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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No. 3 | |
<colbgcolor=#000000> 오오야마 유스케 | |
생년월일 | 1994년 12월 19일 ([age(1994-12-19)]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이바라키현 시모츠마시 |
학력 | 츠쿠바슈에이 고교 하쿠오 대학 |
신체 | 181cm / 92kg |
포지션 | 1루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16년 드래프트 1라운드 한신 |
소속팀 | 한신 타이거스 (2017~) |
연봉 | 2024 / ¥ 280,000,000 |
등장곡 | あいみょん - 空の青さを知る人よ[첫번째타석] GReeeeN - every[두번째타석] AK-69 - START IT AGAIN[세번째타석] GReeeeN - ビリーヴ[네번째타석] Def Tech - Bolero[다섯번째타석~] |
응원가 | 응원가[가사(일본어)][가사(한국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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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신 타이거스 소속 내야수. 장타형 타자로 주전 1루수를 맡고 있다.드래프트 당시에는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프로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핵심 타자로 자리 잡았다.
2. 선수 경력
2016년 드래프트 1라운더. 한신 팬들에게는 애증의 1라운더기도 하다. 하쿠오대학교 재학 당시 4년 간 74경기 276타수에서 15홈런을 치는 거포 3루수로[8] 당해 드래프트 내야수 최대어로 꼽혔다. 특히 4학년 때는 4할 타율에 48타수 8홈런을 치는 엄청난 활약을 했었다.그러나 하쿠오대학교가 속한 칸코신 대학야구 리그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지역 대학 리그에 불과해서 양민학살 의혹이 있었고[9],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에는 전혀 치지를 못해서 양민학살 의혹은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던 선수였다. 그래서 기록이 좋고 2010년대에 드문 3루수 빅뱃자원임에도 불구하고 드래프트에서는 잘해야 중위 라운드 지명이 예상되어 있던 상황이었는데, 한신이 그걸 덜컥 1라운드로 뽑아버린 것.
심지어 한신은 원래 인터뷰에서는 당시 고졸, 대졸, 사회인을 전부 합쳐서 투수 최대어 투톱으로 평가받던 사사키 치하야를 지명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한신이 오오야마를 뽑은 순간 회장에서 대놓고 웃음과 경악의 소리가 터져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싸해졌다. 보통 1라운더를 뽑으면 감탄과 축하의 소리가 나오는데 오오야마의 지명 순간만은 대놓고 비웃음과 경악이 들렸다. 드래프트 후 인터뷰에 의하면 원래부터 오오야마를 뽑으려고 했었는데 눈치싸움을 위해서 블러핑을 쳤다고 해서 또 한번 한신 팬들은 폭발. 거기다가 그 사사키 치하야는 아무 구단도 지명하지 않아서 하즈레 1라운드까지 밀려나 버렸다.
이후 밝혀진 이야기에 의하면 한신은 오오야마가 1라운드급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다고 한다.[10] 다만 팀 사정상 거포 내야수가 절실히 필요했고, 오릭스가 2라운드로 오오야마를 노릴 것이라 생각해서 지들 딴에는 스틸픽으로 뽑은 것. 근데 오릭스는 드래프트 1, 2라운드를 모두 투수로 뽑았고, 드래프트 후에 원래부터 드래프트 1, 2위는 모두 투수를 뽑기로 계획했다고 밝혀서 한신만 웃음거리가 됐다.[11] 여기에 더해 일부 한신 팬들은 대놓고 타 구단의 중복 지명을 원하기까지 했다. 일본프로야구 신인선수 선택회의 문서에 나오는 바와 같이, 일단 중복 지명한 구단이 생기면 그 때부턴 추첨으로 넘어가므로 오오야마가 한신에 오지 않을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1라운더 선수로서는 사상 최악의 불명예 취급을 받는다.
이때 한신 팬들은 이토 하야타(2011년 드래프트 1라운더) 단독지명과 비슷하다, 카키타 유타의 야수버전이다고 엄청나게 까면서 오오야마가 대망할 것이라 평가하였다. 여기서 예시로 든 두 선수는 이하와 같다.
