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해럴드 둘리틀 James Harold Doolittle | |
출생 | 1896년 12월 14일 |
미국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 |
사망 | 1993년 9월 27일 (향년 96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미합중국 공군 |
복무 기간 | 1917 ~ 1959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대장[1] |
주요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학력 |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 캠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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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이다. 둘리틀 특공대의 지휘관으로 알려져있다.미군 내에서는 미 공군의 선두 주자로 각광을 받은 인물이다. 그러한 점을 인정받아 나중에 예비역 진급을 통해 대장에 오른 것이다.
2. 생애
1917년 입대해서 장기 휴가를 낸 뒤 비행학교에 입교하고 1918년 OCS로 육군 항공 소위로 임관했다.1922년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 캠퍼스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25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항공공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같은 해 커티스 R3C[2]에 탑승해서 슈나이더컵에 출전해 우승했다. 1930년 대위로 진급하고 예비역에 편입되었다.
슈나이더컵에서 우승한 이력으로 인해 1940년에 소령 진급과 동시에 현역으로 복귀해서 둘리틀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때 둘리틀은 소령으로 진급한 지 3개월 정도 후에 또 중령으로 말도 안 되는 진급을 했는데 둘리틀 특공대의 규모[3]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을 지휘관으로 삼고 둘리틀을 부장으로 넣으면 안되겠냐는 의견에 대해서 묵살되었는데 비행기 조종을 둘리틀만큼 잘 하는 사람을 찾아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작전이 성공하자 준장으로 진급했으며[4], 이후 미국 공군이 창설되자 공군으로 전군하면서 소장으로 진급했다.
그가 둘리틀 특공대의 지휘관이 된 이유는 비행기 조종실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