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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년
2014년 12월 29일, 만 20살 생일을 맞이하여 성년이 된 카코 공주의 티아라가 공개되었다. 미키모토의 제작품. 성년을 맞이하여 기자회견도 하였다.
기자회견에서 카코 공주는 가족들에 대한 애정과, 가쿠슈인대학을 중퇴하고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한 이유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편 자신의 단점에 대해 말할 때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도화선이 짧은 면이 있어서, 작은 일로도 다툼을 하곤 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며칠 후인 2015년 1월 1일에는, 황족들의 신년 인사에 처음으로 참가하였다.[1]
2. 2014년 ~ 2015년 : 대학생활과 유학
국제기독교대학에는 1~2학년 때 영어권 국가에서 1개월 이상 유학하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언니 마코 공주가 영국 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했음에도, 카코 공주는 해외유학을 가지 않았다. 카코 공주는 댄스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학교 댄스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공무로 바쁜 아버지 후미히토, 어머니 키코 비, 언니 마코 공주를 대신해서 남동생 히사히토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코 공주도 해외유학을 가고 싶고, 댄스 동아리에도 가입하고 싶고, 무엇보다 가쿠슈인대학을 자퇴하면서까지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한 만큼, 공부를 우선시하고 싶은 입장이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 때문에 원하는 일을 하기 힘든 모양이다. 황족이라는 틀 안에 딱 맞게 행동하는 언니 마코 공주에 비해, 카코 공주의 반항이 인간적인 느낌이 든다.
사실 주변에서는 일본 황실의 남아선호사상과 남존여비 때문에 본인을 비롯해서 불행해진 사람들[2]을 봐왔고, 그 때문에 어머니 키코 비는 늦둥이를 임신해서 히사히토를 낳았지만, 생활비가 부족한 것부터, 황위 계승 문제로 인한 친척들 사이의 기싸움까지 생겼다.
아버지 후미히토는 아들딸 차별이 심한 것 같지만, 어머니 키코 비는 엄청난 조기교육을 히사히토에게 시키는 걸 봐서는 차별이 아니라 허용하는 범위가 다른 것 같은데, 카코 공주는 황실의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고 있고, 결정적으로 어머니 키코 비와의 관계에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에 지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황실 관계자 기자는 카코 공주의 침묵에 대해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그리고 작년의 높은 인기가 카코 공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도 있었으니, 아키시노노미야 부부는 카코 공주의 안전을 위해, 또 현재 여성 미야케의 창설에 대해 소문이 많은 만큼 여성 황족들이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카코 공주는 아직 학생인 만큼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는 단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언급했다.[3]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카코 공주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든, 공부를 위해서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공무에 참가하지 않을 예정인 듯하다. 한편 언니 마코 공주는 국제기독교대학 대학원 예술과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동생 카코 공주는 해외유학을 못 가는 상황이고 마코 공주 본인은 직장과 공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대학원 입학이라는 말에 일본 여론은 좋지 않았다.
수어 관련 공무에서, 수어로 연설하는 마코 공주(좌)와 카코 공주(우). |
2016년 들어서 카코 공주는 더 이상 공무에 등장하지 않았으나, 가끔 수어 대회에 등장한다고 한다. 어머니 키코 비는 오래 전부터 수어를 배워 공무에서도 활용하는 등 능통하며, 어머니의 영향인지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도 수어 관련 공무를 많이 한다. 그러나 카코 공주의 경우, 옆에 수어통역자가 같이 있는 걸 봐서는 그렇게 능숙하지 않은 듯하다.
본래 카코 공주는 초등교사를 목표로 2013년 4월 신설학과인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교육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년 반 정도 다니다 중퇴한 후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 2015년 4월 언니 마코 공주의 모교인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에 새로 입학했다.
2014년 12월 29일의 만 20세 성년 기자회견에서 카코 공주는, 대학을 옮긴 배경에 대해 "유치원부터 쭉 가쿠슈인만 다녀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해보고 싶었고, 국제기독교대학의 수준 높은 영어교육과 폭넓은 교양교육(liberal arts)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학생 때부터 '가쿠슈인대학이나 가쿠슈인여자대학 이외의 다른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3학년 때 다른 대학에도 지망했으나 낙방하여 에스컬레이터 식 진학으로 가쿠슈인대학에 진학한 거였다고 한다.
국제기독교대학는 3학년에 진급하면서 전공을 결정하고, 그 이전까지 아직 전공을 정하지 않은 채 다양한 과목들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 많고, 영어교육을 아주 철저하게 시킨다고 한다. 수준별로 영어 클래스를 나누는데, 입학 당시 카코 공주는 뒤에서 2번째 클래스에 배정되었고, 그 때문에 어머니 키코 비가 카코 공주에게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조언했다.
카코 공주는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시절부터 댄스에 특기가 있었고, 그래서 대학에 진학하면 댄스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을까 하는 세간의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카코 공주는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한 후로 댄스 동아리뿐 아니라 어느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기타 학생 활동이나 학교 축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영국에 유학 중이던 언니 마코 공주 대신 공무를 많이 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언니가 귀국한 후로는) 공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국제기독교대학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굉장히 철저하게 시키며, 어머니 키코 비도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많이 강조하는 듯 하다. 덕분에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집에서 제일 늦게 불이 꺼지는 방은 카코 공주의 방이라고 하며, 카코 공주는 여름방학 때도 휴가를 반납하고 영어 공부를 했다고 전해진다.
2학년에 들어서는 영어 외에도 심리학, 철학, 자연과학 등의 다양한 과목을 수강했으며, 3학년에 들어서는 국제관계학을 전공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국제기독교대학에서의 국제관계학 수업은, 학생들끼리의 토론이 많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유명인이라 눈에 띌 수밖에 없지만, 여느 학생들처럼 평범하게 생활한다고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학생식당에서 카레라이스 등으로 식사를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도 했다.
언니 마코 공주는 국제기독교대학 1학년 때 아일랜드에서 1달간 어학연수를 했고, 3학년 때는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로 유학을 다녀왔고, 졸업 후에는 영국 레스터 대학교 대학원으로 유학을 다녀오는 등, 해외유학 경험이 풍부하다. 이에 반해 카코 공주는 가쿠슈인대학 시절에도, 국제기독교대학으로 옮긴 후로도, 유학을 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카코 공주도 해외 유학을 가게 되었다. 유학하게 된 국가는, 역시나 일본 황족들이 많이 택하는 영국이었다. 국제기독교대학의 교환 유학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2017년 9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단기 유학을 한다. 영국 리즈 대학교 공연문화산업학과에서 무대예술을 중심으로 공부할 것이며,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할 것이라고 한다. 2017년 9월 12일 오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영국 현지 시간으로) 12일 오후에 도착, 25일부터 시작되는 학기를 미리 준비한다.
3. 2016년 ~ 2017년
2016년, 국제기독교대학 2학년 2학기가 되어서도 성적이 바닥이라고 한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역대 성적[4]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낙제한 거야 학창시절부터 늘 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사실 생각보다 심각한 건데, 사실 카코 공주는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교육학과에 다닐 때도 1학년 1학기 중반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계속 두고 보던 가쿠슈인대학에서 결국 견디지 못하고 제적시키기 전, 어머니 키코 비가 손을 써서 가쿠슈인대학을 자퇴하게 하고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시킨 것이라는 설이 정설이다. 이 과정에서 카코 공주는 편입학이 아니라 재입학을 택해, 국제기독교대학에 1학년으로 입학했다.
