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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준혁의 기타 사항 내역을 정리한 문서.2. VS 이종범
자세한 내용은 양준혁 vs 이종범 문서 참고하십시오.3. 야구
- 한때 국내 최고 선수들의 해외진출에 대해서 다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해외진출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렇다할 활약도 못하고 온거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야할까. 그리고 자신의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같이 언급했는데, 자기 자신은 실력이 안돼서 해외 진출을 못했다고 말했다.[2] 그러나 자신도 LG에서 FA로 풀린 뒤 삼성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 해외진출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인터뷰를 보면 단지 겸손한 의사표시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선수협 파동과 더불어서 받아줄 팀이 없었다. 원 소속팀 LG도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지 않았고, 다른 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당시 타격왕을 딴 타자임에도 말이다. 즉, 삼성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국내에서 야구를 할 수 없으니, 야구를 하려면 해외진출을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심지어는 이도 저도 할 수 없을 위기까지 몰렸다고 한다. 다행히 김응용 감독이 강력히 주장해서 삼성으로 왔지만. 다만 2023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이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본인의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장현석과 같이 유능한 선수들이 해외에 도전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어야한다는 주장을 했다.
- 리더십도 있는 편인데, 삼성에서 주장도 했었고, LG 시절이던 2001년 시즌에도 LG의 주장을 맡았던 적 있다. 시간이 지나 LG에서 삼성으로 돌아온지 얼마 안되었던 2002~2003년, 분위기상 주장은 맡을 수 없던 시절에도[3] 선수들 기강을 잡는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본인말로는 불성실한 편인 후배들은 당연히 가차없이 불러서 혼내고, 평소에 성실한 편인 선수들도 며칠 정도 집중력이 떨어질 때에는 살짝 갈궜다고 한다. 당시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있던 이승엽마저도 어쩌다가 집중력 없는 경기를 한 날은 살짝 혼낸 적이 있다고. 양준혁 본인 주장으로는 2002~2003년의 어마어마했던 삼성 타격기록에는[4] 자기가 잡아준 분위기도 한 몫이 있다고 한다.
- 통산기록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부문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중에서 사사구를 가장 가치있게 여긴다.
- 박재홍과 함께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통산 우승 3회로 공동 1위다. 2006년엔 결승전에서 홈런을 하나도 못때리는 바람에 이택근이 고작 홈런 1개 때리고 우승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본인 말에 따르면 투수나 피칭머신이 던지는 공은 살아있는 공이라 홈런을 때리기 어려워 컨택에 집중하지만, 홈런 레이스 때는 죽은 공을 때리기 때문에 편해서 홈런이 잘 나온다고.
- 대구상고 재학 시절에는 자신의 모교 선배이자 라이온즈 선배이기도 한 장효조가 직접 모교에 방문을 하였는데 그때 장효조가 야구부에서 당시 1학년이었던 양준혁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장효조의 이러한 조언 덕분에 1학년 때부터 팀 내 4번타자가 될 수 있었으며 양준혁 본인도 이런 장효조를 향해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최고의 우상으로 여기고 있다.
- 한때 우승과는 지지리도 인연이 없었던 선수인데 대구상고 재학 시절 때는 당시 야구부가 침체했던 시절이라서 어떤 대회에서든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고 영남대 재학 시절 때도 야구부의 전력이 그리 강하지 못해서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로 데뷔했을 때도 데뷔 시즌 때는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준우승에 머물렀고 이후로는 팀이 침체하면서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하는 시기를 보냈고 잠시 팀을 떠나 해태나 LG같은 타 팀에서 활약을 했어도 한국시리즈를 아예 가보지 못하였다. 이후 2002년에 삼성으로 복귀하여 당시 양준혁은 커리어 최초로 3할을 치지 못하는 부진을 겪었음에도 팀의 기둥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버팀목이 되었고 그 결과 모처럼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는데 이승엽과 마해영의 백 투 백 홈런으로 시리즈를 끝내면서 마침내 감격의 우승을 맛보게 되었다. 이후 2005년과 2006년에도 한국시리즈를 2번 더 우승하여 총 3개의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거머쥐었다.