- 이토 하야타 (伊藤隼太) - 원래 발 빠른 쌕쌕이 내야수였는데, 게이오기주쿠대학 진학 후 갑자기 거포가 되면서 5툴 플레이어 외야수 유망주로 꼽히며[12] 한신이 1라운더로 지명하였다. 하지만 4년차에 성적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미 이토의 고향[13] 팀이었던 주니치조차 발을 떼면서 제대로 되겠느냐는 의문점도 많았는데, 그 의문점대로 되어버려 7년 동안 외야 백업으로 365경기 700타석 정도 나와서 홈런 10개에 도루 시도 7번 중 1번 성공, 통산 타율 .240에 통산 OPS .632를 기록, 주전도 아니고 백업으로의 통산 성적이었다. 70타석마다 1홈런을 치는 똑딱이 타격에 준족의 소유자라면서 도루는 시도조차도 못 하고 그나마 시도를 할 때도 자동아웃 수준 + 견제사 및 주루사 연발에, 수비도 정식 기록에 남은 건 1실책이었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플라이도 안타로 둔갑시켜버리는 수준의 처참한 수비, 그나마 나았던 어깨도 2016년에 수술하면서 약해져버렸다. 5툴 플레이어라면서 컨택, 선구안, 주루, 수비 모두 프로에서 통하지 않는 0툴 플레이어라는 게 입증되어 제대로 망했다. 2017~2018년에는 대타로 밀려났고, 2019년 이후로는 치카모토 코지에게 밀리면서 2군에만 머물렀지만 2군에서도 성적이 나빴으며 그 와중에 뜬금없이 코로나 19 감염까지 당했다. 이 상황에서 나이까지도 30대를 넘겼기 때문에 2020년을 끝으로 결국 방출당했다. 방출 후엔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의 에히메 만다린 파이리츠에서 플레잉 코치로 뛰다가 2022년에 현역 은퇴하고 코치로 전향했다. 그리고 그가 달던 등번호 51은 2020년 신인 나카노 타쿠무가 달게 되었고 나카노는 단 한 시즌만에 홈런을 제외한 이토 하야타의 통산 성적을 넘어서 버렸다.
- 카키타 유타 (柿田裕太) - 한신 소속은 아니고, 요코하마가 2013년에 마쓰이 유키를 지명하다가 추첨에서 밀려 하즈레 1위로 업어간 투수.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한신이 오세라 다이치를 놓친 뒤 저 선수를 지명해 경쟁이 붙었지만, 추첨에서 패해 요코하마에게 내주고 대신 이와사다 유타를 1픽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이와사다가 나름 투수진에 안착해 성공한 반면, 카키타는 부상 등의 문제로 1군 경험을 못한채 방출되어[14] 결과론으로만 보면 한신 입장에선 추첨에서 패한게 천만다행, 요코하마에겐 흑역사인 결과가 되었다. 방출 후 카키타는 IT 기업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오오야마 지명 당시의 예측은 거의 저 선수들처럼 대성하지 못하고 방출될 거라는 예견이었다.
한편 오릭스는 1순위로 사회인팀 도쿄가스의 고졸 출신 사회인 우완 야마오카 타이스케(세토우치 고교 시절 여름 고시엔 히로시마 지역 예선 결승에서 재경기까지 포함해 24이닝 완봉승을 거둔 투수이다.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유명 일화 참조)를, 2위로 릿쇼 대학의 우완 쿠로키 유타를 뽑았다. 야마오카는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함께 팀을 대표하는 영건 선발로 성장한 반면 쿠로키는 위력적인 구위에도 잦은 부상이 문제가 되어 육성선수로 밀려났다. 이후 2023 시즌 후에 닛폰햄의 요시다 코세이와 맞트레이드되어 닛폰햄으로 이적했다.
