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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2 23:37:23

아폴로 안톤 오노/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아폴로 안톤 오노

1. 유년 시절2. 1996-97 시즌3. 1997-98 시즌4. 1998-99 시즌5. 1999-00 시즌6. 2000-01 시즌7. 2001-02 시즌
7.1. 올림픽 대표 선발전 논란7.2.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8. 2002-03 시즌9. 2003-04 시즌10. 2004-05 시즌
10.1. 월드컵 시리즈10.2. 2005 세계선수권
11. 2005-06 시즌12. 2006-07 시즌13. 2007-08 시즌
13.1. 월드컵 시리즈13.2. 2008 세계선수권
14. 2008-09 시즌
14.1. 월드컵 시리즈14.2. 2009 세계선수권
15. 2009-10 시즌16.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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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년 시절

어머니가 어릴 적에 가족을 떠나,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자랐다고 한다. 12살이었을 무렵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시청하던 그는 쇼트트랙을 시청한 후 선수로서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한다. 특히 김기훈의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고 하며 자신의 우상으로 김기훈을 말하기도 했다. 아버지인 오노 유키는 자신의 아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으며 심지어 차로 캐나다미국을 오가며 오노를 대회에 출전시켰다 한다. 그의 재능을 본 유키는 1996년 아직 미성년자였던 오노를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에 보냈다. 이때 그의 나이 13세로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간 선수 중에는 가장 어린 선수였다고 한다.

2. 1996-97 시즌

처음 트레이닝을 시작하였을 때는 굉장히 나태한 자세로 훈련에 임했지만, 주변 동료들에게 작은 키와 몸집 때문에 땅딸막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자극을 받아 본격적으로 훈련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다음해였던 1997년에 미국 주니어 대표팀에 발탁되는데 실패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전미선수권 시니어 부문에 참가해 14세의 나이로 1500m에서 금, 300m에서 은, 그리고 500m에서 4위로 역사상 최연소로 대회 종합 우승을 했다.

그 후 콜로라도로 트레이닝센터를 옮기면서 성인급 선수들과 훈련을 같이 하기 시작했지만 1997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19위로 대회를 마치면서 쓴 맛을 봤고 마음에 큰 타격을 입은 그는 그 해 4월 자신의 고향인 시애틀로 돌아가 트레이닝을 그만뒀다.

3. 1997-98 시즌

결국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던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선발전에서도 떨어졌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오노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제공해 콜로라도가 아닌 레이크 플래시드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로 돌아가 주니어 레벨의 선수들과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4. 1998-99 시즌

1999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해서 1000m, 1500m에서 금메달, 500m에서 은메달을 수상해 대회 종합우승을 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 후 미국 국내 대회에서 두 번째로 우승, 세계 선수권에서는 500m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면서 종합 4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5. 1999-00 시즌

2000년엔 자신의 3번째 미국내 대회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며 3위에 머무른다. 국제대회에서는 김동성이 월드컵을, 민룡이 세계선수권을 가져가며 활약한 가운데 오노는 세계 선수권에서는 9위에 머무르며 다시 주춤한다.

6. 2000-01 시즌

2000-01 시즌에는 자신의 첫 월드컵에서 종합우승(세계랭킹 1위), 자신의 4번째 국내 대회 우승, 그리고 세계 선수권에서 종합 2위[1]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월드컵 시리즈에서 김동성이 부상으로 중도 하차 하긴 했지만 리자쥔, 마크 가뇽, 그리고 지난 시즌 세계선수권 우승자 민룡을 제치고 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때부터 미국은 그에게 엄청난 기대를 걸었고 결국 그 사단이 난다.

7. 2001-02 시즌

7.1. 올림픽 대표 선발전 논란

2001년 12월, 동계올림픽 선발전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샤니 데이비스가 쇼트트랙 선발전에 출전했다. 오노와 러스티 스미스는 이미 점수를 많이 따내 선발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샤니 데이비스가 선발되려면 마지막 종목이었던 1000m에서 최소 오노, 스미스, 그리고 론 비온도라는 경쟁자들을 재치고 우승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었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 보였다.

허나 샤니 데이비스가 1000미터 우승, 스미스가 2위[2], 오노가 3위라는 예상을 뒤엎은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데이비스가 1위로 골인한 후 스미스와 오노가 함께 축하하는 장면. 이로 인해 데이비스의 친한 친구였던 오노와 스미스가 데이비스에게 1위를 양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데이비스가 1위를 하는 바람에 국가대표 선발에 실패한 토미 오헤어라는 선수는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의 주장은 오노가 데이비스와 스미스가 각각 1, 2위를 할 수 있도록 레이스 내내 의도적으로 비온도의 진로 방해를 했다는 것. 결국 3일 동안 오노, 스미스, 데이비스는 조사를 받게 되었고 셋 다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이 나고 오노는 인터뷰에서 "나는 잘못 안했는데 괜히 시비걺 ㅋ 암튼 무죄 판결이라 기분 째짐"이라고 했다.