- 라이벌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가 프로 데뷔 후 KBO 신인상을 시작으로 매년 끊임없는 우상향 활약을 펼치면서 방송, 언론 인터뷰 등에서 우리 시대에 가장 성공한 사람은 이종범이라고 자주 언급하며 부러워 한다. 특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아들이 야구팬들로부터 이정후와 라이벌 구도로 비교되고 있다고.(...) 아내와도 만약 아들이 태어난다면 꼭 야구를 시키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2021년 결혼 후에도 한동안 자녀 소식이 없었지만 2024년 8월 드디어 아내의 임신 소식을 알렸다. 다만 성별이 딸로 밝혀지면서 2세 대결은 일단 불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딸의 출산도 자녀를 매우 바라던 양준혁과 아내 입장에서는 매우 기쁜 일임은 분명하다.
- 같은 팀에서 지낸 후배였던 배영수를 상당히 존중해주는 편인데 그가 커리어 내내 선발진을 지탱하면서 고생한 것을 높이 살 정도이며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선수 이상형 월드컵을 하였을 때 양준혁 본인을 비롯하여 이승엽, 이만수, 장효조 등 쟁쟁한 레전드들을 모두 제치고 배영수를 우승자로 점찍었을 정도였다. 반면 외국인 선수들은 대체로 박한 평가를 내린 편인데 죄다 첫 대결에서 광탈시켰다.(...)
- 2022년에 전임인 고천봉 회장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한국대학야구연맹 회장 선거에 기호 1번으로 출마했지만 기호 4번 최준상 거성축산 회장과 동률인 상황에서 연장자 우선 규정으로 인해 낙선했다.
- 전력질주는 양준혁 본인의 야구 철학이다. 선수 시절 언제나 1루까지 전력질주하는 모습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전력질주하지 않는 선수는 프로야구 선수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력질주가 프로의 기본임을 강조한다.
- 팀 선배였던 류중일과는 신인 때부터 같은 룸메이트를 쓰면서 오랫동안 지내기도 했었다. 또한 입단 당시에 마주한 또다른 선배이자 영남대 선배였던 강기웅도 신인이었던 양준혁을 각별하게 챙겨주었다. 상술한 장효조도 그렇고 모교 선배들의 배려와 덕을 많이 보기도 하면서 자신이 KBO를 대표하는 최고의 타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4. 은퇴 후 근황
- 2010년 10월 30일 김동재 코치를 돕기 위한 일구회와 천무야와 자선경기를 가졌으며 여기서는 일구회의 타자로 출장했다. 송진우, 이종범, 박철순 등등 야구인들이 참석해 서로의 훈훈함을 선보였는데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장효조와 서로 등번호를 맞바꿨다. 장효조 코치의 등번호는 83번이다. 그것도 서로의 등번호와 맞바꾼 것. 참고로 일구회 유니폼은 간지. 그런데 같이 참석한 김봉연과 김시진의 등번호는 똑같다.
- 2010년 11월 5일, 금복문화사회문화상을 수상하면서 부상으로 한 테이블 가득한 소주를 받아왔다. 양준혁 선수 본인은 트위터에 수상도 기쁘지만 역시 소주는 참○주가 최고라고 평한듯. 그런데 여기에 일부 유저가 수상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삼성에서의 선수생활에 큰 자부심을 가진 양준혁 선수에게 뜬금없이 삼성불매 드립을 쳐서 화제가 되었다. 해당 유저는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급히 사죄하였으나 이미 퍼질대로 퍼져 고생 좀 한듯.
- 201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홍명보 자선축구경기에 스트라이커로 선발출전했다. 오프사이드 개념[5]을 전혀 모르는건지 계속해서 수비수들 뒤에서 방황하고 상대팀 수비수에게 관광을 타기도 했지만 계속적인 양준혁 밀어주기 플레이 끝에 김병지 골키퍼를 상대로 한 골을 넣었다. 이당시 등번호는 10번. 그리고 뭉찬에서 축알못 인증 제대로 했다. 왜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골키퍼가 공을 잡으면 안 되는지 모른다던가...이 외에도 많다.
- 2011년 2월 6일 코엑스에서 열릴 V-리그 올스타전에 배구 선수로도 출전하였다. 전직 운동 선수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4대 프로 스포츠를 섭렵하는 케이스가 되었다.
