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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틸러스/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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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대 사장3. 역대 감독4. 레전드
4.1. 원 클럽 플레이어4.2. 프랜차이즈 선수
5. 흑역사

1. 개요

포항 스틸러스의 주요 인물들을 정리한 문서.

2. 역대 사장

아래 나온 인물들 중 1명을 빼곤 포스코 내부 출신이다.
역대 이름 재임 기간 비고
초대 강신우[1] 1995~1999
2대 차동해 1999~2002 [2]
3대 박정우 2002~2004 [3]
4대 김현식 2004~2008 [4][5]
5대 김태만 2008~2012 [6]
6대 장성환 2012~2015 [7]
7대 김응규 2015 [8]
8대 신영권 2015~2018 [9]
9대 양흥열 2018~2020 [10]
10대 최인석 2021~ [11]

3.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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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대 2대 3대 4대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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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1984)
최은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1986)
이회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1992)
감독 대행
조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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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1990)
허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3~1995)
<rowcolor=#ffffff> 4대 5대 6대 7대 8대
감독 대행
김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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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994)
박성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2000)
최순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2004)
파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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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9)
올리베이라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0)
<rowcolor=#ffffff> 8대 9대 10대 11대 12대
감독 대행
박창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
황선홍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2015)
최진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
최순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2019)
김기동
(김기동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2023)
<rowcolor=#ffffff> 13대
박태하
(박태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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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는 감독 대행에게 감독직을 맡긴 후 복귀한 경우
: K리그1 우승 / : 코리아컵 우승 / : AFC 챔피언스 리그 엘리트 우승
}}}}}}}}}}}} ||

역대 이름 재임 기간 비고
초대 한홍기 1983년[12] ~ 1984년
2대 최은택 1985년 ~ 1986년 구단 최초 우승 감독
3대 이회택 1987년 ~ 1992년 재임 도중 국가대표 감독 차출
대행 김순기 1989년
대행 조윤옥 1989년 ~ 1990년
4대 허정무 1993년 ~ 1995년 재임 도중 국가대표 코치 차출
대행 김순기 1994년
5대 박성화 1996년 ~2000년 시즌 중 사임
6대 최순호 2000년 ~ 2004년
7대 세르지오 파리아스 2005년 ~ 2009년 구단 최초 외국인 감독
8대 와우데마르 레무스 2010년 시즌 중 사임
대행 박창현 2010년
9대 황선홍 2011년 ~ 2015년
10대 최진철 2016년 시즌 중 사임
11대 최순호 2016년 ~ 2019년 시즌 중 경질
12대 김기동 2019년 ~ 2023년
13대 박태하 2024년 ~ 현재

4. 레전드

가장 오래된 구단인만큼 레전드들이 굉장히 많다. 이회택, 김철수, 정기동, 이길용, 최상국, 박경훈, 이흥실, 남기영, 유동관, 공문배, 박창현, 조긍연, 이기근, 최문식, 이영상, 노태경, 박태하, 김기동, 황지수, 신화용, 김광석 등 이 그 주인공들이다.

국내 선수들만큼 포항을 거친 정상급 외국인 선수들도 많은데 드라간, 싸빅, 자심, 산토스, 따바레즈, 라데, 코난, 데닐손 등이다. 특히 외인 레전드인 라데같은 경우는 포항에서의 활약을 발판삼아 프리메라 리가, 분데스리가까지 진출했다. 은퇴 후 인터뷰에서도 식지않는 포항사랑을 보여줘 아직까지도 포항팬들에게 인기가 많다.

레전드로까지는 아니어도 포항을 거쳐간 정상급 선수로는 박성화, 조광래, 박창선, 윤성효[13], 안익수[14], 고정운[15], 하석주, 김병지, 우성용, 이동국[16], 박원재 등 이다.

구단에서 레전드 대우를 하긴 하지만 기록상 다소 애매한 인물이 있는데...

