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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22 21:44:27

라디오21

파일:라디오21 로고.png
운영사 주식회사 라디오21
대표이사 정유진
개국일 2003년 2월 21일
서비스 종료 2012년 12월 20일
홈페이지 #
1. 개요2. 역사3. 평가4. 대표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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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운영된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국이다.

2. 역사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에 대한 선거운동 목적으로 개국한 '노무현 라디오' 가 전신이다. 11월 3일부터 방송을 시작해서, 대선 당일까지 방송을 이어갔다. 초기에는 하루에 2시간씩 방송을 진행했으나, 점차 8시간까지 방송시간을 늘려갔고 대선 전야와 당일에는 24시간 방송을 했다.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 과정을 생중계하고 축하 방송을 했으며, 정몽준이 지지를 철회한 투표 전날 밤에는 철야방송을 하며 눈물로 지지를 호소했다. 당시 명계남, 문성근, 김갑수, 신해철 등 연예계의 친노 인사들이 방송 진행을 맡았으며 특히 신해철은 자신이 DJ를 맡았던 고스트스테이션까지 잠정 하차하고 선거운동을 지원했다.[1] 스튜디오는 새천년민주당 당사 1층에 있었다. 노무현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뒤 이 라디오에 출연해 당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민주당 캠프에서 독립해 라디오21로 이름을 바꾼 뒤 상업 인터넷 방송국으로 법인화했다. 참여정부 출범 4일 전인 2003년 2월 21일 정식으로 개국했으며 문성근, 김갑수, 강헌, 양경숙, 유시민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세이클럽, 라이코스 코리아의 튜브뮤직과 함께 1세대 인터넷 방송 플렛폼으로 유명한데, 부가 서비스로 방송을 운영했던 전자와 달리[2] 라디오21은 철저히 방송 위주로 운영했다.

정치 논객들 뿐 아니라 김학도, 홍석천, 문성근, 김C, 신해철 등 유명 연예인들도 이 곳에서 방송을 했다. 당시 인터넷에서 인기 좋았던 구봉숙 트리오도 여기로 넘어와서 방송했는데 <김구라, 황봉알의 날밤토크>와 <김구라의 뮤직구라부>, <김구라, 한이의 +18> 등이 대표작이다. 방송 내용은 딴지일보에서 하던 시사대담과 비슷하게 정치인, 연예인을 가리지 않고 수위 높은 풍자와 독설을 날리는 컨셉이었다. 다만 발언의 수위가 너무 쎄서 요즘 같았으면 고소 당해도 할 말 없는 수준(...) 또한 마지막까지 진행한 건 김구라 뿐이고 황봉알과 노숙자는 개편 때 하차했다. 김구라는 이 후 지상파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노무현 캠프의 선거운동 라디오가 전신이기 때문에, 독립한 뒤에도 친노 성향을 띄며 진보적 논조를 보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탄핵 세력을 규탄하며 열린우리당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였고, 2008년 촛불집회 당시에는 시청 앞에서 실황 생중계를 했다. 이 때 이용자 수가 100만명 이상 몰려 서버가 터지기도 했는데, 리즈시절에는 하루에 150~300만명이 라디오21에서 방송을 청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큰 정신적 구심점을 잃게 되었고, 2011년 나는 꼼수다의 엄청난 히트로 청취자들 대부분이 팟캐스트와 딴지일보로 옮겨가게 되며 라디오21은 그 명을 다하게 된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까지 버티다가, 문재인 후보가 낙선한 다음 날인 12월 20일 공식적으로 방송을 종료하였다.

2018년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개국을 목표로 시험방송을 하기도 했으나, 그마저도 불발되었다. 2010년대 이후 인터넷 방송의 트랜드가 오디오에서 유튜브 같은 OTT로 완전히 넘어갔고, 기존의 팟캐스트마저도 세가 기우는 상황이라 이전과 같이 라디오 방송으로 다시 개국하기는 어려워보인다.[3]

3. 평가

라디오21은 한국 최초의 상업용 인터넷 방송국으로써 2010년대 나는 꼼수다의 대히트로 부상한 팟캐스트와 이 후 인터넷 방송의 부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라디오21은 지상파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참여하는 인터넷 방송으로 유명했는데, TV와 인터넷이 철저히 분리되어있던 2000년대 중반 당시 이는 혁명적인 시도였다. 어쩌면 2020년대 현재 수많은 연예인들이 유튜브로 넘어와서 활동하는 등, 지상파+인터넷 모델의 시초이기도 하다. 일반인들도 방송할 수 있었던 세이클럽이나 다른 인터넷 방송국들과 달리, 라디오21은 철저히 연예계 인사들과 시사평론가 등 방송 경력자들 위주로 뽑았다. 결국 시대적인 특성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향후 미래에 인터넷 매체가 지니게 될 높은 영향력을 제시한 플렛폼이라고 할 수 있다.

4. 대표

5. 여담

파일:라디오21-노무현.jpg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국 당시 직접 축하메세지를 보냈고, 퇴임 후인 2008년 4월에는 라디오21 회원들이 봉하마을에 자원봉사를 오기도 했다. 이 때 직접 친필싸인도 남겼다.



[1] 당시 신해철이 진행했던 프로그램 이름은 '노무현 스테이션'.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본인이 진행하던 고스트스테이션에서 따온 것이다. 신해철이 잠정 하차하고 없는동안 고스에서는 작가가 임시 진행을 맡아 음악만 틀어줬다.[2] 세이클럽은 채팅+동호회 서비스가 메인이고, 라이코스는 포털 검색 서비스가 메인이다.[3] 당장 팟캐스트에서 잘 나갔던 김어준 역시 무대를 유튜브로 옮겼다. 물론 동시녹음도 진행해서 팟캐스트도 여전히 운영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