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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6:15:58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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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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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solitudo magistratuum: 호민관인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스톨로와 루키우스 섹스티우스 라테라누스에 의해 집정관이나 집정 무관의 선출이 없던 시기
집정 무관(tribuni militum consulari potestate)
독재관의 해(집정관 선출이 없던 해)의 독재관 }}}
기원전 400년 집정 무관 기원전 399년 집정 무관 기원전 398년 집정 무관 기원전 397년 집정 무관 기원전 396년 집정 무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칼부스 에스퀼리누스 그나이우스 게누키우스 아우구리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루키우스 티티니우스 판사 사쿠스
푸블리우스 만리우스 불소 루키우스 아틸리우스 프리스쿠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락투키누스 막시무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칼부스 에스퀼리누스
루키우스 티티니우스 판사 사쿠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푸블리우스 마일리우스 카피톨리누스
푸블리우스 마일리우스 카피톨리누스 가이우스 두일리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퀸투스 만리우스 불소 카피톨리누스
스푸리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마르쿠스 베투리우스 크라수스 키쿠리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피데나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그나이우스 게누키우스 아우구리누스
루키우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불스쿠스 볼레로 푸블릴리우스 필로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코르누투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아틸리우스 프리스쿠스
기원전 395년 집정 무관 기원전 394년 집정 무관 기원전 393년 기원전 393년 보결 기원전 392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루키우스 루크레티우스 트리키피티누스 플라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마르쿠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카이소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가이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피데나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락투키누스 막시무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또는 스키피오 또는 코수스) Ⅱ
기원전 391년 집정 무관 기원전 390년 집정 무관 기원전 389년 집정 무관 기원전 388년 집정 무관 기원전 387년 집정 무관
루키우스 루크레티우스 트리키피티누스 플라부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에스퀼리누스 Ⅱ)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피데나스 그나이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콕소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카이소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아퀼리우스 코르부스 리키누스 메네니우스 라나투스
아그리파 푸리우스 푸수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피데나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루크레티우스 트리키피티누스 플라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가이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기원전 386년 집정 무관 기원전 385년 집정 무관 기원전 384년 집정 무관 기원전 383년 집정 무관 기원전 382년 집정 무관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스푸리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포플리콜라 아울루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피데나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루크레티우스 트리키피티누스 플라부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피데나스
루키우스 호라티우스 풀빌루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포플리콜라 그나이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콕소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또는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Ⅲ) 마르쿠스 트레보니우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기원전 381년 집정 무관 기원전 380년 집정 무관 기원전 379년 집정 무관 기원전 378년 집정 무관 기원전 377년 집정 무관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푸블리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스푸리우스 푸리우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포플리콜라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피데나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리키누스 메네니우스 라나투스 가이우스 베투리우스 크라수스 키쿠리누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리키누스 메네니우스 라나투스 가이우스 섹스틸리우스 푸블리우스 클로엘리우스 시쿨루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Ⅳ 또는 프라이텍스타투스)
루키우스 루크레티우스 트리키피티누스 플라부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마르쿠스 알비니우스 마르쿠스 호라티우스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루키우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가이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그나이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콕소 푸블리우스 트레보니우스
티베리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에레누키우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기원전 376년 집정 무관 기원전 375년~기원전 371년 기원전 370년 집정 무관 기원전 369년 집정 무관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solitudo magistratuum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피데나스
리키누스 메네니우스 라나투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가이우스 베투리우스 크라수스 키쿠리누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포플리콜라 퀸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기원전 368년 집정 무관 기원전 367년 집정 무관 기원전 366년 기원전 365년 기원전 364년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게누키우스 아벤티넨시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루키우스 섹스티우스 라테라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칼부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 마르쿠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스푸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스트룩투스 푸블리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크라수스 키쿠리누스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크라수스 키쿠리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포플리콜라
기원전 363년 기원전 362년 기원전 361년 기원전 360년 기원전 359년
그나이우스 게누키우스 아벤티넨시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스톨로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게누키우스 아벤티넨시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가이우스 포에텔리우스 리보 비솔루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기원전 358년 기원전 357년 기원전 356년 기원전 355년 기원전 354년
가이우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프로쿨루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Ⅱ)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포플라콜라 티투스 퀸크티우스 포에누스 카피톨리누스 크리스피누스
기원전 353년 기원전 352년 기원전 351년 기원전 350년 기원전 349년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티투스 또는 가이우스 또는 카이소) 퀸크티우스 포에누스 (Ⅱ)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 인레길렌시스
기원전 348년 기원전 347년 기원전 346년 기원전 345년 기원전 344년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도르수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 가이우스 포에텔리우스 리보 비솔루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루푸스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343년 기원전 342년 기원전 341년 기원전 340년 기원전 339년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 티베리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아르비나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프리베르나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기원전 338년 기원전 337년 기원전 336년 기원전 335년 기원전 334년
루키우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칼레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마이니우스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카이소 두일리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티투스 베투리우스 칼비누스
기원전 333년 독재관의 해 기원전 332년 기원전 331년 기원전 330년 기원전 329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프리베르나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아르비나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데키아누스
기원전 328년 기원전 327년 기원전 326년 기원전 325년 기원전 324년 독재관의 해
푸블리우스 플라우티우스 프로쿨루스 또는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데키아누스 Ⅱ 또는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Ⅱ 또는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우스 포에텔리우스 리보 비솔루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카풀라 또는 스키피오 바르바투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스카이바
