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의 장미(만화)| | |||
주역 | |||
마리 앙투아네트 |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 ||
한스 악셀 폰 페르젠 | 앙드레 그랑디에 | ||
조역 | |||
로잘리 라 몰리에르 | 알랭 드 수아송 | ||
기타 등장인물 |
마리 앙투아네트 マリー·アントワネット Marie Antoinette[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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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colcolor=#000000> 탄생 | 1755년 11월 2일 | |
사망 | 1793년 10월 16일 (향년 37세) | |
성별 | 여성 | |
국적 | ||
가족 | 아버지 프란츠 1세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큰언니 마리아 안나 큰오빠 요제프 2세 둘째 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 셋째 언니 마리아 엘리자베트[3] 둘째 오빠 카를 요제프[4] 넷째 언니 마리아 아말리아 셋째 오빠 레오폴트 2세 다섯째 언니 마리아 요제파[5] 여섯째 언니 마리아 카롤리나 넷째 오빠 페르디난트 카를[6] 동생 막시밀리안 프란츠[7] | |
남편 루이 16세 장녀 마리 테레즈 장남 루이 조제프 차남 루이 17세 | ||
외모 | 금발벽안[스포일러] | |
성우 | | 우에다 미유키 (TVA) 히라노 아야 (신작 극장판) |
| 문지현 (대원 비디오판) 권희덕[9] (KBS) 윤성혜 (EBS, 신작 극장판) 박영희 (MBC 극장편집판)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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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71a36><colcolor=#ffffff> 애니메이션판[10] |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주인공.
당연하겠지만, 바로 그 실존인물인 프랑스의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이다.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와 함께 양대 주인공이며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가 픽션상의 주인공이라면 이쪽은 실화상의 주인공이다.
2. 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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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소녀 시절 | 성인이 된 프랑스 왕비 시절 | 최후반부에 백발이 된 모습 |
그 옛날 베르사유 궁전에서 눈부시고 찬란하게 당신은 마치 붉은 장미처럼 군림하셨지요. 안녕히 가십시오! 프랑스 최후의 왕비님!!
원작 8권 中 로잘리가 처형식 당일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며 생각한 속마음
원작 8권 中 로잘리가 처형식 당일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며 생각한 속마음
예쁜 금발[11]과 반짝이는 푸른빛 눈, 진주색의 하얀 피부를 지닌 누구나 한눈에 반할 만큼 순수하고 우아한 매력의 오스칼과 더불어 베르사이유의 장미 내 최고 미인. [12]
얼마나 절세미녀인지 알 수 있는 예시를 들자면 원작에서는 유명한 모차르트와의 에피소드는 물론 오스트리아 공주 시절 그녀의 애교와 매력에 넘어가 선생님들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하녀들 또한 마리의 매력에 안 넘어간 사람은 목석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특히 애니메이션 2화에서 오스칼에게 구출되어 겨우 목숨을 건진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녀 복장 상태에서[13] 루이 15세와 프랑스 귀족들 앞으로 우아하게 다가갔는데 그 자리에 있던 루이 15세와 귀족들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녀 차림인 건 신경쓰지도 않은 채 일제히 감탄했다. 또한 프랑스 혁명으로 왕비에서 폐위되어 감옥에 수감되고 머리가 화사한 금발에서 백발로 세어버리고, 예전의 화려한 모습과는 정반대의 초라한 모습으로 변했지만 멀리서 본 관중들이 아름다운 미인이라고 할 정도로 미모만은 변함이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우아하고 매력적인 미인이긴 했지만 좌중을 감탄시킬 정도의 엄청난 미녀[14]까진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도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한 미인의 기준이었던 백옥같은 깨끗한 피부와, 고열량 위주의 식사와 과식으로 대부분 뚱뚱했던 당대 왕족들과 반대로 호리호리한 몸매, 풍만한 가슴, 왕족 특유의 타고난 우아함과 나긋나긋한 화술에 뛰어난 패션 센스까지 적극 활용하여 당대의 스타일 아이콘이자 미인으로 군림했다.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를 자주 그린 엘리자베스 비제르브룅 역시 '전형적인 미인상은 아니지만, 결점 없이 투명한 새하얀 피부, 왕비다운 고상한 기품과 우아함을 지닌 매력적인 여인' 이라고 적기도 했다.
3. 성품
상냥하고 순진한 인품[15]과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졌으며 그와 동시에 당시 강대국인 오스트리아의 공주이자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서의 강한 긍지와 자존심[16]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하지만 상냥한 성품과는 별개로 어릴 때부터 워낙 놀기를 좋아하는데다 공부나 힘든 일은 물론 깊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하다 못해 피하려드는 무책임한 면모가 큰 단점이었다. 때문에 공부 시간 내내 집중을 하지 못하는 걸 넘어 애교와 꾀를 피워 선생님들을 속여 수업을 피하곤 해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르친 선생님도 "마리 님은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열정이 없어서 걱정입니다"라고 한탄했고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마저 그런 딸의 철없는 모습에 여러 번 뒷목을 잡을 정도였다. 그나마 오스트리아의 막내 공주로 살던 시절에는 나이도 어린데다 자신을 비호해줄 부모형제가 모두 건재했기 때문에 그저 성격상의 사소한 결함으로 치부되어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런 철없고 무책임한데다 상황 파악을 못하는 면모를 혼인 후 프랑스의 왕세손비가 되고 왕비가 된 이후에도 고치질 못해서 자신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 퍼지는데 크게 일조하고 말았다.
또한 자신이 처한 상황은 생각치 않고 지나치게 감정에 솔직하고 남을 너무 쉽게 믿는 순진하고 다소 천연적인 면모가 있다. 하지만 정치판과 사교계에서는 감정이 솔직하고 남을 쉽게 믿는 마리는 아주 좋은 먹이감에 지나지 않았고 이는 그녀의 위상과 평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더 문제는 호의를 품은 사람에게는 엄청난 애정공세를 베풀고, 반대로 그 사람에 대한 간언을 들은 척도 안하면서, 반대로 자신이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상종을 안하다 못해 일관된 경멸과 회피로 일관하는 등, 좋게 보면 인간관계의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만 나쁘게 보면 아무리 싫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는 융통성이 전혀 없고 기본적인 공사구분도 못해 쓸데없이 적들을 불리고 다녔다.[17][18]
이런 이유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서 적어도 개인적으로 사이가 나쁜 사람은 없었지만 공사구분도 못하는 철없는 면모로 인해, 프랑스 사회는 갈수록 혼란스러워지는 와중에 무책임하게 굴고 가까운 사람에게만 곁을 내주는 칼같은 인간관계의 정리함은 오히려 대외적인 이미지만 갈수록 최악으로 치닫는데 한몫했다. 이런 점이 앞서 말한 놀기를 좋아하고 깊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무책임한 성격에 이어, 자신이 좋아하면 민중들도 좋아해줄 거라는 착각과 왕비라는 신분이 합쳐지면서 가히 엄청난 악효과를 낳는다.
한마디로 개인적으로는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왕비로서는 권리는 누리고 싶고 그에 따른 책임은 피하려는 순진하다 못해 안일한 인물이다.
4.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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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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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귀엽고 어떤 사람이든 사로잡는 매력과 활달함을 갖고 있지만 사람이 좋아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무엇보다 아직 어려서 자기 자신을 억제하지 못해... 어쩌면 왕관과 왕비라는 지위가 응석받이에 순진하기만 하고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평범한 딸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게 아닐까?
신뢰하는 메르시 백작, 제발 어린 왕비를 지켜주시오. 그러나 내 딸의 가장 아름다운 시대는 이제 지나가 버렸다고 난 믿고 있소...
원작 1권 中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혼인 동맹을 맺으면서 딸의 단점을 생각하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걱정
신뢰하는 메르시 백작, 제발 어린 왕비를 지켜주시오. 그러나 내 딸의 가장 아름다운 시대는 이제 지나가 버렸다고 난 믿고 있소...
원작 1권 中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혼인 동맹을 맺으면서 딸의 단점을 생각하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걱정
누구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순수하신 앙투아네트님을 만나게 되면 앙투아네트님을 좋아하시게 되지. 하지만, 그 솔직함을 너무 드러내시는 점이 문제가 된다는 부분을 모르신다는 게 걱정이야... 난 그 점이 무지 두려운 거야.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그런 마리 앙투아네트님을 어떤 눈으로 볼지...
애니판/ 원작 2권 中 마리 앙투아네트의 장점을 이해하면서도 그녀를 걱정하는 오스칼의 생각
애니판/ 원작 2권 中 마리 앙투아네트의 장점을 이해하면서도 그녀를 걱정하는 오스칼의 생각
이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당시의 감동을 잊지 않았다면 그녀는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을 것이다.
원작 1권 中 왕세손비 시절 처음 파리에 방문했을 때 자신에게 환호를 보내는 프랑스 시민들에게 감동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에 달린 각주
원작 1권 中 왕세손비 시절 처음 파리에 방문했을 때 자신에게 환호를 보내는 프랑스 시민들에게 감동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에 달린 각주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회전시키려 하는 자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진리를 앙투아네트는 끝내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작 7권 中 부녀자들의 베르사유 궁전 습격이 일단락되고 가족들과 함께 파리로 끌려가 튈르리 궁에 유폐된 후에도 여전히 철지난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혁명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에 달린 각주
원작 7권 中 부녀자들의 베르사유 궁전 습격이 일단락되고 가족들과 함께 파리로 끌려가 튈르리 궁에 유폐된 후에도 여전히 철지난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혁명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에 달린 각주
물론 우리에게도 아들이 있었죠. 우리가 아들에게 먹일 우유도 없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때... 당신은 호화로운 궁전에서 보석을 몸에 걸친 채 웃고 있었죠.
