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0:33:19

박한이/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박한이
1. 데뷔 이전
1.1. 아마추어 시절
2. 데뷔 이후
2.1. 프로 데뷔 초~2008 시즌2.2. 2009 시즌2.3. 2010 시즌2.4. 2011 시즌2.5. 2012 시즌2.6. 2013 시즌2.7. 2014 시즌2.8. 2015 시즌2.9. 2016 시즌2.10. 2017 시즌2.11. 2018 시즌2.12. 2019 시즌
3. 국가대표 경력4. 불명예 은퇴

1. 데뷔 이전

1.1. 아마추어 시절

파일:external/www.donga.com/history_34.jpg
부산고 시절

부산고 재학 시절 1997년 삼성의 2차 6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나, 같은 해 동국대 경영학과(97학번)에 진학했다.

동국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에는 대학야구의 간판스타로 활약하였다. 2학년이던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드림팀 1기)에 뽑혀 병역 특례를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당시 대학야구 선수로 같이 병역 특례를 받은 신명철(당시 연세대), 강봉규(당시 고려대)와 훗날 같은 팀에서 뛰었던 바 있다. 여담으로 당시 드림팀의 최연소 타자였다.[1]

1999년 아시아선수권 대회에도 출장해 3승 무패의 선전에 일조했으며 이외에도 99년 대륙간컵에도 출전하고, 2000년에는 올림픽 대표팀 예비명단에도 포함되는 등, 국가대표에 자주 차출되었다.

2. 데뷔 이후

2.1. 프로 데뷔 초~2008 시즌

파일:박한이(구).jpg
풋풋하던 데뷔 초기 (2000년 12월 전지훈련)
파일:/image/109/2007/07/05/200707050826191101_1.jpg
2007년의 모습.[2]

동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계약금 3억 원에 연봉 2천만 원의 조건으로 삼성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부터 지금까지 삼성의 신인 타자 중 최고액 계약금을 받은 선수이며, 투수까지 합쳐도 구단 신인 계약금 중 역대 6번째 금액의 계약으로서,[3] 2024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박한이보다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삼성 신인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삼성이 박한이에게 얼마나 큰 기대감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참고로 삼성에 입단한 신인 선수들 중 역대 가장 많은 계약금을 받은 선수는 바로 1차 지명을 받고 박한이와 같은 해에 입단한 프로 통산 1승을 위해 5억 3천만원을 갖다 부은 이분. 박한이와 마찬가지로 2017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삼성 신인 선수 계약금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의 흑역사 중 하나. 큰 기대를 받고 입단한 이정호가 프로에서 완벽히 실패하자 2001년 이후 삼성에서는 1픽이어도 계약금은 많이 줘 봐야 2억대 정도로 짠 편으로, 2008년이 되어서야 1차 지명을 받은 우동균이 2억 2000만원, 2차 1번 최원제가 2억 5000만원을 받게 되며 2억대를 돌파했다. 대구-경북지역 팜이 역대급 흉년이었던 2005년 1픽인 백준영과 2007년 1픽인 김상걸은 계약금으로 8,000만원을 받았다.[4]

2001년 데뷔하자마자 김응용 감독의 눈에 들어 바로 삼성의 1번타자 및 중견수로 낙점받아 활약하기 시작하였으며, 데뷔 첫 안타는 2001 시즌 개막전 경기였던 대구 한화전에서 기록하였다. 데뷔 첫 해부터 풀 시즌을 뛰며 0.279의 타율 및 13홈런 17도루로 준수한 활약을 했으나, 당시 규정 타석은 못채웠지만 고졸 신인으로 0.335에 20홈런을 쳐낸 한화 이글스김태균에 밀려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참고로 2001년 7월을 끝으로 사라진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마지막 홈런을 뽑아낸 선수도 박한이였다. 그것도 무등야구장의 장외로 사라지는 우익수쪽 비거리 125m짜리 홈런이었다. 이 정도의 타구는 같은 물리조건 하에 잠실 야구장의 중앙으로 뻗어나간다고 해도 넘어간다.

2003년에는 170안타로 최다안타 1위, 2004년은 첫 골든글러브 수상, 2006년에는 득점왕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당시 최고의 외야수 중 한 명이었다. 다만 2006년 이후 장타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게 흠.

2007년에 2할 6푼대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워낙 죽을 쒀서 위태로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5] 2008 시즌에 다시 부활해서 삼성 주전 타자 중 유일하게 3할 기록. 직전해인 2007년까지만 해도 서른을 코앞에 둔 박한이가 팀 타선 중 가장 젊은 타자였으나, 2008 시즌 이후론 갑자기 고참이 되었다. 2007 시즌까지 삼성의 타선이 막장 테크를 타면서 2008 시즌에 대량 물갈이 되었기 때문. 2008 개막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때는 위기가 있었고 신인 허승민이 그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으나 분발을 해서 크레이지 모드가 됐다는 일설이 있다.

2008시즌 시범적으로 3번에 기용된 적도 있다. 우동균, 조동찬을 비롯한 삼성의 신예 테이블 세터진이 완성된다면 클린업 트리오로 갈 수도 있었지만, 결국 이뤄지지느 않았다.

