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축구인)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비슷한 이름의 축구 선수 소크라티스에 대한 내용은 소크라티스 파파스타토풀로스 문서, 비슷한 이름의 철학자에 대한 내용은 소크라테스 문서
참고하십시오.{{{#!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radial-gradient(circle, #002776 39.9%, transparent 40.1%), linear-gradient(45deg, #009C3B 20%, #ffdf00 20%, #ffdf00 80%, #ffdf00 80%, #009C3B 80%)"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colcolor=#fff><colbgcolor=#002776> 상징 | 국기 · 국장 · 국가 |
역사 | 역사 전반 · 브라질 식민지 · 브라질 독립 전쟁 · 브라질 제국 | |
정치 | 정치 전반 · 브라질 헌법 · 브라질 대통령 · 브라질 부통령 · 브라질 국가의회(브라질 연방상원 · 브라질 대의원) | |
선거 | 브라질 대통령 선거 · 브라질 국가의회 선거 | |
외교 | 외교 전반 · 브라질 여권 ·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 BRICS · G4 · G20 · TIAR | |
사회 | 파벨라 · ENEM | |
경제 | 경제 전반 · 브라질 헤알 | |
국방 | 브라질군 · 브라질 육군 · 브라질 해군 · 브라질 공군 | |
치안·사법 | 브라질 경찰 | |
교통 | LATAM 브라질 항공 · 골 항공 · 철도 환경 | |
문화 | 문화 전반 · 관광 · 요리 · 카샤사 · 리우 카니발 · 삼바 · 보사노바 · 브라질 축구 연맹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상파울루 그랑프리 · 브라질 영화 · 브라질 포르투갈어 | |
인물 | 펠레 · 아일톤 세나 · 룰라 다 실바 · 자이르 보우소나루 · 호나우지뉴 · 히바우두 · 호나우두 · 호마리우 · 네이마르 주니오르 · 지쿠 · 카카 · 소크라치스 · 카푸 · 베베투 · 호베르투 카를루스 · 둥가 | |
지리 | 아마존강 · 행정구역 | |
민족 | 브라질인(브라질 백인/파르도/브라질 흑인) · 포르투갈계 브라질인 · 브라질계 미국인 · 독일계 브라질인 · 이탈리아계 브라질인 · 스페인계 브라질인 · 프랑스계 브라질인 · 네덜란드계 브라질인 · 미국계 브라질인· 아르메니아계 브라질인 · 레바논계 브라질인 · 시리아계 브라질인 · 폴란드계 브라질인 · 리투아니아계 브라질인 · 우크라이나계 브라질인 · 그리스계 브라질인 · 한국계 브라질인 · 일본계 브라질인 · 중국계 브라질인 · 크로아티아계 브라질인 · 튀르키예계 브라질인 · 브라질 유대인 · 러시아계 브라질인 · 헝가리계 브라질인 |
황금의 사중주 | |||
지쿠 | 소크라치스 | 토니뉴 세레주 | 호베르투 파우캉 |
소크라치스의 역임 직책 | |||||
{{{#!folding ▼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
카르페지아니 (1978~1979) | ▶ | 소크라치스 (1979~1986) | ▶ | 에지뉴 (1986~1987) |
소크라치스의 수상 이력 | ||||
{{{#!folding ▼ | 둘러보기 틀 모음 | |||
개인 수상 | ||||
| ||||
베스트팀 | ||||
| 1982 · 1983 · 1984 |
선정 위대한 브라질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2012년 7월 11일 브라질의 민영 방송사 SBT가 BBC의 BBC 선정 위대한 영국인을 바탕으로 브라질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브라질인 100명’을 선정 | ||||
TOP 10 | |||||
<rowcolor=#ffdf00>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시쿠 샤비에르 | 아우베르투 산토스뒤몽 | 브라질의 이자베우 황태녀 | 제툴리우 바르가스 | 주셀리누 쿠비체크 | |
<rowcolor=#ffdf00>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아일톤 세나 |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 페르난두 카르도주 | 펠레 | 치라뎅치스 | |
11위~100위 | |||||
<rowcolor=#ffdf00>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 이르마 두우시 | 에지르 마세두 | 시쿠 아니지우 | 호나우두 | |
<rowcolor=#ffdf00>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데르시 곤사우베스 | 지우다 아른스 | 호베르투 카를루스 | 주제 알렝카르 | 네이마르 주니오르 | |
<rowcolor=#ffdf00>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에이키 바치스타 | 후이 바르보자 | 프레이 가우방 | 마누에우 자싱투 코엘류 | 오즈와우두 크루스 | |
<rowcolor=#ffdf00>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실라스 말라파이아 | 페드루 2세 | 치쿠 멘지스 | 루이스 곤자가 | 헤나투 후수 | |