원작 8권 中 아들 루이 샤를을 강제로 데려가려고 하자 당신들도 부모가 아니냐고 절규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혁명군이 한 대사
원작 8권 中 아들 루이 샤를을 강제로 데려가려고 하자 당신들도 부모가 아니냐고 절규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혁명군이 한 대사
본인이 한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한 최후를 맞이했고[19]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이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등의 장점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면모로 해결하기엔 당시 프랑스의 문제는 너무나 심각했고 시대가 원한 것도 전형적인 왕정 시대의 왕비가 아니었다는 게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있어 큰 비극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무고한 인물은 아니며 개인으로서는 착하고 고운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남편 루이 16세와 마찬가지로 일국의 왕비로서 책무보다[20][21][22] 자신의 감정을 더 중시해서[23] 자신의 위치나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보지 않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볍게 행동하며 인망을 망치고 실책을 연달아 저지르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한계가 뚜렷했던 어떻게 보면 왕비로서는 실격인 인물이었다. 게다가 정략결혼으로 희생당한 피해자라고 두둔할 수도 없는 게 마리는 남편 루이 16세가 아내를 배려하고 한눈도 팔지않는 남자여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무엇보다 페르젠과의 사랑을 포기한 부분[24]만 제외하면 작중 내내 프랑스의 왕비로서 피해는 커녕 온갖 특혜란 특혜[25]는 다 누리고 다녔다.
냉정하게 정리하면, 이 만화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비로서의 권리와 특혜는 있는대로 다 누려놓고 그 대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는 책임지기 싫어하며 나라의 안위도 신경쓰지 않고 무능하고 무책임하게 굴다가[26], 그로 인해 일어난 프랑스 혁명에서 이제껏 저지른 실책에 대한 응보를 남편의 처형과 자식들과의 생이별로 처절하게 돌려받자 반성하거나 상황을 수습하긴 커녕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냐고 떼를 쓰기만 하는 철부지[27][28][29]에, 폭동을 진압하기 전 날, 오스칼에게 "어째서 신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평범한 여자에게 어울리는 평범한 운명을 마련해주지 않았을까요" 라고 울먹이며 한탄하던 것처럼, 차라리 고위 귀족과 결혼해 평범한 귀부인으로 살았다면 본인도 국민도 모두 행복했을 여인이었을 것이다.[30]
결론적으로 그녀 한명의 개인적으로는 착하고 순진해도, 정치적인 자리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한 사람이 민중과 정치판의 심정과 동향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으면 무슨 꼴이 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인간상이다. 또한 비슷하게 페르젠에 대한 연심과 여성으로서 누릴 행복을 포기한 것에 괴로워 했지만 이를 극복하는 동시에 자신이 지금까지 누려온 특권에 의문을 품고, 자신의 신분과 특권을 모두 버리고 조국과 백성을 지키고자 혁명에 투신하는 길을 결심하는 성별과 신분을 뛰어 넘어 주체적인 한 사람으로 사는 삶을 선택한 오스칼의 안티체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역사에 의하면 그녀의 사치가 역대 프랑스 왕비들 중 가장 적은 비용이었으며[31], 오히려 백성들에게 감자를 올바르게 재배하여 먹을 수 있도록 돕는 등 작은 도움을 주는 너그러운 선행도 많긴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노력만으로는 백성들의 삶을 완전히 나아지게 할 순 없었다. 또한 너무 어린 나이에 후계자를 일찍 낳지 못해 친구들을 제외한 귀족들에게 왕따를 당하거나[32], 백성들을 어느 정도 돕기 위해서 조금 소박한 생활을 유행시켰으나 역으로 왕비가 왜 이리 천박하냐는 욕까지 받는 등 정신적으로 심하게 상처받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안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모저모 노력해도 온갖 욕을 먹고 이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음에도 자살을 시도했다거나[33], 그 누구도 원망하지도 않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자 한 걸 보면 엄청난 대인배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를 서술해본다면...
- 첫번째로는 뒤바리 부인한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아직 베르사유에 온지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억압적인 관습은 물론 친구를 제외한 귀족들의 뒷담화까지 받으면서 생긴 정신적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다라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지만 왕세자비로서의 자존심과 품위를 절대 잃지 않았다. 뒤바리 부인 역시 저주하지 않고 '다시는 말을 걸지 않겠다' 라고 확실히 마무리지었다. 물론 자신을 그토록 챙겨주는 오스칼의 위로 덕분인 것도 있지만, 오스칼 역시 이런 마리의 고귀하고 용기있는 자세에 크게 감탄했다.
- 두번째로는 오스칼과 드 게메네 공작의 사격 시합이 있었을 때도 일부러 오스칼에게 딱 한달 간의 근신처분만 내리면서까지 오스칼을 도와주었다. 비록 드 게메네가 이 사건의 큰 주범이긴 하나, 이유야 어쨌든 공작을 건드리면 큰 엄벌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마리는 자신의 절친과 마찬가지인 오스칼에게 절대 피해가 가지않을 수 있도록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가벼운 처분을 내렸다.
- 세 번째로는 위병대에서 한 군인이 총기를 팔아버린 행각이 발각되어 체포당하고 다음 날, 사형을 당할 상황에서 오스칼과 위병대를 비롯하여 많은 백성들이 군인의 석방을 요구하게 되자, 주변 귀족들의 차가운 거부와는 달리 남편 루이 16세에게 군인을 빨리 석방시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졌는데, 고작 총기 하나 팔았다는 이유로 처형된다면 백성들의 민심을 크게 잃을 수 있다는 걸 마리가 스스로 판단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때는 본인이 백성들한테 조롱거리로 비난받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다만 이후에는 시대착오적인 절대왕정 방향을 주장하는 실책을 고려하면, 군인 석방을 주장했을 때의 현명한 판단을 계속 유지하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울 다름이다.
- 결정적으로 모든 걸 잃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 누구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비록 많은 실책을 벌인 건 맞지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과대 포장되고 다이아몬드 사기 사건의 누명과 레즈비언 루머로 인해 악녀로 지목당하는 것도 모자라 아들의 위증으로 근친상간 모욕까지 당하는 등 너무 가혹한 대우와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마리는 마지막까지도 왕비으로서의 침착함을 잃지 않았고, 남편인 루이 16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피가 프랑스의 장래에 보탬이 되길 바랬고, 남은 자식들에게 절대로 자신의 죽음을 복수하지 말라고 부탁했다.[34]
6. 대인관계
6.1.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 오스칼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애니판 최종화 中 로잘리로부터 오스칼 소식을 듣는 마리의 독백
애니판 최종화 中 로잘리로부터 오스칼 소식을 듣는 마리의 독백
서로 선택한 길과 방향은 다를지언정, 서로에겐 소중한 진정한 친구.
작중 오스칼과의 관계는 대체적으로 원만한 주종관계로 그려진다. 마리가 처음 프랑스로 시집왔을 때 오스칼이 호위를 맡게 되고 마리도 처음부터 오스칼에게 호의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호의를 표하거나 편의[35]를 봐줬다. 물론 오스칼 역시 페르젠과의 불륜 관계, 목숨 걸고 낙마할 때 구하는 등 마리를 도우면서 동시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호의[36]를 딱 잘라서 거절하며 간신인 폴리냑 부인을 멀리하고 프랑스의 국모로서 책임감을 가지라고 간언을 하는 등, 마리 앙투아네트의 충신이자 진정한 친구로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오스칼은 프랑스의 왕비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화려한 궁정에서 날마다 사치스럽게 지내는 마리가 왜 그렇게 쓸쓸해하며 폴리냑 부인에게 의지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고, 결국 그렇게나 걱정하던 패르젠과의 추문이 온 사교계에 퍼지자, 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마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서 마리에게 진지하게 충고를 한다.
하지만 이때 마리는 그런 오스칼에게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알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여자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건 무리였냐고 물으며, 그동안 마리 자신은 사랑을 모르던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나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렸던 사실과 자신은 왕비이기 전에 살아있는 마음를 가진 여자이니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페르젠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며, 남편인 루이 16세는 분명 훌륭한 분이니 존경하지만 형식적으로 부부일지언정 절대 사랑하는 마음은 아니라며, 자신은 그렇게 허무한 마음을 채우기위해 그토록 사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오스칼은 그제야 자신이 그동안 마리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자책한다. 하지만 그런 오스칼과 반대로 마리는 자신을 걱정해준 오스칼의 마음이 진심인 걸 알고도 진지하게 듣지않고, 오히려 국정을 멀리하고 유흥을 즐기기에 바빴고, 자신을 좋지 않게 보는 국민들과 귀족들을 탄압하려는 등 철부지에 시대착오적인 모습만 보였다.
이로 인해 개인적으로 마리를 안타깝게 여긴 오스칼마저 제대로 마리에게 실망하고, 반대로 마리 역시 왜 오스칼이 자신의 호의를 거부하고 자신의 말을 매번 반대하는 건지에 이해하지 못하면서 둘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사실 이전에도 오스칼은 여러 경험들을 통해, 귀족인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국민의 대다수인 평민들이 엄연히 소수인 귀족과 왕족을 떠받치느라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고, 그저 신분이 더 낮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인권유린 문제[37]들도 알고 있었다. 또한 위병대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비귀족(+ 몰락귀족) 출신 군인들이 총까지 몰래 팔아치워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는 것도 목격하며 오스칼은 (마리의 일을 제외하고도) 프랑스 사회에 문제가 많으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몸소 실감[38]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스칼은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 이후, 변해가는 마리의 모습을 보면서 마리를 비롯한 왕실에 어느 정도 희망을 걸고 유화적인 방향으로 개혁하고자 했다. 그러나 삼부회의 실패, 귀족들의 말에 휘둘리는 우유부단한 루이 16세와 평민 대표를 진압하라는 왕실의 명령을 거부하는 오스칼의 부하 위병대를 탄압하고 왕권신수설을 고집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보고 결국 부르봉 왕조에 가망이 보이지 않게 되자 자신의 지위를 모두 버리고 부르봉 왕조에 등을 돌려 혁명 노선을 택한다.[39] 이후 오스칼과 마리 앙투아네트는 살아서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고 오스칼은 바스티유 함락전에 전사하고 마리는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하지만 자신을 배신한 오스칼에 대해 마리는 어떤 악감정도 품지 않았으며, 마리는 로잘리로부터 오스칼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그리워 하는 등 단순한 주종관계를 떠나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외전편에서 이 둘의 인연은 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인연으로 밝혀졌다. 프랑스 왕국 옆의 작은 나라 로렌 공국의 계승자였던 마리의 아버지 프란츠 1세는 오스트리아의 왕위 계승자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루이 15세는 로렌 공국이 합스부르크 가문에 합병되어 프랑스를 위협하는 걸 막고자 이 둘의 결혼을 허락해주는 조건으로 프란츠 1세에게 로렌 공국 지위를 포기[40]하라고 오스칼의 아버지 자르제 백작을 보내 종용시켰다. 당시 프란츠 1세는 처음에 망설였으나 사랑하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결혼은 물론 조국과 국민들이 에꿏은 전쟁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 루이 15세의 뜻을 받아 들이고, 어쩔 수 없이 명령을 전달하면서 사죄의 눈물을 흘리는 자르제 백작을 보고 루이 15세는 좋은 신하를 두었다고 말한다. 이후 자르제 백작은 프란츠 1세의 희생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막내 딸 오스칼 미들네임에 프란츠의 프랑스식 본명이 '프랑소와'를 붙히고, 같은 해에 태어난 마리 이름에도 아버지의 고향인 로렌이 들어갔다. 하지만 아버지들과 다르게 오스칼은 마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지 못하고, 마리도 사랑과 조국을 위해 고향 땅 로렌을 포기한 아버지와 다르게 자신의 감정에만 치우쳐 왕비로써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실책을 반복하다 결국 둘은 멀어지고 30대라는 다소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만다.