2.2. 2009 시즌

시즌 전 구단과의 연봉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1월 10일 KBO연봉조정 신청을 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 후 구단과 직전 시즌의 2억 4천300만원에서 11% 인상된 2억 7천만원에 연봉 협상을 완료했다.#[6]

개막 직전 허리 통증이 도지는 바람에 개막 후 바로 경기를 출장하지 못하고 재활을 한 후, 4월 20일에 되어서야 1군 엔트리에 합류했다. 다만 경기 출장은 다음 날인 21일에서야 대타로 출장[7]했으며, 이후 큰 탈 없이 시즌을 완주했다. 다만 팀은 12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무산되며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하지 못한 시즌이 되었다. 시즌 기록은 110경기 출장하여 394타석에 334타수동안 104안타[8] 50사사구 2홈런 36타점 48득점 7도루를 해내며 타출장 .311, .399[9], .428을 올렸다. 지난 시즌보다 타격 성적이 다소 떨어졌고, 안타도 겨우겨우 104개를 채웠다. 특히 출루율 .399를 기록하면서 4할 출루율을 아쉽게도 달성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시즌 후 개인적으로는 결혼도 하게 되었고 FA 자격까지 얻었으나, 전 소속팀과의 협상 마지막 날인 1월 10일이나 되어서야 계약금 3억원, 연봉 3억원, 옵션 5,000만 원에 삼성에 잔류했다. 2010 시즌에도 대구시민야구장에서 박버퍼링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2.3. 2010 시즌

시즌 초반부터 타격에서 고감도의 타격을 선보이며 5월 5일까지 36안타 5홈런을 기록하며 맹타를 휘둘렀다. 또한 5월 5일 대구 롯데전에서 4타수 4안타(2루타 2개) 2타점까지 쳐냈고, 다음 날 롯데전에서도 3타수 3안타 1볼넷을 쳐내면서 타율이 무려 .382까지 치솟기도 했었다. 물론 계속해서 이 타율을 유지하지는 못했어도 9월 초순까지 3할 타율을 계속 유지하다가 9월 10일 LG전에서 3타수 무안타를 치는 바람에 3할 타율마저 붕괴되었다가 시즌 막판 다시 만난 LG를 상대로 4타수 2안타 1볼넷과 3타수 2안타를 쳐내어 간신히 3할을 사수하고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중후반부터 팀 컬러인 여름삼성에 걸맞지 않게 체력적으로 점차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며 타율도 점점 떨어져 갔다.[10]

이영욱을 중용하며 대놓고 박한이를 디스하던 선동열 감독의 박대에도 불구하고 시즌 최종 타출장 .301, .413, .454의 준수한 스탯으로 시즌을 마감했으며 홈런도 오랜만에 11개로 두자리수 홈런에 타점도 63타점을 올리며 2004시즌에 이어 최다타점타이를 해내기도 했다. 심지어 사사구는 73개로 아예 커리어하이급. 시즌 중간에는 상술했듯이 고감도의 타격 활약을 인정받아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 6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10년 연속 100안타를 달성했다.[11]

그런데 선동열은 이런 타자를 시즌 내내 플래툰 돌리고 앉았었다. 2할이 겨우 넘는 타자와…. 그런데, 박한이는 이 팀의 몇 안되는 프랜차이즈이고, 강봉규는 작년에서야 반짝 활약한 선수인데 주장이라서 더 밀어준건지 뭔지...[12] 21세기 첫 우승 시절부터 함께 해온 선수는 박대하고, 1년 반짝인 선수는 믿어주다가 원래 하던 급으로 돌아간 것은 안비밀.

여담으로 FA 때 한화한테 빼았겼으면 양준혁도 반강제 은퇴당하는 마당에 삼성팬이라고는 하나도 안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13]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8회말에 팀이 스코어 5:3으로 뒤진 2사 1, 2루 상황에서 정재훈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 홈런을 쳐서 삼성의 스코어 5:6 승리를 이끌었다. 이 날 박한이는 선발 1번타자이자 우익수로 출전하여 4타수 2안타 1홈런 1볼넷 3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2루타만 3번을 치는 대활약을 했는데, 특히 팀이 스코어 5:6으로 지던 8회초 2사 1루에서 동점 2루타를 쳤지만 팀은 연장 11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스코어 8:9로 패했다. 이 날 박한이는 선발 1번타자이자 우익수로 출전하다 중견수로 수비 위치를 옮겼고, 타석에서는 6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 2득점을 기록했다.

10월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 스코어 7:7인 8회초 1사 2, 3루 상황에서 희생플라이를 쳤는데, 이날 팀이 8:7로 승리하여 이 타점이 이날의 결승타가 되었다. 이 날 박한이는 선발 우익수 겸 3번타자로 출전하여 3타수 2안타 2희생플라이 2타점을 기록했다.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1타수 8안타 1홈런 3볼넷 2희생플라이 3볼넷 1사구(死球) 2도루 6타점 4득점, 타율 .381, 장타율 .667, 출루율 .444를 기록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크게 공헌하였고, 결국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4타수 2안타 3볼넷 1타점, 타율&장타율 .143, 출루율 .294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선동열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스윕패를 당한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5타수 10안타 1홈런 2희생플라이 6볼넷 1사구(死球) 2도루 7타점 4득점, 타율 .286, 장타율 .457, 출루율 .386을 기록했다.

2.4. 2011 시즌

류중일 감독이 강한 2번타자론을 주장하며 2번타자로 꾸준히 기용되고 있지만 역대 최악으로 부진하며 다시 까이고 있다. 그 좋았던 선구안도 무너지고 타율도 2할 중반대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등, 결국 역대 커리어 로우 시즌을 기록했다. 또한 2011 시즌의 88삼진은 개인 한 시즌 최다 삼진.

