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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지역별 현황/부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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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97년 설립된 부산유치원. 일본인 전용이었고, 지금의 용두산공원 자리에 있었다. 부산광역시가 부산시도 아니고 동래군이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부산 최초의 한국인을 위한 유치원은 1921년 동구 좌천동에 설립된 일신유치원이었고, 부산 최초의 불교계 유치원은 1927년 범어사에 의해 설립된 동래유치원이었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양산군, 동래군 등지에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부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한국인 원생들은 1915년~191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15-12-31)]~[age(1915-01-01)]세이다. 일본인은 1891~1914년생도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9다. 한편, 한국 최초의 유치원인 부산유치원의 마지막 졸업생은 1985년생으로, 현재 [age(1985-12-31)]~[age(1985-01-01)]세이다. 이렇게 되어 1986년, 1987년, 1988년생들(현재 [age(1988-12-31)]~[age(1986-01-01)]세)은 인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됐다.

1915년생부터 1957년생([age(1957-12-31)]~[age(1915-01-01)]세)까지는 유치원생 시기에 부산이 경상남도 소속이었으나, 1958년~1959년생([age(1959-12-31)]~[age(1958-01-01)]세)은 유치원 재학 도중에 부산이 경상남도에서 분리됐으며 1960년생([age(1960-12-31)]~[age(1960-01-01)]세)부터는 유치원 입학 이전에 부산이 경상남도에서 분리됐다.

의외로 부산에서 오랫동안 시골로 남은 강서구[1]에 유치원이 설립된 것은 1920년대로, 당시 시골치고는 상당히 빨랐다. 첫 원생은 1917년~1919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이 살아 있다면 [age(1917-12-31)]~[age(1917-01-01)]세가 됐을 정도. 1897년 일본인 자녀를 위해 세워진 부산유치원은 해방 이후 정부가 인수해 한국 최초의 공립유치원이 되었다.[2] 또한 부산도 시가지 팽창에 따라, 기존에 원도심 4개 구에 있던 유치원들 중 일부가 다른 구로 이전하기도 했다.

유치원이 드물었던 과거에는 양산군 등 주변 지역에서 부산으로 오는 경우도 있었고, 현재도 드물지만 양산시[3], 울산광역시[4], 거제시[5]에서는 간간히 부산으로 오기도 한다. 실제로 아침 시간대에 부산광역시 북구, 사상구를 가 보면 양산시, 김해시의 유치원 버스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고, 반대로 양산과 김해에서 부산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

기장군을 제외한 나머지 부산 지역의 사립유치원은 302곳인데, 이는 경남경북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숫자이다. 구별로는 중구 3곳, 서구 7곳, 동구 5곳, 영도구 11곳, 부산진구 41곳, 동래구 29곳, 남구 21곳, 북구 22곳, 해운대구 34곳, 금정구 23곳, 사하구 37곳, 강서구 9곳, 연제구 12곳, 수영구 17곳, 사상구 26곳이다. 특히 부산 중구는 사립유치원이 3곳밖에 없어 이 곳보다 사립유치원이 많이 있는 군이 전국적으로 널리고 널렸을 정도[6]이다. 심지어 기장군도 여기보다 사립유치원은 많다.

1950년대 북한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부산의 유치원에서 조부모나 증조부모가 북한 실향민인 경우도 늘고 있다. 또한 영도구의 경우 제주은행 지점이 있을 정도로 제주도 출신 이주민들이 많아 유치원에서 제주어를 들어 볼 수 있었을 정도이다. 대다수의 원생들이 동남 방언이나 표준어를 구사하지만, 영도구에서는 제주어를, 실향민 출신들은 주로 함경도 사투리나 함경도 억양이 섞인 동남 방언/표준어를 구사한다. 조부모 세대에서는 원생들은 매우 심한 동남 방언을 구사했고 시대적 배경 때문에 일본어를 섞어서 말하기도 했다.