한가지 의미심장한 부분이라면, 오스칼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이 결정되기 전에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에서 한참 뛰다가 사망했다는 점이다. 프랑스 혁명에 더해 바렌 사건까지 더해져서 프랑스의 마지막 왕조인 부르봉 왕조가 완전히 끌어내려진 뒤에도 혁명파벌 내에선 루이 16세의 사형 여부에 대해 치열한 투표공방이 있었고, 겨우 1표 차이로 사형 지지 측이 승리해, 그 결과 루이 16세는 사형당했으며 마리 앙투아네트도 그 뒤를 따랐다.[41][42]
실제 역사로 대입한다면, 폴리냑 부인과는 달리 마리에게 어떤 사욕이나 권력욕도 없이 그녀 곁에서 끝까지 절친으로 남아준 랑발 부인과 상당히 유사하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랑발 부인은 친구인 마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오스칼은 프랑스의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6.2. 루이 16세
진심으로 사랑한 연인[43]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인생의 동반자였던 사람.비록 정략결혼으로 맺어졌지만 루이 16세는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온 콩피에뉴 숲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음 보고 한눈에 반했다. 하지만 자신의 소극적인 성격과 아름답고 매력적인 마리와 달리 볼품없는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마리를 멀리하고 간단한 대화조차 거부해서 부부사이는 다소 서먹했다.[44] 그래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었기에 마리가 사치와 유흥은 물론 도박을 하는 것도 용인해주고 겨우 생긴 아이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등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로 있어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인 것과 별개로 루이 16세 역시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찬가지로 당대 프랑스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겨우 문제를 타개하고자 열린 삼부회조차 날려 먹으며 무능하고 유약하게만 행동했다. 결국 루이 16세의 안일하고 무능한 행동은 프랑스 혁명의 단초를 제공했으며 끝내 바렌 사건이라는 최악의 실책을 저지르면서 모두에게 버림받아 가족들과 함께 폐위되어 처형당한다.
그래도 둘 다 어릴 때 결혼하여 온갖 고난을 함께한 애정은 분명해서 루이 16세는 바렌 사건 이후 탕플 탑에 갇혀 온갖 모욕과 고초를 겪는 마리를 보고 당신이 이 나라에 시집온 것이 이런 불행을 맛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거라며 미안해했고, 마리 역시 끝까지 남편을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켰으며 국민투표로 루이 16세의 처형이 결정되자 절망하여 루이의 품에 안겨 미친듯이 오열하고 끝내 감옥 안에서 남편이 처형당하는 소리를 듣자 시누이 엘리자베트 공주와 함께 절규하며 슬퍼한다.
루이 16세의 처형 이후 마리는 그에 대해 사랑이 없는 정략결혼이긴 했지만 아내와 남편으로서 20여년 간을 함께 살며, 자신에게 보여준 루이의 깊은 애정과 성실함은 진실했고 자신 역시 격렬한 연애 감정은 아니었지만 루이를 분명 사랑했다고 회고한다.
2025년 신극장판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이 후반부에 강조되는데, 루이 16세는 샤를이 페르젠의 사생아라는 가짜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마리 역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샤를은 엄연히 루이 16세의 아들이 맞다고 믿어달라 애원한다. 이에 루이는 오히려 마리를 다정히 위로해주며 아름다운 당신이 이런 보잘것 없는 자신의 왕비가 되어 자손들을 낳아준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값진 보물이라며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마리는 이러한 루이의 진심어린 사랑 고백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루이는 자신이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좋았을걸 후회하는 씁쓸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루이 16세는 바렌 도주 사건 중간에는 이 사건으로 페르젠까지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해, 이제는 우리에게 맡기고 안전하게 돌아가달라 간청하며, 이후 튈르리 궁에 몰래 들어온 페르젠에게 자신들의 일로 더이상 피해 입는 사람들이 없길 바라며 마지막까지 도와줘서 고맙다고 할 정도로 진심으로 페르젠에게 고마워 했다.
6.3. 한스 악셀 폰 페르젠
마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평생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왕세자빈 시절 파리를 방문했을 때, 오스칼만 데리고 신분을 숨기고 참석한 가면무도회에서 처음 만났고 서로 첫눈에 반한다.
사랑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정략 결혼을 위해 낯선 외국에서 답답한 생활과, 소극적인 남편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외로워하던 마리는 매력적인 페르젠에게 바로 빠졌으며, 서로의 진짜 신분(프랑스의 왕비/스웨덴의 귀족)을 알게 된 뒤에도 페르젠이 알현을 핑계로 매일 같이 프랑스 궁정을 드나들며 자주 만남을 가지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결국 현실적으로 둘의 사랑은 불륜이었고, 가뜩이나 프랑스에서 오랜 적국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외국 여자라는 편견이 박힌 상황 속에서 페르젠과의 추문까지 나돌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을 성적으로 조롱하는 팜플렛까지 돌아다니며 조롱 당하고 왕비로서의 권위도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상황을 보다 못한 오스칼의 조언으로 페르젠이 프랑스를 떠나지만, 문제는 여기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페르젠의 부재에 대한 공허함과 이미 그동안 쌓여있던 외로움 때문에, 폴리냑 부인 등의 간신들의 부추김에 넘어가 국정을 멀리하고, 패션과 도박에 빠져 사치하면서 가뜩이나 위기에 처한 자신의 평판을 스스로 깎아 먹고 만다.
거기다가 루이 16세의 무능과 아내의 잘못된 행동을 방임하는 우유부단함이 겹치면서 마리의 평판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고, 결국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이란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마리는 나라를 망치는 악녀이자 욕받이로 낙인찍히고 만다.
그제야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뒤늦게야 정신을 차리면서 페르젠의 조언대로 간신들을 멀리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서 왕실을 향한 프랑스의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았고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다.
그래도 다른 왕족과 귀족들이 자신들을 버리고 외국으로 도피하는 반면, 페르젠만은 끝까지 자신과 루이 16세의 곁을 지켜주자 그에게 더욱 의지한다. 이후 페르젠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가족들과 함께 바렌을 거쳐 친정인 오스트리아로 도주를 시도하지만 중간에 루이 16세의 강권으로 헤어지게 되자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가 바렌으로 도주하는데 실패하고 파리로 끌려가서 튈르리 궁에 유폐된 자신을 페르젠이 목숨을 걸고 변장한 채로 찾아오면서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지만, 이미 루이 16세와 자신의 최후는 정해져 있었고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치 않으니 차라리 왕비로서 아름답게 최후를 맞이하겠다며 페르젠과의 도피를 거절하면서 영원히 헤어지고 만다.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참수당하고 페르젠 역시 그녀의 사후 국민들에게 가혹한 정치가로 돌변해버리고, 그로 인해 원한을 산 스웨덴 국민들에게 두들겨 맞아 처참하게 살해당하면서 두 연인은 똑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일단 장본인들은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했고 서로에게 진심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시집간 타국에서 힘들어 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페르젠과의 관계는 개인적으로 심적인 위로를 주었을지는 몰라도, 결국 본질적으로는 부도덕한 불륜 관계에 불과했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서 저지른 수많은 실책들과 마찬가지로 일국의 왕비로서도 해선 안될 짓이었다.[45] 결국 페르젠과의 불륜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있어 평판을 떨어뜨리고[46] 후대에도 길이남을 이미지인 사치를 부리며 나라를 말아먹은 악녀로 낙인찍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원인이 된다. 게다가 두 사람의 사랑 아닌 불륜으로 애꿎은 아들 루이 샤를까지 페르젠의 사생아라는 루머에 시달리며, 온갖 뒷담화와 모욕을 당해야만 했으니[47] 마리 본인의 심적인 위로를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도움되지 않은 관계였다.[48]
6.4. 마리 테레즈, 루이 조제프, 루이 샤를
남편 루이 16세에게서 낳은 세 자식들. 결혼한 이래 7년 동안 임신하지 못해 후계자 문제로 온갖 뒷담화를 들으며 골머리를 앓고있었던지라 첫 아이이자 장녀인 마리 테레즈를 시작으로, 두 아들인 루이 조제프와 루이 샤를을 낳으면서 그동안 허무한 마음에 벌이던 온갖 사치와 유흥행각도 그만두고 마음의 평화를 찾게 해 준 존재들이었다.프랑스 혁명 이후 갈수록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녀들과 함께 지내는 순간을 위안 삼으며 버텨냈고 루이 샤를이 재판에서 자신에게 근친상간을 당했다고 위증해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르제 장군이 그녀 혼자만이라도 탈출하라고 권유해도 "어떠한 행복이 기다린다고 해도 아이들을 남겨놓고 혼자 도망칠 수는 없다"라고 의연하게 거부할 정도로 한결같이 자식들의 행복을 바라며 그들을 사랑했던 모성애 깊은 어머니였다.
하지만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는 별개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바로 그 자식들에게 피해만 끼쳤다. 먼저 장남 루이 조제프는 어린 나이에 척추결핵이란 불치병에 걸렸고 이때 마리는 필사적으로 현실을 부정하다가 결국 자신과 페르젠의 불륜으로 인한 벌을 받는 것이라며 깊이 반성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동안 자신이 벌인 사치로 악화된 프랑스의 재정 상황 때문에 루이 조제프의 장례식조차 제대로 치를 수 없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사치를 후회하고 왜 그동안 주변 측근들이 폴리냑 부인에게 홀려 유흥행각을 벌이던 자신을 뜯어말렸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비단 어린 나이에 요절한 루이 조제프뿐만 아니라 남은 자식들까지 어머니의 실책으로 많은 수모를 당해야 했다.
