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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47:00

조춘(배우)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조춘
曺春
파일:114488301.1.jpg
본명 조창성
본관 창녕 조씨
출생 1935년 9월 20일 ([age(1935-09-20)]세)[1]
황해도 해주부
(현 황해남도 해주시)
종교 개신교[2]
신체 170cm, 90kg
가족 아버지 조정두, 어머니 유달녀, 10남매 중 막내[3]
배우자, 슬하 1남 1녀
데뷔 1961년 영화 <군도>
학력 중앙대학교 졸업
1. 개요2. 생애3. 활동4. 근황5. 여담
5.1. 종교
6. 작품 목록
6.1. 영화6.2. 드라마6.3. TV 프로그램6.4. 광고
7. 참고/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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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배우 시절에도 거의 악당 전문 연기자였다. 연예인 분류상 악역 배우 겸 코미디언이다. 특히 코미디를 할 때는 주로 심형래와 호흡을 맞춰서 심형래는 영구, 조춘은 쌍라이트 형제 중 한 명을 했다. 홍진경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이 사람이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줄 아는 사람도 꽤 많다.

2. 생애

1935년 9월 20일[4][5], 황해남도 해주시에서 6녀 4남 중 막내로 태어나 어릴 적 월남해 초등학교 시절 기계체조를 했고, 태권도를 비롯해 검도, 유도, 합기도 등에도 능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강했다. 어두운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무도 합이 도합 20단이 넘는다고 한다.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 2012년 3월 12일 방송분에서 본인이 젊은 시절 김두한 사단의 행동대원이었다고 밝혔다.[6]

이쯤되면은 누나들의 나이만 봐도 1935년생이 확실해보인다. 참고로 조춘 외에는 이순재(1934년생), 송재호(1937년생)도 각각 1935년, 1939년생으로 잘못된 나이가 기재되어있다.

여담으로, 임방울과 함께 일제강점기 시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이었던 송만갑의 제자 박만조의 처조카다. 즉, 박만조 처제의 아들이 조춘. 조춘의 이모인 조임순은 송만갑의 직계제자로 유명한 명창인 박만조의 아내이자, 대한민국 판소리계의 기틀을 다진 천운 박봉술 선생의 어머니이다. 또한 조춘의 어머니 집안은 판소리 명창 조몽실, 가야금 명인이자 능주 씻김굿의 명인 조도화, 국악인 조동선 등을 배출한 국악계의 명문 집안이다.

3. 활동

파일:attachment/1274751943_1.png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재학 도중 선배 엑스트라 배우를 따라 유심평 감독의 영화 <군도>에서 산적 역으로 데뷔했는데, 한동안 주목을 못 받다가 1973년 이두용 감독 영화 <홍의장군>에서 처음으로 삭발해서 악역 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는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2012년 2월 12일 방송분에서 증언하길, 해당 영화에 출연할 때 분위기가 안 난다고 스스로 삭발해서 나간 것이 의외로 잘 먹혀서 그 다음부터는 이 분위기로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2012년 10월 31일 SBS <생방송 좋은아침> 인터뷰에서는 단역 배우를 하려니 머리 모양이 자주 바뀌는데, 덥수룩한 원래 머리를 그냥 두면 가발을 잘 쓸 수 없어 잘랐다고 했다. 참고로 처음 삭발을 하기 시작한 게 1972년이었다.

1960-1970년대 당시에는 임권택 감독이나 이두용 감독과 같은 거장들이 감독한 액션 영화에 단역이나 조연으로 자주 출연했고, 당시에는 전담 무술감독이 없어서 자신이 몸소 무술지도를 했다. 이 때에도 험상궂은 얼굴과 큰 덩치에 대머리와 콧수염트레이드 마크였다. 전술하듯 대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터라 영화가에선 '한국의 율 브리너' 내지 '조 브리너'란 애칭으로 불렸다.

1970년대경부터 TV 드라마에도 자주 얼굴을 보였는데, 먼저 MBC <수사반장> 및 <113 수사본부>에선 주로 악당으로 많이 나왔으며 <뽀뽀뽀> 등지의 어린이 프로에서는 무식하고 힘만 센 무사 내지는 산적으로 자주 나왔고, 주로 인간 말종 중국인 기믹은 트레이드 마크였다. 특히 영화판 일지매에서 중국 도둑 마달피나 MBC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와 KBS <한명회>에서는 두 차례 신미 대사로 나왔으며,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에서 명나라 장수 유정, 인현왕후에서는 장희재의 산적 졸개, 대원군에서는 위안스카이 역으로 각각 나왔다. 동 방송사 드라마 <암행어사>에서는 액션 위주의 사극이란 특성 하에 산적, 칼잡이 등의 역할을 맡았으며 1983년 9월 26일자 에피소드 '벙어리 장손이'에선 연출자 박철수 감독의 제안에 따라 상투 분장까지 했다.