지리적 특성상 눈이 잘 내리지 않아 폭설에 의한 휴원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지만, 태풍에 의한 휴원은 잦은 편이다. 그나마 부산은 국내에서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 중 가장 따뜻한 도시인 덕에 12월, 1월, 2월에도 패딩을 거의 입지 않는다고 한다.[7]

1990~1995년생들은 유치원 시절 부산 롯데월드 스카이프라자에 소풍을 갔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 곳이 1996년부터 1999년까지만 영업을 했기 때문이다.

부산 서구의 영생유치원은 현재 놀이아유치원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김열규 교수가 졸업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텍사스 레인저스에 진출한 야구선수 추신수와 그의 아내가 부산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8] 야구선수 이우민[9], 정치인 손수조[10], 사탐 강사 윤성훈[11], 개그맨 박성호 역시 부산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2]

부산 역시 아파트가 많아 아파트 단지 하나에 유치원이 2곳 이상 있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사상구, 북구, 해운대구에서 볼 수 있다. 1960년대 142만 6,019명이던 인구가 1995년 388만 4,797명을 찍은 뒤 2021년 321만 7,401명까지 감소하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는데도[13],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태종대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한국의 유치원 중 외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치원이며, 선암사유치원은 사립유치원 중 외국에서 가장 가깝다. 참고로 두 곳 모두 일본과 직선거리로 50~60km 떨어져 있다.[14]

부산의 유치원에서는 빈씨, 제씨, 하씨 성을 가진 원생과 교사를 보기가 서울에 비해서 쉽다고 한다. 다만, 이 세 성씨 모두 상위권은 아닌데 부산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강, 윤, 조, 장, 서씨로 정씨가 최씨보다 많다. 이로써 부산은 최씨보다 정씨가 많은 도시들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15]

2020년 10월 5일에는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사는 유치원생이, 11월 10일에는 해운대구의 병설유치원 원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21년 1월 27일에는 남구의 사립유치원 원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21년 4월 7일에도 부산의 유치원생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만약 2036년 올림픽이 부산에서 열린다면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서울의 유치원들이 단축수업을 한 것[16]처럼 부산의 유치원들도 단축수업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2030년~2033년생들이 이 혜택을 받게 된다.

2. 중구

1897년 부산유치원. 1992년 2월 폐원되었다. 첫 입학생은 1891년~1893년생이고, 첫 졸업생은 모두 사망했다. 현재 부산 중구에는 국공립 유치원이 1곳, 사립유치원이 1곳으로 2곳뿐이며, 만약 이 곳이 다 문을 닫으면 전국 최초로 유치원이 없는 지역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럴 경우 중구에 사는 유아들은 동구, 서구 등 다른 지역에 가야 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된다.

3. 동구

1921년 일신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부산부. 첫 입학생은 1915년~191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15-12-31)]~[age(1915-01-01)]세이다.

4. 영도구

1921년 영선동 남부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부산부. 이로 인해 부산 영도는 전국에서 유치원이 가장 빨리 들어온 섬이 되었다. (2위는 1924년에 유치원이 들어온 제주도.) 첫 입학생은 1915년~191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15-12-31)]~[age(1915-01-01)]세이다.

5. 서구

1923년 영생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부산부. 현재의 놀이아유치원으로, 유명한 졸업생 중 김열규 교수[17]가 있다. 첫 입학생은 1917년~191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17-12-31)]~[age(1917-01-01)]세이다.

6. 강서구

1923년 명지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김해군 관할.[18]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강서구 명지동강동동에 살았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17년~191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17-12-31)]~[age(1917-01-01)]세 이다.

7. 동래구

1927년 동래유치원, 당시 동래군 동래면 산하였다. 당시 원생들은 주로 지금의 동래구 수안동, 낙민동, 복천동, 칠산동, 명장동과 금정구 서동, 해운대구 반여동[19]에 살았다고 한다. 한동안 연제구, 금정구 지역 거주 유아들이 이 곳에 다니기도 했고, 1968년부터 1979년까지 11년 동안 휴원한 적이 있다. 첫 입학생은 1921년~1923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21-12-31)]~[age(1921-01-01)]세이다.

8. 사상구

1927년 사상교회 부설유치원, 당시 동래군 사상면. 그 전에는 사상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심으로 가야 했고, 부산시 편입 이후에는 김해군 대저읍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당시 원생은 지금의 사상구 괘법동, 덕포동, 감전동, 삼락동에서 왔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21년~1923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age(1921-12-31)]~[age(1921-01-01)]세이다.