기원전 323년 기원전 322년 기원전 321년 기원전 320년 기원전 319년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쿠르부스 티투스 베투리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퀸투스 아울리우스 케레타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카우디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퀸투스 아울리우스 케레타누스
기원전 318년 기원전 317년 기원전 316년 기원전 315년 기원전 314년
마르쿠스 포슬리우스 플라키나토르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스푸리우스 나우티우스 루틸루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마르쿠스 포에텔리우스 리보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기원전 313년 기원전 312년 기원전 311년 기원전 310년 기원전 309년 독재관의 해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기원전 308년 기원전 307년 기원전 306년 기원전 305년 기원전 305년 보결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트레물루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루키우스 볼룸니우스 플람마 비올렌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르비나 티베리우스 미누키우스 아우구리누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쿠르부스 파이티누스
기원전 304년 기원전 303년 기원전 302년 기원전 301년 독재관의 해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덴테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부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사베리오 루키우스 게누키우스 아벤티넨시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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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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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색상 범례
10인 위원회(decemviri)
집정 무관(tribuni militum consulari potestate) }}}
기원전 500년 기원전 499년 기원전 498년 기원전 497년 기원전 496년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코르누투스 티투스 아이부티우스 헬바 퀸투스 클로엘리우스 시쿨루스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부스 레길렌시스
마니우스 툴리우스 롱구스 가이우스 베투리우스 게미누스 키쿠리누스 티투스 라르키우스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아우구리누스 티투스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카일리오몬타누스
기원전 495년 기원전 494년 기원전 493년 기원전 492년 기원전 491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사비누스 인레길렌시스 아울루스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카일리오몬타누스 포스투무스 코미니누스 아우룬쿠스 티투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아우구리누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스트룩투스 티투스 베투리우스 게미누스 키쿠리누스 스푸리우스 카시우스 베켈리누스 푸블리우스 미누키우스 아우구리누스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기원전 490년 기원전 489년 기원전 488년 기원전 487년 기원전 486년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코르누투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스푸리우스 나우티우스 루틸루스 티투스 시키니우스 사비누스 스푸리우스 카시우스 베켈리누스
스푸리우스 라르키우스 푸블리우스 피나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푸스 섹스투스 푸리우스 가이우스 아퀼리우스 투스쿠스 프로쿨루스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루틸루스
기원전 485년 기원전 484년 기원전 483년 기원전 482년 기원전 481년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쿠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카이소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카이소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스푸리우스 푸리우스 푸수스
기원전 480년 기원전 479년 기원전 478년 기원전 478년 보결 기원전 477년
마르쿠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카이소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쿠스 가이우스 호라티우스 풀빌루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킨킨나투스 티투스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루틸루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스트룩투스 아할라 오피테르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에스퀼리누스 티투스 메네니우스 라나투스
기원전 476년 기원전 475년 기원전 474년 기원전 473년 기원전 472년
아울루스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루틸루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쿠스 루키우스 피나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푸스
스푸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스트룩투스 가이우스 나우티우스 루틸루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보피스쿠스 율리우스 율루스 푸블리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푸수스
기원전 471년 기원전 470년 기원전 469년 기원전 468년 기원전 467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 인레길렌시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티투스 누미키우스 프리스쿠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바르바투스 티베리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쿠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바르바투스 티베리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쿠스 아울루스 베르기니우스 카일리오몬타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기원전 466년 기원전 465년 기원전 464년 기원전 463년 기원전 462년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루크레티우스 트리키피티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바르바투스 스푸리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푸수스 루키우스 아이부티우스 헬바 티투스 베투리우스 게미누스 키쿠리누스
기원전 461년 기원전 460년 기원전 460년 보결 기원전 459년 기원전 458년
푸블리우스 볼룸니우스 아민티누스 갈루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가이우스 나우티우스 루틸루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코르누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사비누스 레길렌시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우리티누스 […] Carve[ntanus] 또는 Carve[tus]
기원전 458년 보결 기원전 457년 기원전 456년 기원전 455년 기원전 454년
가이우스 호라티우스 풀빌루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락투카 티투스 로밀리우스 로쿠스 바티카누스 스푸리우스 타르페이우스 몬타누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미누키우스 에스퀼리누스 아우구리누스 퀸투스 미누키우스 에스퀼리누스 스푸리우스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카일리오몬타누스 가이우스 베투리우스 키쿠리누스 아울루스 아테르니우스 바루스 폰티나일스
기원전 453년 기원전 453년 보결 기원전 452년 기원전 451년 기원전 451년 제1차 10인 위원회
푸블리우스 쿠리아티우스 피스투스 트리게미누스 티투스 메네니우스 라나투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 인레길렌시스 사비누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 인레길렌시스 사비누스
섹스투스 퀸크틸리우스 스푸리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푸수스 Ⅱ)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바티카누스 티투스 게누키우스 아우구리누스 티투스 게누키우스 아우구리누스
티투스 베투리우스 게미누스 키쿠리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코르누투스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바티카누스
푸블리우스 쿠리아티우스 피스투스 트리게미누스
티투스 로밀리우스 로쿠스 바티카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부스 레길렌시스
기원전 450년 제2차 10인 위원회 기원전 449년 기원전 448년 기원전 447년 기원전 446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 인레길렌시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포티투스 라르스 헤르미니우스 아퀼리누스 마르쿠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바르바투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마르쿠스 호라티우스 투리누스 바르바투스 티투스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카일리오몬타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아그리파 푸리우스 푸수스
(마르쿠스) 세르기우스 에스퀼리누스
루키우스 미누키우스 에스퀼리누스 아우구리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퀸투스 포에텔리우스 리보 비솔루스
티투스 안토니우스 메렌다
카이소 두일리우스
스푸리우스 오피우스 코르니켄
마니우스 라불레이우스
기원전 445년 기원전 444년 집정 무관 기원전 444년 보결 기원전 443년 기원전 442년
마르쿠스 게누키우스 아우구리누스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마르쿠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가이우스 쿠르티우스 필로 루키우스 아틸리우스 루스쿠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바르바투스 포스투무스 아이부티우스 헬바 코르니켄
티투스 클로엘리우스 시쿨루스
기원전 441년 기원전 440년 기원전 439년 기원전 438년 집정 무관 기원전 437년
가이우스 푸리우스 파킬루스 푸수스 프로쿨루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아그리파 메네니우스 라나투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마르쿠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마니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티투스 메네니우스 라나투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바르바투스 VI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기원전 436년 기원전 435년 기원전 434년 (집정 무관) 기원전 433년 집정 무관 기원전 432년 집정 무관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마르쿠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불소 마르쿠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루키우스 피나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프로쿨루스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프라이텍스타투스 마르쿠스 폴리우스 플라키나토르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부스 레길렌시스