차남인 루이 샤를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 백작의 염문설이 프랑스 전역에 퍼지던 무렵에 태어나는 바람에 루이 16세가 아니라, 페르젠의 사생아가 아니냐는 소문에 휩싸였고 형 루이 조제프가 요절하고 왕세자 자리를 이어받자 정통성에 대한 흠결로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소문이 알파만파 퍼진 끝에 왕위를 노리던 루이 16세의 동생들인 프로방스 백작 루이와 아르투아 백작 샤를이 공식석상에서 이 소문을 대놓고 들먹이며 루이 샤를을 조롱하고, 루이 16세에게마저 익명으로 루이 샤를은 페르젠의 아들이라고 고발하는 편지까지 오더니 바렌느 도주 사건 때 분노한 아낙네들에게 "뭐가 왕태자냐?! 사생아지! 국왕의 아들이 아니라 페르젠의 아들이겠지!"라는 모욕을 면전에서 듣기까지 한다.
더구나 프랑스 혁명에서 아버지 루이 16세가 처형된 후 유력한 왕위 계승자이자 왕당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던 루이 샤를의 위치를 두려워 한 국민 공회에 의해 루이 샤를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누나와 떨어져야 했다. 이때 마리는 절대 안된다며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끝내 루이 샤를을 빼앗기자 미친듯이 절규하며 당신들도 부모 아니냐고 호소하지만, 아이를 데리러 온 혁명군에게 전술한 이제껏 벌인 자신의 실책에 대한 일갈을 듣자 할 말을 잃고 아들이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다. 결국 루이 샤를은 혁명군 사이에서 자라나 자신의 이름과 직위도 전부 잊어버리고 어머니의 재판에 위증을 하여 사형 선고에 크게 기여해버리는 씁쓸한 결말을 맞이한다.
딸 마리 테레즈 역시 부르봉 왕가의 금지옥엽 공주님이었지만 부모의 실책으로 벌어진 프랑스 혁명에 휘말리는 바람에, 부모님과 고모는 처형당하고 동생마저 행방불명되는 비극 속에 혼자 살아남아 탕플 탑에서 지옥같은 유폐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이후 프랑스 혁명 정부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과의 포로 교환으로 석방되고 외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에서 부르봉 왕조의 직계 공주로 나름 귀한 대우를 받게 되지만, 가족들의 죽음과 고된 감옥생활 때문에 어린 시절의 밝고 명랑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가족들을 죽인 프랑스 혁명세력과 민중은 물론 자신들을 외면한 외가까지 원망하는 냉혹한 성격이 되어버렸다.
더 안타까운 건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들 루이 샤를을 빼앗긴 후 절망한 나머지, 정작 마지막으로 곁에 남은 유일한 자식이자, 똑같이 감옥에 유폐되어 보호와 위로가 절실했던 어린 딸 마리 테레즈의 안위를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이렇다보니 마리 테레즈는 포로교환으로 석방을 앞두자, 어머니의 처형을 떠올리며 슬퍼하다가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국민공회가 루이 샤를을 빼앗아가자 어머니는 반미치광이처럼 절규하셨고 남아있는 딸인 나 같은 건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구셨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상냥하게만 기억하는 아버지와 고모랑 다르게, 어머니는 자신을 외면했다고 씁쓸하게 기억한다.
6.5. 뒤바리 부인
시할아버지 루이 15세의 애첩. 자신이 시집오기 전까지 프랑스 왕실의 안주인 노릇을 해온 사람이지만 창녀 출신인 뒤바리를 경멸하며, 왕세손비인 자신의 신분을 통해 일부러 무시하고 말을 걸지않으며 대놓고 신경전을 벌였다.뒤바리 부인에 대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런 반감은 오스트리아에서 매춘을 철저히 금지시키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교육, 뒤바리 부인을 싫어하던 시고모들의 부추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천한 신분의 뒤바리 부인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마리 개인의 자존심이 컸기 때문에, 마리는 그녀를 대놓고 투명인간 취급하며 못본 척 하고 일부러 말도 걸지 않으면서, 마리 자신뿐만 아니라 아예 다른 귀족들까지 그녀를 비웃게 만들고, 뒤바리 부인 역시 자신을 일부러 무시하고 자신에게 도전하려는 그녀의 태도를 알아채면서, 두 사람은 모든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벌이게 된다.
처음에는 공식적인 신분이 높은 마리가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뒤바리 부인의 연이은 짜증과 하소연에 결국 루이 15세까지 나서서 경고하자, 마리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동맹과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을 굽히고 먼저 뒤바리 부인에게 말을 걸면서, 뒤바리 부인의 보이지않는 승리를 쥐는 것으로 두 여자들의 신경전이 일단락된다.
당시 자신을 비웃듯이 크게 웃는 뒤바리 부인을 보고 자존심이 상한 마리는 프랑스의 왕세손비인 자신이 한낱 창녀인 뒤바리에게 패배했다며 울먹이지만 앞으로 복수를 계획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다시는 그 여자와 엮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후 마리는 아예 뒤바리를 피해다니고, 루이 15세가 사망한 후 뒤바리 부인은 베르사유 궁전을 떠나 수도원으로 가게 되면서 이 둘의 악연은 완전히 끝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반목한 두 여자는 훗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단두대에서 똑같은 최후를 맞이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단두대로 끌려가면서도 죽기 싫다고 미친듯이 절규한 뒤바리 부인과는 달리,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지막 순간에도 저항없이 침착함과 품위를 유지한 채 당당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6.6. 로잘리 라 몰리에르
로잘리는 오스칼에게 거두어지기 전까지 하루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는 날은 다반사에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어 매춘을 시도할 정도로 가난한 삶과 귀족의 횡포로 동네 친구 피에르와 어머니가 사망한 일, 파리 시내에 떠돌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각종 음란물, 찌라시의 영향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싫어하다 못해 '나라를 망치는 냉혈한 악녀'라고 믿고 증오했다.그러나 무도회 때 오스칼의 소개로 처음 마리 앙투아네트를 마주하고 세간에 떠돌던 소문과 전혀 다르게, 그녀의 아름답고 다정한 모습을 보며, 마리가 사실 온화한 사람인 걸 알고 오해를 풀며 서로 호의적인 관계가 된다.
다만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과는 별개로, 로잘리 역시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프랑스 평민들의 삶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고, 왕비로서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긴 커녕 자기 감정에만 몰두하며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실책만큼은 안 좋게 평가했다. 또한 시민 혁명을 지지했긴 했으나 과거 루머에 의해 자신이 선동된 경험과 분노에 눈이 멀어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매도하는 군중들을 봤기에 대중들의 선동과 분노를 이용해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 가족, 페르젠을 희생양으로 모는 것에 대해 선을 긋고 냉정하게 비판했다.
이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루이 16세가 처형된 뒤 다음 차례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가 홀로 콩시에르쥬리 감옥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듣자 남편 베르나르에게 부탁해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중 역할에 지원했다.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바렌느 도주 사건을 비롯한 여러 실책을 저지르며 프랑스 민중의 증오를 한몸에 받고 있었고, 혁명정부도 가장 악명높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희생양으로 삼은 터라 감옥 안에서마저 차가운 시선과 뒷담화에 시달리며 구경거리가 되어 힘들게 버티고 있었다.
이때 로잘리는 매일 아침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치장을 돕고 방을 따뜻하게 데워주거나 식사도 챙겨주는 등, 마리를 헌신적으로 보살펴주며 힘든 감옥 생활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해주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감옥에서 로잘리를 바로 알아보고 반가워했으며 자신에게 잘 대해줬다는 이유로 보복을 당할지도 모르는데[49], 이를 감수하고 자신을 정성껏 보필하며 그리웠던 오스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로잘리 덕분에 힘든 재판과 감옥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리 앙투아네트가 선고받은 처형식 당일 아침, 로잘리는 "어젯밤에 아무것도 안 드셨는데 뭐라도 드시겠냐"라고 묻지만 이미 삶의 의지를 잃고 자포자기하여 눈물을 흘리던 마리는 "고맙지만 모든 것이 끝났으니 아무것도 필요없다" 라고 말한다. 그래도 로잘리가 "아직 수프가 남아있다"라고 자기 몫의 수프까지 주자, 이미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 마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마리는 자신을 걱정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로잘리의 성의를 생각하여 수프를 먹는다.
몇 시간 뒤, 마리 앙투아네트는 강제로 머리카락을 잘리고 양손이 묶인 채로 감옥에서 끌려나오던 도중, 눈물을 흘리던 로잘리와 마주치고 "언제나 머리를 묶던 리본을 메셔야죠" 라며 마지막까지 자신을 신경써주는 로잘리에게 "그것은 내 기념물로 당신에게 드릴게요.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가끔 나를 생각해줘요.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마음을 써줘서 고마웠어요. 천국에 가더라도 결코 잊지 않겠어요"라는 감사의 말을 남기고 당당하게 처형장으로 떠난다. 로잘리는 그런 마리의 마지막 뒷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본다.
로잘리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후에도 그녀의 유품들[50]을 전달받아 자르제 백작에게 전해주며 마지막까지 마리의 유지를 지킨다. 이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연인이었던 페르젠도 로잘리에게 마지막까지 마리 앙투아네트 님을 잘 돌봐줘서 고맙다며 그 보답으로 좋은 일자리도 주선해주면서 로잘리는 아들과 함께 스웨덴에서 남은 여생을 편히 보내게 된다.
본인을 진심으로 좋아해준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음을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뜯어내는데 바빴고 이후 마리가 불리해지자 바로 해외로 도주했던 어머니 폴리냑 부인들을 포함한 여러 간신들과 달리, 로잘리는 평민으로 빈곤하게 살았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총애도 받지 않았지만 모든 걸 잃게 된 마리를 돕고 약속도 끝까지 지켜주었으니 오스칼과 함께 마리의 진정한 친구이자 충신이었다.[51]
참고로 실제 역사에서 로잘리의 모티브가 된 로잘리 라몰리에르(Rosalie Lamorlière)는 프랑스 혁명기에 살았던 실존인물로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 감옥에 이송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하녀로 선택되어 처형날인 1793년 10월 16일까지 그녀의 시중을 들어줬다. 루이 16세 일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다른 간수들과 달리 로잘리는 앙투아네트를 동정하고 이모저모로 신경써주었으며, 훗날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 마리 테레즈도 어머니를 잘 보살펴 준 로잘리에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연금을 하사하며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게다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그녀가 남긴 편지를 보관했기에 프랑스 혁명은 민중의 승리이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 종종 가짜뉴스와 비방이 끼어들 수 있다는 것과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었다.