1983년 KBS 대하드라마 <개국>에서 천희 스님 역을 맡을 적, 연출자 장형일 PD의 요구에 따라 11년 동안 기르던 콧수염을 깎은 바 있었고, 1997년 용의 눈물에서 손효종 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 그리고 미국과 합작한 B급 괴수영화 《킹콩의 대역습》(1976)에서 머리를 기른 채로 웃통 다 벗은 차력사로 나와 서울로 돌격하는 킹콩에게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는 사람들 중 하나로 나온다.

1989년에 절친한 후배 김유행과 함께 쌍라이트 형제라는 개그 콤비를 만들어 악역 이미지를 벗는 데 성공했다. KBS2 유머 1번지의 코너 "영구야 영구야"에 나와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구가 가담한 협객 집단 '쌍라이트'의 행동대원이었고, 영구가 대장 노릇을 했으며 국밥집 등지에서 조수(주방장) 노릇을 하기도 했다.[10]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코너 '헬로우 일지매'에서도 악당으로 등장한 바 있다.

그 때문인지 친근감 있는 캐릭터(?)가 되어 한때 대머리 내지는 스킨헤드의 대명사가 되었던 적이 있다. 각종 매체에서도 툭하면 "조춘아저씨처럼 머리를 빡빡 밀고..."라고 자주 거론되었었다. 그래서인지 KBS2 한바탕 웃음으로의 코너 봉숭아 학당 1991년 10월 7일 방영분에서도 특별출연했는데, 김형곤이 나라를 빛내신 인물이 누군지 질문해서 맹구가 조춘이라고 답하자, 조춘 본인이 갑툭튀하여 왜 자기를 들먹이냐고 화내며 "코미디만 하라"고 일갈하는 역으로 나왔다.[11] 한때 조춘의 신드롬으로 인해 비슷한 기믹을 가진 프로레슬러 '왕춘'이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1991년에 김유행을 대신해서 조춘의 파트너가 되었으나 결국 묻혔다. 또한 조춘의 트랜드에 편입되었던 사람으로 노지심이 있다. 이 쪽도 머리를 빡빡 민 헤어스타일 탓에 이쪽으로 편입되었다. 한때 조춘의 뒤를 이어 쌍라이트 형제의 계보를 잇는가 싶었지만 왕춘을 대체할 인물이 없어 묻혔다.

4. 근황

1990년대 후반 이후로는 환갑이 넘어 나이가 나이인지라 연예계에선 많이 나오지 못했다. 당시에는 환갑 넘으면 연예계 활동이 적어졌기 때문. '왕라이트 탕수육' 등 음식점 사업실패한 탓에 형편이 좋지 못해 월세방에서 살기도 했고, 게다가 운동을 하다가 다친 탓에 생계와 병간호 등을 모두 아내가 맡았던 적이 있었다. 연기 외적으로 국제격투기연맹 회장과 세계프로태권도연맹 고문, 국제엔젤봉사단 총재, 청목평화동지회 상임고문 등의 직함도 지녔다.

2020년 유튜브 <근황올림픽>에 따르면 몸이 안 좋아져서 쓰러진 적이 있었으나, 워낙 운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땅에 닿을 때 낙법으로 뇌진탕을 피했다고 한다. 그리고 운동을 워낙 많이 한 덕분에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심하게 건강이 나빠졌음에도 몇개월 안 되어 금방 회복했다고 한다.

2020년 OBS의 사나길에 출연해서 야인시대 시절의 건달들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MBC <복면가왕> 2021년 10월 31일 방영분에 '벽이 느껴지는 가창력 완벽'이라는 가면으로 출연했다. 1935년생, 당시 86세이라는 고령에도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최고령 출연자 기록을 경신. 참고로 여성 최고령 참가자는 지난 경연에 참가한 가왕님... 요즘 애들은 빈대떡 말고 나초 먹습니다... 나초다. 최연소 참가자인 제 노래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딱 오늘 하루랍니다! 하루살이와 나이 차가 80살 차이 난다.

2022년 1월부터 웹드라마 '조가네'에 출연했다. 할아버지 역이며, 노라조이혁 등도 나온다.

5. 여담

5.1. 종교

특유의 빡빡 민 헤어스타일 때문에 불교 쪽과 연관이 있냐는 얘기[14]도 간혹 듣지만, 사실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또한 現 직분은 장로이다. 2008년 4월 14일, 기독교방송에서 하는 프로그램인 새롭게 하소서에서 본인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원래는 진짜로 불자였지만, 1985년 1월 폭설이 내리던 때 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운전 부주의로 안전 철책을 밀고 중앙선을 넘는 죽을 고비를 한번 넘긴 뒤에 개신교개종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서울 삼성동의 어느 개척교회를 다녔으나, 연예계 활동에 몰두하느라 신앙 생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 사이 1987년 덤프트럭 추돌사고와 2008년 연극 <만선> 연습 도중 추락사고까지 겪고서야 신앙 생활에 전념했다. 그런데, 하필 옮긴 교회가 이단 종교인 만민중앙교회였다는 것.[15] 2010년대 이후 방송에 출연할 때 이 사람의 옷을 유심히 보면 양복의 양쪽 깃 중 한 곳에 만민중앙교회의 대성전[16] 조감도를 축소한 모양의 뱃지를 볼 수 있다.(2008년 노컷뉴스 기사, CBS 방영분[17], 2010년 만민뉴스 기사) 현재는 만민중앙교회 분규(2019) 이후 갈라진 아류파 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에 출석 중.

