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부터 시작된 스페인 내전에서 당시 소련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BT 전차와 T-26이 적군의 대전차 화기에 격파당하면서 소련군은 충분한 방호력과 공격력을 갖춘 중전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다만 이 때의 소련군은 구식에다가 저열한 성능의 다포탑 전차인 T-35 외에는 제식 채용된 중전차가 존재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T-35에 장갑을 덧붙이는 식으로 개량하였으나 이후 GABTU(기갑기계화총국)에서 보리시비크 공장과 키로프 공장에 T-35를 이을 신형 다포탑 전차의 개발을 지시했고, 두 공장은 각각 신형 전차 개발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키로프 공장에서 제작된 프로토타입이 바로 SMK다.
다만 SU-14등의 개발자를 숙청하고 다니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 전차와 T-100의 축소 스케일 목업을 보고 포탑 하나를 부러뜨리며 "누가 땅크에 백화점을 차리냐!"라고 격분한 덕분에, 제작자 코틴은 설계를 당장 백지로 되돌렸다. 다행히 그 때 코틴이 SMK에 주포탑[1] 하나만 달고 전체적으로 재설계를 가한 KV-1은 스탈린의 눈에 들어서 제작될 수 있었다.
1939년 핀란드에서 일어난 겨울전쟁은 SMK, T-100과 KV-1의 실험장소가 되었다. 이 때 KV-1은 핀란드군의 진지를 능숙하게 돌파하였으나, SMK는 핀란드군의 매복 공격을 받게 되었다. 핀란드군은 SMK를 자국 전차 전력으로 편입하려고 하였으나, 큰 크기로 이동시킬 수 없어 그대로 방치하였다. 2개월뒤 SMK는 소련군에 의해 회수되어 절단기로 잘린뒤 용광로에서 T-34가 되었다. T-100은 SMK와 같은 꼴이 날까 두려워 전선에 투입되지 않았고 SU-100Y로 개조되었다.
KV-1의 원형인 전차에도 불구하고 다른 소련 프로토타입 전차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낮은 편인데, 심지어 아예 제작되지도 않은 KV-4보다도 인지도가 더 낮다. 그나마 상술한 스탈린의 백화점 드립이 근 몇년간 밀리터리 동호인들의 밈이 되면서 그 유명한 '백화점 전차'로 굴욕적인 의미에서 인지도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