최순호는 9시즌 동안 겨우 100경기(23득점 19도움) 뛰었다.[17] 하지만 구단이 어려움에 처할 때 기꺼이 와서 도와 주기도 했고[18], 본인의 축구인생에서 고향은 포항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 하는 등 포항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어서[19], 팬들에게 레전드로 어느 정도의 인정은 받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이제는 코칭스탭이 아닌 프론트로 포항을 위해 힘써줬으면 한다는 분위기이다. 결국 2019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고, 이후 유스 총괄 기술 이사라는 직함으로 포항에 공헌하다가 2023년 수원 FC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황선홍은 포항을 떠날 때 모양새가 좀 좋지 않았고[20] 일본서 복귀할때도 수원과 전남으로 갔다. 무엇보다 부상이 너무 잦아서 최순호보다도 더 적은 64경기(31득점 16도움) 밖에 출장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수생활 할 당시의 임팩트가 너무 크기도 했고[21], 더군다나 은퇴 후 감독으로 포항에 복귀하여 더블 우승(K리그1+FA컵)을 달성하는 등 구단의 지원이 미미한 가운데서도 명가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엄청난 업적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팬들도 레전드로 인식하고 있다. 황선홍이 포항 레전드가 된건 어디까지나 감독으로서의 활약까지 포함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 북쪽의 팀에 부임할 당시 포항 출신 선수들을 빼가려는 시도를 하며 다시금 팬들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있다.

홍명보는 선수 시절 데뷔시즌부터 포항의 리그 우승을 이끌면서 MVP를 수상했으며, 리그 베스트11 5회 선정, FA컵 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해외 이적에 관한 갈등과 포항으로 복귀 후 2002년 LA 갤럭시로 이적 사건 등으로 구단과 갈등을 많이 빚어 좀 오래된 포항팬들은 포항 배신자 취급할 뿐더러, 국내에서의 활약한 기간 보다 해외에서 보낸 시간도 길다. 게다가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역임할 당시 홍명보 본인의 이미지도 많이 깎인 상태이기도 하다. 게다가 본인 스스로 가시와의 레전드이긴 해도 포항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감독직 복귀를 동해안 더비 라이벌 울산으로 하면서 영영 멀어졌다.

결론적으로 다소 애매한 면은 있지만 홍명보를 제외하면 그래도 레전드 대우를 받을만 한 인물들이긴 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포항 유스 출신으론 신광훈, 신진호, 이명주, 고무열, 김승대, 손준호, 강현무, 이광혁, 황희찬, 이진현, 이승모, 이수빈, 고영준 등이 있다.

4.1. 원 클럽 플레이어

※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은 제외. 통산 기록은 K리그 기준으로 포항 소속일 때 기준으로 100경기 이상 기록하였거나 K리그 대상 수상기록이 있는 경우 기록.
이름 기간 주요 기록
김철수 1975~1986
(1976~1979 상무, 군 복무)
K리그 통산 47경기 1도움[1983이후]
1983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
1985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
정기동 1981~1991 K리그 통산 135경기 160실점[1983이후]
이길용 1983~1989 K리그 통산 92경기 17골 12도움
1983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
최상국 1983~1991 K리그 통산 159경기 32골 22도움[24]
1987년 K리그 득점상/도움상/베스트일레븐[25]
백치수 1984~1989 K리그 통산 107경기 2골 3도움
박경훈 1984~1992[26] K리그 통산 134경기 4골 8도움
1984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
1987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
1988년 K리그 MVP
강태식 1986~1989 K리그 통산 100경기 3골 10도움
1988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
유동관 1986~1995 K리그 통산 207경기 5골 4도움[27]
1993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
남기영 1986~1991 K리그 통산 145경기 1골 1도움
공문배 1987~1998 K리그 통산 268경기 5도움
이계원 1988~1993
(1985~1987 상무, 군 복무)
K리그 통산 124경기 9골 7도움
권형정 1990~1994 K리그 통산 145경기 3골 4도움
이원철 1990~1996 K리그 통산 156경기 26골 8도움
이영상 1990~1999 K리그 통산 236경기 6골 1도움
노태경 1991[28]~2000[29]
(1998~1999 상무, 군 복무)
K리그 통산 155경기 3골 10도움
박태하 1991~2001
(1993~1995 상무, 군 복무)
K리그 통산 261경기 46골 37도움
1992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
황지수 2004~2017[30]
(2010~2011 양주, 군 복무)
K리그 통산 320경기 6골 12도움[31]


기록 상 원 클럽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원 클럽 플레어이어 준하는 선수

4.2. 프랜차이즈 선수

프랜차이즈 선수/축구 문서 참고.