- 그리고 다시 등번호 10번을 달고 나왔다. 게다가 같이 출전한 이순철은 14번, 선동열은 18번, 홍명보는 배구에서는 흔하지 않은 20번[6], 김태영은 7번, 문경은은 10번을 달고 나왔는데 우지원만 문경은과 번호가 겹쳐 5번을 달고 나왔다. 이 날 양준혁은 스파이크를 성공시키면 문워크 세레모니를 선보이겠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스파이크는 커녕 거의 공이 오지 않았고, 오히려 상대 선수의 공격을 블로킹하다 네트 터치를 범할 뻔...
- 2011년 4월 1일 엠팍에 인증을 했다. 그것도 한국야구게시판이 아닌 불펜에.. 불펜에 글을 쓰려면 4주간의 대기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그동안 양준혁은 뭘 한걸까? 있는대로 조공을 바친 삼갤만 허탈하게 됐다. 이 때부터 양가놈이란 별명으로도 불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4월 22일 새벽 야갤에도 인증을 남겼다. 하지만 보면 알 수 있듯이 엠팍의 댓글과는 달리 리플들이 하나같이 까는 리플들이다. 야갤러와 삼갤러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며, 단적으로 예전엔 양준혁 혹은 양神 혹은 양甲 이라고 부르던 호칭이 '양씨', '양가', '양가놈' 으로 바뀌어버렸다.
- 2012년 7월 20일 한일 프로 야구 레전드 매치에도 출전하였다. 4타수 1안타 2타점 1도루로 맹활약했으나 8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2루 땅볼을 친 뒤 1루로 뛰다가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다행히 입원할 정도로 큰 부상은 아니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될 거라고.
- 2015년 7월 23일경에는 일부 매체가 은사이자 양아버지인 김응용 감독을 깎아내리자 페이스북으로 분통을 터뜨렸다.[7]
- 2017년 8월 10일에 모친상을 당했다. 부고 기사는 11일에 났고, 양준혁 본인이 3일장을 치른 후 탈상한 8월 14일 자신의 SNS에 팬들에게 부고 소식을 올렸다.
- 최근 들어 프로동네야구 PDB에 자주 출연하고있다. 2018년 10월 14일 영상에서는 이날 반발력이 엄청난 Z2K 배트로 타구 스피드를 측정했는데, 22세의 현역 대학교 야구선수의 157km를 재치고 158km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해당 영상[8]
- 2018년 10월 20일에 올라온 프로동네야구 PDB의 영상에 또 모습을 나왔다. 이날은 구속 측정이였는데, 50대의 나이임에도 시속 110km 정도를 던지며 양신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 12월 23일에는 조수행, 김대현 선수과 함께 출연했다.
- 현재는 서울 잠실 신천에 스크린야구장 겸 펍인 <양준혁 라운지펍>을 운영 중이며, 세종특별자치시에도 회와 스테이크라는 메뉴조합을 파는 <양준혁의 가즈아>를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도 자신이 운영중인 펍과 관련된 사진을 올리기도했고 2019년 5월 19일 업로드된 PDB 출연영상도 자신이 운영하는 펍에서 찍었다. 사장님 계실 때 양준혁 대타찬스가 사용가능하다고...
- 한때 양준혁이 직접 가게 전단지를 돌리는 짤이 올라와서 장사가 안되니 뭐니 말이 많았는데, 그냥 본인이 하고싶어서 돌렸다고 한다. 방송에서 위의 전단지 썰에 대해 이제 주변에서 챙겨주는 야구선수가 아니니 맨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 밝혔다. 가게에 가본 팬들은 딱봐도 장사 잘 된다고 한다..
- 2021년 4월 9일 '양신 양준혁'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유튜브 콘텐츠는 게임, 먹방, 레슨, 은퇴 후 썰 등이다.
- 2021년 5월 5일 베이스볼 투나잇에서 어린이날 기념으로 어린이 옷을 입고 출연하여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었다.
