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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 (1919~1936) Українська Соціалістична Радянська Республіка Украин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Совет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Ukrainian Socialist Soviet Republic | ||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36~1991) Українська Радянська Соціалістична Республіка Украи́нская Сове́т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Ukrai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 ||
국기 | 국장 |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Пролетарі всіх країн, єднайтеся! | ||
1919년 3월 10일 ~ 1991년 12월 26일 | ||
성립 이전 | 해체 이후 | |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 우크라이나 | |
폴란드 제2공화국[1]] | ||
국가 |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 | |
위치 | 동유럽 | |
수도 | 하리코프 (1919년~1934년) 키예프 (1934년~1991년) | |
정치 체제 | 프롤레타리아 독재(마르크스-레닌주의) | |
언어 |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 |
민족 |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 |
종교 | 세속 국가 (명목상) 국가 무신론 (사실상) | |
통화 | 소련 루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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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의 구성국이자 연방에서 세력이 가장 컸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뒤를 이은 2인자 격이었던 나라. 1919년 3월 10일에 성립되었고 창설 당시 수도는 하리코프였다가 1934년 우크라이나 지역의 전통적인 수도였던 키예프로 천도했다. 인구는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51,944,400명에 달해 당시 남한 인구 43,295,704명보다 천만 명 가까이 많았다. 현재 우크라이나 인구는 천만명 가량 감소했다. 레닌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격전지였던 키예프, 오데사, 세바스토폴, 케르치가 영웅 도시로 지정되었다.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함께 국제연합(UN)에는 소련과 별도로 가입되어 있었지만 소련의 일부였던 만큼 철저한 거수기 역할만 했다. 1949년 2월 대한민국이 UN에 첫 가입 신청을 하였을 때도 소련의 구성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가 반대표를 행사하여 가입하지 못하였다.
2. 국기
1919년 ~ 1929년 | 1929년 ~ 1937년 | 1937년 ~ 1950년 | 1950년 ~ 1991년 | 1991년 ~ 1992년 |
3. 역사
▲ 소련 창설(1922년) 당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영토
1917년 12월 25일에 결성되었으며 1922년 12월 30일의 소비에트 대회에서 소련의 공화국으로써 참여하게 되었다. 산하의 자치공화국으로 '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있었지만 1940년 소련이 베사라비아를 합병하자 대부분 지역이 몰도바로 귀속되었는데 이 지역이 오늘날 트란스니스트리아다.
1939년 폴란드 분할로 갈리치아, 볼히니아를, 1940년 루마니아 영토였던 베사라비아가 소련에 귀속되어 부자크를 먹으면서 서쪽으로 영토를 크게 넓혔다. 1941년 나치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일군에 짓밟히며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주민이 희생되었으나 소련의 승전으로 1939년 흡수한 영토의 대부분을 영유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1945년에 유엔이 창설되면서 당시 미국과 영국의 자치령[2]이었던 필리핀 자치령과 인도 자치령[3]이 가입하는 데 대한 형평성을 맞추기 위하여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함께 소련과 별도로 가입했다.
1954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연합한 페레야슬라프 조약 300주년 경축을 명목으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으로부터 크림반도를 할양받았다.[4]
1986년에는 키예프 주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에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1990년 우크라이나 최고 소비에트 의회에서 상당수의 의석을 차지했지만 발트 3국과 몰도바 등과는 달리 러시아인과의 통혼 및 상호 교류가 위낙 활발했고 소련 상층부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자리를 많이 잡았던지라[5] 독립 여론이 다수를 차지하지는 못했었다.
1991년 소련 국민투표에서는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보이콧 운동이 있었지만 주민의 70% 이상이 찬성에 투표했다. 그러나 8월 쿠데타 이후 소련 중앙정부가 무력화되자 여론이 독립 찬성으로 이동했고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와 함께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독립찬성이 여론의 대세를 차지함을 보여주었으며 12월 26일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로 독립하였다.