2008년 CBS 인터뷰 당시 사랑나눔복지재단 세계로선교회 교회 시무장로였다는 기사가 있으나, 확인 가능한 2016년 만민중앙성결교회 주보를 확인하면 협동장로 명단에 이 사람의 이름이 있다. 하지만 세력 분파 과정에서 2019년 3월 31일 주보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그 후 만민중앙교회의 분파인 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에 다니고 있다.

6. 작품 목록

6.1. 영화

6.2. 드라마

6.3. TV 프로그램

6.4. 광고

7. 참고/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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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8년생([age(1938-01-01)]세) 또는 1940년 11월 29일([age(1940-11-29)]세)라는 설이 있지만, 복면가왕에서 1938년생인 쟈니 리, 김영옥이 본인보다 연하동생이라 말한 것을 보면 이들보다 연상인거 확실하다.[2] 원래 독실한 불교신자였는데, 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사고로 이어질 상황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지인을 통해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3] 누나: 조농선 (조판순), 조농옥 (조계선), 조농월 (조복순), 조귀인 (조영숙), 조금앵 (조윤순), 조성실 (조금례), 형: 조창규, 조창환, 조창용, 조창성 (조춘 본인)[4] 호적상으로는 1940년 11월 29일. 본인이 라디오에서 직접 밝혔다.[5] 예전 프로필에는 1938년 생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최근 근황 때 86세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참고로 이순재보다 1살 어리다.[6] 50년대 중후반에 활동하다 5.16 이후 조직원들이 잡혀들어가면서 조직이 와해되었고, 이 때 손을 씻고 누나의 소개로 배우가 되었다. 조춘이 당시 나이가 어렸는데 그래서 김두한의 조직원들이 애들은 가라면서 거절했지만 조춘은 저도 싸움 잘 합니다라고 하면서 기어이 들어갔었다.[7] 조선성악연구회 직속단체인 창극좌에서 활동하다가 송만갑과 정정렬에게 판소리를 사사한다. 그후 조초향 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후에 조농선으로 변경한다.[8] 참고로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1934년생의 국극 배우인 조영숙과 동명이인이기도 하다.[9] 조산홍 이라는 예명을 쓰기도 하였고 언니 조금앵과 함께 여성 국극을 발전시키는데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10] 국밥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항의하는 손놈 앞에 쌍라이트 형제가 나타나는 상황이 압권.[11] 1991년 9월 9일 방영분에서 선생님이 해골물을 마신 스님이나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었던 스님 따위를 질문하면 맹구가 하도 '조춘대사님'이라고 드립을 친 바 있다. 내용을 열거하자면 김형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훌륭하신 스님들이 있어요. 그게 누구신지 아는사람? 맹구: 서산대사 (김형곤: 그렇지.), 사명대사 (김형곤: 아까 내가 이야기 했잖아!), 맹구: 조춘대사! (김형곤: 조춘대사가 왜 나와? 머리만 깎으면 다 스님인 줄 알어?)[12] 그도 그럴 것이 이계인도 이제는 나이가 상당한 대선배 계열에 속하는 원로 배우지만, 조춘은 이계인보다 17살이나 차이나는, 삼촌뻘로 연예계에서 막연한 대선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이 조카뻘 걸그룹 멤버의 입에서 언급되었다는 것이 놀랄 법도 하다.[13] 12월 31일 밤 짧은 시간에 담배 한 갑을 연속으로 피우자 속이 불편하고 기분이 나빴는데 그 상태로 잠에 들고 일어나서 1월 1일 아침부터 다시는 담배를 안 피웠다고 한다. 근데 끊은 시점이 조춘처럼 나이 환갑이 넘은 60대였다고 한다.[14] 영화 할렐루야 마지막에 스님으로 잠깐 나온 바 있다.[15] 이 시기에 만민중앙교회로 옮겨 간증을 한 것을 계기로 적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16] 만민중앙교회에서는 믿음의 분량에 따라 때가 이르면 현재의 구로동 성전에서 이후 가나안 성전에 들어간 후 최종적으로 대성전으로 옮긴다고 설명하고 있다.[17]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접속 가능.[18] 홍콩과의 합작 영화로, 오우삼 감독도 공동으로 메가폰을 잡았다.[A] 홍콩과의 합작 영화.[A] 홍콩과의 합작 영화.[A] 홍콩과의 합작 영화.[B] 미국과의 합작 영화.[A] 홍콩과의 합작 영화.[A] 홍콩과의 합작 영화.[A] 홍콩과의 합작 영화.[B] 미국과의 합작 영화.[27] 출생연도로는 깨질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나이로는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