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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22:26:34

서프라이즈(커뮤니티)




1. 개요2. 역사3. 시스템4. 주요 게시판
4.1. 기타 방(스포츠 방,국제/군사 방 등)
5. 시스템제 개편, 그리고 끝없는 분열6. 친노세력 분열의 진앙지7. 주요 인물

1. 개요

2002년 창설된 대한민국의 정치 관련 사이트이자 대표적인 친노 사이트였다. 토론 중심의 사이트로 리즈 시절에는 리버럴, 자유주의, 진보 성향의 소위 '논객'이라 불리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인터넷 정치실험의 중심지로 불렸던 적이 있다. 이당시 일일 페이지뷰가 50만건이라고 했다. 2004년 KBS, MBC의 일일 페이지뷰가 30-40만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이 사이트가 얼마나 방문객들로 붐볐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기점으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변질, 흑화되어 많은 합리적인 논객들이 떠났다. 정권교체기인 2007년 말기까지는 친노 중에서도 드루킹과 같은 음모론 신봉자, 또는 북한 만능설을 주장하는 종북주의자 등의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소수 커뮤니티로 전락하게 되었다.

2020년 현재는 거의 정전 상태.

여담으로 심심하면 악성코드를 퍼트린다.

2. 역사

2002년 국민일보 정치부장이던 서영석씨의 개인 홈피인 '노변정담'의 정치 토론방이 시초이고, 이 후 친 민주당 성향의 인터넷 신문인 대자보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강하게 옹호하며 정몽준으로의 후보 단일화를 반대했던 공희준, 변희재[2] 등이 탈퇴하고 정치 토론방에 합류했다. 이 후 '서프라이즈'로 이름을 바꾸고 오늘 날에 이르렀다.

초창기인 2002년~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각종 감성적 글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분석글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피투성이'가 연재하던 12편 짜리 "한국의 명문가" 시리즈와 '김동렬'이 연재하던 "구조론" 시리즈는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로서는 그 수준이 인터넷 상에서의 한나라당 지지자들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우수했었다. 2000년대 전후 한나라당 지지 사이트에서는 일단 논객이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고 악플러 수준의 글이 난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넷이 만든 대통령이라고 불리게 된 데 어김없이 언급되던 사이트였다. 한때 자매 사이트 데일리 서프라이즈와 정치 평론지 월간 온오프를 만들 정도로 잘 나갔다.

그러나 이 후 이념 분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내부에서 끊임없이 논쟁이 벌어졌으며, 그때마다 논객들이 자신의 지지자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분당 사태와 관련되어서 '장신기', 2005년 한미 FTA와 관련되어서 '피투성이', 2007년 열린우리당 해체와 관련되어 '잠실 늘푸름' 등 유명 논객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분당 국면에서 새천년민주당을 지지하던 구 민주당지지자들은 남프라이즈, 그외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 민노당등 다양한 성향의 논객들은 동프라이즈로 독립했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는 논객은 중프라이즈, 친노파지만, 서영석 중심의 운영에 반대하는측은 노하우 21로 독립했다. 특히 노무현 정권이 한창일때 서프라이즈와 남프라이즈는 서로 앙숙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헐뜯었다. 남프라이즈에서 주로 '쓰레기통'으로 격리되는 게시물은 원래부터 원수였던 수꼴이 쓴 게시물뿐만이 아니라 친노파들의 글도 다수 포함되어있었다. 그리고 남프라이즈는 민주당계 정당을 도무지 찍어주지 않는 경상도에 대한 지역비하를 주도했던 곳이기도하다.

이 와중에 서영석의 친 열린우리당 노선에 반발하던 변희재도 쫓겨났다. 이후 변희재는 브레이크 뉴스(친 새천년민주당 성향의 인터넷 언론사)로 이직하면서 극렬 노무현 안티가 되었고, 그 후 2007년경 빅뉴스[3]라는 인터넷 언론사를 만들어 완전히 우익으로 전향했다.