4. 경제
비록 인구빨이긴 하지만[6]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위상은 오늘날보다 훨씬 높았다. 1979년 우크라이나 SSR의 GDP는 1,614억 달러 정도였는데[7]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따로 집계할 경우 이는 세계 14위, 유럽 8위에 달했다. UN에 따르면 2021년 우크라이나 GDP는 1979년의 1.239배에 불과한 2,001억 달러로 세계 53위, 유럽 19위이니 그 위상은 오늘날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사실 명목 GDP가 23.9% 증가한 것이지, 실질 GDP로 환산 시 우크라이나의 GDP는 42년간 42.5% 감소했다(...).[8]1985년 기준으로 소련 전체 밀의 46%, 옥수수의 56%, 사탕무의 60%, 해바라기의 50%를 생산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소련에서도 엄청난 곡창지대로 통했다. 소련 전체 농경지 면적을 생각해 보면 우크라이나의 농업생산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흔히 소련은 추운 나라라 경작지가 많지 않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서남부 러시아와 캅카스, 남시베리아, 발트 3국과 벨라루스, 몰도바와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남부 투르크메니스탄 등에 걸쳐 막대한 경작지를 가지고 있었고 도시 거주자들도 농촌 별장에서 농사를 짓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내 생산량은 다른 공화국들의 농업 생산량을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한 수확량을 보였다.하르키우, 도네츠크를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동부는 석탄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하였다. 돈바스 지역[9]의 탄전은 소련 석탄의 1/3을 생산했으며 자포리자주의 크리비 리흐[10]의 적철광은 자원대국인 소련에서도 알아줬다. 이 점에 주목한 소련 정부는 193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에 중공업 단지를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이 단지가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점령되자 이후 공업에 큰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고 일부 산업시설은 시베리아로 이전되었다가 전후 다시 복귀하기도 했다. 냉전 시기에 우크라이나 동부에는 안토노프, 하리코프 모로조프 설계국, 유즈노예 설계국 같은 소련의 주요 방위산업체들이 자리잡았다. 이 때문에 소련 붕괴 이후 로스코스모스는 우주개발에서 부품 수급 등 여러 문제를 겪어 NASA와 손을 잡아야 했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할 무렵에는 잠재성이 기대되었지만 1990년대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초인플레이션과 지하경제 창궐 및 부정부패 만연,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안보위기 및 지속되는 인구감소로 그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다만 농업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부흥하는 데 성공해서 오늘날 세계적인 농업대국으로 손꼽히며 제철 등 중공업도 옛 위상을 되찾진 못했지만 구조조정을 마치고 어느정도 부흥하였으며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산업으로 남아있다. 다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동부의 중공업 단지가 초토화되어 향후 IT산업 등 다른 첨단산업 위주로 경제가 재편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5. 관련 항목
6. 대중매체
슈퍼맨: 레드 선에서 슈퍼맨이 미국의 캔자스의 농장대신 떨어져서 자란 곳으로 나왔다.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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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리치아 지역 한[2] 사실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인해 1931년부터 자치령(Dominion)은 독자적인 외교권과 군대의 보유를 허용받게 되긴 했다.[3] Dominion of India[4] 아이러니하게도 유로마이단 혁명과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돈바스 전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결렬한 2014년은 페레야슬라프 조약 360주년이 되는 해였다.[5] 소련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러시아인이었지만 평소에 우크라이나어 억양이 섞인 러시아어를 쓸 정도로 우크라이나 지역에 강한 연고를 가지고 있었고 미하일 고르바초프도 자기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여겼지만 외가쪽 집안이 우크라이나계였다. 상징적 국가원수까지 합치면 아예 순수 우크라이나인인 니콜라이 포드고르니도 있다.[6] 1인당 GDP로 따지면 유럽에서도 뒤처졌다. 1979년 당시 비록 폴란드나 루마니아, 알바니아 같은 가난한 위성국보단 나을지라도 남유럽과 비교해서 이미 이탈리아와 2배나 격차가 벌어지고 앞서는 나라가 포르투갈밖에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이때 포르투갈은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의 여파로 경제가 정상이 아니었다.[7] UN의 국민계정체계에 따른 1979년 소련의 1인당 GDP(3,466달러)에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추산한 1978년 소련 1인당 평균 GDP 대비 우크라이나의 1인당 평균 GDP(0.936)#, 1979년 우크라이나 SSR의 인구(4,975만 명)를 곱하여 산출함.[8] 물론 크림반도와 돈바스 일부 지역의 이탈이 GDP 감소에 반영된 점은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감안해도 동구권 전체에서 우크라이나만큼 GDP가 폭락한 나라는 전무했다.[9] 도네츠크, 루간스크[10]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