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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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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conry, a living human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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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연도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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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한국에서의 매사냥3. 외국에서의 매사냥4.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5.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0호6. 여담7. 관련 영상8. 대중 문화 속의 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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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매를 부려 사냥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전세계적으로 최소 수천 년 이상 이어진 전통 사냥 기법이다. 매를 부리는 사냥꾼을 주로 응사(鷹士) 혹은 매꾼이라고 한다. 여기서 '매'는 (隼, falcon)가 아닌 작은 수리들을 일컫을 때의 매(鷹, hawk)이며 일반적으로 매사냥에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맹금류들이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주로 수리과로 분류되는 참매를 부려 사냥을 한다.

본래는 유라시아 초원 유목민들로부터 유래한 사냥 풍습으로, 우리나라 등 극동지역 뿐만 아니라 몽골, 중앙아시아, 이슬람권이나 유럽에서도 귀족의 사냥법으로 널리 퍼졌다.[2] 현재 매사냥 전통은 대략 60여 개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역마다 주어진 환경과 서식하는 맹금류의 종이 달라 매사냥 방식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가령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넓은 사막을 지닌 국가에서는 장거리를 비행하는 매를 사용하는가 하면 초원이 넓은 몽골의 경우 독수리처럼 몸집이 큰 맹금류도 사냥에 사용한다. 반면 대한민국과 일본, 유럽 등 산림과 평야가 섞인 지역에서는 새매, 참매처럼 몸집이 작고 단거리를 비행하는 새를 선호한다.

대한민국에서는 2000년 2월 18일에 대전광역시가 2007년 3월 23일에 전북특별자치도가 각각 시도무형유산으로 지정해 보존·전승 중이다. 또한 2010년에는 11개국[3]이 참여하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이후 추가적으로 13개국[4]이 더 참여하여 총 24개국이 공동 등재되었다.

2. 한국에서의 매사냥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응사의 존재가 문헌적으로 확인된다. 2세기 고구려 태조대왕숙신의 사신이 백마와 흰 매를 진상했다는 기록부터 백제 17대 아신왕, 신라 26대 진평왕, 54대 경명왕도 매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또한 9세기 일본 승려 엔닌의 여행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지금의 전라남도무주 태수의 집에서 매를 기르는 사람이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때는 원나라의 영향으로 매사냥 담당 관청인 응방이 전국적으로 설치되었으며 고려의 매는 특히 품질이 좋다고 여겨졌는데 그중에서도 황해도 해주목과 백령진에서 나는 매가 제일이었다고 한다. 한반도 북부 만주, 연해주 일대에서 나는 품질 좋은 매를 해동청이라 불렀으며 조공 품목에 단골로 올라갔다. 한참 활발하게 조공으로 바쳐질 때는 아예 응사들에게 벼슬도 주고 그마저도 모자라서 응사의 규모를 확대하기도 했다.[5] 조선왕조실록에도 태종, 성종, 연산군 등이 매사냥을 자주 했다는 기록이 있어 최소 수천 년 이상 이어진 전통이라 할 수 있다.

현대에는 국내에 서식하는 맹금류들의 개체수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들이 많아 일반적으로 맹금류를 기르는 것이 어려워졌다. 한국의 매들 중 매사냥에 주로 쓰이는 , 참매, 새매, 황조롱이 등 국내 서식 매류의 경우 모두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 중이며 이 중 매, 참매, 새매의 경우 대한민국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에 해당하여 개인이 허가없이 사육하면 처벌 받을 수 있다. 결국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은 응사와 그 이수자 외에는 매사냥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해외의 맹금류들 역시 국내에서 키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우선 대부분의 맹금류는 CITES에 등재되어 있고 CITES 규약 상으로 CITES 2급의 경우 상업적 거래가 가능하나, 한국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그 시행령과 환경부 장관 고시를 통해 앵무목 전 종, 문조 및 검은턱금정조를 제외한 모든 CITES 관리 대상 포유류 및 조류의 상업적 수입 또는 반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에 위반하여 수입 및 반입할 경우 처발하고 동물은 몰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의미에서 해외산 맹금류를 수입해서 매사냥을 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매사냥 및 매를 사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대전에 있는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에서 매사냥 교육[6]을 이수한 후 자체 실시하는 도제응장제도에 합격해야만 매 사육 허가증이 발급되어 제한적으로 사육할 수 있다. 단 도제응장제도에 합격해도 바로 응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수자 신분이 되는 것이며 응사가 되는 것은 전수교육사(전수조교)가 된 이후에나 가능하다.

박용순 응사가 자제에게 매사냥을 전수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알겠지만 복종시킨다기보다는 서로 적응해가는 느낌에 가깝다. 하지만 이건 알이나 아주 어린 새끼일 때부터 기른 경우에나 그렇고, 자연에서 아성체나 성체를 포획해서 길을 들이는 경우는 말 그대로 들개를 복종시키는 것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람이 주는 밥을 받아먹을 때까지 굶기며 야생성을 꺾어야 한다. 사람에게 익숙해지도록 하루종일 사람 곁에 묶어두기도 하는데, 예민한 성격의 맹금류들은 굶주림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저렇게 길들이는건 응사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기 때문에, 매 둥지를 털어서 알을 훔쳐오는걸 선호하는 편.

