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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야케([ruby(宮, ruby=みや)][ruby(家, ruby=け)])는 천황의 자손 가운데 미야고(궁호)를 받은 이가 황족 신분을 유지하면서 분가(分家)하여 창설한 일본 황실의 궁가이다.2. 미야고(궁호)
자세한 내용은 미야고 문서 참고하십시오.미야고(궁호)는 일본 황실에서 미야케의 당주인 황족 남성이 갖는 칭호로서, 곧 미야케의 명칭이 된다. '~노미야(宮)'라는 식으로 되어 있다. 남자 황족이 혼인을 하거나 분가하여 새 미야케를 창설할 때 천황이 하사한다.
3. 창설 및 계승
황태자가 아닌 천황의 아들은 결혼 등으로 분가하면 미야고를 받아 미야케를 창설하고 그 미야케의 당주가 된다. 미야케 당주의 아들 중 장남은 당주의 미야고를 물려받아 미야케를 유지하고, 차남 이하의 아들은 새로 미야고를 받고 다시 분가한다. 여성의 경우, 황실전범에 따라 결혼하면 황적이탈을 하게 되므로 미야케를 새로 창설할 수 없다.4. 생활
현재 존재하는 미야케 공저들은 전부 아카사카 어소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궁내청으로부터 황족비라는 이름의 지원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황족비는 각 미야케의 상황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지만, 미야케에 구성원이 많고 서열이 높은 존재가 많을수록 황족비는 늘어난다. 즉 서열이 높은 사람이 사망하면 미야케의 경제 상황이 나빠질 수 있는 것.예를 들어, 2016년 초에 미카사노미야 가문은 7,381만엔을 받았다. 2번째로 많이 지원받는 아키시노노미야 가문보다 약 671만엔가량 더 많은 액수였다. 그러나 2016년 10월에 궁주이던 다카히토 친왕이 사망하자, 그 다음 해부터 미카사노미야의 연간 지원금이 4,331만엔으로 급하강해서, 미카사노미야 가문은 경제적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다카히토 친왕의 막내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은 2002년에 죽었는데, 가장이 죽자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에 주어지는 황족비도 줄었다. 때문에 노리히토 친왕의 장녀인 쓰구코 공주는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하기도 했다. 사실 쓰구코 공주가 유학을 중단하게 된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품행 문제도 있다.
5. 후계 문제
구황족 미야케 11곳 중 2019년 기준으로 5개 가문은 자녀가 없어서 사실상 멸문되었다. 2개 가문은 멸문 확정이다. 나머지 4개 가문은 일단 후손들이 다수 있어서 향후 오랫동안 그 위치를 유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 중 3개 가문은 2018년 하반기 기준으로 총 9명 가량의 미혼 아들들이 있다. 그래서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 이후 "직계 황족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 구 황족 아들과 공주의 결혼을 통해서 직계 가문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증가하고 있다.하지만 가장 많은 미혼 남성 5명을 보유했으며 구 황족들 중에서 현 황족들과 가까운 히가시쿠니노미야 가문의 경우에는 알려진 것에 의하면 5명 전부 2000년대 출신 즉, 히사히토의 비슷하거나 아래의 연령대 남자아이들이기에 사실상 지금 당장 공주들과 결혼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아키히토 상황의 첫째 누나인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가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의 장남인 모리히로와 결혼해서 3남 2녀를 낳았다. 그래서 히가시쿠니 가문이 그나마 구 황족들 중에서 부활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2018년 기준으로 20대 이상의 미혼 남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카야(賀陽) 가문이나 다케다(竹田) 가문의 아들들이 그나마 결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다케다 가문의 경우, 현 당주의 남동생 중 하나인 다케다 츠네카즈가 2020 도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뇌물 등을 준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다케다 츠네카즈는 일본올림픽위원회 회장을 역임해서, 구 황족들 중에서 일본인에게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신적강하 이전에 태어나 왕/여왕 명칭을 부여받은 바 있는 형/누나와 달리 신적강하 이후에 태어나서 왕/여왕 명칭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구 황족의 부류에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고 한다.