덤으로 FA때 잡지 않은 한대화 감독은 재평가가 되고 있다. [14]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류중일 감독의 양아들이라며 류한이라고 까이고 있다. 결국 8월 24일자로 2군행. 하지만 9월에 다시 1군 복귀했고 그 와중에 11년 연속 100안타를 눈앞에 두고 있다.

9월 20일 금지어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근데 이게 시즌 4호이자 마지막 홈런이었다.

9월 21일 시즌 100안타를 쳐서 11년 연속 100안타를 쳤다[15]. 하지만 9회말 3:3 1사 만루 상황에서 1루수 땅볼 아웃으로 3루주자가 홈에서 아웃되고 이것이 연장전 패배의 씨앗이 되어서 삼갤 등에서는 시즌 100안타를 치고도 까였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2타수 무안타 2볼넷 1사구(死球) 타율, 장타율 0, 출루율 .200을 기록하며 5차전 4삼진 포함 시리즈 9삼진을 기록한 채태인과 함께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16] 하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하였다. 우승을 못했다면 채태인과 평생까임권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

2.5. 2012 시즌

2011 시즌 워낙 부진했던 탓에 본인도 절치부심해 시즌을 준비해 왔으나, 4월 1일 두산과 시범경기 중 허벅지를 다쳤다. 햄스트링 진단을 받아 1달간 재활한 후 5월 1일 1군에 복귀했다. 5월 3일 두산전에서 임태훈을 상대로 권선징악포를 쳤다. 7월 18일 한화전에서 역대 18번째 개인 통산 1500안타를 달성했다.

9월 5일, LG 트윈스 전에서 레다메스 리즈를 상대로 첫 타석에서 안타, 이로써 12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을 만들어 냈다. 이는 양준혁의 16년 다음으로 오래 된 기록이다.

9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1:0으로 지던 9회말 무사 만루에서 극적인 역전 끝내기 2타점 2루타를 쳐내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9월 25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5:0으로 지던 9회말 1사 3루에서 김진우의 완봉을 막는 희생 플라이를 쳐냈으나 경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팀은 5:1로 패배. 9월 26일 이어진 경기에서도 9회말 윤석민노히트 노런을 저지하는 안타를 쳐내며 분투했으나 팀은 끝까지 점수를 내지 못하고 3:0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2년 만에 다시 3할 타자(최종 타율 0.304)로 복귀하였으나 부족한 장타력(홈런 1개)와 초반 결장에 대한 공백 때문이었는지 골든글러브 투표에서는 아쉽게 4위에 그쳐 골든글러브 획득에는 실패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 2, 3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6번타자, 5, 6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18타수 4안타 2볼넷 1사구(死球) 1타점 3득점 1도루, 타율&장타율 .222, 출루율 .333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6. 2013 시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한이/선수 경력/2013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7. 2014 시즌

파일:htm_2014110722204461006120.jpg
2014년 한국시리즈 3차전 경기에서 한현희에게 결승 2점 홈런을 친 후 포효하는 모습.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한이/선수 경력/2014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8. 2015 시즌

파일:external/db.photoro.com/20150923191240167.jpg
2015년 9월 23일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 15년 연속 100안타를 기록하는 모습.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한이/선수 경력/2015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9. 2016 시즌

2015년 시즌 막판 도박의혹 사건으로 팀 분위기가 급 다운되며 두산에게 KS 우승을 빼앗기고 임창용이 방출당하는 등 팀이 어수선한 가운데, 전 시즌 주장을 맡았던 박석민이 FA 자격을 얻어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주장으로 선임됐다.

2016년에 100안타만 치면 16년 연속 100안타와 2,000안타 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에, 팬들의 기대가 높다. 물론 지금 페이스라면 2,100안타를 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4월 12일 NC전에서 무릎 통증 때문에 경기 시작 직후 박해민으로 교체됐다. 검진 결과 무릎 연골 손상으로 당분간 결장이 불가피해지며 13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그 자리를 대신해서 등록된 선수는 최선호.

그리고 4월 19일 수술대에 오른다고 한다.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수술. 재활에 4주, 컨디션 및 실전 감각 끌어올리는데 2주 정도인걸로 봐서 큰 수술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

현재 재활과정이 매우 순조롭다. 현재 캐치볼을 재개했다고. 이 추세대로면 5월 중순에 복귀가 가능하다고 한다.[17]
4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9 28 8 1 0 0 3 1 4 8 0 1 .286 .394 .321 .715

5월 12일 한화와의 퓨쳐스 리그 경기에서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 3루타를 포함한 3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5월 15일 1군에 복귀했다.

5월 18일 현재 부상에서 빠르게 회복한 이후 감을 찾아나가면서 두 자리 수 안타 갯수(10개)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꾸준하게 출장하여 안타의 갯수를 늘려 통산 2000안타와 16년 연속 100안타의 기록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

5월 22일 NC와의 경기에서 8회에 자신의 시즌 첫 홈런을 쳐냈다. 그러나 팀은 8-9로 패배.
5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2 33 10 2 0 1 5 5 3 4 2 0 .303 .361 .455 .816

6월 4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1000사사구를 달성했다. 이는 양준혁-박경완-김재현-장성호-김태균에 이은 역대 6번째 기록이다.

6월 17일 박한이는 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2타점을 달성해 팀의 승리에 공헌을 했다.

6월 26일 kt전에서 시즌 4호 홈런을, 6월 28일 롯데전에서 시즌 5호 홈런을 때려냈다.
6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6 84 27 6 0 4 15 13 9 20 1 0 .321 .385 .536 .921

7월 5일 LG와의 홈경기에서 2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하여, 1회말 결승 솔로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6호 홈런이다.