7.2.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자국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이자 자신의 첫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500m에서는 준결승에서 일본 선수를 밀어 실격당했다.

* 1000m
1000m에선 결승에서 안현수리자쥔과 금메달을 놓고 경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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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마지막 코너를 남기고 리자쥔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 리자준이 자빠진 뒤 리자쥔에게 스케이트날이 걸린 안현수와 코너를 돌다 넘어지면서 본인과 마티유 투르콧과 함께 충돌했다. 그 바람에 꼴찌로 레이스를 하던 호주의 스티븐 브래드버리가 금메달을 땄고 본인은 넘어진 후에 두번째로 오면서 은메달을 땄다.

이 경기는 그가 실력만으로 가져갈 수 있었던 금메달을 리자준의 깽판으로 자기도 속력이 줄고 안현수도 넘어뜨리면서 본인도 휘말린 것이라 안타까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티븐 브래드버리만 이득을 본 셈이다. 그래도 미국 남자부에서 개인전 최초로 메달을 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듯하다.[3]

1500m 결승전에서 김동성과의 맞대결이 벌어졌을 때 2위까지 치고 올라오는데 성공했지만 김동성을 제치는데 실패하자 마지막 코너를 앞두고 다음과 같은 행동을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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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김동성이 의도적으로 블로킹을 했다는 듯이 할리우드 액션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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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결승선 통과 후 억울한 표정 연기로 심판진 바라보며 어필하는 오노.
전이경 : 김동성 선수, 얼음판에 그대로 누워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전이경: 영화배우 안톤 오노라고 하면 딱 맞겠습니다.
배기완: 영화 제목은 "비겁자"가 될까요?
전이경: 예. '반칙왕 2'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한 SBS 전이경 - 배기완 중계진이 판정 이후 한 말. 이후 숏터뷰에서 다시 재중계를 했다.
호주인 심판 제임스 휴이시이를 김동성의 반칙 때문인 것으로 판단하여 실격시키는 바람에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오노는 레이스 후 인터뷰에서 "그가 실격당할 줄 알았어요"라고 했으며 미국 남자 쇼트트랙 첫 금메달리스트가 되면서 미국의 국민 영웅이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큰 논란이 불거졌고 이 경기에서 4위를 한 파비오 카르타는 "말도 안되는 일이다"며 판정이 잘못됐다 한다. 하지만 김동성의 실격 덕에 어부지리로 동메달 대신 은메달을 딴 리자쥔은 "심판진의 판정에 수긍한다. 그것뿐이다"고 했다. 곧 이같은 심판의 판정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4]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에게 '할리우드 액션', '반칙왕'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우연찮게 그가 일본계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반일감정까지 섞였고 근데 오노는 일본인도 밀친 적이 있다... 당시 기승을 부리던 민족주의적 정서, 애국심 마케팅까지 겹쳐 한국에서 철천지 원수 취급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까지 터지면서 반미 감정이 급속도로 확산되기도 하였다. 사실 사건 당시만 해도 월드컵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으나, 연말들어 무죄 판결 소식이 들려온 후 반미 감정은 더 크게 확산되었다. 초딩들 사이에서 윤민석이 지은 Fucking USA라는 노래가 거리낌없이 유행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리고 당시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 노래를 보도 말미에 BGM으로 까는 패기도 보여주었다!

이후 오노의 반칙보다 심한 반칙을 저지른 선수들이나 편파적인 오심이 여럿 등장했음에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등장하기 전까지 오노처럼 전국민적인 까임을 당한 케이스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당시 오노에게 몰린 분노를 어림 짐작 가능할 정도다.[5] 인터넷에서는 가짜 오노 인터뷰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오노스럽다\', '오노 같은\' 등 비속어의 의미를 담은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였다.[6] 특히 오노의 헬멧 번호가 369였던 점이 알려지면서 괜한 369 게임이 오노 게임으로 전락했다.[7]

다만 가장 큰 문제는 오심을 한 심판에 있음에도 심판은 별로 까이지 않고 선수만 신나게 까였다. 사실 중요한 건 오심이었는데 오노가 심판에게 어필한 것 자체를 반칙이라고 할 수는 없고, 심판은 어필과 관계없이 공정한 판정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홈그라운드를 의식한 고의성이 의심되는) 오심을 했으므로 심판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 이런 면에서 좀 사건이 이상하게 전개된 감이 있다.[8]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는 노빈손 시리즈에서도 이 장면을 써먹었다. 여기선 야비해보이는 턱수염을 기른 일본 선수 '이노무시키'가 한국 선수에게 할리우드 액션을 취해서 메달을 훔친다. 수염 드립부터 딱 오노다.