그럼에도 "가쿠슈인대학에서 이수한 학점을 유지시켰다"는 기묘한 논리로, 최소 2학년 1학기까지는 학점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는 방침을 택했다. 따라서 이 논리대로라면 기 이수 학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적에 무리가 가지 않았어야 정상인데, 그 억지 이수 학점이 있음에도 낙제했다는 꼴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카코 공주는 낙제하지 않기 위해 공무도 쉬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상태로 알려져 있으니, 더욱 문제이다. 즉, 그렇게 공부도 하고 어거지 학점도 있는데도 2년 내내 낙제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미 국제기독교대학을 졸업한 언니 마코 공주도 과거 그러했지만, 남동생 히사히토도 그렇고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자녀들은 모두 성적이 나빠서 앞으로의 진학이 어렵다는 등 논란이 심각하다. 마코 공주는 사실 학비나 납득 안 가는 입학 경위도 그렇지만, 공부를 너무 못한 탓에 국제기독교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학창시절의 성적표가 유명했던 데다, 본인이 공부ㆍ직장ㆍ공무 모두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정말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하는 건가 하는 시선들이 많은 거다. 게다가 두 공주 모두 국제기독교대학 학부 입학 당시부터 부정입학 논란[5]이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이 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막내인 히사히토 또한 국립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유치원 입학 경위가 석연치 않은 탓에, 이런 저런 소문이 많다.
두 공주 모두 가쿠슈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성적이 최하위권으로 워낙 유명하며, 이제는 하다하다 '바보 자매'로 유명하다. 덧붙여 현재는 학습 부진아 소문이 끊임없이 도는 남동생 히사히토까지 묶어서 '바보 3남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히사히토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히사히토의 성적이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음에서 비롯된 비꼼이다. 사실 후미히토 내외의 성격이나 기회만 있으면 형님인 황태자 일가를 디스했던 전적을 생각하면, 만약 아들의 성적이 우수하다면 공개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할아버지 아키히토 덴노의 퇴위가 거론되던 9월, 카코 공주는 여름방학에 가족 여행도 가지 않고, 공무도 2015년 12월까지만 하고 등장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영어 과외 중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제기독교대학에는 영어로만 진행되는 전문적인 수업이 많고, 귀국자녀 학생들이 많아서, 토종 일본인은 힘들어한다고 한다. 게다가 카코 공주는 국제기독교대학 1학년이 다 가는 유학을 가지 않고 2학년으로 진학해서,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모양. 그 때문에 카코 공주는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듯하지만,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국제기독교대학은 '영어를 공부하는 학교'가 아니라, '영어로 공부하는 학교'다."라고 꼬집었다.
2016년 여름에도 "카코 공주가 단기간 해외 유학을 가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있었다. 그러나 국제기독교대학 2학년생이 가는 유학은 내용이 어렵고, 영어 면접도 봐야 되고, 학생 수도 제한되어서, 카코 공주는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실 1학년 때 그렇게 공무에만 시달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일본 여론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그럼 그동안 성적이 나빴다는 말인가?"라는 식이다.
카코 공주는 10월 22일~23일에 열린 대학 축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가 힘들기로 유명한 국제기독교대학에서는 축제가 유일한 휴식이라고 할 정도지만, 카코 공주는 축제에도, 댄스 동아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뉴스 기사에서는 "10월 중순에 일어난 돗토리 지진의 피해자들을 배려해서", "국민과 황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할머니 미치코 황후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라며 억지스레 칭송했다.
한편 일본 여론은 여전히 차남 후미히토 일가와 장남 나루히토 일가를 디스하고 있다. 물론 인성이나 공부 면에서 여러모로 좋게 봐줄 거리가 많은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가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후미히토와 키코 비 내외에 대해서는 인성 논란도 많았지만,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는 공부는 못했을지언정 일본인들 사이에서 평판이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즉, 후미히토 내외에 대한 평을 제외하면, 일본인들의 일본 황실에 대한 일반적인 감정은 애증이다.
알코올중독자라는 소문이 정설로 여겨지는 아버지 후미히토나 갑질 논란이 심각한 어머니 키코 비에 비해,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의 인성은 논란이 없었다. 물론 두 공주의 국제기독교대학 입학 정당성 논란과 최하위권 성적 논란은 여전히 심각하지만, 여러가지 논란이 심각한 부모에 비해 두 공주의 인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좋았다.
카코 공주가 태어난 1994년도부터 간간히 "여성 황족도 미야케(황족 가문) 창설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이코 공주의 여성 천황 여부 논란과 2006년 히사히토의 탄생 이후로도 일본 황족 수가 적자, 본격적으로 여성 미야케 창설 허용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만약 여성 황족도 미야케를 창설할 수 있도록 인정되면, 이미 시집가서 황실을 이탈한 공주[6]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성 황족의 미야케 창설을 전부 인정하면, 세금 때문에 일본 여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의견이 분분했다.
2017년 9월에 TBS 테레비에서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일본인 가족에 관해 보도하면서 카코 공주의 얼굴을 내보내는 대형 방송사고가 터졌다. 일본 네티즌은 난리가 났으며, 방송국에 항의전화와 메일이 폭주하고 방송사에서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혐한 넷우익들은 "TBS 내에 재일이 있다"느니, "한국인들의 작품"이라느니 하며 관계 없는 한국을 비방하는 개소리에 열중하고 있다.#
4. 2018년
2018년 6월 15일, 카코 공주는 9개월 간의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궁내청 관계자에 의하면, 카코 공주는 무대예술과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적극적으로 그룹 수업에 임했다고 한다. 1달에 1번씩 열리는 일본 유학생 교류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며, 휴가는 주로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여행으로 보냈다.
아키시노노미야 측에서는 예외적으로 영국 유학 중이던 카코 공주의 모습을 공개했는데, 결혼 문제를 겪고 있는 큰딸 마코 공주에 대한 기자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키코 비의 의견이었다. 한편 궁내청 관계자 중 일부는 "마코 공주님이 신뢰하는 카코 공주님은, 객관적으로 결혼 상담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 찬 목소리를 비추고 있다고 한다.
카코 공주는 귀국 다음날 증조할머니 고준 황후의 제례의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공무 활동을 시작했다. 궁내청 관계자에 의하면 "카코 공주는 국제기독교대학에 복학하는 9월 전까지 공무에 집중할 예정이다."라고 한다.
2018년 9월 2일, 일본 이바라키현 츠쿠바시에서 국제정보올림피아드가 열렸다. 카코 공주는 개회식에 참석하여 영어로 연설했고, 개회식이 끝난 후에는 일본 선수단을 만나 격려했다고 한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예쁜 외모와 발랄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은 카코 공주였으나, 현재 이 영어 스피치 때문에 "명문대생에 영국에 수개월 가량 유학까지 다녀왔으면서 영어 실력이 고작 그 정도냐"라고 욕을 엄청 먹고 있다.(…) "카코 공주는 영국 유학 당시에도 항상 통역을 대동하고 다녔다", "카코 공주의 영어 수준은 영검 4급, 즉 중학생 수준이다"라는 소문까지 계속 나돌고 있을 정도다. 사실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의 약혼 소동이 일본 사회에 큰 물의를 빚어, 평소라면 크게 비난받지 않았을 일인데 언니 때문에 카코 공주까지 덩달아 심하게 욕을 먹게 된 면도 있다.
2018년 10월 하순, 키코 비의 네덜란드 순방 기간 동안 카코 공주가 편의점에 들른 모습이 기사화되었다. 30대 후반의 남성 황실 경호원과 상당히 친해보인다는 내용이다. 이때 찍힌 사진을 보면 스타일은 그대로인 듯 "육식계"라는 표현이 나왔다.