7월 29일 넥센과의 홈경기에선 4회말 선두타자 최재원 대신 대타로 나왔으나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후 12회말 1사 만루 끝내기 찬스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며[18] 팀의 6-5 승리를 이끌었다.

무릎 수술 후유증 때문인지 주로 대타로 나오고 있어 올 시즌 100안타 달성은 힘들 것이란 예상이 많다.
7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5 24 6 1 0 1 6 5 4 7 0 0 .250 .357 .417 .774

8월 19일 KT와의 경기에서 전날 부상으로 최재원이 빠져서 우익수로 선발출장했다. 이날은 1회 초부터 투런홈런을 때려내고, 7회 2타점 적시타까지 치며 4타수 2안타 4타점으로 대활약했다. 여담으로 이날 이승엽도 3타수 3안타 1홈런으로 5타점을 기록, 노장 두명이 도합 9타점을 내는 기염을 토했다.

8월 24일 대구 SK전에서 3대 1로 뒤진 6회말 김광현을 상대로 동점 투런 홈런을 쳤다. 시즌 8호 홈런. 그러나 팀은 4대 3으로 졌다.

8월 27일 대구 롯데전에서 3안타를 때려내며 어느새 69개째 안타를 만들어냈다. 삼성의 남은 경기수는 30경기이기 때문에 부상없이 출전한다면 가능성이 보이는 정도. 2000안타까지는 앞으로 안타 9개 남았다.

8월 29일 대구 넥센전에서 또다시 2안타 멀티히트를 기록하면서 100안타까지 29안타를 남겨놓은 상황이 되었다. 남은 경기 수 또한 29경기가 되면서 매경기에서 안타 하나씩만 때려도 100안타가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최근의 타격감을 본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8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0 67 20 8 0 2 14 21 7 14 1 0 .299 .365 .507 .872

9월 1일 대구 KIA전에서 2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7회말 김진우를 상대로 시즌 9호 솔로홈런을 포힘해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100안타까지는 27개, 통산 2000안타까지는 5개가 남았다.

9월 3일 잠실 두산전에서 장원준이현승을 상대로 2안타를 뽑아냈다! 팀은 5:3 역전승을 거두었다 참고로 이제 26경기와 25안타만 남았다!!

9월 6일 대구 kt전에서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팀은 대승. 이제 25경기, 23안타가 남았으며 통산 2000안타는 단 한 개.

9월 8일 사직 롯데전에서 1회초 린드블럼의 공을 받아쳐 대망의 2000 안타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9월 14일 대구 한화전에서 6:5로 뒤진 상황에 서캠프로부터 동점 솔로 홈런을 쳐냈다. 2년 연속 두자릿 수 홈런. 주루 능력이 줄어든 까닭인지 장타 생산 페이스가 상당히 좋다. 8회에는 3루의 김상수를 불러들이는 희생플라이를 쳤다. 이제 시즌 100안타까지는 17경기, 19개가 남았다.

추석 당일이었던 9월 15일 문학 SK전에선 5타수 3안타 3타점으로 팀의 9대 5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이제 시즌 100안타까지는 16경기, 16개가 남으며 어느 순간 남은 경기수와 안타수가 다시 동일해졌다.

9월 16일 SK전에서 개인 통산 1900경기 출장을 기록하였고, 팀의 승기를 가져오는 2점 홈런을 작렬. 남은 경기=안타수(15)를 유지하고 있다.

9월 17일 1땅볼 2호수비를 기록해서 무안타에 그치고 말았다.

9월 20일 잠실 두산전에서 세 타석 만에 안타를 기록했다. 남은 경기(13)<남은 안타수(14).

9월 21일 대구 롯데전에서는 안타를 치지 못했으나 볼넷으로 걸어나간 뒤 1득점을 올렸다.

9월 23일 대구 두산전에서 안타 1개를 추가하였다.

9월 24일 대구 넥센전에서 3회말 황덕균으로부터 솔로 홈런을 얻어낸 걸 포함해 멀티히트를 기록하여 남은 경기수 9경기와 10안타만 남았다.

9월 25일 대구 넥센전에서 2안타를 추가하며 2경기 연속 멀티 히트를 기록하며 남은 갯수를 한 자리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제 남은경기는 8경기, 100안타까지 남은 안타도 8개로 다시 남은 경기와 안타수가 동일해졌고,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힘들어 보이던 100안타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9월 27일 마산 NC전에서 안타 1개를 추가하였다. 아직 타석에 들어설 기회는 남아 있으니 멀티 히트를 기대해본다. 특히 이번이 기회가 될 수 있는게 잔여경기지만 정규시즌과 비슷한 형태의 3연전이므로 감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

9월 29일 마산 NC 더블헤더 1차전에서 4번째 타순 1루타를 추가하며 94안타째를 기록했고, 9회초 김진성을 상대로 시즌 13호 3점홈런을 기록하며 95안타째를 달성했다.

더블헤더 2차전에서 그 감을 살려 또다시 안타 3개를 추가하며 시즌 안타 갯수를 98개까지 끌어올렸다.
9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3 94 27 1 0 5 13 22 12 16 1 0 .287 .361 .457 .819

10월 3일 대구 LG전에서 첫 타석에 안타를 추가하며 99안타를 만들었다.