그 외에 홍스구락부의 플래시 작품들 중 MBC 뉴스데스크를 패러디한 MBG 뉴스에도 첫번째 장면에서 오노가 교통사고로 전치 780주[9]가 나왔다고 오노를 신랄히 까는 부분이 나왔다. 홍스구락부 말고도 엽기하우스 등 수많은 엽기 사이트에서 이를 풍자하는 합성물들도 많이 나왔다.[10]

이 사건에 격분한 김구라황봉알은 없는 살림에 비행기 표까지 끊어서 오노의 아버지가 하고 있다는 이발소까지 찾아가 이발소의 한쪽 벽을 장식했던 오노의 사진에 "금메달 내놔, X새끼야"라고 적어놓는 영상을 인터넷 방송에 뿌려 화제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김동성의 말에 따르면 이 영상은 조작이었다고 한다.

오노 아버지는 오노와 항상 동행해서 김동성도 잘 알고 있었는데, 영상에 나온 건 오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애초에 오노는 일본인 혼혈인데 그 동영상에 나온 아버지란 사람은 백인이라는 점에서 빼도박도 못한다. 아무래도 인터넷 방송국 측의 조작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황봉알은 결국 오노와의 만남이 불발이 되자 "다음엔 장애인 올림픽에서 보자, X새끼야"라는 발언을 남기고 돌아온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미국전에서 안정환이 골을 넣은 뒤 펼친 오노 세리머니도 유명하다. 이천수가 오노 역을 맡아 할리우드 액션을 시전했다.[11] 심지어 월드컵과 엮인 플래시 게임으로도 출시되었다.

이렇게 분노의 중심에 있었던 오노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분노가 가라앉았고 오노가 한국도 방문해서 철천지 원수와도 같을 것 같던 한국 국가대표와도 합동 훈련을 했다. 합동훈련 과정에서 같이 연습한 한국 선수들이나 홈스테이를 했던 배우 조재현의 입을 빌어 경기 외적인 모습들도 소개가 되면서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 기믹도 살짝 추가되는 등[12] 2002년만큼 무조건 까이지는 않는 듯하다. 다만 일부 언론들의 공공의 적+반칙왕 드립은 여전한 듯. 염소 수염 또한 여전 사실 경기에서의 할리우드 액션+비매너와는 별개로 경기장 밖에서의 매너는 상당히 좋은 편으로 알려져있다.

그 뒤 준결승에서 마땅히 실격됐어야 할 5000m 계주에서는 결승에서 미국 동료가 중국 선수와 넘어지는 치명타로 인해 4위를 기록했다.[13] 당시 미국은 9·11 테러로 당한 피해를 올림픽을 통한 애국심으로 회복하려고 했는데 그 작전 중 하나가 미국 선수 영웅 만들기고 그 중 하나가 오노다. 미국 언론에서는 대회 전부터 오노에 관련된 기사를 연일 보도했고 심지어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었다. 엄마의 가출로 아버지 밑에서 홀로 운동하여 미국에서 비인기 종목 쇼트트랙 그것도 불모지에 가까운 남자 쇼트트랙에서 여러 개의 금메달을 따는 영웅은 미국에 입맛을 당기게 했다.

그러나 12년 후 오노와 비슷한 점을 가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김연아의 금메달을 강탈하고, 8년 뒤, 오노보다 더 비열하고 더럽고 추악한 수법으로 금메달을 강탈한 선수가 중국에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황대헌과 헝가리의 리우 샤오린 샨도르가 피해를 보았다.

8. 2002-03 시즌

1차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리게 되자 솔트레이크 1500m 사건을 의식해 1차 월드컵에는 불참한다. 김동성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한국의 차세대 에이스인 안현수가 서서히 포텐을 터트리던 시절이었지만 맞대결에서는 오노와 리자쥔이 우위를 보였고, 월드컵 시리즈는 최종적으로 오노가 우승하게 된다.[14] 그러나 세계선수권에서 안현수가 맹활약하며 종합우승을 하고 오노는 종합 4위를 기록했다.

9. 2003-04 시즌

지난 시즌과는 다르게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안현수와의 맞대결에서 패배하는 일이 잦아지며 실력의 격차가 서서히 벌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세계선수권에서도 계속해서 부진하며 최종 9위로 슈퍼 파이널도 참가할 수 없었다.

10. 2004-05 시즌

10.1. 월드컵 시리즈

03-04 시즌 극심한 부진을 겪은 오노는 04-05 시즌에는 작심했는지 월드컵에서 안현수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첫 월드컵에서 각각 금메달을 2개씩 가져가며 막상막하인듯 했으나, 2차 월드컵에서 안현수가 계주를 포함한 모든 종목에서 오노를 2위로 눌러버리고 우승해 안현수에게 완패한다. 하지만 한국이 3,4차 월드컵에 불참으로 인해 포인트에서 오노가 우세했고 5,6차 월드컵에서 기정사실화였던 두번째 월드컵 종합 우승을 확정지었다.