카코 공주는 본래 유학이 끝난 후에 유럽 여행을 하려고 계획했으나, 언니와 코무로 케이 문제 때문에 여행을 포기하고 유학이 끝나자마자 바로 귀국했다. 그리고 어머니 키코 비는 카코 공주의 사생활에도 깊게 관여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등, 유학 전보다 더욱 심하게 단속한다고 한다. 카코 공주는 언니가 자유로운 학풍의 국제기독교대학에서 캠퍼스 커플로 만난 남자친구와 연애하여 결혼한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으나, 예비 형부 코무로 케이에 대한 이런저런 좋지 않은 보도들이 계속되자 당황하고 실망하여, 그 결과 "카코 공주가 연애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는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상당히 냉랭한데, 여기에 대해 부모와 언니 마코 공주 사이에서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이 갓 귀국한 카코 공주뿐이라서, 카코 공주가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맡아서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느 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카코 공주도 11월 이후부터는 지쳤는지 중재를 포기하고, 2019년 3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자유분방한 것으로 유명한 카코 공주의 성격을 감안하면, 그녀가 중재 역할을 맡아서 4~5개월 정도 버틴 것 자체도 대단하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
아버지 후미히토는 2018년 11월 30일 본인의 만 53세 생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카코 공주가 2019년 3월 국제기독교대학 졸업을 앞두고 밤 늦게까지 졸업논문을 쓰고 있다"고 근황을 알렸다.
5. 2019년
1월 초, "카코 공주를 포함한 7명의 여성이 궁저에서 차로 1시간 이내의 도쿄 도내 모처에 자리하고 있는 공민관에서 댄스스쿨 레슨을 비밀리에 받고 있다"는 기사가 한 주간지에 보도되었다. 작년 9월 공연 이후에도 카코 공주는 계속해서 비밀리에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레슨을 받고 있으며, 이 7인조 댄스팀에서는 카코 공주의 이름이 빠져 있다고 한다.카코 공주에게 춤이란 단순한 취미 정도가 아닌 듯하다. 카코 공주는 어려서부터 춤을 좋아했지만, 영국 유학 중에 영국의 여러가지 예능에 대해 공부하고 체험하면서, 춤에 대한 열정이 더 강하게 타올랐다고 한다. 댄스 연습을 하다가 발목을 자주 삐어서 발목에 테이핑을 하면서도, 연습을 계속한다고 한다. 댄스에 대한 카코 공주의 열정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이다. 큰딸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키코 비는 작은딸 카코 공주에게도 여러 모로 강하게 규제하지만, 댄스에 대해서는 특별히 제약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보도에 대해서 일본의 대체적인 여론은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카코 공주가 도쿄 모처 공민관에서 댄스레슨을 수 시간 받는 동안 공민관 주변에는 경찰관들이 공민관의 경비를 서고 있기 때문. 일본인들은 기사 내용을 거론하면서 "이놈의 집안은 하나같이 국민들의 세금을 자기 멋대로 흥청망청 쓰기 바쁘다"며 비판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1월 들어서, 카코 공주는 오후 10시를 넘어서까지 학교에 남아 졸업논문을 마무리짓고 있다.
2019년 2월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카코 공주는 지난 1월 26일 오후에 언니 마코 공주의 공무와 외출에 동행하면서 사실상 자신은 언니의 편임을 밝혔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키코 비에 대한 반감으로 보인다"는 것이 보도의 주요 골자. 아무리 언니와 어려서부터 각별한 자매 사이라 해도, 전국민이 나서서 아키시노노미야 집안 전체를 비난하고 있는 이 판국에 언니의 편을 든다는 것은, 카코 공주 또한 언니처럼 제멋대로인 성격이라는 뜻이다.
특히나 장녀라고 압박을 많이 받아서 조용하고 과묵해보이던 마코 공주가 이 정도인데, 자유분방한 카코 공주라면 무슨 큰 사고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 이러면 키코 비와 일본 황실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판인 게, 마코 공주가 저지르는 사고도 수습이 불가능할 지경에 카코 공주까지 통제가 안 된다는 뜻이다.
한편 아키히토 덴노가 생전퇴위하고, 나루히토 황태자가 새 천황으로 즉위하면서, 황태자 내외와 후미히토 내외가 맡던 공무들이 재분배되었다. 황족들이 공무를 새로 할당받는 과정에서, 카코 공주는 공무를 할당받지 못했다. 그녀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기도 하거니와, 졸업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떠날 수 있는 등 진로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2월 22일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카코 공주는 "언니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어도 결혼 문제에 있어선 그렇게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언니의 결혼 문제를 언급하려 하지 않고 있으며, 자매 사이도 많이 어색해져 의사소통이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카코 공주가 언니의 편을 들어주는 이유는,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허락받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도 존재한다. 실제로 이전에 키코 비는 작은딸 카코 공주가 댄스를 즐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큰딸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말썽이 된 이후로는 허락해주었다. 이 사실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없진 않다.
3월 1일에는 새로운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카코 공주는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의 인상을 해친 것, 국제기독교대학의 평판을 떨어뜨린 것,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끼친 것 때문에, 언니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의 결혼을 납득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언니와 사이가 좋고, 언니가 코무로 케이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알고 있지만, 언니와의 대화에서 코무로 케이를 언급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3월 18일, 궁내청 관계자가 카코 공주의 대학 졸업 후 진로를 밝혔다. 카코 공주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4월) 대학원에 진학하지는 않을 것이고, 당분간 진로 준비를 하며 공무에 전념할 예정이라고 한다. 카코 공주가 해외 유학을 준비한다면 '학업을 우선시하는' 일본 황실의 전통상 밀어주겠지만, 아키시노노미야 부부와 마코 공주 모두 "카코 공주가 메신저 역할로 가족의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라고 한다.
5.1. 솔직한 발언
2019년 3월 22일, 카코 공주는 국제기독교대학을 졸업했다. 궁내청의 발표에 의하면, 카코 공주는 당분간 대학원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고, 공무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카코 공주는 어머니 키코 비처럼 심리학을 전공했고, 졸업논문의 내용은 '기억과 생각이 독해력에 미치는 실험에 관한 고찰'이다.
카코 공주는 졸업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다'가 아닌 요구받은 일을 해결할 것이며,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폭넓게 배운 경험을 앞으로의 일에 활용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부모인 아키시노노미야 부부 역시 "카코 공주가 대학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영국에서의 단기 유학으로 시야가 넓혀져서 경험을 살려 앞으로의 일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언니 마코 공주의 결혼 연기에 대해서, 카코 공주는 "본인의 마음이 중요하다. 언니 개인으로서의 희망이 이루어진 형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어머니 키코 비와 언니 마코 공주 사이에서 중재하는 것에 지쳐 포기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과 언니에 대한 애정 때문에 찬성하는 쪽으로 기운 듯하다. 게다가 "내 결혼 상대에 관해서는 공개할 생각이 없다"는 발언을 하거나, 언니의 결혼 문제에 부정적인 언론사들의 보도를 (그나마 우회적으로) 디스하는 등, 일본 황족답지 않게 솔직한 자기 의견을 표출해 일부 네티즌들에게 "피가 어디 가는 게 아니다"[7]라며 비판당했다.