초창기 논객들이 대거 빠져나가고 쭉정이들만 남으면서 이제 서프라이즈는 차츰 명성을 잃기 시작했고, 거기에 시스템 개편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 논객들마저 대거 강퇴시키는 파국을 벌였다.

황우석 사태가 터지자, 서프라이즈는 황우석토론방(일명 황토방)까지 만들어서 황빠들의 본거지 역할을 하였으나 줄기세포가 없다는 진실이 드러나자 엄청난 패닉이 닥쳤고, 그래도 황우석을 믿는다고 외치던 골수황빠들은 '민초리'라는 사이트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서프라이즈는 황빠들의 본거지라는 오명을 뒤짚어 쓰면서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후 드루킹과 같은 음모론자들이나 종북주의자, 혹은 헛소리를 늘어놓는 인터넷 폐인들만 남으면서 몰락했다.

3. 시스템

2011년 2월까지만 해도 이용자가 게시글에 대해 찬성, 반대를 할 수 있으며 50개 이상의 반대를 받은 게시글은 '해우소' 게시판으로, 1000개 이상의 찬성을 받은 게시글은 사이트 대문글로 올라갔다.

주류 세력은 집단지성과 민주적 토론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옹호하고 있고, 결국 게시판 이용자의 성향을 한 쪽으로 몰아갈 뿐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결국 해우소가 문을 닫은 이후 극우, 친북성향 유저의 글이 필터링되지 못하고 아까비뷰(500~1000개 사이의 찬성을 받은 글)로 올라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시스템은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같다.

4. 주요 게시판

4.1. 기타 방(스포츠 방,국제/군사 방 등)

서프 서영석 초대 대표가 야심차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버려지다시피 한 방. 국제/군사방에 올라와도 무리가 없는 글조차 노짱 토론방에 올라오고 있고, 유학생들의 커뮤니티인 해외 서프앙 방을 빼고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그 결과 국제/군사 방은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출신의 종북세력이 장악했고, 스포츠 방은 건강식품 광고, 복권 광고, 화보로 도배되다시피한다. 김정일 사망소식에 슬퍼하는 글이 잔뜩 올라올 정도. 이미 제 2의 사이버민족사령부가 되어버렸다.참고 이쯤되면 왜 잡혀가지 않는 지 이상할 정도다

5. 시스템제 개편, 그리고 끝없는 분열

2011년 2월 16일 0시를 기해 서프라이즈 신상철 대표(이후 오마이뉴스에서 '붉은 멍게' 사태로 유명해짐)는 시스템 개편을 하면서 '민노충', '난닝구', '백바지'를 금지어로 선정하고, 해우소를 폐지함과 함께 게시글에 반대를 누르면 찬성으로 처리하게 만들었다.

이후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글과 종북 성향의 글이 대거 대문에 올라오는 참사가 일어났고,[4] 친 유시민 성향의 유저들이 시스템 재개편을 요구하자 신상철은 "서프라이즈의 존재 이유는 이명박 정권의 심판인데, 운영자가 실수 좀 했다고 분열을 조장하는 글을 올려서야 되겠느냐"면서 친유시민파 유저들을 대거 퇴출시켰다.

이 후 강퇴당한 회원들은 박봉팔닷컴, 서팡닷컴 등의 사이트를 만들어 이적했지만, 박봉팔닷컴의 주인장 박봉팔이 안철수를 비판하면서 강용석을 옹호하고, 독단적으로 회비를 인상하자 이에 반대한 회원들이 달맞이넷으로 옮기는 등 서프라이즈의 분열은 멈출 줄 모른다.

2013년 4월, 시스템 정비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사이트가 다운된 상태. 시스템 정비라지만 한시적 파업이 실제 이유고, 더 까놓고 말해 경영난 때문에 닫은 상태다. 같은 해 6월에는 다음 카페로 옮겼다. 이정도면 확실히 망한듯. 2013년 가을 다시 부활하였으나 다음 카페가 되기 전의 게시물은 죄다 날아갔고, 매일 올라오는 글의 수나 댓글을 보면 이미 떠날 사람은 다 떠나버린 듯 하다.