6.7. 마리아 테레지아
오스트리아의 여제이자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가족애 외에도 프로이센, 프랑스 등, 여러 강국들의 견제를 이겨내고 오스트리아와 합스부르크 왕가를 지탱해온 여걸이자 뛰어난 군주로서 매우 존경했다. 스스로도 프랑스의 왕비이자 위대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라는 자부심을 가졌고 '남자에게 몸을 팔거나 애첩이 되는 행동은 여자로서 가장 천한 행동'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뒤바리 부인을 대놓고 무시하고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 때문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토록 노력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동맹은 깨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들은 마리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한편 마리아 테레지아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동맹 이상으로 '왕태자비가 되면 장래에는 가만히 있어도 왕비가 되는 것인데, 공주로서 왕비가 되는 것 그 이상의 행복이 있겠냐' 라는 생각에 유럽 대륙의 강국이자 문화 선진국인 프랑스의 왕세자비로 막내딸 마리를 시집보낸다.
그러나 철부지인데다 여러모로 자질이 부족한 막내딸의 진면모를 잘 알았기에 각종 공부는 물론 오스트리아를 떠나기 전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출발 당일날에는 자신이 직접 쓴 지침서를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주고 측근인 메르시 백작을 프랑스로 보내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으며 각별히 신경썼다. 이윽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루이 15세가 사망하면서 어린 나이에 프랑스 왕비로 즉위하게 되자, 갑작스러운 딸의 즉위 소식을 듣고 '딸의 행복한 나날은 이제 끝났을지도 모른다"라는 불길한 예감을 감추지 못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딸을 걱정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런 어머니의 당부와 마음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고 왕비로서 직무를 수행하고 공부를 하기보다 무도회나 연극을 즐기고 세금으로 사치와 도박을 일삼으며 나태하게 행동했다. 당연히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런 마리 앙투아네트의 철없는 행동을 전해듣고 어이없어하고 왕비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화려한 그녀의 초상화까지 받게되자 "이건 프랑스 왕비가 아니라 그저 화려하게 치장한 여배우의 초상화이다. 아직 젊고 아름다운 마리에겐 화려한 치장은 필요없고 오히려 소박한 옷이 왕비의 모습이다"라고 가열차게 비판한다. 그와 동시에 마리는 사치와 유흥행각을 벌이는데 얼마나 막대한 세금이 낭비되는지 알기는 하는 거냐고 한탄하며 딸의 무책임한 행각에 뒷목을 잡는 건 물론 그로 인해 파생될 불길한 미래를 걱정한다.[52]
그래도 마리가 첫 자식인 마리 테레즈를 가지면서 겨우 안도하나 싶었지만 이번에는 마리가 따분하고 힘든 베르사유 궁전과 왕비의 직무에서 벗어나, 트리아농 궁전에 틀어박혀 측근들과 노는데 열중하는 이전의 실책을 훨씬 뛰어넘는 어리석은 짓을 벌인다. 안 그래도 병환을 앓고 있던 마리아 테레지아도 더욱 막나가는 딸의 행동에 충격을 받고 그만 쓰려져서 몸져 눕고 만다. 이후 자신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죽기 전 마리 앙투아네트를 포함한 자식들을 지켜달라고 신에게 기도를 드린 후 눈을 감는다. 어머니의 죽음을 전달받은 마리는 오빠 요제프 2세에게 편지를 쓰지 못할 정도로 큰 기둥을 잃은 아픔을 느낀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죽음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개인적인 상실감 외에 훗날의 최후에도 꽤나 악영향을 주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죽음 이후 불운의 그림자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드리우게 되었다는 작중 나레이션처럼 어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 루이 조제프의 요절, 프랑스 혁명 등, 연이은 불행이 마리에게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큰오빠이자, 막내여동생을 무척 아꼈던 요제프 2세도 프랑스 혁명 직후이자 바렌 사건 이전인 1790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을 지켜줄 어머니와 큰오빠를 모두 잃는다.
이후 요제프 2세의 뒤를 이은 둘째 오빠 레오폴트 2세는 정반대로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닥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 프랑스 혁명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한 탓에 바렌 사건에서 여동생 일가가 붙잡혀 끌려가는데 일조했다.[53] 그러나 레오폴트도 남매간의 정과 오빠로서의 책임감은 확실해서 바렌 사건이 실패하자, 뒤늦게 심각성을 깨닫고 프랑스 혁명정부와 협상을 벌이며 어떻게든 여동생을 구하려고 애썼으나 급사한다. 이후 뒤를 이은 레오폴트 2세의 장남인 프란츠 2세는 어릴 때 오스트리아를 떠난 막내고모에 대해 그닥 정도 없어서 철저히 외면해버렸다. 결국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정이 겹친 끝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친정에게마저 버림받고 어머니가 우려하던대로 남편과 함께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6.8. 폴리냑 백작 부인
처음부터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할 가짜 친구관계.폴리냑 부인과 첫 만남은 마리의 음악회였고 마리는 아름다운 미모[54]와 노래실력을 지닌 폴리냑 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후 마리는 오랜만에 본 폴리냑 백작부인에게 왜 베르사유에 자주 오지 않았냐고 묻자, 폴리냑 부인은 "저는 베르사유 궁전에 자주 올 만큼 신분이 안됩니다."라고 솔직히 대답한다. 순수하고 다정한 성격의 마리는 이런 폴리냑 부인의 대답을 어쩜 이렇게 순수하고 솔직한 사람인가라고 착각하고는 자신의 전속 시녀로 임명하는 것은 물론, 그녀의 가족들에게 베르사유에 방을 내주고 남편의 벼슬을 올려주고 연금까지 주면서 온갖 특혜를 하사했다.
마리는 폴리냑 부인의 말 한마디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고 그녀와 있으면 왕비가 아닌 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순수한 친구 사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마리의 생각과 달리 폴리냑 부인은 아름답고 얌전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속으로는 마리의 순수하고 따뜻한 호의를 악용하여 자신의 탐욕과 가족의 이익을 채우려는 전형적인 하라구로였다. 게다가 비슷하게 마리의 총애를 받았지만 마리를 진심으로 걱정해 철부지 행동을 말리고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오스칼과 달리 폴리냑은 겉으로는 마리를 위한다고 해놓고서 마리를 도박에 끌어들이고 트리아농에 틀어박혀 농가생활과 연극을 즐기려는 마리의 행동에 동조하고, 페르젠과의 사랑으로 고민하는 마리에게 오히려 불륜[55]을 부추기고, 자신을 방해하는 오스칼을 눈엣가시로 여거 해치려는 간신배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으로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마리가 폴리냑 부인의 실체를 깨닫고 멀리하자 애초에 친정과 시댁 모두 별볼일 없는 몰락 귀족인데다, 위세를 부릴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인 마리의 총애마저 사라지자 폴리냑 부인은 베르사유 궁전은 물론 프랑스 사교계에서 투명인간 취급 당하며 몰락한다.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지 폴리냑 부인과 그 가족들은 망설임 없이 마리를 버리고 해외로 도피했다.
다만 전술했듯이 실제 역사의 폴리냑 백작 부인에 관련하여 후대에는 사치스럽긴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선량했으며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도 진정으로 소중한 친구였다는 주장도 많이 존재한다. 문제는 진짜 친구인가 아닌가와는 별개로 비슷하게 엄청난 총애를 받아도 사욕을 부리지 않았으며 프랑스 혁명 중에도 끝까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키다가 세상을 뜬 랑발 부인과 달리,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마자 잽싸게 마리 앙투아네트 일가를 버리고 도망간 건 물론[56] 마리에게 도박과 사치를 권하며 그녀의 총애를 통해 사사로운 이득을 취한 건 사실이기에[57][58] 긍정적으로만 평가받기 어려운 편이다.
7. 기타
당시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영향으로 왕족, 신하들이 정부를 두거나 성적으로 문란한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때문에 시할아버지 루이 15세의 정부인 뒤바리 부인도 싫어했으나 정작 자신은 남편을 냅두고 페르젠과 대놓고 불륜을 저질렀다. 물론 만화와 애니메이션 내에서는 물론 실제 역사에서도 역사학자들의 추측에 의하면 페르젠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이는 플라토닉한 관계로 보이며, 마리도 장남인 루이 조제프가 척추결핵(척추카리에스)으로 사경을 헤매자 자신의 불륜행각 때문에 아들이 아프게 되면서 벌을 받는 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로 깊이 반성했다.외전인 브레게의 시계 에피소드 편에서 실제 역사처럼 브레게에게 가장 뛰어난 시계를 만들라고 부탁하는데 이때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혁명 이후 콩시에르쥬리에 감옥에 갇혔을 때 필요한 물건을 물어본 국민의회에게 브레게의 시계를 원한다고 요청한다. 당시 브레게는 국민의회의 추적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했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행히 로잘리에게 브레게의 시계를 받고 시간을 되새기면서 힘든 재판을 이겨나간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후 브레게와 그의 아들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계를 완성하는 걸로 끝난다.
작중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 둘다 실제 역사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상냥하고 선한 모습을 완벽히 증명하는 동시에 그녀의 실책과 단점 역시 확실히 묘사해냈다. 덕분에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통해 프랑스 혁명을 배운 시청자/독자들 중에서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렇게나 천사같은 사람일 줄은 몰랐다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마리 앙투아네트 재평가 관련 영상[59]에서도 자주 언급될 정도로 큰 임펙트를 남겼다.
오스칼이 여덕들에게 인기가 높았듯이 마리 앙투아네트는 보통 남자아이들과 남자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떻게 될지 몰랐던 팬들은 그녀의 안타까운 결말에 크게 충격받기도 했었다. 또한 실제 역사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최후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정주행하는 경우 초반부에 나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순수한 모습을 보고는, 저렇게 어리고 사랑스러운 소녀가 훗날 욕받이 신세가 되어 모든 걸 잃고 비참하게 처형된다는 사실에 씁쓸해하는 경우가 많다.