한 여성지에서 카코 공주의 돌발 발언에 대해 다루었다. 본래 기자들은 '카코 공주는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에 대해 노코멘트할 것이다'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카코 공주의 발언은 그러한 예상을 크게 깨뜨린,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또한 카코 공주의 발언은 후미히토 내외가 그동안 밝혀 온 입장과는 정반대라, 기자들이 더 놀랐다고 한다. 후미히토 내외는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지 않으면 마코 공주를 코무로 케이와 결혼시킬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후미히토 내외와 두 공주 사이에서 큰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거기에 가뜩이나 마코 공주 결혼 문제가 제대로 수습되지 않아서 날이 서 있는 일본인들은, 카코 공주의 경솔한 발언에 대해서 "국민의 세금으로 생활하면서[8] 국민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했다", "역시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는 데 혈안이 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사람답다"는 등 다양한 표현으로 비판하고 있다. 물론 "아무리 황족이라고 하지만 개인 사생활은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러한 의견은 진짜 극소수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각 때문에 벌어진 사태가 바로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칙대로라면 부마 후보에 대해 조사해야 했지만, 마코 공주가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실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코 공주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사생활에 간섭하지 말라는 표시이자, 공무에 열중하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라는 우호적인 추정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1959년 황실에 시집온 이래 '황족의 의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가치관으로 60년을 살아온 할머니 미치코 황후는, 둘째 손녀 카코 공주의 발언에 "섬뜩하다"고까지 표현하면서 후미히토 내외에게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궁내청 내부에서는 카코 공주의 발언 중에서 "공무에 대해 정중하게 대처한다"는 언급에 기대도 하고 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황족으로서의 자부심은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코 공주는 결혼 문제로 물의를 빚고 있는 와중에도 공무만은 열심히 임하고 있다. 따라서 언니가 그러는 것처럼, 카코 공주도 공무만은 열심히 할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 사실 이러한 것은 두 공주의 아버지 후미히토가 자주 사용하던 수법이었다. 후미히토도 온갖 말썽을 일으키면서도 (황실 내부에서의 반발을 누르기 위하여) 공무는 열심히 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랐으니, 딸들도 당연히 아버지를 따라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모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에 놀랐다"는 궁내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한 주간지는 "카코 공주에게 있어 부모는 공무 부분에 있어서, 언니 마코 공주는 사생활 부분에 있어서 막역한 사이"라고 표현했다. 카코 공주가 이러한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후미히토 내외가 '황족으로서의 자신'과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철저하게 나눠서 교육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공(公)과 사(私)가 부딪칠 경우에는 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일본 황실의 교육관과 정반대이다.[9] 한창 후미히토 일가의 영향력이 강해서 형인 나루히토 일가를 밀어낼 듯한 기세였을 때조차도, 궁내청과 극우들이 이러한 후미히토 일가의 교육관에 대해 "차기 천황 가문인 것은 둘째치더라도, 황족으로서 문제가 있다"면서 부정적으로 보았을 정도였다.
3월 24일, 카코 공주는 치바현 소년소녀 오케스트라 도쿄 공연에 언니 마코 공주와 함께 참석했다. 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하는 공무였다. 카코 공주는 언니와 종종 환담을 하면서 공연을 참관하였다. 이에 대해서 대외적으로 "자매가 같이 공무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자매의 사이가 더할 나위없이 좋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앞서 대학 졸업식 때 카코 공주가 저지른 실언 때문에) 상당히 싸늘하다.
3월 25일, 증조할아버지 쇼와 덴노(히로히토)와 증조할머니 고준 황후(나가코)의 묘소를 참배하여 대학교 졸업을 보고했다.
카코 공주의 대학 동기들은 "언니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 이후, 카코 공주가 남동생 히사히토에 대한 이야기는 곧잘 떠들어도, 언니에 대한 언급은 유독 없었다"고 언론을 통해서 증언하기도 했다.
한편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으로 인하여, 황실 전담 기자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카코 공주의 장래 결혼에 대해서도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일단 카코 공주가 언니보다 먼저 결혼할 듯하지는 않다. 하지만 카코 공주가 결혼할 때는, 일본 황실과 궁내청은 (마코 공주 때와 달리) 부마 후보에 대하여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다. (카코 공주의 동의 여부는 상관없이) 또한 후보자에게서 조금이라도 결점이 발견되면 결혼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서, 카코 공주는 (문제가 될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대학 졸업식에서 향후 자신의 결혼 문제에 대해 발언한 듯하다.
이후 나온 보도에 의하면 이러하다. 카코 공주가 졸업식 기자회견에서 발언할 내용을 담은 문서를 사전에 보고, 궁내청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카코 공주에게 수정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카코 공주는 이를 거부하면서, "아버지는 사전 검토도 없이 마음대로 말하도록 두면서, 왜 나에게만 그러느냐"고 따졌다. 그리고 그 항의에 할 말이 없는, 궁내청은 카코 공주가 본인 뜻대로 발언하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것이다. 물론 보도에 의하면이라 사실 관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후 언론에서는 카코 공주의 발언 논란을 두고 일명 '카코의 난'(佳子の乱)이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언니 마코 공주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에 대한 항의"라고 보도하는 중이다. 특히 이러한 발언이 어머니 키코 비를 겨냥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한 주간지는 "카코 공주와 부모 간의 불화는, 카코 공주가 어릴 때부터 존재했다"고 추측했다. 아버지 후미히토는 작은딸 카코 공주에게는 손을 들었지만 늦둥이 막내이자 황실의 귀한 남자아이인 히사히토에게는 손을 들지 않았다. 또한 후미히토는 2004년 3월 큰딸 마코 공주의 가쿠슈인 초등과 졸업식 이후로는 딸들의 학교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히사히토에게는 일거수일투족을 다 따라다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카코 공주는 상당히 억울해했다. 어머니 키코 비는 "무용을 전공하고 싶다"는 카코 공주의 소망을 "황족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여, 카코 공주는 어머니와도 불화가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키코 비가 카코 공주에게 무언가 말을 걸려고 하면, 카코 공주는 "나한테 말 걸지 말라"고 소리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미 2015년도부터 "키코 비가 카코 공주의 자유분방한 행동과 파격적인 옷차림을 제지했고, 카코 공주는 반발했지만 결국 어머니를 이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로 인하여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전체가 강한 비판을 받게 되자, 키코 비는 카코 공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여 댄스를 허용해주었다. 이는 더 이상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남편 후미히토와 아들 히사히토가 장래에 무사히 천황에 오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란 말도 있다. 다만 공주가 댄스를 하는 것에 우아하지 못하다는 식의 꼰대스러운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5.2. 레이와 시대
2019년 5월 1일, 할아버지 아키히토 덴노가 퇴위하고 큰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가 새 천황으로 즉위했다. 카코 공주도 성년 황족으로서 퇴위 의식, 새 천황 즉위 의식, 5월 4일 새 천황 첫 일반 참관 행사에 참석했다.카코 공주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사실 언니 마코 공주의 결혼소동에 비하면 카코 공주 본인이 휘말린 사건은 별로 없다. 때문에 마코 공주보다는 비난을 적게 받으며, 이전에 누리던 인기도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나루히토 즉위 이후 카코 공주가 웃으면서 국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사진이 보도되자,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보여서 보기 좋다"는 말도 있다. 사실 특정 반응만 너무 부각해서 쓴 감도 있는데, 카코 공주의 25세 생일 기념 영상을 보면 여전히 팬들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졸업식 때의 발언도, '친언니이니 옹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어느 정도 양해해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현재 카코 공주는 언니마냥 사고를 치지 않았고 조용히 공무에나 집중하고 있어서, 비난할 건덕지가 적다. 카코 공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자세히 보면, 그동안 그녀의 성격과 대학 졸업식 때의 발언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결혼 과정에서 언니처럼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이기 때문에, 이를 걱정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2019년 5월 13일, 어머니 키코 비와 함께 세이브 더 칠드런 재팬이 주최한 자선 만찬회에 참석했다.
5월 16일 궁내청은 "카코 공주가 9월 중순부터 열흘 정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공식방문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카코 공주에게 있어 첫 단독해외공무로, 양국과 일본의 외교 150주년 기념행사, 대통령 접견, 현지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다만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질질 끌고 있는 이 와중에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가족들이 각각 해외공무를 한다고 발표되자, 카코 공주를 포함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모두에게 비판이 쏟아졌다.
2019년 5월 21일 후미히토, 키코 비, 마코 공주, 카코 공주는 산토리 홀에서 개최된 헝가리ㆍ일본 수교 150주년 기념 연주회에 참석했다.
"공무에 집중하는 카코 공주의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궁내청 내부에서도, "카코 공주가 가을쯤 유학을 선택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언니 마코 공주는 2014년 3월 국제기독교대학을 졸업한 후, 한동안 공무에 집중하다가 9월에 영국 레스터 대학교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때문에 카코 공주도 그러할 가능성이 있으며, 카코 공주에게 해외 대학원 진학이라는 자유로운 환경이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카코 공주는 "공무에 집중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새로 즉위한 큰아버지 나루히토 천황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내부에서도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한결같이 공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편 카코 공주가 성실하게 공무에 임하는 것은, "조부모님의 수십 년에 걸친 공무 활동을 존경하고 있어서"라고도 한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할아버지 아키히토 상황과 할머니 미치코 상황후 내외의 의지를 이어받는다는 것이 공무에 진지한 이유라고 한다.