기원전 431년 기원전 430년 기원전 429년 기원전 428년 기원전 427년
티투스 퀸크티우스 포에누스 킨킨나투스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호스투스 루크레티우스 트리키피티누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악실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멘토 루키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포에누스 킨킨나투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기원전 426년 집정 무관 기원전 425년 집정 무관 기원전 424년 집정 무관 기원전 423년 기원전 422년 집정 무관
가이우스 푸리우스 파킬루스 푸수스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포에누스 킨킨나투스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스푸리우스 나우티우스 루틸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퀸투스 안토니우스 메렌다
마르쿠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루키우스 호라티우스 바르바투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율루스
기원전 421년 기원전 420년 집정 무관 기원전 419년 집정 무관 기원전 418년 집정 무관 기원전 417년 집정 무관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루키우스 또는 티투스) 퀸크투스 킨킨나투스 (Ⅲ 또는 Ⅱ) 아그리파 메네니우스 라나투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푸블리우스 루크레티우스 트리키피티누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바르바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푸블리우스 루크레티우스 트리키피티누스 마르쿠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아그리파 메네니우스 라나투스
마르쿠스 만리우스 불소 스푸리우스 나우티우스 루틸루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악실라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악실라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악실라 스푸리우스 베투리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416년 집정 무관 기원전 415년 집정 무관 기원전 414년 집정 무관 기원전 413년 기원전 412년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암부스투스 (또는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Ⅱ)
마르쿠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볼루수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가이우스 푸리우스 파킬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퀸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스푸리우스 나우티우스 루틸루스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푸블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기원전 411년 기원전 410년 기원전 409년 기원전 408년 집정 무관 기원전 407년 집정 무관
마르쿠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또는 아트라티누스)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스푸리우스 나우티우스 루틸루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볼루수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볼루수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기원전 406년 집정 무관 기원전 405년 집정 무관 기원전 404년 집정 무관 기원전 403년 집정 무관 기원전 402년 집정 무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틸루스 코수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바르바투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볼루수스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퀸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마니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피데나스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트리코스투스 에스퀼리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카피톨리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마르쿠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코르누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카이소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카피톨리누스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스푸리우스 나우티우스 루틸루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푸수스 마니우스 세르기우스 피데나스
기원전 401년 집정 무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카이소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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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833em; letter-spacing: -0.35px"
기원전 443년 기원전 435년 기원전 430년 기원전 418년 기원전 403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푸리우스 파쿨루스 푸수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불명)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마르쿠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푸블리우스 피나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마르쿠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기원전 393년 기원전 389년 기원전 380년 기원전 378년 기원전 366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마르쿠스 푸리우스 푸수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스푸리우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퀸투스 클로엘리우스 시쿨루스 (포스투미우스 레길렌시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보결)
기원전 363년 기원전 351년 기원전 340년 기원전 332년 기원전 319년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카우디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불명)
기원전 318년 기원전 312년 기원전 307년 기원전 304년 기원전 300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사베리오
가이우스 마이니우스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기원전 294년 기원전 289년 기원전 283년 기원전 280년 기원전 275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르비나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구르게스) (불명)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카이디키우스 녹투아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
기원전 272년 기원전 269년 기원전 265년 기원전 258년 기원전 253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블라시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
마니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두일리우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페라
기원전 252년 기원전 247년 기원전 241년 기원전 236년 기원전 234년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 메살라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티쿠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부테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루타티우스 케르코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불부스
기원전 231년 기원전 230년 기원전 225년 기원전 220년 기원전 214년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푸블리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기원전 210년 기원전 209년 기원전 204년 기원전 199년 기원전 194년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카투스
기원전 189년 기원전 184년 기원전 179년 기원전 174년 기원전 169년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루스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64년 기원전 159년 기원전 154년 기원전 147년 기원전 142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기원전 136년 기원전 131년 기원전 125년 기원전 120년 기원전 115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또는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기원전 109년 기원전 108년 기원전 102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2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89년 기원전 86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4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불명)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루키우스 겔리우스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기원전 61년 기원전 55년 기원전 50년 기원전 42년 기원전 28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기원전 22년 기원전 8년 14년 46년 73년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1 {{{#!wiki style=""<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선출 사유(causa) <colbgcolor=#FFEFA5,#1E1B00>
  • rei gerundae causa: 공무 수행을 위해
  • clavi figendi causa: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 신전의 벽에서 행해지는 못질 의식을 위해
  • seditionis sedandae causa: 폭동 진압을 위해
  • comitiorum habendorum causa: 정무관 선거를 위한 민회 개최를 위해
  • ferarium constituendarum causa: 축제 개최를 위해
  • ludorum faciendorum causa: 루디 로마니 개최를 위해
  • Latinarum feriarum causa: 라틴 축제 개최를 위해
  • senatus legendi causa: 칸나이 전투 이후 원로원 의원 선출을 위해
  • legibus faciendis: 법률 제정
  • rei publicae constituendae causa: 공화정 재건을 위해
  • dictator perpetuo: 종신 독재관
기타
  • mortuus est: 집권 중 사망
  • sine magistro equitum: 기병장관을 임명하지 않음
  • non iniit: 취임하지 않음