5. 흑역사

포항 팬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이들로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김동현 승부조작[33]
박주영 통수[34]
오범석 통수[35]
설기현 먹튀+통수
황희찬 통수
우찬양 음주운전
코너 채프먼 통수[36]
송민규 통수[37][38][39]


[1] 배우 신성일의 이복형이자 강석호 의원의 부친으로, 포항 향토 운수업체 (주)삼일 창업주다. 2005년 작고.[2] 1944년생, 동아대학교 상학과 졸업, 1970년 포스코 입사, 원가과장, 회계과장, 열연판매부장, 광양제철소 행정부장, 인사/노무 담당이사, 상임감사 등을 역임했다.[3] 포스코 인사/노무 담당이사, 포항제철소 행정부소장 역임[4] 서울 동성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포스코 베네주엘라 현지법인(POSVEN) 사장 역임[5] 과장 시절 브라질에서 3년 근무했으며 박태준 회장이 축구를 너무 좋아해 실업축구팀이었던 포철에 브라질 선수를 초청해보라고 지시하여 로베르투, 세르지오 2명의 선수를 데리고 왔는데 국내 축구계에서는 최초의 용병이었다.[6] 청주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1978년 포스코 입사, 인사실장, 인재개발원 부원장, 포항제철소 행정부소장 역임[7] 1981년 포스코 입사, 노무팀장, 홍보팀장, 섭외부장, 포항제철소 행정부소장 역임[8] 1954년생, 중앙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80년 포스코 입사, 채용팀장, 핵심역량그룹장, 광양제철소 노무안전부장, 노무외주실장, 인재혁신실장, CR본부장, 경영지원부문장, 포스코경영연구소 대표이사 사장 역임[9] 1958년생, 군산고등학교 - 전북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1982년 포스코 입사, 시장전략팀장, 마케팅총괄팀장, 냉연판매실장, 대우인터내셔널 경영기획총괄임원, 영업1부문장, 영업3부문장, 포스코P&S 대표이사 사장[10] 대건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86년 포스코 입사, 포스코 인력자원팀장, 혁신기획그룹리더, 글로벌HR지원그룹리더, 홍보실장, 포스코에너지 경영지원실장, 경영지원본부장[11] 대건고등학교 - 계명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1988년 포스코 입사, 행정지원그룹리더, 사랑받는기업추진사무국장, 포스코특수강 경영지원담당, 포스코켐텍 경영지원실, 포스코 행정부소장[12] 실업 시절까지 확장하면 1973년.[13] 포항에서 더 오래뛰었는데(7시즌) 선수로서 마지막까지 함께한 수원(5시즌)에서 영구결번(수시로 착오를 일으키는 영구결번으로 유명하다.)으로 지정하며 나름대로 레전드 대접을 했다. 따져보면 애매하다.[14] 가끔 포항 레전드로 끌고오는 사람도 있는데 엄연히 일화 레전드다. 포항에 겨우 3시즌 있었고 포항이 코치연수 시켜준다는 것도 뿌리치고 일화 코치로 부임했다.[15] 안익수와 마찬가지로 유명하다고 일화 레전드를 포항 레전드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다. 포항에서 뛴건 1998년부터 겨우 4시즌이고 그나마도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2000년엔 한 경기도 못 뛰고 2001년엔 겨우 4경기 뛰고 은퇴했다.[16] 대승적 차원때문에 '국내 복귀 시 포항으로 온다'라는 항목을 걸고 공짜로미들즈브러에 보내줬는데 실패 후 포항이 제시한 연봉보다 더 싼 연봉으로 성남과 계약했고 다시 전북으로 이적후 녹색피의 사나이가 되었다. 다만 이런 포항과 이동국 간의 관계가 잘 알려지지 않고 묻혀서 사정을 잘 모르는 젊은팬들이나 라이트팬들은 이동국에 우호적인 경우도 있으나 이동국이 포항에서 뛰는 걸 직접 본 세대들은 이동국 안좋아한다.[17] 최순호가 주로 활약했던 1980년대는 경기 수가 적었던데다가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소속팀보다는 대표팀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18] 2016년 낙하산 감독이 경질되고 팬들은 원하지 않았지만 구단의 요청에 무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자리를 내려놓고 돌아온다.