6. 친노세력 분열의 진앙지

서프라이즈는 참여정부 시절부터 소위 "진성 친노"를 가려낸다며, 특정 정치인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정책에 약간이라도 비판하거나, 한두 마디 쓴소리만 해도 모조리 "사쿠라"로 몰아서 난도질했다. 물론 그중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세력이나 실제로 참여정부의 뒤통수를 후려친 정치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참여정부의 큰 틀에는 동의하면서도 몇몇 분야에서 이견을 제시했을 뿐인데도 한나라당의 앞잡이, 사쿠라로 몰려서 매장당했다.[5]

서프라이즈에 상주하던 자칭 논객들은 정치브로커(또는 정치자영업자) 노릇을 하면서 끊임없이 개혁/진보 인사들의 한두가지 비판을 꼬투리 잡아서 마녀사냥을 일삼았다. 그리고 상당수 유저들은 선동에 놀아나서 마구 죽창을 휘둘렀고, 이런 행태에 반발한 이들도 역시 사쿠라로 몰려서 쫓겨났다. 명성에 취한 논객들은 계속 분열을 조장하면서 영향력을 과시했고, 숫자싸움에서 밀리면 추종자들을 데리고 독립해서 새살림을 차렸다. 위에 언급된 수많은 유사사이트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모두가 멸망했다. 남은 자나 떠난 자나.[6] 이들은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을 숭배하면서 날뛰던 홍위병과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다만 활동공간이 인터넷이었을뿐.[7]

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에 벌어진 이라크 파병 논란에서는 파병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을 운동권수구세력으로 몰아서 모두 쫓아내버렸다. 그리고 새천년민주당 분당사태의 시발점인 대북송금 특검 문제에서는 특검에 반대하면서 거부권 행사를 주장하는 호남세력을 극딜하여 반대파로 돌아서도록 했다. 당연히 이라크 파병 반대와 특검 반대에 동조하던 논객들도 모두 떠나갔다. 두 사건 모두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2003년의 일이다. 즉 취임 초기에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정과제를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 할 시기에 오히려 지지층을 분열시키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이렇게 떠나간 사람들은 감정적인 앙금까지 가지게 되었고, 결국 노무현 정부의 강력한 안티가 되어 정권에 심각한 부담이 되었다. 즉 충분히 자신들과 함께 한나라당과 싸울 수 있었던 사람들, 최소한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중립은 지켰을만한 사람들까지 모조리 적으로 돌리는 엄청난 자충수를 둔 것이다. 이들의 행태는 지지층 분열의 씨앗이 되었고,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집권 열린우리당이 공중분해되는 큰 원인이 되었다.

사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아무리 집권당 소속 혹은 우호적인 세력이라도 정부의 개별정책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찬반이 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우리 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몇몇 개별정책에 대한 찬반에 상관없이 지지층으로 묶어서 함께 가야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고 길게 보면 정권재창출까지 노릴 수 있는데, 서프라이즈의 난동으로 오히려 모두 떠나게 된 것이다. 현실정치는 결국 숫자이고, 이를 위해서 적은 최소로 줄이고 아군은 최대로 늘려야 하며, 아군이 못된다면 최소한 중립은 지키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들은 무차별적으로 죽창을 휘둘러서 아군은 뿔뿔히 흩어지게 했으며, 중립인사들도 전부 반노로 돌아서게 만들어서 결국 주위 모두를 적으로 돌렸다.[8] 이때문에 참여정부 말기가 되면 노무현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으며, 노무현을 증오하던 한나라당과 수구세력들은 만세를 불렀다.