9. 사하구

1929년 당리유치원, 당시 동래군 사하면.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사하구 신평동, 하단동, 당리동, 괴정동에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사상구 학장동엄궁동에서 버스를 타고[20] 사하구로 가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첫 입학생은 1923년~192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23-12-31)]~[age(1923-01-01)]세이다.

10. 북구

1929년 구포유치원, 당시 동래군 구포면. 당시 원생은 북구 구포동, 덕천동과 강서구 대저1동, 대저2동[21], 사상구 모라동에서 왔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23년~192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23-12-31)]~[age(1923-01-01)]세이다.

11. 부산진구

1933년 부전유치원, 당시 동래군 서면.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부산진구 부전동, 범전동, 부암동, 양정동, 전포동에 살았다고 한다. 한동안 연제구 연산동, 거제동과 사상구 주례동, 감전동 등지에서 오는 원아들도 받아 주었다.[22] 첫 입학생은 1927년~192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27-12-31)]~[age(1927-01-01)]세이다.

12. 남구

1938년 문현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부산부 부산진출장소.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부산 남구 문현동, 대연동, 우암동에 살았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32년~1934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32-12-31)]~[age(1932-01-01)]세이다. 당시 원생은 남구 문현동대연동에서 많이 왔다고 한다.

13. 해운대구

1939년 해운대유치원, 1993년 다시 설립된 해운대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 당시 동래군 남면. 원생들은 지금의 해운대구 좌동, 중동, 우동 일대와 수영구 민락동에 살았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33년~193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33-12-31)]~[age(1933-01-01)]세이다.

14. 수영구

1941년 광안유치원, 당시 동래군 남면. 첫 입학생은 1935년~193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35-12-31)]~[age(1935-01-01)]세이다. 당시 원생은 수영구 수영동, 광안동, 남천동에서 왔다고 한다.

15. 연제구

1962년 브니엘유치원, 연제구가 아직 동래구였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과거에는 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중학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이으며[23] 개신교 계열이다. 과거에는 거제동[24] 살던 아이들이 거제역 등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진구로 가야 했다. 첫 입학생은 1956년~1958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age(1956-12-31)]~[age(1956-01-01)]세이다.

16. 금정구

현존하는 금정구 소재 유치원 중에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8년 5월 10일에 개원한 부곡동의 소심유치원[25], 당시 동래구 관할. 그 전에는 버스를 타고 동래구 등지로 가야 했다.덕성유치원은 당시 부산직할시 동래구 부곡동에 위치했었지만 1940년대 초반때 생겨서 1980년대 중반에 폐원된 것으로 여겨진다 무궁화유치원과 마찬가지로 이 유치원도 건물이 철거된데다가 무궁화유치원보다 10여년전에 더 폐원되어서 남아있는 자료가 없는것은 물론이다 첫 입학생은 1972년~1974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age(1972-12-31)]~[age(1972-01-01)]세이다.

17. 기장군

1981년 기장초등학교, 용암초등학교[26], 일광초등학교, 좌천초등학교, 칠암초등학교에 개설된 병설유치원들이 기장군 최초의 유치원이다. 기장군이 경상남도 양산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기장군에 유치원이 들어오기 전에는 동해선 열차를 타고 부산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주로 기장읍, 일광읍에 살았고 동래구, 해운대구로 갔다. 기장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age(1975-12-31)]~[age(1975-01-01)]세이다.