[19] 포항 MBC 지역방송에 나와 예전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다 포항에 대한 마음을 보이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많은 팬들을 감동시켰다.# 물론 감독으로서의 능력과는 별개[20] 월드컵 부진으로 인한 주위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권토중래를 위해 일본행을 선택했다.[21] 당시 황선홍과 라데의 투톱은 K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톱으로 평가받는다.[1983이후] 1983년 수퍼리그 출범 이후 기록[1983이후] [24] 포항에서 통산 100경기 이상 출장한 최초의 선수[25] 피아퐁에 이어 한 시즌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 수상한 두번째 선수. 국내 선수로는 유일한 기록.[26] 은퇴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세미프로인 7부 리그 예딩 FC에서 조기축구하는 정도로 축구를 했으나, 공식적인 프로경력은 포항 뿐이다.[27] 포항에서 통산 200경기 이상 출장한 최초의 선수[28] 유소년 팀(포항제철중학교) 입단은 1985년[29] 2001년, 성남 일화로 이적하였으나 부상으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은퇴.[30] 은퇴 직후 2018년 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코치로 부임해 현재까지 재직중.[31] 포항에서 통산 300경기 이상 출장한 최초의 선수[32] 원래는 고향인 김포에 있는 2사단에서 복무하고 싶었으나 1사단인 포항으로 발령 났다고 한다.[33] 박주영 파동 1년 전에 똑같은 과정으로 수원 삼성에 입단하였다.[34] 브라질 유학을 보내며, 우선 협상권이 있었지만, FC서울로 입단하였다.[35] 2021년 기준으로 포항에 복귀 이후 그나마 팀에 기둥이 되며, 팬들에게 인정 받기 시작하였다.[36] 기생충이 발견되었다며, 계약 해지 후 호주로 갔다가 다시 K리그로 복귀하였다.[37] 원래 해체된 충주 험멜의 유스였으나 당시 수석코치였던 김기동의 완곡한 요청으로 포항에 입단하였는데 김기동이 없었다면 프로 진출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이후에 'K리그의 이적은 상주 상무 밖에 없다'라고 해서 포항팬들의 기대를 부풀렸지만 전북으로 이적을 하면서 포항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또한 이적을 하는 과정에서 스승인 김기동 감독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밝혀지면서 송민규도 비난을 받았다. 물론 완전한 협상은 아니었고 가벼운 접촉이었지만 전북과 접촉했다는 사실이라도 김기동 감독과 얘기했다면 송민규의 민심은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38] 다만, 송민규의 경우는 감독한테 알리지도 않고 협상한 프런트의 잘못도 있기 때문에 완전한 통수로 보기는 어렵고 송민규가 전북의 이적 제안을 수락하려고 했을때 전북행 확정 기사가 떴던 것이다. 즉, 송민규는 전북으로의 이적을 확정 짓지 않았는데도 전북으로 간다는 기사가 먼저 떴다는 것. 그리고 이와같은 내막이 밝혀지면서 송민규는 너무 과도한 비난을 받은게 아니냐는 의견도 형성되었다. 그리고 송민규는 전북과 개인 협상을 할 때 세 차례나 거부하다가 마지막에 전북으로 갔다.https://cafe.naver.com/phglobal/35463?art=ZXh0ZXJuYWwtc2VydmljZS1uYXZlci1zZWFyY2gtY2FmZS1wcg==.eyJhbGciOiJIUzI1NiIsInR5cCI6IkpXVCJ9.eyJjYWZlVHlwZSI6IkNBRkVfVVJMIiwiY2FmZVVybCI6InBoZ2xvYmFsIiwiYXJ0aWNsZUlkIjozNTQ2MywiaXNzdWVkQXQiOjE2MjY3ODAzNTIzODh9.GTJnf8iaL9YmXsZRPSoqY5V9lsUb7-EP4Ewo0nlC-Vo=[39] 저런 사실들이 나오면서 송민규에 대한 비난은 이전보다는 잠잠해졌지만 전북으로 간 뒤에도 전 감독인 김기동 감독과 전 동료인 강상우를 꾸준히 언급해서 다시 욕을 먹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