  • occisus est: 집권 중 암살
}}}}}}
서력기원: 기원전 501년 기원전 496년 기원전 494년 기원전 463년
로마 건국 기원: 253년 255년 260년 291년
독재관: 티투스 라르키우스 플라부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부스 레길렌시스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볼루수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쿠스)
기병장관: 스푸리우스 카시우스 베켈리누스 티투스 아이부티우스 헬바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스트룩투스 (불명)
선출 사유(causa): rei gerundae causa clavi figendi causa
기원전 458년 기원전 439년 기원전 437년 기원전 435년 기원전 434년
296년 315년 317년 319년 320년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피데나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타르퀴티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포스투무스 아이부티우스 헬바 코르니켄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투베르투스
기원전 431년 기원전 426년 기원전 418 년 기원전 408년 기원전 396년
323년 328년 336년 346년 358년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투베르투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피데나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틸루스 코수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악실라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기원전 390년 기원전 389년 기원전 385년 기원전 380년 기원전 368년
364년 365년 369년 374년 386년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rei gerundae causa
기원전 368년 기원전 367년 기원전 363년 기원전 362년 기원전 361년
386년 387년 391년 392년 393년
푸블리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 레길렌시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펜누스 카피톨리누스 크리스피누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칼부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피나리우스 나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카풀라 또는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seditionis sedandae et rei gerundae causa rei gerundae causa clavi figendi causa rei gerundae causa
기원전 360년 기원전 358년 기원전 356년 기원전 353년 기원전 352년
394년 396년 398년 401년 402년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펜누스 카피톨리누스 크리스피누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프로쿨루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아르비나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rei gerundae causa
기원전 351년 기원전 350년 기원전 349년 기원전 348년 기원전 345년
403년 404년 405년 406년 409년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시누스 레길렌시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아르비나 (가이우스 리비우스 덴테르)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344년 기원전 342년 기원전 340년 기원전 339년 기원전 337년
410년 412년 414년 415년 417년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인레길렌시스
퀸투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프리베르나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스카이바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호르타토르
ferarium constituendarum causa
기원전 335년 기원전 334년~기원전 333년 기원전 332년 기원전 331년 기원전 327년
419년 420년~421년 422년 423년 427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프리베르나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 마르쿠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그나이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또는 그나이우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lavi figendi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325년~기원전 324년 기원전 322년 기원전 321년 기원전 321년 기원전 320년
429년~430년 432년 433년 433년 434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아르비나 퀸투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가이우스 마이니우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포슬리우스 플라키나토르
rei gerundae causa rei gerundae 또는 ludorum faci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320년 기원전 320년 기원전 316년 기원전 315년 기원전 314년
434년 434년 438년 439년 440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프리베르나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가이우스 마이니우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루키우스 풀비우스 쿠르부스 퀸투스 아울리우스 케레타누스 마르쿠스 포슬리우스 플라키나토르
가이우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rei gerundae causa rei gerundae causa rei gerundae causa
기원전 313년 기원전 312년 기원전 310년~기원전 309년 기원전 306년 기원전 302년
441년 442년 444년~445년 448년 452년
가이우스 포에텔리우스 리보 비솔루스 또는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마르쿠스 포슬리우스 플라키나토르 Ⅲ 또는 마르쿠스 포에텔리우스 리보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마르쿠스 티티니우스
rei gerundae (et clavi figendi) causa rei gerundae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301년 기원전 287년 기원전 287년 기원전 285년 기원전 280년
453년 467년 467년 469년 474년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부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mortuus est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막시무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또는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기록 미상) (기록 미상) (기록 미상) (기록 미상)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276년 기원전 263년 기원전 257년 기원전 249년 기원전 249년
478년 491년 497년 505년 505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켄투말루스 퀸투스 오굴니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글리키아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
(기록 미상)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라이토리우스 플란키아누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clavi figendi causa Latinarum feriarum causa
기원전 246년 기원전 231년 기원전 224년 기원전 221년 기원전 217년
508년 523년 530년 533년 537년
티베리우스 코룬카니우스 가이우스 두일리우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부테오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217년 기원전 216년 기원전 216년 기원전 213년 기원전 210년
537년 538년 538년 541년 544년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파비우스 부테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토 sine magistro equitum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
comitiorum habendorum causa senatus legendi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208년 기원전 207년 기원전 205년 기원전 203년 기원전 202년
546년 547년 549년 551년 552년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게미누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풀렉스 게미누스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comitiorum habendorum et ludorum faci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82년~기원전 79년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672년~675년 705년 706년 707년~710년 710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occisus est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sine magistro equitum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non iniit)
legibus faciendis et rei publicae constituendae causa rei gerundae causa dictator perpetuo rei publicae constituendae ca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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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집정관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Marcvs Fvrivs Camill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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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기원전 446년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 기원전 365년 (향년 80~81세)
로마 공화국 로마
재임기간 고대 로마 감찰관
기원전 403년
고대 로마 집정관
기원전 401년
고대 로마 집정관
기원전 398년
고대 로마 독재관
기원전 396년
고대 로마 집정관
기원전 394년
고대 로마 독재관
기원전 390년 ~ 기원전 389년
고대 로마 집정관
기원전 386년
고대 로마 집정관
기원전 384년
고대 로마 집정관
기원전 381년
고대 로마 독재관
기원전 368년
고대 로마 독재관
기원전 3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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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로마 다신교 }}}}}}}}}
1. 개요2. 생애
2.1. 초기 경력2.2. 베이 전쟁2.3. 로마를 떠나다2.4. 켈트족의 로마 점령에 맞서다2.5. 라틴 전쟁2.6. 이후의 활약상2.7. 사망
3. 여담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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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로마집정관.