2.1. 2017 ~ 2019년
시작은 2군으로 했지만 2017년 6월에 1군에 콜업, 23일에 데뷔전을 가졌다. 첫 타석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고, 이 후 7월 1일 야쿠르트전에서 하라 쥬리를 상대로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이후로는 첫 시즌임에도 4번을 맡는 등 한신 타선의 주축이 되었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신인 홈런, 신인 1시합 4안타 등의 맹활약을 펼치면서 2016 드래프트의 야유를 함성으로 바꿔놓았다. 아쉽게 교다 요타에 밀려서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15]2018년에는 타격 부진과 기복으로 1군과 2군을 오갔지만 첫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했고 인사이드 파크 홈런도 치는 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9년에는 전시합 출장을 달성했다.
2.2. 2020년
2020년에 제프리 마르테와 저스틴 보어로 인해 코너내야수 자리에서 밀린 채로 시작했고, 2군에서 시작하였다. 이후 1군에 올라왔으나 백업 및 외야수로 나오면서 완전히 밀린 듯 했다. 그러나 이후 제 폼을 찾고 홈런을 쳐내기 시작해 제프리 마르테의 부상으로 클린업 트리오로 올라오게 되었다. 다만 기대와 달리 4번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여 제리 샌즈에게 4번자리를 내주고 3루수 5번타자로 샌즈, 보어와 함께 클린업으로 활약하고 있다. 확 뛰어오른 6할대의 장타율로 시즌 두달만에 10홈런을 쳤고 커리어 첫 20홈런을 9월 18일 주니치전에 달성했다.10월 5일 전통의 일전에서 24호 역전 투런홈런을 쳐내며 오카모토 카즈마와 홈런수 동수를 만들며 세리그 홈런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이홈런으로 경기후 수훈선수 인터뷰를 했다.
2020시즌 최종 성적은 타출장 .288/.357/.560 OPS .918 28홈런(리그 공동 2위) 85타점 wRC+ 152. 그야말로 100점 만점이라고 할 만한 한 해를 보냈고, 21년 연봉 인상률 100%가 넘는 금액으로 1억엔에 사인했다.
2020년 오오야마의 활약은 기념비적인 것이, 단축시즌에 풀시즌을 소화하지 못 했음에도 28홈런이나 쳐냈는데 28홈런은 최근 10시즌(2011~2020) 동안 한신 타이거스의 어느 타자도 이뤄내지 못한 성적이다. 최근 10시즌 동안 20홈런 이상 기록한 타자는 1415 마우로 고메즈, 17나카타니 20 오오야마가 전부이며, 국내타자중 21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오오야마 한 명 뿐이다. 장타율 5할에 ops9할을 동시에 기록한 타자 역시 10시즌 통틀어 오오야마 한 명 뿐이다.
범위를 25홈런, 장타율 5할, ops 9할로 맞추면 한신 타이거스 우타자 중엔 최근 30시즌 동안 이 스탯을 찍은 사람이 아무도 없고, 1989년 세실 필더 이래 최초의 기록. 전체 타자 통틀어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수준이다. 만약 커리어 내내 이 스탯을 꾸준히 유지한다면 한신 역사상 최고의 우타자 중의 한 명으로 기록에 남을 수도 있다.
2.3. 2021년
2021시즌은 대폭 연봉인상과 함께 주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시즌 초 부진이나 시즌중반 등근육 담 증세 등 자잘한 부상에 시달리며 2군을 왔다갔다했고 작년보다는 떨어진 성적을 기록했다. 그래도 9월 중순까지 타율 2할 5푼에 16홈런으로 준수한 수준이라 여전히 한신 타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로 제리 샌즈, 사토 테루아키와 함께 한신의 주포를 맡고 있다. 9월 3~5일 고시엔에서의 전통의 일전에서는 맹활약을 했는데, 3일에는 동점 2타점 2루타[16]에 쐐기 1타점 적시타로 3타점을, 그 다음 날 경기에서는 한 점 뒤진 9회 말 끝내기 역전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전통의 일전에서 한신이 뒤지는 상태에서 끝내기 홈런을 기록한 건 1988년 타오 야스시[17] 이래 33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9월 4일 요미우리전 끝내기 2점 홈런
시즌을 2할 6푼 21홈런으로 마무리했다. 작년보다는 떨어졌지만 여전히 준수한 성적으로 클린업 역할을 잘 수행했다. 시즌 후 주장직을 사카모토 세이시로에게[18] 넘겨주었다.