참여정부의 개별 정책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여러 사건에 대한 찬반이 갈릴 때 다수파는 소수파를 "쓰레기"로 몰아 사이트에서 떠나가게 했다. 처음에는 서영석 청탁건[9]으로 분열하더니,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이 터지자 황우석을 비판하던 논객들을 "반노"라며 몰아내기도 했다.황우석 비판하면 반노가 되는 기적!? 이때 쫓겨난 대표적인 인물이 물뚝심송.[10]

그리고 이들의 선구안도 엉망진창인데, 당시 송영길, 정청래 등을 "노무현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다"면서 사쿠라로 매도하고 극딜했지만, 이들은 서프라이즈 사이트를 떠나긴 했어도 참여정부 이후에도 친노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꾸준히 민주당계열에서 활동하면서 결국 부활했다.[11]

반면에 이들이 높이 평가하던 김혁규, 김병준, 진대제 등은 모두 노무현을 버렸고, 일부는 아예 한나라당 계열로 넘어갔다. 김혁규는 2007년 대선후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면서 민주당계열, 친노와는 완전히 연을 끊었고, 진대제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지지했으며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힘 나경원 캠프에 합류했다.[12] 김병준은 정치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박근혜의 국무총리 지명을 받아들였다가 강제사퇴 당했고, 나중에는 아예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된다.

즉 서프라이즈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던 충신들은 사쿠라로 매도하고, 권력만 탐하던 간신배들은 추켜세운 것이다. 단지 노무현을 맹목적으로 떠받든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여담이지만 서프라이즈는 노무현 개인에 대한 팬덤형 지지였기 때문에 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방향을 바꾼 참여정부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면서(이에 비판적인 논객들은 추방되었다), 민노당을 매우 증오했고, 친재벌-친삼성적 성격이 두드러졌다.

참고로 당시 노무현 정권과 민주노동당은 애증의 관계였다. 민주노동당은 지지기반인 민주노총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을 대변해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친삼성 노선[13]과 한미FTA 추진 등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특히 재벌들의 구조조정과 맞물려서 정권의 노동탄압이 극심했고, 한-칠레FTA/한-미FTA에 농민회가 결사적으로 저항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립은 격화되었다. 즉 재벌정책, FTA, 비정규직 확대를 위한 노동법 개정 등 전반적으로 경제정책에선 열린우리당+한나라당 vs 민주노동당의 구도에 가까웠다.(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경제정책 차이가 없다고 이야기한 것은 이런 측면을 말한 것이다.) 반면에 참여정부가 정권 초기추진하던 사립학교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중반기에 부동산 폭등을 막기 위해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에선 참여정부를 전폭지원해서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vs 한나라당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즉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사안에 따라서 접근한 것인데 맹목적으로 노무현만을 신봉하던 강성노빠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민주노동당을 무조건 한나라당과 한통속이라고 공격하였다. 친노 중의 친노였던 정청래도 쓴소리 몇 마디 했다고 난도질 하던 사람들이었으니, 민주노동당보고도 열린우리당 2중대, 멀티가 되라고 요구하다가 안먹히니까 길길히 날뛴 것이다.[14]

10년 후 친노세력의 재집권이 현실화되자, 과거 서프라이즈에서 활동하던 권순욱 등은 자칭 "친문 팟캐스트"를 대거 런칭했는데, 문재인을 우상화하고, 별다른 컨텐츠도 없이 감정적인 증오만 배설하면서 마구잡이로 마녀사냥이나 하고 자기들끼리 물어 뜯으면서 싸워대는게 서프라이즈 시절과 하나도 달라지지가 않았다. 좌파를 자처하면서 진보정당을 조롱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나 양성평등 문제는 일언반구 없이 오히려 삼성과 재벌찬양만 하는 것도 서프라이즈 시절과 판박이다. 끝내 이들의 분탕질은 민주진보 지지자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몰락하고 있는 중이다. 개버릇 남 주겠냐.

조국 사태로 여권에 위기감이 엄습하고 2019년 11월 이들이 믿고 있었던 전해철이 방향을 돌려서 이재명 구명운동에 뛰어들면서 이들은 여권내에서 끈떨어진 신세가 되었고 2020년 4월 총선에서는 아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7. 주요 인물

필명은 괄호안에.