황실 전담 기자들은 "매일 아침마다 저택 근처에서 조깅하는 카코 공주는, 언제나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정도로 사교성이 좋다"며, "해외 유학에서 쌓아온 실력, 레이와 시대라는 새로운 황실을 상징하고 있다는 이미지 때문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칭송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후미히토 일가에 의한 가짜뉴스이다"라고 간주하면서, "저런 가짜뉴스를 퍼트릴 시간에, 문제나 일으키는 딸내미들 간수나 제대로 하라"고 항의하고 있다.
2019년 6월 3일, 대학 졸업 후 첫 단독 공무로 메이지기념관에서 개최된 제66회 산케이신문 아동출판문화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원래는 어머니 키코 비가 매년 참석해 왔으나, 상황이 여의치않아 카코 공주가 대신 참석했다. 카코 공주는 어머니 키코 비가 했던 것처럼, 수상작을 미리 읽고 하나씩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일개 언론에서 하는 시상식에 굳이 황족이 참석할 필요가 있냐"는 평가와 함께, 카코 공주가 썼다는 독후감을 언급하면서 "저 정도 글은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만 되어도 누구나 쓸 수 있겠다"고 디스하고, 거기다 "황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초등학생 수준의 글을 쓰고도 사례금 등의 명분으로 막대한 돈을 받아챙긴다"면서 온갖 비난을 퍼붓고 있다.
한편 어머니 키코 비는 두 딸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를 구 황족이나 구 화족 가문의 아들과 혼인시키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면 딸들이 시집간 후로도 평민이 되지 않고 여성 미야케를 창설할 수 있게 될 가능성도 있고, 그러면 남동생 히사히토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들은 영 비협조적인 모양새이다. 큰딸 마코 공주는 부모의 규제와 막대한 수준의 공무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하고, 언니보다 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작은딸 카코 공주는 더 심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모녀들 간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9년 8월 15일 국무회의에서, 카코 공주가 9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흘 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방문하기로 결정되었다.
2019년 8월 25일 보도에 의하면, 카코 공주는 대학 졸업 후 1달에 2~3개의 공무 정도만 하고 있으며, 그 외에는 공무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보도는 카코 공주에 대한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일본인들은 "카코 공주의 동기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에 나와서 여러가지로 고생하고 있는데, 카코 공주는 단지 황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막대한 생활비를 받으면서 편하게 쉰다"면서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나루히토 황태자가 새 천황으로 즉위한 5월 이후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는 사실상 황태자 일가에 준하는 가문이 되어 공무도 늘어났다. 카코 공주에 대해서도 "대학원 진학과 취직을 포기하고 공무에 집중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일본인들은 "언니 마코 공주와 달리, 카코 공주는 그다지 공무를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의심했다. 결국 8월 28일 보도를 통해, 사실상 이러한 의심이 사실로 드러났다. (비난을 무마시키려는 듯) "카코 공주는 부모님이 공무로 집을 비울 때면, 4월부터 중학생이 된 남동생 히사히토를 돌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궁내청도 "카코 공주가 공무도 하지 않으면서 놀기만 한다"는 비난을 의식하여 무마시키려는 듯, "카코 공주는 해외공무 이후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연달아 공무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2019년 9월 1일, 카코 공주는 관동대지진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법회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그러나 일본 네티즌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또한 "카코 공주가 장갑을 낀 채로 분향을 했다"며 비난하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함께 참석한 어머니 키코 비와 언니 마코 공주 역시 장갑을 낀 채 향을 넣었고, 행사를 주관한 사찰의 주지스님 역시 언론을 통해 "이러한 행동은 결례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비난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2019년 9월 15일, 카코 공주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방문하기 위해 오전 11시 하네다국제공항에서 전세기 편으로 이동했다.
2019년 9월 16일, 카코 공주는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부르크 박물관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유물을 시찰하는 것으로 공식방문 일정에 돌입, 오스트리아의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과의 접견, 빈 소년 합창단 공연 관람, 일본인 학교 시찰, 오스트리아ㆍ일본 수교 150주년 기념 연설, 벨베데레 궁전 방문을 거쳐 헝가리를 방문한다.
2019년 9월 20일, 카코 공주는 오전부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공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언니 마코 공주의 남미 방문과 달리 방문 일정 자체도 상당히 느슨한데다가, 공무 일정도 별로 많지 않다"라는 보도, 관광으로 보이는 일정[10]에 대한 보도들이 나오면서, 카코 공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고 있다. 황실 기자는 "발레의 경우, 카코 공주가 춤을 좋아한다는 것과 연관지어 상대국 관계자가 결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있는데 관광지를 방문한 것은,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끼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궁내청 관계자는 "카코 공주의 유럽 순방 당시 방문한 곳은, 카코 공주의 의사가 반영되어 외무성에서 정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카코 공주가 유럽 공무에서 귀국한 이후, 주간지를 통해 후속 보도가 나왔다. 어머니 키코 비가 카코 공주의 해외 공무에 대해 비판했는데, 카코 공주의 능력 부족 때문이었다고 한다. 언어 소통과 예절 문제로 결례가 발생했다는 것. 이러한 보도에 대해서 일본 국민들은 "역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게는 해외 공무를 맡기지 말라. 천황 부부나 아이코 공주, 아니면 다른 미야케 사람들에게 맡기라."는 소리와 함께, "카코 공주는 댄스에 들일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영어나 예의범절을 배워라. 그게 싫으면 결혼해서 황족에서 이탈하라."고 비판하고 있다. 다만 카코 공주의 영어 실력은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말도 나오는 걸 보면, 좀 어거지성 주장도 있는 듯.
2019년 10월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카코 공주는 가족들의 불화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아키시노노미야 집안의 분위기는 험악해져가고 있다고. 때문에 평상시에 카코 공주는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부모의 언쟁으로 집안이 시끄러워지면 귀를 막고 집을 나와 큰아버지 나루히토 덴노 일가의 거처(아카사카 고쇼)로 피신한다고. 그리고 큰어머니 마사코 황후와 사촌 여동생 아이코 공주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다고 한다.[11] 이에 대해서도 "그렇게 싫으면 적당한 남자와 결혼해서 황적이탈해라.", "왜 아카사카 고쇼로 가서 큰어머니와 사촌 여동생에게 심적 부담을 주냐."고 비꼬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또 다른 보도에 의하면, 카코 공주는 "내가 무언가 움직이기만 하면 인터넷에서 온갖 악플이 쏟아진다. 더 이상 일본에 있고 싶지 않다."며 운다고도 한다.
2019년 10월 6일, 비공개로 진행된 댄스스쿨 발표회 사진이 공개되었다. 궁내청의 함구령에도 불구하고, 복부를 노출한 의상을 입고서 춤추는 카코 공주의 사진들[12]이 언론에 의해 공개되었다. 이에 대해선 "황족이 황족답지 않게(?) 행동한다면, 그냥 평민 남자와 결혼해서 황족의 자리에서 내려와라. 평민이 되어 좋아하는 댄스를 계속하면 되지 않느냐."고 지적하는 여론도 상당하다. 사실 후미히토 일가에 대한 여론이 좋았다면 같은 행동도 서민적, 개방적인 공주라는 식으로 칭찬 받았을텐데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이후 카코 공주의 취미생활(댄스)에 대한 관련 기사에, "카코 공주는 공무를 제대로 해내면서 취미를 즐기고 있으니 문제없다. 성인이 된 딸이니 자주성을 존중하며, 간섭하지 않는다."는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관계자의 말이 실렸다. 한편 후미히토는 "나와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젊은 나이에 연애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종종 말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추가 보도를 통해, 비공개 댄스스쿨 발표회 당시 경호원들의 숫자와 행태에 대해 밝혀졌다. 10명 이상의 경호원들이 관중석과 무대 사이를 다니면서 관객들 어느 누구도 카메라를 꺼내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등, 강압적인 태도로 사람들에게 겁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다시 카코 공주에 대한 비판 여론이 심해졌다. 사실 공무에 경호원들이 동원되는 것은 황족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비판하지 않지만, 댄스스쿨 발표회는 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그런데 사생활에 (국민의 세금으로 움직이는) 경호원을 한두 명도 아니고 최소 10명 이상을 투입한 것이다. 또한 카코 공주와 함께 무대에서 춤을 춘 사람들, 그들을 보러 온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도 큰 민폐이다. 카코 공주 때문에 자신들의 소중한 사람과 순간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큰 폐를 끼친 카코 공주 및 부모 아키시노노미야 부부에게 비판이 쏟아졌다.