시즌 후에는 미에현 출신의 일반인 여성과 결혼을 발표했다. 3살 연하로 3년간의 열애 끝에 오오야마의 생일에 혼인신고를 했으며 108송이의 장미꽃다발로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2.4. 2022년
팀도 본인도 영 못나가고 있는 상황. 제프리 마르테가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가면서 1루수로도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라쿠텐과의 교류전 첫 경기에선 좌익수로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 그래도 교류전 전 까지 4홈런이나 치면서 팀 내에서는 사토 테루아키에 이은 홈런 2위다.교류전에서 닛폰햄을 상대로 1경기 3홈런을 기록해 팀의 대역전 드라마를 이끄는 등[19] 6월이 되면서 성적이 크게 올라오고 있다. 6월 18일 디엔에이 전까지 6월 월간 홈런 9발을 기록했으며, 교류전에서도 상당히 좋은 성적을 남기며 일본생명상을 수상했다. 7월 3일 주니치 드래곤즈 원정 경기에서 개인 통산 100호 홈런을 기록했다.[20]
8월까지 2할 5푼 22홈런으로 팀 내 최다 홈런과 타점을 기록하며 팀 타선의 기둥 중 하나였으나, 죽음의 원정 기간 중 나카노, 치카모토보다 먼저 코로나에 걸리면서 호조 후미야와 같이 말소되었다.[21] 이토이 요시오와 호조 후미야, 이시이, 애런 윌커슨까지 정말 사람 안 가리고 코로나를 겪었다. 그가 없는 동안 팀 타선은 급격히 식어버렸고, 시즌 초가 연상되는 듯한 삽질을 벌이며 8연패를 달리다가 겨우겨우 연패 탈출을 했다.[22]
결국 정규 시즌 최종 성적 타율 0.267, OPS 0.827, 23홈런 87타점, wRC+ 144를 기록하면서 3관왕을 차지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무라카미 무네타카(134타점)의 뒤를 이어 타점 2위에 올랐다. 홈런은 23개로 공동 7위, 한신 팀 내 최다홈런 및 최다타점이다.
2.5. 2023년
다시 한신 타이거즈의 지휘봉을 잡은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은 오오야마를 '4번 1루수'로 고정했다. 좌익수나 3루수 등 포지션 변경이 많았는데, 가장 수비 부담이 덜한 1루수로 고정시킴으로서 타력을 극대화 하고자 했다.시즌 내내 클래식 스탯이 돋보이진 않지만 4할이 넘는 고출루율에 필요할때 희생플라이라 할지라도 적시에 타점을 내주고, 만루에서는 5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한신 타이거스의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우승 확정 시점 클래식 스탯은 .280 14홈런 67타점이지만, WAR는 5.3으로 센트럴리그 3위를 기록중. WAR 수치는 39홈런을 치고 있는 요미우리 오카모토 카즈마보다 높은 수치다.
9월 14일 현재 전경기 4번타자로 선발출전 중이며, 만약 시즌 전경기 4번을 소화한다면 드래프트 입단 선수로는 1985년 카케후 마사유키 이래 최초의 사례가 된다.
센트럴리그 우승 직후, 닛칸스포츠를 통하여 우승 소감과 시즌에 대한 소회를 남기는 글이 발표됐다. 위에 적혀있는 2016년 드래프트에서 상처받았던 일화와 함께, 극복하고 노력했던 기록이 담겨있다. 특히 '사상 최악의 드래프트'란 평가에 드래프트 동기들에게 직접 연락해 사과했던 자신을 생각하며 4번타자로서 우승경쟁의 중압감을 이겨내왔다는 부문은 한신팬들에게 감동을 자아내는 중.번역본
포스트시즌에서는 전반적으로 성적이 신통치 않았지만 2023년 일본시리즈 4차전, 2연속 자동 고의사구로 채워진 1사 만루 상황에서 제이콥 웨그스펙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팀을 2승 2패로 다시 시리즈 동률로 만들면서 아예 활약이 없지는 않았다.