10.2. 2005 세계선수권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며 상승세를 이어가나 했으나 1500m 준결승, 500m 준결승에서 연달아 실격당하며 세계 선수권 우승 경쟁을 불리하게 시작한다. 하지만 1000m 결승에선 드디어 안현수와 맞붙어 먼저 1위로 결승선을 들어와 승리하며 3000m 슈퍼 파이널에 진출한다. 여기서도 안현수를 꺾고 1위로 들어왔으나, 안현수가 이미 포인트를 많이 확보해 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세계선수권 종합 3연패를 달성했고, 오노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11. 2005-06 시즌

11.1. 월드컵 시리즈

월드컵 2차 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며 1500m에서 이호석을 밀쳤다가 실격당했다. 그래도 1000m, 3000m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최종 종합 3위를 하면서 아직까지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11.2.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 전성기에 있던 그는 미국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올림픽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미국 언론에서는 오노가 최소 2개의 금메달을 따낼 거라고 설레발을 쳤으며 그 중에 하나는 당연히 주종목 중 하나인 1500m가 될 거라 했다.

정작 준결승에서 중국 선수를 추월하려다가 삐끗하는 바람에 조 4위로 들어와 파이널 B에 출전하는 굴욕을 겪었다. 본인도 속상했는지 일부러 락커룸에서 시간을 끌다가 늦게 경기장에 들어왔고, 기자들이 붙잡는데도 펜스를 넘어서 링크 안으로 들어가 이탈리아 홈 팬들을 비롯해 경기장에 있는 많은 관중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그 뒤 6명 중 3번째로 들어오면서 8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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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m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결승에 진출했고 미국 언론에서는 '한국의 안현수가 챔피언 오노에 도전하지만 금메달은 오노가 딸 듯 싶다'며 설레발을 쳤다.

하나 이 경기는 사실상 진짜 세계 선수권 우승자 안현수[15]와 신흥 에이스 이호석[16]의 대결이었고 결국 저 둘에게 차례로 추월당해 동메달을 땄다.

2010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서야 오노가 NBC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얘기지만 이 경기에서 안현수와 이호석에게 패배한 후유증으로 3일동안 잠을 설쳤다고 한다. 경기를 수천번 돌려봤는데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한 건 덤. 그를 인터뷰를 했던 NBC 쇼트트랙 해설가도 오노의 자존심 강한 성격을 알기에 이런 말을 한 것이 놀라웠다고 코멘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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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는 오노의 모습
결승에서 자리 배정을 기막히게 잘 받아서 스타트부터 골라인까지 선두를 유지해 금메달을 땄다. 참고로 토리노 올림픽까지 자리 배정은 "랜덤"이었다. 준결승에서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가 1위로 결승 진출했고 같은 조에 있던 그는 2위를 기록했다. 괜히 논란이 나오는 게 아니다. 만약 준결승 랩타임을 기준으로 했다면 트랑블레와 안현수가 각각 1, 2레인을 받았어야 했다. 그리고 이 둘은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받았다.

논란이 된 건 부정 출발을 했다는 것이다. 출발 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상체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으나 심판진은 그냥 넘어갔으며 500m에 항상 강세를 보이던 캐나다가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 캐나다두 선수 역시 부정 출발을 하긴 했지만 본인은 3번이나 부정 출발을 했다. 그럼에도 본인은 절대 부정 출발을 안 했다고 반발했다.[17] 하지만 경기 영상을 보면 누가 봐도 부정 출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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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기인 5000m 계주에서 미국은 1, 2위를 다투던 한국과 캐나다와는 거리가 한 바퀴나 벌어지면서 홈 버프를 받은 이탈리아 계주팀과 3위를 다투었고, 마지막 2번 주자로 출발해 마지막 2바퀴에서 분전한 끝에 동메달을 땄다. 세계 선수권 대회는 자국인 미국에서 열린 대회였으나 불참했다.

12. 2006-07 시즌

이 시즌도 휴식 및 각종 행사와 스폰서 활동을 이유로 일찍부터 아예 불참하며 1년 가까이 국제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은퇴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사실은 월드컵만 불참했을 뿐, 훈련은 계속했다. 2006년 10월에는 모지수가 운영하는 쇼트트랙 클럽에서 한국 쇼트트랙의 노하우를 익히기 위해 2주 간 훈련을 하러 방한했다. 이때 이호석과도 같이 훈련했다.