2. 생애

2.1. 초기 경력

카밀루스는 기원전 446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투스쿨룸의 지도 계층에 속한 푸리아 집안 혈통이었다. 투스쿨룸은 기원전 490년대에는 로마의 적이었지만 나중에 라틴 도시들이 로마의 팽창에 맞서 전쟁을 벌일 때 대부분의 라틴 도시들과는 달리 로마에 귀순했다. 이후 푸리아 집안은 로마 사회에 통합되었고, 기원전 450년대엔 중요한 로마 귀족 집안이 되어 주요 공직을 맡았다. 카밀루스의 아버지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는 집정 무관이었고, 친척이었던 퀸투스 푸리우스 파쿨루스는 폰티펙스 막시무스였다.

카밀루스는 일찍이 군대에 입대한 뒤 아이퀴인과 볼스키인과의 전쟁에 참가해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는 이 전쟁때 군대 맨 앞에서 말을 타고 진군하다가 허벅지가 적의 창에 찔리는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내달려 적장을 공격하여 무찔렀다. 그는 이 공적으로 대정관에 임명되었다. 기원전 403년, 그는 감찰관에 임명되어 로마인들의 재산 및 호구조사를 착실하게 수행했고 끊임없는 전쟁으로 야기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부과했다.

2.2. 베이 전쟁

기원전 406년, 로마는 에트루리아족의 도시인 베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베이의 세력은 강력했고 천혜의 지형에 위치했기 때문에, 로마는 몇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기원전 401년, 카밀루스는 집정 무관에 선출되어 점점 더 인기가 없어지는 베이와의 전쟁을 수행했다. 그는 로마 군대의 지휘를 맡아 베이의 두 동맹 세력인 팔레리와 카페냐를 공격했다. 기원전 398년, 카밀루스는 전직 집정 무관의 자격으로 군대를 이끌어 카페냐를 약탈했다.

기원전 396년, 로마는 베이에게 심각한 패배를 당했다. 이에 카밀루스는 독재관에 지명되어 전쟁을 이끌었다. 네페테에서 팔레리와 카페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카밀루스는 베이를 상대로 마지막 공세를 지휘했다. 그는 성벽 아래의 부드러운 땅을 파냈고, 로마군은 도시의 하수관을 통해 성 안으로 진입했다. 로마군은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고 모든 성인 남성을 학살했으며 여성과 어린이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로마 원로원은 10년에 걸친 베이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카밀루스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가 4마리의 흰 말이 모는 마차를 타고 4일에 걸친 개선식을 개최하도록 허용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카밀루스는... 시민과 법의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승리에 대한 자부심과 거만함, 그리고 4마리의 흰 말들이 그려진 전차를 몰고 로마를 돌아다닌 것을 지켜본 로마인들은 이를 좋지 않게 여겼다. 로마인들은 4마리의 흰말이 몰고 가는 마차를 신성한 것으로 간주하며 신이나 국왕만이 이러한 마차를 몰 수 있다고 여겼다. 이렇듯 카밀루스의 화려한 개선식은 시민들과 카밀루스 간의 마음이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카밀루스는 로마에 거주하는 이들 중 절반을 베이에 이주시키려는 평민 세력의 계획에 반대했다. 또한 로마의 점쟁이들은 전리품의 10분의 1을 아폴로 신을 위해 델피에게 바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신들이 불쾌감을 느꼈다고 발표했고, 원로원은 이에 따라 시민들로부터 원하는 양의 황금을 회수해 델피에 헌납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분노했고 카밀루스와 로마 평민들간의 갈등은 고조되었다.