2.6. 2024년
이번 시즌은 개막전부터 다음 타순의 사토 테루아키와 함께 중심타선에서 쌍으로 부진하다가 시즌 첫 홈런을 기점으로 부진에서 탈출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이후로도 4번타자로 중용됨에도 불구하고 53번의 시합에서 타율 .199 3홈런 19타점으로 전혀 나아지지 않은 모습을 선보인 끝에 6월 5일 시합 전 2군행 통보를 받았다.
6월 21일 요코하마전부터 다시 1군에서 출장했으며, 요코하마와의 2연전에서 2시합 연속 멀티 히트를 쳤고, 6월 22일 시합에서는 1군 복귀 후 첫 홈런포를 터뜨렸다.
이후 주니치와의 3연전에서 3시합 13타석 12타수 2안타 1볼넷,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3시합 9타석 8타수 3안타 1홈런을 기록. 6월 21일 복귀 이후 6월 말까지 30타석에서 28타수 9안타(2홈런) .321의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며 한결 나아졌다. 7월 21일 현재까지도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면서 점차 작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시즌 성적은 130시합 125안타 14홈런 68타점 타율 .259 출루율 .338 장타율 .383 OPS .721로 마감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컨택은 2할대 중반으로 조금 떨어지는 편이고 2019시즌 기준 4할대의 장타율에 14홈런으로 사실 타선이 강한 팀이라면 상위타선을 치기엔 힘든 성적이지만 그간 클린업을 맡았던 후쿠도메 코스케, 이토이 요시오 등이 노쇠하고 용병 뽑기를 연달아 실패해 타선이 약해진 현재의 한신에서는 제일가는 장타자라 4번으로 중용되던 선수였다. 2021년 사토 테루아키의 데뷔 이후로는 사토가 4번을 치고 오오야마 본인은 5번으로 출전하는 경기도 많아졌지만, 2023년에는 오카다 감독의 의향으로 시즌 내내 4번을 맡았다.WAR은 2019시즌 2.0으로 대단히 잘 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주전을 보장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매년 발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선수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선수를 상위지명한 현장의 눈이 의외로 정확했음을 보여주는 선수다. 후일담에 의하면 당시 감독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스카우터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겨서 뽑았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카네모토는 감독이 아니라 스카우터를 했어야 한다는 말도 조금 나왔다.
그리고 2020년 포텐이 확 터지며 ops 0.9를 넘는 등 올스타급 3루수로 거듭났다. 21시즌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22시즌 다시 ops 0.8오버에 wrc+144, 3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하였으며, 우승년도인 2023년에도 .288 19홈런 OPS.859를 기록하며 투고타저인 NPB 기준, 팀의 중심타자에 모자람이 없는 성적을 기록하였다. 무라카미 무네타카, 오카모토 카즈마의 존재 때문에 최고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어느 팀에 가도 주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거포 3루수가 되었다.
수비의 경우 3루 수비와 1루 수비의 평가에 차이가 있다. 3루 수비의 경우 넓은 수비범위와 무난한 포구, 강한 어깨를 장기로 한다. 송구 실책은 좀 있지만 필딩율도 .950전후를 기록하여 평균수준에 가까운 편. 필딩율로 인해서 클래식 스탯을 중시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아쉽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위의 강점을 바탕이 된 높은 UZR기록으로 인해 세이버메트릭스 지지자들 사이에서 평가가 높은 유형이었다.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부임 이후 2023년부터 1루수로 고정되었는데, 야수들의 송구를 척척 받아내고, 1루 강습 타구에서도 실수없는 수비를 해내는 등, 23년 시즌 한신의 내야 수비 안정화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오오야마의 안정적인 포구로 가장 많은 수혜를 받고 있는 선수는 23시즌부터 3루수로 나서는 사토 테루아키[23]. 그 외 2루수로 전향한 나카노 타쿠무와 잦은 송구실책이 있었던 키나미 세이야도 이득을 약간이나마 보았다. 그 외에도 상황에 따라 좌익수나 우익수 수비도 가능해 수비능력에서도 한신의 중핵을 맡는 선수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 여담
여튼 이래저래 다사다난한 입단 과정을 거쳤지만 입단 후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선수가 되었다. 사실 구단측에서도 야기 히로시, 세키모토 켄타로가 달던 3번을 주는 등 나름대로 밀어줬다. 1년차부터 75시합 221타석이나 나오면서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2년차에는 규정타석 약간 모자라게 출장하며 .274의 괜찮은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을 치며 주전으로 부상했고, 2019년에는 전 경기 출장을 달성하며 완전히 주전 3루수로 자리잡았다.쿠리야마 히데키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하쿠오대 교수 재직 시절에 응원을 직접 하기도 했다.