단, 한국식 매사냥은 그 특성상 원칙적으로는 매의 장기적 사육이 불가능한데, 매를 계속 잡아두기보다는 같이 지내면서 공생하는 개념에 가깝기 때문에 어느 시점이 되면 매를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매가 떠나게 되면 응사는 새로운 매를 찾는 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하지만 응사 입장에서도 처음부터 길들이는건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만 방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먹이와 호각소리로 풀어줬던 매를 다시 찾아서 데려온 뒤, 새로운 개체를 잡았다고 신고하는 식이다.

3. 외국에서의 매사냥

한국처럼 규제가 심하지 않은 외국에서는 비교적 매사냥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편이다.

옆나라 일본은 한국처럼 매나 참매 등의 맹금류들이 천연기념물로 등록되어있지 않고 관련 법규가 관대한 편이라 응사만 300여 명 가까이 된다. 다만, 응사 자격증 따기가 꽤 어려운 편이다.

카자흐키르기스인검독수리를 길들여 사냥에 사용한다.

아랍권에서는 매사냥이 부호들이나 왕족들의 아주 값비싼 취미여서 매사냥에 들이는 돈도 엄청나다고 한다.

4.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전통사냥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매를 길들여 꿩이나 토끼 등을 잡는 매사냥은 그 역사가 오래 되어 고대 이집트, 페르시아 등지에서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사냥법은 인도에서 기원하였다는 설이 있을 만큼 인도지방에서 크게 성행하였고, 중국에서는 원나라 때에 유행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매사냥 그림이나 『삼국유사』,『삼국사기』등의 매사냥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도 오랜 옛날부터 매사냥이 성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간도(間島)와 북한지방에서 해동청(海東靑)이라는 우수한 매가 산출되어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매사냥은 특히 귀족층 사이에서 성행되어 고려시대에 매의 사육과 매사냥을 담당하는 관청인 응방(鷹坊)을 두기까지 하였다. 고려 충렬왕 때에 설치한 응방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나 백성들에 대한 부담이 커 존폐 여부의 논란이 잦았다. 매사냥은 민간에도 크게 확산되어 일제하에서는 거의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기능보유자 박용순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매사냥에 익숙하였고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이미 새매로 매사냥을 시작하였다. 군 복무중에도 사육사로 매를 사육 훈련하며 꾸준히 매사냥을 지속해 온 박용순의 매조련과 사냥 방법은 전통성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5.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0호

매사냥은 고조선시대 만주지방에서 풍습으로 전해오던 것이 삼국시대 이후 성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국가에서 매사냥을 전담하는 응방이라는 관청을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이를 확대하여 내응방을 두었다. 일제시대 때 조선의 고유한 풍습이라 하여 금지했다가 해방 후 다시 소생했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진안군 백운면 일대는 날짐승이 많고, 고원지대라서 눈이 많이 내리면 매의 먹이가 되는 꿩이 마을 가까이 몰려왔으므로 옛부터 매사냥이 성행하였다.

지금은 백운면 출신인 전영태씨가 매사냥의 전통기법을 전수받아 전통 매꾼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6. 여담

7. 관련 영상







8. 대중 문화 속의 응사



[1] 총 24개국 공동 등재.[2] 중세 그린란드의 주요 산업이 유럽의 왕공들에게 사냥용 매로 인기가 좋았던 흰매(Gyrfalcon)를 길들여 판매하던 것이었을 정도. 덩치가 크고 희귀해서 왕족들만 사냥에 쓸 수 있도록 제한이 걸려 있었다. 현재 매사냥 시장에서도 흰매는 특히 고가에 거래되는 종이다.[3]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벨기에, 아랍에미리트, 스페인, 프랑스, 모로코, 몽골, 카타르, 시리아, 체코[4]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독일, 헝가리, 아일랜드, 이탈리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네덜란드, 파키스탄, 폴란드, 포르투갈, 슬로바키아[5] 특히 요나라 황족들의 사냥에 쓰이는 매 해동청(海東靑)은 모두 만주 동쪽과 연해주에 살던 여진족이 바치는 공물이었다. 요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천조제는 해동청을 이용한 사냥을 좋아했는데, 해동청은 험준한 낭떠러지에 살아서 이 매를 잡으려다 사람이 떨어져 죽기 일쑤였다. 그래서 해동청을 잡아 바치라는 요나라의 요구가 심해지면, 여진족들은 모두 분개하여 치를 떨었다. -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 도현신 지음[6] 2023년 기준 초급50, 중급100, 고급200 (단위: 만원)[7] 응사가 모티브인데 매가 아닌 익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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