기원전 394년 다시 집정 무관에 선출된 카밀루스는 로마 사회의 계급간 갈등을 외부 분쟁으로 돌리기로 하고 베이의 동맹시였던 팔레리를 포위했다. 하지만 전리품 문제로 인해 평민층이 중심인 병사들과 사이가 나빴던 카밀루스는 긴 공성전에 곤란해하고 있었는데, 이때 팔레리의 지도층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한 명이 카밀루스와 로마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현장학습을 한다는 구실로[1] 성 밖에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다가, 하루 기회를 잡아 아이들을 이끌고 도시 밖으로 나와 로마 진영으로 가서 카밀루스에게 아이들을 바치며, 아이들을 활용하면 손쉽게 도시를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카밀루스는 이 선물을 거절하면서
"베이의 강력한 사내들과도 칼로 싸워 이긴 로마인들이 이런 불명예스러운 수단을 쓰지는 않겠다."

라고 일갈했다. 그는 교사의 옷을 벗기고 양팔을 뒤로 묶은 다음 인질로 잡힐 뻔했던 팔레리 아이들에게는 회초리를 하나씩 들려주고, 다같이 도시로 돌아가면서 교사를 몽둥이질하게 했다. 이 광경을 성벽 위에서 지켜본 팔레리 사람들은 깊이 감사를 표하며 그간의 공성전을 포기하고 로마와 화해한 뒤 전쟁 비용까지도 모두 자신들이 부담했다.

이후 아이퀴, 볼스키, 그리고 카페냐와 평화조약을 맺은 로마는 영토를 70%나 확장했고, 그 땅의 일부는 가난한 시민들에게 분배했다. 이로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2.3. 로마를 떠나다

팔레리 시민들은 카밀루스의 인자함에 고마워했지만, 로마인들은 팔레리로부터 약탈한 전리품이 없었기 때문에 카밀루스를 원망했다. 게다가 카밀루스는 토지 재분배와 관련해 평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자는 요구를 거부했고 베이 이주 역시 반대했다. 얼마 후, 카밀루스는 에트루리아 사람들로부터 얻은 약탈품을 횡령한 혐의로 정적들에게 고발당했다. 평민들은 그의 혐의가 사실이든 아니든 무조건 유죄를 선고할 작정이었고, 카밀루스는 아내와 아들 루시우스와 함께 로마를 떠나 아르다로 망명했다. 평민들은 그의 부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판을 진행한 후 그에게 1,500 데나리우스의 벌금을 부과했다.

2.4. 켈트족의 로마 점령에 맞서다

이 무렵, 켈트족은 에트루리아 지역의 클루시움을 포위했다. 클루시움은 로마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로마는 사절단을 보내 켈트족에게 철수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런데 로마 사절단 중의 한 사람이었던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암비스투스가 켈트족 귀족 한 명을 죽이고 로마로 달아난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세노네스족의 족장 브렌누스가 그를 자신들에게 넘길 것을 요구하자, 로마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파비우스의 씨족인 파비이 부족을 집정 부족으로 선출하고 켈트인들을 토벌하게 했다. 이에 격노한 켈트족은 클루시움 포위를 풀고 로마로 진군하면서
"우리는 로마를 징벌하기 위해 진군할 뿐이지 다른 도시는 건드리지 않는다."

고 고래고래 소리질러 진군로에 위치한 도시들이 자신들을 치지 않도록 했다.

그리하여 벌어진 알리아 전투에서, 로마군은 켈트족에게 완패를 당했다. 이후 켈트족은 로마로 진군해 단숨에 점령하고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했다. 이때 일부 로마 시민들은 카피툴리누스 언덕으로 올라가 저항했고, 켈트족은 여러차례 언덕으로 올라갔으나 모두 저지되었다. 이에 켈트족은 카피툴리누스 언덕을 포위하고 인근의 건물들을 모조리 파괴한 후 재물을 약탈했다.

한편 아르다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던 카밀루스는 켈트족 일부가 아르다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자 도시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조직했다. 그는 아르다 주민들에게 켈트족이 항상 패배한 적을 말살시키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후 그는 켈트족이 그들의 최근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를 벌여 주의가 산만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야밤에 그들을 공격해 쉽게 격파했다. 이후 로마에서 도주한 로마인들은 그를 추대했고, 카밀루스가 보낸 전령이 원로원에 몰래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원로원 의원들은 카밀루스를 독재관에 앉히고 1년 동안 켈트족과 대적하는 임무를 맡겼다. 카밀루스는 12,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끌어모았고 이후 더 많은 병사들이 각지에서 합류했다.