2019년 11월, 가쿠슈인 여자중ㆍ고등과의 축제가 열렸다. 아이코 공주에게는 청소년 시절의 마지막 학교 축제이다. 이때 카코 공주가 아이코 공주에게 춤을 가르쳐주었는데, 이는 아이코 공주가 먼저 요청한 일이라고 한다. 운동신경이 좋고 주기적으로 운동을 즐기는 아이코 공주가 힘들어할 정도로 강도 높게 가르쳤다고 한다. 역시 카코 공주는 춤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되었다. 그나마 이 보도에서는 카코 공주에 대한 비난이 적다.
2019년 12월 8일에는 남동생 히사히토와, 12월 10일에는 언니 마코 공주와 둘이서 공무에 나선다. 여전히 "돈 낭비한다"고 아키시노노미야 집안을 향한 비판이 강하다.
한편 제41회 전국청소년웅변대회에 카코 공주가 히사히토와 함께 참석한 것을 두고, 후미히토와 키코 비의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마코 공주가 시집가면 카코 공주에게 히사히토를 돌보게 하려는 것. 후미히토 내외가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은 키코 비의 설득을 마코 공주가 거부함에 따라 지난 여름부터 대화가 단절,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를 완전히 '체념'한 것에 기인한다. 최근 들어 키코 비는 카코 공주의 취미생활(댄스)을 많이 허용해주며, 오히려 카코 공주와 더 가까워졌다고 한다.
2019년 12월 중순 들어서 언니 마코 공주와 함께 연달아 공무에 나섰는데, 이를 두고 마코 공주는 "여동생은 나의 가장 큰 이해자"라며 든든함을 표시했다고 한다.
6. 2020년
2020년 1월 중순, "카코 공주의 공무 활동이 적은 것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원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마코 공주의 결혼이 예정대로 진행되었을 경우 기존에 마코 공주가 맡아왔던 명예 총재직을 카코 공주가 물려받을 계획이었으나, 결혼 연기에 따라 흐지부지되었다. 또한 언니보다 먼저 결혼하는 것도, 취미 활동인 댄스 역시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여의치 않은 상황 속에서 카코 공주가 고모 구로다 사야코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여러가지를 상담하고 있다고 한다.한편 어머니 키코 비에게 몇 개의 공무를 인계받았으며, 아버지 후미히토가 카코 공주의 공무태도에 대해 "사전조사가 성실하다"고 칭찬하는 등 아키시노노미야 부부가 카코 공주의 공무 태도를 좋게 보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2020년 1월 하순부터 연달아 3개 공무를 돌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선 비판 여론이 상당한 모양이다. 참여한 공무 중 킬트와 꽃꽂이 관련 대회는 카코 공주보다 키코 비에게 더 어울린다는 점, 아키시노노미야 부부가 카코 공주의 최근 공무 태도가 좋다고 칭찬할 정도라고 하기에는 평상시 공무 때 태도와 별 다를 바 없다는 점[13] 그리고 2020년 헝가리 친선 관련 전람회 공무 보도에서 제기된 것인데 사실 해당 전람회는 2019년 말 개관식에는 2019년 여름에 헝가리를 방문한 카코 공주 대신 수 년 전에 헝가리를 방문한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가 참석해서 기념 축사를 한 건 물론이고 당시 방일해있었던 헝가리 총리와 같이 회장을 둘러보면서 친밀하게 대화까지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궁내청 공식 공무 기록에도 이러한 일정이 공개된 적도 없고 그래서 일본 언론 보도도 없어서 헝가리 측 보도를 보고서 겨우 이 사실을 알아낸 반면 카코 공주의 참석 때 주변에 안내인, 수행원, 경호원 정도만 있었는데 이걸 두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공무니 국제 친선이니 떠들어 대는 것이 이상하다는 게 황실에 정통한 사람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2020년 7월 23일, 카코 공주의 열애설이 보도되었다. 상대 남자는 그녀가 영국 리즈 대학에 유학을 가 있을 무렵인 2017년 9월 ~ 2018년 6월 사이에 유학지에서 만난 영국인 이공계 남성이며, 정확한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14] 카코 공주는 현재 이 남자와 진지하게 사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며,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의 결혼 건이 어떤 형태로든 정리된 직후에 약혼을 할 것 같으며 시기만 잘 맞으면 마코 공주의 결혼 의식 재개와 동시에 약혼 발표를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식으로 일본 언론은 추측하고 있다. 이미 2년 이상 질질 끌고 있고 앞으로도 해결될 기미가 잘 안 보이는 마코 공주 결혼소동으로 인하여 지칠대로 지친 일본인들은 "(마코 때와 다르게) 상대 남자에 대한 정확한 검증을 한 뒤에 결혼 진행이든 뭐든 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높다. 참고로 이러한 열애설에 "되도록이면 두 딸이 결혼 후에도 황족으로 남아서 히사히토를 도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진 키코 비[15]가 최대한 설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이후 보도에서 영국인 남자친구가 코무로 케이와 상당히 닮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본 국민들은 "역시 자매라서 보는 눈은 비슷한 게 아니냐"면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
8월 3일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의 시종들 대부분에게 조기퇴근을 명령하고 카코 공주의 남자친구를 초청해서 키코 비가 이런 저런 검증을 했는데, 마코 공주 때는 마코 공주의 의사 등을 감안하여 제대로 조사 안 했다가 지금까지도 국민들에게 공격받는 상황을 감안해서 상당한 압박을 가하면서 이것저것을 물어봤는지 자리를 파한 직후 남자친구는 현관 근처 벤치에 주저 앉아서 시종이 건네 준 생수를 단숨에 들이키면서 한숨을 쉬었다는 주간지 보도가 있었다. 이후로 별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적어도 인성은 코무로 케이보다는 낫다.
9월 27일 전국 고교생 수화 대회에서 특기인 수화로 인사하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궁내청에 의하면 코로나 19 상황을 감안하여 비접촉 방식으로 진행된 대회를 저택 내에서 진지하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다만 이 날 아침부터 유명 배우 다케우치 유코가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갑작스레 자살을 하면서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진 시점이라, 비교적 황실 관련 보도의 집중도가 떨어진 면도 없지 않아 있다.
10월 10일, 카코 공주는 일본 걸스카우트 창설 100주년 기념식 비디오 메시지에서 젠더 평등에 관한 발언을 했는데, 이 발언도 일본 내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특권층인 본인이 그러한 자리에서 내려와 평범한 시민들처럼 일하면서 살지 못할 거면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동시에 카코의 집안인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자체가 젠더 평등에 역행한다면서 양심이 있으면 부모를 설득해서 황족 자리에서 물러나 일반인으로 사는 게 진정한 젠더 평등이라는 발언 등을 하고 있다.