사립유치원은 18곳 있으며, 모두 기장읍, 정관읍 지역에만 있다. 1960년대 5만 4,895명이던 인구가 2021년 17만 4,545명으로 늘면서[27],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여기보다 사립유치원이 더 적은 시가 널린 것은 물론, 경기도에도 이런 동네가 있을 정도. 심지어 사립유치원이 딱 2곳만 있는 세종특별자치시보다 많은데, 이는 세종시 주민들이 공립유치원을 훨씬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부산광역시의 구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기장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장-윤-조-서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야구선수 이택근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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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가락면•명지면•녹산면과 창원군 천가면.[2] 2002년 사상구 엄궁동에 설립된 부산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3] 주로 동면과 옛 웅상 지역[4] 주로 울주군 서생면.[5] 주로 장목면. 이들은 태풍 등으로 유치원에 갈 수 없을 때에는 강제 결석하게 된다.[6] 게다가 부산 중구의 사립유치원 개수는 세종특별자치시와 같을 정도. 하지만 인구는 세종시 쪽이 8배 정도 많다.[7] 아마 부산 출신들이 자신의 유치원 시절 이야기를 하면 12월인데도 가을처럼 따뜻해서 패딩을 입어 본 일이 드물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이다.[8] 추신수와 그의 아내는 같은 유치원 출신이다. 박나래-박진주와 비슷한 케이스. 추신수는 1982년 7월 13일생([age(1982-07-13)]세)이므로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사실상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모두 유치원 시절에 봤던 셈. 다만, 추신수의 자녀들은 모두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녔기 때문에 부모와 다른 나라에서 유치원을 다닌 셈이다.[9] 이우민은 1982년 5월 4일생([age(1982-05-04)]세)이라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 시절이면 풍납토성이 문화재라는 인식이 약해 토성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텐트를 치고, 겨울에는 눈썰매를 타서 토성 주변에 박스가 널브러져 있던 시절이고 대학교 졸업생 중 전과 1~2범 정도는 상대적으로 쉽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이우민과 추신수는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셈. 엄밀히 말해서 이우민이라는 이름은 성인이 된 후 개명한 것이므로 유치원은 개명 전 이름인 '이승화'로 다녔다.[10] 손수조는 1985년 4월 8일생([age(1985-04-08)]세)이므로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개장한 셈. 손수조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으로는 김기리, 박주영, 박나래, 하승진 등이 있는데, 하승진은 유치원 시절 손수조보다 키가 최소 40~50cm는 더 컸다. 그녀의 유치원 시절 부산의 대중교통은 시내버스부산 지하철 1호선 그리고 기차, 택시 정도였는데 당시에는 이들 교통수단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11] 윤성훈은 1976년 9월 2일생이므로 1980~198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부산의 대중교통이 사실상 버스 정도였고 담배에 대해서는 더 관대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라 유치원생 중 1% 미만만이 해외여행 경험이 있었을 정도이다.[12] 박성호는 1973년 3월 14일생([age(1973-03-14)]세)이므로 1977~1979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사실상 이들은 일제 소학교, 국민학교나 간이학교 출신들이 아직 사회에서 활동하던 시기이자 100원, 500원 지폐가 있고 버스에서 담배 피우는 게 자연스러웠으며, 박정희가 사망한 시점(1979년 10월 26일 사망)에 유치원에 다녔던 셈. 그 시절이면 아줌마들 중에서도 문맹을 찾아볼 수 있었다. 