한신 팬들이 뽑아야 했다고 주장했던 사사키 치하야는 부상과 재활을 거치며 구속이 뚝 떨어지면서 스팟선발 정도로밖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야구 모른다는 좋은 예. 더 웃긴 것은 그 사사키 치하야보다도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타나카 세이기는 스팟선발조차도 못하고 불펜 패전처리로 생존신고만 하다가 콘도 켄스케의 보상선수로 닛폰햄에 팔려갔다.
다만 당장 1군에서는 사사키가 더 많이 나오지만[24] 구속이 10km/h 떨어지고 회복도 못하는 사사키보다는 2021년 현재도 150km/h대 공을 뿌리는 타나카의 미래가 좀 더 밝다. 공 자체는 살아 있으니까 뒤늦게라도 포텐이 터질 가능성이 있는 타나카와 갑자기 제구력 투수로 전향을 시도해서 패전처리나 스팟선발로 커리어를 이어나가야 하는 사사키의 차이만 보자면 차이가 난다. 결국 타나카는 선수층이 두터운 호크스에서 닛폰햄으로 옮기면서 마무리로 맹활약하고 있지만, 사사키 치하야는 2021년 한해에 반짝하다가 2022년에는 처참하게 부진했고 결국 2023년에는 2군 로스터만 채우고 있다. 물론 객관적인 성적으로 보면 커리어하이 기준으로도 1점대 중반 평균자책점에 26홀드를 올린 사사키가 2점대 중반 평균자책점에 17세이브를 올리고 있는 다나카보다 위고 통산 성적으로도 비슷한 평균자책점에 이닝 수가 다섯 배 가까이 많은 사사키 쪽이 우위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당시 프로팀에서 평가했던 잠재력은 야나기 유야>사사키 치하야>타나카 세이기였다. 유명세 때문에 타나카가 더 돋보였던 것이고 실제 알짜는 야나기였단 말이 이미 나돌았다는 듯. 타나카는 구속만 빠른 스타일이라 잘해야 불펜급이었다고 하고 사사키는 대학 시절대로만 던져주면 프로에서도 통하지만 각 팀 스카우터진 사이에서 팔꿈치 부상에 대한 걱정이 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에 가자마자 부상으로 구속을 10km/h 날려먹으며 그대로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반면 야나기는 주니치의 준수한 선발 투수가 되어 오노와 원투펀치를 이뤘다.
한국 일본야구 팬덤, 커뮤니티에서는 대산(大山)이라고 불리는데, 2023년의 모 아니면 도 급 활약으로 대산시치라고도 불린다(...). 2024년에는 모 아니면 도에서 도만 연달아 뜨는 활약 덕에 개산(犬山)이 되고 말았다.
