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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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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국
Українська Держава
Ukrainska Derzhava
파일:Flag_of_Ukraine_(1917–1921).svg 파일:Coat_of_Arms_of_the_Ukrainian_State.svg
국기 국장
위치
파일:Location_of_the_Ukrainian_State.png
우크라이나국이 실효 지배한 영토 (녹색)
우크라이나국이 영유권 주장한 영토(연녹색)
1918년 4월 29일 ~ 1918년 12월 14일
수도 키예프
언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종교 러시아 정교회
정치체제 임시정부
입헌군주제 (명목)
전제군주제 (실질)
역사 건국: 1918년 4월 29일
멸망: 1918년 12월 14일

1. 개요2. 건국3. 디렉토리야4. 멸망 후5. 매체

[clearfix]

1. 개요

러시아 내전 시기 독일 제국우크라이나에 세운 괴뢰국이다.

2. 건국

1917년 러시아 제국에서 일어난 2월 혁명 이후 옛 러시아 제국의 영토 안에서는 많은 국가들이 독립하였다.

그 중에서 우크라이나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얼마 못 가 우크라이나의 행정부 격인 우크라이나 중앙 라다는 정치 경험이 부족하였기에 해산되어 버렸고, 결국 1918년 4월 우크라이나를 동부전선에 주둔하는 독일군의 식량을 제공하는 거점으로 하기 위한 독일 제국에 의해 괴뢰국인 우크라이나국이 수립되었다.

우크라이나국은 러일전쟁에서 복무한 카자크 사령관이자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우크라이나 제1 군단을 지휘한 군단장으로서 제1 차 자유 코사크 대회에서 명예 오타만으로 선출된 헤트만 파울로 스코로파즈키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모든 사회주의 정당을 불법화하였다.

스코로파츠키는 쿠데타를 일으켜 1918년 4월 29일 중앙 은행과 군사 및 내무를 관장하는 정부 건물을 인수하였다. 다음 날, 정부의 가장 충성스럽고 정예화된 군 조직인 시치 소총수가 무장해제되었다.

안정을 원했던 독일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은 쿠데타를 환영했다. 스코로파츠키는 그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였고, 곧 농민들에게서 지지를 잃었다. 시치 소총수들은 쿠데타에 반발하였고, 곧 해체되었다. 스코로파츠키 정권이 식량을 무자비하게 징발하고 지주에게 토지를 돌려주면서 반발이 거세졌다. 정권의 반대자들은 정부 건물에 대해 방화와 파괴 등 테러를 가했고, 1918년 7월에는 우크라이나 주둔 독일군 사령관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을 암살하였다.

우크라이나국 군대의 거의 모든 지휘관은 이전 러시아 제국군의 장교로 구성되었다. 대부분의 러시아 출신 장교들은 (안톤 데니킨처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대의를 지지하지 않았으며, 우크라이나 국가에 소속됨을 혼란의 시기를 헤쳐나가는 방법으로 간주했을 뿐이었다. 동시에, 대다수의 인구는 우크라이나 민족 정체성이 발달되지 않았으며, 그보다 더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918년 8월, 반스코로파츠키 파벌은 스코로파츠키가 시치 소총수를 재편성하도록 강요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때쯤이면 이미 동맹군이 패배한 것, 그리고 헤트만이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는 대안으로 반동적 러시아인들의 도움을 구하려 했고, 안톤 데니킨남러시아 정부와 연합할 것을 주장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서의 그의 입지를 더욱 악화시켰다.

1918년 11월 16일 전투가 시작되었다. 스코로파츠키는 수천 명의 백군에게 의지해야 했고, 그들은 시몬 페틀류라우크라이나 인민군에 저항할 수 없었다. 스코로파츠키는 12월 14일 우크라이나 인민군이 키예프를 점령하자 헤트만 직위를 포기했다. 그는 추방되었다.

3. 디렉토리야

볼셰비키의 침략으로 인해 1918년 2월 9일 수도 키이우가 약탈당하자 군대 민주화 정책을 추진하던 우크라이나 정부는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 후 2월 9일 소비에트 러시아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했고, 우크라이나 영토에 독일군이 주둔했다. 그리고 동년 3월에 독일군의 주둔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의 군대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후퇴했다. 이후 키이우 집단군이 조직되었으며, 키이우 집단군은 볼셰비키의 침략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직후, 중앙 라다 세력이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 부활과 독일 괴뢰국을 퇴출시키기 위해 키이우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정변으로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항복하였지만 1918년 12월 초, 다시 건국되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러시아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사실상 파기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였고, 우크라이나는 협상을 요청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소비에트 러시아군에 밀려 패퇴하였고, 결국 키이우가 함락되면서 멸망했다.

4. 멸망 후

이후 우크라이나는 혼돈 그 자체였다. 남부에서는 네스토르 마흐노가 이끄는 아나키즘 봉기가 이어졌고, 캅카스에서 세력을 키운 안톤 데니킨의 백군 세력이 우크라이나 동부로 진군하였다.

또한 폴란드군이 서우크라이나로 진군해 들어왔고, 폴란드군과 붉은 군대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외세의 침공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서우크라이나 잔존 군대는 1920년 4월, 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을 맺어 동맹을 맺었다.

그 즈음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남러시아 백군을 무너뜨린 때였고, 서우크라이나의 시몬 페틀류라의 군대와 연합한 폴란드군은 공세하여 키이우를 탈환했지만, 세묜 부됸니미하일 투하쳅스키의 역습을 당해 패주하였고, 8월에 바르샤바 인근까지 후퇴하였다. 하지만 폴란드군은 역전에 성공하여 다시금 소련군을 패퇴시키고 진군하였으며, 러시아 내전에 집중하기 위해 블라디미르 레닌의 소비에트 정부는 교섭을 제안하였다.

리가 조약으로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은 마무리되었고 페틀류라 세력은 그 동안 타르누프에 망명정부를 수립하였지만 폴란드 정부는 전쟁 직후 내쫓았다. 그 후 페틀류라는 파리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1]

5. 매체


[1] 당시 마흐노도 파리로 망명했는데 결핵과 생활고로 골골대던 마흐노의 비참한 모습을 본 유대인 아나키스트가 이에 분노해 페틀류라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질렀던 유대인 학살과 마흐노에 대한 복수로 페틀류라를 살해했다. 이후 그 유대인은 무죄로 풀려난다. 재판에 관한 위키피디아 문서가 존재한다. 마흐노는 결국 영양실조로 인한 결핵으로 사망한다.[2] 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이 승리한 세계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