이제 16년 연속 세자리 수 안타까지는 1개가 남았다. 만약 달성한다면 현 양준혁 해설위원과 기록이 같아진다.

10월 4일 LG와의 홈경기에서 1회 말 봉중근을 상대로 드디어 시즌 100안타째를 기록하며 16년 연속 세 자릿 수 안타 기록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기록 달성을 위해 무리하게 출장한 바 있어 100안타 기록을 세우고 엔트리에서 빠지거나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될 걸로 보였으나, 류중일 감독이 100안타 기록을 세워도 남은 경기에 출장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시즌 최종전인 10월 8일 인천 SK전에서 5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4회 초 윤희상을 상대로 추격의 솔로 홈런을 치며 시즌 14호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날 4타수 2안타 1타점 1홈런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10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5 20 7 2 0 1 2 2 1 3 0 0 .368 .400 .632 1.032

시즌 후 무릎 수술을 받기로 했으며, 연골을 꿰매고 생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4개월 가량의 재활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2.10. 2017 시즌

박한이는 안된다 진짜 박한이 만큼은
- 40인 보호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말을들은 삼성팬의 한댓글[19]

시즌 전 무릎 수술을 받으며 괌 1차 스프링캠프와 오키나와 2차 캠프에는 참여하지 못하였고 한국에 남아서 용인의 STC와 경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에서 재활과 기술 훈련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용인 STC에서 재활 중이던 1월 25일 STC 인근의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구리 KDB생명 위너스 간의 여자농구 경기를 보러 온 게 포착되었다.

4월 7일~8일 경산 볼파크에서 열린 한화 2군과의 경기에 모두 출장해 두 경기 모두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4월 18일 1군에 올라왔으나 아직 타격 컨디션이 100%는 아닌지 공을 좀처럼 맞추지를 못하면서 복귀 후 7경기 동안 15타수 0안타를 기록했다. 결국 26일 김시현, 이영욱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5월 11일 1군에 복귀했다.

5월 24일 대구 kt전에서 모처럼 좌익수로 선발 출장해 4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 시즌 첫 홈런을 기록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 어쩌다가 한 번 대타로만 나오는 중. 일부 팬들은 김한수 감독이 일부러 기용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6월 1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1할대의 타격 성적도 그렇지만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기 전에 4타석 연속 삼진에 공이 지나고 나서 배트를 돌릴 정도로, 배트 스피드가 많이 느려진 모습을 보였다. 17년 연속 100안타가 문제가 아니라 본인 커리어 연장이 불투명해졌다.

7월 7일 허리 통증 때문에 1군에서 제외된 김헌곤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7월 21일 김지용을 상대로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가는 기적의 솔로 홈런을 쳤다. 그러나 최충연을 4.1이닝 77구까지 방치한 김한수의 삽질로 팀은 연장 11회초 8실점하며 대패했다.

후반기 들어 타격감은 살아난 듯 보이지만,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홀대로 인해 경기에 제대로 출장조차 못하고 있다. 8월 6일 기준 박한이의 후반기 성적은 제대로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음에도 타율 0.405, 출루율 0.410, 장타율 0.757, OPS 1.167에 3홈런으로 삼성 팀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좋은 타격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배영섭, 김헌곤등에 밀려 간혹 대타로나 기용되기 일쑤이며, 심지어 8월 6일 NC와의 경기에서 7회 강한울 대신 대타로 기용되었다가 NC가 좌투수인 임정호로 투수를 교체하자 타석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바로 김헌곤으로 교체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경기를 보던 삼팬들은 폭발했고, 경기를 해설하던 양준혁 해설도 '박한이는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돌려 비판했다.[20] 심지어 데이터에서도 좌투수 상대 타율이 박한이가 김헌곤보다 높다. 결국 김헌곤은 2루수 땅볼로 허무하게 아웃. 이같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선수 기용에 김한수 감독 개인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었든지, 아니면 프런트 이상의 선에서 외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 도저히 그것이 아니고는 선수기용이 설명이 안 되기 때문.

한편 40인 보호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10월 3일, 시즌 최종전이자 라이온킹의 은퇴식에서 4타수 2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다. 특히 6:6 5회말 2사 1, 2루에 기록한 1타점 2루타가 바로 이날 경기의 결승타다. 한편, 은퇴경기 중계 내내 어느 머리 큰 해설위원은 '박한이가 내년부터는 이승엽의 역할을 해줘야한다', '삼성 구단에서 선수들에 대한 대우를 잘해줘야한다'와 같은 발언을 쏟아냈다. 이승엽 은퇴식 때 구단 관계자들이 "다음은 네 차례다. 준비해라"라 했다는데, 2017년 시즌 내내 역대 최악의 무능한 감독에 의해 천대받은 걸 생각하면 앞으로 과연 박한이의 이름과 공헌도에 걸맞은 선수생활의 마무리가 이루어질까 의문이다.

2.11. 2018 시즌

파일:image_readtop_2018_459789_15321781503396481.jpg

1976년생인 이승엽이 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면서 동시에 삼성 라이온즈 내 최고참 선수가 되었고, 1975년생 조인성, 빠른 1976년생 이호준, 1978년생 김원섭이 은퇴하자 2018년엔 박용택과 함께 둘 밖에 없는 70년대생 타자로[21] 리그 최고령 타자가 될 예정이다.[22] 그러나 FA때 재계약을 맺지 않는다는 찌라시들도 퍼지고 있다.[23]

우선 이승엽이 은퇴하며 비게 된 지명타자 자리를 수비 면에서 노쇠화가 급격하게 온 조동찬과 함께 맡거나, 아니면 김헌곤, 배영섭 등과 함께 좌익수 자리를 경쟁할 듯 하다. 일단 김한수 감독도 우선 기회를 주겠다고 했으니...