한참 뒤에 나오는 Fate/Grand Order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있다. 발랄하고 화려한 소녀틱한 외모에 더해 성격도 화사하고 발랄하나 왕족다운 면모가 있고 세간에 퍼진 편견과 달리 상냥한 성품이었다는 게 고증된 점, 오스칼에서 많이 컨셉을 따온 듯한 슈발리에 데옹과 붙어다닌다는 점 등등. 다만 이쪽 마리는 금발인데 페그오 마리는 은발. 다만 엄연히 역사적인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실책도 적나라하게 묘사된 베르사이유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달리,[60] 페그오의 마리는 그런 단점들이나 부정적인 면모는 보다 희석되었다.[61] 그러면서도 막간의 이야기에서는 마냥 긍정적인 면만 있지 않다는 것 또한 강조된다.
후속작인 오르페우스의 창에서도 마리 앙투아네트와 몇 가지 비슷한 부분이 있는 캐릭터인 안토니나 크리코프스카야가 등장한다. 둘 다 당대 최상위계층 출신[62], 귀족주의적인 사고방식, 화사하고 발랄한 인상을 지니고 공들여 치장하고 다니는 화려한 미인, 남편이 있는 와중에 불륜을 저지른 점,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혁명을 지지하는 평민 계층이 그들의 몰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등등이 닮았다. 다만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느낌이 있는 마리와 달리, 안토니나는 확실히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구석도 있다. 둘 다 버젓히 남편이 있는데도 불륜을 저지르고, 그 불륜 상대에 대한 연애 감정 때문에 감정적으로 변하는 건 비슷하지만.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뮤지컬 버전에서는 원작과 다르게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의 생애보다는 페르젠 백작과의 사랑을 좀 더 강조했고, 남역 위주인 다카라즈카답게 페르젠을 자주 띄워주면서 비중도 조금 밀렸다. 다만 재연할수록 이게 좀 심해져서 원작의 주인공이라는 말과 무색하게 비중이 점점 반쯤 공기화되어가며 쩌리 수준으로 떨어졌다.
[1] 본명은 독일어로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하나 폰 외스터라이히로트링겐(Maria Antonia Josepha Johanna von Österreich-Lothringen).[2]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의 여대공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서, 출생 당시의 국적은 신성 로마 제국이었지만 루이 16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로 바뀌었다.[3] 결혼하지 않고 큰언니 마리아 안나처럼 수녀가 되어 인스브루크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고 평생 마리아 안나와 같이 살았다.[4] 1761년 천연두로 사망.[5] 1767년 천연두로 사망. 참고로 마리아 요제파의 이른 죽음으로 결혼 순서가 앞당겨져 마리아 카롤리나가 나폴리로 가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왕세자비로 낙점 되았다.[6] 에르콜레 3세 데스테의 딸 마리아 베아트리체와 결혼해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가를 개창했지만 1875년에 남계 후손이 단절되었다.[7] 쾰른 선제후 겸 대주교.[스포일러] 바렌 사건의 실패 후 시민들에게 온갖 위협과 조롱을 당하며 파리로 끌려간 충격 탓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리면서 은발벽안이 되었다.[9] 2018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KBS판의 오스칼 성우와 마리 앙투아네트 성우가 모두 고인이 되었다.[10] 프랑스의 왕세손비가 된 지 얼마 안된 소녀 시절이다.[11] 뒤바리 부인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그녀의 머리색을 빨간색 머리라고 깎아내리며 험담한다.그 말을 들은 루이 15세는 오히려 "마리는 예쁜 금발" 라며 손자며느리의 머리색을 칭찬하나 뒤바리 부인은 이에 반발하며 붉은색이라고 끝까지 우긴다. 이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의견이 있는데 사실 서양의 금발 중엔 마리처럼 확실히 노란색으로 보이는 '허니 블론드' 도 있지만, 붉은색이 좀 감돌아 붉은색이나 주황색에 가까운 '스트로베리 블론드' 나 '피치 블론드' 도 있다. 그리고 뒤바리 부인이 까내린 것과 달리 만화, 애니 모두 마리의 금발이 가장 밝고 화사한 금발로 묘사되며, 실제 역사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대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밝고 우아한 백금발이었다. 즉, 이것 또한 역사 고증이 잘된 것이다.[12] 다만 하얀색 장미를 연상케 하는 성숙하고 차가운 분위기의 냉미녀인 오스칼과 대조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발랄하고 순수한 분위기의 청순한 분위기이며 어른이 되면서 붉은 장미를 연상케 하는 우아하고 기품있는 화려한 미인으로 성장한다.[13] 작중 오를레앙 공작의 부하 중 한명이 마리 앙투아네트한테 드레스를 바꿔입자고 해서 부하 본인은 공주 행세를 하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시녀차림으로 바꿔입었다.[14] 아마도 친정인 합스부르크 가문 특유의 주걱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실제 초상화에서도 그 주걱턱이 어느 정도 보이고(…) 코도 살짝 매부리에 얼굴도 긴 편이었다. 그래도 왕년에 합스부르크 가문을 넘어 유럽 최고의 미녀로 알려진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를 닮아서인지 꽤 예쁘장하다는 말도 들었으며 다행히 아랫 입술의 치아가 살짝 삐뚤어진 것뿐이어서 치아교정과 부채로 가리고 다녔다고 한다.[15] 왕세자비 시절 앙드레의 실수로 타고 있던 말이 흥분하여 달려가는 낙마 사고가 벌어졌을 때 오스칼과 페르젠을 도와 앙드레를 변호했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던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이 실수로 물감을 바닥에 떨어뜨리자 임신 중인 당신을 힘들게 할수 없다며 손수 물감을 주워줬다. 심지어 파리에 떠도는 소문대로 악녀라고 생각해 마리를 꺼린 로잘리도, 실제로 만난 마리가 소문과 달리 우아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16] 이 자존심은 시할아버지 루이 15세의 정부인 뒤바리 부인에게 절대 말을 걸지 않는 것(신분제였던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는 신분이 높은 귀부인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 전에 신분 낮은 귀부인이 말을 걸 수가 없었다.)과 이후 메르시 백작의 설득으로 마지못해 말을 건 후 오스트리아의 공주이자 프랑스의 왕세자비인 자신이 천민 출신 애첩에게 졌다며 결국 뛰쳐나가 울었던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후술했듯이, 그럼에도 뒤바리 부인에게 앙심을 품거나 저주하지 않고, 그 일로 뒤바리 부인과의 관계를 딱 끝내는 깔끔한 마무리를 짓는다.[17] 물론 인간관계의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언행과 행동은 평민이였다면 상관없지만 정적을 최대한 만들면 안되고, 역으로 약점을 드러내면 바로 먹이감이 되기 쉬운 정치계와 사교계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상류층에겐 오히려 도움이 안되는 최악의 행동이다. 하물며 어느 한쪽의 파벌도 편애하지 않고 공평함을 유지하고 가장 확실한 아군이 되어줄 귀족들을 포섭해야하는 왕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괜히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이 정치판에서 적을 만나면 웃으라는 조언을 한 게 아니다.[18]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런 무분별한 태도는 그녀의 몰락의 시발점인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이 대형사고로 번지는데에도 크게 한몫했다. 당시 로앙 대주교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만나보고자 애를 썼는데 마리는 로앙 대주교의 문란한 사생활과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에 관한 여러 실언을 저지른 것 때문에 그를 보는 것조차 질색할 정도로 경멸해서 그의 알헌을 칼같이 거절했다. 그런 로앙 대주교에게 잔느가 다가와서 자신은 왕비님의 친한 친구이기에 마리 님과 연결시켜주겠다고 거짓말하면서 희대의 사기극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로앙 대주교는 문란한 사생활과 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한 실언 등으로 인망이 안좋았던 사실이었지만 대주교라는 신분상 아무리 왕비일지라도, 함부로 대할 위치가 아니었으며 사교계나 정치판에서 감정에 따라 멋대로 행동해서 함부로 적을 만드는 것은 약점만 드러낼 뿐이다. 게다가 뒤바리 부인 때처럼 조금만 참고 로앙 대주교를 직접 만나 단번에 정리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도 있었는데, 자신이 그저 싫다는 이유로 안 만나주는 것은 공사 구분을 못하는 행동이나 다름 없다.[19] 애초에 원 역사에서도 무려 자기 아들인 루이 17세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헛소리가 그녀의 결정적인 처형 근거로 내세워졌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나돌던 온갖 음란물 팜플렛들과 찌라시들이 너무 퍼진 것도 모자라 아예 빵이 없으면 과자나 케이크를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라는 망언을 했다는 헛소문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시점이었으니 지금 와서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에 불과하지만 저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꽤 그럴 듯한 이야기였다.[20] 당장 그토록 충성을 다바쳤던 오스칼부터가 마리 앙투아네트가 날이 세도록 무도회나 연극에 참석하고자 수차례 파리와 베르사유를 드나들었지만 정작 파리에서 프랑스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단 한번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탄했고, 이후 오스칼의 만류로 없었던 일이 되었지만 왕비가 된 직후 매번 하는 백성들의 일반 알현을 자신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없애려는 행동부터가 백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다는 조짐이 보였다. 또한 실제 역사에서는 전술했던 에티켓인 투알레트도 거부했는데 투알레트는 단순한 절차가 아닌 왕실이 귀족들에게 주는 특권이자 이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제도인데, 이를 거두는 것은 그들에게 불만을 심을 수 밖에 없었는데 마리는 이를 개인적인 이유로 그만두고 적절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21] 게다가 서양 왕실의 왕비들은 동양 왕실에 비해 인사개입처럼 정치 및 사회적 활동이 어느 정도 허용되었고 이에 따라 영향력도 꽤 강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런 특권을 민생 안정과 귀족들을 제어하는 등의 국정에 이용하기 보다 친구들에게 특혜를 주거나 유흥을 즐기는 개인적 용도로 허비했다. 참고로 실제 역사에서 세종의 정비인 소헌왕후는 왕비의 활동이 다소 제한적인 조선시대와 당시 만삭인 상황에서도 한성 대화재가 일어나자 군사훈련으로 자리에 없던 남편,아들을 대신해 조정 내 최고 책임자로서 화재진압 및 수습을 직접 나서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남편 세종도 자신이 없을 경우 중전에게 보고하고 중전의 명령을 필히 따르라고 미리 언질을 해둘 정도로 아내를 신뢰했고 신하들도 군말 없이 소헌왕후의 지시를 따랐다.