이후 세계선수권을 준비로 몸을 끌어올리기 위해 2007년 2월 말에 열린 국내대회에 참가했으며 모든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그의 8번째 국내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12.1. 2007 세계선수권

연초에 있던 선발전을 치러 약 1년 만에 다시 미국 대표팀으로 복귀했다. 2007 세계선수권에서는 좋은 폼을 보이며 1500m 결승에 진출했고, 가장 큰 경쟁자였던 안현수가 경기 도중 미끄러지는 행운이 잇따랐다. 이후 막판에 송경택에게 추월당하지만, 송경택이 실격당하며 오노 커리어 최초로 세계 선수권 1500m 금메달을 따게 된다. 하지만 스타트를 좋게 끊은 것과는 별개로 500m 준결승에서는 실격당해 500m 종목에서 포인트를 하나도 따지 못했고, 1000m에서는 안현수와 샤를 아믈랭에 이어 3위를 기록해 슈퍼 파이널에서 극적인 반전을 노려야만 했고, 결국 안현수가 셋 중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또다시 안현수가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여담으로 이 3000m 슈퍼파이널 경기가 오노가 안현수를 상대한 마지막 경기였다.

13. 2007-08 시즌

13.1. 월드컵 시리즈

이전 시즌처럼 아예 스킵까지는 아니지만 6번의 월드컵에서 5차와 6차 월드컵에만 출전했을 정도로 월드컵 랭킹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 행보를 보인다. 5차에서는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으나, 6차에서 1000m 결승에서 이호석이 넘어지는 행운과 함께 금메달을 가져갔고, 1500m에서도 한국 선수 두명에 이어 3위로 골인해 동메달을 딴다. 별 의미 없을테지만 종합 랭킹은 21위를 기록했다.

13.2. 2008 세계선수권

2008년 1월 안현수가 5차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당하며 세계선수권 불참이 확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안현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호석과 오노 중 누가 세계선수권을 우승하게 될 것이냐에 모든 관심이 쏠리게 된다. 당시에는 이호석이 월드컵에서 워낙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었고 실질적인 실력으로도 이호석이 우위라 평가받았기 때문은 물론 이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라 이호석이 승리할 거란 예상이 대다수였다.

1500m 결승에서는 이호석, 송경택, 이승훈을 상대로 꽤나 선전하면서 마지막 코너를 돌때 선두로 달리던 이승훈을 인코스로 추월해 1위로 나서지만 코너를 돌때 이승훈과의 접촉이 오노의 과실로 인정되면서 실격을 당하고 만다. 사실 오노가 인코스를 선점해 명백히 선두로 달리고 있었는데 오히려 오노가 억울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으며[18], 만약 접촉이 없었다면 우승을 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500m에서는 준준결승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이호석이 실격당했고, 오노는 준결승에 진출해 단거리 종목 최강자 중 한명인 샤를 아믈랭을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계속해서 좋은 폼을 이어나간다. 이후 결승에서도 3번 레인이었음에도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으며 앞서나갔고 아믈랭이 무섭게 추격했지만 아믈랭은 원래부터 추월 기술이 약한 선수에다가 오노가 워낙 노련하게 아믈랭의 유일한 추월경로인 인코스를 잘 차단해버리며 막았고 결국 순위를 유지하며 500m에서 우승하며 다시 한번 우승 경쟁에 불을 지폈다.

이후 1000m에서 또 한번 결승 진출에 성공했고 여기서는 다시 한번 이호석, 송경택, 샤를 아믈랭과 맞붙는다. 경기 후반까지 4위로 달렸으나 한바퀴 반 남은 상황에서 송경택과 아믈랭을 한꺼번에 멋진 인코스로 추월해 버리며 2위로 올라섰고, 마지막 이호석을 상대로 날내밀기 경합을 하지만 2위를 기록했다.

결국 우승 후보는 중간 선두인 송경택과 이호석, 오노 이 셋으로 좁혀지며 슈퍼 파이널에서 우승자가 판가름나게 된다. 간단하게 순위 상관없이 셋 중 먼저 들어오기만 하면 우승자가 결정나는 상황이었다. 경기 후반 이승훈과 접촉으로 송경택이 넘어졌으며, 이호석과 오노가 슬슬 선두로 치고 나온다. 이후 3바퀴 남은 상황에서 오노가 이호석을 인코스로 추월했고, 이후 두바퀴 남은 상황에서는 이호석이 아웃코스로 오노를 추월하려 하나 오노가 이를 파악하고 크게 돌며 이호석의 추월을 견제했고[19], 이호석이 계속해서 아웃코스로 타려했으나 하필이면 뒤쳐져있던 중국 선수가 앞에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오노가 결국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면서 시니어 데뷔 11시즌만에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대회 종합 우승을 달성한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난 후 이호석이 아웃코스 추월때 오노가 본인의 얼굴을 팔로 쳤다고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14. 2008-09 시즌

14.1. 월드컵 시리즈

이전 두 시즌보다는 더 많은 경기를 참여하지만, 월드컵에는 미련이 없어서인지 4차 월드컵까지만 참가하고 5, 6차는 스킵한다. 최종 랭킹은 8위를 기록했다.