개막전 엔트리에 승선했고 3월 24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는 7번, 지명타자로 출장했으나 4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부진했다.[24] 결국 다음 날인 25일 경기에는 조동찬이 1루수를 맡고 기존 1루수인 외국인 타자 다린 러프를 지명타자로 출장시키게 되며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3월 27일 KIA전에서는 대타로 나와 안타를 치면서 이후 다시 지명타자로 복귀했지만 4경기 동안 13타수 1안타에 그치면서 4월 2일 김시현과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4월 12일 1군에 복귀했고 14일 한화전에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지만 3타수 무안타.

4월 18일 롯데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4타수 2안타를 쳐냈고 이날 첫 타석에서 롯데 선발 김원중을 상대로 2루타를 쳐내며 개인 통산 350호 2루타, 4회에는 개인 통산 7000타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19일에는 5타수 3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위닝 시리즈를 이끌어냈다.

4월 20일 수원 kt전에서는 7번 지명타자로 나와 3타수 2안타를 쳐내며 2군에 한번 다녀온 후 감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4월 21일 최근 3경기 13타수 7안타, 타율 .538을 기록 중이며 3경기 연속 멀티 히트(2안타, 3안타, 2안타)를 치고 있는데 선발에서 제외됐다. 대타로도 못나왔다. 선발 금민철이 좌완이라 뺐다고 하기엔 3일 전에 좌완을 상대로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던 박한이다. 애초부터 박한이 정도 클래스의 선수에겐 좌좌우우 놀이 그런거 필요가 없다.

4월 22일 역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kt의 선발 투수는 삼성 킬러 니퍼트. 하지만 박한이가 니퍼트 킬러다.[25] 이정도면 무능한 김한수의 박한이 홀대는 2018년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이틀간 박한이를 대신해 출장한 선수들은 8타수 1안타에 그쳤다.

4월 23일, 1군에서 말소됐다. 이유도 모른다. 이쯤되면 김한수 감독이 박한이를 미워하는 건지, 차마 밝히지 못한 부상이라도 생긴 건지 팬들은 답답할 뿐.기사

4월 23일 결국 2군행 이유에 관한 기사가 떴다. 재충전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라는데, 1군 복귀후 17타수 7안타 타-출-장 .412-.471-.647를 기록 중인 타자가 부상도 아니고, 재충전의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작년부터 이어져온 김한수의 박한이 홀대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가 영남일보에 박한이 2군행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기사까지 뜨면서 김한수가 박한이를 홀대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5월 4일 1군에 복귀했다. 김한수는 "좋은 결과를 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5월 4일 4타수 2안타 2타점, 5월 5일 4타수 1안타로 노장은 쉽게 죽지않는다는것을 보여주었다. 한편, 개인 통산 2000경기 출장에 4경기만을 남겨두게되었다.

5월 8일 KT와의 경기, 드디어 시즌 1호 홈런 (3점)을 기록하였다. 4:3으로 근소하게 우위를 가지고 가던 팀에게 쐐기 타점을 가져다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삼성의 첫 연승이기에 더욱 귀중한 활약이었다. 베테랑의 존재의미를 되짚게 만드는 경기. 기록은 3타수 2득점 2안타 3타점.

5월 9일 KT전 974일 만의 4안타를 기록하며 팀의 3연승을 이끌었다.

5월 11일 KIA전에서는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2000경기 출장과 2000안타의 기록을 달성한 6번째 선수가 되었다. 여기에 첫 타선에서부터 안타를 신고하면서 2900루타 달성도 추가.

5월 15일 포항 LG전에서는 1:0의 불안한 리드 상황에서 도망갈 수 있는 귀중한 솔로홈런(시즌 2호)을 쏘아올리는 등의 활약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후로는 페이스가 떨어지고 타율도 2할 9푼대로 떨어진 즈음에 퓨처스리그에서 2할 1푼치고도 올라온 조동찬과 플래툰으로 기용되고 있다.

7월 21일 한화전에서는 9회초 우익수 대수비로 출전했다. 3-3 동점상황 9회말 2사 만루에서 김범수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6] 세레모니를 보며 2014년 한국시리즈를 떠올린 팬들도 많았다. 그리고 다음날(22일)에는 정우람을 상대로 무사 1-2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또 치며 KBO 리그 역대 세 번째로 두 경기 연속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다.[27]
그 이후 부진하고 있었다.

9월 25일 멀티홈런을 쳐 3000루타를 달성했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안타를 많이 때렸지만 시즌 97안타로 최종 마무리 되었다.

시즌 후 3번째 FA 자격을 취득했으나, 본인이 다른 팀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고 한 팀에 마지막까지 뛰다 은퇴하고 싶단 이유로 신청하지 않았다. 다음 날 자신에게 삼성이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질문에 "삼성에서 뛰면서 야구를 할 수 있었고 많은 기록도 나올 수 있었다. 야구를 오래 하지 못하고 그만둔 선수도 많지 않나. 지금 난 야구를 하고 있다. 고마운 구단이다." 라고 답했다. # 실제로 삼성도 박한이가 FA 신청을 하지 않자 연봉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2억 5000만원에 동결시켜주며 나름대로 베테랑 예우를 해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12. 2019 시즌

박정진임창용이 나란히 은퇴하면서 KBO 리그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외야는 사실상 김헌곤-박해민-구자욱으로 정리되었고, 치고 올라오는 백업으로 박찬도이성곤 같은 이들도 있으며 무엇보다 김동엽이 영입되면서 사실상 지명타자 자리는 빼앗길 것이 거의 확실하다.[28] 또한 김동엽이 발도 빠른 편이어서 대주자로 교체될 일도 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경기가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졌을 후반에 구자욱[29]이나 김헌곤[30]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우익수를 한다던지, 러프가 가끔 지명타자로 뛸 때 1루수로 선발 출장한다던지, 타격이 약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키스톤 콤비의 타순이나 백업포수가 선발출장했을 경우에 대타로 나서는 경우에나 출장할 것이다.