[22]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본인의 실책과 사치로 국가 예산이 파탄지경에 이르고 백성들은 한끼 하나 챙기지 못할 정도로 굶주리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은 의무"라는 내로남불적인 망언만 내뱉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파리로 끌려가는 상황까지 왔는데도 철지난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혁명 따윈 절대 인정치 않는다는 시대착오적인 모습만 보였다. 급기야 본인들의 안위가 위태로워지자 나라를 버리고 도망치려고 하고 프랑스 혁명정부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연합군과의 전쟁이 벌어지자 차라리 프랑스군이 져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빨리 파리로 침공해와서 혁명 따윈 박살을 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라의 안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왕비로서 최악의 모습을 보인다.[23] 이 단점은 왕세자비 시절 뒤바리 부인과 신경전을 벌일 때부터 잘 드러났다. 어머니의 영향과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귀하게 자란 마리에게 왕의 애첩인 뒤바리 부인이 좋게 보일리 없다지만, 뒤바리 부인은 공인된 지위를 가진 '메트레상티트르(maîteesse-en-titre)'이고 무엇보다 시할아버지 루이 15세가 측근인 노아이유 백작부인, 메르시 백작을 통해 경고를 줄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그러나 마리는 이 경고를 듣고도 위기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흘려들었고 메르시 백작은 물론 타국에 있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까지 훈육을 해서 마리를 뜯어말려야 했다. 이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동맹이 깨질 수 있다는 메르시 백작의 설명을 듣고서야 마리는 정신차리고 새해 첫날 베르사유의 연회에서 뒤바리 부인에게 말을 걸었다.[24] 사실 이 부분도 애매한 게 마리가 페르젠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은 루이 16세와의 결혼이 이뤄진 한참 후의 일에 오히려 언니 마리아 아말리아가 파르마 공국과의 정략결혼으로 인해 결혼 전부터 만나던 연인과 강제로 헤어졌다. 그래도 아말리아는 파르마 공작 부인으로서 뛰어난 통치력을 보여 파르마 국민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고, 남편과의 사이도 차츰 좋아져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또한 그녀의 아이들도 잘 자라서 지금도 후손(합스부르크 가문의 본가, 룩셈부르크 대공가)이 남아있을 정도로 크게 번창했다.[25] 당장 마리의 사치 비용과 노름빚은 모두 마리의 개인재산이 아니라 프랑스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출되었고,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는 물론 작가도 마리는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세금이 쓰였는지 알고나 있는 거냐고 비판했다. 게다가 마리아 크리스티나를 제외한 나머지 자매들은 중소 왕국 내지 공국으로 시집가거나 수녀가 된 것에 반해 마리가 시집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함께 유럽대륙을 양분했던 강대국이자 주변 나라들은 물론 적국인 오스트리아도 모방할 정도로 당시 트렌드를 선도했던 문화 선진국이기도 했다.[26] 앞서 각주에서 설명한 평민들의 알현과 투알레트를 개인적인 사유로 중지하고 최후반부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는 이유로 벌인 바렌느 도주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들 모두 일국의 왕비로서 최소한의 책임감과 상황판단력이 있었다면 절대 해서는 안될 짓이었다.[27] 당장 실제 역사에서 조지 6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은 요크 공작 부인으로 평범하게 잘 살고 있었지만, 시아주버님인 에드워드 8세의 무책임한 퇴위로 원치도 않은 왕비의 자리에 올라야 했다. 그래도 엘리자베스는 갑작스러운 즉위와 그 직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대 혼란 속에서도 망명 제의를 거부하고 영국에 남아 남편 조지 6세를 내조하고 폭격으로 엉망이 된 런던을 시찰하고 국민들과 똑같이 배급을 받으며 생활하여 국민들을 독려하는 등 왕비이자 국모로서 책임(무책임하게 퇴위한 에드워드 8세와 그 계기가 된 월리스 심프슨은 2차 세계대전 내내 나치 부역 및 반역 논란이 일었던 것과 대조적)을 다했다. 결국 엘리자베스 왕비와 조지 6세의 모범적인 모습은 영국 국민들이 영국 왕실을 신뢰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그들의 딸을 거쳐 외손자가 즉위하면서 영국 왕실은 현재까지 엘리자베스의 후손으로 번창하고 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왕비는 런던 대공습으로 궁궐마저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도 "이제야 고통받는 런던 시민들을 볼수 있어서 기쁘다"고 당당하게 말해 남편에게 용기를 주고 남편이 먼저 떠나간 슬픔을 뒤로하고 어린 나이에 즉위한 딸을 도와 여러 정무를 보좌하는 등, 모범적인 아내이자 어머니였다.[28] 반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남편 루이 16세를 제대로 내조하긴 커녕 남편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이용해 자신의 이권을 챙기는데 급급하고 자신의 응석을 다 받아주는 루이 16세에 대한 고마움은 거의 없었다. 결국 남편의 뒷배를 입고 페르젠과의 불륜부터 사치와 바렌느 도주를 비롯한 실책을 벌여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본인은 물론 남편의 평판과 인생마저 망쳐버렸다. 그래도 프랑스 혁명 기간동안 루이 16세가 마리의 실수를 모두 용서해주고 마리도 남편의 명복을 비는 걸 보면 부부로서의 사랑은 존재했다. 또한 마리는 본인의 실책으로 아들 루이 샤를은 페르젠과의 사생아란 루머에 시달리게 만들고, 딸 마리 테레즈도 탕플 탑에 갇혀서 지옥같은 유폐생활을 하게 만드는 등 아이들의 인생을 망쳐 버리고 말았다. 결국 루이 17세는 온갖 학대를 받다가 요절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리 테레즈는 이때의 트라우마로 인간불신의 냉랭한 성격이 되어 버리고 만다. 더구나 개인적으론 몹시 다정하고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장남 루이 조제프가 시한부 선고를 받을 때나 차남 루이 샤를이 혁명군에게 끌려갔을 때 감정에만 매몰되어 남은 아이들의 안위를 살피지 않았다.[29] 다만 실제 역사 속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최고의 어머니까지는 아니지만, 어머니로서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으며 아이들의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예시로 들자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아이들이 마리에게 값비싼 선물을 기대한다고 하자 마리는 "궁 밖에서는 너희들처럼 선물을 바라는 것조차 불가능하며, 오히려 너희들은 매일 편안한 생활과 음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충고를 해주었다. 또한 마리 테레즈가 태어났을 때 후계자들을 바라던 귀족들이 실망한 반면 루이 16세와 함께 마리 테레즈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으며 '아들이었다면 프랑스를 가졌겠지만 마리 테레즈 너는 나의 모든 것이란다'라는 감동적인 말을 남겼다.[30] 작중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추문이 돌아다니는 걸 보다 못한 오스칼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걱정해 "프랑스의 왕비이자 국모로서 자신의 입장을 자각하셨으면 합니다"라고 조언을 하나, 마리는 오스칼의 충언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한 사람의 여자로서 자신을 이해할 수 없냐며 반박하는 장면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물론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연 역시 안타깝긴 했지만, 자기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국고를 탕진하고, 그 돈이 다 어디에서 나온지 생각하면 이때부터 마리는 프랑스의 국모이자 왕비로서 완전히 실격이었다.[31] 아이러니하게도 루이 16세 이후 프랑스를 다스리는 나폴레옹의 첫번째 황후 조제핀이 오히려 더 많은 사치를 누렸으며, 두번째 황후 마리 루이즈는 후계자를 출산하자 나폴레옹이 그녀에게 온갖 사치품과 보석을 선물했다고 한다. 문제는 당시 프랑스가 빚이 너무 많아서 그 적은 사치마저도 큰 사치로 보이게 할 정도였다는 거다.[32] 심지어 자신의 편이 될 줄 알았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까지 편지로 언제 후계자를 출산할 거냐고 압박했다.[33] 그래도 남편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멸시받은 다이애나와는 달리, 남편 루이 16세는 표현이 다소 서툴었지만 아내인 마리를 진심으로 사랑했었고 마리도 뜨거운 사랑은 아니었지만 남편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34] 한 가지 특이사항으로는 앞서 설명했듯이 두 버전 모두 그녀의 침착한 자세를 재현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마치 자신을 빨리 끝내달라는 듯이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상당히 싸늘한 모습으로 묘사되며, 피해자로서의 마리를 더욱 강조하였으며, 원작은 왕비로서의 마리를 강조하였다.[35] 초반부 드 게메네 공작과의 결투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따른 행동, 후반부 국민대표를 무력 진압하라는 왕실 명령 거부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상관없이 평등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정의감에 따른 오스칼의 행동을 묵인해줬다.[36]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가 되자마자 오스칼의 승진과 함께 엄청난 상을 내리지만 오히려 오스칼은 딱 잘라서 거절하며 마리 앙투아네트가 훌륭한 왕비가 되는 게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한다.[37] 초반에 드 게메네 공작이 평민 아이를 시덥잖은 이유로 쏴죽이고도 처벌받지 않은 것, 로잘리의 양모 니콜이 폴리냑 백작부인의 마차에 뺑소니 사고를 당해서 사망했으나 가해자인 폴리냑 부인은 책임지지도 않고 튄데다 처벌도 안 받는 것 등등.[38] 작중에서 금서로 불리던 루소의 서적을 몰래 읽고 있거나 팔레 투야알에 가서 로베스피에르를 포함한 여러 혁명가들과 모임을 가지는 등 프랑스를 개혁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39] 이때 인사를 드리러 온 오스칼과 서로 마지막 만남임을 예감하면서도 둘이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또 만나요'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헤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40] 대신 프랑스도 그 대가로 프란츠 1세에게 토스카나 공국을 주었다. 이후 로렌 공국은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장인이자 왕비 마리아 레슈친스카의 부친이며, 옛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인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에게 넘어가면서 프랑스의 땅이 된다.[41] 당시 오스칼은 재판이 일어나기 전에 죽었기에, 과연 이들의 사형 여부를 놓고 투표전쟁이 벌어질 때 어느 쪽을 지지했을지는 영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스칼의 성격을 비롯하여, 루이 16세와 마리가 개인으로서는 다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오스칼도 알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라리 이들을 죽이지 않으면서 프랑스 혁명군에게 유리할 대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특히 오스칼이 마리와 작별을 고할 때도 마리를 걱정해주는 우정을 생각한다면 더욱 확실하다.