유치원이 그리 많지 않던 1970년대에 유치원을 다닌 것으로 보아 그는 부유층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13] 중구 4만 1,523명 (1.3%), 동구 8만 8,901명 (2.7%), 서구 10만 8,135명 (3.3%), 영도구 11만 3,342명 (3.6%), 부산진구 35만 9,886명 (11%), 동래구 27만 1,528명 (8.3%), 남구 26만 7,731명 (8.5%), 북구 28만 3,952명 (8.9%), 해운대구 40만 2,169명 (12.5%), 사하구 31만 1,757명 (9.9%), 금정구 23만 2,666명 (7.4%), 강서구 13만 7,957명 (3.9%), 연제구 20만 9,157명 (6.4%), 수영구 17만 6,894명 (5.4%), 사상구 21만 2,586명 (6.8%)로 전체적으로 남부 권역에 사람이 몰려 있고, 유치원도 이들 지역에 몰려 있다. 기장군 인구 17만 4,545명을 포함한 부산시 전체 인구 339만 1,946명 대비 비율로 계산하면 중구 1.2%, 동구 2.6%, 서구 3.2%, 영도구 3.4%, 부산진구 10.5%, 동래구 7.9%, 남구 8.1%, 북구 8.5%, 해운대구 11.9%, 사하구 9.4%, 금정구 7%, 강서구 3.7%, 연제구 6.1%, 수영구 5.1% 사상구 6.4%, 기장군 4.8%이다. 과거 읍면대로 조합하면 부산부 37만 1,137명, 동래군 서면 59만 4,777명, 사상면 21만 2,586명, 사하면 32만 5,361명, 동래읍 62만 8,930명, 남면 45만 6,290명, 기장면 9,954명, 구포읍 28만 5,040명, 북면 14만 2,331명, 김해군 대저읍 1만 8,466명, 가락면 2,474명, 명지면 8만 702명, 녹산면 3만 2,625명, 의창군 천가면 3,690명이다. 참고로 부산은 비수도권 지역 중 해외에 이민 등을 간 사람들이 주소지로 가장 많이 두고 있는 지역이다.[14] 통일 이후에는 중국 랴오닝성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신의주시에 유치원이 들어서면서 이 타이틀도 신의주의 유치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15] 최씨보다 정씨가 많은 시도는 모두 비수도권에 몰려 있다.[16] 게다가 대회 개막식 날이 임시공휴일이고 대회 도중 추석 연휴와 국군의 날까지 공휴일이라 대회 기간 중 3일을 쉬기도 했다. 1982년 3월~1985년 2월생들이 이 혜택을 받았다.[17] 1932년 경상남도 고성군 출생, 2013년 사망. 그가 유치원을 다니던 해는 1938년이었는데, 당시에는 유치원이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었고, 설날추석은 물론 크리스마스까지 평일이었다. 그는 이순재보다 2살 많았다. 그 시절이면 문맹률이 매우 높았던 시절이었고, 지금의 부산 시역 대부분이 시골이라 부산 삼락동, 엄궁동, 구포동 등에 살던 아이들은 낙동강에서, 만덕동에 살던 아이들은 근처 산에서 썰매를 타고 놀던 시절이었다.[18] 강서구의 부산 편입은 1989년.[19] 주로 반여4동.[20] 사상구에 철도가 있는 동은 주례동, 감전동, 괘법동, 덕포동, 모라동 5곳뿐이며 (그것도 경부선,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부산김해경전철 3종류뿐이다.) 나머지 삼락동, 학장동, 엄궁동은 대중교통을 버스에 의존해야 한다. 다행히 학장동과 엄궁동에는 지하철 5호선이 개통할 예정이라 5호선을 이용할 수 있다.[21] 주로 부산 3호선 강서구청역 인근 거주 유아.[22] 아침 시간대에 주례동, 감전동을 가 보면 사상구 괘법동, 덕포동의 유치원 버스는 물론 부산진구 개금동, 가야동에 있는 유치원 버스도 볼 수 있다.[23] 개원 초기에는 같은 1962년에 개교한 브니엘고등학교(1962년 당시에는 브니엘고등기술학교)와 건물을 같이 쓴 적도 있었다.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로 계열이 분리되었다.[2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역사상 첫 월드컵 승리 (폴란드 2:0)를 안겨 준 경기장인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이 있는 곳이다. 참고로 연제구에는 연산동과 거제동만 있다.[25] 이보다 조금 늦은 1979년(정식 인가는 1982년)에 개원한 부곡3치안센터 옆의 무궁화유치원(1993년 이전에는 무궁화 새마을 유아원)도 있었으나 이쪽은 공원부지 불법점유 및 특혜 논란으로 1999년에 폐원하고 건물도 완전히 철거되어서 현존하지 않으며 워낙 오래전에 폐원해서 관련 자료도 남아있는게 없다. 현재 그 자리에는 기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26] 舊 대변초등학교.[27] 심지어 정관읍이 기장읍보다 인구가 많다. 기장군의 읍면별 인구는 정관읍 8만 2,029명, 기장읍 5만 3,230명, 일광읍 2만 2,549명, 장안읍 8,657명, 철마면 8,080명으로 정관읍에 50.4%, 기장읍에 33.7%가 거주하고 있다. 심지어 일광은 장안보다 인구가 많으며 2022년 4월 일광읍으로 승격되었다. 여기에 철마면마저 철마읍이 되면 관할구역이 모두 읍인 최초의 군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