<rowcolor=#ffdf00>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헤르베르트 지소자 | 파드리 시세루 | 지우마 호세프 | 탄크레두 네베스 | 루시아누 후키 | |
<rowcolor=#ffdf00>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바우데미르 산치아구 | 에우데르 카마라 | 헤나투 아라강 | 호드리구 파루 | 슈샤 | |
<rowcolor=#ffdf00>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마샤두 지 아시스 | 루앙 산타나 | 이베치 상갈루 | 엘리스 헤지나 | 마우아의 자작 | |
<rowcolor=#ffdf00>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하우 세이샤스 | 레오네우 브리조우라 | 치리리카 | 구구 리베라투 | 호제리우 세니 | |
<rowcolor=#ffdf00>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주제 지파이바 네투 | 카를루즈 드루몽 지안드라지 | 줌비 | 호미우두 히베이루 소아리스 | 파울루 프레이리 | |
<rowcolor=#ffdf00>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이비 카마르구 | 몬테이루 로바투 | 호베르투 마리뉴 | 마르쿠스 | 마르셀루 로시 | |
<rowcolor=#ffdf00>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지쿠 | 아마시우 마자로피 | 데데 | 울리시스 기마랑이스 | 헤이나우두 지아니키니 | |
<rowcolor=#ffdf00>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카를루스 샤가스 | 조나스 아비비 | 카시아스 공작 | 안토니우 에르미리우 지모라이스 | 칸지두 론돈 | |
<rowcolor=#ffdf00>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루아 블랑쿠 | 미셰우 텔로 | 가린샤 | 람피앙 | 클라우지아 레이치 | |
<rowcolor=#ffdf00> 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치스 | 마르쿠스 폰치스 | 페르난두 콜로르 | 주제 세하 | 소크라치스 | |
<rowcolor=#ffdf00> 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주제 루이스 다테나 | 호나우지뉴 | 조엘마 | 치쿠 부아르키 | 샤크리냐 | |
<rowcolor=#ffdf00> 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아마두 바치스타 | 윌리암 보나르 | 카주자 |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 앤더슨 실바 | |
<rowcolor=#ffdf00> 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호베르투 랑데우 지모라 | 호마리우 | 조르지 아마두 | 호나우지 골리아스 | 이타마르 프랑쿠 | |
<rowcolor=#ffdf00> 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호베르투 주스투스 | 아나 파울라 발라당 | 비탈 브라질 | 조 소아리스 | 마리아 다페냐 | |
출처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 |
이름 | 소크라치스 Sócrates |
본명 | 소크라치스 브라질레이루 삼파이우 지 소자 비에이라 지올리베이라 Sócrates Brasileiro Sampaio de Souza Vieira de Oliveira |
출생 | 1954년 2월 19일 |
브라질 파라 주 벨렝 | |
사망 | 2011년 12월 4일 (향년 57세) |
브라질 상파울루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키 193cm |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소아과 의사 |
소속팀 | 보타포구 FR (1974~1978) SC 코린치안스 (1978~1984) ACF 피오렌티나 (1984~1985) CR 플라멩구 (1986~1987) 산투스 FC (1988~1989) 보타포구 FR (1989) 가포스 타운 AFC (2004) |
국가대표 | 60경기 22골 (브라질 / 1979~1986) |
가족 | 동생 하이 |
[clearfix]
1. 개요
Give my goals to a better country.
더 좋아진 조국에 내 골을 바치리라.[2]
더 좋아진 조국에 내 골을 바치리라.[2]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이자 소아과 의사.
본명은 소크라치스 브라질레이루 삼파이우 지 소자 비에이라 지 올리베이라(Sócrates Brasileiro Sampaio de Souza Vieira de Oliveira)로 조금 길다. 소크라치스는 그의 아버지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따서 지어준 이름이다.[3] 클럽통산 396경기 207골. A매치 60경기 22골.
