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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7 20:00:47

김상호(축구)

김상호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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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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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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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대학교 축구부
파일:36964656.7.jpg
<colbgcolor=#4040a0><colcolor=#ffffff> 이름 김상호
金相鎬 | Kim Sang-Ho
출생 1964년 10월 5일 ([age(1964-10-05)]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
학력 광주북성중학교 (졸업)
금호고등학교 (졸업)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4040a0><colcolor=#ffffff> 선수 포항제철 아톰즈 (1987~1994)
전남 드래곤즈 (1995~1998)
감독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00~2001 / 코치)
전남 드래곤즈 2군 (2002~2006)
대한민국 U-17 대표팀 (2007 / 코치)
전남 드래곤즈 (2008 / 수석 코치)
강원 FC (2009~2011 / 수석 코치)
강원 FC (2011~2012)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13~2014)
상하이 선신 (2015~2016)
칼빈대학교 (2019~ )
행정 성남 FC (2015 / 선수강화위원)
상하이 선신 (2015 / 기술 고문)
부산 아이파크 (2017~2018 / 전력 강화실장)
국가대표 16경기 / 2골 (대한민국 / 1989~1990)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대한민국 U-20 대표팀 코치3.2. 전남 드래곤즈 2군 감독3.3. 대한민국 U-17 대표팀 코치3.4. 전남 드래곤즈 수석 코치3.5. 전남 드래곤즈, 강원 FC 코치3.6. 강원 FC 감독3.7. U-20 대표팀 감독3.8. 상하이 선신 감독3.9. 부산 아이파크 전력 강화실장3.10. 칼빈대학교 감독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상하이 선신 감독을 맡았고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부산 아이파크 전력강화실장을 맡았다. 현재 칼빈대학교 축구부의 감독이다.

강원 FC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상하이 선신 감독직을 맡으면서 실패를 거듭하며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2. 선수 경력

광주 토박이로 광주북성중학교, 금호고등학교[1], 동아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7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했다. 8시즌 동안 미드필더로서 149경기 10골을 기록했다.

1995년 고향이자 신생팀인 전남 드래곤즈의 창단 멤버로 입단한 후 네 시즌 동안 83경기 5골을 기록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지도자 경력

3.1. 대한민국 U-20 대표팀 코치

은퇴 후 2000년 이란에서 열린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U-20 대표팀 코치로 부임해 지도자로서 데뷔했으나, 한국은 당시 중국에게 0-1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하였고, 2001 아르헨티나 FIFA U-20 월드컵에 진출에 실패했다. [2][3]

3.2. 전남 드래곤즈 2군 감독

2002년부터 친정팀 전남 코치로 부임했고, 이듬해부터 직접 이회택 감독에게 건의해 2군 감독에 부임했다.

전남 2군 감독 시절 백지훈, 김진규, 강민수, 양상민 등 숱한 유망주들을 길러내며 R리그를 평정하는 등 유소년계 두각을 드러내는 감독으로 이름을 떨쳤다.

3.3. 대한민국 U-17 대표팀 코치

2007년 한국에서 개최한 FIFA U-17 월드컵에서 전남 시절 사제의 연이 있던 박경훈 감독을 보좌해 코치로 나섰으나 한국은 조별리그 탈락의 굴욕을 맞보았다.

3.4. 전남 드래곤즈 수석 코치

2008년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해 박항서 감독을 보좌했다. K리그 리그컵에서 준우승에 기여했다.

3.5. 전남 드래곤즈, 강원 FC 코치

2009년 신생팀 강원 FC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어 포철시절 동료였던 최순호 감독을 보좌하였다.

3.6. 강원 FC 감독

파일:SK004_20110615_130501.jpg

2011년 4월 최순호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하자 강원 FC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2011시즌 3승 6무 21패로 최하위[4], 2012시즌에는 18라운드까지 4승 2무 12패로 최하위라는 성적을 남기고 경질되었다. [5] 후임 감독은 다음 시즌인 2013 시즌 중반에 경질되었다.

강원 FC에서 보여준 감독 능력을 말하자면, 패스를 통한 빌드업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기술 축구라는 이상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외풍이 강한 팀이긴 하나 팀 내 분위기를 잡는 능력도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이건 외풍 탓을 하며 넘어간다 해도 전술적으로도 홍명보 같은 축구를 지향했으나 말아먹었다. 이건 당시 김상호뿐 아니라 많은 k리그 젊은 초임 감독들이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에 홀려서 보인 일종의 매카시즘 같은 광신적 신기루였다. 개중에서 김상호는 특히 심했는데, 실질적으로 두 시즌을 치렀던 김상호는 시즌마다 홍명보처럼 한 가지 전술만을 염두에 두고 시즌 극초반에만 약간 기세를 올렸다가 공략당하면 시즌 내내 아무것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맨날 털리던 끝에 몇 번 특별 전술을 들고 나오긴 했는데 다 실패했다.

