을 받았다. 작가들이 환단고기를 위시한 위서들을 소재로써 손을 대는 것조차 기피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22] 대표적인 사례가 율려(2005)로, 디자인 전공 교수가 한국 고유의 문화원형 창조와 원 소스 멀티 유즈를 목적으로 일러스트레이션과 세계관을 구상하였고 그럴싸한 체계를 이루었으나, 정작 소설로서의 인기가 전무해서 묻혀버렸다. 소설 외적으론 심형래의 D-WAR가 한국 고유의 민족사관적 판타지로 어필하였으나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폭망.[23] 당장 위에서 예시를 든 슬레이어즈나 로도스도 전기 등은 서구 판타지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작품을 이루는 감성은 지극히 일본적이다.[24] 가장 쉬운 예를 들자면 원피스. 일본도가 주인공의 무기로 나오는 것부터 해서 일색이라 비판받는 욱일기와노쿠니까지 갈 것도 없이 등장인물의 세세한 행동거지부터 일본식이다. 그 외에도 스토리 등 여러 부분에서 야쿠자를 소재로 하는 일본산 느와르 작품들에 대한 오마쥬가 많다고 평가받는다.[25] 이 점은 《반지의 제왕》이 북유럽 신화중세의 기사도 문학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북유럽 신화와 기사도 문학은 주로 거대한 괴물과의 전투와 비장미 넘치는 전쟁, 영웅의 일대기적 서사극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반지의 제왕》이 그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할리우드가 추구하는 블록버스터적 요소와 잘 맞아떨어져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된 것이다.[26] 당장 《나루토》를 위시한 닌자 판타지의 시초로 평가받는 《코우가인법첩》이 1959년에 출간됐고, 한국 판타지에 큰 영향을 준 《로도스도 전기》가 1988년, 《슬레이어즈》가 1990년에 출간됐다. 전술한 나루토조차 1999년에 연재를 시작했으니 서양의 영향을 받은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 판타지 시장은 시작점이 달랐다.[27] 보통 당시의 한국형 판타지는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취를 함께 이루면서도 동시에 한국 장르 판타지씬을 한 발자국 진일보시킬 무언가로 여겨졌다. 즉 백마 탄 초인이었다.[28] 갑을관계, 헬조선 유행, 수저계급론, 열정 페이, N포세대, 무전유죄 유전무죄, 노오력 드립, KPOP, 재벌 등.[29] 서로 경쟁적인 이세계에 갔기 때문이라기보단, 난데없이 이세계에 떨어진 현대 한국인들이 보일 수 있을법한 비정한 서사를 그려내는 것.[30] 가장 대표적으로는 전지적 독자 시점 등이 있다.[31] 향유층에 대한 메타적 헌사 사례로는 전지적 독자 시점, 망겜의 성기사가 꼽힌다. 장르적 헌사 사례로는 향수적 정통 판타지, 정통 무협 작품군들이 꼽힌다.[32] 다만 이 경우도 대부분은 주인공의 도덕적 우위를 전제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이기적인 '나 혼자' 서사를 선보이는 건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주변에 대한 도덕적 우위나 당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공의 '나 혼자' 서사를 통해 완성된 세상은 결국 더 긍정적으로 변한 세상으로 형상화된다.[33] 물론 규모면에선 비교가 불가능한게 현실이다. 10년대 중반 시점의 카카오페이지조아라, 문피아의 관계처럼 작가 위주 대기업 플랫폼VS아마추어 투고 위주 중소 플랫폼. 정도로 보는 편이 좋다. 한편 Webnovel은 한국과 유사하게 편당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지만, RoyalRoad는 무료 연재와 패트론 후원(주로 선공개 후원)방식을 사용하는 등 차이점이 있다.[34] 한국 판타지 장르도, 라는 점에 유의. 상술된 것처럼 소아온을 위시한 VRMMO도 영향을 주었으며, LitRPG만큼 Xanxia, Wuxia, Isekai, Power Progression/Progression Fantasy등도 자주 창작된다. 이 장르들은 중국, 일본의 인터넷 소설, 라이트 노벨 장르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 판타지 장르의 영향은 그 중 하나이며, 마찬가지로 그 중 LitRPG 장르에 (VRMMO와 함께)강한 연관이 있는 것.[35] 신동우 화백의 <풍운아 홍길동>과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홍길동>이 대표적이다.[36] 반대로 실체가 있는데 명칭이 없는 장르로는 한국식 이세계물이 꼽힌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041
, 2.1.1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041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