2021 올스타전에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한때 프로야구 레전드였던 선수가 어쩌다 이렇게...- -양신 진짜 씹간지네-
- 심지어 트위치 세아스토리 방송에도 나왔는데 시청자들은 역사상 가장 특이한 인터넷방송 합방 조합이라는 반응을 드러냈다! 버튜버와의 조합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평.
명대사: 로스트아크 화이팅
- 포항 구룡포에서 대방어 양식장을 하고 있으며[10], 사업수완도 꽤 있는듯 하다. 강심장 VS에서 밝히길 연 매출 30억[11] 수준으로 잘 나가고 있다고. 참고로 그가 운영하는 양식장 바로 옆에 한반도 동쪽 땅끝 표지석이 있다.
5. 가족
5.1. 노총각 그리고 결혼
인터뷰에서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 나이 얘기와 결혼 얘기.
- 2020년 기준 52세(1969년생)[13]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으며 팬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양준혁은 동자공을 익히고 있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쩌면 결혼을 안 하는 것도 긴 선수 생활의 비결 아닐는지. 대부분 야구선수들이 결혼 후 안정을 찾고 기록이 상승하거나[14] 선수생활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15] 독신으로 저정도의 커리어를 쌓았다는 것은 놀랄 부분이 많은 듯. 이미 남자의 자격 같은 프로그램에서 부모님께서 "결혼 좀 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이젠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16] 하지만 워낙 발이 넓어 오승환의 전 여자친구를 소개해 주었고, 박한이에게도 지금의 부인을 소개해 주었다.
- 본인보다 25살 어린 f(x)의 설리에게 반하기도 했다. 설리는 영원한 오빠 ㅋㅋㅋ라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설리 어머니와 양신의 나이가 동갑이라고. 유이의 부친인 김성갑 코치에게 오빠 동생 사이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김성갑 코치와 양준혁은 7년차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준혁과 가장 관련이 깊은 여자 연예인은 역시 한효주. 이상형으로 그녀를 꼽았고 드라마도 그녀가 출연한 동이만 시청했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이 덕분인지 한효주와 화보촬영도 하는 등 어느 정도 교류가 있는 편이다.
- 2012년 시즌 이후 박재홍이 노총각인 상태로 은퇴하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나눌 이가 생겼다.
- 2014년 삼성과 한화의 2차전에서 한명재가 같이 해설 중인 박재홍에게 "시즌 끝나면 엠스플에서 겨울 특집 프로그램으로 류택현, 양준혁, 박재홍 모아 놓고 장가 보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겠다"며 놀렸다. 이후 본인에 맞먹을 수준이었던 노총각인 강동우, 류택현 등이 차례차례 장가를 가면서 동지가 사라지고 있다. 더 갈 것도 없이, 본인보다 한 살 많은 염경엽은 결혼해서 이미 딸이 대학을 졸업했고, 한 살 어린 이종범은 아들 이정후가 2017년에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해서 그해의 신인왕까지 탔다. 양준혁과 동 연령대(50대 중반, 1967~1970년생)의 일반인 남성들 기준으로 잡아도 첫째 자녀는 평균 1995~2000년생에 포진되어 있고, 늦어도 2005년경에 태어난 경우가 많다.
- 2014년부터 애정통일 남남북녀를 촬영하며 북한 출신 김은아 양과 가상결혼을 진행하고 있는데 너무 지나치게 밝히고 능글맞아서 왜 결혼을 못 했는지 알 수 있겠다고 매주 줄기차게 까이고 있다. 계산하게 돈 좀 달라는 걸 눈 앞에다가 옛다 받아라 라며 바닥에 돈을 내던지고, 니 다 처먹어라 하고 욕설을 내뱉거나, 아내가 남편 발을 씻겨야 한다며 성차별적 발언을 일삼는다. 남편으로서도 애인으로서도, 그 이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서도 최악이다. 그나마 다른 여자였으면 벌써 촬영거부 들어갈걸 대인배스럽게 다 받아주는 김은아양이 대단하다. 물론 예능프로인 만큼 각본에 의해 행동했을 가능성도 꽤 있다.
- 삼성 라이온즈에 있을 때, 방송에 같이 나왔던 박석민[17]이 "양준혁 선배는 자꾸 어린 여자들하고 결혼하고 싶어한다."며, "자기 나이와 비슷한 나이대를 찾아가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라고 일침을 날린 적이 있다.