14.2. 2009 세계선수권

1500m 결승에서 J.R. 셀스키와 1, 2위로 달리지만 이호석에게 아웃코스 추월을, 곽윤기에게는 인코스로 추월을 당하며 반바퀴 남기고 순식간에 4위로 내려앉았고, 이호석과 곽윤기가 신들린 움직임을 보이며 셀스키까지 추월하며 저 둘이 1,2위를 기록한다. 500m에서는 성시백과 접촉하게 되어, 성시백은 실격, 본인은 3위를 기록한다. 이후 1000m에는 셀스키와 다시 한번 결승에 진출하고 이번에도 대회에서 최고의 폼을 보이고 있는 이호석과 곽윤기와 맞붙게 된다. 3바퀴 남긴 상황까지 선두를 유지하며 뒤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이호석을 견제하지만, 이호석이 아웃으로 치는 척하는 페이크에 걸려 아웃만 보다 그에게 인코스 추월을 허용하고 만다. 이후 그대로 순위가 유지되어 오노는 2위를 기록하고 이호석이 1000m를 우승한다. 이호석이 두 종목이나 우승하게 되면서 사실상 이호석의 우승이 확정되는 분위기였고, 3000m 슈퍼 파이널에서도 별 이변없이 이호석이 2위로 골인하며 종합우승을 확정했고 오노는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다.

15. 2009-10 시즌

미국의 국가대표팀은 J.R. 셀스키사이먼 조가 합류되는 등 어느정도 물갈이가 됐을 때도 살아남았다. 사실 오노만한 실력을 가진 선수가 미국에 없었다. 그는 새 대표팀 멤버에 대해 상당히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번 역대 최강의 미국 대표팀이라며 좋아했다. 당시 오노의 나이 만 27세였지만 당시에는 쇼트트랙 선수가 25살이 넘으면 슬슬 은퇴를 고려하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올림픽이 걸린 시즌인만큼 오노의 마지막 시즌이 될거란 예상이 많았다. 공식 인터뷰는 없었지만 팀동료들을 통해 이 올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될것이며, 올림픽 이후 은퇴한다고 알려졌다.

15.1. 월드컵 시리즈

올림픽 진출권이 걸려서 그런지 지난 시즌과는 다르게 열심히 참여했다. 1, 2차에서는 좋은 성적은 못냈지만, 3,4차에서 폼을 끌어올려 1000m에서 금메달 한개, 1500m와 500m에서 각각 은메달을 하나씩 따내었고, 당시 세계 최강으로 여겨졌던 이호석성시백은 컨디션 난조로 모든 월드컵 경기를 제대로 치르지는 못한덕에 오노가 종합랭킹 3위를 기록했다.

15.2.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첫 경기인 1500m에서 동료인 J.R.셀스키와 함께 결승에 올랐으며 같이 겨룬 한국인 선수들은 바로 토리노 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2009 세계선수권 우승자 이호석,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성시백이정수였다. 경기 내내 몸싸움을 걸면서 거칠게 레이스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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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이호석이 무리하게 성시백을 제치려다 같이 넘어지는 바람에 본인은 어부지리로 은메달을, 동료 셀스키가 동메달을 따면서 미국이 1994년에 여자 500m에서 2명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뒤 같은 종목에서 2명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덕분에 원래대로였으면 비매너적인 스케이팅을 한 본인이 까였을 게 분명했으나 오히려 파벌 문제로 원래부터 이미지가 안 좋았던 이호석에게 한국의 관심이 쏠리면서 오히려 묻혔다.

경기 이후 그는 웃으면서 무례한 손동작을 취한 다음, 동료와 함께 기쁨을 누렸다. 금메달을 차지한 이정수는 2위가 된 오노와 경기하던 중에 심하게 몸싸움을 했는지 나중에 오노를 향해 "시상대에 올라와서는 안 될 선수다"고까지 비난했다. 경기가 끝나고 스포츠맨 정신에 굉장히 어긋나는 행동이어서 경기 직후에 전재수 감독한테 굉장히 따끔하게 혼나고 말았다. 그때당시에는 손동작에 대해서 잘못을 시인하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으며 그 일 이후로 연습에만 집중했다.

오노는 역시 그답게 언플을 시전했는데 "성시백이 나에게 몸싸움을 걸었던 건 실격감이었다. 이 몸싸움만 아니었어도 내가 속도를 잃어 한국에게 1, 2, 3등을 내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발언하거나 "한국 선수들이 너무 거칠게 스케이팅을 해서 접촉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고 경기 막판에 2002 솔트레이크시티 때처럼 실격이 일어나길 바랐다."고 하며 전혀 반성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메달 시상식에서 나는 이정수에게 축하를 건냈지만 이정수는 나에게는 축하해주지 않았다."고 이정수의 매너에 대해 비꼬기도 했다.