2019시즌 2개의 안타를 치면 삼성 소속 최다안타를 기록하게 된다. 또한 2200안타까지 45개가 남았으므로 백업으로 무난하게 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팀 최다 볼넷까지는 45개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리그 전체로 봐도 현재 7318타수로 7332타수의 양준혁, 7359타수의 정성훈을 넘어 최다 타수 2위에, 2155개의 안타는 2156안타와 2159안타의 정성훈을 넘어 최다 안타 3위에, 2097경기는 2111경기의 김민재, 2135경기의 양준혁을 넘고 2159경기의 이진영까지 최다경기 2~3위를 기록할 수 있다.


3월 27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만루홈런을 포함하여 2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리고 삼성 소속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하며 2,157 안타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3월 28일에는 4타수 4안타를 쳐내며 2,100경기 출장과 900타점을 동시에 달성하였다. 또한 이 날 경기를 통해 박한이는 이승엽을 제치고 삼성소속 통산 안타 갯수 1위에 등극하게 되었다. 경기 종료 기준으로 타율이 0.778, OPS 2.263라는 본격 회춘 스탯을 찍고 있다. 게다가 4경기 출장했는데 sWAR가 0.49를 찍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3월 31일 두산전 7:4로 지고 있는 2사 1, 2루 상황에 대타로 나왔다. 박치국의 타구를 제대로 받아쳐 날렸지만 하필 라팍에서 제일 깊숙한 외야 구석까지 날아가면서 워닝 트랙에서 잡히고 말았다.
3월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6 16 9 0 0 2 4 7 4 1 0 0 .563 .650 .938 1.588

4월 들어선 결장을 하거나 대타로만 나오는 경우가 늘었다.

4월 18일 키움전 오랜만에 우익수로 선발 출전해 5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4월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3 35 5 1 0 0 1 0 2 11 0 0 .143 .189 .171 .361

5월 11일 롯데전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5회 말 1사 2, 3루 상황에 레일리를 상대로 2타점 2루타를 때려내며 결승타를 기록했다. 이후 8회 말에 좌익수 방면 희생플라이로 1타점을 추가하며 3타수 1안타 3타점으로 활약했다.
5월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0 22 4 1 0 0 1 4 3 5 0 0 .182 .269 .227 .497


5월 26일 키움전에서는 9회말 2사 1-2루에서 대타로 출전해 조상우로부터 초구를 받아쳐 끝내기 역전 2타점 2루타를 때려냈다. 단 한 타석으로 존재감을 제대로 과시했던 경기. 하지만 그땐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본인조차도. 이것이 그라운드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될줄은….기사

3. 국가대표 경력

3.1.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대학생 신분으로 A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프로 데뷔도 전에 병역특례를 받았다.

3.2. 1999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3.3. 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4. 불명예 은퇴

2019년 5월 27일 음주운전 적발로 인해 은퇴를 선언하면서 허무하게 19년동안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박한이는 삼성에 남겠다는 마음 하나로 돈을 두둑히 받을 기회를 스스로 버리면서까지 삼성에 남았고, 당초 삼성구단측에서는 박한이를 레전드 대우를 해주기 위해 박한이가 은퇴하면 영구결번 추진 및 지도자를 통한 제2의 인생을 계획중이었는데 이렇게 스스로 그걸 걷어차버린 꼴이 되어버리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편 KBO는 박한이의 은퇴 선언과 관계 없이 90경기 출장 정지, 제재금 500만원, 봉사활동 180시간을 부과했다.

대구지검은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한편 은퇴 선언을 한 이후에도 여전히 등록선수로 남아 있다가, 정규시즌이 끝난 뒤인 2019년 9월 30일부로 임의탈퇴 공시되면서 공식적으로 은퇴 처리되었다.[31]# (선수 생활에서 1년 더 뛰었으면 20년 동안 선수 뛰고 은퇴 한 당시 통산 20시즌, 만 41세이다.)

이후 약 1년 반정도 자숙 기간을 갖다가, 2020년 11월 23일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복귀하게 되었다.