다케다 츠네카즈의 장남인 다케다 츠네야스는 황족 출신임을 내세워서 극우활동을 하는지라, 극우에 대한 부정적인 아키히토 상황이나 현 천황인 나루히토의 입장에서는 만일 구 황족 출신자와 현 공주들과의 결혼하려고 생각하더라도 다케다 가문은 대상에서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족보를 자세히 따질 경우, 다케다 츠네야스는 다케다노미야 가문이 신적강하된 후에 태어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사람이기에 사실상 황족이 아니며 많이 봐줘도 구 화족에 가깝다는 평가가 있다. 물론 그는 그걸 무시하고 계속 황족 출신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1990년대생들 2명이 있는 카야 가문이나 히가시쿠니 가문이 공주들과의 결혼 가능성이 높은 구 황족이 된 상태이다. 히가시쿠니 시게코의 장남의 손자인 2010년생 남자아이([age(2010-01-01)]세)와, 시게코 3남의 손자인 2004년생 남자아이([age(2004-01-01)]세)가 있다고 한다. 항간에 알려진 해당 집안의 미혼 남성 5명 중 3명은 해외 이주하거나 양자로 들어간 해당 집안 출신자의 자손이라고 한다. 2019년 기준으로 가장 유력한 구 황족 집안은 바로 히가시쿠니 가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안은 패전 직후 자발적으로 신적강하를 해버리면서 다른 황족 집안의 신적강하를 강요해서 현 상태로 만든 원흉인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의 집안이다.
5.1. 여성 미야케
이러한 것 때문에 공주가 결혼하더라도 황족에서 이탈하는 게 아니라 황족에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여성 미야케 논의도 제법 나왔다. 문제는 2019년 시점에서 천황 직계 황족 가문인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의 장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에 의하여 여성 미야케의 최대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황족으로 들어오는 남자 문제가 그대로 노출되어버리면서 일반 대중에 대한 여성 미야케에 대한 지지도가 제법 떨어진 상태이긴 하지만 적어도 구 황족의 복귀보다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실제로 여성 미야케 반대파들 사이에서 여성 미야케를 허용하게 되면 그 코무로 케이가 황족이 되어서 일본 국민들의 세금을 자기 멋대로 낭비하면서 '코무로 케이 황배(皇配) 전하'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돌아다니는 꼴이나 케이의 어머니 코무로 카요가 황족 인척이라는 걸 이용해서 온갖 범죄들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을 허용하자냐는 식으로 대응하고 다닌다.
6. 미야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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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현존하는 미야케
-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아키히토 상황의 차남으로, 일본 황위 계승 순위 1위인 후미히토(文仁)의 결혼으로 창설된 미야케. 후미히토의 아내 키코 비, 작은딸 카코 공주, 아들 히사히토(悠仁) 친왕이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 2021년 10월 26일, 큰딸 마코 공주는 코무로 케이와 결혼하여 평민 코무로 마코가 되면서 황족 신분을 상실했다.
- 히타치노미야(常陸宮): 아키히토 상황의 남동생으로 일본 황위 계승 순위 3위인 마사히토(正仁) 친왕의 미야케. 자녀는 없고, 마사히토 친왕과 아내 하나코 비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이 두 사람이 사망할 경우 사라질 미야케이다.
- 미카사노미야(三笠宮): 다이쇼 덴노의 4남으로 쇼와 덴노의 남동생이자 아키히토 상황의 삼촌인 다카히토(崇仁) 친왕의 미야케. 다카히토 친왕의 2남 요시히토와 3남 노리히토는 각각 가쓰라노미야(桂宮)와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로 분가하였지만, 장남인 토모히토(寬仁) 친왕은 미카사노미야의 후계자였기에 별도의 미야고를 갖고 있지 않았다. 토모히토는 공식적으로 미카사노미야의 일원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토모히토 친왕가'로 별개 궁가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토모히토 친왕은 두 딸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만을 남기고 2012년 아버지보다도 먼저 사망했다. 이에 '토모히토 친왕가'도 중단되었다. 다카히토 친왕은 2016년 사망했다. 토모히토 친왕의 아내 노부코 비가 죽고,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가 평민에게 시집가면 사라질 미야케이다. 그래서 아키코 공주는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렇다 해도 아키코 공주가 죽으면 미카사노미야 가문은 문을 닫게 된다.