- 2015년 삼성 구자욱 선수가 열애설이 나자 해설 도중 "사랑 할 때는 해야한다. 안하면 제 꼴납니다." 라며 자기 디스를 했다. 허나 구자욱의 열애설은 차라리 노총각이 나을 정도의 안타까운 결말이 지어지고 만다...
- 2017년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가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자 갈수록 의문의 패배를 매번 적립하는 중. 삼성 팬중 일부는 결혼해서 애도 안 낳고 뭐했냐고 투덜대고 있다. 이정후 4안타에 어째 또 패배한 양준혁 위원님. 그런데 이정후는 이종범 vs 양준혁 떡밥 질문 때 양준혁 편을 들어줬다.
- 스크린야구 레전드 매치에서도 정용검 캐스터에게 상술된 멘트로 디스당했다.
- 일정상 해설 맡을 때 카메라에서 여성 관중들이 비추면 캐스터들과 동료 해설위원들이 농담삼아 이야기를 한다.
- 2019년 3월 29일 NC대 한화전 중계중, 류현진의 개막전 승리 영상자료가 나오니까 역시 '역시 선수는 와이프의 내조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는데, 캐스터가 "그걸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라고 디스를 하자 "저는 은퇴했잖아요... 저하곤 상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캐스터와 시청자는 폭소.
- 2020년 1월 26일 SBS 플러스 < 밥은 먹고 다니냐 > 방송분에서 열애 사실을 밝혔다. 여자친구는 오랜 팬이며 올해 안에 결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에 예정된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를 통해 여자친구와 결혼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계와 팬들은 드디어 오랜 숙원이 이뤄졌다고 환호. 그리고 양준혁 아들 VS 이정후 아들을 볼 수 있다고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18] 7월 20일 나온 보도에 따르면 19살 아래라고 한다.[19]
- 예비신부가 재즈 가수인 박현선임이 뭉쳐야 찬다의 7월 26일자 방송분에 직접 출연함으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다른 방송에서 러브스토리가 밝혀졌다. 아내는 광주광역시 출신인데 양준혁이 은퇴할 무렵 기아 타이거즈전 원정을 갔고 여자친구가 야구공에 사인을 받으려고 했지만 펜이 없어 사인 실패 , 그래서 여자친구가 싸이월드 미니홈피 방명록에 아쉽다고 연락처를 남겨 사적으로 만나 사인해주면서 처음 만났다고. 당초 12월 5일에 식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고척 스카이돔이 아닌 서울의 모 웨딩홀로 장소가 바뀌었고 날짜도 12월 26일로 연기되었다.#
- 하지만 또다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결국 결혼식은 2021년 3월까지 미뤄졌다. # 대신 해당 기간동안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에 출연하며 결혼 준비과정과 연애사를 공개하게 되었다. 덧붙여 여자친구를 부르는 별칭은 또랭이. 4차원적인 면모가 있어서 지은 별명이며 그 또랭이가 맞다고 뭉쳐야 찬다에서 인정했다. 2021년 1월 30일 방송에서 결혼식은 미뤄졌지만 1월 8일 혼인신고를 마친 사실이 공개되었다. 결혼식은 3월 13일에 치러졌다. 방송서 신혼집 모습도 공개됐다. #
- 2024년 08월 12일,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에서 아내인 박현선이 첫 자녀를 임신했음을 알렸다. 시험관 시도 한번만에 찾아온 아이라 한다. 본래 쌍둥이였는데 안타깝게도 한 명은 8주만에 유산되었다고 한다.