1980년대 축구계를 풍미한 슈퍼스타로,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특유의 곱슬머리와 헤어밴드, 턱수염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74년 보타포구 FC에서 데뷔한 이후 1978년까지 주전 멤버로 활약 100골이 넘는 득점을 기록하고 1976년에는 주립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이 활약으로 소크라치스는 SC 코린치안스로 이적하는데 1978년 주립 리그에서만 20골을 넣으며 그 다음 시즌에는 주립 리그 우승까지 차지한다. 그후 1982년-1983년 주립 리그 2연패를 달성, 1983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브라질 최고의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린다. 코리치안스에서 297경기에서 172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발휘하여 코리치안스의 전성기를 이끌며 팀의 레전드가 되었다.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세리에 A ACF 피오렌티나에서 뛴 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 국가대표팀 동료였던 지쿠도 우디네세 칼초에서 뛴 바 있다. 이후 CR 플라멩구와 산투스 FC를 거쳐 1989년 보타포구에서 선수생활을 정리했으나, 2004년 50세의 나이에 잉글랜드 아마추어 지역 리그의 가포스 타운과 1달간 계약을 맺어 타드캐스터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후반 35분 교체 출전했다.2.2. 국가대표 경력
소크라치스는 1979년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여 숙명의 라이벌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2:2 무승부를 이끌었고 파라과이전에도 페널티 킥으로 득점했으나 브라질은 3위에 머물렀다. 그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쿠-소크라치스-호베르투 파우캉-토니뉴 세레주로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의 사중주로 24경기 무패행진을 달리며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의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히게 된다.[4]1983년 코파 아메리카에 역시 참가했으나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게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도 출전했는데 D조에서 스페인을 1:0, 알제리를 1:0, 북아일랜드를 3:0으로 꺾으며 3전 전승으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폴란드와의 16강전에서는 전반 30분에 소크라치스 본인이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결국 브라질은 폴란드를 후반전에만 3골을 퍼부으며 4:0으로 대파하고 8강에 진출한다.
3. 플레이 스타일
기라성 같은 축구 스타들을 보유했던 브라질 축구사에서도 일반적으로 대개 열 손가락안에 꼽을 특출난 능력을 가졌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소크라치스의 최고의 장기는 경기 흐름을 읽는 축구 지능 그리고 플레이상 큰 이점을 가져다줬던 신체 조건이었다. 키에서 나오는 탁월한 시야와 천재적인 패스 능력을 토대로 경기장 곳곳에 위협적인 패스를 뿌려주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작고 기술적인 선수가 많았던 브라질에서 흔치 않게 193cm에 달하는 초장신을 가져 큰 키에서 나오는 이점과 본인의 능력을 훌륭히 조합할 수 있었다. 193cm의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볼 컨트롤 능력이 매우 출중했는데, 기본적인 탈압박은 물론이거니와 1~2명을 재칠 수 있는 드리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했고 몸싸움 능력까지 갖추었으며 보타포구에서 249경기 101골을 득점할 정도로의 득점 능력 및 노룩 힐패스[8] 등 브라질리언 특유의 엄청난 테크닉까지 보유하고 있었으니 가히 플레이메이커의 정석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
브라질은 이러한 소크라치스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그 파괴력을 극대화시킬수 있었다. 소크라치스가 주장을 맡은 1982년 월드컵에서의 브라질은 지쿠,파우캉 등 엄청난 공격수들을 보유한, 오늘날로 치면 2006 대표팀의 소위 '판타스틱 4'정도의 공격진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탈리아에 3-2로 패하여 우승에 실패했음에도 소크라치스의 진두지휘 아래 90분 내내 휘몰아쳤던 브라질의 공격축구에 세간의 극찬이 쏟아졌다. 국대 우승컵과는 여러모로 접점이 없는 선수였지만 국내 리그에서는 가는 팀마다 본인을 필두로 한 스쿼드가 우승컵을 쓸어담을 정도로 독보적인 능력을 보여줬다.
4. 사망
말년의 소크라치스 |
소크라치스의 사망 이후인 12월 30일에는 상파울루의 모룸비 스타디움에서 소크라치스의 사망을 추모하는 자선 경기가 열렸으며, '지쿠의 친구들' 팀이 '브라질의 스타들' 팀에 7:5 승리를 거두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SC 코린치안스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1979, 1982, 1983
- CR 플라멩구
- 타사 리우: 1986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1986
5.2. 개인 수상
-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1983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득점왕: 1976
- 볼라 지 프라타: 1980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82, 1983, 1984
- FIFA XI: 1982
- FIFA 100: 2004
-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 FAI 인터내셔널 퍼스널리티[9]: 2007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AM 11위)
6. 기타
- 소크라테스가 코린티안스에서 뛸 당시에 브라질은 군부 독재 시기였는데, 소크라테스는 팀의 운영 방식에 민주주의 시스템을 도입한 뒤 경기때마다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유니폼을 입고 나와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이후 코린티안스가 성공을 거두자 브라질 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결국 군부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들어서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고.
- 축구선수 중에서는 드물게 애주가에 골초였는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에는 하프타임 때마다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10] 선수 시절 당시에는 하루 평균 말보로 담배 3갑을 피웠다고 하며 축구 은퇴 후 의사로 복귀하고 나서도 금연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쯤이면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
- PES 2018에서 브라질리언 레전드로 출시되었는데 볼배급, 피지컬, 슛팅에서 좋지만 그 놈의 체력 때문에 반쪽짜리 선수 취급을 받고 있다.[11] 18-19시즌에는 pes대신[12] FIFA 19 icon으로 등장했는데 pes에서 안좋았던 스태미너가 80대로 나왔다.