[42] 사실 더 엄밀하게 따지면 이 사형이 결정되기 전에 지롱드파가 무식하게 혁명 전쟁을 선택했기 때문에 오스칼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오스칼이 혁명 전쟁을 연전연승으로 이끌면서 발언권을 압도적으로 가지게 될 것이 자명하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문제는 오스칼의 말 한 마디로 그냥 정리되었을 것이다. 원 역사에서 프랑스 혁명이 오래 못 간 것까지 감안한다면 더더욱.[43] 그래봤자 정식 남편은 루이 16세였고 페르젠과의 관계는 불륜이어서 그와의 풍문으로 시끌시끌했고, 두 사람에 대한 추문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을 더욱 떨어뜨리는데 한몫 했다. 루이 16세 역시 추문을 알고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한 마리의 연애에 차마 손대진 못했다.[44] 사실 루이 16세는 어릴적 형(브루고뉴 공작 루이)과 비교된 과거 때문에 자격지심이 심했다. 그래서 작중은 물론 실제 역사에서도 마리는 루이 16세의 답답한 행동을 보다 못해 직접 뛰어가서 자신을 보고 도망가는 루이 16세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강경책을 쓰기도 했다.[45] 과거 절대 왕정시대에서 왕비의 불륜은 그냥 사생활적인 문제가 아니라 반역죄로 취급되었다. 내연남과의 사생아를 왕의 자식으로 속여서 후계자로 내세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조선의 현빈 유씨, 덴마크의 캐롤라인 마틸다, 프로이센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불륜 문제로 이혼당했으며 잉글랜드의 캐서린 하워드는 아예 처형당했다. 후술하다시피 프랑스 왕위를 노리던 방계 왕족들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차남 루이 샤를에 대해 어떤 소문을 퍼트렸는지를 생각한다면, 남성 군주는 정부를 얼마나 많이 들이든 상관하지 않는 것과 달리 왜 그렇게 왕비의 불륜은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다.[46] 마리 앙투아네트가 본격적으로 평민과 귀족 할 것 없이 프랑스 백성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게 된 이유는 폴리냑 백작부인같은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사치를 부리며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국정을 등한시했기 때문인데 그 계기가 바로 페르젠이 떠난 공허함을 메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페르젠도 혼인을 거부하고 마리를 보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베르사유 궁전을 드나드는 바람에 추문에 불을 지피며 자기 감정대로 행동했지만, 오스칼의 조언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프랑스를 떠나거나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하면서 어떻게든 추문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름대로 처신을 했다. 그러나 마리는 최소한의 의무조차 안 지려하고 대놓고 페르젠을 총애하는 잘못된 처신을 일삼은 끝에 결국 마리를 이해하고자 한 오스칼조차 실망시킨다.[47] 더구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장남 루이 조제프가 불치병에 걸려 루이 샤를이 차기 왕세자로 지목되자 안그래도 왕위를 노리던 프로방스 백작 루이와 아르투아 백작 샤를은 공식석상에서 루이 샤를의 정통성을 대놓고 조롱하고 나중엔 루이 16세에게마저 익명으로 루이 샤를은 페르젠의 아들이라고 고발하는 편지까지 올 정도로 루이 샤를의 정통성을 흠집내는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졌다.[48] 왕실을 가장 지지해야 할 귀족들도 마리를 공식석상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오스트리아 여자"라고 대놓고 비난했으며, 바렌 사건이 실패한 이후 분노한 시민들이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마리 앙투아네트의 아들 루이 샤를을 페르젠과의 사생아라고 조롱하거나, 루이 16세의 처형 이후 재판에 회부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검사측이 바렌 사건을 지원해준 사람이 페르젠이라고 캐묻는 걸 보면 두 사람의 불륜은 프랑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49] 실제로 콩시에르쥬리 감옥에서 로잘리 말고도 보초를 서는 헌병이나 간수들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친절히 대하며 배려했지만 이내 '왕비에게 지나치게 친절했다' 라는 이유로 로잘리를 제외한 전원이 투옥당하고 말았다.[50] 루이 16세와 자신의 머리카락, 백합 문양이 새긴 반지, 브레게의 시계 등이며 각각 왕제들, 페르젠, 메르시 백작에게 전해달라고 했다.[51]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프랑소와'라는 이름으로도 엮인다. 로잘리의 아들은 오스칼의 미들네임에서 따온 '프랑소와'로 이름 지어졌는데 오스칼의 미들네임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아버지 프란츠 1세의 프랑스식 본명인 프랑소와를 그대로 따와 자르제 백작이 붙여준 것이다.[52] 게다가 작중에서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측근에게 보내는 편지에게 마리는 남편 루이 16세를 자기 말을 잘 들어주지만 따분하고 재미 없는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당연히 마리아 테레지아는 딸의 편지를 보고 한탄하고 어머니와 함께 이 편지를 본 큰오빠 요제프 2세도 직접 프랑스까지 행차해서 여동생 부부에게 조언을 했지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후계자 문제만 해결하고 요제프의 조언도 귀담아 듣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자초한다.[53] 바렌 사건 당시 탈출자금을 빌려달라는 매제 루이 16세의 요청도 거절해 페르젠이 사비로 탈출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만화 내에서는 한술 더 떠 도주에 실패한 마리 앙투아네트 일가가 튈르리 궁에 감금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도 전혀 도와주지 않을 정도로 바렌 사건 이후에도 철저히 외면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과연 도운다 해도 한 푼의 이익도 얻을 수 없는 우리를 위해 오빠가 도와주실까?"라고 회의적으로 생각할 정도.[54] 폴리냑 부인을 곱게 본 적이 없던 오스칼도 어머니를 닮은 듯한 편안하고 고운 미인이라고 평할 정도였다. 실제 역사에서도 폴리냑 부인은 비단같이 부드러운 갈색 머리, 깨끗하고 새하얀 피부, 신비로운 보라빛 눈동자를 가진 매혹적인 미녀였다고 한다.[55] 원작에서 페르젠과의 사랑으로 고민하는 마리를 보고 자신도 남편의 친구를 정부로 두고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두둔해주기 까지 한다. 물론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는 부부가 쌍으로 정부를 두는 일이 흔했고 작중의 자르제 백작 부부 같은 잉꼬부부가 평민 같다며 까이는 사회일정도로 불륜을 한때의 가십거리 정도로 취급했으나, 전술했듯이 왕비의 바람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56] 2013년작 '페어웰 마이퀸' 영화에서도 이 일을 자세히 묘사하는데, 폴리냑 부인만이라도 탈출을 시키려하는 마리를 보고 '왕비 마마께서 그러신다면, 기꺼이 떠나드리죠' 라고 본색을 드러내고, 이에 마리는 폴리냑 부인과의 우정은 그저 자신의 짝사랑 및 착각임을 깨닫고 크게 한탄한다. 그래도 미련은 남은건지, 마리는 마지막 발악으로 하녀인 시도니에게 부탁하여 폴리냑 부인의 탈출을 도와달라 하였고, 애석하게도 폴리냑 부인은 아무 미련이나 죄책감 조차 안 남은채 마리 앙투아네트를 버리고 프랑스를 떠난다. 거기다 하녀 시도니도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존경해하였지만, 결국 마리의 부탁 탓에 마지막까지 그녀의 곁에 함께하지 못하게 된 것.[57]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 왕족이 내려주는 벼슬이나 해택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귀족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동시 정치적 균형을 맞추는 일종의 제도였다. 그런데 왕비의 개인적 총애 하나 만으로 친정, 시댁 모두 별볼일 없는 데다가 미모 외에는 별다른 능력이 없는 폴리냑 부인이 왕자녀들의 가정교사로 임명되고 왕실로부터 연금과 베르사유에 방을 배정받는 고위 귀족들과 왕족에게나 주어질 엄청난 해택을 받으니 당연히 귀족들 사이에서 잡음이 안 날수가 없었다. 당장 비슷하게 마리의 총애로 궁녀장이란 높은 지위를 받은 랑발 부인은 미망인 임을 제외하면 샤르데나 왕국의 방계 왕족이자 오를레앙 공작 부인 루이즈의 올케 언니라는 신분이 있었다. 더구나 랑발 부인은 궁녀장을 하면서 공사를 엄격하게 구분해서 주변의 우려를 불식한 반면 폴리냑 부인은 친구들과 자신의 정부를 왕실 요직에 꽂아넣는 비선 실세 노릇까지 하는 등 선량한 친구였다는 주장과는 별개로 마리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만행을 저질렀다.[58] 실제로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함께 동시대를 다룬 만화 경국의 재봉사 로즈 베르탱에선 한술 더 떠서 말도 없이 마리 곁을 떠나 마리에게 죄책감을 유발해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을 일삼고 심지어 왕비의 좋은 친구를 연기하는 것도 내 역할이라는 교활한 면모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웬만하면 왕비 일에 터치를 안하는 로즈 베르탱조차 폴리냑 부인에게 혐오감을 느끼며 동시에 아무리 외롭고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없다고 하지만 저런 교활한 여자를 친구라고 믿는 왕비님이 너무 순진하다며 한탄했을 정도다. 게다가 본작처럼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이자, 본작에서와는 달리 후대의 해석을 따라 폴리냑 부인을 외향적이고 게임을 좋아하는 인싸로 등장하며, 베르사유 궁전을 떠날때도 마리와 마지막으로 포옹을 남기고 슬픈 마음으로 마차를 타고 떠나는 등 인간적으로는 착하면서 마리의 진정한 친구로 묘사한 2006년작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에서조차 심성이 착한 것과는 별개로 사치가 다소 심하고 마리의 도박에 동조하는 등 실제 부정적인 모습도 그대로 묘사되었다.[59] 하지만 1979년 실사판 영화에서는 마리의 장단점을 확실히 잡아낸 원작,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전혀 고증이 좋지도 않으며, 과거의 거짓 소문 그대로 표방한 허영심 많고 인간성이 없는 왕비로 나오면서 크게 악평받았다.[60] 작가인 이케다 리요코가 역사 관련으로는 고증을 뚜렷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이러한 정확한 역사 고증은 후속작인 오르페우스의 창에서도 그대로 나온다.[61] 이는 Fgo의 마리가 단순히 마리 앙투아네트 본인이 아니라, 프랑스 왕실 그 자체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등장했기에 이런 차이가 있는 걸로 보인다. Fate 시리즈 자체가 질 드 레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처럼 대놓고 변명의 여지 없는 악인인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62] 마리는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1세의 막내딸, 안토니나는 러시아 제국 차르(황제) 니콜라이 2세의 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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