6. 취향
- 부업으로 경상북도 포항 구룡포에서 국내 11개뿐인 축제(築堤)식[20] 대방어 양식장을 하는데 수익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규모는 총 16칸으로 야구장에 버금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식하고 있는 방어 수도 2만여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관리는 현재 양준혁의 둘째 형이 도맡아 하고 있으며, TV 프로그램 살림남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7. 기타
- 동갑내기 신태용과는 영남대학교 88학번 동기로 상당히 친한 친구다. 영남대학교 재학 시절 야구부와 축구부의 식당과 샤워실이 같은 건물에 있어서 자주 마주친 것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참고로 신태용은 야구를 보고 ‘스포츠’가 아닌 ‘레저’라고 부른 최초의 인물이다.[21]
- 강호동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 둘이 육중한 체구인 점도 비슷하고, 운동을 하다가 방송계로 진출한 점도 비슷한데 방송에서 처음 만난 것은 무릎팍도사 녹화 때라고. 이후 강호동이 1박 2일 160회 ~ 162회로 6대광역시 특집 녹화 때 고향 대구광역시에 방문하게 되고 양준혁에게 섭외를 요청하자, 단칼에 수락하였고 자주 가던 동인동 낙영찜갈비 단골집을 소개해주고 강호동에게 자기 집 방문도 허락했으며 모든 멤버들의 미션이 끝난 이후 당시 베이스캠프였던 대전광역시에 같이 가서 마지막까지 녹화에 임했다고 한다. 당시 대전광역시청 앞에서 강호동, 이수근과 함께 텐트를 치고 1박 녹화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지내고 있는 듯 하다.
-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2009년 2월 경 그 동안의 양준혁 관련 기사를 스크랩한 기사들이 출처로 사용되면서 알찬 글로 선정되었다. 위키백과에서의 알찬 글 선정은 양준혁이 야구 선수로는 유일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양준혁과 관련된 사진들이 모두 지워지면서 한때 알찬 글 지정 해제 논쟁까지 벌어졌지만 결국 알찬 글 해제는 면했다.[22]
- 홈런타자로서 괴력을 유지하는 비결의 하나는 스테이크 식단이라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홈경기가 있는 날은 지인으로부터 얻은 미군부대 출입증을 이용해 부대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곁들여 식사를 즐긴다고 한다. 그것도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레어 스테이크를 즐긴다고.
- '삼성 직원인데 삼성 제품을 써 줘야지'라고 하며 TV, 에어컨, 냉장고, 노트북을 모두 삼성제로 통일했다. 그리곤 계약직이라 직원할인은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반쯤은 사실. 프로야구 선수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법적으로 따지자면 개인사업으로서 돈을 받고 그 팀을 위해 싸워주는 용병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법적으론 용병으로 불리는 외국인 선수들이랑 동일 신분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 그런데 은퇴 이후 찍은 삼성카드[23] 광고는 마치 선수 시절에 직원 혜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찍었다.
-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나 술은 중학교 때 심방세동[24]을 앓았던 것이 원인으로 추정되며 술을 마시면 심장이 갑자기 뛴다고 한다. 참고로 이 질병때문에 야구를 그만둘 뻔 했으나 약을 먹고 치료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 잘못된 식습관을 고치기 위해 출연한 구원의 밥상에서도 술은 마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25]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평발이라고 한다.
- 양준혁의 스탯은 고등고시에 문제로 만들어져 출제된 경력이 있다. 정확히는 행정·외무고시 1차시험인 PSAT의 2008년 자료해석영역[26] 열책형 25번(정책형 5번) 문제이다. 1993년부터 2007년까지의 타격기록이 데이터로 제시되었다. 물론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프로야구 선수 Y'라고 표기되었지만, 찍혀 있는 스탯의 범상치 않음으로 인해 이 선수가 양준혁임을 알 수 있다.[27] 당해 시험에서 야구팬 고시생들은 문제를 보면서 즐거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최훈이 프로야구 카툰 연재를 시작한 후 최초로 한 회차를 모두 할애해 은퇴기념 카툰을 그렸다. '양신'을 떠나보내며 더구나 패넌트레이스가 끝나갈때 그렸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일일연재가 아니라 매주 8개 구단을 모두 그렸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다. 이 후 카툰과 관계없이 양준혁을 따로 그려내면서 은퇴를 아쉬워했다. 그림 주소
- 안지만이 1군에 모습을 드러낸지 얼마 안된 시절에 강영식과 함께 힙합모자 대결을 했다. 결론은 안지만이 승리했고, 그 이후 안지만 본인의 엉덩이로 편 모자를 구부렸더니 양준혁이 손수 펴주면서 "구부리면 죽인다"라는 말을 남기셨다. 이에 안지만은 매일 힙합모자를 쓰게 되었다.