이 무렵 로마에 전염병이 창궐해 많은 켈트족이 병사하자, 켈트족은 배상금을 받고 물러가기로 합의했다. 이때 브렌누스는 1,000파운드 중량의 금을 배상금으로 지불받기로 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따르면, 브렌누스는 자신이 가지고 온 엉터리 천칭으로 로마인에게 금의 중량을 산정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이에 로마의 호민관이 항의하자, 그는 천칭 그릇에 자신의 칼을 올려놓으면서 무게를 줄이는 놈은 죽일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 때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 그 유명한
이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카밀루스는 바로 이 시점에서 로마군과 함께 도착해 검을 저울질 한 뒤 금이 아닌 철로 조국을 되찾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켈트족을 공격했다고 한다. 로마 시내에서 전투가 벌어졌지만 좁은 길과 골목 길에서는 어느 군대도 효과적으로 싸울 수 없어 다음날 도시를 떠나 평원 일대에서 대대로 맞붙었다고 한다. 카밀루스는 이 전투에서 켈트족을 크게 격파했고 살아남은 켈트족 병사들은 도주했다. 이에 로마인들은 카밀루스를 로마의 2번째 창립자라는 의미로 '제2의 로물루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이 기록의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로마인들이 패배를 숨기려는 흔적이 역력하게 보여서 켈트족이 패배하는 과정에서는 자료의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시대의 역사를 다룬 리비우스는 켈트족에게 패배한 집정관들의 이름을 없애버리기까지 했다는 의혹을 사기도 한다. 또한 동 시대의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켈트족으로부터 로마를 구원한 인물은 마르쿠스가 아닌 아들 루키우스라고 주장했다.

2.5. 라틴 전쟁

켈트족이 떠난 뒤, 로마는 1년여 동안 도시 재건에 힘을 기울였다. 이 당시에 볼스키와 아이퀴가 로마 영토를 침략했고 일부 라틴 도시들은 반란을 일으켰으며 에트루리아인들은 로마의 동맹이었던 사트리움을 포위했다. 카밀루스는 이러한 위기에 맞서기 위해 기원전 389년 다시 독재관에 임명되었다. 적군이 로마를 포위했을 때, 카밀루스는 대부분의 침략자들을 마키우스 산에 내몰고 바람이 부는 새벽 동안 그들의 야영지에 불을 질렀다. 이후 카밀루스의 군대는 라누비움에서 멀지 않은 매치움에서 전투를 벌여 볼스키 군대를 격파했다. 이후 그는 아이퀴의 수도 볼라를 점령해 아이퀴를 제압했다. 하지만 로마는 사트리움을 잃었고, 볼스키의 수도인 안티움을 제압하는 건 실패했다.

《플루타크 영웅전》에서는 이 로마 포위전 때의 다른 이야기도 나와 있다. 적군이 로마를 포위한 뒤, 로마의 여인들을 자신들에게 보내서 혼인하게 하면 군대를 물리겠다고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자 카밀루스는 사신에게
"로마는 여자를 팔아서 지키지 않고, 오직 칼로 지킬 뿐이라."

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러나 적군을 물리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고민을 했는데 이때 한 여자 하인이 계책을 말해주었다. 자신과 같은 여종들을 양가집 처녀로 치장해서 적진에 보내면 적들이 안심을 하고 경계를 풀 것이니, 그러면 여종들이 적군의 무기를 빼돌리고 신호를 보내서 로마군이 공격하는 계획이었다. 카밀루스는 이를 받아들여서 작전을 시행했고, 이 계책은 잘 들어맞아서 로마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카밀루스는 에트루리아인들에 의해 함락된 사트리움에 진군했다. 카밀루스는 에트루리아인들이 사트리움에서 축하 행사를 떠들석하게 벌일 것이라고 예상하며 과감한 돌격을 개시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에트루리아인들은 도시 함락을 기뻐한 나머지 술을 퍼 마시다가 너무 취한 바람에 로마군의 공격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고, 카밀루스는 사트리움을 쉽게 되찾았다. 이렇게 전쟁을 마무리한 뒤, 독재관 카밀루스는 로마에서 개선식을 개최했다. 이리하여 로마는 주변 국가들에게 자신들의 군사적 역량이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었다.

2.6. 이후의 활약상

기원전 384년, 카밀루스는 감찰관에 임명되었다. 그후 그는 마르쿠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와 대립했다. 만리우스는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침입한 켈트족을 상대로 용맹을 떨쳐 카피툴리움 언덕에 피신한 주민들을 끝까지 구한 전쟁 영웅이었다. 그는 수도의 심장부를 결사적으로 지켜낸 공적을 인정받아 동료 시민들 사이에서 카피톨리누스라는 영광스런 별명으로 불렸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만리우스는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채 탕감 조치를 취하고 감옥에 갇힌 자들을 풀어줬는데, 이러한 행위들은 다수의 불평분자들을 규합해 로마에 독재정을 수립한 후, 만리우스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기 위한 계략이었다고 한다. 이에 카밀루스가 총대를 매 그를 법정에 기소했고, 원로원은 만장일치로 그를 처형하기로 결정했다. 만리우스를 처형한 카밀루스는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들어서 있었던 만리우스의 집을 철거한 다음 그 자리에 모네타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을 짓는 일종의 부관참시를 시행했다. 그는 어느 원로원 의원도 다시는 그곳에 집을 짓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후속 조치를 취함으로써 만리우스 사건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했다.