3.7. U-20 대표팀 감독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이광종호(U-20) 김상호호 안익수호
파일:3556600774_Pu21Eloj_B1E8BBF3C8A3_99_20140925192302.jpg

2013년 9월 11일 대한민국 U-19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대표팀의 빌드업에 많은 주안점을 뒀으며, 세밀하고 간결한 터치, 아기자기한 패스를 선수들에게 많이 강조하고 공격 지역에는 빠른 선수가 많기에 상대 뒷공간 노릴 수 있는 침투와 움직임, 패스를 통한 공격을 많이 요구할 것이라며 자신의 축구 철학을 밝히며 자신의 이상이 아직 그대로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강원 FC처럼 U-19팀도 14년만의 조별예선 광탈이라는 대업적을 남겼다. 2014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백승호, 서명원, 김영규 등의 많은 우수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본과 중국에게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이다. [6] 베트남과의 1차전에서는 6:0 대승을 거두었지만 중국전 0:0 무승부, 일본전에서 1:2로 패하며 끝내 조 3위가 된 것이었다.

리그 감독으로서 능력도 개차반인데다가 종전 국대팀 코치 보조로서 결과도 도통 내세울 게 없음에도 감독으로 선임했다는 게 기적이다.그러니까 솔직히 강원 라인 같은 얘기 없었으면 좋겠다, 시즌 3승 한 감독인데 무슨 강원 라인이야, 그냥 자기들 인맥이지.

결국 97년생 이후로 구성되는 차기 청소년대표팀 감독은 안익수 전 부산, 성남 감독이 맡게 되었다. 후임 감독 역시 경질.

3.8. 상하이 선신 감독

파일:17190_24409_0946.jpg

2015년 성남 FC 선수강화위원회 발족과 동시에 강화위원 및 기술고문으로 선임되었으며, 시즌 중반 중국 갑급리그(2부리그) 상하이 선신의 기술고문으로 부임하였다.

2015년 12월 5일 상하이 선신과 100만 달러에 감독 계약을 체결하며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2016년 5월말까지 5승 2무 5패 부진 속에 13위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아니나 다를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결국 성적 부진으로 5월 경질되었다.기사

3.9. 부산 아이파크 전력 강화실장

2016년 12월 7일 부산 아이파크의 전력 강화실장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2017년과 2018년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지만 눈 앞에서 두 차례나 아쉽게 승격을 놓쳤고 결국 2018 시즌을 끝으로 승격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력강화실장직에서 사임했다.

3.10. 칼빈대학교 감독

2019년 6월 칼빈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선임됐다. #[7]


[1] 북성중 시절 체구가 왜소하여 축구를 관두고 금호고로 배정 받았는데 금호고에 마침 축구부가 있어서 축구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2] 당시 대표팀 감독이 조영증(...). 그 감독에 그 코치라고 할 수 있다.[3] 이 당시 대표팀 멤버를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2000년 AFC U-19 챔피언십 명단 멤버만 봐도 화려하며 이 선수들 중 상당수가 이후 K리그 주전급 및 국가대표 핵심 선수유럽최상위리그 주전 선수 로 성장하였다.[4] 21패 중 4패는 전임 감독이 했다.[5] 당시 K리그는 30라운드까지는 16팀이 리그 경기를 치렀고, 이후 31라운드부터 44라운드까지는 상 하위 8개팀을 묶어서 리그를 치르는 스플릿 제도를 실시하였다. 참고로 이 시즌에서 광주 FC가 미칠듯이 DTD를 찍어 줘서 강원의 강등은 간신히 면했다. 4승 2무 12패, 스플릿 하위에서 3승 2무 7패라니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진행과정에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일단 최초로 승강이 실시된 해라서 최초의 강등구단이라는 불명예를 어느 구단이 뒤집어쓸 것인지 초유의 관심이 쏠리던 상황이었다. 이 부담감을 광주는 못 이겨내고 잡아먹혔다. 반면 강원은 김상호의 신전술이 극초반 반짝하다 공략당한 이후 쭉 내리막길이라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팀 분위기가 무력감이나 패배의식, 이기고 있다가도 1실점하는 순간 수비진 멘탈 붕괴로 연속실점, 약한 실책이나 반칙 상대의 돌파 이후 와르르 실점 등으로 장난이 아니었다. 후임 감독이 초반에 이것에 힘들어하다 하위 스플릿으로 빠지면서 점차적으로 성적을 내며 강등을 피한 것.[6] 체력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로 5일 동안 3경기를 하면서 수비진 4명과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모두 풀타임으로 돌리는 전술을 펼치니 탈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게 뭔 피파 온라인 게임도 아니고... 그러나 중국과 일본도 4강에 가지 못하고 줄줄이 탈락하면서 한국처럼 U-20 월드컵 본선은 동반 탈락했다.[7]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바 있는 임흥세 감독에 이어 칼빈대학교 축구부의 제2대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