1000m에선 1500m에서의 일로 정신적 타격을 입은 성시백을 샤를 아믈랭과 함께 추월하면서 1위로 골인해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에선 이정수, 이호석 그리고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과 프랑수아 아믈랭[20]과 맞붙게 되었는데, 한국 선수들에겐 고맙게도 아믈랭 형제들과 접전을 벌여준 덕에 이호석과 이정수가 아웃사이드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파일:external/54adf55d885793c80192b228098ce2b4a130cb13d9b8bcbda450dfc99957ce7d.jpg
레이스 막판에 분전하면서 경기 내내 선두 지키느라 체력 다 빠진 아믈랭 형제를 차례대로 추월한 끝에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보니 블레어의 기록을 갱신하고 미국 동계올림픽 개인통산 최다 메달리스트 기록을 세워 미국에선 명실공히 영웅으로 추대받게 되었다.

파일:external/51ddb08d235629ae72885dd492ef2f83284070cda18c767946e412fb85c606cf.jpg
마지막 개인전인 500m를 치를 때 같이 참여했던 선수들이 넘어졌는데 예선에서는 프랑스, 독일 선수가 넘어졌고, 준결승에서는 이호석이 넘어졌다. 결승전에서는 다시 한번 더티 플레이를 작렬해서 캐나다 선수인 트랑블레를 밀어버린 다음 샤를 아믈랭에 이어서 2번째로 골인했을 때 제임스 휴이시 대신 나온 심판이[21] 반칙 사유를 정확히 캐치해내서 결국 실격당했다. 그 바람에 결승선에서 다 왔다가 넘어져서 겨우 3등으로 들어온 성시백이 은메달, 트랑블리가 동메달을 땄다.

파일:external/2.bp.blogspot.com/Vancouver+Olympics+26Feb10+CHINA+Han+Jialiang+SOUTH+KOREA+Kwak+Yoon-gy+silver+US+Apolo+Ohno+bronze+5000m+short+track+speed+skate-by+Reuters.jpg
본인의 은퇴 경기이자 올림픽 마지막 경기인 5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를 맡았을 때 한국 팀의 실수를 틈타 캐나다에 이어 중국과 함께 2, 3위로 자리를 잡아 은메달을 딸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막 코너에서 4위로 들어오던 곽윤기에게 눈 깜짝할 새에 추월당했는데 마지막에 곽윤기를 붙잡고 끌 때 곽윤기의 스케이트 앞날이 2위로 달리던 중국의 마지막 주자 한지아량의 뒷날에 걸리는 바람에 한지아량은 결승선 코앞에서 삐끗하면서 4위가 되었다. 어찌보자면 오노 때문에 중국 팀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지만, 사실 중국 팀도 여자 계주에서 심판 수혜로 금메달을 땄다.

어쨌거나 동메달을 따면서 총 8개의 올림픽 메달로 쇼트트랙 종목 역대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등극했으며[22] 이렇게 본인의 마지막 경기가 막을 내렸다. 동계올림픽 후 미국의 방송에서는 'Welcome Back, Our Hero'하면서 아폴로 오노의 귀국을 환영하고 칭송하는 광고들을 내보냈다.

16. 은퇴 이후

공식적으로 은퇴를 하지는 않았으나 스케이트화를 벗으면서 다시 빙판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2011년 NBC와의 인터뷰에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은 없을 것이라며 단지 공식 은퇴 선언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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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가 은퇴 후 자서전[23]을 썼는데 자신의 소설 책 홍보를 위해 기자들과 함께 당시 미국에서 코치일을 하고 있던 김동성을 찾아가 같이 사진을 찍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미국 NBC 해설위원으로 나왔는데, 마침 악연이자 라이벌이었던 김동성도 KBS 해설위원으로 나왔다. 결국 은퇴 후에도 라이벌 구도가 재현되었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고, 지금은 서로 인사하고 다니고 기념사진도 찍고 한국에 대한 립서비스도 이것저것 해주고 오노가 NBC 센터에만 있는 스타벅스에서 김동성에게 커피를 사다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에서 일어난 중국의 실격에 대해, 중국 측은 왜 실격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는 심판의 판정이 옳았다고 해설했다는 게 알려져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김동성은 대인배고, 오노는 철이 좀 든 것으로 보여졌다. 해설자로 데뷔하면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대한 평을 했는데, 남자 대표팀에 대해서는 "김동성이나 안현수가 뛰던 시절의 강력함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고, 이어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24] 부상으로 인해서 내보낼 수 없음으로 인해 힘든 올림픽이 될 것"이라 평했고, 여자 대표팀은 최강으로 인정했으나 심석희의 3관왕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수 1명이 올림픽 메달을 휩쓰는 건 어렵다"며 낮게 봤다. 근데 토리노 이후부터 매 올림픽마다 3관왕(안현수, 진선유, 왕멍)이 꾸준히 나왔다. 그리고 이 올림픽에선 빅토르 안이 3관왕을 해버렸다 빅토르 안에 대해서는 기술, 경험, 능력이 모두 전성기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평했다. 날카로운 분석으로 결국은 그가 한말이 모두 실현되었다.