- 2010년 은퇴식 때 랩퍼 MC신건이 헌정곡 "위풍당당 양신"을 발표하였다.
- 패션센스는 별로 좋지 않은 편인데, 아저씨답게 배바지를 좋아한다. 유니폼도 바지 바짝 끌어올려 배바지 스타일로 입으신 분. 야구계에서 배바지로 유명한 사람은 선동열 감독이 단연 유명한데, 양신도 한 배바지 하신다. 오죽하면 자선야구대회에서 이여상이 배바지를 흉내내서 타석에 나왔을 정도. 야구내적으로는 매우 사이가 안좋은 양준혁과 선동열이지만, 패션센스는 통하는 게 있는 듯 하다. 가히 KBO 패션 테러리스트계 투타 원탑이라고 할 수 있을 듯.
- 노안이었다. 다만 그 노안이었던 얼굴이 그대로 가는데다가 해설위원이나 방송인으로 자주 출연하면서 관리를 받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나이에 비해 약간 어려보인다.
- 2023 WBC 일본전 이후 개인방송에서 이강철 감독을 필두로 직설적인 비판을 했다. 이에 공감하는 여론과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선수로서 부적절한 언행이었다는 여론으로 갈렸다. 안우진을 옹호하는 부분은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이와 관련해 김현수가 사실상 양준혁을 저격하는 발언을 하면서 논란을 불러왔다.
- 아나뭐하나? 유튜브 채널을 통해 MBTI가 ISFP라는 것이 밝혀졌다.
- 고등학교와 대학교 전공이 상경계열이다. 고등학교는 회계과를 나왔으며, 대학교는 경제학과를 나왔다.[28]
-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60대에 학부모가 될 예정이다. 학부모 모임때 딸의 친구들에게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 야구 팬들의 농담 반, 푸념 반으로 한국 프로야구 4대 역적에 손꼽힌다. 이유인즉슨 오랫동안 노총각인 탓에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야구 인재를 만들어내지 못해서라고. 나머지 세 명은 미혼인 박재홍, 아들을 하나밖에 안 낳은 이종범, 딸만 셋인 박찬호. 그리고 2021년 드디어 결혼에 성공해 역적에서 탈출하나 싶었으나... 2024년 동상이몽 방송을 통해 첫째 아이가 딸로 밝혀져 야구 팬들의 농담섞인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1] 장외홈런은 아니라고 한다.[2] 타격 툴에서는 자신이 있었지만 수비와 주루에서 경쟁력이 없을거라 여겼다고 한다. 김현수의 사례를 보면 매우 정확한 통찰이었던 셈.[3] 당시 주장은 김한수 였다.[4] 이마양 문서에 나오는 그 시기다. 이승엽뿐만 아니라 마해영도 엄청난 활약을, 그리고 양준혁 본인도 활약했고 다른 삼성 타자들도 상당히 잘 했던 시기다.[5] 단 자선 경기같은 경우 오프사이드를 없애는 경우도 있지만 개최자가 개최자인지라 없애지 않은 듯.[6] 2002년 국가대표 시절에 달던 등번호가 20번이다.[7] 실제로 김응용 감독과는 각별한 관계로 여긴다고 한다. 선수로 뛰던 시절에도 2번이나 자신을 찾아준데다가, 2010년에 본의 아니게 은퇴로 내몰렸을때도 김응용 前사장만큼은 영구결번 즉시 지정, 역대 최대 규모의 은퇴식 등 유독 양준혁을 챙기기도 했고.[8] 6분 56초부터[9] 이재명은 과거 성남시장 시절 양준혁야구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소외 계층 유소년 지원 프로그램인 ‘멘토리야구단’에 지원을 해준 적이 있었다. 양준혁은 그 인연으로 이재명한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뿐, 재단의 이사장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어떠한 정당활동도 할 수 없다. 지지모임 합류 여부와는 별개로 양준혁이 실제로 이재명을 지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10] 전국에 11곳 밖에 없다는 '축제식 양식장'이라고 한다. 축제식 양식장은 바다에 구덩이를 깊게 판 뒤 그 안에서 양식하는 방식이다.