[1] 당시 대표팀 최연소 선수는 투수 강철민.[2] 2007년 당시 서른을 코앞에 둔 박한이는 삼성 주전 야수 중 막내였다! 당시 삼성 타선은 노쇠화가 심한 수준이었으나, 2008년부터 강력한 세대 교체를 통해 갈려나가고 최형우, 채태인, 박석민 등 신진 세력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순식간에 고참이 되고 말았다.[3] 원래 삼성 역대 신인 계약금 중 2위였으나 2018년 이후로 1차 지명을 받은 최채흥, 원태인, 이승현(2002)이 3억 5000만원을 배찬승이 4억을 받으며 6위로 밀려났다.[4] 사실 이건 00년대 대구팜이 흉작이라서 그런게 크긴 해도 배영수, 권혁, 박석민, 윤성환, 오승환, 김상수 등 레전드들을 생산해낸 시절이다.[5] 1번 타자로 출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두산의 4번 타자였던 김동주보다도 도루 개수가 적었고 결국 시즌 후 연봉 삭감까지 당했다.[6] 통상 FA시즌을 앞두고 선수의 경우 연봉을 많이 인상해놓고 싶어하는게 예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기도 할 뿐더러, 08시즌 박한이는 경기 출장수는 104경기로 잔부상으로 인해 당시 커리어 중에서 제일 적었음에도 팀 내 유일한 3할 타자에 스탯티즈 기준으로 wRC+가 134.4로 커리어하이급이었으며, WAR 역시 3.98로 4에 육박하는 시즌이었다. 만약 이런 세이버 지표를 일찍 도입하고 선수가 알았더라면 연봉조정에서도 나름 승산이 있었으나, 2000년대 후반까지도 국내에는 이런 세부 스탯을 제대로 정리하고 있지 않았기에 클래식 스탯으로만 판단해야 됐고, 삼성 구단 특성상 경기수 출장이 적은 것은 기여도 측면으로 직결되어 연봉 협상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었기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7] LG전, 볼넷 출루[8] 2루타 29개, 3루타 2개[9] 다만 스탯티즈에서는 .400로 기입되어있다.[10] 심지어 직전 시즌에는 오히려 8월부터 대폭발하며 3할을 수성했던 것에 비하면 더 아쉬운 부분이었다.[11] 10년 연속 100안타는 박한이가 한국프로야구 사상 네 번째로 달성한 기록. 그 전에는 어느 타격의 신(무려 16년 연속), 마해영, 장성호 셋 뿐이었다.[12] 리빌딩이라고 생각해도 나이가 강봉규가 더 많아서 말이 안된다.[13] 그래도 만에하나 이적했었다면 강동우와 다시 쌍두마차를 이뤘을 것이다.[14] 하지만 정작 한화의 외야진은 강동우, 최진행을 더해도 8개구단 중 최약체이다[15] 11년 연속 100안타는 이전에 한국 프로야구에서 양준혁(이 분은 16시즌 연속이다!!!)만이 기록하였다.[16] 특히 마지막 경기인 5차전에서는 나란히 2, 3번에서 7타수 무안타 1사구를 기록하며 혈을 제대로 막았다(...).[17] 하지만 시즌 후 밝혀진 바로는 무릎 수술을 받은 후 100안타 기록과 하필 주전 외야수 박해민이 부상을 당하며 본인 스스로 복귀를 서두르는 바람에 시즌 내내 무릎 통증에 시달리며 경기를 뛰었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짧게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무릎에 찬 물을 뺐다고 한다.[18] 박한이의 생애 첫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이다.[19] 그리고 6년 뒤 어느 수도권 구단의 23년 원클럽맨이 이런 식으로 이적해버렸다.[20] 사실 양준혁 본인도 2010년에 그렇게 은퇴했기 때문에 박한이의 입장에 동감할 수밖에 없다.[21] 투수 쪽에는 당장 1976년생 최고령 박정진임창용이 있고 그 외에 1979년생인 이정민도 있다.[22] 박용택이 박한이보다 생일이 3개월 느리다. 게다가 박한이는 빠른 79년생인지라 박용택보다는 1년 선배 데뷔도 박한이가 빨랐다[23] 물론 이미 나이가 40대로 접어들었고 또 요즘 FA 시장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임창용, 이호준처럼 아예 FA 신청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24] 이날 박한이만 안타를 쳤다면 삼성은 선발 전원안타를 기록할 수 있었다.[25] 니퍼트를 상대로 통산 36타수 13안타. 타율 .361[26] 2018 시즌 삼성 라이온즈의 첫 끝내기 승리였다. 패전 투수는 책임주자를 허용한 이태양이었으나 실책으로 인해 이닝이 종료되지 않아 비자책점으로 처리되었다.[27] 참고로 같은 팀 상대 같은팀 상대 두 경기 연속 끝내기 안타는 두 번째다. 첫번째는 안지만, 심창민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안타를 친 롯데 자이언츠의 문규현.[28] 김동엽은 2018년에 27홈런을 쳤는데 영양가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그 정도만 때려주더라도 러프에게 쏠리는 견제를 분산시킬 수 있는 확실한 카드이다.[29] 많이 좋아졌지만 수비가 아직 살짝 불안하다. 수비범위도 넓고 어깨도 강하지만 가끔가다 정줄을 놓는 수비를 하는 등 안정감이 다소 쳐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박한이는 안정적인 수비가 가능하므로 승부가 기울어진 경기 후반에 쓰일 수 있다.[30] 2017, 2018 시즌에도 시즌 말미로 갈수록 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여름에 김헌곤의 체력이 떨어지고 순위 싸움을 위하여 안정적인 카드가 필요하다면 확실한 카드인 박한이가 필요할 것이다.[31] 이는 박한이가 9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상황이기 때문에 징계를 소화하기 위해 등록선수 명단에 올려놨던 걸로 보인다.(실제로 출장정지 징계는 등록된 시점에서부터 유효하며 미등록 기간이거나 임의탈퇴 공시될 경우 적용되지 않는다) 이후 코치로 복귀한 뒤 기사를 보면 90경기 중 89경기는 이미 소화했고 현재 남은 출장정지 징계 1경기만 소화하면 된다고 언급된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038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038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