7. 2021년
2021년 5월 6일부터 전일본로아연맹[16]의 비상근직원으로 근무한다. 주 3일 재택근무 예정이라고. 카코 공주가 스스로 취직을 희망했고, 2월 말부터 인턴을 거쳐 비상근직원으로 취직하게 된 것이라고 알려졌다. 추가 보도에 따르면 키코 비가 카코 공주에게 취직 경험을 해보길 조언했다고 한다. 본래 키코 비와 후미히토는 마코 공주나 카코 공주가 선택한 남편감에 대해서 반대할 생각이 없었지만,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로 더 이상 결혼이 공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느끼게 되었고, 카코 공주가 사회 경험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접해서 '사람 보는 눈'을 기르면 좋겠다는 판단에서 카코 공주의 취직이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2021년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국민들의 강한 반대 속에서 마코 공주가 코무로 마코가 되던 날 카코는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언니 코무로 마코를 껴안는 등의 행동을 하면서 국민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언니인 마코를 지키겠다는 의지와 함께 마코처럼 국민들을 증오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닌가라는 의혹이 국민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언니 마코의 황적이탈에 따라, 기존 언니가 하던 각종 공무들이 그동안 공무다운 공무를 거의 하지 않아서 기자들로부터 로얄니트라는 비난까지 들었던 카코 공주에게 넘어왔다. 참고로 언니로부터 물려받은 공무들 중 하나를 소화할 때 공개된 영상을 통해 코무로 마코가 시집가기 전에 입던 옷들[17]을 입고 왔는데, 인터넷 여론은 당시 언니 코무로 마코가 일반인이 되고 나서도 온갖 특권과 특혜를 누리는 것에 화가 잔뜩난 상태였기에 그러한 코무로 마코를 옹호하는 카코 공주가 안 어울리는 언니 옷을 입고 나온 것에 대해서 물타기용 쇼라는 등의 평가를 내린 상태다.
2021년 12월 29일 27세 생일을 맞이하여 공개한 기자회견에서 얼마 전에 결혼한 언니 코무로 마코에 대한 옹호를 다시금 언급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카코 공주에 대한 악감정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8. 2022년
2022년은 친언니인 코무로 마코가 결혼을 통해서 황족에서 이탈해서 해외로 이주해버리고 남동생인 히사히토는 아직 어린 탓에 언니가 맡아서 하던 명예총재 직위 등을 계승받게 되었기에 일부에서는 집안의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카코 공주가 활발하게 공무 활동할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실제로 카코 공주의 공무는 언니가 결혼하기 전 수준으로 활동했고 이러한 것이 주간지 등에 의하여 지적받은 이후에서야 조금 더 하는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일본 내에서는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9. 2023년
2023년에 들어와서는 수 년째 참석 중인 여성 관련 행사에서 젠더 평등을 운운하였는데, 해당 보도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는 여성 차별로 가장 이익을 보는 후미히토 일가 사람이 젠더 평등 운운하는 게 웃기다는 등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 올라오고 있다. 2월, 모 주간지에서 후미히토가 말이 많던 40억 엔 이상의 개보수 작업을 끝마치고 리모델링이 완료된 저택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카코 공주가 그동안 머물렀던 임시 거처[18]에서 안 나오려고 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또 다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2023년 6월 30일 임시거처 문제에 대해서 드디어 후미히토 일가를 담당하는 황사 대부가 공식 발표를 했는데 해당 발표에 의하면 개조한 본관 건물에는 코무로 마코 및 카코 공주의 거처 공간은 비용 문제로 빼버린 까닭[19]에 카코 공주의 거처는 임시 거처[20]에 고정된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러한 조치에 얼만큼의 비용이 줄었는 지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떤 증거들도 제시하지 않아서 과거 겨우 진정된 사안에 기름을 부어버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게 더욱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후미히토 일가는 현 자택 리모델링으로 최소 30억 엔 이상을 썼는데, 이는 일본 황족들의 저택 리모델링치고는 매우 비싼 축이라는 이야기가 아주 오래 전부터 흘러 나오던 상황[21]에서 아무런 자료 없이 그냥 말로 리모델링한 저택에는 두 사람 공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리모델링 완료 즈음에 기자들에게 신 저택 완성과 동시에 일가 전체가 신 저택으로 간다고 말했는데, 기자들이 관계자들에게 조사해본 결과 애시당초 리모델링 시작 즈음에 가족회의로 코무로 마코 및 카코 공주 모두 리모델링 후 저택에 안 돌아가고 임시 거처에서 지낸다고 합의했다는 것도 알려지면서 가뜩이나 비난이 강한 후미히토 일가에 새로운 역풍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2023년 7월 13일 궁내청 장관 정례회견에서도 이러한 황사대부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이번 발표가 너무 늦게 발표했다는 걸 인정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연 발표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는 아키시노노미야 일가가 자기네들을 향한 일반 대중들의 강한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질질 끌다가 더 이상 끌면 안 되겠다고 싶어서 뒤늦게 공개한 여파라고 보고 있다.
2023년 8월, 사촌인 아이코 공주가 전용 티아라 제작을 또 다시 지연하면서 카코 공주가 분실에 잔류하는 게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전인 23년 1월에 내각에 제출된 분실 개조 비용 2618만 엔이었으나 3월 비용 갱신을 통해서 2618만에서 124만 엔이 늘어난 2742만 엔으로 확정된 걸 언급하면서 아이코 공주는 최소 300만 엔 이상 하는 왕관[22]을 물가 상승으로 고생하는 국민들을 배려해서 도입을 연기했는데, 이쪽은 44억 엔 이상을 쓰고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아이코 공주 왕관 9~10개 정도 살 수 있는 금액인 3000만 엔 이상을 들여서 만들어진 지 5년도 안 된 저택을 사실상 카코 공주 전용 저택으로 전면 개조하는 공사에 착수하냐면서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여담으로 임시 저택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대해서 궁내청측이 임시 거처에 들어가기 전에 집안 회의로 리모델링한 저택에 코무로 마코 및 카코 공주 공간이 없다는 것도 사실상 거짓이고, 주간지 말대로 임시 거처에서 저택으로 옮길 때 카코 공주가 반발한 게 진짜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 더 이상 궁내청 발표를 안 믿겠다는 사람들도 제법 나오고 있다.
2023년 9월,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그동안 가만히 있던 일본 황실 기자단에서 궁내청 공보실에 후미히토 저택 리모델링에 든 비용들에 대한 상세 내역을 요구했으나 궁내청측은 이를 거부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기에 그동안 카코 공주가 저택 분실에서 직원들과 같이 지낸다고 설명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약 4억 7400만 엔 가량의 비용을 들여서 직원동, 창고동, 차고동 2개, 쓰레기 집결지를 만드는 공사를 새로 시작한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후미히토 저택 분실은 당초 주택 리모델링 후에는 직원 전용 시설로 쓴다던 궁내청 발표와 달리 카코 공주 전용 저택임을 선언한 것과 동시에 궁내청측이 언급한 리모델링 전에 가족간 합의가 있었다는 것도 사실상 거짓말임을 실토한 것과 같게 되면서 일본 국민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그 이후에도 주간지를 통해서 '카코 공주가 임시 거처에서 직원들을 쫓아낸 건 자신에 대한 정보들을 직원들이 주간지들에게 의도적으로 유출했다고 보고 이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 그랬다'는 내용이 나왔을 때도 '그런 거에 신경 쓸 거면 빨리 결혼해서 황실에서 탈출하면 되는데 무슨 이유에서 황실에 계속 있으면서 굳이 국민들의 세금들을 대량으로 쓰냐'는 등의 부정적인 댓글들이 대부분이다.
2023년 9월 23일 수화대회 참석차 돗토리현에 도착한 이후 호텔에서 목 쪽에 이상함을 발견했고 다음 날 아침 발열을 확인해 검사한 결과 코로나 감염이 확인되면서 공무 일정을 취소하고 28일까지 호텔에 체류하면서 지낼 예정이다. 문제는 카코 공주는 9월 21일 도쿄에서 열린 전통 공예전에 나루히토 덴노 일가와 같이 활동하였는데 카코 공주는 코로나 5류 분류 이후 공무를 할 때 마스크를 끼지 않고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고, 무엇보다도 동생 히사히토가 코로나 감염이 되었을 때도 마스크 없이 공무를 한 모습 때문에 예견된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후미히토 일가와 궁내청을 비판하는 여론이 상당한 수준이다.