[11] 양식장에서 평균적으로 10,000마리를 키우고 있고 출하시 한마리씩 무게를 달아 10kg이 넘는 것만 출하한다. 2023년에 최고가 낙찰을 받았는데 낙찰가가 무려 kg당 38,000원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출하한 것 1마리가 최소 380,000원이나 하는 셈이다.[12] 참고로 중계에서 이 말을 한 정용검도 아직 미혼이다.[13] 2024년 기준 동갑인 김기태는 큰아들이 29세(1996년생)이고, 1살 아래인 라이벌은 이미 아들이 프로 8년차, 외손자까지 봐서 할아버지가 되었다. 같은 대학의 타 종목 동기인 신태용은 이미 아들 둘 모두 축구선수가 되었고,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동갑내기도 손자가 있는 할아버지다. 물론 그리피 가문은 대대로 결혼이 빠른 편이고, 이종범의 딸과 사위도 다소 이른 나이에 결혼했음을 감안해야 한다.[14] 대표적인 예가 2010 시즌의 이대호, 2012 시즌의 박병호, 2017 시즌의 김선빈.[15] 이쪽의 예는 박찬호를 들 수 있겠다.[16] 오히려 양준혁의 장조카가 결혼하면서 출산까지 했다. 한술 더 떠서 학교까지 입학했다고 한다.[17] 박석민은 겨우 만 21세에 속도위반으로 아들을 봤다. 게다가 방송자료를 보면 박석민 뒷편에 양준혁 본인이 박한이와 엮어 준 조명진씨가 보인다.[18] 양준혁이 아들을 결혼하자마자 낳아도 양준혁의 아들이 프로에 입단할 때면 이정후는 41살이다. 이 정도 나이면 엄청 오래 뛰는 야구선수도 슬슬 은퇴를 고려해야 할 시기이다. 이정후가 20대인 만큼 양준혁 아들은 이종범 손자와 세대가 겹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베이스볼 투나잇 프리뷰톡 2020년 7월 3일자 방송에서도 허구연이 "이정후가 빨리 결혼해서 양준혁 아들이랑 이종범 손자랑 같이 뛰는 게 더 빠를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3년, 이정후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고우석과 결혼한 이종범의 딸이 아들을 임신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결국 양준혁 아들보다 이종범 손자가 나이가 많게 되었다.[19] 켄 그리피 시니어와 주니어 나이차와 똑같다. 장인이 고작 9살 많다고 한다.[20] 바다 한 켠에 제방을 쌓아 어장을 만드는 형식. 기존 소규모 가두리 양식장보다 월등히 넓은 면적에 해류순환 여건도 좋다.[21] 이건 나중에 밝히기를 이때 양준혁이 워낙 살이찐때라 신태용이 우스개소리로 양준혁을 디스하고 양준혁도 크게웃고 넘어간 썰을 푼걸 기자가 멋대로 부풀려 올린거라한다.[22] 참고로 위키백과에 등록된 알찬 글에서 사진이 모두 없어지면 알찬 글 항목에서 해제된다. 그럼에도 양준혁 한국어판 문서가 알찬 글에서 해제되지 않은 것은 데뷔 시절 이래 자료가 빈약했으니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23] 삼성카드 S클래스라고, 신세계, CJ그룹 등 삼성 관계사 혜택이 많다고 광고하는 카드였다.[24]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박동하는 병.[25] 이게 팀 직속후배인 이승엽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본인처럼 KBO 영구결번 라인에 올랐다. 이제 남은 영구결번 라인 후보는 본인과 똑같은 오승환만 남은 상태. 다만 오승환은 술은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동으로 커버한다고.[26] 그래프나 표 등의 데이터를 제시하고, 문제를 푸는 과목이다. 일반적으로 PSAT 3개 영역 중 평균 점수가 가장 낮다.[27] 맞는 보기를 고르라는 문제였는데, 보기 ㄴ이 '1997~2007년 중 Y선수의 타율이 0.310 이하인 해는 4번 있었다.' 였다. 물론 틀린 보기로, 4번이 아니라 '3번'이다.[28] 이 당시만 해도 체육특기자들은 본인이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던 시대였고, 굳이 체육 계열 학과에 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