[1] 서영석이 만들었기 때문에 seo를 사용했다.[2] 지금 극우인사로 악명높은 그 인간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앞의 두 사람은 대표적인 진보 스피커 김용민반윤을 공통분모로 서로 손을 잡았다.[3] 이후 미디어워치로 변경.[4] 이는 국제방에 여전히 남아있다.[5] 이런 방식으로 인터넷 친노 세력에게 매도되면서 감정적인 앙금을 가지고 반노로 돌아선 정치인들이 무수히 많다. 대표적으로 천정배, 정동영, 이종걸 등등. 박영선 도 이런 세력들에게 매도되어서 거의 반노로 가다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의 설득 때문에 안철수에게 가려던 계획을 접고 돌아왔다. 이언주를 보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6] 당시 서영석이나 그밖의 여러 논객들은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나 오프로 데뷔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듯 하다. 다만 열린우리당이 2006년 지방선거 참패 이후 지지율이 망이었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듯. 드루킹의 행태가 바로 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려던 바라고 봐도 될 듯하다.[7] 당시 홍위병들도 보수파와 조반파 등 수많은 분파들로 쪼개져서 서로 자기가 마오의 충신이고, 상대는 간신이라면서 내전 수준으로 싸웠다.[8] 이들의 행태는 훗날 박근혜 정권에서 친박 세력들끼리 진박감별사 운운하면서, 자기들끼리 이전투구하다가 정권을 망가뜨린 것과 똑같다.뭔 x박들이 그렇게 많은지 박근혜 탄핵 이후 친박세력들이 끊임없이 순수성을 이야기하면서 계속 분열하는 모습도 참여정부 이후 친노세력들이 사분오열하는 모습과 유사하다.[9] 창립자였던 서영석의 부인이 참여정부의 문화부에 인사청탁을 넣어서 성균관대에 교수채용을 하도록 부탁했다는 설이다. 이건은 청탁받은 측의 폭로로 조기에 불발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되지 않았는데, 논객들과 유저들은 서영석이 나쁜놈이다/아니다를 두고 찬반이 갈리면서 결국 나쁜놈이라고 주장하던 논객들은 서프라이즈에서 따로 나갔다.[10] 근데 물뚝심송은 여기저기 떠돌다가 황빠들의 또다른 한축이었던 김어준딴지일보에 정착한다.[11] 송영길이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사꾸라로 매도했다. 정청래는 반노로 간주된 정동영계였기 때문.[12] 보수언론들은 진대제의 지지선언을 '친노도 지지하는 나경원'식으로 포장하였다.[13]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아젠다를 국정과제로 삼더니 참여정부 중반기가 되면 속칭 삼성장학생들이 정권의 핵심에 줄줄히 포진하면서 친삼성 기조가 뚜렷해진다.[14] 강성 친노들의 이런 행태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다. 2017년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보수는 유승민을 찍고, 나머지는 자기를 찍으라"고 한 것을 가지고도 길길히 날뛰는 반응들이 나왔다. 대선후보가 자기 찍으라는게 당연한건데 자기 후보 아니면 모두 악마라는 집단사고에 사로잡혀서 이걸 무슨 대역죄인 마냥 몰아붙이는걸 보면 이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전체주의, 정치극단주의 세력에 불과하다.[15] 친노세력의 그런 기대를 실현시켜준 사람이 바로 김어준이라고 할 수 있다.[16] 서영석이 돈을 벌겠다고 설립한 인터넷신문인 데일리서프는 돈을 벌기는커녕 정부광고로 운영되었는데, 정권교체후에 이명박정부가 광고를 끊어버리자 망해버렸다.[17] 이상호(기자)와는 다른 사람이다.[18] 재산이 수십억대였다고 한다.[19] 노사모 사이트를 야설사이트로 알았다고 한다.[20] 노사모 운동의 여러 아이디어, 예를 들어 희망돼지 아이디어도 그가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21] 그래서 별명이 미친루크라고 불릴 때도 많았다.[22] 대표적인 예가 종편 3사 뉴스쇼의 보수 성향 패널로 유명한 이종근이다.[23] 하지만 하재근은 보수지로 옮겨갔지만 그래도 컬럼은 상식적이다. 하재근이 데일리안에서 발표하는 컬럼을 보면 진보지에 실어도 문제 없을만한 내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