2018년 한국의 한 가상 화폐 거래소 운영업체에서 임원으로 재직 중인 사실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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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자쥔이 68점으로 종합 우승을 했으며 5점 차이가 난 마크 가뇽하고 동점이었는데 슈퍼 파이널에서 1등으로 들어와 종합 순위 2위가 되었다.[2] 이로 인해 1000m 진출권을 따냈다.[3] 그 이전 올림픽 메달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남자 계주 은메달이 전부였다.[4] 심판 덕분에 이후 쇼트트랙에는 비디오 판정이 도입되었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못한 듯하다. 그 심판이 이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비디오 판정을 이용해 한국 선수를 실격시켰으니 말 다했다.[5] 미국기계체조 선수 폴 햄, 스위스축구 선수 알렉산더 프라이, 독일펜싱 선수 브리타 하이데만, 영국쇼트트랙 선수 엘리스 크리스티가 한국인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지만 오노만큼은 아니었다. 오노 이후 오노와 비견될 정도로 전국민적으로 까인 경우는 러시아피겨 스케이팅 선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대한민국축구 선수 장현수, 야구 선수 오지환, 롤러스케이트 선수 정철원, 쇼트트랙 선수 황대헌, 중국의 쇼트트랙 선수 런쯔웨이 정도가 고작이다. 심지어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개막을 불과 3주 앞두고 손흥민에게 안와골절 부상을 입힌 콩고민주공화국의 축구선수 샹셀 음벰바도 오노만큼 까이지 않았을 정도이다.[6] 당시에도 초등학생들의 별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름을 토대로 별명을 짓는 경우가 많은 초등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원호, 온호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들에게 이 치욕스러운 별명을 선사했다.[7] 여담으로 오노 사태 10년 뒤인 2012년 1월에 김동성SBS 도전 1000곡에 출연해 "오노를 위해 번호를 고르겠다"며 곡 번호를 369로 선택한 다음 김현식의 '사랑사랑사랑'을 불렀다고 한다.[8]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 오노는 부딪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칙을 당한 척 행동을 취했다. 까일 요소는 많다.[9] 무려 15년이다. 아닌게 아니라 "금메달을 팔아서 병원비 내야겠군요"라는 대사처럼 만만치 않은 병원비에 선수 생활은 당연히 은퇴를 해야 되는 수준이다. 그 정도로 오노에 대한 분노가 엄청났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10] 여기에 올림픽 전에 터진 9.11 테러 사건 때문에 조지 W. 부시오사마 빈 라덴도 합성물에 많이 나온 것은 덤이다. 애초 대회 개막식부터 9.11 테러 당시 잔해에 발견된 성조기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이외에도 상술한 은메달리스트인 리자쥔도 종종 합성물에 끼는 경우가 있었다.[11] 그리고 12년 후 이근호도 했다.[12] 당사자도 한국인이 친절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립서비스를 하기도 했다.[13] 참고로 할리우드 액션에 묻혀서 그렇지 동료는 그보다 더 심한 짓을 했다. 중반에 한국 선수를 미는 바람에 그 선수는 이 경기에서 큰 부상을 입었다.[14] 그러나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 출전을 위해 안현수와 리자쥔이 마지막 두 월드컵을 불참했다.[15] 당시 2005 세계선수권 우승, 2005-06 시즌 월드컵 종합 우승, 세계 랭킹 1위.[16] 2005-06 시즌 월드컵 종합 준우승, 세계 랭킹 2위.[17] 그 당시 레이스 경기의 경우 부정 출발은 2번까지 허용되었으며 2010년부터는 한 번만 해도 바로 실격 처리된다.[18] 그러나 그가 한 짓이 있기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꼴좋다는 반응이 많았다.[19] 이때 오노가 얼굴을 오른팔로 가격했다는 것에 대해 고의였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20] 성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두 선수는 형제다.[21] 하루 전에 심판진이 교체되었으며 독일 출신이 심판을 보았다. 성시백이 넘어진 건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넘어진 것이다.[22] 이 기록은 2014년 안현수가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며 타이를 이뤘고, 2018년에는 아리안나 폰타나 금, 은, 동메달을 하나씩 따며 역시 타이를 기록.[23] 자서전을 2002 올림픽 이후에도 하나 쓴적이 있다.[24] 곽윤기, 노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