- 선수 시절 아일랜드의 더블린 대학교에서 유학을 했다는 설이 세계의 많은 미디어 매체에 보도되어 정설로 받아들여졌었는데, 정작 더블린 대학교에서는 이를 부인했다.
- 동생인 하이 역시 축구선수다. 형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선수였으나 형보다는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교체멤버로나마 월드컵에 출장해 우승을 차지한 건 동생쪽이었으며, 형인 소크라치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상파울루 FC의 전성기를 이끌고, 유럽 무대에서도 성공한 상당한 클래스의 선수였다. 형과는 11살 터울로 나이 차이가 좀 있는데다 형이 국가대표를 은퇴한 이듬해인 1987년 국가대표로 데뷔했기에 형제가 동시대에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1980년대 미드필더들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 생전에 사회공헌을 굉장히 많이 해서 그가 죽은 후 소크라치스 트로피라는 상이 제정되었다. 사회공헌 이력이 뛰어난 축구선수에게 수여된다.
6.1. 엄친아
소크라치스는 밀루틴 이브코비치, 토스탕, 헤유스 판데르묄런 등과 더불어 극히 드문 축구선수 출신 의사이다. 상파울루 대학교의 히베이랑 프레투 의과대학(Faculdade de Medicina de Ribeirão Preto)에서 의학사 학위와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여기에는 자신이 인텔리 가문 출신인 것이 영향을 끼쳤다.덕분에 여러 분야에 걸쳐 상당한 양의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은퇴 후 정형외과 의사로서 진료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에 칼럼을 싣거나 축구 관련 소설을 쓰고 당시 브라질 군부독재에 반대하여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축구 해설가로도 활약하였으며, 전술에 의존하는 현대 축구를 비판, 축구를 예술의 하나로 보는 낭만주의자였다.
또한 본인의 이름처럼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 존 레논과 같은 당시의 혁명가들을 존경한다고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1] 공격형 미드필더[2] 후술되어 있듯 브라질 군사독재에 대항한 인물이라, 민주화 운동 관련해 한 말로 보인다.[3] 소크라치스의 아버지 역시 의사였으며 취미가 철학 공부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좋아했다. 소크라테스의 형제들도 모두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이름을 갖고 있다.[4] 현재도 역사상 가장 강한 축구 팀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다.[5] 그 당시까지만 해도 조 1, 2위까지만 다음 라운드 진출권이 주어졌다. 16강 제도가 생긴 대회는 1986 멕시코 월드컵이다.[6] 경기 종료 직전에 페널티킥이 나왔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킥의 달인 지쿠의 슛이 프랑스의 골키퍼 조엘 바에게 막혔다.[7] 프랑스에서는 플라티니만 실축하였다.[8] 특히 이 부분에서 굉장히 뛰어났다. 보통 힐 패스를 할 때는 뒤쪽의 시야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하거나 공격적인 패스를 하기 힘든 게 일반적인데, 소크라치스는 힐 패스로도 깔끔한 연계를 하거나 상대 수비수와의 1:1 구도를 만들어주는 위협적인 스루 패스를 구사할 수 있었다.[9] FAI 인터내셔널 풋볼 어워즈[10] 참고로 요한 크루이프도 골초였는데, 이 양반도 결국 폐암에 걸려 사망한다.[11] 아무래도 그가 골초였다는 것을 반영한 듯하다. 전반이 끝나면 체력이 거의 안 남는다.[12] pes에선 그의 동생 하이가 레전드로 출시됐다. 형을 닮아 큰 키와 피지컬, 더블터치라는 개인기와 2선침투 덕분에 레전드 2군 상위권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다.
분류
- 1954년 출생
- 2011년 사망
- 벨렝 출신 인물
- 브라질의 남자 축구 선수
- 브라질의 남자 축구 감독
- 미드필더
- 브라질의 의사
- 민주운동가
- 패혈증으로 죽은 인물
- 보타포구 FR/은퇴, 이적
- SC 코린치안스/은퇴, 이적
- ACF 피오렌티나/은퇴, 이적
- CR 플라멩구/은퇴, 이적
- 산투스 FC/은퇴, 이적
- 보타포구 FR/역대 감독
- LDU 키토/역대 감독
- 브라질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참가 선수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브라질의 코파 아메리카 참가 선수
- 1979 코파 아메리카 참가 선수
- 1983 코파 아메리카 참가 선수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974년 데뷔
- 1989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