기원전 381년, 남부 라틴 도시들이 로마에 반기를 들었다. 안티움과 볼스키의 몇몇 도시들은 프레네스테와 벨리트레이의 라틴 도시들을 포함하여 하나로 뭉쳤고, 사트리움을 공략한 뒤 모든 로마 주민들을 살해했다. 카밀루스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섯 번째 집정 무관에 임명되었다. 이 당시 그의 건강은 매우 좋지 않았지만 은퇴를 희망하는 그의 요청은 거부되었다. 그래서 카밀루스는 아들 루시우스를 통해 지휘하기로 결정했다. 카밀루스는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진영에서 안전하게 있는 동안 아들 루시우스에게 서신을 보내 전쟁과 관련된 몇가지 지침을 내려줬다. 그러나 루시우스가 임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자, 카밀루스는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이동했고, 로마군은 그가 오자 사기가 크게 올라 적을 무찔렀다.

이때 많은 전쟁 포로들이 투스쿨룸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카밀루스는 그들을 노예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해 승인을 얻어낸 후, 그들에게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부여해줬다. 이 호의적인 대우는 카밀루스가 속한 푸리아 가문이 원래 투스쿨룸의 지도 계층이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이후 카밀루스는 완전히 은퇴했다.

기원전 368년, 로마는 벨레트레이 전쟁 과정에서 심각한 경제 침체로 인해 사회 전반의 갈등이 극심해졌다. 이에 로마는 국민들의 동요를 수습하기 위해 카밀루스를 독재관에 임명했다. 이때 호민관 리키니우스와 섹스티우스는 2명의 집정관 중 1명은 평민으로 선출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카밀루스는 내심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민회가 이러한 법안을 승인하기 위해 모이지 못하도록 훼방을 놨다. 이에 분노한 민회 구성원들은 카밀루스가 독재관에서 물려났을 때 탄핵하려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켈트족이 벨리트레이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라티움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이에 로마인들은 기원전 367년에 카밀루스를 다섯 번째로 독재관에 임명해 켈트족을 막게 했다. 로마 병사들은 카밀루스의 지시에 따라 방어용 갑옷을 제공받고 부드러운 철제 헬멧과 황동 방패를 제작했다. 또한 길다란 파이크를 나눠줬는데, 이 파이크엔 적의 검을 부러뜨릴 수 있는 톱니바퀴가 달려 있었다고 한다. 한편, 켈트족은 최근 약탈한 약탈품을 가지고 아니오(Anio) 강에 진영을 쳤다. 카밀루스는 첩보를 통해 적이 방심한 채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걸 파악하고 동이 트기 전에 야습을 감행했다. 이 야습으로 켈트족은 완패하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이후 벨레트레이는 항복했고, 카밀루스는 또다시 개선식을 개최했다.

하지만 평민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집정관 1명을 평민 계급에서 선출할 것을 요구했다. 귀족들은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카밀루스에게 의존했다. 평민 지도자들은 이에 맞서 카밀루스를 체포하려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밀루스는 원로원을 소집해 언제까지 평민들과 마찰을 빚는다면 국가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설득했다. 그 대신, 그는 귀족만이 재임할 수 있는 법무관을 설립하여 귀족의 권리를 보호하게 하자고 제안했으며 원로원은 이를 승낙했다. 이후 카밀루스는 비로소 로마에 화합이 맺어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화합을 상징하는 콩코르디아 여신의 신전을 지었다.

2.7. 사망

기원전 365년, 치명적인 역병이 로마를 강타해 많은 로마인들이 사망했다. 이때 카밀루스도 역병에 걸려 사망했다. 로마인들은 그를 로마의 두 번째 창시자로 존숭하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3. 여담

카밀루스는 테오도르 몸젠 시절부터 기록에 거품이 많다고 지적당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와 관련된 일화 대부분이 조작이라고 의심받고 있으며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가 이 시대 기록은 거의 전설이라고 말했듯이 기원전 390년 이전 반전설적인 로마의 윤색된 기록의 수혜자로 보인다는 평가이다. 카밀루스에 대항했던 마르쿠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의 카피톨리누스 성벽 일화도 후대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켈트족으로부터 침탈당한 국가적 자존심 회복을 위해 이렇게 실존 인물의 행적을 과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후대 역사학자들의 판단이다. 또 로마 수복 이후에 평민들의 베이 이주 제안을 반대하면서 한 연설이나 독재관으로서 반 평민 정책을 펼친 것도 후대의 친 귀족적 윤색이라고 한다. 카밀루스 전설이 만들어진 시기를 보통 기원전 2세기로 보는데 이때가 그라쿠스 형제가 활동했던 시기라, 그런 의도로 보는게 맞을 것으로 보인다.

4. 대중매체에서


[1] 고대인들은 전쟁통에도 태연히 축제 등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