-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 다카히토 친왕의 3남인 노리히토(憲仁) 친왕이 결혼하며 창설한 미야케이다. 노리히토 친왕은 2002년에 사망하여, 당주는 노리히토 친왕의 아내 히사코 비이다. 자녀는 딸만 3명으로 쓰구코 공주, 노리코 공주, 아야코 공주이다. 차녀 노리코 공주는 2014년 평민 센게 구니마로(千家國磨)에게 시집가 평민 센게 노리코가 되었고, 3녀 아야코 공주도 2018년 평민 모리야 케이(守谷慧)에게 시집가 평민 모리야 아야코가 되었다. 장녀 쓰구코 공주가 시집가고 히사코 비가 사망하면 장기적으로 사라질 미야케.
6.2. 역사상 미야케
과거부터 여러 미야케가 있었으며 많은 수가 단절되었다.6.2.1. 세습친왕가
자세한 내용은 세습친왕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아리스가와노미야(有栖川宮): 과거 세습친왕가 4가문 중의 하나로, 에도 시대 때부터 다이쇼 시대에 걸쳐서 존재했다. 역대로 서도(書道)와 가도(歌道)의 사범을 맡았다.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의 외손녀인 키쿠코 비는, 외가로부터 배운 서예를 조카 아키히토 상황의 차남 후미히토 친왕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개구쟁이였던 후미히토 친왕은 교본에 없는 글자를 묻는 등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종조할머니와 조카 손자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고요제이 덴노(後陽成天皇)의 7남이 창설했으며 당초 이름은 다카마츠노미야(高松宮)였다. 다이쇼 덴노 시기에 단절됐다. 그 뒤로 잊혀졌는데, 2003년에 아리스가와노미야의 후계자를 사칭하는 남자가 가짜 결혼 피로연을 열고 400명의 하객으로부터 축의금을 가로채는 사기 사건이 일어나서 일약 유명해졌다. 연예인이나 기업인 등 유명한 인물들도 많이 속아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체포된 범인은 자신이 노부히토 친왕의 서자라고 주장했다. 노부히토 친왕과 키쿠코 비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6.2.2. 구 미야케
자세한 내용은 구황족 문서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F001F, #BD0029 20%, #BD0029 80%, #AF001F); color: #DCA600"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쇼와 22년(1947년) 10월 14일 신적강하한 미야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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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미야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7년 10월 14일에 일제히 황적이탈한 미야케 11곳을 주로 가리킨다.
6.2.3. 패전 후 단절
- 다카마츠노미야(高松宮): 세습친왕가 아리스가와노미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리스가와노미야가가 단절되자 다이쇼 덴노의 제3남 노부히토가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의 제사를 상속했는데(노부히토 친왕의 아내 키쿠코 비의 외가가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이다), 당시 황실전범상 황족의 입양이 금지되어 있어서, 양자로 들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다카마츠노미야케를 만들고 아리스가와노미야케를 상속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쪽도 1987년 노부히토 친왕이 죽고, 2004년 아내인 키쿠코 비도 죽어서 단절됐다.
- 지치부노미야(秩父宮): 다이쇼 덴노의 차남 야스히토(雍仁) 친왕이 마츠다이라 세츠코와 혼인하면서 창설했다. 야스히토 친왕은 한때 형 쇼와 덴노가 딸만 내리 4명을 낳자 군부로부터 천황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으나, 1933년에 황태자 아키히토의 출생으로 묻혔다. 정작 야스히토 친왕은 자식을 못 보고 죽었다. 아내 세츠코 비가 사망한 1995년에 치치부노미야는 단절했다. 참고로 아카사카 어소에 있던 구 치치부노미야 저택은 1997년부터 아키시노노미야 저택으로 사용 중이다. 아키시노노미야는 결혼으로 미야케가 창설된 1990년부터 치치부노미야 저택으로 이사한 1997년 전까지, 다카쓰카사 가즈코가 서거 전까지 사용하던 임시 저택에서 지내왔다.
- (신) 가쓰라노미야(桂宮):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차남인 요시히토 친왕이 1988년 1월 1일에 얻은 미야케. 요시히토 친왕이 독신이라, 결혼으로 생긴 미야케는 아니다. 2014년 요시히토 친왕이 사망하면서 단절했다. 세습친왕가 가쓰라노미야와 구분해서 '신 가쓰라노미야'로 부르기도 한다. 요시히토 친왕은 세습친왕가를 이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 상징인 가쓰라(桂: 계수나무, 침나무)를 궁가의 이름으로 써서 이름이 겹친 데 불과하다.
[1] 직계는 아니고 방계다. 직계는 1988년에 대가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