2023년 9월 29일 항공편으로 도쿄로 복귀했는 데 이때 내각 결정으로 11월 초에 페루 방문을 허락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언니인 코무로 마코를 만나고 올 가능성이 높은 데다가 공무라면서 마추픽추 같은 관광지 순회도 예정되어 있어서 비난 여론이 생기고 있다.
2023년 9월 30일 센다이시에서 열린 여대생 탄생 11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였는데, 당시 마스크를 꼈음에도 이러한 것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비판 여론도 존재하고 있다.
10. 2024년
2024년 2월, 사촌동생 아이코 공주가 대학 졸업 후, 적십자사에서 근무한다는 게 발표된 이후, 카코 공주의 농아협회 비상근직 근무에 대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는데, 한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카코 공주는 초창기에 비상근직으로 코로나 시국이라는 이유로 원격 업무 위주로 갈 것이라고 했으나 실제로 협회 건물에 방문한 건 거의 2~3번 정도이며 원격업무를 계속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농아협회 및 궁내청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서 확인 불가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기자들로부터 일 안 하냐고 질타받으니 그냥 이름만 걸어둔 거냐고 비난하면서 향후 아이코 공주가 적십자사에서 정식 근무를 시작하면 그때서야 갑자기 카코 공주가 농아협회에 출근하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참고로 코무로 마코는 결혼을 계기로 그만두기 전까지 출퇴근했고 종종 블로그에 다소 난해하긴 하지만 아무튼 업무내용을 올리기라도 했던 언니와 달리, 카코 공주는 출퇴근도 하지 않고 블로그에 업무내용 투고도 하지 않았기에 굳이 고모인 쿠로다 사야코나 먼 친척 자매들인 미카사노미야나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의 여왕들을 거론하지 않아도 카코 공주의 취직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지를 증명해주고 있다.[1] 성년 황족들이 황궁(고쿄)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며 국민들에게 인사하는 행사. 발코니는 방탄유리로 덮여 있다.[2] 대표적으로 큰어머니 마사코 황후. 어머니 키코 비도 1994년 카코 공주를 임신한 당시 "큰며느리가 임신하기 전에 작은며느리가 임신했다"고 히사코 비로부터 한 소리 들은 적이 있고, 카코 공주를 낳은 후에도 "둘째도 딸이다"라고 구박받았었다. 카코 공주 본인도 눈치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는 너무 조용한 성격이었다.[3] 어찌 됐든 간에 "카코 공주가 올해는 공무에 나오지 않겠다"는 이야기임에도, 일본 언론은 아이코 공주에 대한 비난과 달리 이해하는 반응이었다.[4] 아버지 후미히토 친왕은 1984년 4월 가쿠슈인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했는데, 후미히토 친왕의 성적이 그해 가쿠슈인대학의 커트라인이 되었고, 그래서 1984년에는 가쿠슈인대학의 신입생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머니 키코 비는 부지런하며 우등생이었다고 전해지는데, 3남매 모두 아버지만 닮은 모양.[5]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는 서류와 면접으로 합격 여부가 정해지는 AO입시라는 전형에 응시해 합격했는데, 만약 서류나 면접 없이 시험성적으로만 대학입시에 도전했어도 명문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일본 네티즌들은 "황족이니 무조건 합격이다", "설마 면접에서 황족을 낙방시키겠어??"라며 비꼬았으며, "다른 건 몰라도 입시부정만큼은 학부모로서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국제기독교대학 입학 전까지는 뭐 하는 거야?? 백수??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그래??"라는 반응도 있었다.[6] 카코 공주의 고모 구로다 사야코, 카코 공주의 칠촌 고모 센게 노리코 등.[7] 카코 공주의 아버지인 후미히토 역시도 일본 황족 내지는 일본인답지 않게 솔직한 화술로 유명하다.[8] 물론 공무를 보긴 한다.[9] 일본 황실의 말썽꾼으로 유명했던 토모히토조차도 '황족은 공(公)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장녀 아키코 공주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되자, 토모히토는 "국민의 세금으로 공부하는 것이니 열심히 해라"라고 가르쳤다. 아키코 공주도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여, '일본 황실 최초의 여자 박사(미술사)'라는 성취를 이루었다.[10] 빈 소년 합창단 공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오스트리아 궁전 방문 등.[11] 이와 관련된 일본 기사를 보면, 마사코 황후가 시조카 카코 공주에게 위로로 한 말의 내용이 가히 자존감 제조기이자 구세주급이다. 새삼 마사코 황후의 인격과 배려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12] 몰래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13]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비슷한 시기 부모님과 같이 스모 시합을 보러 간 아이코 공주가 옆에 있던 스모협회 관계자에게 한 질문 쪽이 더 고차원적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카코 공주는 어머니가 오래전부터 댄스 대신 하라고 강요하는 킬트, 꽃꽂이 관련 공무였고, 아이코 공주는 오래 전부터 스모 팬이라는 걸 감안하면 어느 정도 참작의 여지는 있긴 하다.[14] 루머로는 영국 노동당 정치인의 아들이라는데, 사실이라면 영국 노동당엔 영국 왕실 폐지를 주장하는 공화주의자도 많기에 흥미로운 소재긴 하다. 물론 노동당도 당내 의견은 다양할 뿐더러 아들의 정치 성향 역시 아버지와 다를 순 있다만. 애초에 영국의 해리 왕자처럼 제법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사상을 가졌다고 알려진 왕족들도 생각보다 상당하긴 하다. 일본으로 한정해도 빨갱이 왕자님 소리 들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등이 있었다.[15] 실제로 2020년 8월 기준으로 일본 정부가 유력시되게 검토 중인 여성 미야케 안 중 하나인 내친왕 한정 여성 미야케가, 바로 이러한 키코 비의 의사를 기반으로 한 조치라고 한다.[16] 매년 전국고교생수화퍼포먼스고시엔을 주최하고 있다. 카코 공주는 2014년부터 해당 공무에 거의 매년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17] 참고로 일본 내에서 황족들이 공무 때 입는 옷들은 전부 세금으로 제작된다.[18] 원래 거주하던 저택에서 50m 가량 떨어진 곳에 약 10억 엔 정도의 비용을 들여서 만든 지상 4층, 지하 1층의 콘크리트 건축물로, 임시 거처로 사용을 마친 이후에는 황사부 소속 직원들의 사무 공간 및 창고 등으로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카코 공주의 체류가 확정되면서 기존 있던 카코 공주의 거주 공간 및 카코 공주의 시중을 들 사람들의 거처도 추가된다.[19] 이후에 주간지 보도를 통해서 이렇게 해서 줄어든 공간은 히사히토의 개인 공간 확장 등에 쓰였다고 한다. 리모델링 전 히사히토의 개인 공간은 다다미 8조 정도(대략 5평 내외)였다고 한다.[20] 참고로 황사대부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임시 거처로 불리던 해당 건물의 명칭을 아키시노노미야 저택 분실로 표기하게 되었다고 밝힌다.[21] 참고로 해당 저택과 비슷한 시기에 개량을 한 황족 저택들의 개량에 든 비용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우선 상황 부부가 임시 거처로 사용했던 타카나와 황족 저택의 리모델링 비용은 5억 5천만 엔, 은퇴 이후 거처로 쓰일 아카사카 고쇼 리모델링은 6억 4000만 엔으로 순수 리모델링 비용으로 약 12억 엔 가량을 사용했으며, 나루히토 덴노 일가가 즉위 이후 지낼 황궁 저택 리모델링 비용은 대략 8억 7000만 엔을 사용했다.[22] 코무로 마코나 카코 공주는 200만 엔 중반 이상의 금액을 사용했기에 실제 현 시점에서 아이코 공주의 왕관을 만든다면 300만 엔 중후반 가량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