[첫번째타석] [두번째타석] [세번째타석] [네번째타석] [다섯번째타석~] [가사(일본어)] 悠然と振り構えた バットに我らの夢を乗せて スタンドへはじき返せ 栄光つかむその日まで (유우젠토 후리 카마에타 밧토니 와레라노 유메오 노세테 스탄도에 하지키카에세 에이코오 츠카무 소노 히마데)[가사(한국어)] 유연하게 휘두른 배트에 우리들의 꿈을 실어서 스탠드로 되받아쳐라 영광을 쟁취하는 그 날까지[8] 대학야구는 프로에 비해 홈런이 적게 나온다. 일본은 고교야구까지 알뱃을 쓰고 대학부터 나무배트를 써서 대학 시절이 선수들의 나무배트 적응기간이기 때문. 일본 드래프트가 고졸, 특히 고졸 야수를 잘 선호하지 않는 것에는 이 이유도 있다. 정말 대단한 재능이 아닌 이상 신인은 대학에서 나무배트 적응 끝내고 오라는 것.[9] 죠부대학과 하쿠오대학이 프로 선수를 그래도 어느정도 배출은 했지만 크게 대성한 선수는 없다.[10] 모의지명에서도 잘 쳐주는 사람은 3라운드, 육성 선수밖에 안 된다고 본 사람도 있었다. 한국의 어느 일본야구 전문가는 9라운드 지명을 예상하기도 했다.[11] 그러나 이는 애매한 것이 오릭스도 한신도 아닌 타팀 구단 직원이 인터넷에서 오릭스가 야마오카 지명 실패 시 하즈레 1라운더로 오오야마를 고려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당시 구단들의 분위기대로면 오오야마를 2라운더로 고려하는 팀은 복수였고, 3라운더 정도까지 내려오면 어느 팀이든 바로 뽑았을 상황이었다고.[12] 케이오기주쿠대학이 다른 대학에 비해 야구부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다보니 똑같은 성적이면 케이오대 선수의 포텐을 더 높게 치는 경우도 있다.[13] 아이치현 세토시 출신.[14] 방출 자체는 이 드래프트 다음해인 2017년이었지만 어차피 드래프트 당시나 이후나 2군에 있었고 그 2군 성적조차 처참 그 자체였다.[15] 이 해 신인왕 경쟁에서 하마구치 하루히로 vs 교다 요타 vs 오오야마 유스케 이렇게 경쟁이 붙었다. 그리고, 교다가 신인왕을 수상했지만, 오오야마가 하마구치보다 더 많은 표를 받은 것이 두고두고 논란이 되었다.[16] 이후 요미우리가 만루를 만들어주자 나카노 타쿠무가 싹쓸이 3타점 3루타를 쳤고 이 경기 결승타가 되었다.[17] 주니치 드래곤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한신 타이거스 3팀에서 활약한 교타자로써 1976년 센트럴리그 신인왕, 1982-84시즌 최다안타 기록(당시 타이틀 미시상) 등의 실적을 남겼다. 2005년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초대 감독을 역임하게 되었으나 창단 당시의 빈약한 전력을 극복하지 못한 채 35승 97패 1무 승률 .281의 성적에 그치며 시즌 종료 직후 경질되었다.[18] 선수단 투표에서 오오야마 본인 외에도 치카모토 코지 및 사카모토 세이시로와 3자 경합을 했다.[19] 3회까지 7-1로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오오야마 본인이 솔로포 3발을 치고, 상대 팀 감독은 투수교체 실수를 하는 등 여러 행운이 겹치고 겹치며 8회말 기어이 역전에 성공했다. 이 경기가 기폭제가 되며 한신은 6월에 성적을 급격히 올려서 탈꼴지에도 성공했다.[20] 이 날 자신의 입단동기였던 사이키 히로토가 토미 존 서저리 복귀 후 첫 1군 경기 등판을 했고, 오오야마의 홈런포에 힘입어 승리를 거뒀다.[21] 공교롭게도 오오야마를 대신해 올라온 선수가 멜 로하스 주니어.[22] 오오야마가 코로나에 걸리면서 긴급히 대체선수로 콜업된 로하스가 공수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8연패를 끊는 결승 3점포를 치는 등 맹활약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고 9월 이후 존재감이 지워지더니 결국 시즌이 끝나고 한신과 결별했다.[23] 수비 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핵우산 효과로 타격 성적이 제법 좋아졌다.[24] 사사키는 2021년에도 개막 1군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